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그리맘>의 선정성, 논란이 되지 않으려면

 

MBC <앵그리맘>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이다. 학내의 폭력은 물론이고 교사와 학생 간의 원조교제 교사와 조폭과의 커넥션 심지어는 교사가 조폭을 시켜 청부살해를 요청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물론 이 드라마의 배경이 되고 있는 명성고등학교처럼 심각한 폭력과 전횡에 노출된 학교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결국 극화된 부분이 많고 과장된 면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앵그리맘(사진출처:MBC)'

이처럼 극화를 통한 과장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을 수 있다. 그 학교 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그 첫 번째다. 이것은 <앵그리맘>이 극화되어 있다고 해도 그 과장을 어느 정도 허용하게 만드는 근거가 될 것이다. 어쨌든 드라마가 사회의 현실문제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다른 목적, 즉 그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상황을 이끌어내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기 위한 것이라면 문제가 다르다. 그것은 그저 드라마의 자극적인 소비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앵그리맘> 즉 분노하는 엄마라는 존재가 정당하려면 학교 문제에 대해 사적인 접근이 아니라 지극히 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것이 법적 정의가 아니라 사적 복수라고 하더라도 사적인 의미로 흐르게 되면 자극을 위한 자극으로 치달을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첫 회에 조강자(김희선)라는 엄마는 이러한 학교 폭력 문제에 분노하는 존재로서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조강자가 학내 폭력의 뒤편에 서 있는 조폭 안동칠(김희원)과 사적으로 얽힌 사이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드라마의 이야기는 엉뚱한 방향으로 틀어지고 있다.

 

안동칠의 동생과 조강자가 사귀는 사이였고 그걸 반대하던 안동칠과 엎치락뒤치락하다가 그 동생이 칼에 맞아 죽는 사고를 당했던 것. 이런 사적인 상황의 우연한 연루는 드라마의 개연성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공적인 존재로서의 조강자라는 엄마의 행동을 지극히 사적인 행동(과거의 사건과 연루된)으로 보이게 만드는 위험성이 있다.

 

신문지상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학교 폭력의 실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이다. 그러니 그런 실상을 조금 극화해 드라마를 통해 보여주는 것은 정당한 기획의도가 있다면 무리될 것이 없다. 하지만 그 기획의도가 엉뚱하게 흐르거나 공적인 의미를 상실하고 사적인 이야기에 치중되기 시작하면 드라마는 학교 폭력의 실상을 보여준다는 빌미로 자극과 선정성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심지어 학생들에게 부정적인 교육효과를 만들 수도 있다. <앵그리맘>이 위험해지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딸의 복수를 위해 엄마가 주먹을 드는 이야기는 우리네 교육 현실에서 공감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흐를 위험성도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인물이 있다. 그는 바로 박노아(지현우)라는 선생님의 존재다. 그의 아버지인 판사 박진호(전국환)는 분재를 하며 아들에게 자신은 이렇게 잘못된 가지를 치는 일을 하는 사람이지만 교사는 햇볕이나 비 같은 존재여야 한다고. 잘못 자라고 있다고 해도 햇볕을 늘 비추고 비는 늘 내려주기 마련이라고. 즉 교사라는 존재가 아이들을 판정하고 재단하는 인물이 아니라 모든 걸 받아주는 존재여야 한다는 얘기다.

 

<앵그리맘>은 학교 폭력에 대한 두 가지 접근방식을 보여주는 드라마다. 그 하나는 조강자로 대변되는 방식으로 부조리한 현실에 주먹으로 맞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박노아로 대변되는 방식으로 그런 학생들을 사랑과 배려로 끌어안는 것이다. 전자가 드라마적 판타지와 쾌감을 선사한다면 후자는 드라마의 의미를 담아낸다. 박노아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종말에 이른 학내 상황에 아이들을 태워줄 방주를 짓는 존재다.

