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이네2’로 돌아온 이서진의 곰탕 같은 매력

서진이네2

“곰탕집 하나 할까봐요.” 10년 전 정선에서 처음 tvN 예능 ‘삼시세끼’가 문을 열었을 때 자급자족을 해먹으라는 제작진의 요구에 이서진은 커다란 솥단지에 소꼬리와 뼈를 넣어 오래도록 끓여낸 곰탕을 만들었다. 손님으로 찾아와 그 맛을 본 신구, 백일섭 할배들이 유명한 곰탕집보다 낫다는 평가를 내놓자 이서진은 특유의 보조개로 환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은 10년 후 현실이 됐다. ‘서진이네2’로 아이슬란드에서 열게 된 한식점 ‘서진뚝배기’의 메인 요리가 바로 이서진이 끓여내는 꼬리곰탕이 됐기 때문이다. 나라 이름만 들어도 한기가 느껴지는 아이슬란드와 뜨끈한 우리의 정이 느껴지는 꼬리곰탕의 만남. 그 사이에는 10년의 세월을 거쳐 진국으로 우러난 이서진이라는 인물이 서 있다. 배우지만 나영석 PD와 만나 예능에서도 일가를 이룬 오래도록 끓여 굳이 뭘 넣지 않아도 그 자체로 맛을 내는 곰탕 같은 매력의 소유자가 바로 그다. 

 

나와는 오랜 인연이 있는 나영석 PD가 처음 ‘삼시세끼’를 찍고 막 돌아왔을 때 했던 이야기가 있다. 그는 대뜸 “이번에는 진짜 망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제목을 ‘삼시세끼’라 짓고 정말 하루 세 끼 챙겨먹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미션도 없는 예능을 시도했는데, 진짜로 출연자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더란다. 그런데 이러한 우려와는 정반대로 ‘삼시세끼’는 대박을 냈다. 그건 당시 이미 미션 같은 인위적 설정에 물린 시청자들이 더 리얼한 걸 요구하기 시작했던 변화와 맞물린 덕분이기도 했지만, 그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도 계속 보게 만드는 매력의 소유자 이서진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영석 PD는 이서진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방송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진짜로 다 해요.”

 

이런 모습은 ‘서진이네2’의 출연자들이 처음 아이슬란드에 내려 차를 타고 서진뚝배기를 향해 가는 길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서진과는 상반되게 대놓고 방송 분량을 만들겠다고 나서며 흐린 날씨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와 멋있다 진짜”라고 일부러 말하는 최우식에게 단박에 “거짓말 하지 마”라고 웃으며 선을 긋는 모습이 그것이다. 그의 이런 진솔한 모습은 일찍이 ‘1박2일’ 시절부터 나영석 PD의 눈에 들어왔고, ‘꽃보다 할배’의 짐꾼을 거치면서 요리왕을 꿈꾸던 것이 ‘삼시세끼’로 또 이어졌다. 그리고 ‘윤식당’과 ‘윤스테이’를 거쳐 ‘서진이네’로 성장했다. 나영석 PD가 일부러 그렇게 한 건 아니지만, 이 과정을 보면 마치 이서진이라는 인물의 자수성가 성장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처음에는 그저 할배들 밥을 챙기다가 해외와 국내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식당 경영을 해보더니 드디어 해외에 자기 한식당을 열게 된 사장이랄까. 

 

‘서진이네2’에서도 오랜 시간을 거쳐 매력적인 캐릭터로 자리잡은 이서진의 겉은 차갑지만 속은 따뜻한 면모들이 돋보인다. 매일 메인셰프를 정해 운영하겠다는 새로운 방침에 따라 누구를 첫 날 세울 것인가를 고민하던 이서진은 최우식을 스타트로 세우면서 그 이유로 분명 첫날은 손님이 별로 없을 거라는 합리적인 추론을 내세웠다. 나영석 PD가 “버리는 카드냐”고 묻자 이서진은 웃음기 없는 진지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아니 버리는 게 아니라 그래서 얘가 데뷔하기 좋은 기회라는 거지.” 그 말에 붙은 ‘따뜻한 속마음도 차갑게 표현하라’는 자막은 이서진이 가진 솔직하면서도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잘 드러낸다. 어찌 보면 간지러운(?) 말이나 상황들을 견디지 못하는 것 같은 이 인물은 요리를 하다가 최우식이 살짝 엄지손가락을 데이자 무심한 척 걱정하는 목소리를 내다가도, 상처부위를 들여다 보고는 자신도 과거에 그런 일을 겪었다며 네 상처는 별거 아니라고 ‘자기 식’의 위로를 덧붙인다. 

