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의 디바>로 우영우를 잇는 응원을 선사한 박은빈

무인도의 디바

“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해내야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늦깎이 바이올리니스트 역할을 연기하게 되면서 유튜브에 올린 ‘바이올린 연습일지’에서 박은빈은 전공생 수준의 바이올린 연주를 연기해내야 하는 고충을 이야기하며 그렇게 말한 바 있다. 몇 개월 동안의 짧은 기간 동안 쉬지 않고 바이올린 연습을 해 놀라울 정도의 연주를 보여준 그 영상에서 툭 튀어나온 이 말은 배우 박은빈의 명대사가 되었다. 그건 매번 도전적인 연기에 임하는 박은빈의 마음가짐을 그대로 대변하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무인도의 디바>에서도 박은빈은 극중 가수로 성장해나가는 서목하를 연기하며 등장하는 노래들을 직접 모두 불렀다. 그 노래들(모두 11곡)은 OST에 담겨져 음반으로 출시됐는데(1월5일 발매), 이를 위해 박은빈은 6개월 간 3시간씩 43번의 레슨을 받았다고 한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역할에 맞게 기타도 배우고, 노래 발성 연습도 했다. 또 녹음실에서 적게는 4시간에서 많게는 10시간까지 녹음을 하며 음반 작업을 했다고 한다. 배우지만 거의 가수 데뷔 같은 도전적인 노력을 했던 거였다. 아마도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박은빈은 역시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해내야죠.

 

그런데 이 말에는 지금 현실을 살아가는 청춘들에 대한 공감과 응원이 담겨있다. 즉 너무나 버거운 현실이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는 청춘들에게 그 힘겨움에 대한 공감을 전하면서도, 동시에 포기하지 않으면 해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 5살 때 아동복 모델로 시작해 연기를 하게 된 후 지금껏 쉬지 않고 그 길을 걸어온 박은빈이 그 실제 사례가 되는 셈이다. 그녀는 매번 도전 아닌 연기가 없었을 정도로 쉽지 않은 역할을 하나하나 해내면서 결국 백상예술대상 대상에 빛나는 최고의 위치까지 오르게 되지 않았던가. 

 

<청춘시대>에서는 차분하고 단단한 자신의 모습과는 완전히 상반된 음주가무, 음담패설에 능수능란한 역할에 도전했고, <스토브리그>에서는 속이 뻥 뚫리는 걸크러시를 보여주는 주도적인 프로야구 프런트 오피스 유일의 여성 운영팀장 역할을 소화했다. 그러더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는 이 두 캐릭터와는 또 완전히 다른 청순하고 내셩적이며 수줍음 많은 늦깎이 대학생 역할로 변신했다. 하지만 그건 끝이 아니고 이제 활짝 피어난 박은빈의 시작이었다. <연모>에서는 역사적 사실 때문에 남자배우가 연기할 수밖에 없는 사극의 왕 역할을 연기했는데, 그건 액션부터 정치, 로맨스까지 넘나들어야 하는 난관을 넘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박은빈은 이제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라는 또 다른 산을 넘는다.

 

그런데 이들 작품 속 캐릭터들을 관통하는 것이 있다. 바로 위로와 응원이다. <청춘시대>에서 어디로 튀어도 청춘은 아름답다고 캐릭터 자체로 말해준 송지원이 그렇고, <스토브리그>에서 위태로운 야구단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백승수(남궁민) 단장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이세영이 그러했으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평범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청춘들을 지지한다고 온몸으로 말해주는 듯한 채송아가 그랬다. 또 박은빈은 <연모>에서 여성이라는 정체를 숨긴 채 피 튀기는 궁중 생존기를 겪는 이휘를 통해 차별적인 삶을 살아가는 현대여성들을 응원했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장애를 갖고 있지만 변호사로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는 우영우를 통해 편견 없는 세상을 지지했다.

