'어린 왕자'에는 '상자 속의 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막에서 만난 비행사에게 양 한 마리만 그려달라는 왕자에게

비행사가 양을 여러 차례 그려주지만

마음에 들어하지 않자 상자 하나를 그리고는

"이건 상자야. 네가 원하는 양은 이 안에 있어."라고 말하자

왕자가 바로 내가 원하던 것이라고 하는 대목이다. 

상자 속의 양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상자 속의 양'은 

바로 그 '어린 왕자'에 나오는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았다. 

사고로 아들을 잃은 오토네(아야세 하루카)와 켄스케(다이고) 부부가

아들 카케루(쿠와키 리무)의 얼굴과 기억을 가진

휴머노이드를 집으로 들이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진짜 아들이 아니라 휴머노이드지만

오토네는 그를 점점 아들 카케루처럼 대하기 시작하고

애써 그건 로봇에 불과하다고 부정하던 켄스케 역시

아들의 기억을 가진 휴머노이드를 아들처럼 대하는 자신을 보게 된다. 

상자 속의 양

하지만 그 휴머노이드가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부부는 

휴머노이드가 몰래 집을 나가 낯선 무리들과 어울리는 걸 보게 되면서 알게 된다. 

그 무리들은 인간의 욕망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버려진 휴머노이드들이다. 

그들은 자신들끼리 살아가려 하고 

카케루 휴머노이드에게 다 함께 살 집을 설계해달라고 요청한다. 

 

카케루 휴머노이드가 집을 설계하게 된 건

함께 사는 오토네와 켄스케 부부가 집과 관련된 일을 하기 때문이다. 

오토네는 누군가 살 집을 디자인 하는 일을 하고 있고

켄스케는 나무를 다듬어 가구 같은 걸 만드는 일을 한다. 

카케루 휴머노이드는 부부에게 재료들을 요청해 휴머노이드들이 살 집의 모형을 만든다. 

상자 속의 양

영화는 오토네와 켄스케 부부가 

휴머노이드를 통해 사실 자신들의 욕망을 풀어내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들의 죽음으로 오토네는 자신의 상실감을 휴머노이드로 채우려 하고

켄스케는 자신의 죄책감을 휴머노이드로 풀어보려 한다. 

그 상처와 아픔을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그들의 욕망일 뿐이다.

휴머노이드는 그저 그 욕망의 도구가 되어버린다. 

 

부부는 자신들이 휴머노이드를 그저 욕망의 도구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휴머노이드가 집을 나가 버려진 그 존재들끼리 새로운 터전을 꿈꾸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오토네는 말한다. "상자 속에 있었던 건 엄마였구나." 

'상자 속의 양'이란 결국 그 안에 있는 걸 양으로 상상해서 가능한 일이다. 

오토네가 어찌 보면 영혼이 없는 빈 상자기계에 불과한 휴머노이드를 아들로 생각한 건

자신의 욕망이 만들어낸 상상일 뿐이다. 

상자 속의 양

결국 부부는 이 휴머노이드들을 자신들만의 터전으로 보내주기로 한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갈 지는 알 수 없지만

카케루 휴머노이드가 그린 거대한 나무에 둥지처럼 마련한 터전으로

그들을 데려다 준다. 

 

'상자 속의 양'은 이미 AI 시대에 들어온 우리들이

이 텅빈 상자에 불과할 수 있는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상상할 것인가를 이야기한다. 

인간의 욕망을 투영해 마음대로 쓰고 버리는 도구로 상상할 것인지

아니면 인간과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상상할 것인지를 묻는다. 

상자 속의 양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이 부부의 직업이 은유하는 '상자 속의 양'에 대한 것들이다. 

집을 디자인하는 오토네는 텅빈 땅 위에 나무로된 목재와 유리 그리고 실제 나무를 심어

가족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집을 상상한다. 

