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작’, 조정석 표정 변화 하나로 드라마의 분위기가 바뀐다는 건

세작, 매혹된 자들

“과인은 이제 필부가 아니다. 이 나라의 임금이다. 임금에겐 신화와 정적만 있을 뿐 친구는 없다.” tvN 토일드라마 <세작, 매혹된 자들(이하 세작)>에서 조선의 왕 이인(조정석)은 그 한 마디로 ‘몽우’라 부르며 우정을 쌓았던 강희수(신세경)의 애절한 간청을 단칼에 거절한다. 왕이 되기 전 진한대군으로서 강희수에게 보였던 다정함은 온데간데 없고 사방이 적이 되어버린 이인은 깊은 속내와는 달리 사사로운 정 따위는 단호히 끊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순간 이인과 강희수(물론 남장을 했지만)의 달달하고 훈훈했던 모습들로 채워졌던 드라마의 분위기는 권력을 두고 죽느냐 사느냐가 오가는 살벌한 정치판의 분위기로 바뀐다. 그로부터 3년 간 이인이 보이는 모습은 인간적인 온기를 지워낸 비정한 권력자의 그것으로 채워진다. 자신을 위협하는 김종배(조성하)를 몰아내고 심지어 자신의 어머니인 왕대비 박씨(장영남)와도 살가운 모습은커녕 입장 차를 첨예하게 드러낸다. 

 

그러다 죽은 줄 알았던 강희수가 기대령 선발에 나서면서 그 비정했던 이인의 얼굴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강희수에게 ‘복수’하기 위해 돌아온 것이 아니냐는 추상 같은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와 바둑을 두며 “네가 좋다”는 속내를 끝내 드러내고, 강희수가 여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을 거짓으로 속였다는 배신감에 분노하다가도 그 연정을 거부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돌아온 강희수와 처음 마주할 때만 해도 둘 사이의 치열한 대결이 벌어질 것처럼 긴장감을 자아내게 했지만, 서서히 누그러지며 다정한 면모를 드러내는 이인의 변화를 통해 드라마는 다시 달달한 멜로의 풍경을 그려낸다. 그 과정에서 강희수 역시 변화한다. 피눈물을 흘리며 복수를 하겠다고 돌아온 그지만 이인에게 어쩔 수 없이 감정적으로 빠져든다. 그러면서도 이인에 반기를 드는 세력들 속에서는 자신의 그런 감정과 상관없이 그를 왕좌에서 끌어내리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다. 

 

<세작>은 이처럼 두 개의 마음이 공존하는 두 사람이 연정과 대결을 오가는 과정의 묘미를 담은 드라마다. 권력을 두고 벌어지는 치열한 정치극이 이인과 강희수 사이의 팽팽한 대결구도를 만들지만, 이와는 대비되게 두 사람은 또한 사사로이 서로에 대한 연정을 품은 연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마치 흑과 백으로 나뉘어 대결하지만, 호적수를 만나 상대에게 감탄하며 매혹되기도 하는 바둑을 닮았다. <세작>이라는 드라마가 가진 멜로 혹은 정치극의 특별함이다. 

 

상반된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인 역할의 조정석이나 강희수 역할의 신세경의 연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표정 하나의 변화만으로 다정과 비정을 오가는 조정석의 연기는 실로 <세작>이라는 드라마를 쥐락펴락한다고 해도 될 정도로 주목되는 면이 있다. <건축학개론>의 납득이로 미친 존재감을 드러내며 우리 앞에 나타난 이 배우는 <녹두꽃>의 처절한 백이강으로 또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다정한 익준이로 변신을 거듭하면서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납득이의 잔상이 오래도록 남아 코미디 연기가 두드러진 배우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세작>은 이런 이미지를 탈피하게 해주는 작품이 될 것 같다.

