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고 말해줘’, 신현빈의 연기와 정우성의 그림이 말해주는 것

사랑한다고 말해줘

“공연하면서 알았어요.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데 왜 위로받는 느낌이 드는지. 이렇게 내가 별거 아닌 말을 해도 한 단어, 한 단어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들어주는 사람이니까.”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사랑한다고 말해줘>에서 정모은(신현빈)은 연극을 보러와준 차진우(정우성)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다친 배우 대신 갑작스레 오르게 된 무대. 정모은은 그 낯설음에 불편함을 느낀다. 그 순간 객석에 있는 차진우가 정모은에게 수어로 말한다. ‘잘 해낼 거라고 믿어요’라고. 정모은은 한결 편안해진 모습으로 연기를 하게 된다. 

 

이 장면은 <사랑한다고 말해줘>가 그리고 있는 사랑과 소통의 이야기의 특별한 결을 보여준다.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이 당연한 사람인 정모은과 들리지 않는 것이 당연한 사람인 차진우의 사랑. 그들은 너무나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러니 그 일상적 관계조차 편할 수가 없다. 정모은이 애써 배운 어설픈 수어로 소통하려 해도 엇나가기 일쑤고, 보다 정확한 표현을 전하기 위해 핸드폰에 글자를 찍어가며 소통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소통하는 것이 반드시 말을 통한 표현일 필요는 없다고 이 장면은 말해준다. 정모은의 말처럼, 듣지 못하는 차진우는 그렇기 때문에 더 열심히 정모은이 말할 때 그 입모양을 읽으려 집중한다. 한 단어 한 단어를 읽어내려 한다. 말이 너무나 익숙해 아무렇게나 내뱉고 아무렇게나 지나치곤 하는 우리에게 차진우의 ‘애쓰는 집중’은 그 마음을 읽게 만든다. 한 단어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사랑한다 말해줘>가 정모은이라는 인물을 굳이 스튜어디스 일을 포기하고 대신 연기의 꿈을 시작하려는 배우로 세운 것도 그런 의미가 있다. 그는 배우라고는 하지만 단역, 엑스트라로 불린다. 그래서 배역의 이름도 없고 심지어 대사도 거의 없다. 그러니 그 세계에서는 마치 차진우처럼 침묵 속에 있는 사람 같다. 대사가 없어도 배역의 이름도 없어도 열심히 자기 역할을 해내려는 마음이 있고, 그렇게 꿈을 향해 가는 진심이 있지만 그걸 알아주는 이는 많지 않다. 

 

하지만 듣지 못하는 침묵의 세상에 사는 차진우는 정모은의 연기를 말이 아닌 몸의 언어로 그 마음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다. 그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그래서 말이 아니다. 누군가의 몸이 하는 말을 애써 들어준다. 제주도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하염없이 바다를 보다가 끝내 생을 마감한 어느 사내가 온 몸으로 전하는 말을 들을 줄 알고, 몸이 아파 친구와 함께 학교 가는 게 소원이었지만 끝내 먼저 세상을 떠나버린 아이가 생전에 전한 말을 들을 줄 안다.

 

그는 부재한 것이 없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침묵한다고 말이 없는 것이 아니고, 하지 못한다고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또 사라졌다고 사라진 게 아니라는 것도. 그래서 이제는 부재한 그들을, 그들이 평소 마음이 머물던 그 곳에 벽화로 되살려 놓는다. 그 마음들이 영원히 존재한다는 걸 새겨 넣는다. 한 단어 한 단어 애써 들으려하듯, 붓 한 획 한 획에 애를 쓰며.

 

하지만 세속적인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들로만 함부로 재단하고 평가하고 차별한다. 오랜만에 스튜어디스 제복을 입고 공항에서 그 역할을 연기하는 정모은을 본 옛 회사 동료 스튜어디스는 단역에 대사 하나 없는 그 모습을 보고 실망한다. 그 모습 이면에 존재하는 정모은의 연기에 대한 꿈이나 노력 같은 걸 보지 못한다. 볼 수 있지만 보지 못하고 들을 수 있지만 듣지 못하는 세상이다. 