나무와 목재, 유리는 저 자연물로부터 인간에 의해 옮겨지고 변형된 것이지만

그걸로 오토네는 예쁜 집을 상상하고 만들어내는 것이다. 

켄스케 또한 수백년 된 나무를 연마해 

아름다운 문양의 목재를 만드는데

그것으로 지어질 집이나 가구를 상상한다.  

 

즉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무언가를 가져와 상상해온 것들을 만들어낸 존재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어떤 상상을 할 것인가다. 

상자 속은 그래서 무한한 가능성이자 미지수가 된다. 

그건 판도라의 상자일 수도 있지만

아름다운 양이 들어 있는 상자일 수도 있다. 

여러분들은 그 빈 상자 속에 무얼 상상할 것인가. (사진 : 영화 '상자 속의 양')

2026.6.23

728x90

 ‘더 커뮤니티’, 이 독보적인 정치 실험 서바이벌이 불러 일으킨 기대감

더 커뮤니티

흔히들 서바이벌 프로그램 하면 떠올리는 느낌은 ‘피곤하다’는 것이 아닐까.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고 누군가는 생존하고 누군가는 탈락한다. 그러면서 그 생존의 법칙이 사실은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모양이라고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은 은연 중에 강요한다. 그 많은 오디션 형식의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을 떠올려 보라. 마지막 한 명의 생존자만이 독식하는 그 욕망의 질주를 바라보며 승자에게 박수를 보내지만, 동시에 그것이 우리가 사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이라는 걸 확인하면서 씁쓸해지는 그 양가감정들이 피어오르지 않던가. 

 

하지만 웨이브 오리지널 예능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이하 더 커뮤니티)>는 마치 이런 사회가 생존경쟁의 장이라는 단정이 섣부르다고 말하는 듯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물론 이 서바이벌 프로그램도 여타의 그것들과 다르지 않게 서로 다른 가치관과 살아온 배경, 성향 등을 가진 출연자들을 한 자리에 모여 놓는 것으로 시작한다. 프로그램이 그 사람의 사상을 나누는 기준은 네 가지다. 정치, 젠더, 계급, 개방성이 그 키워드다. 이로써 진보와 보수, 페미니즘과 이퀄리즘, 서민과 부유, 개방과 전통으로 출연자들의 사상은 마치 MBTI처럼 구분된다. 

 

그래서 이런 구분은 출연자들 간의 다른 가치관과 생각들로 인한 갈등과 대결을 상상하게 한다. 여타의 서바이벌이었다면 이들은 ‘사상검증’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의 사상을 맞춰 탈락시킬 수 있다는 룰이 공개되자마자, 공격과 반격이 벌어지며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국민의 힘 소속 도봉갑 당협위원장 출신인 슈퍼맨(김재섭)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자 문재인 정부 대통령 비서실 청년 비서관 출신인 백곰(박성민)처럼 정치 최전선에서 서로 다른 진영에 있었던 이들은 팽팽한 대립이 불을 보듯 뻔한 일처럼 여겨진다. 

 

나아가 페미니스트인 하마(하미나)와 페미니즘과는 어딘가 거리가 있어 보이는 707 특수단 상사 출신 다크나이트(이창준)이나, 홍콩대 출신의 금수저를 자처하는 지니(이지나)나 흙수저를 자처하는 다크나이트나 청와대 여성 경호원 출신 낭자(이수련)처럼 분명한 차이가 느껴지는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으니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더 커뮤니티>는 이러한 차이가 결국 분란을 만들고 서로가 서로를 저격하며 누군가를 탈락시키는 흐름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예상을 보기좋게 빗나간다. 성향과 출신이 다른 이들은 결코 함께 생존해가는 커뮤니티를 구성하기 어렵다는 생각 자체가 그저 고정관념이고 편견의 소산이라는 걸 보여준다.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는 이상주의자 테드(이승국)가 통찰력으로 빠르게 현재 그들이 놓여 있는 상황들을 브리핑하듯 정리하면서 다 같이 생존할 수 있는 ‘천국’의 이상을 설파하면, 정치적 성향에 있어서는 충돌하지만 같은 정치권에서 활동했던 이력을 갖고 있어 오히려 더 잘 소통되는 슈퍼맨과 백곰이 머리를 맞대고 그 방법들을 고민한다. 데이터 전문가이자 방송인인 그레이(전민기)나 맥심 모델이지만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슈가(김나정)가 특유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으로 커뮤니티의 소통을 풀어간다. 

