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진짜 사이코인가, '사이코'가 반전을 통해 던진 질문

 

아마도 한껏 행복한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줄만 알았던 시청자들이라면 단 몇 초 간 보여준 반전에 소름이 돋았을 게다. tvN 토일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괜찮은 정신병원 수간호사 박행자(장영남)가 가슴에 나비 브로치를 한 채 운전을 하며 미소를 짓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그 브로치는 강태(김수현)와 상태(오정세)의 엄마를 죽인 살인범이 옷에 달고 있던 것이고, 고문영(서예지)의 엄마가 옷에 달고 있던 것이었다. 그러니 브로치는 괜찮은 정신병원에서 가장 환자를 배려하던 수간호사가 바로 그 살인범이자 살해된 줄 알았던 고문영의 엄마일 수 있다는 증거가 된다.

 

한편 문영의 엄마가 자신의 엄마를 죽인 살인범이라는 사실을 알고 홀로 아파하며 이를 숨기려 했던 강태의 노력도 수포로 돌아갔다. 함께 사진을 찍으며 이제는 가족이라고 서로를 챙기기 시작한 강태와 문영, 상태는 괜찮은 정신병원에 같이 출근하다가 상태가 그린 벽화에 누군가 그려놓은 거대한 나비 그림 앞에서 굳어버렸다.

 

나비가 보면 공포에 질려 도망치기만 했던 상태는 이제 도망치지 않고 맞서겠다 마음먹고 조금씩 나비를 습작하기 시작하던 터였다. 그래서 벽화에 나비를 스스로 그려 넣는 건 트라우마를 이겨낼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마도 살인범이 그려 넣었을 그 벽화의 나비 그림은 상태에게 그런 기회조차 주지 않겠다는 협박처럼 보였다. 상태는 다시 공포에 질렸고 그래서 그 그림이 엄마를 죽인 살인범이 달고 있던 브로치 문양이라는 걸 말했으며 문영은 그제야 자신의 엄마가 강태의 엄마를 죽인 살인범이라는 걸 알아챘다.

 

물론 아직도 박행자가 살인범이고 고문영의 숨겨진 엄마인가는 분명하게 밝혀지진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그 브로치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그 살인과 연루된 어떤 인물이고, 결코 평범한 이는 아니라는 게 분명하다. 이 상황은 그래서 나아가 괜찮은 정신병원의 오지왕(김창완) 원장까지도 의심하게 만든다. 나비가 '프시케'라 불린다고 상태에게 말했던 오지왕 원장이 아닌가. 고문영의 엄마는 어린 시절 그 나비 브로치를 보여주며 '프시케'라고 했고 그건 '사이코'의 어원이라 말한 바 있다.

 

박행자가 결코 사람 좋은 수간호사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시청자들을 소름 돋게 만드는 반전이지만, 그 반전이 만들어내는 의미는 의외로 만만찮다. 그것은 정신질환을 가진 환자들을 간호해주는 수간호사가 더 문제적 인물이라는 설정 때문이다. 여기서 환자의 위치와 이를 지켜주는 간호사의 위치는 역전된다. 이 드라마가 화두처럼 내세우고 있는 '괜찮다'는 대상이 바뀌게 된 것. 괜찮지 않아 보였던 환자들은 사실 드라마 속 이야기들을 보다보면 꽤 괜찮은 이들이었다는 게 밝혀진 바 있지만, 너무나 괜찮아 보였던 수간호사가 이렇게 전혀 괜찮지 않은 인물이었다는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강태나 문영 그리고 상태는 '사이코'처럼 보이지만 너무나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보듬고 가족으로 끌아 안았다. 심지어 강태는 부모 간의 벌어진 비극조차 혼자 삼켜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병원 바깥에 있는 이들이었다. 이번 편에서 학대받아 다른 자아를 갖게 된 환자의 사연은 이 이야기를 압축해 보여준다. 어려서 엄마에게 학대당하는 딸을 방관하고 무당집에 버리고는 수십 년이 지나 간 이식을 해달라고 나타나는 아버지를 어찌 괜찮다 말할 수 있을까.

