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팍 도사’와 ‘라디오스타’의 생존법

대화를 통해 재미를 이끌어내는 토크쇼는 시대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해왔다. 그것은 시대마다 토크의 방식 또한 변화했기 때문이다. 일방향적 미디어 시대에 주조를 이룬 것은 ‘주병진쇼’, ‘자니윤쇼’같은 1인 토크쇼였다. 하지만 쌍방향 미디어 시대에 1인 토크쇼는 시대착오가 되었다. 일방적인 토크가 갖는 홍보성향이 문제가 되었다. 어디서나 토론이 일어나고 중심 없는 지방방송(?)이 대화의 주류가 된 지금 시대에 홍보성향을 버리고 진정성을 담기 위해 토크쇼는 진화해왔다. ‘무릎팍 도사’와 ‘라디오 스타’는 이러한 대화방식의 변화 속에서 지금의 토크쇼가 어떻게 생존하는 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무릎팍 도사’, 대결 토크로 살아남기
대세로 자리한 집단 MC 체제의 토크쇼 속에서도 ‘무릎팍 도사’는 여전히 1인 체제(물론 유세윤과 올밴이 있지만 이들은 분명 보조자일 뿐이다)로 굳건히 버티고 있다. 하지만 ‘무릎팍 도사’가 버틸 수 있는 건 과거의 1인 토크쇼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무릎팍 도사’는 다른 토크쇼와는 차별된 구도를 갖추고 있다. 그것은 출연진들이 카메라를 향해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옆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대신 MC 강호동은 게스트와 마주보고 있으며 그것을 옆에서 찍는 카메라는 그 장면 자체를 자연스럽게 대결구도로 포착해낼 수 있다.

이것은 물론 과거 1인 토크쇼 중에서도 보이던 장면이다. 하지만 그 과거의 구도에서 MC와 게스트는 기본적으로 카메라를 정면으로 향해 보고 말한다. 즉 시청자에게 직접 토로하는 이 방식 속에서 MC는 게스트가 하고 싶은 얘기를 끄집어내게 하는 보조자의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무릎팍 도사’는 시청자에게 직접 토로하려는 게스트의 시선을 MC 강호동이 붙잡아두고는 그가 원하는 방식의 대화로 이끌어간다.

무언가 숨겨져 있던 비화를 끄집어내거나 평소에 보이지 않았던 진솔한 모습을 끄집어내는 방식으로서 이 대결구도의 토크는 과거의 그것과 비교해 신선하다. 대화방식도 공격적이어서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의 경우 바로 그 아픈 이야기가 거침없이 끄집어내진다. 홍보의 느낌이 상쇄되고 진정성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물론 이것은 또한 고도로 우회된 홍보의 방식이기도 하다. 물의 연예인은 이 적나라한 이야기 끝에 가서 결국 면죄부를 받게 된다. ‘무릎팍 도사’가 무당 같은 도사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건 이 한바탕 토크의 굿판을 통해 그 연예인의 이미지가 새롭게 태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라디오스타’, 중심 없는 대화로 살아남기
‘무릎팍 도사’가 1인 토크쇼가 가진 홍보성향을 대결 구도의 토크로 넘어섰다면, ‘라디오스타’는 중심이 없는 토크로 그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라디오 스타’는 모두 카메라 정면을 보고 빙 둘러앉아 있지만 중요한 것은 메인 MC가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토크가 어떤 중심을 갖고 흘러가기보다는 산발적으로 쏟아대는 말들의 상찬을 그대로 여과 없이 보여준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방식은 고정 MC는 물론이고 게스트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고정 MC들은 게스트를 초대해놓고도 저들끼리 서로 자신이 메인 MC라고 다투면서 게스트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게스트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하면 가차없이 잘라내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라디오스타’만의 독특한 대화방식이다.

혹자는 이런 방식이 게스트를 배려하지 않는다 하여 비판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화방식은 이제 디지털 세대들에게 일상적인 것이 되고 있다. 대화방에 들어가 손가락에 불이 나게 타자를 쳐본 적이 있거나,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메신저 대화를 해본 경험이 있다면 이 대화방식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것인지 알 것이다.

