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드라마의 새로운 계보, '괜찮아, 아빠 딸'

'괜찮아, 아빠 딸'은 세련된 드라마는 아니다. 하지만 이 투박한 드라마에는 진심이 있다. 보면 볼수록 마음이 흐뭇해지고, 따뜻해지며 착한 사람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솟구치게 한다. 진심의 힘이다. 착한 드라마에 어떤 계보가 있다면, '괜찮아, 아빠 딸'은 '고맙습니다'나 '찬란한 유산' 같은 드라마를 잇는 드라마가 될 것이다.

그 첫 번째 진심은 먼저 세상의 모든 아빠들의 마음을 담는다. 가족들에게 어떤 일이 닥쳐도 그것을 온전히 혼자 감당하면서 가족들에게는 그저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는 아버지들. '괜찮아, 아빠 딸'이라는 드라마는 그래서 은기환(박인환)이라는 아빠가 자식들에게 "괜찮다"고 안심시키는 말로 시작한다. 심지어 병상에 누워 몸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고 할지라도.

하지만 이 드라마의 진심은 이게 끝이 아니다. 아버지 은기환이 쓰러져 누워버리자, 그 빈 자리를 그제야 느끼게 된 자식들은 이제 거꾸로 아버지에게 "괜찮다"고 말한다. '괜찮아, 아빠 딸'이라는 제목은 이제 자식이 아버지에게 "아빠 딸은 괜찮다"는 의미로 전달된다. 속 깊은 첫째 딸, 애령(이희진)은 마치 심청처럼 가족을 위해 만인 병원장의 망나니 아들 진구(강성)와 결혼한다. 눈칫밥을 먹으면서도 이 속 깊은 딸은 가족에게 자신은 "괜찮다"고 말한다.

철없는 둘째 딸 채령(문채원)은 여전히 철이 없지만, 아버지에 대한 이해는 더 깊어진다. 아버지의 부재를 통해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가족들은 자신들이 가진 진짜 중요한 것들을 찾게 된다. 그것은 돈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이다. 그녀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했던 "영원한 행복이 없듯이 영원한 불행도 없다"는 말을 되뇌이며 희망을 놓지 않는다.

이 드라마가 전하는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은기환 집안의 불행에 발단이 됐다는 죄책감으로 타인이지만 마치 아버지를 모시듯 은기환을 병수발 하는 혁기(최진혁)와 욱기(이동해)로 인해 사회적인 메시지로 확장된다. 즉 가족의 테두리를 뛰어넘어 서로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려는 사회적 공감의 차원으로 나아간다.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같은 처지의 사람을 이해하듯, 그들은 자신들 역시 힘겹게 살면서도 기환네 가족을 도우려 한다.

반면 실제로 이 사건을 일으킨 종석(전태수)은 모든 걸 다 가진 부유층 자제지만, 어쩌면 그 부족할 것 없는 삶 때문에 타인에 대한 공감이 없다. 마치 싸이코패스처럼 마음이 없는 존재로 그려지는 종석은 그래서 자본으로 둘러싸여 그 속에 감춰진 진짜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는 이른바 쿨한 현대인의 극화된 캐릭터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아버지 은기환으로부터 받은 사랑으로 착하디 착한 심성을 가진 두 딸, 애령과 채령이 엮어갈 사랑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이다. 속 깊은 애령의 심성은 심지어 망나니 남편인 진구의 마음까지 흔들어놓고, 그 가족에게도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으며, 채령은 혁기를 만나 돈보다 더 가치 있는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고 있다. 이 착한 두 딸이 만들어가는 착한 사랑에 대한 기대감은 그저 멜로가 아니라, 착한 사람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사회적 공감으로 시청자들을 인도한다.

이처럼 사회적 메시지로 확장된 '괜찮아, 아빠 딸'은 그래서 이 땅의 가난한 모든 이들에게 이 드라마가 전하는 위로의 말이 된다. 아무리 힘겨워도 우리는 서로를 공감할 수 있고, 그 공감의 힘은 돈이 주지 못하는 진짜 사랑의 가치로 우리를 따뜻하게 할 것이라는 게 그 진심어린 위안의 말이다. 투박하고 가난한 드라마 '괜찮아, 아빠 딸'이 그 어떤 화려한 언변과 외관을 가진 드라마보다 더 가슴을 울리는 건 그 진심이 우리 마음에 닿기 때문일 것이다.

