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아이라 한계라던 우려 어떻게 씻었나

 

<아빠 어디가>는 처음 화제가 되던 그 시점부터 줄곧 제기된 우려가 있었다. 그것은 아이들이 함께 하기 때문에 어른들의 예능과는 달리 할 수 있는 미션에 한계가 있을 거라는 거였다. 사실이었다. 초반 <아빠 어디가>는 그 날 잠을 잘 집 선택과 저녁거리를 아이들이 구해오는 미션 그리고 저녁을 해먹고 잠을 자면서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고 또 아침을 해먹는 미션 등을 반복했다.

 

'아빠 어디가(사진출처:MBC)'

이러한 패턴의 반복은 금세 식상해질 위험성이 있었다. 이것을 모를 리 없는 제작진은 아이들의 속내를 알아보는 몰래 카메라 설정이나 한밤중에 폐가를 다녀오는 담력 테스트 등을 미션으로 넣기도 했다. 그 자체로는 훨씬 높은 수위의 재미를 만들어내긴 했지만 여기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았다. 미션 자체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몰래 카메라는 아이들의 사적인 내면을 끄집어내는데다 자칫 어른들의 몰취미로 비춰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우려도 잠시, 몇 개월이 지난 현재 뒤돌아보면 <아빠 어디가>의 성장이 꽤 성공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토리텔링의 단조로움은 사라졌고 매 회 예상치 못한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아이들의 첫 두발 자전거 타기 같은 소재나 어른들이 즉석에서 아이들에게 들려준 흥부놀부전 같은 소재는 <아빠 어디가>의 이런 성취가 어떻게 이뤄졌는가를 잘 말해준다.

 

이것은 아이이기 때문에 한계라는 시각을 극복하고 오히려 아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소재들을 보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찾아낸 결과다. 즉 어른들에게 자전거 타기라는 소재는 그다지 매력적일 수 없지만, 아이들의 첫 자전거 타기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저 스스로 패달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는 아이들의 그 모습은 아이에게도 아빠에게도 커다란 의미가 아닐 수 없다. <아빠 어디가>는 그 아이들이 성장할 때 하나씩 보여주는 순간들을 소재화하는 기지를 발휘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낯선 농작물을 밤에 함께 찾아다니는 미션도 또 농촌 일손 돕기에 참여하는 미션도 마찬가지다. <6시 내고향>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어른들이 농촌에 가서 하는 이런 방송들을 흔하디 흔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하는 새로운 경험이라는 차원에서 다가가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어찌 보면 기존에 어른들이 했던 야외 리얼 버라이어티의 소재들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다고 해도, <아빠 어디가>는 완전히 다른 결의 이야기를 만들 것이라는 점이다.

 

친구와 함께 하는 여행이나 무인도 체험, 또는 아빠가 아이들에게 하는 흥부놀부전 같은 즉석 상황극은 이미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 흔해진 아이템들이지만 그래도 <아빠 어디가>에서는 특별해진다는 얘기다. 게다가 아이가 하나하나 체험해가면서 성장하는 모습은 아빠들에게도 일종의 성장을 만들어준다. 아이들이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보며 아빠들은 아마도 훌쩍 커버린 모습에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제 여기 나오는 아이들이 이제는 시청자들에게도 한 가족 같은 존재로 자리했다는 점이다. 든든한 맏형 민국이와, 겁은 많아도 솔직하고 순수한 윤후, 나이에 비해 의젓한 성선비 준이와 장난꾸러기 상남자 준수 그리고 효심 가득한 홍일점 지아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보게 되는 반가운 얼굴들이 된 것. 바로 이 정서적인 유대감은 <아빠 어디가>가 취하는 소재가 제 아무리 소박해도 그 스토리를 더 흥미롭게 만드는 밑바탕이다. 아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즐거움이지 않은가.