 

<사이코지만 괜찮아>가 너무나 괜찮은 작품인 건 수간호사의 반전 같은 극적 장치들을 가져오고 강태와 문영 그리고 상태가 드디어 가족으로 묶이게 되는 그 과정을 따뜻하게 그리면서도 그 안에 만만찮은 문제의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과연 우리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어떤 기준이 온당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있어서다. 과연 괜찮은 건 무엇이고 괜찮지 않은 건 무엇인가. 누가 진짜 사이코인가. 상처 입어 평범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이들인가 아니면 상처를 주고도 평범한 채 살아가는 이들인가.(사진:tvN)

'사이코', 오정세가 만들어내는 멜로 그 이상의 가치

 

tvN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11회 부제는 '미운 오리 새끼'다. 매회 동화를 부제로 가져와 동화가 제시하는 교훈과는 다른 해석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이 드라마가 '미운 오리 새끼'를 가져와 던진 질문은 '가족'이란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동생 강태(김수현)와 자신이 좋아했던 동화작가 문영(서예지)이 가깝게 지내는 걸 형 상태(오정세)는 용납하지 않는다. 강태는 문영에게 상태가 가진 트라우마를 이야기하며 자신은 형 옆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문영에게 자신의 옆에 있어 달라고 한다. "내가 형 옆에 있을 테니까 넌 그냥 내 옆에 있어."

 

그래서 문영은 상태를 찾아와 작업을 같이 하자며 세 사람이 함께 지내려 애쓴다. 하지만 상태는 요지부동이다. 동생 강태를 "내 거"라고 말한다. 그런 상태에게 문영은 "강태는 강태 거"라며 말다툼을 벌이지만 그런 이야기가 상태에게 먹힐 리 없다. 상태는 강태가 동생이지만 문영은 "남"이라고 선을 긋는다.

 

"형한테 나는 유일한 가족이야. 그런 나를 너한테 빼앗기고 혼자가 될까봐 형이 두려워하고 있어." 강태는 형이 왜 그러는지 알고 있다. 문영과 가까워지면 자신은 버려질 지도 모른다 두려워하는 것. 그래서 강태는 말한다. "날 뺏기는 게 아니라 함께 있어줄 한 명이 더 생기는 거라고. 남이 아니라 우리가 되는 거라고 믿게 해줘야지."

 

강태는 형에게 둘리 가족을 이야기하며 고길동이 왜 둘리와 도우너 같은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걸 빗대 '보호자'와 '어른'은 '남'이어도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걸 설득시킨다. 집에서 말다툼을 벌이다 강태가 저도 모르게 내뱉은 "형이면 형답게 좀 굴어!"라는 말에 상태는 생각이 많아진다. 잠든 강태가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 걸 보며 상태는 '강태의 행복'에 대해 생각한다.

 

자폐를 갖고는 있지만 그는 자신이 형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자신만의 돈 통에 꼭꼭 숨겨둔 비상금을 꺼내 강태에게 돈가스를 사준다. 형답게 돈가스를 잘라주고 물수건도 건네준다. 그리고 자신의 돈가스를 동생에게 덜어주고는 돈 통에서 꼬깃꼬깃한 용돈도 꺼내 준다. 동생 강태를 행복하게 해주고픈 형의 마음이 묻어난다.

 

그 곳까지 따라온 문영이 상태에게 자신도 용돈을 달라며 자신은 용돈 줄 사람도 함께 밥 먹어줄 가족도 없다고 했지만 상태는 뿌리치며 강태에게 집에 가자고 한다. "나도 오빠 같은 오빠 갖고 싶다고!" 문영의 그 말은 상태의 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빨리 와 문강태!... 고문영! 빨리 와! 둘 다 안와?" 상태는 드디어 형으로서 동생이 좋아하는 문영을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강태는 상태에게 '미운 오리 새끼'에서 다르게 생겼다고 차별받아 오리가 떠나게 되지만, 만약에 엄마가 미운 오리를 끝까지 사랑해줬다면 어땠을까를 묻는다. 그리고 어른이 잘 품어주면 오리든 백조든 다 같이 함께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이건 아마도 <사이코지만 괜찮아>가 담으려는 또 하나의 메시지일 게다.

