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수업’, 넷플릭스라서 허용되는 용감한 드라마라는 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인간수업>은 한 마디로 파격적인 드라마다.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이지만 19금이라는 사실 자체가 그렇다. 그것은 고등학생들이 등장하지만 <인간수업>이 그 흔한 청춘물과는 거리가 멀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드라마는 청소년 성매매 어플을 통해 돈을 버는 오지수(김동희)와 실제 성매매를 하는 여고생 서민희(정다빈) 그리고 오지수의 이 비밀을 알게 되면서 그 범죄의 세계 속으로 깊숙이 함께 들어가는 배규리(박주현) 같은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이다.

 

고등학생들이지만 우리가 드라마를 통해서 봐왔던 그런 모습은 발견하기 어렵다. 이들이 처한 현실은 한마디로 살풍경하다. 시종일관 욕과 담배를 입에 달고 살고, 학교에서는 평범해 보이지만 방과 후가 되면 저마다 돈을 벌기 위한 살벌한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어눌하면서도 돈다발에 대한 욕망에 휘둘리며 폭주하기도 하는 오지수라는 인물은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토록 순한 양처럼 보이는 아이가 그토록 험한 세상과 매개된 건 스마트폰 어플 같은 한 단계의 차폐막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게임이라도 하듯 어플을 통해 저쪽 성매매와 범죄의 세상에 개입하지만, 본인이 그 안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결국 이 평범한 고등학생의 일상과 저 범죄의 세계 사이를 매개하며 차단해줬던 스마트폰의 가면이 벗겨지면서 오지수는 돌이킬 수 없는 위험 속에 빠져버린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 고등학생들은 이 같은 범죄의 세계 속에 저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 걸까.

 

그것은 ‘어른의 부재’ 때문이다. 오지수는 부모가 부재하다는 걸 숨긴 채 학교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 성매매 어플을 운용한다. 이런 사정은 꽤 잘 나가는 엔터테인먼트 대표인 부모를 두고 있는 배규리도 마찬가지다.

 

배규리의 부모는 자신의 회사에서 연습생들을 마치 상품 다루듯 하는 것처럼, 자식도 그렇게 다룬다. 그런 삶에서 배규리는 숨 쉬는 게 토가 나올 것 같다고 말한다.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숨이 쉬어지는 그런 삶이 그에게는 무의미하고 심지어 구토가 난다는 것. 이것은 부유한 가정에서 살아가는 배규리가 그와는 너무나 다른 거친 세계 속에 발을 담고 있는 오지수와 ‘동업자(?)’가 되는 이유다.

 

이 드라마에서 어른들은 아이들까지 착취해 가는 그런 인간들이다. 그래서 오지수와 서민희, 배규리 같은 아이들의 치열해지는 삶은 마치 그 어른들과의 사투를 벌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나마 이 드라마에 유일한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건 왕철(최민수)이라는 인물이다. 만만찮은 과거를 숨기고 있는 이 인물은 폭력이 난무하는 그 범죄의 세계 속에서 그나마 이 아이들을 드러내지 않고 신경 쓰는 어른이다.

 

아마도 <인간수업>은 최근 벌어진 충격적인 n번방 사건을 떠올릴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n번방 사건이 온 세상에 드러났을 때 아이들보다 더 충격을 느낀 건 어른들이었다. 공공연하지는 않지만 어느새 아이들이 그런 세상에 들어가 있을 때, 어른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결코 그런 세상에 있지 않을 거라 애써 부인했기 때문이다. 그 부인은 결국 부재를 낳고 그 부재는 n번방 같은 충격적인 사건으로 이어진다. <인간수업>은 그래서 마치 우리가 부인했지만 이미 벌어지고 있는 그런 세계를 불편해도 있는 그대로 꺼내놓은 것처럼 보인다.