 

이러한 통상적인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예상을 깨는 의외의 전개 때문일까. <더 커뮤니티> 이렇다할 대대적인 홍보 없이도 방송이 진행되면서 입소문을 탔다. 웨이브측의 발표에 의하면 <더 커뮤니티>는 3~4회가 공개된 오픈 2주차 전체 시청시간이 앞선 1주차 대비 120% 증가했고, 설 연휴였던 오픈 3주 차에는 4회차 동시 공개(5~8회)라는 파격 편성으로, 오픈 4주차에는 첫 주 대비 무려 420% 상승한 시청시간을 기록했다. 또 매 신규회차 오픈 당일인 금요일 웨이브 예능 장르 신규유료가입자 견인 1위를 기록했고, 특히 30대 여성 시청시간 비율이 30%를 차지하는 성과를 냈다. 

 

물론 <더 커뮤니티>는 서바이벌이 갖는 분란도 엄연히 존재했다. 모두가 생존하자는 이들의 노력들을 현실주의자인 다크나이트나 낭자 그리고 다수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경험자이기도 한 마이클(윤비)은 앞에서는 커뮤니티의 결정에 따르면서도 뒤에서는 비웃는다. 그것은 마치 현실주의자들의 조롱처럼 처음에는 느껴지지만 뒤에 가면 이들이 치열하게 살아왔던 삶 자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나올 수밖에 없는 반응들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즉 누군가는 아버지의 사업이 망해서 베이징덕 요리를 먹지 못하게 되어 너무 슬퍼 울었다는 이야기를 짜장면 한 그릇도 사치로 여겼던 이들은 납득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처럼 생각과 성향과 출신이 다른 이들이 꾸려가는 커뮤니티는 놀랍게도 꽤 오래도록 유지된다. 전체 11회 분량에서 8회까지 모두가 생존하는 ‘평화의 시대’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 평화는 룰 자체가 더 독해지고 불순분자인 벤자민(임현서)의 활동이 본격화되면서 8회에 깨진다. 어쨌든 탈락자가 탄생할 수밖에 없는 룰의 압박 속에서 평화와 공동 생존을 주장해왔던 이들 중 이를 깨고 배신과 저격을 시도함으로써 첫 번째 탈락자가 탄생한다. 그리고 이 균열은 또 다른 탈락자로 이어진다. 불순분자의 정체가 드러나고, 그 불순분자를 모두가 협력해 커뮤니티에서 탈락시키지만 또 다른 이가 그 역할을 부여받는 지독한 상황이 펼쳐진다. 

 

결국 <더 커뮤니티>는 서바이벌이라는 형식이 그러하듯이 그 생존의 틀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많은 이들이 탈락하고 끝내 살아남는 이들이 상금을 분배해 가져가는 것이 이 형식의 결말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건 애초 사상이 전혀 다른 이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존의 커뮤니티를 꿈꿨던 그 이상이 깨지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다크나이트가 주장하듯이 이들이 그간 해왔던 토론과 노력들이 마치 ‘배운 이들의 탁상공론’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커뮤니티>의 서바이벌이 달랐던 건 정해진 생존 현실의 결말을 향해 간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끝없이 이들이 공존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 아닐까. 10회에 미션으로 주어진 ‘인생스피치’에서 테드는 인상적인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위선자’라는 키워드를 갖고 개인적인 경험까지 꺼내 들려준 그의 이야기는, 자신이 가진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위선일 수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자신 안에 있는 욕망들을 마구 꺼내놓기보다는 그걸 콘트롤하며 살아가는 ‘위선’을 선택할 거라는 거였다. 

