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라수마나라’, 괴물신인 최성은의 마법이 던지는 질문

안나라수마나라

뮤지컬 드라마라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안나라수마나라>가 뮤지컬 드라마라는 이야기는 어딘가 이 작품이 비현실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진지한 장면에서 대사가 아닌 노래를 부르는 광경이 만들어내는 비현실적 풍경. 마치 인도 영화를 보다보면 갑자기 출연자들이 튀어나와 노래하고 춤추는 그런 광경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안나라수마나라>? 제목이 뭐 이래? 발음하기도 기억하기도 쉽지 않은 제목은 더더욱 이 드라마가 그릴 세계가 현실에서 몇 발짝 위 허공으로 띄워 올려진 그런 세계라는 뉘앙스를 풍긴다. 그리고 그건 실제로도 그렇다. 엄마는 집을 나갔고 아빠는 빚쟁이에 몰려 역시 도망친 윤아이(최성은)가 어느 날 폐쇄된 유원지에서 대뜸 “당신은 마술을 믿습니까?”라고 묻고는 갖가지 마술을 보여주는 마술사(지창욱)를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 

 

고등학생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현실이지만 동생 유이까지 챙겨야 하는 윤아이는 가끔씩 찾아오는 빚쟁이들에게 시달리고, 학교에서는 돈이 없어 구멍 난 스타킹을 신고 다니는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반 아이들의 시선을 감당하며 살아간다. 알바를 전전하다 편의점 사장에게 성추행까지 당할 뻔한 윤아이는 다행히 마술사의 도움을 받고, 마술사가 보여주는 마법 같은 시간 속에서 잠시 현실을 잊고 행복해한다. 

 

하지만 그건 잠시 동안의 행복일 뿐, 부모 없이 살아남아야 하는 윤아이는 이름과 나이와는 걸맞지 않게 점점 어른 같은 고민과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반면 어른이지만 여전히 아이 같은 해맑은 얼굴로 나타나 마술을 믿냐고 묻는 마술사는 윤아이에게 마술과 마법이 무엇인가를 알려준다. 무언가를 나타나게 하고 사라지게 하는 건 마술이지만, 그걸로 누군가 행복해하고 웃는 건 마법이라고. 

 

<안나라수마나라>는 마술이라는 소재를 가져와 그걸 믿느냐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아이와 어른을 구분한다. 마치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믿는 아이와 그런 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어른의 차이를 마술이라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신기한 광경들로 구분해내는 것. 그러면서 마술이라는 어찌 보면 그다지 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일과, 이른바 지위나 돈 같은 걸로 평가되는 사회로부터 인정받는 일 앞에서 힘겨워하는 아이들을 보여준다. 

 

윤아이를 좋아하는 나일등(황인엽)은 검사장인 아버지(유재명)가 재력과 지위의 힘으로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을 앞서 달려 나가는 삶을 살아왔다. 늘 일등인 것만 중요하고, 그 끝에는 아버지가 원하는 법조인이 되는 것이 당연시되는 삶. 하지만 윤아이를 통해 마술사를 만나면서 나일등을 깨닫게 된다. 정작 그 삶에 ‘나’는 없다는 걸. 내가 원하는 삶은 애초부터 지워져 있었다는 걸. 그는 윤아이가 마술사에게 마술을 배우며 행복해하는 그 광경을 보면서 자신도 그런 꽃밭 같은 길을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안나라수마나라>는 오로지 성공해 돈과 지위를 얻어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만들어내는 폭력을 이야기한다. 그 모두가 정해놓은 길과 틀을 벗어나며 실패자가 되고 정신병자가 되며 심지어 범죄자로 몰린다. 그래서 그 공포 속에서 아이들은 꿈을 꾸지 않고 그저 어른들이 정해 놓은 길을 더 앞서 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런데 그런 세상을 만든 건 어른들이다. 윤아이는 어른들에게 진실을 이야기해도 제멋대로 왜곡되는 현실을 겪으며 말한다. 자신이 힘든 게 돈 때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어른들 때문이었다고. 

