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스타>, 차 떼고 포 떼도 괜찮은 이유

김구라의 빈 자리는 컸다. 하지만 그렇다고 <라디오스타>가 갖고 있는 특유의 색깔이나 스피드, 분위기가 달라진 건 없었다. 김국진은 여전히 <라디오스타>의 전체 분위기를 정리했고, 윤종신은 게스트들이 던지는 말을 잡아채서 제 멋대로 이리저리 부풀리고 덧붙이면서 재미를 만들었다. 김구라의 멘티(?)로 자리한 규현은 독한 질문을 천연덕스럽게 툭툭 던졌고 유세윤은 특유의 콩트 감각으로 대화 중에 나온 상황을 연기로 재현해내면서 웃음을 만들었다.

 

 

'라디오스타'(사진출처:MBC)

빈 자리가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껏 꽤 여러 차례 MC들이 빠져나가는 상황을 겪은 터라 이런 상황에 대한 적응력도 남달랐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꽤 오래 호흡을 맞췄던 신정환이 하차하고 김희철이 군 입대 문제로 빠져나간 후, 규현과 유세윤이 들어와 적응단계에 접어들 때, 김구라가 하차하게 된 상황이었으니까. 무엇보다 김구라는 <라디오스타>의 스타일 그 자체였기 때문에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규현의 말 대로 "너무 잘하면 서운할거다"라는 말은 그저 농담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김구라의 빈 자리를 놓고 남은 네 MC가 서로 헤게모니 싸움을 하듯 서로를 견제하고, 그러면서도 김구라가 해왔던 역할, 즉 직설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을 서로 분담하듯 하는 모습은 <라디오스타>가 얼마나 형식적으로나 구성원들로나 견고한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아마도 규현의 말 대로 김구라가 봤다면 서운했을 정도로, 이들은 빈 자리를 잘 메워나갔다.

 

게스트로 <슈퍼스타K>의 서인국과 허각, 그리고 <위대한 탄생>의 손진영과 구자명이 같이 출연한 것도 적절했다고 여겨진다. 아마도 MBC 출연이 처음이었을 서인국과 허각의 소회도 그렇지만, 이렇게 두 오디션 프로그램의 출연자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도 이색적인 조합이었다. 그들은 팽팽한 신경전을 보여줌으로써, 자칫 김구라의 공백이 가져올 수도 있는 <라디오스타>의 느슨함을 허용하지 않았다.

 

손진영은 탁월한 예능감으로 이 대결구도의 중심적인 역할을 해주었다. 그는 나머지 세 명이 모두 오디션에서 1위를 차지한 이들이라는 사실과 대척점에 서서 '열등감' 운운하며 이들을 쏘아붙였다. 또 허각과 계속 대립각을 세우고, <슈퍼스타K>와 <위대한 탄생>의 비교점을 드러내기도 했으며, 허각을 추종하는 구자명에게는 "너마저도..."하는 서운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조금은 독할 수도 있는 이런 멘트들이 손진영이라는 캐릭터를 통하자 구수하고 순수한 느낌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손진영이라는 새로운 예능감의 발견은 그 동안 수없이 차 떼고 포 떼면서도 굴하지 않고 달려온 <라디오스타>가 여전히 그 동력을 잃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라디오스타>는 그 특유의 몰아붙이는 분위기 속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게스트의 예능감이 발견되는 지점에서 가장 빛나는 토크쇼가 아닌가.

 

김구라의 미니어처를 규현이 꺼내놓을 정도로 여전히 김구라에 대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중간에 전화 연결로 김태원이 말한 '용서'의 의미가 짠하게 다가온 것도 그 때문일 게다. 하지만 이렇게 비어있는 자리가 있어도 여전히 팽팽 돌아가는 저력, 이것이 밟으면 밟을수록 더 잘 자라는 잡초 같은 예능, <라디오스타>만의 매력이 아닐까.