1인 토크쇼가 대세였던 시대를 ‘집중’의 시대였다면, 집단 토크쇼가 대세를 이루는 지금 시대는 ‘정신분산’의 시대다. 수많은 정보들 속에서 어느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하다. 이것은 마치 모니터에 수없이 많은 창들을 띄워놓고 어느 하나에 집중하지는 않지만 모든 창을 통제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표상한다. 토크쇼는 그 달라지는 담화방식을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프로그램 형식이며 ‘황금어장’은 바로 그 변화양상을 가장 잘 보이고 있는 토크쇼다.
(본 원고는 청강문화산업대학 사보 100도씨(100C)에 게재된 원고입니다)

수평적 대화의 시대, 토크쇼에서 살아남기

‘투나잇쇼’로 잘 알려진 자니 카슨이나, 그 계보를 이어받은 제이 레노, 그리고 역시 토크쇼의 귀재로 동명의 쇼를 진행하는 데이비드 레터맨 같은 이들은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1인 MC 체제를 꽤 오랜 세월 동안(‘투나잇쇼’는 거의 50년 가까운 전통이 있다) 유지해왔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1인 MC체제의 쇼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자니윤쇼’, ‘주병진쇼’, ‘이홍렬쇼’, ‘이주일쇼’, ‘서세원쇼’, ‘김형곤쇼’ 등등이 그것이다. 그 이름만 봐도 한 시대를 풍미한 개그맨들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형태의 토크쇼는 이제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다. 이제 대세는 집단 토크쇼다. 한 명의 MC가 아닌 여러 MC들이 나와 말들을 쏟아낸다.

인터넷 환경을 닮은 집단 토크쇼
이것은 정확히 쏟아낸다는 표현이 맞다. 과거의 1인 MC 체제의 토크쇼에는 기본적으로 질문-답변이라는 순서가 있었다. 하지만 집단 MC 체제에는 이러한 순서는 거의 무시된다. ‘명랑히어로’에서 김성주가 좀 진지하게 어떤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할 때, 김구라는 아예 그 이야기 자체를 끊어버리고 자신의 이야기로 방향을 돌린다. 그리고 김구라의 이야기 도중에도 신정환은 계속 엉뚱한 이야기로 맥을 끊으려 노력한다. 심지어 카메라가 신정환을 잡고 있는 와중에도 말들을 계속 튀어나온다. 그것은 자막의 형태로 마치 만화를 보는 것처럼 화면 속에 들어온다.

집단 토크쇼의 묘미는 비록 글자로서라도 화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고 싶을 정도로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말의 상찬에 있다. 아마도 과거의 토크쇼에 더 익숙한 분들이라면 이 정신산란한 말과 글자가 범람하는 화면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정보들의 홍수와 그 홍수 속에서의 순간적인 집중에 대한 훈련을 늘 디지털 사회 속에서 해오고 있는 요즘의 시청자들이라면 말이 다르다. 그것은 너무나 익숙한 풍경일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정보가 너무나 일목요연한 1인 체제의 토크쇼를 보며 그 단순함에 하품을 할 지도 모른다.

과거의 중앙 집중식 토크쇼 형식이 점점 사라지고, 중앙이 없이 서로 주장들이 난무하는 집단 토크쇼로의 변화는 작금의 인터넷 환경을 닮아있다. ‘라디오스타’에서 서로 자신이 메인 MC라고 주장하는 것은 고스란히 인터넷에서의 대화방식을 닮았다. 인터넷에서의 대화 방식이란 중앙이 없고 대신 무수한 중앙들이 서로의 주장을 하며 부딪치는 형태다. 이처럼 수직적인 대화구조가 수평적인 형태로 변모하면서, 어느 한 사람의 주도 하에 끌려가는 1인 MC체제의 토크쇼는 점점 과거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집단 토크쇼, 달라지는 MC들
이렇게 대화방식이 달라지고 그 방식을 수용한 집단 토크쇼들이 등장하자 MC들도 달라졌다. 물론 집단 토크쇼에서도 메인 MC는 존재하지만 그 힘은 현저하게 약화되었다. ‘해피투게더’의 유재석은 메인 MC임이 분명하지만, 프로그램에서 너무 전면으로 나서지는 않는다. 적당한 선에서 그 날 출연한 게스트들의 웃음 포인트를 콕콕 집어내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이것은 유재석이 이 시대에 어떻게 예능 프로그램 MC 0순위의 자리에 올랐는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것은 최근 주목받는 MC로서 강호동도 마찬가지다. 강호동의 스타일이 좀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유재석과는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그 역할은 그렇지 않다. 강호동은 좀 공격적인 방법으로 게스트들의 웃음 포인트를 끄집어 내주고 있을 뿐이다. 공격적인 질문만큼 답변에 대한 과장된 리액션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것은, 씨름을 했던 선수라면 당연할 ‘천부적인 균형감각’을 토크쇼에 있어서도 강호동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호동의 장점은 좀더 강한 토크의 세계 속에서도 유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초창기 ‘무릎팍 도사’의 성공을 가능하게 한 원인이다.

