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토록 <너의 이름은>의 공감에 간절해졌을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에 대한 열풍이 예사롭지 않다. 겨우 개봉한 지 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애니메이션이고 그것도 우리 대중들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상황이어서 이런 흥행은 이례적인 느낌이다. 물론 대중문화 콘텐츠를 소비하는데 있어서 국가 간의 정서가 앞세워질 필요는 없을 것이지만.

 

사진출처: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이런 국가 간의 정서를 떼놓고 오로지 작품만으로 들여다보면 <너의 이름은>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해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다. 꿈을 통해 타인의 몸과 자신의 몸이 바뀐다는 판타지 설정은 사실 그리 새로운 건 아니다. 이미 <스위치> 같은 영화가 그런 소재를 다룬 바 있고, 우리에게도 <시크릿 가든>으로 익숙해진 소재가 아닌가.

 

하지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해온 일련의 작품들이 가진 극도로 현실적이고 섬세한 감정들이 심지어 문학적으로까지 느껴지던 전작들을 염두에 놓고 보면 이런 판타지 설정은 조금은 과하게 다가온다. 몸과 몸이, 그것도 남자의 몸과 여자의 몸이 바뀌는 그 상황은 유머러스하게 전개되지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으로 보면 너무 복잡하고 장황하다.

 

물론 그런 변화는 누구나 시도할 수 있는 것이지만 만일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전작 중 <언어의 정원>이나 <초속5센티미터>를 본 관객이라면 너무나 스펙터클해진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게다. <언어의 정원> 같은 작품이 놀라웠던 건 사실 그 안에 담겨진 스토리가 지나치게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거기 있는 인물들의 감정표현이 그 어떤 스펙터클보다 더 강렬하게 휘몰아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초속5센티미터>에서 첫 번째 에피소드는 같은 학교에서 지내던 두 아이가 어쩌다 서로 떨어져 멀리 전학을 가게 되고 서로 편지로 연락을 주고받다 어느 눈 오는 날 그 먼 거리를 달려가 서로 만나는 이야기가 전부다. 하지만 그 단순한 이야기 속에 여자 아이를 만나러 가는 남자 아이의 감정은 마치 문학작품 속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깊게 요동친다. 이런 내적인 감정 표현들이 빛의 마술사라고도 불리고 배경의 신이라고도 불리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섬세한 붓놀림에 의해 완성된다. 그의 작품은 실로 인물이 내면을 직접 말하기보다는 그 인물이 서 있는 배경을 통해 말하는 것으로 놀라운 공감대를 만들어낸다.

 

이런 점을 두고 보면 <너의 이름은>은 이런 내면의 이야기보다는 훨씬 행동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이건 아마도 단편과 장편의 차이일 수 있지만 그래도 신카이 마코토 감독 특유의 문학적인 그림들을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많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너의 이름은>이 우리네 관객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건 그 나마 이 작품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추구하는 또 하나의 지점으로써, ‘타인에 대한 공감이라는 주제의식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서로의 몸이 바뀌어진 것을 알게 된 남녀가 서로의 입장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그 과정은 사실 이 애니메이션이 그리고 있는 스펙터클의 스토리보다 더 우리네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구석이 있다.

 

그리고 이 서로에 대한 공감은 작품 후반부에 이르러 벌어지는 엄청난 사건 앞에서 사적인 차원을 넘어 공적인 차원으로까지 나아간다. 세월호 참사 같은 아픈 기억을 가진 우리에게 바로 이 부분은 특별히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타인의 이름을 기억하려 애쓰는 그 마지막 장면의 간절함은 그래서 우리에게는 사적인 사랑의 차원을 뛰어넘어 공적인 마음으로까지 간절하게 읊조리는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라는 우리 안의 말들을 끄집어내기에 충분하다.

 

공감에 대한 간절한 마음. 아마도 세월호 참사를 겪은 우리에게 이만큼 큰 건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지워버리려 하고 또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지울 수 없고 기억 하겠다 다짐하게 되는 그 간절한 공감의 마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도호쿠 대지진을 겪으며 갖게 된 트라우마를 자신의 방식으로 풀어내려 했다고 한다. 그건 그가 자신의 작품들 속에서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지금껏 들여다봤던 바로 그 방식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겪은 우리들도 알고 있다. 바로 이 트라우마 역시 공감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통해 겨우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기억’, 시국이 만든 올해의 대중문화 키워드

 

잊지 않겠습니다.” 아마도 올해 대중문화의 키워드 하나를 꼽으라면 이 한 마디, ‘기억이 아닐까.