우리가 김구라쇼를 기대하는 이유

 '박중훈쇼'의 실패, '주병진 토크콘서트'의 난항. 우리에게 1인 토크쇼는 이제 어려운 일이 된 걸까. 아니 이것은 단지 1인 토크쇼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토크쇼들의 성적표를 보면 게스트에 따른 시청률 편차가 너무 들쭉날쭉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토크쇼 자체의 힘이 아니라 게스트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이 와중에서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는 토크쇼는 단연 '라디오스타'다. 게스트와 상관없이 일정한 재미를 뽑아내주고, 심지어 타 토크쇼에서는 그저 지나쳤던 게스트마저 재발견하게 만드는 토크쇼. 그 '라디오스타'의 중추는 자타공인 김구라다. 최근 들어 토크쇼에 있어서 가장 핫(hot)한 인물인 김구라. 왜 김구라쇼는 기획되지 않는 걸까. 김구라에게 김구라쇼에 대해 물었다.

"(자신의 쇼를 하고 싶다는 건) 모든 MC들의 꿈일 겁니다. 제가 잘 할 수 있는 건 바로 토크쇼이기 때문에 토크쇼 MC로서 특화되고 싶은 마음이 있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너무 양적으로 일이 많아서요(그는 현재 방송만 8개를 하고 있다고 한다). 상황 자체가 들어오는 일을 거절할 수 없게 됐죠. 제가 뭐 완전 톱스타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어느 정도 위치가 올라가고 여건도 괜찮아지면 제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토크쇼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게스트들이 저의 캐릭터를 믿고 편안하게 하면서도 속에 있는 얘기를 공격적으로 물어보는 그런 토크쇼 말이죠. 사실 꽤 오래도록 토크쇼를 해와서인지 이제 노하우가 어느 정도 생겼고, 또 이 분야에서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김구라의 화법은 초기에는 '독설'이 부각되면서 불편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독설은 언젠가부터 '직설'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고, 배려한답시고 빙빙 돌려 얘기하는 기존의 토크 방식을 '진정성 없는 것'으로 여겨지게 만들었다. 독설이 직설로 여겨지게 된 건, 물론 김구라만이 갖는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과감한 토크 방식 때문이다. 작금의 토크쇼들의 침체가 전반적으로 게스트를 지나치게 배려하는 토크 방식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볼 때, 김구라식의 화법은 어쩌면 여기에 대한 대안이 될 지도 모른다. 그의 직설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성향이 그렇습니다. 제 성격 중 하나인데, 저는 사람을 만나서 혈액형을 물어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주로 어디 살아요? 이런 현실적인 것에 더 관심이 가죠. 그래서 토크쇼도 현실적인 궁금증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직설적인 이야기들이 나오는 거겠죠. 또 제가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그 이야기가 진짜인지 아닌지 빈틈(?)을 찾기도 하죠. 또 기본적으로 관심이 없는 건 별로 호응을 안 해주는 성격입니다. 처가댁 같은 데 가서도 식구들하고 얘기를 별로 안 해요. 관심이 없는 걸 얘기하니까. 또 예의를 딱딱 차리는 그런 성격도 아니라... 이런 면들이 토크쇼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과감한 독설(?)이 그저 아무렇게나 툭툭 던진다고 먹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사실 우리처럼 '예의'에 민감한 민족도 없으니까. 따라서 어떤 맥락과 상황에 어떤 정도의 수위와 강약 조절을 하느냐는 정말 중요한 지점이 아닐 수 없다.

"독설은 작정하고 하면 안 됩니다. 특히 젊은 친구들은 의욕이 과잉돼서 뭔가 확실한 걸 보여주려고 아무 맥락 없이 강하게 멘트를 날리기도 하는데요, 그럴 경우에는 잘못하면 분위기만 썰렁해질 수 있죠. 연기에서 합이 중요한 것처럼 독설도 그 맥락과 감정 선이 중요합니다. 게스트와의 토크 속에서 감정 선이 쌓여가다가 어느 순간에 터져야 독설은 효과가 있죠. 마치 배우들이 연기할 때 감정 선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때로는 '처음부터 세게 해주세요.' 막 그러시는데 어떻게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독설을 던집니까. 뜬금없이 던지는 건 무리수죠. 또 연예인이 나왔을 때랑 일반인이 나왔을 때랑 상황도 다릅니다. 일반인들 같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측면이 많아지죠. '화성인 바이러스' 같은 걸 하면서 이 부분을 많이 배웠어요. 특이하신 일반인분들이 나오시면 거기다 대고 독설만 던질 수는 없더라구요. 오히려 더 많이 듣고 배려하게 되더군요."

