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직장 드라마가 <미생>일 필요가 있나

 

기대가 너무 큰 것일까. 아니면 너무 엄밀한 잣대를 들이밀기 때문일까. 이제 2회를 남긴 <프로듀사>에 대한 평가는 박한 편이다. 여러 이유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그 중 가장 큰 건 <프로듀사>가 애초에 예능 PD들의 세계를 다룬다고 해놓고서 사실은 예능국에서 연애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프로듀사(사진출처:KBS)'

그러면서 항상 나오는 이야기는 <미생>과의 비교다. 연애 없이도 샐러리맨의 현실을 절절하게 다룬 <미생>. 두 말할 여지없이 <미생>은 수작 중의 수작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직장을 다루는 드라마가 <미생>이 될 필요가 있을까.

 

<프로듀사><미생>처럼 샐러리맨들을 치열한 하루하루를 통해 그려내려는 드라마가 아니다. 그것은 <프로듀사>라는 제목에 이미 들어있다. 많은 이들이 PD라고 하면 막연히 갖게 되는 그 편견과 선입견. 그래서 심지어 자 직업인 양 프로듀사라고 부르는 그 관점을 뒤집고 풍자해내는 것이 이 드라마의 진짜 목적이다.

 

그러니 <프로듀사>의 신입PD 백승찬(김수현)<미생>의 인턴사원 장그래(임시완)는 같은 신입처럼 보이지만 전혀 다른 캐릭터다. 장그래가 스펙 없는 청춘의 절망과 그것을 뛰어넘는 판타지를 담고 있는 캐릭터라면(이건 <미생> 역시 100% 현실이 아닌 판타지를 담은 드라마라는 걸 말해준다), 백승찬은 괜찮은 집안에 서울대생의 스펙을 가진 청춘으로 누구나 선망할만한 PD가 되지만 사실은 그게 다 쓸 데 없이 고스펙이라는 걸 웃음의 코드로 보여주는 캐릭터다.

 

그러니 백승찬이 하는 일이라는 것은 실로 미천한 것들이 아닐 수 없다. 장그래가 딱풀 하나 때문에 엄청난 시련을 겪는 주인공이라면, 백승찬은 A4지 한 부를 얻기 위해 수차례 왔다 갔다 하는 일이 마치 엄청 중요한 일인 양 진지하게 해야 하는 주인공이다. 그는 프로그램을 멋지게 기획하고 만들어내는 일보다 먼저 선배들의 점심 식단을 각각의 기호에 맞춰 주문해줘야 하는 인물이다.

 

이것은 <프로듀사>가 예능국 사람들을 그리는 시각이다. 거기에는 일보다는 윗사람 눈치를 더 많이 보며 의전에 더 신경 쓰는 김홍순(김종국) PD도 있고, 프로그램보다 자신의 안위와 가족의 안락만을 먼저 추구하는 이름만 김태호 PD(박혁권)도 있다. 예능국장인 장인표(서기철)는 심지어 기획사 사장의 눈치를 보는 인물이다. 물론 전혀 방송국과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의외로 능력을 발휘하는 <뮤직뱅크> 막내 작가 김다정(김선아) 같은 인물도 있다.

 

물론 백승찬을 비롯한 이런 인물들이 예능국 사람들의 전부를 대표해서 보여주는 건 아니다. 하지만 <프로듀사>는 이런 예능국 PD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캐릭터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당연히 드라마틱한 일의 세계는 잘 보이지 않는다. ? 이것은 일종의 풍자이면서 선입견 깨기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국에서 일하려면 엄청난 스펙이 필요해? 하지만 정작 하는 일은 너무 소소해 비루하게 보일 정도다.

 

<프로듀사>는 이렇게 쓸 데 없이 고스펙인 예능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코미디의 요소로서 바탕에 깔아놓고 그 위에 누구나 집중할 수 있는 연애 이야기를 얹어 놓았다. 즉 연애 이야기가 전면에 나와 있는 건 드라마의 대중적인 선택이다. 김수현이 있고 아이유, 공효진이 있는데 연애 이야기를 안 한다고? 그건 대중들이 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중요한 건 <프로듀사>의 연애 이야기가 전면에 보인다고 해서 예능국에서 벌어지는 일의 세계를 다루지 않은 건 아니라는 점이다. 다만 그 방식이 <미생>의 방식이 아니라 차라리 <개그콘서트><무한도전>무한상사같은 예능의 방식이었기 때문에 너무 소소하거나 가볍게 여겨졌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왜 모든 걸 다큐처럼 그려야 할까. 그건 또한 예능의 방식을 너무 낮게만 치부하는 편견은 아닌가.

 

크게 바라보면 <미생>이나 <프로듀사>나 그 기저에 깔려있는 메시지는 다를 것이 없다. <미생>이 스펙 없는 청춘의 문제를 다룬다면, <프로듀사>는 쓸 데 없는 스펙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니까. <미생>이 그것을 눈물로서 그렸다면 <프로듀사>는 웃음으로 그려낸 것뿐이다.

 

<프로듀사>예능 드라마라는 기치를 내세운 것처럼 충분히 예능의 성격을 가져와 예능국의 이야기를 펼쳐 보였다. 그러면서도 예능 프로그램의 제작현장에서 벌어지는 편집이나, 예고, 결방 같은 사안들을 소재로 가져와 달달한 멜로와 섞어 인간관계의 문제로 확장시켜 바라보는 괜찮은 시도도 보여줬다. 아마도 <프로듀사>는 올해를 통틀어 KBS가 그나마 시도한 유일한 실험작일 것이다. 그 괜찮은 시도들을 단지 덮어놓고 예능국에서 연애하는 드라마로 치부하기에는 어딘가 안타까운 면이 남는다.