 

과연 당신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가. <안나라수마나라>는 부모 없는 세상에 내던져진 윤아이와 부모가 깔아놓은 아스팔트 위만을 달려오며 정작 저 편의 꽃길로는 들어가 볼 엄두도 내지 않았던 나일등, 그리고 무거운 현실로부터 튕겨져 나가버림으로써 그 누구도 믿지 않는 사람처럼 되어버린 마술사가 겪는 사건들을 통해 그런 질문을 던진다. 

 

뮤지컬이라는 다소 비현실적으로 여겨졌던 요소들은 이러한 묵직한 현실적인 질문을 마술이라는 소재를 통해 던지는 과정에서 정말 마법 같은 힘을 발휘한다. 믿을 수 없는 마술적인 풍경들이 음악과 더해지면서 오히려 믿고 싶은 광경으로 바뀐다고나 할까. 마술사 역할을 연기한 지창욱이야 이미 여러 다른 작품들을 통해 그 연기력이 잘 알려진 배우지만, 이 작품에서 놀라운 건 윤아이라는 역할을 연기한 최성은이다. 

 

아직 아이지만 어른들의 세상에 내던져져 갖게 되는 깊은 슬픔을 그가 작품 전체에 깔아줬기 때문에 마법 같은 많은 순간들이 ‘믿고 싶게’ 만들어졌다. 무엇보다 그의 눈물과 환한 웃음에 담겨 강렬해진 이 작품의 질문이 그렇다. 끝내 버텨낸 윤아이는 그래서 이 작품 속 어떤 어른들과도 다른 어른의 면모를 갖게 된다. 

 

흔히들 마술에 비유되는 영화나 드라마의 영상들은 편집과 CG와 촬영술의 결합으로 환상적인 세계를 만들어낸다. 그건 현실에는 없는 판타지일 수 있지만 믿고 싶은 세계다. 꿈보다는 돈과 지위를 얻는 성공을 믿고, 마술 같은 행복감을 주는 경험보다는 지극히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수치들로 채워진 경험들만을 믿는 세상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안나라수마나라>는 꿈을 믿고 산타클로스를 믿으며 마술을 믿는 아이 같은 순수한 세계를 화두로 던짐으로써 우리가 마주한 차가운 ‘어른들의 현실’을 보게 해준다. 6부작의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윤아이라는 인물이 외운 주문으로 마법 같은 위로를 주는. 안나라- 수마나라.(사진:넷플릭스)

‘지헤중’, 헤어져도 사랑이 영원한 이유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평생 2월이면 애들 졸업시키는 게 업이었는데 내 인생에서 네 엄만 어떻게 졸혼시켜야 될지...” SBS 금토드라마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에서 하영은(송혜교)의 아버지 하택수(최홍일)는 딸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는 중학교 교감선생님으로 매년 아이들과의 헤어짐을 반복했다. 하영은이 그게 힘들지 않았냐고 묻자 아버지는 말한다. 

 

“못 본다고 인연이 끊기나 어디? 교문 밖으로 나갔다 뿐이지. 살다가 어려운 문제 부딪쳤을 때 아 택수 선생님이 이러라고 했지? 그 때 그 녀석은 잘 사나? 가끔 궁금해 하고. 그렇게 인생의 어느 자락에 늘 있는 거지.” 아버지는 헤어짐이 끝이 아니라는 걸 말한다. 하지만 정작 오래도록 함께 살아왔던 아내와의 헤어짐 앞에서는 난감해 한다. 그러면서도 집을 고쳐 놓고 나가겠다고 아내에게 말한다. 아내가 원하는 졸혼을 해주겠다는 것. 아버지에게 헤어짐은 또 다른 사랑의 표현인 셈이다. 