 

그래서였을까. <무인도의 디바>의 서목하는 극중 캐릭터이면서 동시에 ‘위로와 응원의 아이콘’으로서 박은빈 자체로 보이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한 때는 디바로 불렸지만 지금은 한물 간 기성가수가 되어 자포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윤란주(김효진)에게 서목하가 던지는 무한 응원이 그렇다. “시상에 언니 팬이 딱 하나 남았다고 하믄, 언니, 응? 그것은 서목하고요. 언니 팬이 없다고 하믄 그것은 이 서목하가 세상에 없어져 붓다 치면 돼요, 언니. 언니, 지는요 언니. 언니를 위한 것은 뭣이든 해요, 언니. 어 풍선 그깠거 불라믄 천 개, 만 개도 불어요, 언니. 일도 아니어요, 언니. 그니까요 언니 응? 힘내 불어요잉.” 그 말은 마치 저마다 힘겨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서민들에 대한 응원처럼 들렸다. 박은빈은 그렇게 서목하의 목소리를 빌어 우리를 위로하고 응원하고 있었다. 

 

실로 박은빈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로 2020 SBS 연기대상 최우수상을 받았을 때 자신이 연기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힌 바 있다. “극중 송아가 ‘음악을 하기로 선택했으니까 음악이 우리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고 믿어야 하지 않을까요?’라는 대사는 했는데요. 저도 배우가 되기를 선택했으니까 제가 선택한 작품이 그리고 제가 하고 있는 일이 누군가에 위안이 되고,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연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백상 예술 대상 대상을 받았을 때도 그의 수상소감에는 세상의 많은 다양하고 다른 존재들에 대한 응원의 목소리가 실렸다.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있고 아름답습니다. 라는 대사였는데요. 영우를 통해 이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서 너무 기뻤습니다. 나는 알아도 남들은 모르는, 또 남들은 알지만 나는 알지 못하는 그런 이상하고 별난 구석들을 영우가 가치있고 아름답게 생각하라고 얘기해주는 것 같아서 많이 배웠습니다.”  

 

도전적이고 경쟁적인 세상이다. 최후의 1인이 모든 걸 독식하는 현실 속에서 무수히 많은 소외되는 이들이 생겨난다. 그래서 누군가의 응원이 절실해진다. 당신은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고, 힘겹지만 결국은 해낼 거라는 응원. 박은빈은 자신 또한 결코 쉽지 않았지만 결국은 해냈던 여러 역할들의 목소리를 빌어 우리를 응원한다. 그만큼 진정성이 담겨 있기에 그 역할의 대사들은 더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그녀는 이것이 배우로서 해야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그건 마치 <무인도의 디바>에서 변함없는 응원을 받았던 윤란주가 서목하에게 갖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 “나 아닌 누군가를 온전히 응원하는 건 정말 어려워. 아무 대가 없이 질투 없이 남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뻐해주는 건 더 어렵고. 그게 목하 니가 대단한 이유야.” 우리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박은빈처럼. (글:국방일보, 사진:tvN)

최근 이상한 변호사들 때문에 기대감 급상승한 ‘스토브리그2’

스토브리그

“백씨가 한 둘이에요? 백종원. 백지영. 백윤식... 백승수.” SBS 금토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에서 법무법인 백을 찾은 천지훈(남궁민)이 그 법인명이 하필 ‘백’이라는 걸 들어 백마리(김지은) 변호사가 그 곳과 관련이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자, 백마리는 백씨가 한 둘이냐며 그렇게 대꾸한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등장한 ‘백승수’라는 이름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스토브리그>의 주인공 백승수 단장(남궁민)을 말하는 것. 남궁민이 연기한 인물이지만 그는 모르는 척 능청을 부리며 말한다. “아 백승수가 있었구나? <스토브리그> 봤어요? 아 그거 되게 재밌었는데 왜 시즌2 안 나오나 몰라.”

 

아마도 <스토브리그>를 봤던 팬이라면, 그래서 그 드라마 때문에 남궁민과 박은빈의 팬이 됐던 분들이라면 이 드라마가 슬쩍 유머를 넣어 던지는 이 대사에 반색했을 게다. 최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드디어 배우로서의 가치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박은빈에, <오늘의 웹툰>으로 주춤했던 SBS 금토드라마를 등판과 함께 반등시켜버린 <천원짜리 변호사>의 남궁민이 함께 했던 드라마. 이쯤 되면 시즌2를 안하는 게 이상해져버린 <스토브리그2>가 아닌가. 