 

조정석의 다정과 비정을 오가는 연기에 힘입어 <세작>은 갈수록 복잡한 감정들의 소용돌이를 경함할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 되어가고 있다. 적을 무너뜨리기 위해 마음까지 내주는 세작들처럼 목적을 향해 칼을 내밀지만 그 칼끝이 자신에게도 향하게 되는 이 비극적인 관계는 어떤 파국을 향해 나아갈까. 조정석은 끝내 비정한 얼굴을 보여줄까 아니면 다정한 모습을 숨기지 못하고 드러낼까. 조정석의 어떤 얼굴이 그 마지막을 장식할지 궁금해진다.(사진:tvN)

대사 한 마디에 밈 조짐, 이준기라서 ‘아라문’에 빠져든다

아라문의 검

“세상 참 재밌네. 이거 무슨 병인가 봐.” tvN 토일드라마 <아라문의 검>에서 은섬(이준기)이 던진 그 한 마디에 탄야(신세경)는 깜짝 놀란다. 그 말은 은섬이 자주 했던 말이기 때문이다. 탄야는 눈앞에 서서 그 말을 건네는 이가 사야(이준기)가 아닌 은섬이라는 걸 알아챈다. 오랜 세월을 건너 드디어 마주한 두 사람의 드라마틱한 재회. 대놓고 반가워할 수 없어 더 애틋한 재회가 아닐 수 없다. 

 

은섬과 사야가 만나는 자리를 급습한 샤하티의 아이들. 태알하의 명으로 움직이는 이 아이들은 지명한 자를 죽일 때까지 덤벼드는 자객들이다. 아이라는 점 때문에 방심했던 무백(박해준)이 죽고, 은섬은 아스달의 병사들에 의해 또 사야는 약바치인 채은(하승리)과 뇌안탈들에 의해 구조됨으로써 그 위치가 뒤바뀐 상황. 사야로 오인된 은섬은 그렇게 아스달의 궁에서 깨어나게 됐다. 

 

배냇벗(쌍둥이)이라는 점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사야인 척 해야 되는 은섬. 그래서 오랜 세월 동안 그토록 그리워했던 탄야를 눈앞에 보고도 반갑게 만날 수 없는 그 애틋함이 얼마나 크겠는가. 참다 못 참은 은섬은 결국 탄야를 껴안고 눈물을 쏟아낸다. 주변 사람들이 이를 이상하게 바라보고, 탄야 역시 그가 은섬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사야야 이러지 마”라고 그를 제지한다. 

 

그러자 탄야로부터 떨어져 계단을 오르던 은섬이 뒤를 돌아보며 던진 말이 어려서 탄야에게 은섬이 자주 했던 그 말이다. “이거 무슨 병인가 봐.” 그 말에는 병처럼 아프고 설렜던 탄야에 대한 마음 또한 담겨 있을 터다. 이 짧은 순간에 은섬의 감정은 복잡하게 변화한다. 참아내야 한다는 마음과 참을 수 없는 마음이 교차되고 탄야에 대한 그리움과 반가움과 더불어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탄야에 대한 미움 같은 것들도 뒤섞인다. 그러면서도 희미하게 웃어 보이는 모습에서는 은섬 특유의 여유 또한 엿보인다. 

 