 

하영은은 결국 파리로 떠나는 윤재국(장기용)과 함께 가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떠나는 그의 짐을 함께 싸준다. 여기 이 곳에 자신이 해야 할 일들과 함께 하는 이들이 있고 무엇보다 자신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하영은을 윤재국도 애써 잡아 끌지 않는다. 물론 미련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의 선택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같이 떠날 비행기 티켓을 산 이유를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영은씨 입장, 상황 안 되는 이유 충분히 이해하고 납득하니까. 그런데도 티켓을 끊고 같이 가자고 한 건 내 마음 그대로라는 거. 그건 말해야 될 것 같아서. 내가 혼자 떠난다고 해도 내 마음이 식어서거나 내 마음이 죽어서가 아니라, 나는 여전히 하영은이란 여자를 사랑하고 내일도 모레도 그럴 거라는 거. 그렇게 이어갈 거라는 거. 그건 꼭 말해야 될 것 같아서.” 그는 헤어짐을 선택하지만 그것이 사랑의 끝은 아니라고 한다.  

 

그 말을 건네는 윤재국과 그 말에 담긴 그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아는 하영은 앞에는 이제 따로 가야할 갈림길이 놓여있다. 하영은의 엄마 강정자(남기애)는 인생을 갈림길에 비교해 이렇게 말했다. “인생이라는 게 구불구불한 길을 가는 거 같아. 갈림길도 만나고 절벽도 만나고. 같이 가던 사람들도 누군 이쪽 길 가고 누군 저쪽 길 가고. 아쉽지. 같이 가고 싶지. 그래도 어떡해? 갈 길이 다 다른데...” 그렇게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고 그는 얘기한다. 

 

보통의 멜로들은 대부분 ‘만남’과 ‘결실’의 과정을 담는다. 그래서 그 흔한 동화 속 해피엔딩은 늘 “그들은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아니던가. 하지만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는 그렇게 함께 오래오래 사는 것만이 해피엔딩도 아니고, 사랑의 완성도 아니며 서로를 끝까지 행복하게 하는 일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저마다 주어진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만나고 사랑하지만 또 헤어질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헤어졌다 해도 그 사랑이 남긴 향기가 그 삶에 묻어있는 한 그 사랑은 끝난 게 아니라고.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는 그래서 잘 만나는 것만이 아니라, 잘 헤어지는 것이 그 사랑을 얼마나 완성하는가를 보여준다. 그것은 사랑만이 아니라 일도 삶도 그렇다. 황대표(주진모)가 하영은에게 그가 만든 브랜드 소노를 갖고 독립하라 제안하는 건 일에 있어서의 아름다운 헤어짐을 추구하는 모습이다. 여기에 대해 하영은이 홀로 퇴사해 소노가 아닌 다른 자기만의 브랜드에 도전하겠다고 나서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황대표의 호의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자기가 가야할 길을 가겠다 선택한 것. 이 선택에 황대표도 기꺼이 고개를 끄덕여준다. 

 

하영은의 친구 전미숙(박효주)이 결국 암으로 사망하게 되는 그 과정을 통해서 이 드라마가 그리려 한 것 역시 헤어지는 과정으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남편과 아이 그리고 친구들과 잘 헤어지는 과정을 통해 그는 모두에게 사진 속 그 밝았던 그 모습으로 남았다. 그런가 하면 민여사(차화연)가 죽은 아들과 끝내 헤어지지 못하고 집착하는 모습은 정반대의 의미를 전한다. 잘 헤어지지 못하는 삶은 결코 행복해질 수도 없다는 걸. 

 

만남의 스파크를 다루곤 하는 청춘들의 멜로와 달리, 헤어짐도 사랑의 과정이라고 말하는 이 드라마는 어른들의 멜로다. 잘 헤어지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것이 삶과 사랑을 영원으로 만드는 길이라고 드라마는 말한다. “어느 계절인들 아쉽지 않은 계절이 어딨어. 어느 꽃인들 꺾어서 곁에 두고 싶지 않은 꽃이 어딨어. 그런데 보내야지. 놔둬야지.” 하영은의 어머니인 강정자의 말처럼, 그렇게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게 우리네 삶이 아닌가. 그럼에도 살아가다보면 또 어느 순간 기적처럼 다시 만나는 그런 일들이 가능할 지도. 잘 헤어질 수 있다면.(사진:SBS)

'스타트업', 청춘들이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샌드박스들

 

한 명의 청춘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샌드박스들이 필요할까. tvN 토일드라마 <스타트업>을 보면 서달미(배수지)나 남도산(남주혁) 같은 청춘들의 성장기에 무수히 많은 샌드박스들이 존재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넘어져도 다치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샌드박스들이 있어 이들이 포기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었다는 것.