 

공교롭게도 박은빈과 남궁민 모두 최근작 배역이 변호사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게다가 그 변호사가 어딘가 ‘이상한 변호사’라는 것도 비슷하고, 무엇보다 약자인 서민들편에 서서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인물들이라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진짜 공통점은 이 두 배우가 그려가고 있는 연기 스펙트럼의 무한 확장이다. 

 

남궁민은 <김과장>의 김과장 같은 코믹한 캐릭터는 물론이고, <닥터 프리즈너>의 나이제, <낮과 밤>의 도정우, <검은 태양>의 한지혁 같은 누아르에 가까운 무게감이 느껴지는 캐릭터, <스토브리그> 같은 이지적인 캐릭터까지 그 연기의 영역을 한껏 넓혀온 배우다. 마찬가지로 박은빈도 최근 <청춘시대>의 송지원 같은 보이시한 청춘은 물론이고, <스토브리그>의 이세영 같은 당찬 오피스우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채송아 같은 내성적이고 감성적인 청춘, <연모>의 이휘 같은 사극 속 남장여자를 거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자폐스펙트럼 연기까지 소화했다. 이러니 이들의 연기 성장은 K드라마의 성장과 맞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물론 <스토브리그> 시즌2는 시즌1이 워낙 다양한 소재들을 다뤄 쉽지는 않다고 여겨진다. 이신화 작가의 입봉작이지만 이 작가는 이 작품을 꽤 오래도록 준비했던 걸로 알려져 있다. 스스로 야구 마니아인지라 깊숙이 그 세계를 취재하고 이야기가 될 만한 것들을 시즌1에 충분히 채워넣은 것. 그러니 시즌2는 기대감이 높아지는 만큼 부담감도 커지는 작업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팬들도 그렇고 작가 스스로도 시즌2의 가능성을 얘기한 바 있어 <스토브리그2>는 여전히 기대할만한 여지가 남아있다. 사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배우들이다. 대부분 시즌2가 어려워지는 건 시즌1의 배우들이 스케줄이나 출연료 문제로 계속 시즌2로 작품을 이어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남궁민이 <천원짜리 변호사>의 천지훈의 목소리를 빌어 <스토브리그2>에 대한 기대감을 얘기한 부분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주인공 역할의 남궁민은 이 작품에 호의적인 마음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박은빈도 마찬가지다. 최근 연예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박은빈은 물론 “아직 불확실한 게 많다”고 전제하면서도 <스토브리그2>를 기다린다는 마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 그리고 이것이 거기 출연했던 배우들 대부분의 염원이라고도 밝혔다. 일단 적어도 시즌2 제작에 가장 중요할 수 있는 배우들의 의향은 어느 정도 확인된 셈이다. 

 

최근 들어 시즌제가 점점 시청자들에게도 익숙해져가고, 그래서 시즌2의 성공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는 추세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성공으로 박은빈이 미국비평가협회가 선정한 라이징스타상을 받는 등 K콘텐츠의 성공이 글로벌로 바로 이어지는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니 이러한 시기에 박은빈과 남궁민이 다시 한 자리에 설 수 있는 <스토브리그2>의 시도는 충분히 의미 있는 도전이 되지 않을까. 최근 이 두 사람이 연기한 이상한 변호사들 때문에 기대감이 급상승한 <스토브리그2>. 이쯤 되면 안하는 게 이제 이상한 상황이 됐다. (사진:SBS)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진짜 장애는 문제의식이 없는 것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른바 ‘우영우’ 신드롬이다. 여기저기서 ‘우영우’라는 이름 석 자가 회자된다.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벌이고 있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만평에도 등장하고, 이른바 윤석열 정부의 법치에는 ‘마음’이 없다(경향신문)는 칼럼에도 등장한다. 드라마 속에 나왔던 소덕동 팽나무인 수령 500년의 창원 북부리 팽나무가 실제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우영우가 푹 빠져 있는 고래에 대한 갑작스런 관심도 쏟아져 나온다. 