 

이건 무얼 의미하는 걸까. <더 커뮤니티>에서 8회까지 공존의 이상을 꿈꾸며 해왔던 노력들이 ‘위선’이라고 간단히 폄하될 수 없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다. 설사 현실은 끝내 이상을 용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런 커뮤니티라는 틀을 통해 함부로 자신만의 욕망을 마구 꺼내놓는 걸 스스로 통제하려 애써 노력하는(물론 실패할 수 있겠지만) 것 자체가 아름다운 선택일 수 있다는 걸 이 독특한 서바이벌은 보여주고 있다.

 

이제 리얼리티쇼 트렌드 깊숙이 들어와 있는 한국 예능에서 이제 ‘서바이벌’도 조금은 다른 시도가 가능할 수 있다는 걸 <더 커뮤니티>는 보여줬다. 그건 정치라는 소재적 차원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일종의 ‘사회 실험’이라고 할 수 있어 그저 프로그램에 머무는 게 아니라 다양한 연구와 논의가 가능할 수 있는 보다 본격적인 리얼리티쇼의 문을 열었다는 의미다. 그래서 최근 몇 년 간 진행된 서바이벌 프로그램들 중에서 단연 <더 커뮤니티>는 도드라져 보인다. 이 프로그램이 연 이 문을 통해 리얼리티쇼의 새로운 영역들이 열릴 것 같은 기대감이 생기는 이유다.(사진:웨이브)

728x90

‘고독한 훈련사’의 질문, 당신은 강아지랑 같이 살고 있나요?

고독한 훈련사

“선장님이 저랑 오면서 뭐라고 말씀하셨냐면, ‘개는 키우는 게 아니라 개랑 같이 살죠’라고 하셨는데 파로호에 사시는 분들이 다 그런 것 같아요. ‘우리는 서로가 필요해서 같이 살고 있다.’ 이 말이 너무 멋진 것 같아요. ‘내가 너를 키워주는 거니까’ 이게 아니라 얘가 있어서 나도 잘 사니까 같이 산다는 느낌이 들죠.” 

 

tvN Story <고독한 훈련사>에서 강형욱은 파로호에서 살아가는 반려견들과 보호자들을 만난 소회를 그렇게 밝혔다. 우리에게는 오지로 알려진 곳. 강원도 화천 비수구미 마을을 오지 소재의 프로그램에 단골로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배가 있어야 찾아갈 수 있는 그 곳은 보기만 해도 눈에 물이 들 것 같은 파란 색의 호수와 봄이 되면 브로콜리처럼 파릇파릇하게 우거진 나무들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아름다운 풍광에 시선을 빼앗기던 강형욱이 어느새 당도한 곳에 배를 정박할 때 저 멀리서부터 달려오고 있는 반려견 순두에게서 가장 먼저 눈에 띠는 건 목줄이 없다는 것이다.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순두는 사람을 좋아해 근처 캠핑을 하러 오는 분들을 따라서 10여 킬로가 넘는 길을 갔다가 잃어버릴 뻔 했던 적도 있단다. 순두는 함께 살아가는 김정일, 김나희 부부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어쩌면 고립무원의 오지생활에 든든한 동반자이자 반려자였다. 