'라디오스타'에서 김구라는 '라스의 서병기(대표적인 대중문화 전문기자)'로 불린다. 박명수가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김구라에게 "당신이 서병기야? 임진모야?" 했던 것에서 비롯된 별칭이다. 이렇게 불리게 된 것은 김구라만의 분석적이고 냉철한 이미지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점에서 보면 이런 태도는 기자와 비슷한 점이 있다. 토크쇼를 하나의 인터뷰로 볼 때, 김구라는 확실히 무언가를 캐내려는 호기심 많은 기자를 닮았다.

"(웃음) 그렇게 불러주시니 너무 좋죠. 분석적인 토크 방식이라고 하시는데 그것보다는 아무래도 비유 같은 걸 많이 쓰고 그래서 붙여진 별칭인 것 같습니다. 제가 비유를 좀 많이 쓰는데요, 예전에 딴지일보 그런 거 할 때 우리가 뭐 정치를 아나요? 만날 룸싸롱 같은 것에 비유하고 그랬죠. 그러다 보니 좀 현실적인 비유들을 하는 게 습관처럼 배인 것 같습니다."

김구라가 실명을 거론하는 것이나 게스트를 직접적으로 몰아세우는 그 바탕에는 그 당사자와 게스트에 대한 진정한 배려가 깔려 있다. 이것은 토크쇼가 어떤 방식으로 게스트를 배려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게스트 좋은 대로 편안하게 두는 그런 배려는 결국 대중들과의 소통을 가로막는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토크쇼의 MC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배려는 게스트와 시청자를 만나게 해주는 것이다. 그것을 연결시키기 위해 과감할 때는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실명 토크를 많이 하는데, 사실 인터넷 방송 할 때는 전부가 실명이었거든요. 뭐 죄진 사람도 아닌데 실명 거론하는 게 그다지 잘못된 것 같진 않아요. 그런데도 왜 실명을 얘기 하냐 뭐라 하시기도 하죠. 하지만 실명 얘기 안하면 재미가 없어요. 또 M본부, S본부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좀 우스워요. 굳이 그럴 필요 있나요? 물론 조금 강하게 실명으로 누군가를 언급하거나, 또 게스트에게 강한 질문을 던지는 건 제 나름의 게스트 배려 방식입니다. 그렇게 주목되게 만드는 거죠. 뭐 신인들은 그런 걸 좋아하지만, 이미 탑에 있는 친구들은 안 좋아하는 경우도 있어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그런 입장 이해해요. 그래서 그런 거 싫어한다는 얘기가 나오면 저도 굳이 그런 얘길 안하게 되죠."

게스트를 배려하는 토크쇼들의 또 한 가지 특징은 '감동'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이다. 그래서 때로는 웃음보다는 눈물이 더 많은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는데, 김구라는 지금껏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여준 일이 없다. 심지어 눈물 짜는 게스트에게 "가지가지 한다"는 독한 멘트를 날려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으니까(여기에는 그만한 당시 상황의 이유가 있었다).

"그 때 강원래씨 나왔을 때 했던 "가지가지 하네"라는 멘트가 무슨 '기념비적인 장면'이라고까지 얘기되기도 했는데요, 사실 그 때 상황은 눈물 흘리는 사람한테 독설을 날린 그런 게 아니었어요. 강원래씨가 갑자기 울지 않아야할 분위기에서 눈물을 흘리게 된 거죠. 그러자 구준엽도 그렇고 전부가 어색해진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렇게 멘트를 던졌더니 강원래씨도 같이 웃고 넘어갈 수 있었죠. 뭐 저보고 방송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고 하시는데,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본래가 눈물이 별로 없어요. 그래도 요즘은 나이 사십을 넘기면서 조금씩 살짝 올라오는 게 있기도 하더군요."

