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봄날’ 수영이 제시한 소녀시대 롱런 해법

 

제시카의 탈퇴로 소녀시대는 우울하지만, 수영은 봄날을 맞은 것 같다. 그녀가 출연하고 있는 MBC <내 생애 봄날>은 그녀에게 확실한 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별 기대 없이 봤던 시청자들도 수영의 연기에 적잖이 놀라는 분위기다.

 

'내 생애 봄날(사진출처:MBC)'

실제로 수영의 연기는 <내 생애 봄날>의 이봄이라는 캐릭터에 거의 녹아들어 있다. 거기에는 캐릭터와 수영의 실제 성격이 잘 맞아 떨어지는 부분도 있지만, 그동안 연기를 위한 보이지 않는 남다른 노력이 있었을 것이란 걸 드라마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멜로드라마에서의 연기가 힘든 것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의 감정 선을 함께 맞춰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즉 처음에 만나 차츰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캐릭터들의 심리변화를 통해 보여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수영과 감우성의 밀고 당기는 케미는 분명 보는 이들에게 이물감을 주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다.

 

물론 이렇게 된 것은 상대역인 감우성의 공이 크다. 감우성은 특유의 힘 빼는 연기<내 생애 봄날>이라는 드라마 전체를 지극히 현실적으로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과장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편안하기 때문에 주변 인물들조차 그 편안함 속에서 실제 같은 연기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수영이 거기에 녹아들 수 있다는 것은 그만한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수영은 이번 연기를 통해 자신의 길을 확실히 찾아낸 것 같다.

 

최근 제시카의 탈퇴 혹은 방출이야기로 소녀시대는 우울하다. 하지만 엄밀하게 얘기하면 이것은 하나의 성장통으로 봐야 한다. 대중들은 소녀시대가 영원한 소녀시대로 남겨지길 바라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바람이다. 즉 소녀들은 성장하고 저마다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 당연한 순리다. 다만 그 과정과 절차가 상처를 덜 주고 더 주는 것의 차이를 남길 뿐이다.

 

제시카는 소녀시대에서 분명 자신의 역할을 했지만 그것이 온전히 자기 혼자만의 영역을 만들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것은 소녀시대의 그 어떤 멤버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최근 태연이 <히든싱어3>에서 2회전에 소녀시대의 (gee)’를 부르고 탈락하는 이변을 낳은 것은 역시 소녀시대는 전체가 함께 모여야 완전체가 된다는 걸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제시카가 소녀시대와 분리되는 것에 대해 팬들의 우려가 생기는 것일 게다. 즉 개인의 성장과 꿈은 저마다 커질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탈퇴나 방출 같은 극단적인 선택이 아니라 소녀시대라는 완전체를 유지해가면서 그것을 해나갈 수 있게 소속사가 어떤 배려나 대비책을 마련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아도 영원히 9명의 멤버가 똑같이 같은 길을 걸어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소녀시대에 공식적으로 남았건 아니건 큰 틀에서는 제시카의 선택도 어느 정도는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앞으로 소녀시대를 어떻게 유지해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 해법으로서 수영이 <내 생애 봄날>에서 보여주는 호연은 괜찮은 답이 아닐까 싶다. 써니가 <룸메이트>에 출연해 특유의 예능감을 보여주고, 태티서가 소녀시대의 새로운 유닛으로 신보를 발표하는 등의 모습은 이제 앞으로 소녀시대의 활동이 모두가 함께하는 것만큼 각자 자신들의 활동영역을 넓혀가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는 걸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따로 또 같이면 어떠랴. 수영이 <내 생애 봄날>에서 드디어 자신의 영역으로서 연기의 세계에 발을 내딛고 괜찮은 성취를 보여주는 모습은 그래서 우울한 소녀시대에 따뜻한 봄날의 위로를 안겨준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아물 것이고, 그 상처는 그녀들을 더 성장시킬 것이다. 소녀시대라는 틀에만 자꾸 머물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역을 적극적으로 찾아나가며 그 틀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향후 소녀시대라는 걸 그룹이 롱런하는 길이 아닐까.