 

아이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어쩌면 이것은 어른들이 가진 잘못된 편견인지도 모른다. 어른들의 시선으로만 아이들을 바라본다면 아이들이 가진 잠재력을 우리는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거꾸로 아이이기 때문에 오히려 무한하다는 시선만이 아이들의 가능성을 더 확장시킬 수 있다. <아빠 어디가>가 프로그램의 성장을 통해 보여준 이 아이에 대한 다른 시선은 그래서 우리네 틀에 박힌 교육에 대해서도 다른 생각을 하게 해준다. 어른들의 틀에 가두지 말고 틀 밖의 가능성을 보라고 이 프로그램은 말하고 있다.

연예인 가족 프로그램, 문제는 없나

 

연예인 가족에게 방송은 특권인가. 사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는 가수지망생들에게 방송 출연의 기회는 실로 대단한 기회가 되기 마련이다. 실제로 오래도록 버스킹으로 생활해온 이들이 어떻게든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은 방송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걸 잘 보여주는 사례다. 연기지망생들은 어떻게든 방송에 나가기 위해 무수한 오디션에 지원하는 고단한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고, 개그맨들도 연극무대를 전전하면서 공채 오디션의 엄청난 경쟁력을 뚫고 나서야 비로소 방송을 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아빠 어디가(사진출처:MBC)'

하지만 이런 힘겨운 과정과는 전혀 상관없이 손쉽게 방송을 통해 이미지를 만들고 인기를 얻고 심지어 광고까지 찍으며 연예인의 길에 들어서는 이들도 있다. 바로 연예인 가족이다. 물론 부모에 이어 연예인의 길을 걷는 이들은 과거에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부모의 영향력으로 연예계에 들어왔다기보다는, 자력으로 각자 위치에서 영역을 만든 이후에 그의 부모가 연예인이었다는 것이 후에 알려지는 식이 대부분이었다.

 

고 최무룡씨의 아들 최민수, 고 허장강씨의 아들 허준호 같은 연기자들은 오히려 자신의 부모를 숨기려 노력했다. 김용건의 아들 하정우의 경우는 아예 이름을 바꿔 아버지의 아우라에서 벗어나려 애를 썼다. 그것이 자신만의 영역을 오히려 확고히 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과거에도 가끔씩 연예인들이 가족들과 함께 프로그램에 나오긴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고정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특집 프로그램식의 일회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이른바 연예인 가족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오면서 연예인과 그 자녀들이 자연스럽게 방송에 함께 나오게 되었고 자녀들은 부모의 아우라 안에서 방송 이미지를 손쉽게 가져갈 수 있게 되었다. <붕어빵>에서 주목받은 김구라의 아들 김동현은 이후 독자적인 탤런트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는 예능에서부터 드라마까지 전방위로 활동하는 연예인의 위치에 설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얻은 박찬민 아나운서의 딸 박민하 역시 드라마 <야왕>에서 확실한 연기력을 선보였고, 영화 <감기>에서는 사실상 가장 중요한 역할을 제대로 소화해냄으로써 ‘천재 아역배우’라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아빠 어디가>는 아빠와 자녀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으로서 연예인인 아빠와 그들의 자녀 모두의 이미지를 제고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예를 들면 윤민수의 아들로 나온 윤후가 이제는 거꾸로 윤후의 아빠 윤민수의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을 연예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준 연예인으로 이미지화되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미 몇 차례의 광고 촬영이 그것을 말해준다.

 

<아빠 어디가>의 사례처럼 연예인이 가족과 함께 출연하는 경우 시너지 효과가 만들어진다. 즉 해당 연예인의 가족적인 이미지가 생겨나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연예인의 가족도 연예인화될 정도의 이미지가 생겨난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연예계에서는 연예인 누구의 동생, 오빠, 언니 사진 등이 심심찮게 공개되며 “우월한 유전자”니 “미모가 오히려 낫다”는 식의 수식어가 붙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물론 이것은 호사가들의 수다일 수 있겠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연예인들이 부지불식간에 갖게 된 방송 권력의 가족적인 확장으로도 바라볼 수 있다.