이 대사가 워낙 임팩트 있게 다가와서인지 시청자들 중에는 이 대사를 따서 “아라문의 검 참 재미있네. 이거 무슨 병인가 봐”라는 재치 있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이런 임팩트에는 이준기라는 배우의 지분이 상당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스달 연대기>의 시즌2에 해당하는 <아라문의 검>이 주연 배우를 바꿔놓았는데, 이물감이 아닌 몰입감을 주는 건 다름 아닌 이준기의 연기 덕분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라문의 검>에서 이준기는 부족 연맹을 이끄는 재림 이나이신기로서 전쟁의 선봉에 서는 은섬의 카리스마는 물론이고, 탄야와의 애틋한 사랑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전투 장면에서는 시원시원한 액션 신을 선사하고, 적과 대치할 때는 눈에 핏발이 설 정도로 강렬한 눈빛을 보내지만, 탄야와 오랜만에 다시 재회한 순간에는 애절한 사랑이 담긴 눈을 보여준다. 그러니 이런 감정 변화를 어느 쪽으로든 몰입감 넘치게 만들어주는 이준기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드라마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아라문의 검>은 종족의 이름부터 낯선 고어들이 사용되고,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상상으로 조영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결코 쉬울 수는 없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 복잡해 보이는 세계에서도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존재가 바로 이준기가 아닐까 싶다. 그의 연기를 따라 은섬이라는 인물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이 세계를 여행하는데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마치 시청자들의 손을 잡고 이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길잡이 역할이랄까. 이 낯선 세계가 이토록 흥미롭게 전개되다니, 이거 무슨 병인가 싶다. (사진:tvN)

 

'런 온' 소품 취급하는 세상, 나를 지키며 사랑하는 법

 

JTBC 수목드라마 <런 온>은 마지막회만을 남기고 있다. 지금까지의 최고 시청률은 3.7%(닐슨 코리아). 생각만큼 높은 시청률은 아니지만, 낮다고도 할 수 없는 수치다. 작품에 대한 반응도 나쁘지 않다. 무엇보다 박시현 작가라는 신예가 가진 가능성이 톡톡 튀는 대사만으로도 돋보이는 작품이다.

 

단거리 육상 국가대표였지만 후배가 상습적으로 폭행당하는 걸 보다 못해 커밍아웃을 하고 결국 선수가 아닌 에이전트의 길을 걸어가게 된 기선겸(임시완). 그는 국회의원인 아버지 기정도(박영규)가 가족들을 자신의 정치인생에 쓰이는 소품 취급하는 걸 참지 못한다. 부유하게 자랐지만 뭐 하나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그의 앞에, 없이 살아도 당당하고 자신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라 말하는 통번역가 오미주(신세경)와 진정으로 소통하며 가까워진다.

 

스포츠 에이전시 대표이자 서명그룹 상무인 서단아(최수영)는 연년생으로 태어난 후처의 아들 때문에 후계 서열에서 밀려나면서, 지키고픈 자기 것에 대한 강한 욕망과 집착을 보이는 인물. 그는 어느 날 한 그림에 빠져들더니 그 그림을 그린 이영화(강태오)에 이끌린다. 예술가로서의 남다른 자존감으로 똘똘 뭉친 그에게서 뭐든 갖고 싶으면 가질 수 있었던 욕망과는 다른 마음 같은 걸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런 온>은 이 네 사람의 겹쳐지지 않는 사랑이야기를 중심에 삼은 멜로 드라마다. 하지만 이 멜로가 담으려는 메시지는 나를 소품 취급하며 함부로 이용하려 하는 세상 속에서 나를 지키며 사랑하는 법에 대한 것이다. 그건 기정도나 서단아의 아버지 서명필(이황의) 같은 기성세대가 갖고 있는 '세상을 보는 잣대'로부터 벗어나는 길이기도 하다.

 

그들은 가진 자들이 그 가진 것을 위해 해야만 하는 어떤 삶을 제시하지만, 이 젊은 청춘들은 그 삶에 '나' 자신이 빠져 있다는 걸 알고는 저항한다. 그것은 경제력을 기준으로 삶의 방식이 나눠지고, 그래서 그 나눠진 등급 사이에는 결코 소통하고 연결될 수 있는 고리가 없다 여기는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이다. 이들은 가진 게 다르고, 살아온 방식이 달라 처음 소통에 장애를 느끼지만, 차츰 그 '다름'을 인정함으로써 소통에 다다르고 결국 사랑하게 된다.