 

한석규의 왕 연기, 어떤 점이 달랐을까

 

확실히 믿고 보는 배우 한석규는 달랐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 욕하는 모습조차 인간미로 소화해낸 한석규 덕분에 우리는 지금까지 사극을 통해 봐왔던 왕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글을 창제하고 배포한 세종의 그 격의 없는 왕의 모습에서는 저잣거리 백성들을 향하는 그 낮은 자세가 느껴졌다. 교과서 속에 박제되어 있던 세종은 그렇게 한석규를 통해 재해석됐고 비로소 살아있는 인물로 되살아났다.

 

'비밀의 문(사진출처:SBS)'

그리고 돌아온 <비밀의 문>은 한석규의 영조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이다.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왕의 면면이 평이할 리가 없다. 따라서 한석규가 해석해낸 영조는 자상한 면과 광기어린 면이 뒤섞여 있는 왕이다. 그 광기를 <비밀의 문>은 맹의라는 비밀문서를 통해 보여준다. 노론과의 결탁을 뜻하는 그 맹의에 수결함으로써 왕이 됐다는 그 사실은 영조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걸림돌이자 두려움이다.

 

<비밀의 문>은 일반적인 사극의 시작과는 사뭇 다르게 그 문을 열었다. 짧게 맹의에 수결하는 영조의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 맹의를 없애기 위해 심지어 승정원에 불을 지르는 영조를 통해 맹의가 가진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또 그것을 덮으려는 자와 밝히려는 자의 대결구도로 흘러간다는 점에서 바로 이 맹의의 존재감은 이 사극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힘이 된다. 바로 그 힘을 드라마 초반 시작 단 몇 분만에 실어주는 것이 다름 아닌 한석규의 연기다. 그는 광기와 두려움이 교차되는 모습을 통해 맹의라는 비밀문서가 가진 무게를 만들어냈다.

 

사실 <비밀의 문><뿌리 깊은 나무>의 장르적 특성과 유사한 점이 많다. 왕을 다뤘다는 점이 그렇고, 그 안에 미스테리한 추리극 요소를 집어넣었다는 점이 그렇다. 하지만 무엇보다 유사하게 여겨지는 건 한석규가 지금껏 우리가 봐왔던 것과는 다르게 왕을 재해석해낸다는 그 지점이다. 실제로 <비밀의 문>은 아직까지 <뿌리 깊은 나무> 만큼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팽팽한 긴장감과 보는 재미를 만들어내는 건 바로 이 한석규가 해석하는 영조 덕분이다.

 

<비밀의 문>이라는 사극이 가진 근본적인 힘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조선왕조 500년의 가장 불행한 가족사에서 나온다. 뒤주에 가둬 사도세자를 죽게 만든 왕, 영조. 제 아무리 광기를 보였다고는 하나 아비가 자식을 죽인다는 건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터다. 역사는 자식을 죽인 왕의 입장에서 쓰여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자식을 죽인 왕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자식의 광기를 좀 더 극대화해야 했을 것이다.

 

<비밀의 문>은 이 부분을 재해석한다. 역사의 내용과는 다른 이유가 있었을 거라는 것. 맹의는 그래서 영조가 이런 극단적인 일을 선택하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여기서 흥미로워지는 것은 사도세자의 광기가 아니라 영조의 광기가 이 사건이 벌어지는 이유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역사 왜곡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로서 <비밀의 문>이 이 새로운 해석을 통해 현재적인 문제의식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면 용인될 수 있는 일이다.

 

과연 영조는 어떻게 변화해갈까. 그리고 그 변화의 과정은 지금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줄까. 이 드라마에서 이 모든 궁금증을 쥐고 있는 게 바로 영조라는 인물이다. 한석규의 입체적인 왕에 대한 해석은 그 영조를 깨워내고 있다. 다른 모든 것을 차치하고라도 <비밀의 문>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 변화무쌍한 영조를 재창조하고 있는 한석규의 연기 덕분이다.