'괜찮아 아빠딸',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

"괜찮다"고 하는 아버지의 말만큼 슬픈 말이 있을까. 자신은 전혀 '괜찮지 않은' 상황 속에서 고군분투하면서도 자식 앞에서는 애써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는 아버지. 세상의 아버지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얘기일 것이다.

'괜찮아 아빠딸'의 아버지 기환(박인환)이 그렇다. 그는 딸들의 결혼에만 목매는 아내 숙희(김혜옥)와 철없이 명품백 타령이나 하는 채령(문채원), 어른스럽지만 아직은 아버지의 그늘을 찾는 애령 그리고 만년백수로 소심한 빨대(?) 하나 들고 "2만원만"을 연발하며 허풍만 떨며 살아가는 처남 만수(유승목)까지 모두 가슴에 품고 살아간다.

자식의 허물조차 자신의 죄라며, "이건 내 잘못이야. 절대로 네 잘못이 아냐."하고 말하는 기환은 우리의 마음 한 구석에 늘 존재하는 아버지라는 이름의 표상 같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이 땅에 그냥 숨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죄인인 아들 딸들의 가슴을 적시는 사부곡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좀 더 흥미진진해지는 것은 그저 신파적인 아버지의 애환에 머물러 있지 않고 좀 더 의미를 확장시키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에서 기환이라는 아버지는 가족이라는 테두리 바깥으로 확장된다. 그는 자신과 오래 동고동락한 직원을 위해서 선뜻 돈을 빌려줄 수 있는 만인의 아버지며, 심지어 자신의 딸에게 해코지를 하려한 덕기(신민수)를 용서하며 "너도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말해 오히려 그를 감복시키는 아버지이기도 하다.

즉 아버지의 시선으로 이 땅의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인물, 그가 바로 기환이다. 하지만 세상의 아버지들이 모두 기환과 같은 건 아니다. 혁기(최진혁)의 아버지는 늘 술에 절어 툭하면 손찌검을 하는데다가, 자식이 죽었는데도 그걸 통해 돈이나 뜯어내려는 부성애를 상실한 아버지다. 진구(강성)의 아버지는 능력 있는 병원장이지만 망나니 자식 때문에 골치를 썩는 아버지고, 종석(전태수)의 아버지는 변호사지만 심지어 자식 때문에 죄를 저지르는 아버지다.

각박해진 사회 속에서 아버지라는 존재가 흐려지는 것은 그렇게 늘 손만 벌리면 뭐든 쥐어주는 아버지들을 당연한 듯 잊고 사는 세태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버지 스스로도 사회에서 어떤 존경받을만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이 드라마는 말하는 것 같다. 즉 이 사회에서의 아버지의 삶은 이 드라마에서는 '정의'와 연결된다. 가지고 못 가진 것이 아니라, 또 사회적인 위치가 아니라 '올바르게 살고 있는가' 하는 그 질문에 답하고 있는 아버지가 바로 기환이다.

따라서 이 드라마는 가족의 이야기면서 동시에 사회의 이야기를 담는다. 기환이 어느 날 갑자기 휘말리게 되는 사건 속에서 누군가의 누명을 벗겨 주어야할 법은 누군가에게는 돈을 벌어주거나 자식의 죄를 덮어주기 위해 이용된다. '괜찮아 아빠딸'은 그래서 전형적인 가족드라마의 형태를 띠면서도 그 안에 사회극의 단서들을 집어넣는다. "괜찮아 아빠딸"이라는 이 땅의 아버지들이 입에 달고 사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은 그래서 이 드라마에는 그저 가족주의에 머물지 않는다. 기환이 그렇게 말할 때, 공감과 함께 불쑥불쑥 솟아나는 그의 정의를 지켜주고픈 마음은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추진력이다.

