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지만 괜찮아', 서예지는 김수현을 놀게 할 수 있을까

 

"나 그냥 너랑 놀까?" tvN 토일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강태(김수현)가 문영(서예지)에게 툭 던지는 그 말 한 마디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그건 강태가 처한 입장이 담겨 있는데다, 문영이라는 이 드라마의 독보적인 캐릭터가 어째서 필요했는가가 함축되어 있다.

 

강태는 놀지 못한다. 여기서 놀지 못한다는 의미는 마음껏 자기 하고픈 것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는 자폐를 갖고 있는 형 상태(오정세)에 묶여 있다. 1년마다 때가 되면 나타나는 나비 때문에 발작을 하고 그래서 수시로 이사를 해야 하는 그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은 돌보려 하지 않는다.

 

그건 상태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동생 강태에게 자신이 짐이라는 사실을 힘겨워한다. 그래서 괜찮은 정신병원 오지왕(김창완) 원장이 벽화를 그려 달라 했을 때 얼마를 줄거냐고 대뜸 묻는다. 그는 캠핑카를 사기 위해 돈을 모으는 중이다. 그게 있으면 계속 이사 다니지 않을 수 있고, 나비가 나타나도 금세 도망칠 수 있다고 상태는 강태에게 말한다.

 

하지만 그런 상태를 꼭 껴안으며 강태는 말한다. "형 난 집도 차도 돈도 다 필요 없어 난 형만 있으면 돼. 정말야. 형이 내 전부야." 그는 자신의 삶을 희생하며 형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하지만 그 순간 문영의 목소리가 슬쩍 끼어든다. "위선자."

 

<사이코지만 괜찮아>가 그려내는 문영이라는 캐릭터는 착하다거나 누군가를 위해 희생을 한다거나 하는 그런 동화적인 이야기나 삶에 대해 위선이라 말하는 인물이다. 그는 마치 잔혹동화 같은 인물이다. 기존 동화가 건네는 지배적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인물. 우리는 그 동화의 메시지를 저도 모르게 내면화하며 그것이 응당 해야 할 '착한 삶'이라 여기지만 문영은 그것이 위선일 수 있다 말하는 인물이다.

 

드라마는 그래서 실제 정신 질환을 가진 인물들을 매회 에피소드로 소개하고 있다. 국회의원의 막내아들이지만 조증을 가져 노출증 성향을 보이는 환자가 병원을 탈출해 아버지의 유세장에서 난동을 부리는 이야기에서도 문영이라는 인물의 역할은 분명하게 그려진다. 그는 그 환자를 유세장까지 데려와서는 "우리 여기서 놀자"고 말한다. 단상에 오른 환자는 자신이 그간 아버지에게 당해왔던 일들을 토로한다. 좀 모자라게 태어난 것뿐이지만 "공부 못한다고 때리고, 이해 못한다고 무시하고 말썽 핀다고 가두고" 했다는 것. 자신도 자식인데 하도 투명인간 취급을 해서 제발 나 좀 봐달라고 미쳐 날뛰다가 진짜로 미쳐버렸다는 것이었다.

 

환자를 잡으러 왔던 강태는 그의 말을 듣고는 충격을 받은 듯 멈춰 서 버린다. 그래서 그의 옆으로 다가온 문영에게 "나 그냥 너랑 놀까?"라고 하는 말에는 자신 또한 억누르며 살아왔고, 그래서 어쩌면 미쳐버릴 것 같은 그 삶의 버거움이 묻어난다.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사실 문영 같은 캐릭터는 현실적인 인물이라고 보긴 어렵다. 아마도 그 역시 어린 시절 겪었던 부모와의 불행한 과거가 현재의 그 같은 캐릭터를 만들었겠지만, 그의 말과 행동은 우리가 흔히 '사이코'라고 폄하하기도 하는 그런 정도의 과함이 담겨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의 힘은 바로 이처럼 조금은 과격하게 자신을 몰아붙이는 문영이라는 캐릭터에서 나온다. 그는 스스로에게도 또 세상에서 미쳤다고 흔히 치부되는 이들에게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다소 과하게 보일 수도 있는 캐릭터에 긴장감을 유지하게 만들어주고 그래서 몰입하게 해준 건 서예지의 연기와 박신우 감독의 연출 덕분이다. 서예지는 다소 과할 수 있는 이 문영이란 인물에 자신을 완전히 몰입시킴으로써 시청자들도 빠져들게 만드는 힘을 부여하고 있고, 박신우 감독은 마치 디즈니의 영화를 보는 것만 같은 숲속 문영의 저택을 통해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처럼 잔혹동화 같은 드라마의 색깔을 제대로 그려내고 있다.