 

ENA 수목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신드롬은 너무나 갑작스럽다. 물론 작품은 더할 나위 없이 완성도가 높다. 그래서 0%대로 시작했던 드라마가 무려 13%(닐슨 코리아)까지 수직상승하고, ENA라는 낮선 채널의 인지도 또한 급부상시켰다는 건 어느 정도 공감 가는 일이다. 좋은 콘텐츠가 만들어내는 파급효과는 늘 있어왔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우영우’가 동시다발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건 작품 내적인 요인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외적 요인이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 요인 또한 다양하겠지만 필자가 특히 주목하는 건 우영우(박은빈)라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캐릭터만큼, 그와 함께 로펌에서 일을 하는 최수연(하윤경) 같은 동료와 정명석(강기영) 같은 상사가 주는 메시지의 힘이다. 

 

사실 지나치게 이상화된 메시지는 현실성을 잃고 스토리를 너무 판타지로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정명석 같은 인물은 장애를 가진 우영우를 로펌에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어려운 현실을 들어 반대한다. 제 아무리 로스쿨 수석 졸업을 했어도 의뢰인도 만나고 변호도 해야 하는 변호사가 사회성도, 언변도 필요하다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건 편견일 수 있지만 어찌 보면 직장 상사로서의 현실을 얘기한 것이기도 하다. 물론 그 역시 장애에 대한 편견이 있다. 하지만 그건 직접 우영우 같은 인물을 겪어보지 않아서 생긴 편견일 뿐이다. 흥미로운 대목은 정명석은 적어도 문제의식을 늘 갖고 있고, 겪어본 후 무언가 잘못됐다고 여기면 바로바로 사과하고 고쳐나갈 수 있는 여지를 열어 놓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첫 회에 우영우가 피고인 피해자를 만나러갈 때 “그냥 보통 변호사들한테도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가 금세 그 말이 잘못됐다는 걸 인지하고 “미안해요. 그냥 보통 변호사라는 말은 좀 실례인 거 같다”고 말하는 인물. 

 

그저 올바르게 살아가는 법을 알고 장애가 아니라도 타인을 배려하는 모습으로 우영우를 대하는 최수연이 특히 감동적인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 인물 역시 드라마는 지나치게 이상화된 판타지로 그리지 않는다. 대신 그는 어찌 보면 함께 사는 사회에서 우리가 선택해야할 당연한 삶을 살아가는 그런 인물로 그려진다. 다만 그 삶이 타인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가를 우영우는 절감한다. 그래서 우영우가 그의 목소리로 이 평범하고 상식적으로 보이지만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삶’의 가치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감동받을 수밖에 없다. 

 

“너는 나한테 강의실의 위치와 휴강 정보와 바뀐 시험범위를 알려주고, 동기들이 날 놀리거나 속이거나 따돌리지 못하게 하려고 노력해. 지금도 너는 내 물병을 열어주고 다음에 구내식당에 또 김밥이 나오면 나한테 알려주겠다고 해. 너는 밝고 따뜻하고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야. ‘봄날의 햇살 최수연’이야.” 함께 사는 법이 대단한 어떤 것이 아니라, 작은 일이라도 다정하게 대하는 것이라는 걸 우영우는 최수연이라는 인물을 통해 이야기해준다. 

 

경쟁자의 위치에 서서 ‘권모술수’를 쓰기도 하는 권민우(주종혁)가 사내 게시판에 우영우가 사실상 ‘부정 취업’을 했다고 올리고 그래서 사내 직원들이 수군거리며 심지어 우영우 자신 역시 그걸 인정하자 최수연이 하는 일갈은 우리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다. “서울대 로스쿨에서 성적 좋은 애들은 다 대형로펌으로 인턴 나가서 졸업 전에 입사 확정 받아. 근데 너만 정작 학교에서 맨날 1등 하던 너만 아무 데도 못 갔어. 그게 불공평하다는 거 다들 알았지만 그냥 자기 일 아니니까 모르는 척 가만있었을 뿐이야. 나도 그랬고.” 