'지붕킥'의 이순재, '그대 웃어요'의 최불암

많은 연기자들이 있지만 지금 우리네 아버지를 대변하는 연기자 둘을 찾으라면 단연 이들을 떠올릴 것이다. 이순재와 최불암. 이 둘은 지금 시대의 아버지들이 겪는 두 가지 양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들의 캐릭터 이미지에 공감하는 대중들의 마음 속의 아버지를 가늠하게 한다.

먼저 '거침없이 하이킥'의 야동순재를 통해 전 세대로 그 공감대를 넓힌 이후, '지붕 뚫고 하이킥'의 멜로순재로 돌아와 여전히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연기자, 이순재. 그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이 시대에 어떻게 아버지들이 적응해 나가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야동순재'에서 중요한 것은 '야동'이 의미하는 '야한 동영상'이 아니라, '야동'이라는 용어가 가지는 젊은이들의 인터넷 문화이다.

이순재는 단지 야한 걸 봤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게 아니라, 어색하지만 바로 그 인터넷 문화로 파고들어온 아버지와의 공감대가 순식간에 세대의 벽을 넘어섰기 때문에 젊은이들의 마음 속에 자리하게 된 것이다. 그는 '지붕 뚫고 하이킥'에 와서는 이제 잠깐 젊은이들의 문화를 어깨 너머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 문화를 노년에도 똑같이 누리려 한다. 로맨스 그레이를 연기하는 그가 김자옥을 위해 각종 이벤트를 하고, 줄리엔의 김자옥에 대한 호의에 질투하는 모습은 나이와 상관없이 똑같은 연애 감정을 표현한다.

이순재라는 아버지가 보여주는 핵심적인 것은 이처럼 젊은이들의 문화와 소통하기 위해 과거 고압적이었던 아버지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김자옥 앞에서 방귀를 참다가 결국 장례식장에서 그가 폭발하듯 방귀를 꾸는 순간, 우리는 권위적인 아버지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 이순재는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여전히 사위와 딸에게 고압적인 아버지지만 그것은 늘 시트콤이라는 틀 속에서 그 이면을 드러내며 무너져 내린다.

반면 '그대 웃어요'의 최불암은 정반대의 위치에서 우리네 아버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 드라마에서 최불암이 연기하는 강만복이라는 캐릭터는 지나간 아버지 시대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아침에 일어나 국민체조를 하는 이 아버지는 '돈보다 귀한 것은 인연'이라는 전통적인 가치를 쥐고 달라진 현 세태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 '귀한 인연' 때문에 과거 자신과 가족들을 살 수 있게 해주었던 회장님의 아들, 서정길(강석우)이 흥청망청 사업에 실패하자, 그를 거두어 사람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하지만 이미 달라진 세태 속에서 아버지의 이 안간힘은 쓸모없는 일처럼 여겨진다. 서정길은 '인연보다는 돈'에 휘둘려 자식까지도 거래하는 파렴치한 인물이다. 이 한 세대를 거쳐 강만복이라는 아버지와 작금의 서정길이라는 아버지가 보여주는 달라진 모습은, 이 드라마가 풍자하려는 세태를 잘 보여준다.

강만복이라는 아버지는 그래서 혼자 남은 듯한 쓸쓸함에 노년을 보내지만 그래도 이 부족한 이들을 모두 가족이라 생각하며 가슴으로 끌어안는다. 돈 때문에 평생의 인연이 끊어지는 그 과정을 목도하면서 혼자 책상에 머리를 숙이고 눈물을 삼키는 강만복의 모습은 우리 시대 아버지의 또 다른 면을 보게 한다. 달라진 세태 속에서 자꾸만 잊혀져가는 아버지의 자리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 강만복이고, 최불암은 어쩌면 허허 웃은 그 웃음 속에 담긴 수만 가지 뉘앙스로 그걸 가장 잘 연기해내고 있는 연기자라고 할 것이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는 이제 이 권위 없는 시대의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 않다. 시대는 늘 젊은이들의 것이고, 아버지는 그들과의 소통을 위해 그 세계를 기웃거리거나, 달라진 세태를 안타까워하며 과거의 가치를 향수하며 잊혀져 간다. 이순재와 최불암은 바로 그 아버지들의 모습을 대변해내는 연기자로 우리의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아버지, 당신의 자리', 낡은 역을 닮아버린 아버지