집단 MC 체제는 그 형태가 기본적으로 이야기 배틀의 구조를 가져가기 때문에 그 상황 속에서 특유의 재능을 가진 MC들을 주목시킨다. 그 대표적인 MC가 신정환이다. 신정환은 특유의 순발력과 재치로 TV에 등장하자마자 토크쇼의 강자로 떠오른 인물이다. 물론 탁재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최근 탁재훈은 메인 MC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생기면서 오히려 초창기의 이미지를 아쉽게 만들고 있다. 지금은 옆자리에 앉아서 툭툭 던지는 촌철살인의 말들이 가장 중심에 서서 하는 말보다 더 주목받게 되는 시대다.

옆자리 토크에 적응해야 살아남는다
바로 이 ‘옆자리 토크’가 우세한 시대가 낳은 스타가 김구라다. 그는 누군가 하는 말을 받아치는 방식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세울 수 있었다. 받아친다는 것은 어찌 보면 강렬한 인상을 줘 독한 이미지로 비춰질 수 있지만 김구라는 그 부분을 솔직함과 공감으로 넘어선다. 실제로 가끔씩 던지는 사회에 대한 쓴 소리는 그것이 의미가 있든 없든 간에 보는 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구석이 있다.

오랫동안 메인 MC로서의 확고부동한 위치를 차지해온 이경규는 이렇게 달라진 환경 속에 스스로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명랑히어로’에 나온 이경규가 박미선에게 “너랑 같이 했어야 했다”고 말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박미선은 메인의 입장에서 한참 동안의 공백을 통해 변방으로 내려와 집단 토크쇼 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가 제일 먼저 한 것은 ‘해피투게더’에서 후배 박명수를 웃기기 위해 굴욕을 거듭하며 한없이 낮아지는 것이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박미선은 편안한 아줌마의 이미지로 집단 토크쇼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새로 돌아온 김국진도 마찬가지다.

달라진 시대의 대화방식을 차용한 집단 토크쇼는 거기에 걸맞은 MC들의 변화를 요구한다. 그 변화는 바로 수직적 체계에서 수평적 체계로의 이행이다. 라인 문화가 공공연히 프로그램 속에서 회자되던 적이 있었다. 그것이 실제로 수직적인 체계인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지금은 라인 문화(일단 이 용어부터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보다는 팀 문화가 더 어울리는 시대다. 옆자리에 앉아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이 변화된 토크쇼 환경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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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적인 말장난? 대화방식의 실종!

TV가 호통을 치고 면박을 준다. 물론 저들끼리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결국 시청자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기에 그 호통과 면박은 고스란히 시청자에게 던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때론 욕보다 더한 비아냥을 한다. “이거 뭐야?” 여기서 이거라고 물건 대하듯 지칭한 대상은 물론 사람이다. 그것도 쇼프로그램이 게스트랍시고 출연시킨 출연자다.

젊은 여성연예인을 출연시켜놓고는 장기라고 보여주는 게 ‘혀 놀림’이다. TV를 보는 시청자에게 직접 하는 건 아니지만 그걸 보는 상황에서 이상하게 성희롱을 당한 기분을 갖게 되는 건 그의 혀 놀림이 결국 이편의 TV 앞에 앉아있는 시청자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쇼 프로그램의 고정 출연자들 사이에 대화가 오가던 것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그들은 대신 삿대질을 하고 멱살을 잡는다.

사회는 다문화를 포괄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TV는 공공연히 시대를 역행한다. 타국의 이색음식을 체험하는 자리에서 그들에게는 고급음식인 것이 우리에게는 혐오음식이 될 수 있는 것이지만, 거기에 노골적으로 호통을 치고 삿대질을 해댄다. 상대국에 대한 문화를 내놓고 비하하는 꼴이다. 이 정도 되면 TV는 차라리 과거 ‘바보상자’일 때가 나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된다. 만일 TV를 하나의 캐릭터로 비유할 수 있다면 요즘 TV는 건달도 못되는 ‘넘버3’ 정도로 보인다.

대표적인 막방(막 나가는 방송)은 ‘라디오 스타’다. 동명의 영화가 가진 아련한 향수의 이미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이 방송은 게스트를 왕따 놓는 재미에 빠져있다. 게스트들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고 저들끼리 노는 꼴을 쳐다봐야 한다. 가끔 게스트에게 던지는 질문은 인신공격성이거나 루머 확대재생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로를 헐뜯고 깔아뭉개고 비난하고 무시하고 멱살을 잡는 게 이 방송의 컨셉트다. 어떻게 방송이 이런 수준에까지 오게 되었을까.