 

하긴 방송에 나와 대중적인 인지도를 갖는 것이 좋기 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를테면 어린 시절부터 알게 모르게 소비되는 아이의 사생활은 그 자체로 현실 생활을 곤란하게 만들 정도의 파괴력을 가질 수 있다. 때로는 비뚤어진 팬심이 아이들에게도 악플이나 심지어 안티카페 같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아직 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이 부모의 손에 이끌려 방송에 소비되게 될 때 아이들이 자칫 원치 않는 연예인의 삶을 강요받을 수 있다는 위험성도 있다.

 

하지만 이처럼 방송이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고 하더라도, 연예인 가족에게 방송이 하나의 특권처럼 부여되는 것을 당연시하는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 여겨진다. 국민대 사회학과 최항섭 교수는 최근 <방송작가>에 기고한 글을 통해 이런 흐름을 ‘이미지권력의 세습’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다른 영역에서는 사회적으로 규제를 하고 있는 권력의 세습이 연예인들에 한해서는 시청률 확보라는 가치로 정당화하면서 아무런 제한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쏟아져 나오는 연예인 가족 프로그램의 홍수 속에서 한 번쯤 곱씹어볼 얘기다.

카메라의 변화로 보는 예능의 진화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흔한 풍경 중 하나가 MC들이 구호를 외치는 장면이다. <1박2일>은 대표적이다. 메인 MC가 “1박!”하고 외치면 다른 멤버들이 “2일”하고 외친다. 그들은 모두 화면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일렬로 서서 이 구호를 외친다. 흔한 풍경이지만 바로 이 장면에는 흔히 리얼 버라이어티라고 하는 예능 형식의 단면이 들어 있다.

 

'1박2일(사진출처:KBS)'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에서 이렇게 MC들이 일렬로 서고 한 명의 MC가 메인으로 나서는 이유는 카메라 때문이다. 카메라가 한 방향을 향해 일렬로 늘어서 있고 그 카메라들이 한 캐릭터씩을 커버하는 식으로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MC들은 그 카메라 앞에 일렬로 늘어설 수밖에 없다. 또한 이렇게 일렬로 늘어선 상황에서는 그 중 한 명이 메인을 맡아야 프로그램 진행의 혼동이 없다.

 

캐릭터쇼를 기반으로 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에서 이런 카메라들의 배열은 그나마 진일보한 것이었다. 즉 과거의 예능에서는 똑같이 정면에 카메라가 놓여있긴 했지만 여러 명이 나왔을 때 각각을 포착하는 카메라는 없었다. 리얼을 강조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은 따라서 카메라를 좀 더 많이 세워 각각의 캐릭터들의 디테일한 리액션을 더 많이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많아진 녹화분량은 좀 더 압축적이고 디테일한 편집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른바 관찰 예능으로 불리는 새로운 트렌드는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과는 사뭇 다른 카메라 배열을 보여준다. 즉 <진짜 사나이>나 <아빠 어디가> 같은 경우에(물론 도입부에 일부 도열한 인물들이 서는 장면이 들어갈 때도 있지만) MC들이 일렬로 죽 서서 어떤 진행을 하는 듯한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다. 물론 메인 MC가 있을 수도 없다. 메인 MC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프로그램을 진짜 리얼이 아닌 쇼가 되게 하기 때문이다.

 

<진짜 사나이>의 핵심적인 카메라의 묘미를 볼 수 있는 것은 생활관 장면이다. 여기서 카메라는 출연자들에게서 숨겨져 있고 따라서 출연자들은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좀 더 자연스러운 대화와 행동들을 보여준다. <아빠 어디가>의 핵심은 아이들을 따라다니는 VJ의 시선이다. 어느 한 곳에 고정된 시선이 아니라 각각의 출연자들에게 맞춰진 시선은 좀 더 다채로운 동선과 다양한 관점들을 포착해낸다.