 

이러한 ‘겉차속따’의 면모는 이서진이 변화하는 예능 환경 속에서 도드라지는 인물로 성장하게 된 중요한 이유다. 과거 연예인들은 방송에서 정반대로 ‘겉따속차’의 모습을 보이는 걸 일종의 이미지 관리로 해왔던 경향이 있었다. 실제로는 차갑지만 인간적인 면모들을 방송에 나올 때만 강조하는 것이 연예인들의 관리된 이미지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서진은 그 틀을 깨고 나와 있는 그대로의 툴툴거리고 때론 투덜대는 자신의 면모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꽃보다 할배’에서 어르신들을 챙기는 짐꾼 역할을 누구보다 성실하게 하지만, 나영석 PD와 앉아 뒷풀이로 술을 마시거나 할 때는 한없이 푸념을 늘어놓는 모습을 보여준 것. 그것은 거짓이 아닌 진실된 면모로 시청자들에게 다가왔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힘들어 투덜대는 것일 뿐, 어르신들에 대한 배려는 진심이라는 걸 드러냈다. 즉 인간은 두 가지 감정이 공존할 수 있다는 걸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점점 리얼함을 요구하게 된 방송 환경 속에서 이서진이 주목된 이유다. 

 

물론 이서진의 본업은 배우다. 그래서 최근에도 ‘조폭인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에 김득팔이라는 조폭으로 특별출연해 존재감을 드러낸 바 있고,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에서는 메쏘드엔터 총괄이사인 마태오 역할을 또 ‘내과 박원장’에서는 대머리 내과의사 박원장 역할로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트랩’이나 ‘타임즈’ 같은 작품에서 진지한 역할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워낙 예능 이미지가 강해지다보니 조금은 희화화된 캐릭터로 소비되는 경향이 생겼다. 하지만 그의 과거를 들여다보면 그 유명한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명대사를 남긴 ‘다모’의 주인공이었고 ‘연인’에서 김정은과 호흡을 맞춘 멜로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기도 했다. 즉 현재의 흐름대로 예능에서 얻은 이미지로 배역 또한 소비되고 있지만 언제든 또다른 변신이 가능한 배우라는 점이다. 

 

중요한 건 물 흐르듯 변화하는 상황에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서 나오는 다양한 감정들을 이서진은 대중들에게 그대로 납득시켜주는 면이 있다는 점이다. 투덜대도 그 밑에 깔린 따뜻함이 느껴지고, 따뜻한 목소리에도 장난기를 숨기는 그런 다양한 감정의 공존이 그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건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며 누군가의 감정을 일면으로만 파악하긴 어렵고 그것이 결국 인간적인 매력이라는 것을 에둘러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끓이고 끓여야 비로소 진국의 맛이 우러나는 곰탕처럼.(글:국방일보, 사진:tvN)

‘콩콩팥팥’, 나영석 사단의 저력이 느껴지는 힘 뺀 예능의 맛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tvN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난다(이하 콩콩팥팥)>에서 4개월간 농사를 지으며 보냈던 인제에서의 마지막 밤. 그들은 불멍을 하기로 한다. 장작에 불피우는 것조차 초보인 이들은 불이 잘 붙지 않아 계속 토치로 다시 불을 붙이는 걸 반복한다. 어디서 들었던 ‘불멍’의 감성이 생각과는 다르다는 걸 느끼면서 이광수의 여지없는 투덜댐이 시작된다. “이게 만약 불멍이라면 다신 안 하고 싶어.” 불은 잘 안 붙고 연기에 눈은 맵고 넣어 놓은 고구마는 아직 익지 않았다. 