 

<앵그리맘>은 자칫 선정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다분한 드라마다. 어느 순간 공적인 의미를 상실하거나 자극적인 상황으로 기울게 되면 드라마는 균형을 잃을 위험성이 크다. 조강자만큼 박노아가 중요해지는 건 그래서다. 이 두 인물의 균형이 적절히 이루어질 때 드라마는 재미와 의미를 모두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욕먹어도 보면 그만? 임성한 월드의 참상

 

이제 임성한 월드는 더 이상 욕하는 것도 지겹다는 대중들의 반응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항간에는 아예 임성한 월드에 대한 기사가 나오는 것조차 불편해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비판 기사는 사실상 임성환 월드가 먹고 자라나는 자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압구정백야(사진출처:MBC)'

임성한 월드는 논란을 먹고 자란다. 도무지 나올 수 없는 칭찬은 당연히 논란으로 이어지고, 당연한 비판 역시 그 논란을 부추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이것이 임성한 월드에 일조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이 생기는 건 그래서다. 무관심이 답일 수 있지만 그래도 최근 들어 조금 오른 시청률 때문에 자꾸만 임성한 월드에 대한 재조명 기사들까지 나오는 건 이해하기가 어렵다.

 

시청률은 작정하면 나올 수밖에 없다. 가장 쉬운 것은 룰을 깨는 것이다. 드라마라는 창작의 공간에도 정해진 룰이라는 게 있다. 그러니 이걸 깨버리면 당연히 시끄러워진다. 그리고 그 시끄러움은 임성한 월드가 목적하는 것이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 여기서 함정은 방점이 욕하면서에 찍히는 게 아니라 보는에 찍힌다는 점이다.

 

이렇게 찍힌 방점은 본말을 전도시킨다. 보게 하기 위해 욕먹기를 자초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등장인물(그것도 주인공급)의 어이없는 죽음은 욕먹기가장 좋은 수단이다. 물론 거기에는 작가의 욕망이 들어 있다. 이 세계에는 작가가 신이다. 그는 인물과 인물을 이어붙이는 것에서 장애물이 있다면 거침없이 제거해낸다. 그 세계가 작가만의 것이 아니라 이미 시청자들의 것이기도 하지만, 그런데서 나오는 잡음들은 오히려 을 통한 시청률로 이어진다.

 

죽었던 인물이 다시 유령이나 환시로 재등장하는 건 그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 인물에 대한 대중들의 뜨거운 논란의 불씨를 끄기 보다는 오히려 계속 끌고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여 섬뜩해진다. 마치 길거리에서 드잡이 싸움이 벌어지면 그 내용과 상관없이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처럼 임성한 월드는 무관심이나 비판조차도 가만두지 않고 오히려 키워버린다.

 

당연히 작품을 일관적으로 통과하는 메시지 같은 건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그 지극히 이상한 임성한 월드가 마치 보편적인 세계인 양 매일 같이 대중들에게 노출되는 끔찍한 악영향만이 거기에는 존재한다. 현실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놀라운 장면들이 주는 황당함과 어이없음은 그 강도가 너무 강해서 비판조차 허탈하게 만든다. 그러니 작품성 자체는 일찌감치 포기한 채 황당한 웃음을 지으며 자극만을 쳐다보는 지경에 이를 수밖에 없다. 자조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시청패턴이다.

 

이 황당한 세계가 매일처럼 대중들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여진다는 건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죽어나가는 등장인물을 의심 없이 바라보다보면 마치 사람을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대하는 것이 당연한 듯한 세계관을 내면화하게 될 수도 있다. 룰 자체는 아랑곳없이 제멋대로 방향을 틀어버리는 이야기에 익숙해지다 보면 마치 그런 임기웅변식의 삶이 우리가 지향해도 무방한 삶의 본질이라는 것에 승복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임성한 월드보다 더 큰 문제는 이 세계를 매일 매일 보여주는 방송사의 윤리 부재의 현실이다. 시청률만 되면 뭐든 받아들인다는 이런 식의 태도는 모든 가치들을 경제적인 논리 아래 굴복시킨다. 일부 기자들을 비판하는 기레기라는 말을 끌어와 작레기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을 방송사는 왜 좌시하고만 있는 걸까.

 

장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를 디즈니랜드에 비유해 설명하며, “디즈니랜드는 미국 자체가 거대한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함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임성한 월드가 갖는 정치적 위험성은 바로 이 점에 있다. 이 극단의 막장의 세계는 어떤 면에서는 지독한 현실의 막장을 은폐하는 힘을 발휘한다. 이것은 <펀치> 같은 작품들이 오히려 막장의 현실들을 환기시키는 것과는 정반대의 흐름이다.