 

어린 시절 아픈 상처를 입고 평범한 삶을 살기 어려워진 건 강태와 문영만이 아니다. 상태는 그 트라우마로 자폐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자폐여도 형으로서 동생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고, 동생이 사랑하는 사람을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상태가 문영이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니라 조금 달라도 가족이 될 수도 있는 존재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상태 역시 자폐를 갖고 있어도 누군가의 가족으로 함께 행복할 수 있다. '어른'이라면.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강태와 문영 사이의 멜로를 중심축으로 갖고 있는 드라마지만, 그 멜로 그 이상의 가치를 만드는 건 바로 상태다. 충격적인 사건으로 자폐라는 조금은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야 하지만 그가 괜찮은 형이고 나아가 괜찮은 어른처럼 보이는 지점은 멜로 그 이상의 먹먹한 감동을 준다. 평범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들은 과연 상태보다 더 괜찮은 어른일까를 스스로 자문하게 만든다.

 

이 중요하면서도 결코 쉽지 않은 상태라는 역할은 오정세라는 빛나는 배우를 만나 생명력을 얻고 있다. 드라마의 주제의식이 되기도 하는 이 캐릭터가 조금은 낯설지만 따뜻하고 때론 귀엽게 그려지는 건 오정세의 너무나 자연스러운 연기 덕분이다. 오정세여서 더 괜찮고 더 감동적인 상태라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탄생했으니.(사진:tvN)

'사이코지만'의 잔혹동화, 김수현과 서예지가 맞서는 푸른수염은

 

"그 앤 날 살려줬는데 난 도망쳤어." 강태(김수현)는 어린 시절 자신을 구해줬던 문영(서예지)의 이야기를 마치 다른 사람 이야기하듯 문영에게 말했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얘기할 때 강태는 이미 문영이 어린 날 자신을 구해줬던 그 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건 문영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 때의 그 아이가 자신이라 말하진 않았지만 강태가 그걸 기억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강태는 어째서 첫 재회부터 문영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했고, 문영 역시 강태가 기억해주길 바라면서도 굳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을까. 이것은 tvN 토일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가 그려내는 특별한 멜로의 구도다. 디즈니 동화에나 나올 법한 숲속의 성(?)이 문영의 집으로 등장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위험에 처한 공주를 구하러 달려오는 왕자 따위는 없다. 그건 동화책 속에나 등장하는 이야기이니.

 

문영이 곱게 자란 공주가 아닌 것처럼, 강태 또한 왕자가 아니다. 이들은 어린 시절 거의 아동학대에 해당할 정도의 깊은 상처를 입었고, 그 상처는 가슴 한켠에 여전히 비수처럼 꽂혀 있다. 발달장애 자폐를 가진 형 상태(오정세)에 대한 엄마의 비뚤어진 애정은 강태를 마치 형을 지켜주기 위해 태어난 존재처럼 대하게 했고 그건 강태를 아프게 했다.

 

엄마가 태권도 도장을 다니게 해준 것도 강태를 위해서가 아니라 형을 지켜주기 위해서 해준 것이었다. 늘 형을 향해 누워있는 엄마의 등을 애써 껴안으며 흘리는 강태의 눈물에는 자기 존재를 봐달라는 소리 없는 절규가 담겨 있었다. "난 형을 지켜주는 사람이 아냐. 난 형 게 아니라고! 난 내 거야! 문강태는 문강태 거라고! 형 같은 거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그래서 그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말에 진저리친다. 고문영이 자신도 강태가 필요하다고 말했을 때 그는 형과 엄마를 떠올렸을 게다. 그는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그 자신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어쩌면 엄마에 의해 '필요한 사람'으로서 살아오며 누군가의 도움을 외면하지 못하는 착한 강태는 얼어붙은 강의 얼음이 깨져 빠져버린 형을 외면하지 못한다. 그가 대신 물속에 뛰어들어 형을 구해내지만 도망가 버린 형 때문에 자신은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멀리서 그 광경을 보던 문영이 스티로폼 같은 부표를 던져 강태를 구해주었고, 그래서 강태는 꽃다발을 들고 문영이 사는 그 숲속의 집을 찾아가지만 그는 매몰차게 강태를 밀어낸다. 꽃다발을 밟아버리고 꺼지라고 한다. 그런데 문영이 그렇게 매몰차게 강태를 대한 건 불행의 기운이 가득한 그 집으로부터 강태를 밀어내기 위함이었다.

