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이네2’로 돌아온 이서진의 곰탕 같은 매력

서진이네2

“곰탕집 하나 할까봐요.” 10년 전 정선에서 처음 tvN 예능 ‘삼시세끼’가 문을 열었을 때 자급자족을 해먹으라는 제작진의 요구에 이서진은 커다란 솥단지에 소꼬리와 뼈를 넣어 오래도록 끓여낸 곰탕을 만들었다. 손님으로 찾아와 그 맛을 본 신구, 백일섭 할배들이 유명한 곰탕집보다 낫다는 평가를 내놓자 이서진은 특유의 보조개로 환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은 10년 후 현실이 됐다. ‘서진이네2’로 아이슬란드에서 열게 된 한식점 ‘서진뚝배기’의 메인 요리가 바로 이서진이 끓여내는 꼬리곰탕이 됐기 때문이다. 나라 이름만 들어도 한기가 느껴지는 아이슬란드와 뜨끈한 우리의 정이 느껴지는 꼬리곰탕의 만남. 그 사이에는 10년의 세월을 거쳐 진국으로 우러난 이서진이라는 인물이 서 있다. 배우지만 나영석 PD와 만나 예능에서도 일가를 이룬 오래도록 끓여 굳이 뭘 넣지 않아도 그 자체로 맛을 내는 곰탕 같은 매력의 소유자가 바로 그다. 

 

나와는 오랜 인연이 있는 나영석 PD가 처음 ‘삼시세끼’를 찍고 막 돌아왔을 때 했던 이야기가 있다. 그는 대뜸 “이번에는 진짜 망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제목을 ‘삼시세끼’라 짓고 정말 하루 세 끼 챙겨먹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미션도 없는 예능을 시도했는데, 진짜로 출연자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더란다. 그런데 이러한 우려와는 정반대로 ‘삼시세끼’는 대박을 냈다. 그건 당시 이미 미션 같은 인위적 설정에 물린 시청자들이 더 리얼한 걸 요구하기 시작했던 변화와 맞물린 덕분이기도 했지만, 그 아무 것도 하지 않는데도 계속 보게 만드는 매력의 소유자 이서진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영석 PD는 이서진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방송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진짜로 다 해요.”

 

이런 모습은 ‘서진이네2’의 출연자들이 처음 아이슬란드에 내려 차를 타고 서진뚝배기를 향해 가는 길에서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서진과는 상반되게 대놓고 방송 분량을 만들겠다고 나서며 흐린 날씨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지만 “와 멋있다 진짜”라고 일부러 말하는 최우식에게 단박에 “거짓말 하지 마”라고 웃으며 선을 긋는 모습이 그것이다. 그의 이런 진솔한 모습은 일찍이 ‘1박2일’ 시절부터 나영석 PD의 눈에 들어왔고, ‘꽃보다 할배’의 짐꾼을 거치면서 요리왕을 꿈꾸던 것이 ‘삼시세끼’로 또 이어졌다. 그리고 ‘윤식당’과 ‘윤스테이’를 거쳐 ‘서진이네’로 성장했다. 나영석 PD가 일부러 그렇게 한 건 아니지만, 이 과정을 보면 마치 이서진이라는 인물의 자수성가 성장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처음에는 그저 할배들 밥을 챙기다가 해외와 국내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식당 경영을 해보더니 드디어 해외에 자기 한식당을 열게 된 사장이랄까. 

 

‘서진이네2’에서도 오랜 시간을 거쳐 매력적인 캐릭터로 자리잡은 이서진의 겉은 차갑지만 속은 따뜻한 면모들이 돋보인다. 매일 메인셰프를 정해 운영하겠다는 새로운 방침에 따라 누구를 첫 날 세울 것인가를 고민하던 이서진은 최우식을 스타트로 세우면서 그 이유로 분명 첫날은 손님이 별로 없을 거라는 합리적인 추론을 내세웠다. 나영석 PD가 “버리는 카드냐”고 묻자 이서진은 웃음기 없는 진지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아니 버리는 게 아니라 그래서 얘가 데뷔하기 좋은 기회라는 거지.” 그 말에 붙은 ‘따뜻한 속마음도 차갑게 표현하라’는 자막은 이서진이 가진 솔직하면서도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잘 드러낸다. 어찌 보면 간지러운(?) 말이나 상황들을 견디지 못하는 것 같은 이 인물은 요리를 하다가 최우식이 살짝 엄지손가락을 데이자 무심한 척 걱정하는 목소리를 내다가도, 상처부위를 들여다 보고는 자신도 과거에 그런 일을 겪었다며 네 상처는 별거 아니라고 ‘자기 식’의 위로를 덧붙인다. 