 

'그것이 알고싶다(사진출처:SBS)'

SBS <그것이 알고 싶다>두 개의 밀실편을 방영한 건 여전히 증폭되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의혹들 때문이다. 그 날 세월호 화물칸에 실린 제주해군 기지로 가던 철근 278톤 이외에도 무언가 숨기려하는 수화물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인양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에도 인양업체 선정과정에 남겨진 의혹들이 있었고 그것은 마치 인양을 하지 않으려는 의도이거나 혹은 늦추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처럼 여겨지게 만들었다. 그것이 결국 그 숨기려는 수화물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추측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인지 세월호를 바다 밑에 그대로 놔두려는 이들은 아마도 이 모든 걸 망각 속으로 묻어두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벌써 2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세월호는 바로 어제 일어난 사건처럼 대중들의 가슴에 달려 있는 노란 리본처럼 생생하다. 마치 망각으로 묻어두려는 시도는 오히려 대중들로 하여금 더더욱 기억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다시금 세월호의 기억을 끄집어내 여전히 지속되는 의혹들에 질문들을 던졌다.

 

지금 상영되고 있는 영화 <판도라>에서도 세월호의 잔상은 지울 수가 없다. 최악의 원전사고라는 소재를 가져왔지만 대중들이 이 영화를 통해 떠올리는 건 다름 아닌 세월호 참사의 그 7시간 동안 비워져 있던 콘트롤 타워의 부재다. 콘트롤 타워가 사라진 절망적인 상황에 평범한 서민들이 나서 스스로를 희생해 작은 희망의 불씨를 틔운다는 이야기는 지금의 촛불정국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거기서 우리는 또한 기억하라는 목소리를 이어간다.

 

세월호 참사가 얼마나 큰 트라우마를 우리네 대중들에게 남겨놓았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은 그저 평범할 수 있는 드라마 한 편에서조차 기억의 문제가 거의 무의식적으로 다뤄져왔다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시그널>에 우리가 그토록 열광했던 이유가 뭔가. 미제사건으로 남아 점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가던 것들을 심지어 무전기 판타지를 이용해 과거를 되돌려 현재를 바꾸고픈 그 간절함을 모두가 공감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뺑소니 사고로 아이를 잃은 후 이혼하고 로펌에 들어가 승승장구하던 한 변호사가 알츠하이머를 갖게 되면서 겪게 되는 사건들을 다룬 <기억>에서는 아예 제목이 그러하듯이, 정의를 덮어버리는 망각을 담보로 성공을 보장하는 우리네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을 고발했다. 알고 보니 로펌 사장의 아들이 뺑소니범이었던 것. 변호사는 자신의 승승장구가 결국 아들의 죽음에 대한 기억을 지우는 대가로 얻어진 것이란 사실을 알고는 절망하고 뒤늦게라도 진실을 위해 싸워나간다.

 

올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을 강타했던 <밀정><덕혜옹주>는 서로 정반대의 호불호를 낳으며 기억의 문제를 건드렸다. 모두 일제강점기를 다뤘지만 <밀정>이 이름도 모른 채 스러져간 의열단원들 같은 독립투사들에 대한 기억을 되새겨 호평을 받은 반면, <덕혜옹주>는 거꾸로 독립운동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덕혜옹주를 마치 독립투사처럼 호도함으로써 비판받았다. 올바른 기억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던 올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의 풍경이다.

 

<무한도전> 같은 예능 프로그램은 산타아카데미같은 지금의 시의성에 맞는 아이템을 방영하면서도 그 빨간 산타 복장에 노란 리본을 다는 걸 잊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은 이렇게 르뽀에서부터 드라마, 영화, 예능에 걸쳐 광범위하게 올 한 해의 주요정서로 자리했다. 그리고 이건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이 명명백백하게 이뤄지지 않는 한 치유되지 않는 트라우마로 남아 여러 대중문화 콘텐츠들의 소재로 이어질 것이다

<무도>의 꺼지지 않는 현실 인식, 이러니 국민예능이지

 