 

문영이 '푸른 수염'을 가진 백작에 대한 이야기는 자신이 어린 시절 겪은 부모의 불행을 담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 저택에 들여 모든 걸 주었지만 단 하나 지하실 방에 들어가지 말라고 당부했고, 그 방에는 그걸 어긴 여인들의 잘려진 목이 전시되어 있었다는 잔혹한 이야기. 그 푸른 수염의 이야기는 어딘지 문영을 아이가 아닌 자신의 작품이나 되는 것처럼 대하던 정신이 이상해진 엄마와 어쩌면 그 엄마를 죽였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아빠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강태도 문영도 그래서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강태는 '필요한 사람'으로 살아오며 누군가를 사랑할 여력조차 버거운 상황이고, 문영은 자신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마저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강태를 밀어내는 상황이다. 부모들의 엇나간 애정으로 인해 깊은 트라우마를 갖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조차 힘든 강태와 문영. 그래서 이들의 사랑은 대단한 무언가를 쟁취하거나 성취하는 그런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이 원하는 건 그저 평범한 사랑일 뿐이니.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그래서 그 제목에 담겨 있는 것처럼, 이미 상처받고 저 낮은 곳으로 추락한 이들이(사이코지만), 그럼에도 서로를 사랑할 수 있다(괜찮아)는 걸 확인하는 드라마다. 유명한 동화작가로 성공한 인물로서 누구 앞에서도 마녀처럼 맞서고 있는 문영이 잠자리에서 수시로 나타나는 엄마의 환영으로 신음하고, "엄마가 경고했지? 널 구하러 온 왕자도 죽일 거라고."라고 말하는 환영 앞에 오열하는 모습은 그래서 가슴 저릿한 장면으로 다가온다. 그가 강태에게 "꺼져"라고 말했던 진짜 이유가 거기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런 문영을 발견하고 달려온 강태에게 문영은 애써 "도망가, 당장 꺼지라고!"라고 외친다. 하지만 강태는 이제 문영의 그 말이 담긴 진짜 의미를 알아차린다. 입으로는 꺼지라고 외치면서 더 강렬하게 강태를 붙잡고 있는 손이 그걸 말해준 것. "그래. 안 갈게." 상처로 인해 정상적일 수 없는 자신 때문에 밀어내는 마음을 애써 이겨내며 강태를 붙들고 있는 문영과, 더 이상 '지켜주는 사람'이 되는 그 버거움을 애써 이겨내며 문영을 꼭 껴안고 있는 강태의 사랑은 그래서 서로를 향하는 것이면서 자신을 극복해가는 과정처럼 그려진다.

 

<사이코지만 괜찮아>가 특별해지는 건 이들의 사랑이 대단한 걸 성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그 지점 때문이다. 부모 세대들에 의해 평범한 사랑조차 쉽지 않은 우리네 청춘들의 현실을 마치 잔혹동화라는 틀을 통해 은유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적어도 이들이 사랑할 수 있기를 시청자들도 간절히 바라게 되는 이유 중 하나일 게다.(사진:tvN)

'사이코', 서예지와 김수현이 나누는 온기가 이토록 먹먹한 건

 

"그래서 마음이 아파? 아니면 슬퍼? 지금 정확히 어떤 감정이야? 넌 몰라. 네가 무슨 감정으로 이렇게 날 뛰는 건지 너도 모른다고. 속은 텅 비었고 그냥 소리만 많아. 깡통처럼. 그러니까 아무 것도 모르면서 나에 대해 다 안다고 다 이해한다고 착각하지 마. 너 죽을 때까지 나 몰라."

tvN 토일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문강태(김수현)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맞았다는 걸 알고는 화를 내는 고문영(서예지)에게 그렇게 쏘아붙인다. 반사회적 인격성향을 가진 고문영은 감정이라는 걸 갖지 못한 채 태어난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강태가 왜 자신을 이렇게 따라 다니냐고 물었을 때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갖고 싶다고 말한다. 예뻐서.

 

고문영은 어린 시절 자신의 목을 졸라 죽이려 했던 아버지에 대해서 문강태에게 "치매환자"라며 "영혼은 죽고 가족만 남은 빈껍데기"라고 말한 바 있다. 사람도 물건처럼 쓸모가 없어지면 버려진다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고문영에게 화가 난 문강태가 차에서 내려 혼자 걸어가자 고문영은 그 뒤에 대고 "사랑해 강태씨"라고 바락바락 소리친다. 하지만 그 말에는 영혼이 없다. "사랑한다고! 사랑한다니까!"

