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산다’로 시청자들 사로잡은 구성환의 ‘러브 마이셀프’

나 혼자 산다

“진정한 사랑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True love begins with loving yourself).” 2018년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은 UN에서 연설을 하며 그런 말로 화두를 삼았다. ‘러브 마이셀프(Love myself)’를 주제로 한 이 연설에는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대목이 나온다. “어제 실수를 했을 지라도 어제의 나 역시 나입니다. 과거의 실수들이 모여 만든 오늘의 나도 나입니다. 지금보다 아주 조금 더 현명해질 수 있는 내일의 나 역시 나일 것입니다.... 저는 오늘의 나이든 어제의 나이든 앞으로 되고 싶은 나이든 제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라’는 이 메시지는 사실상 방탄소년단이 전 세계의 젊은이들을 사로잡은 가장 큰 요인이다. 결코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 속에서 쉽지 않은 현실을 버텨내며 자칫 그것이 자신의 잘못인 양 자책하는 젊은이들에게 그건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그러니 자책 할 것 없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라는 것. 여기에 전 세계 대중들의 마음이 하나로 묶어졌다. 

 

최근 방송된 MBC ‘나 혼자 산다’에서 방송을 탄 배우 구성환이 의외로 큰 호응과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건 바로 이 ‘자신을 사랑하는’ 삶을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사실 특별한 일이 벌어졌던 하루는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 청소를 하고 매 끼니를 챙겨먹고 루틴으로 자리한 운동을 하며 반려견 꽃분이를 챙기는 게 그 하루였다. 특별한 이벤트라면 꽃분이와 함께 한강으로 산책을 갔던 것 정도랄까. 보통 누군가의 하루라면 별 기억에도 남지 않을 평범한 하루 그 자체였다. 그런데 달라보였다. 혼자 10년 째 사는 삶이고 그래서 매일 외부 일이 없을 때면 반복되는 하루였을 테지만, 청소를 하고 매 끼니를 챙겨먹는 일 하나하나에 구성환은 정성을 들이는 모습이 역력했다. 바닥을 닦는 일에도 정성을 들였고, 식사도 제대로 챙겨 먹으며 꼼꼼하게 설거지를 하고 정리를 하는 모습이 몸에 배어있었다. 그러면서 그 하나하나를 제대로 느끼고 즐기려는 자세가 묻어났다. 옥상 평상에서 버너로 물을 끓여 믹스커피를 마시는 것 하나에도 행복감이 느껴졌고, 벌러덩 누워 쏟아지는 오수를 즐기는 모습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여유가 느껴졌다. 

 

물론 하루 종일 그저 뒹굴뒹굴 대는 것이 끝이 아니었다. 나름의 자기관리도 빼놓지 않았다. 옥상 한 편에 마련되어 있는 조촐한 운동기구들을 이용해 그는 쉬지 않고 크로스핏을 했다. 생각보다 그게 운동효과가 클까 싶을 정도로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줘 큰 웃음을 줬지만 그는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운동에 임했다. 그런 모습은 이미 2022년 ‘제1회 주도인 클럽’이라는 콘셉트로 이주승을 중심으로 ‘나 혼자 산다’ 패밀리들이 모였을 때 갑자기 동네형처럼 등장했던 구성환이 큰 웃음을 줬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동체시력을 훈련하고 쉬지 않고 체력훈련을 선보이는 다소 황당한 콘셉트의 체력 훈련 모임에서 이주승의 동네 절친인 구성환은 조교 자격으로 출연해 의외의 ‘저질체력’으로 빵빵 터지는 웃음을 선사했다. 그 모습이 특히 웃음을 줬던 건 모두가 웃는 그 와중에도 홀로 시종일관 진지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건 마치 모두가 예능을 하고 있는데, 혼자 그 콘셉트의 연기를 애써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2004년부터 연기를 해온 연기자로서의 진지한 태도가 읽혀졌다. 