 

30분만에 깨진 캠프파이어의 환상. 하지만 그렇게 조금 지나고 나니 제법 불이 붙고 불멍의 분위기가 피어난다. 출연자들이 반색하며 이 프로그램에서 아마도 김우빈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일 듯한 “좋다”란 말이 튀어나온다. 익은 고구마를 꺼내 돌려먹고, 불멍 앞에서 빠질 수 없는 컵라면을 둘러 앉아 먹는다. 투덜대던 이광수는 금세 불멍의 즐거움에 빠져든다. 서로 좋아하는 걸 묻고 말하는데 김우빈이 이 프로그램을 하며 좋았던 소회를 털어놓는다.

 

“저는 이거 하면서 제일 좋았던 건 뭐냐 하면 흙 밟고, 손으로 만지고, 비 맞고, 새입 난 거 손으로 만지고, 냄새 맡고... 그런 게 너무 좋았어요.” 그 말에 더해 김기방이 한 마디를 곁들인다. “되게 원초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거.” 김기방, 이광수, 김우빈 그리고 도경수. 벌써 만난 지 10년이 된 죽마고우들의 10년 전 팔팔 했던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그러더니 도경수가 불씨가 남은 숯을 입으로 호호 불며 톡톡 터지는 소리를 들려준다. 그런 걸 하나하나 다 돌아가면서 하는 게 웃기다는 제작진의 이야기에 “좋은 건 다 같이 하는 게 좋다”고 입을 모아 출연자들이 말한다. 어찌 보면 불 하나 피워놓은 것일 수 있지만, 그 소소한 불멍 하나로 이토록 사운드가 가득 채워지고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훈훈하게 만들어진다는 게 신기하다. 갑자기 쥐불놀이를 하고 싶다며 집게로 숯을 들고 돌리고, 그걸로 네 사람이 굳이 ‘LOVE’를 그리며 사진에 남기려 애쓰는 모습은 거의 스펙터클이다. 

 

이 마지막밤 불멍의 풍경은 이제 마무리된 <콩콩팥팥>이 가진 독특한 재미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만 같다. 사실 이 프로그램의 제목에 담긴 ‘콩 심은 데 콩나는’ 이야기는 과거 예능에서는 금기로 불리던 소재였다. 이른바 ‘쌀로 밥 짓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너무 뻔한 걸 해서는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방송에 대한 대중들의 감성이 달라졌다. 너무 과잉된 걸 하는 건 오히려 웃기지도 또 재미있지도 않게 됐다. 그건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것이고 인위적인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너무 애써 웃기려는 것도 너무 애써 재밌게 하려는 것도 그래서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워낙 많은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오고, 우리의 일상 또한 영상과 정보의 홍수에 휩쓸리고 있어서인지, 요즘은 ‘멍’ 계열의 예능들이 오히려 주목받는다. 불멍, 물멍 같은.

 

<콩콩팥팥>은 시작부터 그 끝이 보이는 예능이다. 농사라는 소재 자체가 그렇다. 여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수확하는 과정이 담길 수밖에 없다. 초보농사꾼들이라는 사실이 하나하나 겪어내며 부딪치는 좌충우돌의 재미요소를 만들고, 그 와중에 인제의 이 작은 마을에 사는 인심 좋고 정많은 사람들을 알아가고 친해지는 과정이 주는 재미가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 과정을 우리는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결국 콩 심은 데 콩이 나는 걸 보여주려는 것 아닌가. 

 

하지만 콩 심은 데 진짜 콩이 나고, 그 콩을 수확해 쪄서 먹어보고 또 갈아서 콩국수를 만들어 먹는 과정은 보기만 해도 뿌듯하다. 농사가 쉽지 않은 초보 농부들에게 쑥쑥 자라줘 용기와 보람을 준 깨는 잎으로 고기를 싸먹고, 깨는 털어서 들기름을 만든 후 그걸 양껏 부어 고소한 기름막국수까지 먹게 해준다. 그 고소한 향기가 TV화면을 뚫고 안방까지 전해지는 느낌이다. 

 

떠나온 밭에 남겨두고 왔던 배추며 무로 김장을 담그는 모습은 그래서 이 프로젝트의 대미가 된다. 그냥 사서 하는 김장이 아니라, 하나하나 직접 키워 수확해 하는 김장이니 얼마나 각별할까. 모두가 둘러 앉아 함께 김장을 하며 나누는 대화는 그간 4개월 간의 추억만으로도 포만감이 느껴진다. 