 

힘겨워 울고 있을 때 그걸 보고 순두가 다가와 손을 막 핥아줬을 때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다는 김나희씨는 순두의 마음 씀씀이가 너무 예뻐서 “호적에 올릴 뻔 했다”고 말했다. 강형욱은 이 부부의 삶에 순두가 있어서 그 모습이 완성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실제로 둘만 오지에서 산다면 어딘가 쓸쓸했을 모습들이 순두로 인해 꽉 채워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근처에 사는 순두의 엄마 보리와 함께 사는 분들은 애초 이 곳을 주말주택으로 쓰려했는데 서울에 거의 안가고 이 곳에서 살다시피 하게 됐다고 했다. 가장 큰 이유는 보리다. 서울에 일보러 나가면 3일 만에 와도 항상 배가 정박하는 곳 근처에서 보리가 이들을 기다리고 환대한다고 했다. 그래서 기다리고 있을 보리를 두고 거의 서울에 나가지 않게 됐다는 거였다. 

 

강형욱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도시에 사는 개들과는 너무나 다른 이 곳의 반려견들과 보호자들의 삶을 절감했다. 도시에서는 “보호자가 없을 때 보호자를 찾는 건 분리불안”이라고 말하고 이를 고쳐야 하는 나쁜 행동이라며 교육을 하는데, 보리와 그 보호자들의 감정 교감은 ‘분리불안’식으로 결코 말할 수 없는 거라는 거였다. 

 

“도시 사람들은 바쁘잖아요. 그래서 대부분 ‘기다려’를 많이 가르쳐요. 근데 자기는 (반려견을) 기다려준 적이 없어. 어떤 개들은 보호자가 잠이 들기 시작하면 불안해해요. 왜인 줄 아세요? 갑자기 일어나서 빨리 없어지거든요. 저녁 동안 일어나기를 기다렸는데 일어나니까 가면서 또 기다리래. 갔다 오니까 또 바빠 가지고 쉬고 영화도 볼 수 있고 영어 학원도 갔다 오고 하다 보면 잠자야 되니까 또 자. 그래서 도시 개들은 누가 자기를 기다려주는 것을 누려보지 못했어요.” 

 

강형욱의 이야기는 도시에서의 반려견 문화가 개를 ‘키우는’ 사람들 중심으로 되어 있다는 걸 꼬집는 거였다. 물론 그건 도시라는 환경 때문에 함께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 개와 함께 살아가며 이것을 ‘반려’라고 말하는 건 과연 괜찮은 일인가를 되묻는 것이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강형욱은 도시에서 발생하곤 하는 반려견들의 문제에 솔루션을 주는 프로그램으로 주목받은 훈련사다. 물론 그가 출연하고 있는 <개는 훌륭하다>라는 프로그램은 그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러한 문제들이 대부분 반려견이 아닌 보호자의 문제라는 걸 보여주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도시의 환경 속에서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반려견들 또한 가르치거나 명령에 복종하게 하는 훈육의 대상이 되었던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도 보면 진짜 아까 훈련사님처럼 명령하고 시키고 그러고 싶지 않아요.” 보리의 보호자들은 보리가 굳이 명령하고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잘 지낸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전제가 있었다. 그건 이런 환경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간 ‘반려견 문화’라고 주로 이야기하며 인간과 동거하며 살아가야 할 반려견들의 훈육에 주로 맞춰졌던 것들을 뒤집는 ‘반려인 문화’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고민이 있다며 찾아온 강형욱에게 최재천 교수는 명쾌하게 던져준 답변이 바로 그것이었다. “저는 용어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예요. 우리가 반려견이라고 부르는데 반려인이죠. 개들이 우리를 반려인으로 선택해 준 거예요. 우리가 선택 당한 거예요. 그러면 이제 태도가 확실히 변해야 하잖아요. 그분들이 우리를 선택해 주셨는데 감히 우리가 그분들을 불편한 환경에 몰아넣고 이런 짓을 한다는 건 이건 애당초 계약위반인 거죠.” 

 

반려견과 반려인. 최재천 교수가 화두로 던진 이 말은 달리 말하면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담은 이야기다. 즉 인간 중심으로 자연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태도가 아니라 자연의 선택을 받은 인간으로서 가장 행복한 공존을 꿈꿔야 한다는 것. 반려견에 대해 우리가 어떤 태도와 관점을 갖는가의 문제는 그래서 자연과 생태, 환경에 대해 우리가 어떤 관점을 갖는가와도 맞물려 있다. 