 

과연 문영은 강태의 굳게 닫힌 마음을 열고 함께 놀 수 있을까. 또 강태는 문영이 과거 겪었던 끔찍한 악몽으로 남은 기억들을 따뜻하게 끌어안아 줄 수 있을까. 그들의 변화에 감정이입하게 되는 건 우리 모두 만만찮은 현실 속에서 저마다 꾹꾹 눌러놓은 상처나 감정 같은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일 게다. 그래도 괜찮다고 다독이는 드라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는 것.(사진:tvN)

‘너도 인간이니?’, 로봇 서강준에게 설렌다는 건

KBS 월화드라마 <너도 인간이니?>가 시청률 9.9%(닐슨 코리아)를 기록했다. 물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미정상회담 특별방송으로 경쟁작들이 모두 결방된 상황이었지만, 지난 회 6.3%에서 이만큼 시청률이 껑충 뛰었다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자체적인 경쟁력도 충분히 있었다는 걸 드러낸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은 역시 로봇 남신 역할의 서강준이다. 

흔히들 연기를 못할 때 ‘로봇 연기’를 한다고들 말하지만, 서강준은 진짜 로봇 연기를 해내고 있다. 로봇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표정이나 말을 잘 내놓지 않는 무뚝뚝함이 그 연기의 핵심이다. 마치 매뉴얼대로 말하는 듯한 대사가 받쳐주고, 미소를 짓는 것조차 상황에 따라 프로그래밍된 느낌을 준다. 

게다가 터미네이터를 연상케 하는 액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화재 현장에서 죽을 위기에 처한 강소봉(공승연)을 무너지는 기둥을 받아내고 거대한 철재를 들어 올려 구해내는 장면이나, 자율주행 시험 중 해커에 의해 자동차가 도시의 흉기로 변해버렸을 때 그 차로 뛰어들어 차를 멈춰 세우는 장면이 그렇다. 사실 국내 드라마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고난도 자동차 액션 신이었고, 차에 질질 끌려가는 장면은 이색적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렇게 차가운 로봇일 수밖에 없는 남신에게 어떤 감정 같은 걸 느끼게 되는 건 왜일까. 진짜 인간 남신을 돌봐야 한다는 자신을 만든 오로라(김성령)의 말을 듣는 로봇 남신의 얼굴에서는 어딘가 쓸쓸함 같은 게 묻어난다. 로봇 남신이 혼수상태인 인간 남신을 대신하고 있다는 사실이 발각될 위기에 처한 것을 미리 알아챈 로봇 남신이 위기를 넘긴 후, 오로라에게 “저 잘했죠?”라고 묻는 장면에서는 마치 엄마 앞에 선 아이 같은 느낌이 묻어난다. 

“눈물을 보이면 안아주는 게 원칙”이라며 안아주는 로봇 남신에게서 괜스레 쿵쾅대는 심장을 느끼는 건 강소봉만이 아닐 게다. 수영장에 빠진 목걸이를 찾아주기 위해 강소봉의 눈을 가린 채 그 곳의 조명을 모두 켜주는 모습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건 로봇이 인간을 보살피는 장면이지만, 어쩐지 그 남신에게서 강소봉은 가슴 설렘을 느낀다. 

인간이 아닌데다 남다른 능력을 가진 존재에게 느끼는 설렘. 우리는 이런 설렘을 이미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김수현)에게서 느낀 적이 있다. 외계인으로 늙지도 않고 갖가지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또한 우리들의 가슴을 뛰게 했던 인물. 그래서 <너도 인간이니?>의 남신은 마치 <별에서 온 그대>의 로봇 버전을 보는 듯한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도대체 우리는 어째서 인간도 아닌 외계인과 로봇에게서 더 인간다운 따뜻함과 설렘을 느끼게 되는 걸까. 그것은 인간의 비정함이 로봇에게 입력된 기본 원칙과 설정만큼도 지키지 못할 만큼 엇나간 현실을 말해준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권력을 위해서는 사람 하나쯤 죽이는 건 해도 되는 일로 여기는 서종길(유오성) 같은 인간이나, 가족마저 돈 버는 기계처럼 바라보는 남건호(박영규) 같은 인간은 그 현실을 대변해주는 인물들이다. 