 

카메라의 이런 다른 배치와 시선들이 별거 아니라 여겨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상에 이미 익숙해진 대중들에게 카메라의 시선은 그 자체로 어떤 특별한 느낌을 제공한다. 즉 일렬로 늘어선 카메라와 메인 MC가 나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방식은 어딘지 자연스럽지 못하고 또한 위계적인 느낌마저 준다는 점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늘 1인자, 2인자 캐릭터가 등장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카메라가 각각의 캐릭터를 따라 다니며 그들의 시선대로 스토리를 잡아내거나 아예 숨겨져 있어 출연자들이 의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관찰 카메라의 방식은 이런 중심과 변방의 구분을 없애버린다. 따라서 리얼 버라이어티가 주는 위계적 느낌과 관찰 카메라가 주는 수평적인 느낌은 그대로 시청자들에게 미묘한 감성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즉 카메라의 시선 변화는 그 자체로 변화된 시청자들의 정서와 관련해 프로그램에 대한 호불호까지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많은 이들이 유재석과 강호동이 양강체제로 이끌어오던 리얼 버라이어티 체제가 가고 이제 일반인이든 주목받지 못했던 연예인이든 새로운 캐릭터들이 쏟아져 나오는 관찰 예능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한 트렌드 형식의 변화가 아니다. 최근까지 예능의 흐름은 카메라의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발전해 왔다. 최근 들어 예능이 리얼을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카메라는 아예 숨거나(몰래카메라), 양을 늘리거나(리얼 버라이어티), 현장 속으로 더 뛰어들거나(관찰카메라) 하면서 그 위치를 바꿔왔다.

 

또한 달라진 카메라의 위치는 그 안에 서게 되는 MC들의 성패 요인까지도 좌우해 왔다. 유재석과 강호동이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에서 최고의 MC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카메라가 리더를 요구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유재석은 타인의 캐릭터를 부각시켜주는 부드러운 리더십을 보여주었고 강호동은 전면에서 팀을 이끌어가는 강한 리더십을 보여주었던 것. 하지만 관찰 카메라 형식에서는 리더로 나서는 순간 자칫 비호감이 될 가능성도 있다. 나서서 전체를 이끌어가기보다는 각각의 개성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관찰 카메라 시대가 필요로 하는 MC의 새로운 자질이다.

 

<1박2일>이 힘겨워진 것은 전성기 때의 MC들이 교체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달라진 예능 환경 속에서 여전히 비슷한 시선만을 보여주는 카메라와 그것이 보여주는 여전히 똑같은 캐릭터들에 대중들이 더 이상 공감하지 못하게 된 것도 중요한 이유로 작용한다. 같은 형식을 갖고 있는 <무한도전>도 비슷한 도전을 맞고 있지만 그나마 이 예능은 일정 팬덤을 확보하고 있고 또 새로운 형식 실험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런 변화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1박2일>처럼 전형적인 리얼 버라이어티의 시선을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들은 앞으로 이 변화에 어떤 식으로든 적응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시기다.

아이의 시선으로 성장하는 <아빠 어디가>라는 신세계

 

우리가 본 것은 아이들의 몰래 카메라였을까 아니면 어른들의 몰래 카메라였을까. 혹시 우리가 이 몰래 카메라로 본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니었을까.

 

'아빠 어디가(사진출처:MBC)'

<아빠 어디가>가 하면 뭐든 달라진다? 몰래 카메라는 재미있기는 하지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할 때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칫 어른들의 악취미처럼 보일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빠 어디가>에서 동물번역기(?)를 통해 자신들이 돌보는 젖소와 아이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몰래카메라는 의외의 상황으로 이런 우려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었다.