 

어찌 보면 그냥 틀어놓고 크게 집중하지 않은 채 슬쩍슬쩍 봐도 될 정도로 부담없는 ‘멍’ 계열의 프로그램처럼 보이지만, 이를 또 집중해서 보면 더더욱 재밌게 만들어준 건 다름 아닌 이광수를 중심으로 김기방, 김우빈, 도경수, 찐친들의 티키타카였다. 이미 친한 그들의 케미는 그래서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시청자들에게는 새로웠다. 이광수는 예능 출연이 많았지만, 이처럼 자신이 중심에 서서 끌고가는 역할을 맡아 새로운 면모가 돋보였고, 다른 출연자들은 말 그대로 예능 초보자들이었다. 특히 이광수와 티격태격하는 모습과 발군의 요리실력에 귀여움을 독차지 하는 막내였던 도경수는 ‘재발견’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매력을 보여줬다. 

 

처음에는 데면데면했지만 차츰 아버지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따뜻한 정을 보여주신 이웃 동근 아버님이나, ‘홍반장’처럼 우직하게 도움을 주고 재미도 줬던 망치 형님 같은 마을 주민들의 환대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외지인들이 그 곳에 적응할 수 있게 드러내지 않고 도와줬고 그 마음은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도 전해졌다. 

 

<콩콩팥팥>의 저력은 나영석 사단이 갖고 있는 균형감각을 다시금 발견하게 만든다. 힘 빼고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예능의 맛을 밑반찬으로 내놓고, 그러면서도 출연자 구성과 그 케미만으로도 빈 틈 없는 재미를 채워넣은 것이 그렇고, 초보가 조금씩 농사를 알아가는 재미를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발견하게 해주는 ‘힘 뺀 연출’이 그렇다. 늘 그래왔듯이 <콩콩팥팥> 역시 한때는 금기로까지 이야기됐던 익숙함을 넘어 ‘뻔할 수 있는’ 소재 속에서도 새로운 재미를 찾아낸 예능으로 각별하게 기억될 것 같다. (사진:tvN)

웹 예능의 특별함은 어디에서 나올까

 

이제는 웹 예능이라는 말이 그리 낯설지 않은 시대가 됐다. 유튜브는 물론이고 카카오TV 그리고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같은 새로운 플랫폼들이 점점 주력 미디어로 떠오르고 있고, 다양한 웹 예능 콘텐츠들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피식대학

나영석 PD의 도전, 이젠 OTT 전략이 됐다

2015년 첫 시즌을 방영한 나영석 PD와 신효정 PD가 공동 연출한 <신서유기>는 네이버TV를 통해 방영된 웹 예능이었다. 1인 미디어들이 등장하고, 플랫폼이 인터넷이나 모바일 같은 웹으로 옮겨가는 시대의 변화를 읽었던 나영석 PD의 모험적인 선택이었다. 당시 이 웹 예능은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신서유기> 특유의 게임, 여행이 접목된 웃음은 웹의 성격에도 잘 어우러졌다. 지상파나 케이블 예능들이 어떤 공적인 요소들(재미만이 아닌 의미 같은)을 요구하던 것과 달리 웹에서는 그저 순전히 포복절도의 재미를 추구하는 분위기가 있었고 그걸 간파한 것이 <신서유기>의 시작이었다. 

 

그 후로 <신서유기>는 시즌2에 웹에서 보여준 후 방송에 편성되었고 시즌3부터는 tvN에서 정규편성되어 방영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잦은 편성 변경은 초창기 이 웹 예능의 시도가 화제는 됐지만 성공을 거두지는 못한 결과 때문이었다. 다행히 정규편성된 시즌3가 성공을 거뒀고 그 후 <강식당>, <아이슬란드 간 세끼> 같은 스핀오프 프로그램도 시도되었다. 나영석 사단은 네이버TV에서 유튜브로 플랫폼을 옮겨 채널 십오야를 세웠다. 처음에는 나영석 사단이 만드는 정규 방송들의 예고나 미방영분 혹은 편집판을 내보내는 플랫폼처럼 시작했지만 구독자수가 급증하면서 ‘달나라 공약’ 해프닝 같은 일들이 엄청난 화제가 됐다. 정해진 기간 안에 100만 구독자가 넘으면 이수근과 은지원을 달나라로 보내주겠다는 공약을 걸었다가 실제 100만 구독자가 넘자 나영석 PD가 구독자들에게 ‘구독 취소’를 애원하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