이미 1950년에 아이작 아시모프는 자신의 작품 ‘아이 로봇’에 로봇공학의 3원칙을 밝힌 바 있다. 그 제1원칙은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 해서도 안 된다’이다(제2원칙-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제3원칙-로봇은 로봇 자신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그 로봇에게 부과된 제1원칙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살아가지 않던가. 

<너도 인간이니?>를 보며 그 로봇 남신에게 설렌다는 건 그래서 단지 멜로 감정으로만 읽히지는 않는다. 그건 인간으로서의 삶을 증명할 수 있는 기본이 깨져버린 우리네 비정한 삶을 에둘러 꼬집는 것이기도 하다. <별에서 온 그대>의 외계인 도민준이 그러했듯이.(사진:KBS)

기대작에서 망작으로, ‘리얼’·‘미이라’·‘트랜스포머5’가 놓친 것

무려 200억의 대작이었지만 천하의 김수현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였다. 영화 <리얼>은 평단과 관객들이 한 목소리로 내는 혹평에 박스오피스 5위로 주저앉았다. 멀티플렉스에 적지 않은 개봉관을 확보하고도 <리얼>은 6일 하루 5,900여 명 정도의 관객 수를 확보하는데 그쳤다. 반면 <옥자>는 넷플릭스 동시방영으로 멀티플렉스들이 모두 등을 돌린 가운데서도 6일 하루 무려 9,400여 명의 관객을 끌어 모았다. 역시 영화 흥행의 관건은 작품성에 있다는 걸 단적으로 알려준 사례다. 

사진출처:영화<리얼>

톰 크루즈가 출연함으로써 국내 관객들의 관심이 뜨거웠던 <미이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국내 관객들이 특히 선호하는 톰 크루즈가 등장했다는 사실이 만들어낸 영향력은 적지 않았다. 누적 관객 수 366만 명을 동원하며 올해 개봉외화 흥행 2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반응은 그리 좋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미이라>의 흥행을 과연 성공으로 볼 수 있을까가 미지수다. 만일 좀 더 완성도 높은 작품을 보였다면 훨씬 더 놀라운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을 테니 말이다.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아 한국에서 개봉했던 영화들의 성적표를 보면 더욱 그렇다. 생각해보라. 톰 크루즈가 또 나오는 <미이라> 후속작이 나온다면 과연 관객들이 그 영화를 볼까. 고개가 갸웃해지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올해의 ‘망작’으로 기록될 영화는 역시 마이클 베이 감독의 <트랜스포머-최후의 기사>가 아닐까. 무려 3,000억 원의 제작비를 투입해 만든 영화지만 산으로 가는 스토리 때문에 그나마 팬들이 많은 국내에서도 냉소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트랜스포머>는 5일 현재 240만여 명의 관객 수를 기록하고 있지만, 이 영화가 거의 독과점에 가깝게 확보한 멀티플렉스의 스크린수를 감안해 보면 너무나 초라한 성적이다. <트랜스포머>는 전국 2,500여 개의 스크린 중 무려 1,700여 개의 스크린에서 상영됐지만, 거의 빈 채로 영화가 상영되는 결과를 맞았다. 

결국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건 작품들이 출연자, 제작자의 명성과 막대한 물량 투하를 통한 스펙터클을 보여줬을지 몰라도 기대 이하의 스토리가 이 모든 걸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김수현이 1인2역의 연기를 보여준 <리얼>의 경우, 그가 연기에 혼신을 다했다는 사실은 분명히 보이지만 감독 스스로도 갈무리되지 않은 작품을 내놓음으로써 관객들에게는 ‘불편한’ 작품이 되었다. <미이라>는 사실 보석 하나를 깨뜨림으로써 모든 게 해결되는 마지막 상황을 보면 이야기가 너무나 허망해진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트랜스포머>는 너무 많은 걸 보여주려 한 결과 어느 하나도 집중시키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40억이라는 상대적으로 적은 제작비를 들인 <박열>이 간단히 150만 관객을 돌파함으로써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걸 보면 역시 현재의 영화 판도를 결정하는 건 오로지 작품성과 그로 인한 입소문이라는 걸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출연자나 제작자의 이름값이나 그 이름에 기대 투입되는 막대한 물량은 오히려 리스크만 키우는 꼴이다. 물론 투자가 나쁜 건 아니지만, 그 투자가 오롯이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투입될 수 있어야 그 성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 이제 더 이상 똑똑해진 관객들은 화려한 포장에 그리 휘둘리지 않는다.