 

반면 진정한 예술의 세계는 이런 속물적 관점을 벗어나 보지 못해도 볼 수 있고 듣지 못해도 들을 수 있다.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이 당연한 사람과 들리지 않는 것이 당연한 사람이 만나 그 불편할 수 있는 장벽을 넘어설 수 있는 건 그래서 이들이 세속적인 세상 바깥으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굳이 드라마가 정모은을 연기의 세계에 꿈을 가진 인물로 세우고, 차진우를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세운 이유다. 

 

예술은 속물적 세상에 무뎌진 우리의 감각들을 다시금 깨워주는 힘이 있다. 그래서 정모은과 차진우가 하는 사랑과 소통의 과정은 바로 그 예술이 가진 힘을 보여준다. 두 사람이 서로 만나고 마음을 나누고 사랑하는 과정을 통해, 속물적 세상에 무뎌졌던 우리의 눈과 귀를 다시 열어주고 단지 눈에 보이는 것과 귀에 들리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놓여진 마음들을 읽게 해준다. 사랑스런 것들 앞에서조차 그걸 보지 못하고 사랑한다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새로운 눈과 귀를 열어준다. (사진:지니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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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타스캔들’, 달콤 코믹한 로맨틱 코미디에 얹어진 묵직한 주제의식

일타 스캔들

“뭐 하나만 질문 드려도 돼요? 쌤 말씀대로 쌤이 저 30분만 봐주셔도 5천만 원인 셈인데, 그런데 저 왜 봐주시는 거예요? 저희 엄마 도시락은 만원도 채 안되는데.” tvN 토일드라마 <일타 스캔들>에서 남행선(전도연)의 딸 남해이(노윤서)는 일타강사 최치열(정경호)이 자신에게 굳이 1대1 과외를 해주는 이유를 묻는다. 이른바 ‘1조원의 남자’로 불리는 최치열이 남해이의 과외를 해주며 얻는 건 남행선이 챙겨주는 만원도 채 안되는 도시락이 전부다. 그러니 궁금할 수밖에.

 

하지만 최치열이 무심한 듯 툭 던지는 답변은 의외로 큰 울림이 있다. “계산 빠르네. 금방 늘겠어. 아, 가격과 가치는 다른 거잖아. 나는 그 도시락에 그만큼의 가치를 부여한 거고. 너도 내 시간을 그렇게 만들어 주길 바라. 나는 무조건 최선 다할 테니까 너는 5천만 원 이상의 결과를 끌어내 보라고.” 가격과 가치. 일타 수학강사다운 답변이지만, 거기에는 <일타스캔들>이라는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하고 있는 작품이 갖고 있는 진심이 어른거린다. 

 

그건 모든 게 가격으로 환산되고 그래서 비싼 만큼 가치가 있을 거라 착각되는 세상이지만, 실제 가치란 가격만으로는 매겨질 수 없는 어떤 것이라는 메시지다. 1조원의 경제적 가치를 움직이는 최치열이지만, 그에게 더 큰 가치는 밥 한 끼 제대로 먹는 것과 수면제 없이 푹 잘 수 있는 일이다. 일에 치여 살면서 그는 밥 한 끼를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못자는 섭식장애와 수면장애를 갖고 있다. 

 

물론 거기에는 아직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은 과거사가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자신이 가르치던 한 학생의 죽음이 그것이다. 그는 학원을 홍보하는 광고 속 인물처럼 말끔해 보이고, 어떻게든 그 수업을 듣기 위해 줄을 서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추앙받는 스타지만, 그러한 화려함은 껍데기일 뿐이다. 그래서 그가 진짜 자신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우연히 먹게 된 남행선의 도시락을 먹을 때다. 