 

웹 예능이 점점 화제가 되면서 tvN 플랫폼을 오히려 웹 예능의 홍보창구처럼 활용하는 역전현상도 일어났다. 즉 <신서유기> 멤버들을 통해 런칭한 스핀오프 프로그램들인 <삼시네세끼>, <나홀로 이식당>, <라끼남>, <언제까지 어깨춤을 추게 할 거야>, <마포 멋쟁이>, <출장 십오야> 같은 웹 예능들은 tvN 정규방송에 짧게 편집되어 소개됐는데, 이건 일종의 웹 예능 홍보영상처럼 활용된 것이었다. 이렇게 단 몇 년 사이에 웹 예능의 위상은 정규 방송을 위협할 정도로 높아졌다. 게다가 최근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가 새로운 콘텐츠 소비 플랫폼으로 등장하면서 구독자를 확보하기 위한 OTT들의 오리지널 예능 경쟁도 치열해졌다. 티빙에서 오리지널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신서유기 스프링캠프>는 그간 나영석 사단이 시도해온 일련 웹 예능들이 이제는 OTT의 전략적 프로그램이 될 정도로 성장했다는 걸 보여준다. 

 

지상파의 한계를 뛰어넘은 웹 예능의 저력

<신서유기>가 처음 네이버TV에서 방영됐을 때 웹 예능이 기성 플랫폼의 콘텐츠와 확연한 차별화가 가능하다는 걸 가장 잘 드러내준 건, 상품명을 나열하는 게임이었다. 기성 플랫폼에서는 할 수 없어 지워지거나 삐 처리될 수밖에 없는 상품명들이 ‘속 시원하게’ 출연자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게임은 웹이어서 가능한 표현이나 소재가 있다는 걸 알려줬다. 유튜브로 채널 십오야를 열고나서는 시청률이 아닌 ‘구독’ 관점의 예능들은 팬들과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걸 드러냈다. 그래서 간간히 소식도 알리고, 때론 ‘얼토당토한 공약’으로 해프닝도 만들어내면서 구독자가 늘어났고,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콘텐츠라는 새로운 인식도 생겨났다. 특히 웹 예능은 웹의 특성상 짧은 분량으로 나누어진다는 점에서 그 특성에 최적화된 콘텐츠들이 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놀라운 건 ‘구독’ 개념으로 묶여진 구독자들의 막강한 팬심이다. 스스로 채널을 선택한 찐팬들은, 기성 플랫폼 시청자들보다 더 유대감이 높았다. 

 

이런 특성들에 최적화된 콘텐츠들을 내놓음으로써 새로운 전성기를 마련한 대표적인 사례가 ‘피식대학’이다. KBS <개그콘서트>와 SBS <웃찾사>의 개그맨 3인이 결성해 유튜브에 만든 이 채널은 ‘한사랑 산악회’, ‘B대면 데이트’, ‘05학번이즈백’ 같은 상황극 콘텐츠로 큰 인기를 끌었다. 기존 지상파에서 하던 무대개그처럼 캐릭터가 강조된 개그코드를 갖고 있지만, 이들 콘텐츠들은 실제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여주는 즉석 상황극이라는 점이 달랐다. 특히 지상파가 아니라는 점에서 표현이나 소재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피식대학은 구독자들이라는 찐팬들이 모여드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특정 콘텐츠들의 상황극과 캐릭터는 그래서 무대 개그와는 달리 하나의 세계관으로 받아들여졌고, 이 가상의 캐릭터 놀이를 바탕으로 하는 세계관은 실제 현실로 걸어 나와 소비되는 확장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B대면 데이트’에서 이호창이라는 재벌3세가 ‘시가총액 500조원의 코스피 1위 기업’인 김갑생할머니김의 미래전략실본부장으로 등장하는데 실제로 성경식품과 협업해 내놓은 ‘김갑생할머니김’이 3시간만에 완판되는 일이 벌어진 것. 이른바 ‘믹스버스(Mixverse : Universe+Mix)’ 굿즈는 이제 웹 예능이 만들어내는 세계관들과 협업하며 구독자들의 또 다른 즐거운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