 

최수연은 그런 입바른 소리를 하면서도 그런 차별에 자신도 동참했다는 사실 또한 빼놓지 않는다. 하지만 우영우 역시 늘 당연하게 이런 차별을 받아와 문제의식을 잘 느끼지 못한다. “아무래도 내가 장애가 있으니까...”라고 말한다. 그러자 최수연의 일갈이 또 한 방 뒤통수를 때린다. “장애인 차별은 법으로 금지 돼 있어. 네 성적으로 아무 데도 못 가는 게 차별이고 부정이고 비리야. 무슨 수로 왔든 늦게라도 입사를 한 게 당연한 거라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의 이야기로 ‘장애’를 소재로 가져왔지만 그 이야기가 자폐라는 특정한 질환만을 다루는데 머물러 있지 않다. 최수연이 말하듯 진짜 장애는 우영우를 둘러싼 편견 가득한 세상이 갖고 있다. 장애인의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벌이고 있는 지하철 시위에 ‘자기 일 아니니까 모르는 척 가만’ 있고 나아가 나의 불편함만을 호소하는 세상이 그렇고, 법에 호소하는 다양한 서민들의 마음을 읽지 않고 법대로만 하겠다 말하는 마음 따윈 들여다보지 않는 세상이 그렇다. 

 

대단한 각성과 날카로운 세상 인식 같은 게 필요한 게 아니다. 정명석처럼 몰라서 편견을 갖고 있었다면 알았을 때는 이를 고치려는 마음이 있으면 되는 일이고, 최수연처럼 장애와 비장애 같은 경계를 차치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해 타인을 배려하고 나서는 지극히 상식적인 삶이면 되는 일이다. 그게 그리 어려운 일인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그래서 우영우라는 인물을 리트머스지를 내세워 ‘이상한 우리 사회’를 비춰주고 있다. 신드롬이 생겨난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사진: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가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 우영우(박은빈)가 법무법인 한바다에 입사해 갖가지 변호를 맡으며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드라마다. 자폐라고 하면 과연 사회생활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부터 하게 되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면 그것이 어려울 수는 있어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우영우는 자폐지만, 다른 변호사들은 보지 못하는 부분들을 들여다보는 새로운 시선이나 접근방식으로 소송을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능력을 보여준다. 

 

물론 우영우라는 인물이 모든 자폐 장애를 가진 이들을 대표한다고 보긴 어렵다.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을 갖고 있는 이들 중 극히 일부인 서번트 증후군을 갖고 있는 인물이고 그래서 천재적인 기억력의 소유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굿닥터> 같은 드라마나 <그것만이 내 세상> 같은 영화가 그렇듯이,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인물들을 주로 주인공으로 삼는 콘텐츠들이 자폐를 너무 그런 이미지로만 그려내는 건 우려되는 지점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그래도 작품 안에 자폐인이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을 주인공의 목소리를 빌어 전하는 노력도 빼놓지 않고 있다. “자폐의 공식적인 진단명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입니다. 스펙트럼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자폐인은 천차만별입니다” 같은 대사가 그 사례다. 

 

중요한 건 이 드라마가 자폐 스펙트럼 같은 장애를 가진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우영우는 서울대 로스쿨 수석졸업에 변호사 시험 성적 천오백 점 이상을 받은 인재지만 자폐 스펙트럼이 있다는 이유로 로펌들로부터 입사를 거부당한다. 이것이 실제 현실일 터였다. 하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드라마로서의 판타지를 통한 어떤 새로운 비전을 선택한다. 모두가 받아주지 않은 우영우를 법무법인 한바다가 받아준 것. 아마도 한바다가 아니었으면 자폐를 갖고는 있지만 그 잠재력은 거의 고래만큼 거대한 우영우라는 변호사는 작은 수족관에서 ‘보호’라는 미명하에 갇혀 아무도 모르는 생애를 버텨내야 했을 게다. 드라마는 이러한 자폐를 가진 우영우가 가진 꿈과 희망을 거대한 대양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고래로 은유해 그려낸다. 그러고 보면 고래는 바다에서 살아가는 포유류라는 다소 이질적인 존재다. 한바다로 대변되는 세상은 과연 우영우라는 고래를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게 해줄까. 