 

국내 드라마에서는 결코 보지 못했던(어쩌면 볼 수 없었던) 이 파격적인 이야기가 거침없이 전개되었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일 지금의 지상파나 케이블, 종편에서 이 드라마가 제작되었다면 아마도 그 결과는 지금 같은 파격과는 거리가 먼 두루뭉술한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인간수업>은 그런 면에서 우리네 드라마도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용감하게 꺼내놓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작품이다. 첫 작품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진한새 작가의 거침없는 필력과 김진민 감독의 섬세하면서도 스타일리시한 연출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울 정도로 몰입감을 만들어준 젊은 배우들의 연기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이태원 클라쓰>에서의 연기를 잊게 만드는 김동희, <반의반>은 그가 가진 연기의 반의반도 보여주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낸 박주현, 어린 나이부터 연기를 해왔고 드디어 열매를 맺은 듯 보이는 정다빈 그리고 이 모두를 끌어안는 블랙홀 같은 강력한 마력의 연기를 보여준 명불허전 최민수까지. <인간수업>은 이들에게는 그 연기를 확장해준 일종의 ‘연기수업’이기도 했다.(사진:넷플릭스)

‘김사부2’, 한석규 같은 사부와 성장하는 안효섭과 이성경

 

보통 금요일을 우리는 ‘불금’이라 부르지만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2>에서 돌담병원의 금요일은 ‘살아있는 금요일의 밤’이라 불릴 정도로 아비규환이 되는 요일이다. 유독 사고들이 많아 갖가지 환자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 눈치 챘다시피 ‘살아있는 금요일의 밤’이라는 부제는 조지 로메로 감독의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따온 것이다. 그만큼 죽었다 복창해야 하는 정신없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뜻이다.

 

고라니가 갑자기 나타나 생긴 버스 사고 때문에 외국인 공연단 사람들이 큰 부상을 입고 들어오고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약을 먹인 후 스스로 뛰어내려 동반자살을 하려던 가족이 응급실로 실려 들어온다. 또 일반 감기약을 과다복용해 의식이 없는 아이까지 응급실에 실려 오면서 의사와 간호사들은 정신없는 상황이 된다.

 

그런데 이 상황을 케어해야 하는 서우진(안효섭)은 동반자살 가족 때문에 과거 자신에게도 벌어졌던 가족동반 자살시도의 트라우마를 떠올리며 굳어버린다. 김사부(한석규)는 자살시도를 한 아빠를 살피하고 했지만 서우진은 왜 죽으려 한 사람을 굳이 살려야 하냐고 거부한다. 트라우마 때문에 서우진은 그 ‘살아있는 금요일의 밤’에 응급실을 떠나버린다.

 

급하게 두 환자의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마취과 의사도 부족하고 수술과 서포트를 해줘야 할 서우진과 차은재도 아직 도착하지 않자 김사부는 고민에 빠진다. 마침 김사부에게 경쟁의식을 느낀 박민국(김주헌)이 돌담병원 원장직을 수락하기로 마음먹고 마취과 의사를 지원해주고, 서우진과 차은재가 나타나 수술이 시작된다.

 

다행스럽게도 서우진과 차은재는 그 수술을 통해 트라우마 극복에 한 걸음을 내딛는다. 서우진은 동반자살을 시도했던 아빠를 성공적으로 수술하고, 차은재는 수술방 트라우마를 넘어서 끝까지 서포트를 해낸다. 아직 밝혀진 건 아니지만 김사부가 차은재에게 건넨 약은 ‘플라시보(위약)’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믿음을 주기위해 플라시보를 써서 트라우마를 이겨내게 하지 않았을까.

 

<낭만닥터 김사부>는 사실 그 제목에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거의 담겨있다. 낭만과 닥터와 사부가 그 키워드다. 사실 우리네 사회에서 배울만한 어른은 점점 판타지처럼 여겨지는 면이 있다. 물론 숨은 어른들이 많겠지만 안타깝게도 신문지면을 채우는 건 어른보다는 흔해빠진 꼰대들이다. 그래서 <낭만닥터 김사부>는 꼰대가 아닌 진정한 사부가 될 수 있는 어른을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의사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 있다.