이걸 보면 사람들이 박수를 쳐요.”, “죽을 것 같은데 살아나요.”, “뜨거운 데 만질 수 있어요.”, “엄청 많은 사람들이 이걸 들고 만났어요.” 7살 어린이가 또박또박 던지는 말들이 새삼 가슴에 콕콕 박힌다. 아이가 이야기하고 있는 건 촛불이다. 정답을 확인한 <무한도전> 멤버들은 조금은 숙연해졌다. 정준하는 죽을 것 같은데 살아난다는 아이의 표현에 그게 중의적인 표현이었네라고 한 마디를 덧붙였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물론 아이가 촛불집회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엄청 많은 사람들이 이걸 들고 만났어요라는 말 하나일 것이다. “이걸 보면 박수를 친다는 건 아무래도 생일을 떠올리는 광경일 테고, “죽을 것 같은데 살아난다는 건 바람 앞에 꺼질 듯 꺼지지 않는 촛불을 그대로 표현한 것일 게다. 하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아이가 던지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무한도전>이 아이의 목소리를 담아 그걸 퀴즈로 낸 건 이렇게 에둘러 촛불집회에 대한 마음을 전하기 위함이었음이 분명하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이른바 산타를 뽑는 미션을 가진 산타 아카데미라는 특집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잘 읽어내는 테스트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무한도전>은 현실 인식을 놓지 않았다. 산타복을 입은 멤버들의 가슴에는 그 빨간 산타복 때문에 더 선명하게 보이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아마도 다음 주는 예고된 대로 산타 아카데미가 본격화되며 한바탕 몸 개그의 향연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자막을 통해서건 특별한 상황들이 연출되건 <무한도전>은 현 시국에 대한 의식을 놓지 않을 거라는 게 그 노란 리본 속에 담겨있었다.

 

알고 보면 북극곰의 눈물특집 역시 곳곳에 사용된 자막의 표현들은 현 시국에 대한 정서들을 반영한 것들이 있었다. ‘분노라는 단어도 사지라는 표현도 예사롭지 않았다. 지구온난화로 아직 바다가 얼지 않아 북극해를 건너지 못하는 북극곰들의 기다림은 마치 온 국민이 염원하고 기다리는 모습처럼 안타까움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바다가 조금씩 얼어가는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하기도.

 

후일담 형식으로 만들어진 기분 나쁜 날<기분 좋은 날>을 패러디한 것이지만 여러모로 현 시국의 대중정서를 제목을 담은 것이 분명했다. 캐나다에서 북극곰을 보고 돌아온 박명수와 정준하에게 이것저것 묻는 과정에서 엉뚱하거나 무지한 답변을 반복하는 그들을 세워두고 무시하거나 몰아세우는 일종의 상황극으로 그들을 기분 나쁘게하는 콘셉트. “요즘 웃을 일이 없다는 유재석의 멘트로 시작한 코너는 다시 웃을 수 있는 날을 기약하며 끝을 맺었다.

 

마지막으로 유재석이 예고한 2017년 신년 프로젝트 국민내각특집은 <무한도전>이 지금의 시국에 던지는 한바탕 사이다 예능이 될 것으로 벌써부터 기대되고 있다. “그야말로 국민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자 한 것이라고 소개한 국민내각특집에 대해서 유재석은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어떤 법이 생겼으면 좋겠다 등의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해 주시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참여와 소통의 의지를 보여주는 <무한도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 시국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푸른바다>가 인어를 통해 말하는 기억, 가족, 사랑

 

우리 예은이 너무 착해서 엄마 돕겠다고 수학여행도 안 간 애예요. 정말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는데 다시 못 깨어날 줄 알았으면... 다 해줄걸. 수학여행도 억지로 보내고 예쁜 옷도 많이 사줄 걸.... 엄마가 못해준 것만 생각나니까.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없다 예은아..”

 

'푸른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SBS 수목드라마 <푸른바다의 전설>에서 인어 심청(전지현)은 병원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예은 엄마를 만난다. 그녀는 의료사고의 진실을 요구합니다. 우리 딸이 왜 죽었는지 알려주세요.’라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왜 그렇게 슬픈 눈을 하고 있냐고 청이 묻자 예은 엄마는 예은이에 대한 아픈 기억과 살았을 적 해주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를 털어놓는다.