 

이러한 ‘겉차속따’의 면모는 이서진이 변화하는 예능 환경 속에서 도드라지는 인물로 성장하게 된 중요한 이유다. 과거 연예인들은 방송에서 정반대로 ‘겉따속차’의 모습을 보이는 걸 일종의 이미지 관리로 해왔던 경향이 있었다. 실제로는 차갑지만 인간적인 면모들을 방송에 나올 때만 강조하는 것이 연예인들의 관리된 이미지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서진은 그 틀을 깨고 나와 있는 그대로의 툴툴거리고 때론 투덜대는 자신의 면모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꽃보다 할배’에서 어르신들을 챙기는 짐꾼 역할을 누구보다 성실하게 하지만, 나영석 PD와 앉아 뒷풀이로 술을 마시거나 할 때는 한없이 푸념을 늘어놓는 모습을 보여준 것. 그것은 거짓이 아닌 진실된 면모로 시청자들에게 다가왔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힘들어 투덜대는 것일 뿐, 어르신들에 대한 배려는 진심이라는 걸 드러냈다. 즉 인간은 두 가지 감정이 공존할 수 있다는 걸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점점 리얼함을 요구하게 된 방송 환경 속에서 이서진이 주목된 이유다. 

 

물론 이서진의 본업은 배우다. 그래서 최근에도 ‘조폭인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에 김득팔이라는 조폭으로 특별출연해 존재감을 드러낸 바 있고, ‘연예인 매니저로 살아남기’에서는 메쏘드엔터 총괄이사인 마태오 역할을 또 ‘내과 박원장’에서는 대머리 내과의사 박원장 역할로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트랩’이나 ‘타임즈’ 같은 작품에서 진지한 역할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워낙 예능 이미지가 강해지다보니 조금은 희화화된 캐릭터로 소비되는 경향이 생겼다. 하지만 그의 과거를 들여다보면 그 유명한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명대사를 남긴 ‘다모’의 주인공이었고 ‘연인’에서 김정은과 호흡을 맞춘 멜로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기도 했다. 즉 현재의 흐름대로 예능에서 얻은 이미지로 배역 또한 소비되고 있지만 언제든 또다른 변신이 가능한 배우라는 점이다. 

 

중요한 건 물 흐르듯 변화하는 상황에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서 나오는 다양한 감정들을 이서진은 대중들에게 그대로 납득시켜주는 면이 있다는 점이다. 투덜대도 그 밑에 깔린 따뜻함이 느껴지고, 따뜻한 목소리에도 장난기를 숨기는 그런 다양한 감정의 공존이 그는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건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며 누군가의 감정을 일면으로만 파악하긴 어렵고 그것이 결국 인간적인 매력이라는 것을 에둘러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끓이고 끓여야 비로소 진국의 맛이 우러나는 곰탕처럼.(글:국방일보, 사진:tvN)

'삼시세끼'의 진짜 반찬, 유해진과 차승원의 농담과 진심

 

섬 생활 며칠 째지만 물고기는 구경도 못했다. 배를 타고 바다를 나갔지만 갑자기 번개가 치고 비가 오는 통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바닷가에서 낚싯대를 드리워도 미끼만 채간다. 유해진의 마지막 보루, 통발은 '텅발'이 되어버렸다. 한 마리도 잡히지 않고 그나마 잡힌 건 치어들이라 바다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다.

 

tvN <삼시세끼> 어촌편5는 그래서 마치 보릿고개 같다. 첫 날은 운 좋게 전복을 채취해 회로 내놓아 고급 레스토랑 같은 분위기를 냈지만, 다음 날은 잡아 온 게 없는데다 비까지 내려 한 마디로 춥고 배고픈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유해진과 차승원의 유쾌한 농담은 고구마, 감자뿐인 저녁을 먹으면서도 기분 좋은 레스토랑 상황극을 연출했다.