 

먼저 서달미에게 가난해도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그 삶을 통해 전하고 간 아버지 서청명(김주헌)이 있다. 그는 서달미가 놀이터에서 그네를 마음껏 탈 수 있게 그 밑에 모래를 깔아줬던 인물이다. 물론 꿈이 실현되기 직전에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지만, 아버지의 그 삶은 서달미가 가난해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다. 대학에 합격했을 때 할머니 최원덕(김해숙)이 가게를 팔아 학비를 마련하자 대학을 포기하고 돈을 벌어 할머니의 푸드트럭을 사준 서달미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서달미의 든든한 샌드박스가 되어준 사람은 할머니 최원덕과 그의 부탁으로 서달미에게 남도산이란 이름으로 편지를 써줬던 한지평이었다. 잘되면 찾아오지 말고 힘들면 언제든 찾아오라는 최원덕의 희생적인 삶이 있었고, 풀죽은 서달미에게 첫사랑의 설렘과 더불어 위로의 힘을 전해줬던 한지평의 편지가 있었다.

 

또한 서달미가 가진 아이디어들은 남도산을 비롯한 이철산(유수빈), 김용산(김도완)의 삼산텍 같은 엔지니어들과의 협업을 통해서만이 실현 가능해지는 것들이었다. 남도산 역시 삼산텍을 창업하게 된 데는 없는 살림에 아들의 미래에 투자한 부모님들의 희생이 존재했다. 무엇보다 이들의 가능성을 알아봐주고 투자해주는 사회적 장치들이 요구됐다.

 

서청명이 해준 '샌드박스' 이야기에 영감을 받아 스타트업 기업 샌드박스를 차린 윤선학(서이숙) 대표 같은 사회적 존재 역시 필요했다. 서달미나 남도산 같은 청춘들이 실력은 있지만 가난해 꿈을 펼치지 못하고 포기하지 않게 샌드박스 같은 이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서달미와 남도산은 그래서 함께 도전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서달미와 남도산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원인재(강한나) 같은 경쟁자도 또 한지평 같은 멘토도 필요했다. 경쟁이 싫어 늘 지는 쪽을 선택했던 남도산은 샌드박스에서 자신이 만들어낸 솔루션이 다른 팀과 경쟁에서 지게 되자 승부욕을 갖게 된다. 또 늘 공평하게 해야 한다고만 생각했던 서달미는 스타트업 초기에는 대표에게 지분을 몰아줘야 안전하다는 한지평의 조언을 듣고 지분의 대부분을 남도산에게 몰아준다. 그렇게 하면 투자자들이 헷갈릴 수 있다고 한지평이 조언하지만 서달미는 투자자들에게 갈 때는 늘 남도산과 자신이 동행하겠다며 자신은 그걸 '선택'했다고 말한다.

 

<스타트업>은 이처럼 한 편의 스타트업 창업을 위한 조건들을 하나하나 짚어나가는 한 권의 책처럼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매회 창업을 위한 과정들이 등장하고, 위기상황들이 미션처럼 제시되며 그걸 하나씩 뛰어 넘어 성장하는 청춘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만만찮은 취업 현실 속에서 창업의 꿈을 펼쳐나가는 청춘들의 성장기가 그것이다.