김구라는 유재석에 대해서 "정말 야외에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예능인"이라고 했다. 자신이 아무리 야외에서 열심히 해도 유재석을 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하지만 적어도 스튜디오 안에서만큼은 자신도 어느 정도 자신만의 영역을 세우고 있다고 자부했다. 그것은 실제로도 맞는 이야기이고 우리가 김구라쇼를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요즘 토크쇼에 대한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요즘 토크쇼가 (시청률이) 많이 빠졌죠. 그만큼 대중 분들의 기대치가 높아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올 질문들이 딱 보이는 상황에서 재미있는 답변이 나오기는 어렵겠죠. 해외의 토크쇼들은 좀 더 직접적이고 흥미진진한 얘기를 해야 되는 그런 분위기가 있어요. 우리도 그런 쪽으로 점점 흐름이 가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구라는 생각했던 것과 달리 부드러운 이미지와 날카롭고 이지적인 이미지를 동시에 갖고 있었다. 적어도 이런 캐릭터가 하는 토크쇼라면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진정한 게스트와 시청자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갔다. 이제 달라진 예능 환경과 대중들의 화법에 대한 욕망은 김구라라는 캐릭터를 점점 무르익게 만들고 있다. 이것이 아마도 많은 대중들이 김구라쇼를 기대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라디오스타', 누가 나와도 되는 이유

'라디오스타'(사진출처:MBC)

현재 토크쇼는 '게스트쇼'가 되었다. 게스트로 누가 나오느냐에 따라 재미의 편차도 크고, 시청률의 등락 폭도 크다. '힐링캠프'는 박근혜, 문재인이 나왔을 때만 해도 시청률이 급상승했지만 이민정, 이동국, 최민식이 나왔을 때는 다시 시청률이 뚝 떨어졌다. 그러다 최근 차인표가 나오자 다시 시청률이 반등했다. 이런 사정은 '놀러와'나 '승승장구'도 마찬가지다. '놀러와'는 '세시봉' 이후로 끊임없는 추락을 경험했는데 '기인열전'을 했을 때 잠깐 반등했을 뿐이었다. '승승장구' 역시 MC스페셜로 '이수근편'을 했을 때의 주목도와 다른 게스트들의 주목도 차이는 크게 나타났다. 결국 현재의 토크쇼들의 성패는 거의 대부분 '섭외'가 관건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된 것은 토크쇼들이 일제히 '게스트 중심'으로 선회했기 때문이다. 약간의 방식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현재의 토크쇼들은 '게스트를 편안하게 모시는' 분위기다. 그러니 게스트 자체의 힘에 의존할 수밖에. 차인표처럼 웃음과 감동, 의외의 발견까지 해줄 수 있는 예능의 블루오션 게스트가 등장할 때와 그렇지 않은 보통의 게스트가 나왔을 때는 편차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게스트에 따른 편차가 없는 토크쇼도 있다. 바로 '라디오스타'다. '라디오스타'는 이제 누가 나와도 '재미있는' 토크쇼로 자리했다. 그 비결은 게스트가 아니라 호스트, 즉 MC들에 있다.

'라디오스타'를 보는 재미는 게스트들의 인생역정이나 특이한 이야기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MC들이 게스트로부터 어떻게 토크 어장(?)을 발견하고 그것을 콕콕 찍어서 끄집어내는가 하는 그 과정에서 나온다. 김진아, 임성민, BMK처럼 그다지 핫(hot)하게 여겨지지 않는 게스트들이 나왔을 때 김구라가 던진 첫마디는 "홍보할 게 없는 분들이기 때문에 사심 없는 방송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여타의 토크쇼들과 비교해보면 발상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홍보 포인트가 없는 이들에게서 더 과감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다는 것.

외국인과 결혼했다는 그 하나의 공통점으로 묶여 출연한 이들에게 처음 만났던 이야기와 문화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하나 둘 끌어내면서 MC들은 끊임없이 거기에 토를 달고 살을 붙인다. 김진아가 출연했던 '수렁에서 건진 내 딸'을 소개할 때 뒤에서 유세윤이 지나가는 소리로 "귀한 딸이네요."라고 덧붙이는 것으로 빵 터트리고, 엉뚱하게도 블랙호크를 몰았던 BMK의 남편에게 직업을 알선해준다며 헬기를 잘 안다는 고영욱에게 물어보겠다는 식으로 웃음을 만들어낸다.