 

20년의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연기를 해왔지만 사실 구성환의 연기 필모는 거의 최근에 와서야 그 존재감이 드러날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진 못했다. ‘나 혼자 산다’의 스튜디오에 출연했을 때 다른 출연자들이 “조폭 아니냐”는 농담을 던졌던 건 그의 필모와도 관련이 있다. 스무살에 극단에 들어가 무대 만드는 일을 하며 생활하다 임권택 감독의 99번째 영화 ‘하류인생’에 오디션을 본 게 그의 연기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그 후로 ‘바람의 파이터’, ‘상어’, ‘무방비도시’, ‘강철중’, ‘26년’ 등등 다양한 작품에서 강한 인상의 악역을 주로 맡았다. 2016년 웹툰 원작 웹드라마 ‘통 메모리즈’에서 씨름 선수 출신 고등학생 깡패 공소민 역할로 좋은 반응을 얻었고 그 후에는 영화 ‘택시운전사’부터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스토브리그’, ‘지리산’ 등 좀더 존재감이 드러나는 역할들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특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서 구성환은 토막살인범 황대선 역할로 강렬한 연기를 선보여 호평받았다. 

 

하지만 그가 해온 연기들의 대부분은 미식축구 복장을 입어야 겨우 맞는 넓은 어깨와 우락부락하면서도 순박한 느낌을 주는 인상에 걸맞는 조연이거나 악역이 대부분이었다. 어찌보면 배우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역할을 했다기보다는 주인공들을 빛나게 해주는 역할을 해왔다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그가 ‘나 혼자 산다’에서 보여준 일상의 소중함을 하나하나 제대로 느끼고, 그 행복함을 표현하는 모습은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꽃분이와 함께 한강에 자신이 자주 간다는 아지트에 돗자리를 펴고 직접 만들어 싸가지고 온 햄버거 두 개를 야무지게 챙겨먹고는 벌러덩 누워 이것이 최고의 힐링이라고 말하는 소박함이라니. 집으로 돌아와 옥상에서 자신이 준비한 고기와 타이거새우를 구워 즐기는 저녁은 그래서 이제 호화로운(?) 만찬처럼 보인다. 굳이 알전구를 늘어뜨리고 불을 켜 한껏 분위기를 내면서 “이것이 미장센”이라는 구성환은 혼자 먹는 쓸쓸한 저녁이라도 자족할 줄 아는 사람만이 비로소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저는 이 삶이 정말 하루하루가 낭만이 있고 행복해요. 진짜 행복해요. 오늘 하루만 해도 먹고 싶은 음식 다 먹었고, 한강에 꽃분이랑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이게 무슨 호사일까...’ 안 행복한 게 뭐냐 물어보면 없는 거 같아요. 다 행복해요. 내 자신이 너무 행복하고 고민이 없다는 거.” 그는 그렇게 말하며 “저는 제가 제일 이상적이에요”라고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감을 표현했다. 

 

어쩌다 더 많은 걸 갖고 더 많은 걸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의 기준처럼 되어 버린 시대에 구성환이 어느 하루의 일상을 통해 보여준 건 소박해도 그 삶 자체를 사랑하는 것에서 비로소 진정한 행복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짧은 방송에 평범한 하루를 보여준 것만으로도 많은 대중들이 무한한 공감과 지지를 보여준 건 구성환에게서 자신을 사랑하는 자의 행복한 페르소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글:국방일보, 사진:MBC)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3

같은 것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재미를 주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먹방과 쿡방이 이미 대세일 때 불현듯 나타나 새로운 판도를 만들어버린 백종원이 대표적이다. 음식에 진심인 데다, 요리실력은 기본이고, 프랜차이즈를 해오며 몸에 밴 사업가 기질과 무엇보다 재미있게 이끌어가는 방송능력까지 더해져 그는 ‘요식업계의 사부님’으로 급부상했다. 이렇게 되면 이제 정반대의 기획들이 나오게 된다. 백종원을 세워 할 수 있는 방송을 기획하는 식이다. 