 

임성한 월드는 그래서 세상의 모든 막장에 쏟아지는 욕들을 마치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며 성장하는 괴물처럼 보인다. 이 룰도 없고 삶과 죽음의 예의도 없는 세상을 들여다보면서 혀를 차고 있는 순간, 저 바깥세상에서 돌아가는 막장의 현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마비된다. 과연 욕먹어도 그만일까. 이런 세계를 방치하는 것은.

 

클라라, ‘성적 수치심발언이 가져온 후폭풍

 

클라라가 기획사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와의 전속계약 취소를 요구하며 그 이유로 내세운 건 다름 아닌 성적 수치심이었다. 클라라는 작년 9월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 회장의 언행에 대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수차례 성적 수치심을 느끼도록 했다전속계약효력부존재확인소송을 냈다.

 

사진출처: 영화 <워킹걸>

소속 연예인과 소속사 간의 전속 계약 분쟁은 늘 있어왔던 일들이다. 그러니 만일 클라라가 그저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와의 문제를 그런 계약 분쟁으로 얘기했다면 이 사안은 이만한 파장을 만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들고 나온 성적 수치심이라는 발언은 파장을 키웠다. 그것이 어떤 목적을 가진 행동이었든 아니든 상관없이 폴라리스 입장에서는 회사 차원에서도 또 회장 사적인 차원에서도 커다란 타격이 될 수밖에 없는 발언이었다.

 

특히 사람을 관리하고 매니지먼트 하는 기획사에서 성적 수치심같은 발언은 한 방에 회사를 휘청하게 만들 수도 있는 파괴력을 만든다. 연예계에 공공연히 존재하는 성추행이나 성희롱 같은 일들이 그 발언 하나에서 연달아 연상되기 때문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그런 회사에 매니지먼트를 맡길 연예인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클라라가 가진 이미지는 이 성적 수치심이라는 발언에 상상력을 촉발시켰다. 부정하려고 해도 클라라는 여전히 섹시 이미지가 아이콘화 되어 있는 연예인이다. 그러니 다른 이도 아니고 그녀 측에게서 나온 성적 수치심이라는 말이 얼마나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을 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만큼 이 발언은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 측에게는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공개될 줄 몰랐던 클라라와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 회장 사이에 오간 메시지들이 공개되면서 이 성적 수치심이라는 발언은 고스란히 클라라에게 후폭풍이 되어 되돌아오고 있다. 클라라측은 물론 디스패치가 공개한 내용이 전문이 아닌 편집된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메시지들이 보여주는 뉘앙스는 클라라측이 얘기한 성적 수치심과는 정반대의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 메시지 내용들은 어찌 보면 평범한 계약문제로 야기된 분쟁처럼 보인다. 이중 계약을 하게 된 클라라가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 측의 배려와 도움을 요청했고, 그걸 도와주기로 했지만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 측에서도 기획사로서 응당 요구할 걸 요구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분쟁. 그 와중에 클라라가 독단적인 행동을 한 부분도 분쟁의 작은 빌미들이 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계약 분쟁은 좀 더 자세한 내용들이 밝혀져야 확실한 정황이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계약 분쟁의 문제를 굳이 성적 수치심을 근거로 들어 계약 취소로 끌고 간 것이 합당했던 것인지 의문이 든다. 계약 분쟁의 법적 결말이 나오기 전에 성적 수치심을 언론에 토로하고, 또 어디서 흘러나온 것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이 성적 수치심의 근거를 확인하기 위해 메시지 내용이 공개되는 이 과정을 보면 계약 분쟁의 핵심은 성적 수치심이 아니라 다른 것이 아닐까 싶은 심증이 생긴다.

 

클라라측으로부터 나오게 된 성적 수치심이라는 발언은 결과적으로 이 법적으로 처리되면 될 사안을 언론을 통한 여론의 문제로 비화시킨 면이 있다. 만일 이 문제의 핵심이 성적 수치심이 아니라 계약 과정의 문제였다면 클라라는 그런 성적인 문제제기를 한 후폭풍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 성적 수치심이 사실이라면 소속사가 그만한 타격을 입게 되겠지만. 어느 쪽이든 먼저 이 발언이 문제의 핵심처럼 부각된 건 너무 의도적이었거나 성급했다는 느낌이다.