'라디오스타'에서는 일반 토크쇼에서는 통상적인 소개에 그치는 이름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김구라는 김진아씨의 이태리식 남편 이름을 아는 척 하다가 틀리자 "희성이시네요"라고 덧붙이고, 임성민 남편의 미들 네임이 안소니라고 하자 뜬금없이 "보수적이시네요"라고 툭 던진다. 그러자 주워 먹는 토크의 달인인 윤종신이 나서서 "개방적인 이름은 소니"라고 덧붙인다. 여기에 유세윤도 "남편의 성을 붙여 성민 엉거라고 부르냐"고 한 숟가락을 얹는 식이다. 즉 이 기묘한 토크쇼는 게스트들의 이야기만으로 흘러가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끊임없이 추임새를 붙이고 엉뚱한 해석을 하고 이야기에 상상력을 덧붙이는 식으로 전혀 다른 이야기 흐름을 만들어낸다.

이 '삼천포 토크(?)'가 갖는 매력은 토크의 내용이 아니라 그 엄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토크 속에서 드러나는 게스트의 반응에서 나온다. 심지어 사실과 다른 이야기로 비화되고 과장되지만, 그것을 웃음으로 받아주고 농담으로 받아치는 과정에서 게스트들의 몰랐던 매력이 끄집어내진다는 얘기다. 다른 토크쇼에도 여러 번 나왔던 이준이 유독 '라디오스타'에 나와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삼천포 토크' 속에서 그만의 엉뚱한 매력이 자연스럽게 뽑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이런 점으로 보면 기존의 '게스트 중심 토크쇼'들은 게스트들의 삶과 이야기를 소비하는 것으로 동력을 얻는 반면, '라디오스타'는 오히려 이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생산하는 것으로 동력을 얻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게스트 편차와 상관없이 누가 나와도 된다는 얘기다.

어찌 보면 토크쇼는 그저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야기의 내용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즐거운 분위기 즉 형식이다. '라디오스타'는 물론 내용을 갖고 접근하지만, 그 내용 바깥으로 끊임없이 빠져나가려는 MC들의 '삼천포 토크'에 의해 내용 그 이상의 것을 포착하는 토크쇼다. 이 놀라운 토크쇼가 그 어떤 게스트가 나와도, 아니 심지어 홍보 포인트가 없는 게스트일수록 더 재미를 주는 이유는, 그 토크의 주도권이 온전히 MC들에 의해 쥐여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라디오스타'를 통해 어떤 게스트들의 인생역정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오히려 MC들이 그 게스트들을 갖고 어떤 '삼천포 토크'를 할 것인가를 궁금해 한다. 바로 이 점이 거의 유일하게 게스트에 좌우되지 않는 '라디오스타'를 만드는 가장 큰 힘이다.


'라디오스타', 이런 빨대 같은 예능이 있나

'라디오스타'(사진출처:MBC)

연기돌 특집으로 임시완, 유이, 제이, 이준을 게스트로 초대한 '라디오스타'는 먼저 유이에게 애프터스쿨에서의 포지션을 물어보는 것으로 그 포문을 열었다. 가수로서 노래가 포지션이 아닌 유이가 재치있게 "자신의 위치는 포스트"라고 말하자 유세윤은 이것을 "유이는 애프터스쿨의 채치수"라는 말로 받아 넘겼다. 게스트에게 시작부터 툭 치고 들어가는 이런 공격적인 토크 방식은 '라디오스타'만이 가진 일종의 신고식인 셈이다. 윤종신은 이제 군대에 간다는 트랙스의 제이에게 "첫 등장인데 고별방송"이라고 툭 치고 들어갔고, 김구라는 이준에게 아예 노골적으로 "엠블랙보다 비스트가 낫다"고 특유의 직설어법으로 상대를 당황하게 했다.