 

'괜찮아 사랑이야', 조인성이 이렇게 연기를 잘 했나

 

조인성이 이렇게 연기를 잘 했었나? 역시 연기력은 좋은 작품을 만날 때 폭발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을 SBS 수목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는 보여주고 있다. 조인성은 잘 생긴데다 바람기마저 있어 보이는 거의 아이돌에 가까운 추리소설 작가로 등장하지만 어느 순간 한 여자를 향한 지극한 사랑을 보여주는 남자로, 또 어린 시절 겪은 트라우마로 정신분열을 겪는 극단적인 캐릭터로 변주되더니 결국 이를 극복하고 이 모든 캐릭터를 하나로 묶어내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었다.

 

'괜찮아 사랑이야(사진출처:SBS)'

정신분열로 장재열(조인성)이 어린 시절의 자신을 보고, 그 자신을 투영시켜 만든 한강우(디오)가 삼거리에서 하나로 합쳐지는 장면은 그가 병을 극복해낼 것이라는 암시를 주기에 충분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도망치던 장재열이 맨발이었다는 점과, 자신이 만든 환영인 한강우 역시 맨발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해낸 건 그가 이 두 존재를 하나로 끌어안을 수 있게 된 단서가 된다. 각각의 캐릭터로 존재하며 분열되어 있던 자아가 장재열이라는 한 사람으로 묶여지는 것.

 

결국 장재열이 정신분열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 그 트라우마 속에 비틀어진 자기 자신을 이해해야만 했다. 그래서 상처투성이 한강우의 맨발을 장재열이 씻겨주는 장면은 자기가 자신의 아픔을 다독이는 장면이 된다. 물론 드라마는 장재열과 한강우의 캐릭터를 나누어놓지만 결국은 그것이 장재열의 내면이 확장된 장면들이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그를 연기해내는 조인성은 사실상 자신 속에 있는 여러 캐릭터들을 동시에 염두에 두어야하는 연기를 해야만 한다.

 

장재열이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조인성이라는 연기자가 꽤 다양한 스펙트럼의 연기를 갖고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는 건 그래서다. 그는 더 이상 외모가 수려한 조각미남의 틀에 갇히지 않는 배우가 됐다. 그 틀 속에 꿈틀대는 아픔과 상처가 조금씩 밖으로 비어져 나올 때 조인성의 또 다른 모습들이 발견되었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운명적 멜로의 남자 주인공 역할에 딱이지만, 이 작품을 통해 다분히 날카롭고 강하며, 때로는 연민이 느껴질 정도로 가녀린 인물을 그 속에 갖고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연기자는 어쩌면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는 여러 자아를 갖고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조절되지 않고 그를 지배할 때 정신분열이 되겠지만, 완전히 캐릭터에 빙의된 연기자를 보며 소름이 돋는 것은 거의 그 정신분열의 단계를 보듯 전혀 다른 모습들이 연기를 통해 보여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정신분열이 아니라 연기가 되는 것은 연기자가 그 많은 자신 속의 다른 모습 역시 또 다른 나라는 걸 인정하고 다독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조인성과 장재열은 닮았다. 조인성은 장재열이라는 역할을 통해 다양한 자신의 모습을 끌어내 연기라는 영역을 확장시켰고, 장재열은 분열된 자아를 또 다른 나로 인정함으로써 그 병을 이겨내고 있다. 우리네 삶의 어려움이란 어쩌면 한 사람 속에도 이처럼 많은 자아들이 서로 부딪치고 갈등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잘 화해시키고 하나로 껴안아주었을 때 상처는 성장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장재열을 정신분열의 늪에서 꺼내주는 구원의 손길은 다름 아닌 주변 사람들의 사랑이다. 그들의 끝없는 관심과 애정 어린 조언들이 있었기 때문에 장재열은 조금씩 그 늪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마도 조인성이라는 배우가 이처럼 깊어진 연기의 맛을 보여준 것 역시 작가와 PD 그리고 동료 연기자들은 물론이고 그를 늘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대중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드라마는 그래서 조인성에게 남다른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많은 모습들을 하나로 묶어내며 괜찮은연기자 조인성을 발견하게 만든.