 

화생방 닮은 '진짜사나이', 그 최루와 진정성 사이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여러 차례 해도 도무지 적응 안 되는 것이 화생방 훈련이라는 걸 잘 알 것이다. 물론 유격훈련이든 혹한기훈련이든 야전으로 나가기만 하면 늘 새롭게만 느껴지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래도 이 눈물, 콧물 쏙 빼고 그 안에서 꼭 시키는 어머니의 마음을 부를 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라는 가사에서 울컥할 수밖에 없던 화생방 훈련의 추억을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진짜사나이(사진출처:MBC)'

그래서일까. MBC <진짜사나이>여군특집으로 한껏 상승했다 빠져버린 기대감을 신병특집으로 이어가면서 부랴부랴 화생방 훈련의 추억을 끼워 넣었다. 역시 늘 봐도 어쩔 수 없는 그 짠함은 이번 신병특집에서도 여지없이 힘을 발휘했다. 파이터라는 이미지와는 상반되게 때때로 여성적인 면(?)을 보여주는 김동현은 화생방 교장 안에 가득한 CS가스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분리한 정화통이 끼워지지 않아 고통스러워하는 김동현을 돕겠다고 나선 임형준은 그러나 제대로 끼우지도 못해 오히려 그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아내 홍은희가 여군특집때 화생방 교장 안에서 의연하게 버티던 모습에 자극받은 유준상은 꿈틀대면 지는 거다라며 고통을 참아냈고, 그 와중에도 주변 훈련병들을 챙겨주는 자상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호기심에 들떴던 육성재는 훈련을 받고 나서는 할 것이 못 된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천식이 있어 자신은 정화통을 분리하고 다시 채우는 훈련에서 열외된 문희준은 동료들이 힘겨워하는데 자신은 함께 하지 못해 미안했다고 말했다. 그 말 때문에 울컥한 유준상이 눈시울을 붉히자, 그걸 본 임형준은 말문이 막혀 버렸고, 결국 그 자리에 있는 모든 동료들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여군특집에서 굳건하게 버텨내던 홍은희와 김소연에게서 느껴졌던 그 뭉클함이 신병특집의 군대 복학생(?)들에게서도 똑같이 느껴졌다. 해병대를 나왔다는 김동현도, 그들이 훈련받고 있는 이기자 부대를 나온 유준상도 신병이라는 딱지를 받는 순간부터 이상하게 어리버리해지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임형준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적지 않은 나이들은 그 어리버리함마저 짠함으로 바꿔버린다.

 

그런데 궁금해지는 대목이 있다. 과연 이 뭉클함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군대를 다시 가 체험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힘겨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청자 입장에서 누군가의 고통을 바라본다는 것은 짠한 감정을 동반한다. ‘힘겨워도 포기하지 않고 애쓴다는 그 힘겨운 몸들의 언어들은 모든 몸 가진 자들의 똑같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억지로 짜낸 땀과 눈물, 콧물은 아닐까.

 

바로 이런 의구심이 고개를 드는 순간부터 <진짜사나이>가 주는 그 짠함과 뭉클함은 하나의 최루성의 신파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물론 그 안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연예인들은 그 노력하는 모습의 진정성이 분명 있다. 그들은 직업인으로서 방송인으로서 온 몸을 던져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거기 부재한 한 가지는 이런 눈물 콧물을 빼는 장면들을 보여주는 제작진의 진정성이다. 화생방 훈련이 한 번 보여질 때만 해도 마치 꼭 느껴봐야 할 군대 체험의 백미처럼 느껴졌던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반복해서 계속 보여질 때 슬쩍 보이는 것은 역시 화생방의 고통을 드러내줘야 시청자들이 주목한다는 제작진의 학습효과다.

 

그래서 화생방 교장 안에서 눈물 콧물을 흘려대며 동료들을 챙기는 출연자들을 보면서 뭉클한 마음을 갖게 되다가도, 그 뭉클함이 혹시 저 교장 안에 퍼져 있는 CS가스 같은 자극을 통한 최루성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갖게 만든다.

 

이것은 어쩌면 <진짜사나이>라는 프로그램이 가진 특징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군대라는 화생방 교장 속으로 들어가 사회에서의 안전한 방독면을 벗고 CS가스 같은 훈련들 속에서 땀과 눈물을 쏟아낸다. 그 최루와 진정성 사이. 그곳이 <진짜사나이>가 서 있는 곳이다. 그렇게 보면 왜 이 프로그램이 그토록 호평과 논란을 동시에 가져오고 있는가 하는 게 새삼 이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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