 

그런데 도대체 남행선의 도시락에 무엇이 들었길래 1조원의 남자 최치열이 이러한 가치를 부여한 걸까. 최치열은 아직 눈치 채지 못하고 있지만, 남행선의 음식은 사실 최치열이 젊은 시절 혼자 임용고시 준비를 할 때 매일 대놓고 먹었던 식당의 그 맛을 갖고 있다. 그 식당 사장이 다름 아닌 남행선의 엄마였기 때문이다. 엄마는 사고로 사망하고 언니가 맡긴 조카를 책임지기 위해 남행선은 핸드볼 선수의 길을 접고 이 반찬가게를 연다. 그 맛이 그대로 이어졌고, 최치열은 바로 그 시절의 맛을 부지불식간에 떠올리며 그 음식을 찾게 된 것. 그러니 그 가치는 최치열 말대로 가격으로는 환산될 수 없는 것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남행선이 떠맡게 된 반찬가게를 그저 월 매출 얼마로 가치를 판단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는 도망간 언니 대신 떠맡게 된 조카를 반찬가게를 운영하며 딸로서 키워왔다. 또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동생 또한 부양해왔다. 자기 인생은 저 뒤편으로 밀어버리고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살아온 남행선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난 반찬가게를 어찌 돈 몇 푼의 가격으로 그 가치를 매길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일타스캔들>이 왜 그토록 서민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길가 어디서든 발견하는 작은 가게 하나를 그저 월매출 얼마 정도의 가격으로 결코 가치매길 수 없다고 말하는 작가의 진심이 거기에는 녹아 있다. 

 

여기서 발견되는 건 이러한 작품의 진심을 연기를 통해 끌어내고 있는 정경호와 전도연의 가치다. 전도연이야 워낙 연기 베테랑이라는 걸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그는 <일타스캔들>이라는 작품 속에서 혼신을 다하는 모습이다. 어찌 보면 로맨틱 코미디라는 가벼운 작품으로 보일 수도 있을 테지만, 결코 그렇게 가치매겨질 수 없다는 걸 때론 웃기고, 때론 사랑스럽고, 때론 짠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정경호 역시 매 작품마다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배우지만, <일타스캔들>은 그 완숙미가 느껴질 정도로 철저히 준비된 배우의 면면을 보여준다. 등장부터 진짜 일타 강사의 면면을 고스란히 입은 모습을 보여줘 유쾌하지만 어딘가 쓸쓸하고 때론 보듬어주고픈 가녀림까지 최치열이라는 인물 속에 다양한 결을 부여했다. 

 

전도연도 정경호도 강사로 치면 ‘일타강사’쯤 되는 ‘일타 배우들’이라는 건 이제 분명해졌다. 하지만 이들의 연기가 그저 화려함에 머물지 않고 시청자들의 가슴을 건드리고 뭉클하게도 만들어내는 진짜 이유는 그 연기에 ‘진심’의 가치를 담고 있어서다. 가격 같은 속물적인 화려함이 아니라, 작품이 하려는 메시지 같은 진짜 가치를 전하는 모습이 있어 이들의 연기가 빛이 난다.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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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타 스캔들’, 공감 가는 로맨틱 코미디 만든 연출의 비결

일타스캔들

드라마를 보다 보면 때론 주인공만이 아니라 주변 인물 혹은 지나치는 역할조차 연기 공백이 없어 보이는 작품을 만날 때가 있다. 조연들이 ‘미친 존재감’을 보이는 건 이제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거의 단역처럼 보이는 이들조차 진짜 현실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착 달라붙는 연기를 보여줄 때 시청자들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드라마에 보다 깊숙이 빠져들게 된다. 디테일한 밑그림이 그 위에 전개되는 사건들에도 보다 리얼한 생동감을 주기 때문이다. 

 

tvN 토일드라마 <일타 스캔들>은 바로 그런 드라마다. 이 드라마의 중심은 역시 타이틀 롤인 전직 핸드볼 선수였다가 지금은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남행선(전도연)과 자칭 타칭 ‘1조원의 사나이’로 불리는 수학 일타강가 최치열(정경호)이다. 자문 관련한 논란과 잡음들이 생겨났지만, 정경호의 최치열이라는 일타강사 연기는 시청자들을 드라마에 빠져들게 만드는 공감 가는 몰입감을 선사했다. 