 

그 사부의 모습은 물론 ‘낭만적’인 것이지만, 그래서 각박한 현실에 더 묵직한 메시지를 남긴다. 의학드라마이면서도 <낭만닥터 김사부>가 다르게 보이는 지점은 바로 ‘우리 시대의 사부 혹은 어른’을 이야기고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진정한 사부가 있어야 현실에 상처 입은 청춘들도 트라우마를 넘어 성장할 테니.

 

‘살아있는 금요일의 밤’은 그래서 다른 의미로도 들린다. 모두가 불금을 즐길 때도 저렇게 사투를 벌이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래서 그 금요일이 ‘살아있을 수’ 있다는 것. 진정한 사부들이 있고 그 사부들과 함께 성장하는 청춘들이 있어 그게 가능하다는 그런 의미다.(사진:SBS)

‘유퀴즈’, 유재석이 고덕동에서 만난 진짜 어른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고덕동에서 우연히 발견한 오래된 세탁소.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의 유재석과 조세호를 맞은 이태석(64세)씨는 그 곳에서만 35년 간 일을 해왔다고 했다. 아침 6시면 나와 밤 10시, 11시까지 하루 15시간을 일하고, 토요일도 학생들 교복을 맡기는 분들이 많아 일요일만 쉰다는 아저씨는 거의 주 90시간을 꼬박 세탁소에서 보내고 계셨다.

 

놀라운 건 세탁 일을 한 지가 무려 50년이 됐다는 사실이다. 64세의 나이라면 그리 많은 것도 아닌데 반백년을 한 길을 걸어왔다니.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막내가 갓 백일이었다고 했다. 홀어머니에 동생 셋을 건사해야하는 상황에 놓인 장남 이태석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세탁 일을 배웠다고 했다. 당시 겨우 열 네 살 소년이었다. 한 때 그래도 직업군인이 되고 싶었다는 아저씨는 키가 작아 못했고 이 일을 천직이라 여기가 살았단다.

 

세탁 노하우를 묻는 유재석에게 툭 던지는 아저씨의 답변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어떤 분 하나라도 옷을 맡기면 나는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 게 아니고 ‘정성이 노하우’라는 것. 그 날의 공식질문이었던 “나에게 스스로 상을 준다면 어떤 상을 주겠냐?”는 질문에도 아저씨는 생각 자체를 안 해봤다고 했다. 다만 열심히 살았을 뿐이고 상은 한 번도 받아본 적도 없다는 것.

 

대신 아저씨는 배달을 하면서 기분 좋았던 일화를 들려주셨다. “옷을 맡기셨는데 주머니가 터졌는데 그걸 내가 꿰매서 줬더니만 손님이 입어보고 주머니 빵구난 거 안 들어가니까. 그 손님이 그러더라구요. 존경한다고...” 아저씨에게는 그런 따뜻한 말 한 마디가 그 어떤 것보다 기억에 남는 상이었다.

 

그런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같이 수십 년을 똑같은 일을 반복한 그 성실함은 어디서 왔을까. 지금 그 가게를 샀을 때가 제일 행복했다는 아저씨는 서른 살까지 남의 집 살이를 했다고 했다. “제가 어릴 때 배를 많이 곯았어요.. 거의 한 5일을 굶어봤는데 길 가다가 대추를 하나 주웠는데 목에 안 넘어가더라고 밥을 안 먹어서 붙어서 그런가.” 아내가 아이를 가졌을 때 통닭 한 마리를 못 사줘 다리하고 중간 갈비하고 있는 걸 사다준 게 지금도 미안하다는 아저씨. 아마도 가족들에게 그런 가난은 겪게 하고 싶지 않았으리라.

 

당시 한 달 월급으로 만원을 받았다는 아저씨. 그 가치가 얼마인지 알기 위해 조세호가 당시 짜장면 한 그릇 가격을 묻는데... 아저씨는 드라이 가격이 300원이었다고 말한다. 짜장면 한 그릇을 먹는 것보다 드라이 하나를 더 하는 것이 아저씨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었나 보다.