 

내 비밀 들어볼래요? 난 사람의 기억을 지울 수가 있어요. 원하면 지워줄게요. 슬프게 하는 기억? 딴 생각 안 나면 안 슬프고 안 아플 수 있잖아요. 내가 해줄게요.” 사람의 기억을 지울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인어 심청의 제안에 문득 예은 엄마는 예은이와의 추억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문득 눈을 뜨더니 말한다. “아니요. 죽을 때까지 아무리 아파도 가지고 갈 거예요.” 아픈데 왜 가져 가냐는 심청의 물음에 예은 엄마는 말한다. “아파도 사랑할 수 있으니까. 우리 딸 기억하지 못해서 사랑하지 못하는 것보다 아파도 기억하면서 사랑하는 게 나아요.”

 

기억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는 각별하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성수대교 붕괴, 대구가스폭발사고 등등.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몇 년 간 벌어졌던 사건사고들만 해도,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망사건, 강남역 살인사건 그리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까지 너무 많은 이들이 벌어졌다. 그 많은 사건사고들이 터져 나올 때마다 엄청난 아픔과 상처가 마치 트라우마처럼 우리들의 기억 속에 흉터를 남긴다. 너무 아파서 지워버리고 싶을 만큼.

 

tvN에서 방영됐던 <기억>이라는 드라마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기억의 시스템을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한 가장의 비극과 그 안에서 발견하는 희망을 통해 아프게도 담아냈다. 뺑소니로 죽은 아들의 기억을 지워내는 대가로 사실은 자신의 현재의 위치와 지위를 갖게 됐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이 가장의 이야기는 기억을 지우는 것과 권력 시스템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날카롭게 보여주었다.

 

드라마 <시그널>에 시청자들이 그토록 열광했던 까닭 역시 지워져가는 기억을 되돌려 그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려는 형사들의 따뜻한 인간애 때문이다. 이러한 기억의 트라우마를 툭툭 건드리며 그 미제사건을 풀어내려는 간절한 열망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다소 황당할 수 있는 무전기로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그 판타지는 아무런 이물감이 되지 않았다.

 

이처럼 기억을 다루는 드라마들 속에서 모두가 지워가는 그 기억의 언저리를 마치 유령처럼 세월이 지나도 계속 배회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가족이다. <푸른바다의 전설>이 하나의 에피소드를 담아낸 기억에 대한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예은 엄마가 그렇고, <기억>에서 기억을 지워버린 채 살아가던 가장과는 달리 결코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파하며 살아가는 아이 엄마가 그러하며, <시그널>의 그 많은 희생자 가족들이 그렇다.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 인간 세계를 전혀 모르는 심청은 가족이 뭐냐고 같은 병실에 있는 한 아주머니에게 묻는다. 그녀는 진짜 몰라서 물어? 여기 간병하는 사람들이 다 가족들이잖아.”라고 말한다. 그러자 심청은 그들을 둘러보며 생각한다. ‘가족은 붕어빵 같은 거네요. 붕어빵들처럼 닮았고 따뜻하고 달달해.’

 

하지만 가족은 그저 달달하기만 한 존재들은 아니다. 드라마 말미 에필로그에 이르러 그 아주머니는 가족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를 덧붙인다. “항상 좋기만 하겠어? 병 주고 약 주는 거지. 나도 우리 아들 빚 갚아주느냐고 생고생이야. 그래서 여기 디스크 터진 거잖아.” 가족은 상처를 남긴다. 그 상처는 다름 아닌 사랑하기 때문에 남는 상처들이다.

 

허준재(이민호)에게도 그 상처가 있다. 아버지에 대한 아픈 기억이다. 어머니가 사라지고 아버지가 재혼해 같이 살게 된 형 허치현(이지훈)은 그의 자리를 빼앗는다. 그래서 결국 상처 입은 허준재는 집을 나와 살아가게 되지만 아픔만큼 가족에 대한 마음을 지우지 못한다. 가짜 아들 노릇하는 허치현이 무감한 것과, “미안해도 미안하다 말 못하고 보고 싶어도 또 보고 싶다는 말 잘 못하며살아가는 아버지와 허준재의 아픈 마음은 그래서 너무나 다르다.

 

허준재. 사람들은 아프고 슬퍼도 기억하고 싶어 해? 밥도 못 먹고 잠을 못 자도 기억하고 싶은 사랑은 뭘까?” <푸른바다의 전설>은 인어라는 인간과는 다른 이질적 존재를 내세워 우리가 별 생각 없이 지나치곤 했던 기억이니 가족이니 사랑의 의미에 대해 새삼 질문한다. 아파도 기억하는 것이 바로 가족이고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런 아픈 기억과 가족과 사랑의 이야기는 각별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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