 

장애는 불편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집이나 요양원 같은 세상과 유리된 곳에서 그들끼리 버텨내야 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하지만 생산성의 관점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고, 장애를 가진 이들을 세상에서 밀어내며 마치 그런 존재는 없는 것처럼 치부하는 사회는 어떨까. 그런 사회 자체가 장애를 가진 사회가 아닐까. 

 

돌봄 노동의 관점으로 보면 우영우의 부모에게서는 우리 사회가 장애 같은 돌봄의 대상을 바라보는 양극단의 관점이 엿보인다. 즉 우영우가 이렇게 잘 자랄 수 있게 해준 건 늘 옆에서 든든하게 챙겨주고 세상에도 나갈 수 있게 해준 아버지 우광호(전배수)의 돌봄이 존재했다. 하짐나 다른 한편으로 우영우의 엄마는 우영우를 버렸다. 아마도 잘 나가는 로펌의 대표일 것으로 추정되는 우영우의 엄마는 왜 그를 버렸을까. 거기에는 마치 그런 존재 자체가 없는 것처럼 치부하고픈 우리 사회의 장애나 돌봄을 바라보는 관점이 투영되어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장애를 가진 이들이 세상과 유리된 곳이 아닌 사회 속에서 그 구성원이 되어 함께 살아갈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역시 가장 중요한 건 편견 없는 시선이다. 장애가 함께 생활하는데 있어 불편한 일들을 만드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무능력하다거나 함께 지낼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시선이 그것이다. 우영우를 법무법인 한바다로 받아들인 한선영(백지원) 대표가 그 편견을 버리고 우영우의 길을 열어줬다면, 그와 동고동락해야 하는 정명석(강기영) 같은 상사는 갖고 있던 편견을 함께 생활하며 조금씩 바꿔 나간다. 그는 “그냥 보통 변호사들한테도 어려운 일이야”라고 이야기했다가 “하, 미안해요. 그냥 보통 변호사라는 말은 좀 시례인 거 같다”고 사과할 줄 아는 인물로 그려진다. 물론 우영우 옆에는 늘 곁을 챙겨주는 우광호 같은 아버지도 있고 둘도 없는 절친 동그라미(주현영) 같은 친구도 있다. 물론 같은 신입 변호사로서 사내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권민우(주종혁) 같은 인물도 있지만, 최수연(하윤경)처럼 로스쿨 때부터 따뜻하게 우영우를 배려해주고 도왔던 인물도 있다. 장애를 가졌지만 우영우가 세상 밖으로 나와 이렇게 사회생활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건 이러한 주변 인물들의 편견 없는(적어도 편견을 깨닫고 바꾸려는) 시선들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질문하게 된다. 과연 진짜 장애란 무엇인가. 우리의 삶 자체가 누군가의 ‘돌봄’으로 시작해 ‘돌봄’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장애요소를 갖고 있다는 걸 떠올려 보면 마치 그건 남의 일이며 내게는 벌어지지 않을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활동하고 경제생활을 하는 이들(혹은 시기)만을 정상으로 바라보고 그 바깥을 비정상 혹은 아예 없는 것처럼 치부하는 사회야말로 장애를 가진 사회가 아닐까. 

 

한때 시선 안에 두는 것조차 불편해하며 시선 바깥으로 밀려났던 장애를 포함한 모든 ‘돌봄의 대상’들이 이제 우리의 시선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블루스>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게 된 다운증후군 배우 정은혜가 그렇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그리고 있는 우영우라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캐릭터가 그렇다. 이들과 눈을 맞추고 편견 없이 바라봐주며 마음도 나눌 수 있는 장애 없는 사회가 되길 기대한다. 물론 쉬운 현실은 아니지만, 장애란 결국 우리 모두가 한번쯤은 겪을 수밖에 없는 불편함일 뿐, 우리 삶의 한 부분이라는 걸 이제는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글:이데일리, 사진: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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