 

딸은 결혼해 캐나다에서 살고 서른 살 아들은 경찰공무원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하며 아버지는 아들 취업 걱정만 하셨다. 어려서는 동생들 걱정하고 나이 들어서는 자식 걱정하는 아저씨. 신께서 단 한 가지 소원만 들어준다면 어떤 소원을 빌고 싶냐는 질문에도 아저씨는 주저없이 “아들 취업”을 얘기하셨다.

 

왜 돈을 많이 갖게 하면 좋지 않냐는 조세호의 질문에 아저씨는 돈 많으면 살기가 힘들다고 말씀하셨다. “적당하게 해서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안하고 빚 없고 그렇게 살면 딱 좋은 거예요. 글쎄 돈이 많으면 좋겠지요. 저는 그렇게 많을 필요가 없어요. 살아갈 수 있는 만큼만 있으면 좋겠어요. 이거 해서 열심히 먹고 살면 딱 좋아요.” 아마도 많은 보통의 서민들의 꿈이 이럴 것이다. 굉장한 부자를 원하는 게 아니라 그저 편안히 살 수 있는 것.

 

마침 생일에 맞춰 귀국해 있던 딸은 아버지의 촬영소식을 듣고 동생과 함께 세탁소를 찾았다. 딸 이선아씨는 아빠가 어떤 아빠였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일을 너무 열심히 하셔서 밤에 늦게 오셨어요. 아빠 소원이 가게 하는 사람만나지 말고 회사 다니는 사람 만나야 졸업식도 휴가 내고 갈 수 있다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다 정적 아들 딸 졸업식도 못갔던 게 못내 마음에 남았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아들이 툭 던지는 말이 너무나 먹먹했다. “저는 이렇게 살고 싶었어요. 너무 너무 부지런하셔가지고요. 그냥 맨날 새벽마다 나가시고 아빠는 항상 아침 6시면 일어나가지고 일 나가시고 그러셔가지고.. 이렇게 가장 존경하고... 그런 부지런함이랑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책임감이 되게 닮고 싶더라구요. 그 전에는 몰랐는데 정말 정말 성실하게 살아오신 분이시구나 이렇게 느껴져 가지구.. 그리고 여기 보시면은 저도 얼마 전에 알았는데 여기 아빠가 맨날 서 있잖아요 이게 시멘트인데 바닥이 파져 있어요.”

 

딸은 아빠가 진짜 성실하시다며 매일 같이 아침 7시에 열고 밤 10시에 문 닫는 그 스케줄이 ‘누구나 하는 일인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아빠의 자서전을 쓰게 된다면 첫 문장을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딸은 “누군가의 첫째 아들, 누군가의 가장, 누군가의 남편, 그리고 이태석”이라고 말했다. “아빠 성함을 제일 처음 못 올리는 이유는 아빠 자서전인데도 불구하고 아빠에게 따랐던 부수적인 책임감들이 너무 많으셨던 것 같아요..” 이런 분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존경받아 마땅한 어른이 아닐까.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고덕동의 세탁소 장인에게서 우리 시대 진짜 어른의 모습이 그려졌다.(사진:tvN)

‘아름다운 세상’, 비지상파 드라마들 호평 받는 또 하나의 이유

 

이 정도면 뚝심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자신감이라고 해야 할까. 종영한 JTBC 금토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은 사실 너무 진중한 주제의식과 어두운 분위기 탓인지 초반 시청률에서도 화제성에서도 그다지 주목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래도 흔들리지 않고 뚝심 있게 하고자 한 이야기를 끝까지 밀고 나갔다. 조금씩 시청자들이 그 드라마의 진심을 알아보게 되었고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시청률도 서서히 올랐고 드라마도 화제가 되었다.

 

결국 2.1%(닐슨 코리아)로 다소 저조하게 시작했던 시청률은 꾸준히 상승해 마지막 회 5.7% 최고시청률을 기록하며 마감했다. 중요한 건 결코 쉽지 않은 이 드라마의 이야기를 끝까지 완성도 높게 추구해 마무리했다는 점이다. 학교폭력으로 인해 다툼이 있었고 그래서 사고로 추락한 한 아이의 이야기는 그러나 사적인 복수의 차원을 넘어서, 제대로 된 진실규명과 사법정의가 이뤄지는 것이 진정한 ‘아름다운 세상’을 향해 나갈 수 있는 길이라는 걸 보여줬다.