박명수로부터 시작된 호통개그는 사실 이경규 같은 개그맨이 이미 했던 개그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어떤 선이 있었다. 호통을 친 연후에는 그것이 개그였다는 것을 알려주듯 자신이 무너지는 행동을 보여주었다. 이 적절한 균형감각이 없을 때 호통개그는 개그가 아닌 자극만 남은 호통에 머물 수밖에 없다. 박명수 역시 이경규와 비슷한 형태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그 양상이 달라졌다. 호통은 이제 박명수를 넘어서 하나의 개그 아이콘이 되었다.

게스트를 출연시키는 쇼 프로그램에서 호통은, 쇼가 갖는 홍보성이나 연예인의 신비주의를 깨는 쾌감을 제공한다. 시청자들이 “저건 또 홍보네” 하고 짐작해 프로그램이 식상해질 때, 호통은 그 호통 받는 연예인의 감추어진 속내를 끄집어낸다는 점에서 통쾌할 수 있다. 쇼 프로그램들이 연출된 화면과 영화나 드라마 홍보에 치중하면서 떨어진 재미를 다시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쓰고 있는 건 리얼리티쇼다. 즉 호통과 면박은 리얼리티쇼의 한 방식으로 등장한 것으로 봐야 한다.

‘무릎팍도사’가 화제가 된 것은 게스트를 위한 홍보 프로그램의 이미지를 벗어냈다는 데 있다. 배틀 형식을 가지고 게스트가 고수하려는 신비주의를 벗겨내는 노골적이고 공격적인 인터뷰가 시대적 요청에 맞아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탈신비주의 전략은 특정 연예인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통과의례가 되기도 한다. 물의를 빚은 연예인들이 더 크게 욕을 먹는 것은 신비주의화되어 인플레이션되어 있는 이미지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런 탈신비주의 프로그램 속에서 인간으로 재탄생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선택이 아니라 살기 위한 필수가 된다.

지금의 ‘무릎팍도사’는 어떤가. 결과는 처음부터 나와있던 것이지만 또 다른 홍보전략의 하나로 활용되고 있다. 형식은 거칠지만 내용은 홍보다. 문제는 이렇게 인터뷰가 가진 본래의 목적이 왜곡되면서 나타나는 거친 말투와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는 언변이 자극적으로만 흐르는데 있다. 이렇게 되면 인터뷰가 목적하던 게스트의 진면목이 밝혀지는 재미는 사라지고 점점 욕에 가까운 말 잔치의 재미만 남게 된다는 점이다.

같은 리얼리티쇼를 추구하지만 ‘무한도전’이 ‘황금어장’의 두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와 ‘무릎팍도사’와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적어도 ‘무한도전’은 프로그램 목적에 부응하는 노동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막노동에 가까운 상황 속에서 나오는 리얼한 말들은 그 자체로 어떤 건전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황금어장’은 무성한 말 잔치로 시작해 말 잔치로 끝난다. 그 말이 어떤 기능을 할 때는 노동이라 할 수 있겠지만 저들끼리의 농담과 신변잡기(그것도 자극적인)에 머물 때 자칫 언어폭력으로만 끝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방송들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게될 대화의 방식에 끼치는 폐해다. 대화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이해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즉 소통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방송이 보여주는 대화의 화법은 사라진지 오래다. 말 대신에 호통과 면박과 욕에 가까운 비아냥, 그것도 모자라 멱살을 쥐고 삿대질을 하는 TV 앞에서 우리네 아이들은 도대체 무얼 배우게 될까. 시청자를 희롱하는 TV, 언제까지 보고만 있어야 할까.

여행명소가 된 촬영지들, 문제는 없나

평범해 보이기 이를 데 없는 정자. 하지만 뭐가 새로운 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이유는 하나. 그 곳이 드라마, ‘고맙습니다’에서 영신(공효진)과 기서(장혁)가 첫 키스를 한 장소란다. 또 다른 풍경 하나. 인터넷 영월군의 관광소개(http://ywtour.com)에 들어가면 영화 ‘라디오 스타’의 촬영지만을 모은 지도가 있다. 그 지도를 보면 재미있는 것이 이른바 명소라는 곳의 이름들이다. ‘영빈관’, ‘청록다방’, ‘청령포모텔’등등. 영화라는 간판이 없었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중국집, 다방, 모텔이 관광 코스가 된 것이다.