 

유명한 일타 강사들이 하는 강의 스타일을 철저히 분석한 듯한 대본도 그렇지만, 특유의 끼가 넘치는 강의 과정들을 디테일하게 보여준 점이 먼저 리얼한 공감을 만들었다. 게다가 정경호는 지나치게 넘치는 프라이드와 더불어 어딘가 빈 구석을 드러내는 인간적인 면을 통해, 본인은 진지하지만 보는 이들은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코미디 연기를 더해줬다. <일타 스캔들>이 강남 학원가를 둘러싼 사교육 문제 등을 풍자하는 다소 무거운 메시지를 갖고 있지만, 그 결은 로맨틱 코미디라는 걸 정경호는 첫 회 만에 분명히 보여줬다.

 

여기에 전도연의 연기가 더해졌으니 더할 나위가 없어졌다. 물론 <프라하의 연인>처럼 전도연 역사 로맨틱 코미디 연기에도 일가견이 있는 배우지만 그간 영화에 주력하면서 다소 무거운 연기들을 해왔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반찬 가게를 하며 조카 남해이(노윤서)를 딸처럼 키운 남행선이라는 인물의 억척스럽지만 따뜻하고 그래서 조금씩 만들어지는 최치열과의 달달하고 코믹한 연기가 반갑기 그지없다. 

 

남행선의 딸 같은 조카 남해이 역할의 노윤서는 <우리들의 블루스>로 익숙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똑 부러지는 자기주도형 고등학생 역할을 선보인다. 이모지만 엄마 같은 남행선이 짊어지고 있는 버거운 짐을 그 누구보다 이해하고 그래서 자신은 짐이 되지 않으려는 그 마음이 따뜻하게 다가오는 인물이다. 이제 신인이지만 연달아 괜찮은 존재감을 드러내는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타 스캔들>이 웰메이드라고 여겨지는 대목은 주변 인물 하나하나 허투루 보이지 않는 대목에서다. 남행선의 절친 김영주 역할의 이봉련은 대사 하나하나를 찰떡같은 연기로 표현해 시청자들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유쾌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최치열의 매니저이자 기획자인 지동희 역할의 신재하도 일에 있어서는 적당히 경직된 모습을 보여주지만 마치 형 동생 관계 같은 끈끈함을 잘 표현하고 있고, 저마다 개성이 톡톡 튀는 학부모를 연기하는 장영남, 김선영, 황보라의 찰진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심지어 이 드라마에는 “엄마가 진짜 너무하셨다. 조금만 밀어주면 전교 1등 할 애를 어떻게 이렇게 방치를...” 같은 현실에서 튀어나온 듯한 대사를 치는 학원 실장이나, 이미 학원에서 선행을 해 자신의 수업은 잘 듣지 않는 학생들을 보며 그 현실의 답답함을 드러내는 전종렬(김다흰) 같은 담임선생님은 물론이고 그런 선생님의 현실을 개탄하면서도 “우리도 경각심이 필요하긴 해. 학원강사들만큼 연구 안 하잖아요, 솔직히.”라는 대사를 툭 던지는 다른 선생님까지 빈틈이 없다. 

 

사실 이처럼 주조연은 물론이고 그보다 작은 역할들까지 리얼한 연기가 나올 수 있는 건 배우들의 연기력도 연기력이지만 공감 가는 대사를 채워 넣는 대본과 더불어 그 상황에 대한 디테일을 파고들어 연기지도를 하는 연출자의 공이 절대적이다. 그 하나하나의 공들임이 똑같은 로맨틱 코미디라고 해도 작품의 질감을 달리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일타 스캔들>은 그래서 다소 가볍게 웃고 달달해하며 볼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면서, 그 이면에 깔린 풍자적 요소들까지 공감대로 끌고 갈 수 있는 드라마가 되고 있다. 웰메이드란 이런 데 쓰는 말이다.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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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섭, 김윤진, 나나가 ‘자백’을 통해 보여준 것들