 

최근 여행예능에는 기안84가 바로 ‘백종원’ 같은 존재다. MBC <나혼자 산다>에서 간간히 기행에 가까운 여행을 선보이며 웃음을 줬던 기안84는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를 통해 제 물을 만났다. 마치 옆집 놀러가듯 대충 가방에 옷가지 몇 개 넣고 여행을 떠나는 기안84는 아마존강이나 갠지즈강에도 스스럼없이 뛰어들어 수영을 하고, 현지인들의 삶에 보다 깊숙이 뛰어들어 그들과 교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태어난 김에 세게일주>는 이른바 ‘극사실주의 여행’을 표방하고 있는데, 그 색깔은 당연히 기안84의 이런 ‘현지에 스며드는’ 모습에서 나온다. 이러한 여행 스타일은 최근 유튜브 등을 통해 인기를 얻고 있는 여행 크리에이터의 여행을 닮았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에는 대표적인 스타 여행 크리에이터인 빠니보틀이 함께 했고 시즌2에서 덱스가 합류함으로써 보다 안정된 구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돌아온 시즌3, 이번 여행지는 아프리카다. 하지만 이번 시즌 역시 어디서 봤던 것 같은 그런 아프리카는 결코 아니다. 물론 이들이 가는 마다가스카르는 <정글의 법칙>이나 최근 <지구마불 세계여행>에서 원지가 고생고생해 찾아갔던 곳이기도 하지만, 기안84가 보여주는 마다가스카르는 시작부터가 다르다. 원시의 바다에서 원주민들과 작살낚시를 하고 싶어하는 기안84의 소망에 걸맞게 제작진은 마다가스카르에서도 비행기와 배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벨로수르메르라는 곳을 여행의 시작점으로 삼았다. 에티오피아까지 12시간, 거기서 마다가스카르까지 5시간, 그 곳 수도 안타나나리보 공항에서 모론다바로 경비행기를 타고 가서 또 배를 타고 벨로수르메르까지 가는 머나먼 여정이 펼쳐졌다. 

 

그 곳까지 찾아가는 과정에서도 기안84 특유의 현지 밀착 여행이 주는 묘미가 도드라졌다. 갑작스레 폭우가 쏟아져 비행기를 탈 수 없게 된 기안84가 안타나나리보 공항 근처 도시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됐을 때 길거리로 나와 빗속에서 현지인들이 파는 라면을 먹는 대목부터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차양막도 없는 거리에서 빗물이 들어가도 대충 끓여 내주는 라면을 쪼그리고 앉아 먹는 모습은 기안84표 여행이 시작됐음을 알려줬다. 또 모론다바에서 배를 기다리며 현지인이 바닷가에서 파는 음식들을 먹는 모습 또한 압권이었다. 너무나 맛있게 먹어 현지인들이 신기하게 여기는 광경이 펼쳐졌다. 

 

그리고 드디어 배를 타고 찾아간 벨로수르메르에서 기안84는 해변에서 만난 원주민 청년들과 함께 바다로 나가 자신이 그토록 꿈꿔왔던 작살낚시를 시도했다. 물론 상상과 현실은 달라서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지만, 그들이 잡은 물고기를 즉석에서 회를 쳐 공수해온 초고추장을 찍어 먹는 모습은, 맛있게 먹는 기안84와 질색하는 원주민 청년들의 대비로 웃음을 줬다. 마치 기안84가 더 원주민 같은 모습이 연출된 것이었다. 먼저 기안84 혼자 시작하는 야생 그대로의 여행을 보여준 후, 빠니보틀과 덱스의 합류를 통해 색다른 케미를 이어가는 구성방식은 시즌2와 유사하다. 하지만 이번 시즌3는 시즌2의 엔딩에 기안84가 ‘바다로 가고 싶다’는 의지를 표현했던 것처럼 원없이 바다를 눈에 담게 해주는 여정이 아닐까 싶다. 프로그램 도입 부분에 프롤로그처럼 들어간 거대한 배를 마을 주민들과 더불어 이들이 함께 끄는 모습은 바다와 현지인이라는 이번 여행의 색깔을 기대케 하는 대목이다.