 

다음 날 공효진이 게스트로 오면서 차승원과 유해진 그리고 손호준은 전과는 달리 마음이 초조해졌다. 자기들끼리 삼시 세 끼를 해먹을 때는 그냥 농담과 유머를 반찬삼아 대충 해먹어도 된다 싶었지만, 손님까지 왔는데 제대로 된 한 끼를 대접 못한다는 건 안 될 일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승원은 없는 살림(?)에도 군침 도는 음식들을 내놨다. 첫 날 땄던 거북손을 넣은 파전과 밭에서 딴 상추와 깻잎을 넣은 새콤달콤한 비빔국수를 내놓은 것. 뭔가 조촐한 점심이지만 차승원은 공효진을 위해 예쁜 접시에 손수 파전을 썰어 담아주고 유해진은 끊임없이 유쾌한 아재개그를 더해준다. 그러니 이 조촐한 식사시간이 풍성하게 느껴진다.

 

공효진은 그 화기애애한 식사에 기분 좋아지는 일화를 들려준다. 드라마 함께 할 때 차승원에게 "친구 없으시죠?"하고 물었더니 "하나 있어. 유해진이라고."라고 했다는 거였다. 가만히 듣던 손호준이 "되게 감동"이라고 하자 멋쩍은 듯한 유해진이 특유의 너스레를 떤다. "에이 그게 뭐 감동이야. 한 명 있어 그래야 감동이지. 내가 하나야?" 웃음이 빵빵 터지며 식사시간은 한 없이 즐거워진다.

 

다 같이 낚시에 나섰지만 역시 아무 수확도 없는 저녁. 빈손으로 온 유해진은 괜스레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차승원은 없는 재료로 마늘종 볶음에 무 조림 그리고 뭇국을 끓여 풍성한 저녁상을 차려 내놓는다. 그러면서 손님으로 온 공효진에게 제대로 된 밥상을 못 차려 준 게 영 마음에 남는 유해진이 미안해하자 차승원은 "먹고 싶다고 해서 해주는 거야. 무 조림."이라고 말해준다. 그러자 유해진이 다시 농담을 더한다. "그냥 무 조림 먹고 싶다 그랬어? 생선 조림이라고 그랬으면 생선을 잡아 왔지-"

 

저녁을 먹으면서도 이들의 농담은 밥상을 채워주는 또 다른 반찬이 된다. 무 조림에 뭇국을 내놓은 차승눠에게 유해진이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네?"하고 아재개그를 던지자, 차승원은 "몸에 해로운 청바지가 뭔 줄 아냐"며 "유해진"이라고 한다. 그러자 다시 유해진 얼토당토 않은 아재개그를 던진다. "없는데 효성이 지극한 진이 뭐냐"며 "공효진"이라고.

 

마음 한 구석의 부채감 때문일까. 다음 날 일찍 바다로 낚시를 나간 유해진은 아침 식사도 거른 채 낚시를 하겠다고 하고, 그러자 차승원은 굳이 밥과 반찬을 챙겨 배로 보내준다. 감동한 유해진은 밥을 다 먹고 사과에 '고마워'라고 새겨 찍은 사진을 전송해주고, 그걸 본 차승원은 무심한 듯 손가락 하트를 찍어 답장을 보낸다.

 

아이러니하게도 섬에서 물고기 구경 한 번 못해 봤지만 그래도 여유롭고 풍성하게 느껴지는 건 이를 대하는 이들의 마음이 긍정적이고 여유 있어서다. 늘 유머가 넘치고 그 속에는 무심한 듯 상대방을 생각하는 따뜻한 진심이 묻어난다. <삼시세끼>는 물론 그 현지에서 나는 식재료를 갖고 만들어 먹는 밥상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그게 없어도 여유와 풍성함을 느낄 수 있는 건 <삼시세끼>의 진짜 반찬이 이들의 여유로운 농담과 시크한 척 다른 이를 챙기는 진심이라는 걸 말해주는 것 같다.(사진:tvN)

감자·고구마를 먹어도 레스토랑처럼, '삼시세끼' 유머의 매력

 

시작부터 쉽지만은 않다. 던져놓은 통발에는 고기 한 마리 없고, 배를 타고 나가 낚시를 해도 물고기 한 마리 잡히지 않는다. 물론 첫 날 물 빠진 해변에서 전복을 따와 맛있는 한 끼를 먹었지만 그런 행운이 계속 이어지진 않는다. 거북손을 잔뜩 따와서 부쳐 먹고 잔치국수에도 넣어 먹었지만, 갑자기 급변하는 섬 날씨와 쏟아지는 비를 피해 들어온 차승원, 유해진, 손호준은 저녁거리가 막막하다.