 

드라마는 좀 더 넓게 보면 태생으로 규정되는 수저 색깔의 차이로 마치 결코 소통될 수 없는 다른 세계가 있다는 생각이 편견이자 고정관념이라는 걸 말하고 있지만, 그 형태는 전형적인 청춘 멜로로 담겨져 다소 소소한 느낌을 준 면이 있다. 특히 대사가 강점이라는 사실 역시 그저 달달한 멜로처럼 드라마를 보이게 만든 면이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소통을 주제로 하고 있고 그래서 그 대사는 겉멋이 아니라 메시지 자체일 수 있었다.

 

좀 더 드라마틱한 이야기 소재들이 담겨졌다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이 작품이 건져낸 건 여기 출연한 매력적인 배우들의 가능성이 아닐까 싶다. 임시완이야 본래부터 몰입감 좋은 배우였지만, 달달한 멜로 역할로도 충분히 시청자들을 설레게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고, 신세경 역시 밝고 당찬 모습으로 사랑스러운 매력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연기돌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최수영은 서단아라는 다소 강한 캐릭터를 통해 연기자의 면면을 제대로 드러냈고, 강태오는 때론 진지하지만 대부분은 멍뭉미 넘치는 모습으로 새로운 멜로 신인 탄생을 예감케 했다.

 

전체적으로 소박한 느낌의 청춘 멜로였지만, 적어도 박시현 작가나 임시완부터 강태오까지 젊은 배우들의 새로운 가능성들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충분히 가치 있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향후 이들이 활약할 새로운 작품들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할 정도로.(사진:JTBC)

'런 온', 부자와 가난한 자는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을까

 

미안하게도 다소 뻔한 신데렐라 이야기의 변주가 아닌가 하는 오해를 했다. JTBC 수목드라마 <런 온>에 그런 오해를 갖게 된 건, 이 드라마의 겉면이 멜로 장르의 틀을 보여주고 있고 그 멜로에는 사는 환경이(부유층과 서민으로 나뉘는)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남녀 인물들이 포진해 서 있어서였다. 

 

국회의원과 유명배우의 아들인 기선겸(임시완)은 호텔에서 살며 단거리 육상 국가대표로 뭐든 잘 할 것 같은 '엄친아'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오미주(신세경)는 영화 통번역을 하며 살아가면서도 자존감이 넘치는 캔디형 인물이다. 또한 서명그룹의 적통으로 스포츠 에이전시 대표인 서단아(최수영)와 미술대학생인 이영화(강태오)의 구도도 그렇다. 그 구도만 보면 이들이 엮어가는 이야기가 저 신데렐라 혹은 온달 스토리가 아닌가 하는 오해를 갖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런 온>이 그런 드라마가 아니라는 건 보면 볼수록 더 확실해진다. 그건 이 부자인데다 모든 걸 갖춘 인물과 그저 평범한 서민인 인물이 서로 만나 관계를 맺어가는 그 과정이 가진 자가 못 가진 자를 일방적으로 천거하는 그런 이야기로 그려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이 드라마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다른 존재들이 동등한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 그 엇나감을 경험하면서도 조금씩 소통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영화와 서단아가 그림을 두고 벌이는 대화는 이런 드라마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이영화에게 그림을 의뢰했던 서단아는 아직 다 그려지지 않은 작품에 대해 "이거 내 그림이냐"며 "지금 당장 내 놔 내 그림"이라고 말한다. 기분이 상한 이영화가 그림이 무슨 "자판기 커피"냐고 되묻자 서단아는 오히려 "아닐 건 뭐냐"고 몰아세운다. 