 

벌써부터 연말 연예대상에 기안84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올해의 대상감이라는 이야기다. 그도 그럴 것이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는 MBC 예능의 올해 성과라고 해도 될법한 프로그램이면서, 최근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이 탄생시킨 예능으로서도 의미와 가치가 있다. 그래서일까. 시즌3가 기안84의 연예대상에 쐐기를 박을지를 지켜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사진:MBC) (<일간스포츠>에도 게재된 원고입니다)

'나 혼자 산다'가 연예인 일상 지겹다는 시청자들과 함께 가려면

 

군대 소재는 그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는 큰 공감을 주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소외감을 주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디에서건 군대 이야기는 조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것이 마치 경험자들만의 세계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의 이시언이 과거 백골부대에서 복무했던 추억을 떠올리기 위해 당시 군 생활을 같이 했던 부산 후배와 우정여행을 떠나는 소재는 어딘지 적절할까 하는 의구심을 만든 게 사실이다. 물론 특유의 넉살과 유머로 군대 경험의 이야기들 또한 재밌게 전하는 이시언이기에 그런 불안감이 상쇄되었지만.

 

부산 후배와는 함께 조교로 백골부대에서 복무했다는 이시언은 차 안에서도 군가를 검색해 따라 부르고, 부대 앞에서 설레어하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리고 철원의 가장 번화가인 이른바 '와수베이거스'로 불리는 와수리를 찾아 군인용품 백화점을 들러 폭풍 쇼핑을 하는 광경을 보여줬다. 사단마크, 휘장, 깔깔이, 군모, 반바지 등을 보며 "우와-"를 연발하고 재봉으로 새겨주는 이름에 감탄하는 이시언의 모습은 군 경험을 한 이들의 추억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캠핑장에 도착해 모든 세팅을 마친 후, 바로 앞에 있는 강에 입수를 하는 장면 역시 이들의 여행이 군대 체험의 추억을 끄집어내는 데 있다는 걸 명확히 보여줬다. 이제 초겨울의 얼음장 같은 강물 속에 들어간 이시언과 후배는 그 차가움에 괴로워했지만 그것을 통해 내년에는 잘 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사실 군대 추억 여행만으로 채워졌다면 그건 지극히 이시언만의 여행에 머물렀을 지도 모른다. 그런 여행을 가는 이들도 많지 않을 테고, 또한 군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공감할 포인트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여행의 또 다른 목적이 함께 간 부산 후배를 통해 드러나면서 이 여행에 대한 공감대는 훨씬 커졌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 여행을 계획한 이시언이 자영업을 하는 후배가 코로나 시국 때문에 겪은 어려움에 대해 용기와 위로를 해주기 위한 숨은 취지가 거기 담겨 있어서다. "자영업자들한테는 올해가 정말 힘든 한 해였는데 내년에는 많이 나아져서 잘 됐으면 좋겠다"는 후배는 자신감이 떨어질 때 자신이 많은 훈련병을 교육했던 조교였다는 사실에서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후배는 이 여행을 계기로 내년에는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에 이시언은 잘 되고 말고와 상관없이 '웃자', '재밌자'를 내년의 목표로 삼자고 했다.

 

"철원 갈래? 물에도 좀 드가고, 힘 좀 내고." 후배를 힘내게 만들었다는 이시언의 무심한 듯 툭 던지는 그 말이 이번 군대추억 여행에 담은 진심이었다는 게 전해지며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이나 여행일 수 있는 것도, 후배의 참여를 통해 보편적인 정서를 가져감으로써 키울 수 있는 공감대. 이건 어쩌면 <나 혼자 산다>가 현재 처한 고민에 대한 해법이 아닐까.

 

<나 혼자 산다>는 최근 들어 연예인들의 일상을 보는 것이 이젠 식상하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그것이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일상과는 사뭇 다르고, 그래서 서민들의 공감에서 점점 멀어지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연예인들끼리의 이야기가 아니라 동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될까를 고민하는 것. 이번 이시언과 후배가 함께 한 군대 추억여행에 그 해법의 작은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싶다. 같은 소재와 인물이 등장해도 어떤 관점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그것이 보여주고 있어서다.(사진:MBC)

진한 페이소스 담은 김광규의 '나 혼자 산다'

 

"될 수 있는 대로 멀쩡한 척 하고 살아야 돼... 그래야 섭외가 돼." MBC 예능 <나 혼자 산다>에서 오랜만에 김광규를 만난 김태원은 무심한 듯 그렇게 말했다. 물론 그건 김태원 특유의 농담 섞인 말이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 섭외가 들어와도 앉아 있기 힘들고, 누워 있으면 몸이 아프고, 서면 어지럽다는 김태원. 웃음이 나오는데 어딘지 짠한 김태원 특유의 농담.