과거 7,80년대의 여행이 관광이었다면, 90년대 이후의 여행은 체험이었다. 그리고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맞아 여행도 문화라는 겉옷을 걸쳐 입었다. 영화, 드라마 속의 공간을 찾아가는 이른바 문화여행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문화라는 그림자만 어른거려도 일단 고개부터 돌린다. 물론 문화를 모른다면 그 곳은 아무 것도 아닌 곳이 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안다. 그 평범한 장소에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많은 이야기들을.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드라마는 세트장을 남긴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기며, 드라마는 끝나도 세트장을 남긴다. 나주시는 MBC드라마 ‘주몽’의 4만2천 평 규모 오픈 세트장 건립에 약 80억 원을 투자했다. 지난 3월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이 세트장을 삼한지 테마파크로 유료화한 뒤 50여 만 명의 관광객이 찾았고 그로 인해 14억 원의 직접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눈에 보이는 수익일 뿐, 직접 관광객이 지역에 소비하는 비용과 지역 홍보 및 나주의 이미지 개선 등 보이지 않는 수익을 포함하면 연간 600억 원 이상의 경제효과를 가져온다고 시는 추산하고 있다.

이러한 드라마 촬영지의 테마파크화를 만든 것은 드라마 ‘태조 왕건’. 30억 원을 들인 이 테마파크가 성공을 거둔 이후, 드라마 ‘해신’은 하나의 성공사례가 되었다. 완도는 해신 세트장을 유치해 2005년도 관광객 500만 명을 유치했으며 이로써 1600억 원의 지역경제파급효과를 거둔 공로가 인정되어 최근 제12회 한국지방자치경영대상에서 문화관광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최근 고구려 드라마들의 부흥과 함께 세트장 규모도 커지고 있다. 속초에 지어진 ‘대조영’ 세트장이 70억 원, 문경에 지어진 ‘연개소문’ 세트장 역시 60억 원을 들였다. 현재 가장 큰 테마파크가 진행되고 있는 곳은 ‘태왕사신기’의 제주도 청암영상테마파크로 약 190억 원을 들여 제작되고 있다. 휴가철을 앞둔 지금 벌써부터 이 지역은 사람들의 관심으로 들썩이고 있다.

문화가 있는 여행은 좋지만, 문제는 없나
한편 영화의 경우, 그 대표적인 성공사례는 ‘라디오 스타’ 촬영지인 영월이 될 것이다. 이 인구 4만의 시골은 영화 촬영 이후, 연간 12만 명 이상이 찾는 명소가 되었고, 2006년만 따진다면 지역 경제 유발효과가 92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 정도 되면 지자체의 촬영지 혹은 세트장 유치는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지자체 입장에서 보면 관광 수입은 물론 홍보 효과를 바라볼 수 있게 하고, 방송사 입장에선 광고 이외의 별도수익을 올릴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도 잘 지어진 세트장은 보다 높은 완성도의 드라마나 영화를 볼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특히 테마파크를 겨냥해 짓는 대형 드라마 세트장의 경우에는 그 실효성을 따져봐야 할 것이다. 규모가 점점 비대해져가고 있는 반면, 실제로 그만큼의 수익 창출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때론 지자체장들의 치적을 위한 무분별한 유치경쟁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 테마파크의 부실화를 양산할 수 있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그 지역주민과 그 지역을 찾는 관광객에게 돌아간다.

문화는 장소를 향기롭게 해준다
테마파크를 겨냥해 대형 세트장을 지었다면 드라마가 종영하거나, 영화 상영이 끝났을 경우를 생각해서 향후 대책을 마련해두어야 한다. 드라마나 영화의 인기에 기대 그대로 방치하다가는 심지어 폐가가 되어버리는 경우를 맞이할 수 있다. 제천의 청풍문화재단지는 ‘태조왕건’의 성공으로 2002년 34만 명, 2003년 37만 명이 찾았으나 그 후 특별한 관광상품을 개발해내지 못해 현재는 7만 명 정도로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어진 상태다.

문화의 시대, 문화가 여행의 한 축으로 등장하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거대한 세트장이 전시행정의 하나로 읽혀지지 않기 위해서는 철저한 사전준비는 물론이고 사후관리가 필요할 것이다. 딱히 블록버스터나 마케팅이 아니라도 문화는 그 장소를 더 향기롭게 해준다. 새로운 세트장을 짓지 않고 그 동네의 일상을 고스란히 찍어내 오지 중의 오지인 증도라는 섬을 명소로 만든 ‘고맙습니다’ 같은 드라마나, 변방 주민들의 삶을 고스란히 스크린으로 옮겨낸 ‘라디오 스타’가 소중해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 교보생명 사외보 <다솜이 친구>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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