 

tvN 예능 <삼시세끼> 어촌편5는 코로나19 때문에 만재도가 아닌 무인도 죽굴도로 들어갔다. 재료가 없어도 그나마 주민들에게 도움도 받고 때론 만재슈퍼에서 쇼핑(?)도 하던 건 이제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오롯이 이 세 사람이 이 섬에서 차승원이 그토록 싫어한다는 수렵, 채취 등등으로 버텨내야 하는 상황이다.

 

비도 축축하게 내리고 배도 고파지는 저녁, 요리할 재료도 없는 막막한 상황에 유해진은 고구마와 감자를 삶고 구워 저녁을 해결하자며 때 아닌 레스토랑 놀이를 시작한다. 메뉴를 받아 적는 시늉을 하며 대뜸 P와 SP가 있고 그걸 스테이크나 되는 듯 어느 정도로 익힐 것인가를 묻는다. 차승원과 손호준은 그런 유해진의 놀이에 적극 참여해 미디엄 웰던이니 미디엄 레어니 하며 죽을 맞춰준다.

 

P와 SP는 다름 아닌 Potato(감자)와 Sweet Potato(고구마)를 농담처럼 일컫는 지칭. 유해진은 그렇게 슬쩍 별 것도 아닌 감자와 고구마를 삶고 구워낸 음식을 P니 SP로 부르며 대단한 것이라도 하는 것처럼 너스레를 떤다. 그리고 피워놓은 아궁이로 고구마와 감자를 삶고 굽는다. 다 요리된 고구마와 감자를 예쁜 접시에 깍두기 김치를 놓아 세팅하고 손님이 원하는 굽기에 맞춰 내놓는다.

 

그저 놀이에 불과하지만 차승원은 진짜 레스토랑이나 온 것처럼 목에 냅킨을 걸고 칼과 포크로 고구마와 감자를 마치 스테이크나 되는 양 썰어 먹는다. 실상은 먹을 게 마땅치 않아 '구황작물'로 한 끼를 때우는 것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제대로 챙겨먹는 듯한 느낌을 주는 건 이들 특유의 유머 감각 때문이다.

 

사실 무인도에서 외부와의 접촉이 끊긴 채 며칠을 자급자족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건 만만하게 쉬운 일만은 아닐 게다. 물론 텃밭이 있고 쌀이 있어 챙겨 먹으며 그럭저럭 버틸 수는 있겠지만 그런 자세로 즐거움이나 힐링까지 바라긴 어렵지 않을까. 그런데 그 막막할 수도 있는 섬 생활을 시청자들이 힐링으로 느끼며 바라보는 건 없어도 그걸 즐기며 농담으로 넘기는 유해진과 차승원 그리고 손호준 덕분이다.

 

없지만 있어 보이게 만들고 그 없는 것을 유머로 바꿔놓는 건 유해진과 차승원을 당할 자들이 없는 것 같다. 각종 도구들과 운동기구가 있는 창고에 '아뜰리에 뭐슬'이라 이름붙이고 입구에 도어락을 흉내 낸 고리를 만들어 놓고 유해진은 키가 177cm 이상은 입장불가하다고 써붙인다. 천장이 낮아서 그렇다지만 차승원 출입은 안된다고 농담 삼아 붙인 것. 그러자 차승원은 대뜸 멤버 가입해야겠다며 호텔식 헬스장이라고 한다. 바다가 보이는 뷰를 자랑하는 호텔식 헬스장.

 

<삼시세끼>가 주는 유쾌함과 힐링의 이유는 어쩌면 그 공간 자체가 아니라 그 곳에서 지내는 이들의 긍정 마인드가 아닐까 싶다. 해먹을 게 마땅찮아 고구마와 감자를 삶아 먹어도 레스토랑에 있는 것마냥 한껏 풍족한 느낌을 갖는 것. 너스레와 농담으로 불편함이나 부족함을 웃음으로 채워 넣는 것. 늘 좋지만은 않은 삶의 신산함 속에서도 그런 것들이 있어 우리는 웃으며 살아가는 지도.(사진:tvN)

검사판 ‘삼시세끼’?, ‘검사내전’의 소소함이 더 끌리는 건

 