 

여기서 성장해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는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만드는 판타지를 제공하지만, 그 판타지의 밑그림을 보면 그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것들이 요구되고 필요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막막한 현실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꿈을 꾸게 해주는 어른들과 그걸 실제 사회에서도 실현해나갈 수 있게 해주는 다양한 시스템들이 전제될 때 이런 판타지가 가능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스타트업>은 청춘들의 막연한 판타지를 카타르시스로 제공한다기보다는 이들이 이런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전제조건들이 현실적으로 필요한 것인가를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사진:tvN)

'청춘기록', 만만찮은 현실에도 청춘을 버틸 수 있게 해준 건

 

"사랑해. 우리 헤어지자." 사혜준(박보검)에게 안정하(박소담)가 한 그 말에는 여러 가지 뉘앙스들이 담겨 있다. 사랑하는데 왜 헤어지냐고 사혜준은 묻지만, 그 역시 안정하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결코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안한 일은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만만찮은 현실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만날 때마다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사혜준이었으니.

 

이제 마지막회만을 남긴 tvN 월화드라마 <청춘기록>은 한 마디로 '덕질' 드라마다.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오롯이 노력해 모델에서 배우가 되는 사혜준을 덕질하고, 부모가 이혼하고 혼자 독립해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려고 꿋꿋이 노력해온 안정하를 덕질하며, 많은 걸 갖고 태어났지만 부모 도움 없이 스스로 노력해 꿈을 이루려는 원해효(변우석)를 덕질하는 드라마.

 

스타에게 하는 덕질을 이렇게 청춘들에게 투사한 <청춘기록>은 그래서 시청자들이 이들의 성공과 성장을 응원하게 만들었다. 흙수저라는 현실을 깨치고 어렵게 얻은 기회를 잘 살려내 톱배우로 성장하는 사혜준을 응원하면서 그가 처한 현실을 공감하게 했다. 그것이 부모 찬스가 자식의 미래까지 결정해버리는 허탈한 현실을 깨고 자신의 힘으로 성공하는 사혜준을 보며 뿌듯해한 이유였다.

 

하지만 막상 성공하고 나자 그 성공만으로 그가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는 걸 드라마는 역시 보여줬다.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집으로 돌아와 방으로 들어온 사혜준이 '홀로 울 수 있는 방'이 있는 것에 행복하다 말하며 우는 장면은, 그 어떤 거대한 성공도 거창한 행복이 아닌 소박한 행복을 우선하지 않는다는 걸 말해준다. 그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사랑하는 안정하나 가족들, 친구들과 그저 단란하게 지내고 싶을 뿐이다.

 

또한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서로 다른 부모를 만나 자라났어도 사혜준과 원해효라는 청춘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우정은, 현실을 수저로 나누어버리는 어른들과 사회를 되돌아보게 했다. 엄마 김이영(신애라)이 자신도 모르게 뒤에서 힘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원해효가 그 사실을 알고는 무너진 자존감에 눈물 흘리며 절규하는 장면은, 가진 게 없어 애초 꿈조차 꾸지 말라 막아섰던 아버지가 이제는 미안하다며 사과할 때 사혜준이 씁쓸해하는 장면과 겹쳐진다. 가진 게 많아도 가진 게 없어도 청춘들의 앞길을 자신들의 삶에 비추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얼마나 당사자들을 힘겹게 하는가를.

 

<청춘기록>은 그래서 여기 등장하는 청춘들이 저마다의 어려움을 딛고 성장해가는 과정을 시청자들로 하여금 덕질하게 함으로써, 그 덕질의 시선을 통해 그들에 공감하고 때론 스스로를 반성하게 하는 드라마였다. 어른들이라면 한번쯤 자신이 지금의 청춘들에게 어떤 추억의 기록으로 남겨질지 생각해보게 하는 드라마.

 

그 기록의 한 줄 한 줄은 결코 쉽게 얻어진 경험들이 아닐 게다. 만만찮은 현실 앞에 드디어 마주하는 시기가 청춘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 어려운 시기를 무너지지 않고 버텨낼 수 있게 해준 힘은 바로 가족, 친구, 연인의 토닥이는 말 한 마디가 주는 위로와 공감이 아닐까. 적어도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해주던 바로 그 '덕질' 말이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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