'리얼' 김수현·설리 노출조차 도드라져 보이지 않는 괴작

이 정도면 어쨌든 영화를 보겠다고 마음먹은 이들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보게 되지 않을까. 영화 <리얼>의 평점은 4,5점대에 머물러 있다. 보통 영화가 개봉 후 바로 이런 평점을 받게 되면 흔히들 ‘평점 테러’를 염두에 두지만 이건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영화 제목 그대로 ‘리얼’ 반응이 그렇다. 영화에 따라붙는 댓글들에서 좋은 평가는 눈을 씻고 찾아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니. 

사진출처:영화<리얼>

영화를 보고 나오는 사람들은 이 두 시간이 넘는 런닝타임을 버티기가 못내 힘들다는 듯 한숨을 내쉰다. 몇몇 관객들은 헛웃음이 섞인 “대박”이라는 반응을 내놓는다. 물론 그건 영화가 대단하다는 뜻이 아니다. 정 반대의 의미로서의 ‘대박’이다. 물론 관객 중에는 자기 돈을 내고 들어왔지만 못내 못 버티고 중간에 박차고 나가는 이들도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참혹한 결과를 만들어낸 걸까. 

<리얼>은 시에스타라는 카지노 오픈을 앞둔 조직의 보스 장태영(김수현)이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나누는 첫 시퀀스까지만 해도 흥미로웠다. 두 개의 인격이 그에게 존재하고, 그래서 다른 인격인 르뽀 작가를 제거하기 위해 의사는 인격이 존재하지 않는 식물인간에게 그 르뽀 작가의 인격을 집어넣은 후 살해함으로써 장태영이 하나의 인격으로 살 수 있다는 제안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식물인간에게 투입된 르뽀 작가의 인격이 죽지 않고 살아남게 되면서 두 명의 장태영(보스 장태영과 르뽀 작가 장태영)이 서로 자신이 리얼임을 증명하기 위해 상대를 제거하려는 대결을 벌이게 된다. 

황당한 이야기처럼 보이고 또 실제로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액션들은 마치 원펀맨(원펀치맨)처럼 한 방에 날아가 버리는 초현실적인 느낌으로 그려진다. 그러한 초현실적인 이미지들을 영화는 마약에 의한 환상인 것처럼 그려내고 있지만 더 큰 그림 안에서 들여다보면 그것 자체가 하나의 장태영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두 인격의 대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죽지 않고 살아남아 재력을 통해 성형수술을 하고 시에스타의 지분 절반을 갖게 된 르뽀작가 장태영은 보스 장태영의 짝퉁처럼 인식되지만, 차츰 그 자리를 장악해나가고 결국 짝퉁과 실제가 뒤바뀌는 상황까지 나간다. 그리고 영화는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누가 리얼이고 누가 짝퉁인지 알 수 없는 혼돈 속으로 들어간다. 

시에스타라는 카지노가 의미하는 자본이라는 상징과, 카지노 칩에 들어있는 마약이 의미하는 자기 존재를 잃어버리게 만드는 욕망의 힘. 그 속에서 정체성을 잃어가는 현대인들. 영화는 아마도 이런 상황에 처해 있는 현대인들에게 진짜 나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자못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의도일 뿐, 영화는 그 의도를 관객에게 전혀 설득시키지 못한다. 이렇다 할 내적 개연성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영화는 그래서 그 표피적인 것들만 남게 되었다. 마약, 노출, 섹스, 폭력이 그것이다. 

김수현이라는 이름값에 110억이라는 제작비만으로도 팬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보게 만드는 영화일 수 있었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제대로 된 내적 개연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관객들을 설득시키지 못하게 되자 결국 남게 된 건 자극들뿐이다. 하지만 그 자극들조차 지나치게 과잉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도 도드라져 보이기 어렵게 되었다. 심지어 전라의 노출이 있어도 그다지 자극적으로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는 것. 

사실 김수현의 팬이라고 해도 납득하기가 쉽지 않은 영화다. 그러니 영화에 대한 논쟁적인 이야기들이 전면에 나오지 않고 대신 김수현과 설리의 파격 노출 같은 이야기만 가득 채워지게 되었다. 물론 1인2역을 소화해내는 김수현의 연기력이 아깝지만 어쩌랴. <리얼>은 그 과함이 독이 되어 문제작이 되지 못하고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괴작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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