이건 검사판 <삼시세끼>를 보는 듯하다. 검사라고 하면 드라마에서 지나치게 극화된 면이 있다. ‘정의’와 ‘적폐청산’이 시대의 소명이 되어버린 요즘, 드라마에 등장하는 검사들은 양극단으로 나뉜다. 정치와 결탁해 비리를 저지르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적폐 검사거나, 세상의 부정과 범죄에 맞서 통쾌한 한 방을 날리는 사이다 검사거나. 하지만 JTBC 월화드라마 <검사내전>에서 그런 검사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드라마는 시작부터 어깨에 힘을 쭉 빼놓는다. 어느 섬의 군사지역에 들어가 여유롭게 바다낚시를 즐기는 이선웅(이선균)과 김인주 지청장(정재성).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를 읊조리는 이선웅에게 김인주는 말한다. “낚싯대만 보고 있기에는 아까운 날이지요. 우리도 돌도 보고 물도 보고 또 달도 봅시다.” 검사가 등장하는 드라마의 첫 장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한가롭고 평화로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김인주 지청장의 말은 <검사내전>이 앞으로 어떤 검사들의 이야기를 할 것인가를 암시한다. 낚싯대가 상징하는 누굴 잡을 것인가 잡힐 것인가 같은 치고받는 권력과의 치열한 싸움이 아니라, 돌, 물, 달이 뜻하는 우리의 주변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들여다보겠다는 것. 이건 여기 등장하는 검사들이나 검찰총장조차 ‘깜박 잊고’ 찾는 걸 잊어버릴 정도로 남해안 구석에 자리한 진영지청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갑자기 등장한 경찰들에 의해 군사지역에서 낚시를 하던 사람들이 붙잡히게 될 위기에 처하자 지청장이 과감하게 물로 뛰어들어 몇 킬로나 되는 거리를 수영해 뭍으로 빠져나오는 장면은 이 드라마의 인물들이 무엇에 목숨을 거는가를 잘 보여준다. 그건 출세도 아니고, 굉장한 정의감도 아니다. 그저 ‘쪽팔림’을 면하기 위한 사투일 뿐.

 

그리고 진영지청 형사2부의 검사들의 면면이 이선웅의 목소리로 소개된다. 돌싱남 조민호 부장검사(이성재)는 젊어지려 안간힘을 쓰고, 한 때 조폭도 때려잡던 오윤진 검사(이상희)는 이제 조폭보다 무서운 육아와 사투를 벌이는 열혈 워킹맘이다. 복권에 집착하는 홍종학(김광규) 수석검사나 SNS에 사진을 올리는 일에 집착하는 ‘요즘애들’ 막내 김정우(전성우). 어느 누구 하나 우리가 봐왔던 검사 드라마에 어울리는 인물들은 없다.

 

이들이 맡게 되는 사건도 너무나 일상적인 사건이다. 첫 케이스로 등장한 ‘200만 원 굿 값 사기사건’은 무속인이 굿값만 받고 굿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소된 사건이지만, 기가 막히게 맞추는 점 때문에 형사2부 사람들은 무속인을 점점 신뢰하게 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늘 힘을 빼고 있어 무슨 능력이 있을까 싶던 이선웅은 의외로 사건에서는 예리한 면을 보여준다.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재조사를 통해 무속인이 자신이 맞췄던 갖가지 사건사고들이 그의 자작극이었다는 걸 밝혀낸 것.

 

TV 뉴스에서는 2,000억 원이 오가는 비리를 캐는 검사들이 등장하지만, 이들이 처리하는 일들은 200만 원짜리 사기극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TV 속에 등장하는 2,000억 원짜리 사건보다 이들이 맞닥뜨리는 200만 원짜리 사건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건 왜일까. 일상을 살아가는 대중들에게 2,000억 원이 저들의 이야기라면 200만 원은 우리들의 이야기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한 때 예능 프로그램들은 한껏 어깨에 힘이 들어가 출연자들을 가만 놔두지 않고 이런 저런 미션 속에 연달아 빠뜨리곤 했다. 그러다 갑자기 <삼시세끼> 같은 하는 것보다는 안 하는 예능이 등장했지만 대중들은 의외로 거기에 빠져들었다. 이유는 저 치열한 세계가 주는 피로감이 컸고 나아가 너무 남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비현실감 때문이었다. 차라리 소소해도 현실감이 느껴지는 우리 주변의 이야기가 훨씬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검사내전>은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 해왔던 검사 소재의 장르물의 정반대로 방향을 잡고 있다. 한껏 어깨에 들어가 있던 힘을 빼고 거대한 악과 싸우는 검사가 아니라 작아도 서민들에게는 더 치열한 현실일 수 있는 생활밀착형 사건들과 싸우는 검사. 물론 대단한 정의감보다는 그들 역시 일상인으로서 때론 작은 범법 행위들을 저지르지만 그래도 하는 일에 있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검사들의 이야기. 이러니 그 소소한 이야기에 더더욱 끌릴 수밖에.(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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