 

그런데 과연 그런 어쩌다 감정이 없는 빈 깡통으로 태어났다고 해도 그것이 그의 잘못일까. 그런 자는 누군가의 온기조차 느낄 자격이 없는 걸까. 문강태는 겉으로는 그렇게 잔인하게 말했어도 그것이 진심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다. 그것은 자폐를 가진 형 때문에 자신도 어려서부터 심지어 엄마에게까지 자신의 존재가 빈 깡통처럼 지워지는 깊은 상처를 겪은 바 있다.

 

엄마는 어린 강태에게 말했다. "강태야. 너는 죽을 때까지 형 옆에 있어야해. 키우는 건 엄마가 할 테니까 너는 지켜주고 챙겨주고 그러면 돼. 알았지? 엄마가 너 그러라고 낳았어." 상태를 향해 누워 자는 엄마를 애써 등 뒤에서 껴안으며 강태는 얼마나 속으로 외쳤을까. 나도 온기가 필요하다고. 그래서 강태가 문영에게 한 그 날선 이야기는 어쩌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었다. 자신 또한 빈 깡통 같은 삶이고 그건 누구도 몰라주는 일이었다고.

 

문영은 병원에서 아버지를 다시 대면하지만, 아버지는 "왜 살아있냐"며 그의 목을 조른다. 냉정하게 '빈껍데기'라고 말했지만 아마도 실오라기만큼 남았을 문영의 기대는 그 순간 무너졌을 게다. 그는 비 내리는 그 먼 길을 걷고 또 걷는다.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텅 빈 깡통이 애써 제 몸을 혹사시킨다. 그렇게라도 해야 제 존재의 아픔을 드러낼 수 있다는 듯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렇게 좀비처럼 절망적으로 걸어가는 문영을 봤지만 외면했던 강태는 그러나 집으로 돌아와 문영이 쓴 어른들을 위한 동화 '좀비아이'를 읽는다. '어느 작은 마을에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어. 피부는 창백하고 눈동자가 아주 큰 아이였지. 아이가 크면서 엄마는 자연스럽게 알게 됐어. 이 아이는 감정이 전혀 없고 그저 식욕만 있는 좀비였다는 걸. 그래서 엄마는 마을 사람들 눈을 피해 아이를 지하실에 가두고는 밤마다 남의 집 가축을 훔쳐서 먹이를 주며 몰래 키웠어. 하루는 닭을.. 하루는 돼지를..'

 

강태는 그 동화의 이야기가 점점 자신의 이야기라고 느낀다. 마치 좀비아이처럼 가려지고 버려졌던 자신의 그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난 어느 날 마을에 역병이 돌아서 남은 가축들이 다 죽고 사람들도 많이 죽어. 그나마 산 사람들은 마을 모두 떠나버렸지. 아들만 두고 떠날 수 없던 엄마는 결국 배고파 우는 아이에게 자신의 다리 한 쪽을 잘라주고 다음엔 팔 한쪽을 잘라주고 그렇게 다 주고 결국엔 몸통만 남아서는 마지막으로 아이의 품속에 스스로 들어가 자기의 남은 몸을 맡기지.' 강태는 잠잘 때조차 항상 형 상태를 향해 있었던 엄마의 등을 애써 끌어안았던 자신을 떠올린다.

 

'몸통만 남은 엄마를 아이가 양팔로 꽉 끌어안으며 처음으로 한마디를 해. 엄마는... 참... 따뜻하구나.." 그리고 그 마지막 한 줄에 결국 강태는 오열하며 알게 된다. 자신도 마찬가지로 빈 깡통이었고 그럼에도 엄마의 온기가 필요했었다는 것을. 문영 역시 그러하리라는 것을 그는 깨닫는다.

 

그래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그 밤길을 재수(강기둥)의 오토바이를 빌려 달리고 달린 강태는 여전히 스스로에게 벌이라도 내리듯 그 빗길을 걷고 걷는 문영을 찾아내고, 그에게 자신의 옷을 벗어 덮어주고 안아준다. 그건 강태가 문영을 안아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안아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그렇게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삶의 존재가치가 부정된 문영과, 지체를 가진 형 때문에 존재를 부정당해왔던 강태가 서로를 끌어안으며 온기를 나누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어떻게 태어났든 우리는 저마다의 빈 구석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래서 그 빈자리의 차가움을 채우기 위해 서로의 온기가 필요하다고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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