우리에게 아버지란 어떤 존재일까. 청소(靑所)역. 푸른 곳이라는 뜻이 무색할 정도로 낡은 간이역. 낡은 기차가 들어오는 그 낡은 역에는 그 역과 함께 나이 들어 낡아버린 아버지 이성복(이순재)이 있다. 어느새 자식들에게 짐짝 취급을 받게 된 그는 역 벤치에 앉아 혼잣말로 하소연을 한다. "엄니 지가 잘못 산 걸까유? 그렇쥬? 잘못 살았나봐유. 옴팡 속은 거 같아유. 거짓말 같아유." 이발관을 하는 그의 친구 고덕춘(양택조)이 말하듯, "시간뿐인 노인네들은 허섭스레기" 짐짝 취급을 당한다. 내다버릴 수도 없고 들고 있을 수도 없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안해하는 자식에게 이성복은 이렇게 말하며 속내를 숨긴다. "난 네 아버지지 네 짐이 아녀. 무거워 말어."

추석특집극으로 기획된 '아버지, 당신의 자리'는 이제 폐쇄될 위기에 있는 낡은 역, 청소역을 닮아버린 아버지 이성복을 통해 우리 시대의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본다. 며느리에게 짐짝 취급을 당하면서도 친구에게는 "며늘아가가 얼마가 같이 살자고 그래 쌌는지 귀찮아"하고 오히려 감싸는 이성복을 통해, 아버지의 거취문제가 반찬거리가 되어버린 세태를 거꾸로 꼬집는다. 그들은 엄마가 기차에 치여 죽고난 후, 정신이 이상해져 역사에서 늘 엄마를 기다리는 역전식당 손녀인 미옥(황보라)보다 못한 존재들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나름의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성공해 부잣집 딸과 결혼했지만 사실상 그 집의 아들이 되어버린 장남 민철(이정헌),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남다르지만 일단 자기 먹고 살 일에 정신이 없는 딸 청희(이혜은), 어린 시절 막내를 죽게 했다는 죄책감에 평생 자신을 괴롭히며 집 주변만을 빙빙 도는 차남 광철(권형준). 그들은 아버지의 낡은 구두가 눈에 밟히지만 자신의 삶에 발목 잡혀 그저 "미안해요"라고 말할 뿐이다. 그렇게 텅 빈 삶 속으로 불쑥 들어온 할머니 한말순(정혜선). 옛날 그 막내를 유괴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말하고 사죄하러 찾아온 그녀에게 이성복은 마음 한 자리를 내준다.

막내가 죽고 아내까지 죽게 된 이후 외로운 간이역처럼 뭐든 버티고 서 있는 게 삶이 되어버린 아버지와, 그 간이역을 기차처럼 들어왔다 떠나버리는 자식들. 속으로는 만신창이지만 겉으로는 아버지가 버티고 있는 지점에서 아무렇지도 않아보이던 이들에게 한말순의 출연은 숨겨진 아픈 속내를 끄집어내는 계기가 된다. 이처럼 이 드라마는 현재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심한 표정을 가장한 채 어느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리네 아버지들의 가슴 한 켠에 하나씩은 갖고 있을 아픔 같은 것을 들여다본다.

자식들에게 버려진 줄 알고 안쓰러운 마음에 한말순을 텅 빈 자신의 집에 데려와 그녀를 위해 장까지 봐온 이성복. 그것을 가지고 한 끼 맛난 밥상을 차려주고는 자신은 한쪽 구석에서 짠지 쪼가리에 밥을 챙겨먹는 한말순, 그리고 그 옆에서 제 밥그릇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개까지. 이들의 조촐한 한 때의 식사 장면이 그토록 훈훈하게 느껴지는 건, 어쩌면 우리가 마음 속에 두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그 속에 묻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추석특집극이지만 정작 추석 시간대에도 밀려난 '아버지, 당신의 자리'는 그 위치 그대로 이 시대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드라마다. 화려함은 없어도 낡은 것에 대한, 나이 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담담함이 오히려 가슴을 먹먹하게 해주는 것은 그 드라마가 고스란히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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