 

학교 옥상에서 떨어진 아들이 자살로 위장되고 심지어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다는 누명까지 쓰게 되는 그 충격을 그 부모가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연루된 이들에 대한 복수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박무진(박희순)과 강인하(추자현)는 서로를 의지해가며 이 난관들을 헤쳐 나가고, 그들이 하는 일이 사적 복수가 아니라 좀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선택들이라는 걸 되새긴다.

 

그래서 말미에 이르러 박무진과 강인하는 아들의 추락과 누명에 연루된 두 아이들을 구해낸다. 아들 선호(남다름)를 집단적으로 괴롭히게 만들었고 추락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했던 준석(서동현)은 죄를 저지르고도 벌을 받지 않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 그래서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려 하지만 박무진은 그것이 진정으로 용서받는 길이 아니라고 말하며 그를 구해낸다. 또 강인하는 준석의 아버지 오진표(오만석)에게 성폭력을 당하고 이것이 두려워 가해자로 선호를 지목했던 다희(박지후)를 껴안고 “너의 잘못이 아냐”라고 말해준다.

 

박무진과 강인하는 아이들은 잘못이 없다는 걸 확인시켜주고, 이 문제들이 결국은 어른들의 잘못이라는 걸 명백히 한다. 이로써 죄를 지은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까지 죄의식 속에 살아가지 않게 만들며, 죄가 있다면 벌을 받고 이를 뉘우치며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걸 아이들에게 보여준다. 어쩌면 이것은 이 드라마가 우리 사회 전체에 던지는 가장 큰 메시지일 게다. 수많은 사람을 죽게 만들고도 그만한 벌을 받지 않은 채 버젓이 멀쩡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보며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 그런 아이들이 갖게 되는 실망감, 분노, 좌절, 무력감 등은 과연 우리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게 만들 수 있을까.

 

시작은 소소했지만 결말은 단단했던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드라마가 가능했던 건 애초의 그 의도들을 흩트리지 않고 끝까지 멀어 붙일 수 있어서다. 이런 행보는 여러모로 지상파 드라마들이 초반 부진을 ‘기획’이라는 명목 하에 개입해 이리저리 뒤흔들기도 했던 행보들과는 사뭇 다른 면모가 아닐 수 없다. 시청률에 못 미치면 대본을 고치고 무리하게 캐릭터의 설정을 바꾸거나 심지어 분쟁이 일어나 주인공 배우가 바뀌는 사태까지 벌어지곤 했던 게 지상파 드라마가 한때 해왔던 행보들이다.

 

물론 지금은 지상파도 시대적 요구에 의해 콘텐츠 완성도에 집중하려는 노력을 하는 추세지만, 여전히 시청자들에게는 그 많은 논란들이 잔상처럼 남아있는 게 사실이다. 일단 편성을 했으면 충분히 하려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내버려두는 것. 어쩌면 비지상파 드라마들이 최근 몇 년 간 약진한 가장 큰 비결이 아닐까.

 

최근 종영했던 tvN 드라마 <자백> 역시 단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그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이 드라마는 한 번도 한 눈 팔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일필휘지하듯 밀어붙였다. 16부가 한 편의 영화처럼 꽉 짜여진 완성도를 가진 놀라운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그것이 허용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리스크가 크지만 완성도를 위해 내버려둔 결과는 좋은 작품으로 돌아왔고 결국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게 되었다.

 

다소 시청률이 저조하다 하더라도 끝까지 이야기를 밀어붙일 수 있다는 건 드라마들이 그저 재미만이 아니라 진중한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 된다. 비지상파 드라마들은 그런 기반 아래서 세상에 대한 진지한 질문들을 던져왔고, 거기에 시청자들은 화답했다. 지금의 비지상파 드라마들이 갖게 된 위상은 바로 이런 한 걸음 한 걸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름다운 세상>은 그 또 하나의 예가 되는 작품이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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