'라디오스타' 특유의 공격적인 어법은 그러나 이 프로그램만이 가진 게스트 배려방식이다. 이것은 여러모로 김구라가 툭하면 양배추를 들먹이는 방식 그대로다. 겉으로 보기엔 독설처럼 여겨지지만 그럼으로써 상대를 주목받게 만든다. 단 게스트가 공격을 넘어서 주목을 받으려면 조건이 하나 있다. 이 공격적인 흐름을 잘 타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받아치고 인정하고 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지금까지 봐왔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게스트의 면모가 발견될 수밖에 없다. 이준이 갑자기 주목받게 된 것은 그 때문이다.

이준은 요즘 '해를 품은 달'로 최고로 잘나간다는 제국의 아이들의 임시완과 비교되면서 오히려 이 토크쇼의 중심으로 조금씩 자리했다. MC들은 심지어 가리마가 정반대라는 것까지 짚어서 임시완과 이준이 가는 길이 반대라고 몰아붙였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공격에 이준은 반박하기보다는 순순히 상황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자세를 견지했다. 솔직히 비스트가 엠블랙보다 더 잘 나간다고 수긍하는 한편, '닌자어쌔신'에 캐스팅될 때 영어를 못해 겪은 굴욕 에피소드로 웃음을 주기도 했다. 그러자 MC들은 유이와 제이에게 연기돌로서 했던 연기를 선보이라며 그 받아주는 역할로 이준을 지목했다. 심심할 수 있었던 연기 재연 장면은 이준을 세움으로써 빵빵 터지는 큰 웃음의 소재가 되었다.

이준은 '꽃보다 남자' 캐스팅이 유력했지만 할 수 없었던 이유로 당시 '닌자 어쌔신'에서 머리를 박박 밀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이 안타까운 사연 역시 '탈모F4'는 어떠냐고 묻는 김구라에 의해 웃음으로 바뀌었다. 이준은 이런 상황에 맞춰 자신만의 독특한 예능감을 드러냈다. 스스로 돈을 아낀다는 그에게 "가장 돈을 많이 쓰는데"가 "이온음료를 살 때"라고 말하는 한편, 한예종 무용과에 입학할 정도로 있어 보이지만 '아침 조 뛸 깅'으로 조깅의 뜻을 알 정도로 무식하다고 몰아세워졌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불쾌해하기는커녕 이준은 거꾸로 무식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듯 돌발 퀴즈를 내서(오히려 무식이 탄로 나는 것이었지만) 좌중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

"이를 잘 닦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다"는 얘기에 "맡아 보세요"라고 말하고, 소속사에 대한 불만에 "올드보이처럼 만날 김치볶음밥만 사준다"며 "미각을 잃었다"고 얘기하며, 스스럼없이 자신을 '벗는 담당'이라 밝히며 생방송 중 '흉점 노출'로 겪었던 에피소드를 천연덕스럽게 던지는 이준은 그래서 '라디오스타'를 통해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내 주었다. 어찌 보면 MC들의 집중공격으로 너덜너덜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으로써 이준은 훨씬 예능감 넘치고 심지어 여유까지 있어 보이는 예능돌로 거듭날 수 있었다. "말만 하면 팬들이 떨어진다"는 MC의 지적에도 선선히 그걸 인정하면서 "하지만 말을 줄일 생각은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줬으면 합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이준의 솔직한 매력까지 드러났다.

이로써 '라디오스타'의 연기돌 특집으로 기획된 이 프로그램은 의외로 이준이라는 예능돌의 발견이 되었다. 게스트에게 뭐든 콕콕 찔러서 빼먹을 건 다 빼먹는 '라디오스타'만의 토크 방식은 그 상황에 잘 적응하고 겪어내기만 한다면 '재발견'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이준이라는 예능돌의 탄생을 통해 보여준 셈이다. 프로그램 말미에 이르러서도 '라디오스타'의 '빨대 토크'는 계속 이어진다. 이준에게 "김종민 같다"고 하고는, 앞으로 '백지돌' 특집을 하자고 말한다. 시크릿의 한선화랑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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