 

<고독한 훈련사>에서 강형욱이 그간 주로 활동했던 도시가 아닌 오지로 떠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도시에서 목줄 없이 다니는 개가 이상해보였지만 그 곳에서는 목줄을 하고 있는 개가 더 이상해 보이는 그 관점의 변화를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아름다운 공존을 통해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어서다. (사진:tvN Story)

728x90

‘환혼’이 훌쩍 뛰어넘은 무협, 멜로 그 이상의 성취

환혼

“넘치는 힘이란 건 네가 기쁜 만큼만 쓰고 말 수는 없어. 비를 바라면 홍수를 피할 수 없고 바람을 원하면 태풍을 맞아야 하듯이 감당해봐.” tvN 토일드라마 <환혼>에서 무덕이(정소민)는 얼음돌 한 가운데서 환각처럼 어린 시절의 자신과 대화를 나눈다. 그 말은 지금까지 술력을 쌓아 더 강한 자가 되고픈 이 드라마가 그려내던 그 욕망들을 무화시키는 말이기도 하다. 

 

무덕이는 “이 힘을 두고도 내 맘대로 쓸 수 없다는 것이냐”고 묻는다. 그러자 어린 시절의 무덕이가 말한다. “당신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있긴 합니다. 쓰지 않는 겁니다. 그 힘을 쓰지 않는 선택은 당신 뜻대로 할 수 있어요.” 아이러니한 이야기다. 얼음돌이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인간이 제 뜻대로 할 수 있는 건 그 힘을 쓰지 않는 선택뿐이라니. 이건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까. 

 

여기서 <환혼>의 이야기는 ‘자연의 힘’과 ‘인간의 힘’에 대한 다소 철학적인 이야기를 그려낸다. 인간이 수련을 통해 수기를 모으고 그것으로 술력을 키워 자기 것이라 착각하지만, 그건 사실은 수기라는 자연의 힘(하늘의 기운)을 활용하는 것일 뿐,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자연의 힘을 있는 그대로 놔두고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걸 소유해 그 힘으로 권력을 잡으려는 욕망이 만들어내는 파국. <환혼>이 그리려한 세계가 그저 술력 키우는 무협에 적당히 달달한 멜로를 섞어 낸 그런 세계가 아니라는 걸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얼음돌은 그래서 이러한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 어리석은 인간들이 드러내는 욕망을 끄집어내는 일종의 리트머스지 같은 장치다. 얼음돌을 통해 환혼술을 소환해 제 몸을 장강(주상욱)과 바꿔 그의 아내를 탐한 선왕의 욕망이 그렇고, 뱃속에서 13개월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은 아이를 구해내려 금기를 어겨가며 얼음돌을 꺼내와 장강을 통해 아이를 살려낸 진요원의 원장 진호경(박은혜)이 그렇다. 얼음돌의 힘을 통해 권력을 쥐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천부관 부관주 진무(조재윤)도, 그 얼음돌로 환혼해 왕비 행세를 하는 당골네도 모두 그 비뚤어진 욕망 앞에 무너진 어리석은 선택을 한 자들이다. 

 

만장회에 모인 모든 이들이 얼음돌의 힘을 궁금해하고 그래서 그 욕망에 눈 멀어 무덕이를 죽이고 되살리는 시연을 하는 걸 막지 않는 것도 그런 어리석은 선택의 결과다. 결국 그 선택은 이들 앞에 거대한 자연의 환란으로 돌아온다. 정진각 주변을 거대해진 얼음돌의 힘이 결계를 만드는 것. 그래서 그 안에 갇힌 장욱, 무덕이는 물론이고 서율(황민현), 고원(신승호) 같은 청춘들이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과, 그 바깥에서 아이들의 운명은 깜빡 잊은 채 얼음돌의 힘에만 눈이 멀었던 만장회 어른들의 모습은 극명히 대비된다. 