 

먼저 이 몰래 카메라는 의도 자체가 달랐다. 아이들을 놀리거나 당황시키려는 목적이 아니라 그들에게 순수한 동심의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한 것. 동물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이 동화 같은 경험은 아이들에게는 동물을 바라보는 남다른 시선을 갖게 만들 것이 분명했다. 그 이야기를 나눈 경험을 또 하고 싶어 아빠를 조르는 준수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달라는 요구에 부끄러움도 이긴 채 어깨춤을 추던 윤후, 그리고 송아지들과도 밀당을 하던 지아는 아마도 이 짧은 소통의 경험이 훗날 꽤 즐겁고 의미 있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아이들이 너무 진지하고 모든 걸 진짜로 받아들이는 이 몰래 카메라는 그래서 거꾸로 이를 만든 어른들의 몰래 카메라로 뒤바뀌었다. 송아지 흉내를 내던 성동일과 김성주는 뭐든 진짜로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는 엄마 아빠가 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것인가를 새삼 느끼게 됐다. 아이들의 반응을 훔쳐보던 몰래카메라가 어른들의 반응을 보는 몰래카메라로 바뀌게 된 것. 이러한 역전은 <아빠 어디가>만이 보여줄 수 있는 묘미가 아닐까.

 

이렇게 된 것은 아이들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실로 아이들의 존재는 지금껏 주로 어른들의 시선에 맞춰져 있던 예능 프로그램들이 바로 그것 때문에 보여주지 못했던 신세계를 우리에게 열어주고 있다. 생각해보면 그저 대단할 것도 없는 시골마을에서의 하룻밤이나 저녁 한 끼가 그토록 새롭게 다가왔던 것은 바로 아이들 덕분이었다. 어른들이 모이면 으레 게임을 하고 자극적인 벌칙수행을 하던 것들이 아이들이 서게 되자 그 눈높이로 달라지게 됐던 것.

 

심지어 무인도에 가서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자 그 불모의 공간이 그저 야생의 생존지가 아니라 아이들에게는 모험심을 갖게 만드는 보물섬으로 변모하지 않았던가. 앞으로 펼쳐질 ‘친구와 함께 가는 여행’ 역시 그런 점에서 보면 지금껏 수없이 여행 버라이어티들이 해왔던 친구 미션과는 전혀 다른 재미를 선사할 가능성이 높다. 아이들의 눈높이가 거기에는 있기 때문이다.

 

처음 <아빠 어디가>가 호평을 받을 때조차 먼저 걱정스럽게 나온 의견들은 두 가지였다. 그 하나는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을 수 없는 주말예능에서 자칫 아이들을 데리고도 자극적으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점이 그것이다. 초반부 몇 차례 몰래 카메라 설정에 대한 찬반은 바로 이런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여행에서 보여줄 수 있는 소재가 한정적일 거라는 걱정이었다. 아이들이기 때문에 밥 해먹고 하룻밤 자는 것이 반복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

 

하지만 최근 <아빠 어디가>를 보면 이 두 가지 우려가 괜한 걱정이었다는 걸 느끼게 된다. 몰래 카메라마저 뒤집어버리는 아이들의 순수함이 주는 자신감과, 아이들의 시점으로 바라보면 모든 여행이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할 수 있다는 확신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아빠 어디가>를 보면서도 어른들의 예능의 관점에서 이를 쳐다봤던 것이 분명하다. 저 몰래 카메라를 하던 김성주와 성동일이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결과는 어떻게 됐던가. 그들이 전혀 다른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아이들은 우리에게 그네들의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이것은 <아빠 어디가>가 지금의 대중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른들의 세상에 갇혀 그 어른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던 우리들에게 이 프로그램은 갑자기 아이들의 시선을 보여준다. 심지어 동물과도 소통할 수 있다고 여기는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에게는 실로 충격적인 일이 아닌가. 다 큰 어른들이 소통할 줄 모르고 서로 다른 의견에 대해 틀렸다고 싸우는 현실 속에서 <아빠 어디가>가 보여주는 동화는 그래서 그 어느 것보다 더 비판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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