 

웹 예능, 레거시 미디어 예능을 압도하는 이유

<개그콘서트>의 폐지와 상반되는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의 승승장구는 지금 현재 웹 예능이 기성 레거시 미디어의 예능을 압도하고 있는 현실을 드러낸다. 더 이상 지상파에 설 무대가 없어진 개그맨들은 저마다 유튜브 채널을 열고 새로운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미 등장하고 있는 카메라 어플을 적용해 탄생한 월클돌 매드몬스터(탄, 제이호)라는 캐릭터를 탄생시킨 곽범, 이창호도 그 대표적인 사례다. 유튜브 채널 ‘빵송국’에서 탄생한 매드몬스터는 실제 음원과 뮤직비디오를 발표하고 아이돌로 활동 중이다. 

 

2015년 네이버TV처럼 출시됐던 카카오TV는 작년 9월 자체 제작 드라마, 예능 등을 공격적으로 쏟아내며 종합 동영상 서비스를 시작했다. 여기서 등장한 웹 예능들은 기성 플랫폼에서는 본 적 없는 색다른 시도들이 화제가 됐다. 마치 누군가의 일상을 모바일 카메라를 통해 들여다보는 것 같은 형식을 취한 <페이스 아이디>나 도시의 밤길 산책을 따라가는 <밤을 걷는 밤> 같은 시도들이 대표적이다. 특히 주식을 소재로 한 <개미는 오늘도 뚠뚠> 같은 웹 예능은 지상파가 하지 못하는 표현 수위로 실질적인 정보에 관심을 가진 구독자들을 끌어 모았다. 즉 실제 주식종목명을 거론하고 실제투자하며 그 결과를 보는 ‘진짜 정보들’이 담겨 있었던 것. 비슷한 주식 소재 예능을 시도했던 MBC <개미의 꿈> 파일럿이 정규가 되지 못했던 건, 실제 투자 종목을 거론할 때 묵음 처리되는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예능은 보다 일상에 맞닿아 있는 장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훨씬 더 리얼한 일상의 풍경들이 담겨진 예능을 보고 싶어 한다. 기성 레거시 미디어들이 그 위상의 책임감 때문에 스스로 표현과 소재를 제한하고 있을 때, 웹 예능들은 저들이 하지 못하는 영역에 뛰어들고 있다. 그건 차별화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달라진 시대에 대중들이 요구하는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의 소산이기도 하다. 이런 흐름으로 계속 가게 된다면, 웹 예능이 레거시 미디어 예능을 압도하는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을 게다. 만일 기성 플랫폼의 예능들이 위기에 맞는 대대적인 혁신을 일으키지 않는다면.(글:LH사보, 사진:샌드박스)

'윤스테이'가 코로나 시국에 내놓은 명민한 선택

 

tvN <윤식당>이 <윤스테이>로 돌아왔다. 코로나19로 해외에 더 이상 나갈 수 없게 되었고, 그래서 미뤄지다 결국 국내를 선택하면서 식당보다는 '한정된' 인원만 예약을 받아 할 수 있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옥 숙박업을 미션으로 삼게 된 게 <윤스테이>의 기획의도였다. 

 

사실 코로나19 3차유행이 본격화되지 않았던 지난 11월에 촬영된 것이지만, 방영시점이 현재 3차유행의 변곡점을 지나고 있는 상황이라 <윤스테이>가 보여줄 '대면의 풍경'들은 보는 이에 따라서는 불편한 지점들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윤스테이>는 시작 전부터 그 '송구스러운 마음'을 자막으로 전제하고, 방송 중간 중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사전방역과 철저한 검사를 한 후 촬영에 임했다는 고지를 담았다.