 

이건 마치 자연의 힘(하늘의 기운)을 제 것으로 가지려는 어른들의 욕망이 후대를 살아가야 할 아이들(청춘들)에게 어떤 비극으로 돌아오는가를 그려내는 은유 같다. 과학의 힘을 과신해 환경을 훼손해가며 마구 에너지를 끌어온 그 대가가 현재 후대들 앞에 어떤 암울한 미래를 펼쳐놓고 있는가를 떠올려 보라. <환혼>이 무협의 세계를 통해 그려놓은 얼음돌이라는 하늘의 기운을 가진 힘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상징과 은유로 다가오는가 새삼 느껴질 게다. 

 

“인간의 기운인 수기도 내 몸 속에서 돌리지 못하면 내 것이 되지 못하는데 하늘의 기운을 돌려서 가질 수 있는 인간이 있겠어?” 하지만 장욱의 이 말처럼 <환혼>은 저 어른들과는 다른 선택을 하는 청춘들을 통해 희망을 담는다. 장욱은 그 하늘의 기운을 가질 수 없다면 다 내어주면 어떻겠냐고 되묻는다. “내 기운을 다 하늘의 기운에 내어준다면 내 기운이 다 하늘의 기운이 되는 거잖아.” 

 

술력을 쓰면 기력을 모두 빨아들이는 얼음돌의 결계 속에서 장욱은 탄수법을 써서 그 결계를 깨기 위해 자신의 기력을 다 내어주고 대신 물 한 방울을 만들려 한다. 그 물 한 방울이 결계를 깨고 수 천 수 만 개의 빗방울이 될 거라 믿는다. 그간 벼랑 끝에 제자를 세워 술력을 키우게 해온 사부 무덕은 장욱의 그런 선택을 반대한다. 하지만 결계를 깨지 않으면 다친 서율이 죽을 수도 있다며 던진 장욱의 한 마디는 무덕을 수긍하게 만든다. “무덕아 네가 포기한 건 지키기 위해서지? 나도 지키려는 거야. 그리고 유리도 그동안 널 지켜왔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갖기 보다는 다 내어주는 것. 이 청춘들은 술력을 갖기 보다는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한 선택을 한다. 이 부분에서 <환혼>의 멜로는 달달한 청춘들의 사랑 그 이상의 함의로 확장된다. 스승 무덕은 장욱 앞에서 힘을 되찾을 기회를 버리고, 제자 장욱은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해 그간 어렵게 쌓아온 기력을 버린다. 그렇게 대호국에 나타난 거대한 환란은 이들의 희생에 의해 사라진다. 

 

“스승님, 제자 오늘로 파문하겠습니다. 그간 못난 제자를 벼랑 끝에 세워두고 떠밀며 여기까지 이끌어주셔 감사했습니다. 비록 스승께선 힘을 찾을 기회를 버리시고 제자 또한 그동안 쌓아온 기력을 버렸지만 그로인해 평생 곁에 둘 소중한 이를 얻었습니다. 쓰이고 버려지지 않고 지키고 간직하고자 하니 파문을 허락해주십시오.” 장욱이 무덕에게 파문을 요구하고 그러자 무덕은 이를 허락한다. 사제지간은 그것으로 끝이 난다. 

 

대신 장욱과 무덕의 연인 관계가 남는다. “아 그럼 이제 도련님한테 시집와라. 무덕아.” 술력 대신 사랑의 선택. 그건 사적 욕망 대신 공존을 선택한 것이란 점에서 그 의미가 깊어진다. 이 쿨내 진동하는 장욱과 무덕이 그려낸 <환혼>의 서사가 그저 가벼운 무협과 멜로 그 이상의 성취를 갖게 된 이유다. (사진:tvN)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