 

서단아의 화법은 자신이 살아온 세계의 모습을 당연하게 담아낸다. 그는 모든 걸 거래로 생각한다. 심지어 그림에도. 그래서 그 그림 뒤에 사람이 있다는 걸 잘 보지 못한다. 그는 의뢰하면 뭐든 되는 삶을 살았으니까. 그래서 마감을 지키지 않는 이영화에게 그가 쓰고 있는 건 "내 시간"이라고까지 말한다. 결국 이영화는 참지 못하고 물감을 마구 문질러 그림을 망쳐놓는다. 그 행위는 그 그림을 서단아가 마치 자기 것인 양 생각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걸 보여준다. "무슨 짓이야 내 그림에."라고 말하는 서단아에게 "그리는 건 저예요"라고 이영화가 답하고 "그걸 내가 모르냐"는 서단아에 말에 이영화는 딱 잘라 "모르고 있다"고 답한다. 

 

"내거야. 내가 당신 줄 때까진 내 거라고." 이영화의 그 말은 화가로서의 자존심을 드러내면서 서단아와 그가 왜 서로 같은 한국말을 쓰면서도 소통하지 못하는가를 잘 말해준다. 서단아는 늘 의뢰하고 명령하며 되는 세상 속에서 모든 것이 자기 것이 되는 삶을 살아왔다. 심지어 자기 것이 되지 않는다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그는 기선겸이 소속사에서 나가려 하자 빠르게 그의 흔적을 지워버린다. 그는 가진 게 많아 보이지만 그런 삶 속에서 누군가와 진정으로 소통할 수 없게 된다. 그걸 깨고 들어온 이영화의 그 말 한 마디는 그래서 서단아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늘 말하기만 하면 되던 그 삶에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걸 발견하면서 깨닫게 되는 소통 부재의 자신의 실체랄까.

 

이 관점으로 들여다보면 기선겸과 오미주가 그간 소통 부재 상태에서 조금씩 소통 가능한 상태로 넘어오게 된 그 과정들이 새롭게 보인다. 오미주는 자신도 모르게 기선겸과 함께 서 있을 때 소외감 같은 걸 느끼고, 술에 취해 용기를 내 자신을 좋아해달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는 그러는 자신이 너무 찌질하다고 느낀다. 기선겸의 선의와 진심과는 상관없이 그 스스로 느끼는 그런 감정은 늘 갑질을 당하면서도 애써 버티며 살아왔던 오미주의 삶에서 생겨나는 일들이다. 

 

그런 차이와 그래서 생겨나는 소통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기선겸과 오미주는 노력한다. 영화라는 걸 잘 보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기선겸은 오미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그가 얘기했던 영화 <제리 맥과이어>를 챙겨본다. 그리고 자신이 그 영화를 봤다고 오미주에게 말한다. 물론 재미는 없었다고.

 

그렇게 취향도 생각도 달라 그 영화가 재미없었다는 기선겸이지만 그는 그 영화가 "따뜻했다"며 그 이유가 바로 그 영화를 이야기해준 오미주씨 때문이라고 자신의 진심을 표현한다. 그는 주절주절 영화 속 이야기를 꺼내 자신의 마음을 전하지만, 오미주는 그런 그에게 "왜 그렇게 두서가 없냐"고 되묻고는 그의 입에 입맞춤으로서 간단히 그 마음을 전한다. 어쩌면 말로는 잘 되지 않는 소통이 있고, 그래서 엇나가기 일쑤지만 좋아하는 감정에 서로가 노력해가면서 조금씩 소통에 도달해가는 과정. 그것이 사랑이 아닐까 하고 이 드라마는 묻고 있다. 

 

그래서 <런 온>은 그 흔한 신데렐라나 온달이 등장하는 그런 클리셰 설정의 멜로와는 다른 결을 보여준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다른 한쪽을 천거하는 과정이 아니라, 빈부에서도 차이가 나고 사는 방식도 다른 두 사람이 그저 그 차이 때문에 소통할 수 없던 걸 조금씩 넘어서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것. 섣부른 오해를 거둬놓고 다시 보니, '런 온'의 그 좋은 대사도 멜로의 구도도 어쩌면 바로 이 주제의식을 위한 합당한 포석이었다는 걸 비로소 깨닫게 된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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