자백

시작과 함께 부감으로 보이는 끝없이 펼쳐진 산세가 마치 앞으로 이 영화가 펼쳐놓을 만만찮은 이야기를 예감케 한다. 서로 겹쳐져 있는 산들은 이야기 뒤에 숨겨진 또 다른 이야기를 말해준다. 그 산세들이 그림으로 변하고 그려진 그림 위에 붓칠이 계속 채워지는 오프닝 신도 마찬가지다. <자백>은 그런 영화다. 진실인 것처럼 보이던 사건이 한 꺼풀을 벗겨내면 거짓으로 바뀌고 또 다른 진실을 드러내는 그런 영화. 그래서 이 시작점에 시선이 포획되면 끝점까지 시선을 돌리기가 어려운 극강의 몰입감을 주는 작품이다.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던 유민호(소지섭)는 불륜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협박에 돈 가방을 챙겨들고 호텔을 찾아가고, 거기서 엉뚱하게도 불륜 상대인 김세희(나나)를 마주한다. 세희 역시 협박을 받았다 생각한 민호는 함께 호텔에서 그 인물을 기다리다 경찰차들이 들어서는 걸 보고는 방을 빠져나오려 한다. 그 때 누군가 민호를 때려 정신을 잃게 만들었고 깨어나 보니 세희는 살해됐다. 문도 창문도 모두 잠겨 있는 호텔방. 그래서 밀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용의자는 바로 민호가 된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민호는 자신이 간간히 찾던 별장에서 승률 100% 변호사 양신애(김윤진)와 함께 무죄를 입증할 방법을 고민한다. 

 

변호에 있어서 ‘창의력’과 ‘논리’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양신애는 민호에게 진실을 말해줄 것을 요구하고, 민호는 세희와 출장을 핑계로 별장에서 지냈던 날 겪었던 사건을 들려준다. 돌아오는 길에 고라니를 피하다 발생한 사고. 차끼리의 충돌도 없었지만 마주 오던 차량은 피하려다 사고가 나고 운전자는 사망한다. 불륜이 탄로 날까 두려운 나머지 그들은 이를 은폐하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는 전적으로 민호의 진술일 뿐,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가 없다. 양신애는 민호의 진술에 담긴 허점을 논리적으로 파고들고 또 다른 가능성의 시나리오를 이야기한다. 그 시나리오는 민호가 처한 밀실살인에서 그를 용의선상에서 빼내줄 수 있는 이야기다. 즉 <자백>은 이처럼 벌어진 두 개의 사건(밀실살인과 사고사체유기)을 두고 변호사와 용의자가 진실 공방과 더불어 변론을 위한 시나리오를 그려나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따라서 영화는 어떤 ‘창의적’이고 ‘논리적’인 시나리오에 의한 진술인가에 따라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고 새로운 가해자가 용의자로 세워지는 반전의 반전을 보여준다. 마치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처럼 진술과 관점에 따라 사건이 전혀 다르게 해석되고 전개되는 서사를 보여주는 것. 앞서 시작점에 보여준 산세와 덧칠되는 그림처럼 영화는 이렇게 중첩되고 바뀌어가는 서사의 변화 속으로 관객들을 밀어 넣는다. 그래서 어느 순간 관객은 이 논리와 이야기로 꾸며진 산 속 깊숙이 들어와 빠져나가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작품이 인상적인 건, 배우들이다. 어떤 논리의 진술을 하느냐에 따라 배우들은 그 캐릭터의 성격도 변화한다. 즉 피해자였던 인물이 어떤 진술 속에서는 가해자로 돌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계속 전개를 바꿔나가는 영화는 마치 배우들이 얼마나 다양한 결의 연기를 하고 있는가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무대가 되어준다. 누명을 쓴 인물로 그려질 때의 소지섭은 그 억울함이 느껴지지만 다른 서사 속에서 가해자로 세워지는 소지섭에게서는 광기가 느껴진다. 유혹적이고 대담해 보였던 나나는 한없이 가녀린 존재로 변화하기도 하고, 김윤진은 의뢰인의 무죄를 변호하면서도 끝없이 의심하고 흔들리는 이중적인 면면을 소화한다. 

 

그래서 진술에 따라 변화하는 그 스토리의 미로 속으로 관객을 인도하는 그 과정은, 다른 한 편에서 보면 소지섭이나 나나, 김윤진 같은 배우들이 가진 여러 연기의 결을 깊이 들여다보는 과정이 되어주기도 한다. 지금껏 봐왔던 어떤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라, 특정 상황에 들어가면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연기자의 면면을 볼 수 있다는 것. 물론 런닝타임 105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빨려 들어가는 작품의 매력도 매력이지만, 배우들의 매력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사진:영화'자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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