 

코믹 캐릭터에서 개성파 배우로 거듭나고 있는 이광수

 

요즘 이광수가 달리 보인다. <런닝맨>을 통해 대중들과 익숙해진 캐릭터다. 베트남 등지에서 갑자기 확인한 인기에 아시아 프린스라는 닉네임이 붙기도 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광수는 거기에 대해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예능으로 먼저 친근하게 다가왔지만 그의 발길은 늘 배우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으니까.

 

'괜찮아 사랑이야(사진출처:SBS)'

<착한 남자>에 출연했을 때도 이광수를 만나면 <런닝맨> 이야기를 하거나 아니면 송중기에 대한 이야기를 묻는 것이 다반사였다. 늘 어눌한 목소리로 얘기하고 기린 캐릭터로 웃음을 주지만 그 누구보다 적지 않은 배우에 대한 열정을 속내 깊숙이 숨기고 있던 그였다. 그런 그이니만큼 최근 영화 <좋은 친구들>에 이어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그런 연기가 가능했을 것이다.

 

사실 <좋은 친구들>에서 영화를 보기 전까지 이광수에 대한 기대감은 거의 없는 편이다. 지성과 주지훈이라는 배우가 전면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적 영화를 보고 나면 지성과 주지훈만큼 이광수의 존재감이 확실히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좋은 친구들>에서 지성이 건실한 이미지라면 주지훈은 욕망의 화신이다. 어찌 보면 이 세 사람의 관계 속에서 이들을 친구라는 고리로 묶어내는 역할은 이광수가 오롯이 한 면이 있다.

 

<좋은 친구들>의 이광수 연기를 보고 눈물을 흘리게 된 이들의 반응은 놀랍다는 것이지만, 사실 코믹 캐릭터가 진지한 정극으로 들어왔을 때 제대로 된 몰입을 보여줄 수만 있다면 더 큰 감동을 안겨주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즉 웃음의 바탕이 비극에서 나온다면, 그 웃음을 살짝 지워낸 자의 맨 얼굴은 더 슬플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좋은 친구들>은 이광수의 우는 얼굴을 끄집어내준 작품이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이광수는 틱 장애를 가진 투렛증후군 환자 역할을 선보였다. 갑자기 이유 없이 몸을 떨고 킁킁 거리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해대는 모습으로 첫 얼굴을 드러낸 이광수는 성동일 같은 묵직한 배우와 함께 서도 이제 편안한 모습이다. 새롭게 홈메이트로 들어온 장재열(조인성)과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그는 이 드라마가 보여줄 다채로운 사랑의 면들 중 하나를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사실 예능과 연기를 함께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광수는 예전 필자와 한 인터뷰를 통해 예능에서의 몰입과 연기에서의 몰입이 다르다고 말한 적이 있다. “대본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다. <런닝맨>은 대본이 없어 사실 뭘 해야 할 지 이런 게 없다. 신뢰가 없이는 하기 힘든 몰입이다. 하지만 드라마 영화는 대본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준비를 해간다.” 이광수가 하는 연기의 밑바탕에는 철저한 캐릭터 분석이 들어있다는 얘기다.

 

코믹 캐릭터는 유쾌하지만 그것만으로 배우의 갈증을 채울 수는 없다. 따라서 코믹 캐릭터가 개성파 배우로 넘어가는 과정은 실로 중요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함께 출연하는 성동일처럼 때론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이면에 있는 진중함과 진지함을 놓치지 않는 그런 연기를 보여줄 수 있다면 이광수는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작품을 통해 개성 넘치는 배우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 광수의 눈빛은 확실히 달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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