 

하지만 언제 힘이 나냐는 육중완의 물음에 김태원은 기타리스트다운 답변을 내놨다. "기타를 메면 힘이 나고 무대 올라가면 날아다니지." 몸은 예전 같지 않지만 그래도 무대가 그에게는 비타민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 때문에 그런 무대가 없어졌다 말하는 김태원의 목소리에는 애잔함이 담겨 있었다.

 

잠깐 만나 저녁을 같이 하면서 김광규는 김태원과 육중완이 아이들 이야기를 나눌 때 홀로 듣고만 있었다. 두 사람 다 가정을 꾸렸지만 김광규는 아직 혼자. 혼자 사는 삶이 나쁘지만은 않지만 나이 들어서 그래도 남는 허전함은 자식이 아닐까. 멀쩡한 척 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지만 김광규에게서 그런 쓸쓸함 같은 게 묻어났다.

 

일찍 먼저 김태원이 귀가하고, 잠깐 김광규의 집에 들렀던 육중완도 보리차 한 잔을 마시고 준비해간 선물을 건네주고는 일어선다. 그들이 일찍 귀가하는 건 기다리는 가족이 있어서다. 그렇게 모두가 떠나간 후, 혼자 남은 김광규의 텅 빈 집이 전보다 더 비어 보인다. 그리고 이어진 마지막 인터뷰에서 김광규가 "아 보람찬 하루였어요"라고 하는 말은 그 날의 쓸쓸한 풍경과 엇박자를 이뤄 웃음을 줬지만 역시 페이소스 가득한 여운을 남긴다.

 

그 말 한 마디에 그 날 김광규가 보낸 하루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가을의 색을 온전히 입기 시작한 계절을 느끼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나선 길. 공원에서 예쁘게 색을 바꿔 마지막을 뽐내는 가을 나무들을 쳐다보며 걷고, 생각하다가 괜스레 운동기구로 운동을 해보고, 탁구레슨을 받으러 가서 동호회분들과 탁구를 치고... 아마도 평상시였다면 혼자 저녁을 먹고 귀가했을 테지만 그 날은 그래도 김태원과 육중완과 함께 저녁을 했다는 것에 김광규는 '보람찬 하루'라고 말했다.

 

<나 혼자 산다>의 시조새로 남은 김광규다. 한 때는 육중완도 또 기러기 아빠로 홀로 살았던 김태원도 이제 모두 가족의 품으로 떠나갔다. 물론 김광규는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말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빵빵 터지는 웃음을 주지만, 그의 웃음에는 어딘가 깊은 여운 같은 게 꼬리처럼 남는다. 게다가 사람 냄새 풀풀 나는 그 모습에서는 절로 따뜻함이 느껴진다.

 

'쓸쓸해도 멀쩡한 척' 하는 삶은 그래서 마치 힘겨움이나 어려움을 비틀었을 때 나오는 웃음을 닮았다. 늘 즐거워야 웃음이 나는 건 아니다. 힘들어도 웃어야 하기 때문에 그걸 웃음으로 바꾸기도 하는 게 우리네 삶이 아닌가. 그래서 <나 혼자 산다>가 보여주는 김광규의 나홀로 삶은 간만에 구수하고 따뜻한 보리차 한 잔의 진한 여운을 남겨주었다.

 

다양한 취미를 하는 이유를 묻자 "오죽하면 찾아가겠냐"며 허허 웃는 김광규. 그는 체력적으로 40대보다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나이에 지지 않겠다며 운동을 할 때마다 그런 활력을 느낀다고 했다. 아마도 <나 혼자 산다>가 보여준 김광규의 이 하루는 너무나 평범해 보였지만 그래서 많은 중년들의(혼자 산다면 더더욱) 공감을 사지 않았을까. 다들 그렇게 살아가니까.(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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