 

또한 <윤스테이>의 '대면 공간'을 전남 구례에 외부와 격리된 한옥 고택으로 삼은 점도 다분히 코로나 시국을 염두에 둔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원천적으로 우연한 외부인들의 틈입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도시에서 떨어진 만큼 코로나의 영향이 적은 지역의 공간을 선택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전에 예약을 받아 외국인들이 이 곳을 찾아오지만, 모두 사전 검사를 하고 그들만의 시간들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프라이빗'한 공간이 주는 안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윤스테이>는 이런 코로나 시국에도 굳이 이 프로그램을 하는 이유 또한 제시했다. 그것은 '한국 체류 1년 미만의 외국인 손님들'로 참여를 제한한 데서 드러난다. '한국 체류 1년 미만'이라는 의미는 나영석 PD의 설명대로 일 또는 학업 때문에 한국에 들어왔지만 코로나 때문에 외부활동을 거의 못하신 분들이고 그만큼 한국문화를 접할 기회가 없는 분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이분들을 위해 1박2일 간의 한옥 스테이를 통해 한옥과 한식 같은 한국문화를 경험하게 해준다는 취지가 그 안에는 들어 있다. 

 

<윤스테이>는 그래서 최근 들어 해외에서도 이른바 'K'를 붙여 지칭하곤 하는 한국의 다양한 문화들을 그 시공간 안에 채워 넣었다. 먼저 곶감을 매달아 놓은 풍경과 대나무 사이로 난 길을 걸어 올라가면 널찍한 정원을 만나고 그 곳에 비밀스럽게 들어 앉아 있는 고즈넉한 한옥이라는 공간이 그렇다. 그 곳을 찾은 외국인들은 옛날에 사용하던 자물쇠를 여는 것만으로도 신기해하고, 털 달린 고무신을 신고 즐거워한다. 구비되어 있는 팽이나 제기 같은 전통놀이를 해보기도 하고, 구들장이나 비밀공간을 발견하고는 반색한다. 

 

'한식은 손맛'이라며 떡갈비를 위해 고기를 다지는 데만 1시간 넘게 들어갈 정도로 정성이 가득한 매 끼니들은 아마도 <윤스테이>의 가장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베지테리안을 위한 요리는 물론이고,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외국인들을 위한 덜 매운 요리들까지 손님 하나하나에 신경을 쓴 서비스들에 담길 가족 같은 '한국의 정'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예능프로그램으로서 그저 훈훈한 광경만이 아닌 '긴장감' 또한 <윤스테이>는 놓치지 않았다. <윤식당>처럼 음식과 접객에만 신경 쓰면 되는 것과 달리 <윤스테이>는 하루 숙박이 갖는 무게감이 더해진다. 손님을 픽업해와야 하고, 좀 더 편안한 잠자리를 위해 숙소도 준비되어야 한다. 식사 때가 되면 한꺼번에 몰리는 손님들을 불편함 없이 접대해야 하는 숙제도 만만찮다. 과연 이걸 잘 해낼 수 있을 것인가가 적당한 긴장감을 제공하고, 그걸 해냈을 때의 뿌듯함 같은 걸 시청자들도 느끼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윤스테이>가 'K'로 가득 채운 나영석표 블록버스터 예능이라는 걸 잘 보여주는 건 출연자들의 면면일 게다. 최근 영화 <미나리>로 미국 영화제를 휩쓸고 있는 윤여정은 물론이고, <보건교사 안은영>과 영화 <82년생 김지영>으로 주목받는 정유미, 영화 <기생충>의 최우식과 박서준 그리고 나영석표 예능의 페르소나나 다름없는 이서진까지. 아마도 K콘텐츠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들이라면 이들이 접객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울 수밖에 없다. 

 

코로나 시국은 여러모로 예능 프로그램에 장애요소들을 가져왔다. 해외로 나가던 예능들은 그래서 국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누군가를 만나는 일조차 '거리두기'로 인해 꺼려지거나 불편해지는 상황마저 만들었다. <윤스테이>는 그런 불편한 지점이 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면서 '송구한' 마음을 전제하고는, 최대한 조심하며 이 장애요소들을 오히려 기회로 삼으려는 선택을 했다. '거리두기'로 인해 지친 시청자들에게 일종의 대리충족의 기회를 주겠다는 것. 중요한 건 '진정성'일 게다. 그저 강행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애초 취지에 맞게 한국문화를 체험하게 해주겠다는 그 진심이 전달될 때 시청자들은 불편함이 아니라 잠시 동안의 숨 쉴 기회를 가질 수 있을 테니.(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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