 

<프로듀사>, 예능으로도 드라마로도 완성도 높다

 

예능 드라마. <프로듀사>가 내세우고 있는 이 문구는 낯설다. 그래서인지 김수현 같은 초특급 배우가 캐스팅됐다는 사실은 이 드라마를 한 편의 이벤트성 작품처럼 오인되게 만든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12.2%의 시청률을 내고 드디어 11% 시청률의 SBS <정글의 법칙>을 뛰어넘었다는 사실은 이런 오인들을 무색하게 만든다.

 

'프로듀사(사진출처:KBS)'

금요일 밤 거의 한 번도 시청률 1위 자리를 내놓지 않던 <정글의 법칙>이 아니던가. KBS가 돌연변이존이라는 변칙 편성을 하면서 예능과 드라마를 다양하게 투입했지만 결코 뛰어넘을 수 없었던 것이 <정글의 법칙>이라는 아성이었다. 하지만 <프로듀사>라는 예능 드라마의 파괴력은 결국 <정글의 법칙>을 압도했다.

 

예능 드라마라는 표현은 낯설지만 <프로듀사>를 보다보면 이 드라마가 왜 그런 표현을 덧붙였는가를 쉽게 이해하게 된다. 즉 이 드라마는 예능만큼 코믹하다. 어떤 상황과 장면들은 하나의 콩트 코미디를 보는 것처럼 빵빵 터진다. 이를테면 백승찬(김수현)의 엄마인 이후남(김혜옥)이 탁예진(공효진)과 쓰레기 분리수거와 자동차 주차 문제로 티격태격하다가 두 사람이 승찬의 직장상사이고 또 승찬의 엄마라는 걸 서로 알고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장면은 한편의 <개그콘서트>.

 

박지은 작가는 이런 순간적인 상황에 웃음의 코드를 심어 넣는 데 너무나 능숙하다. 백승찬이 저녁으로 고기를 사주자 탁예진이 나 후배한테 이런 거 얻어먹고 그러는 사람 아니다라고 말한 후, 다음 장면에 허겁지겁 고기를 집어먹는 모습을 그려 넣는다. 회사 운동회에 가족들을 데려와 뷔페를 먹게 하는 김태호 PD는 직업을 이용해 가족들을 챙기는 인물로 웬만한 개그 캐릭터를 능가한다. <프로듀사>는 촘촘하게 이러한 예능적인 웃음의 코드들을 한 신 한 신 채워 넣는다. 예능 드라마라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저 소소한 시트콤에 머물지 않는 것은 이 드라마가 방송사 예능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다루면서도 그 안에 드라마틱한 연애의 담론을 끼워 넣고 있기 때문이다. 5편집의 이해’, 7언론 플레이의 이해’, 8러브라인의 이해’, 9결방의 이해라는 부제를 가진 이야기들은 그래서 예능이라는 장르를 잘 들여다보게 해주면서도 그걸 통해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편집의 이해는 편집이 가진 선별적인 특성을 이 드라마의 인물관계를 통해 재해석했다. 즉 술김에 탁예진이 라준모(차태현)에게 마음을 고백한 것을 라준모는 모르는 척 기억의 편집을 해버린다. 하지만 편집된다고 해서 원본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백승찬은 라준모에게 비겁하다고 질책하기도 한다.

 

결방의 이해는 아이돌 신디(아이유)가 처한 상황과 라준모 PD<12>이 처한 상황을 기막히게 연결시켰다. <12>을 치고 들어오는 파일럿 프로그램 때문에 라준모 PD가 괴로워하는 장면은 변대표(나영희)에 의해 신인이 세워지고 대신 점점 밀려나는 신디의 처지와 오버랩된다. <프로듀사>는 예능국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으면서 예능의 방식을 끌어와 그것을 통해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프로듀사>가 그저 그런 기획성 작품에 머물지 않는 완성도를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몇 초마다 한 번씩 빵빵 터트려주는 예능 같은 드라마를 즐기면서도 그 안에서 예능국의 이야기들을 이해할 수 있고 또한 그것을 통해 사람 사는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게 된다. 그저 김수현만을 내세운 이벤트성 드라마라고? 그 안에 촘촘히 채워진 완성도를 들여다보지 못한 성급한 판단이다. <프로듀사>는 드라마적으로도 또 예능적으로도 꽤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삼포세대에게 멜로보다 강력한 <미생>의 판타지

 

최근 들어 드라마 속 멜로는 왜 그렇게 시들해져버렸을까. 여전히 멜로가 들어가야 시청률을 담보한다는 방송사 드라마 기획자들의 진단은 틀린 것이 아니다. 그것은 늘 수치로서 분명한 결과를 보여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단순한 양적 시청률과는 무관하게 멜로는 외면받기도 한다. 각기 다른 계층의 남자와 여자가 만나 그 계층의 벽을 뛰어넘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는 적어도 이 시대에는 너무나 공허해진 이야기가 되었다.

 

'미생(사진출처:tvN)'

연애, 결혼, 출산’. 이 세 가지를 이미 포기한 삼포세대라는 신조어가 나오는 시대에 통상적인 멜로는 마치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게 해주는 진통제가 되거나, 때로는 전혀 효과가 없는 엉뚱한 처방약처럼 보인다. 그래서 요즘은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현실이 아닌 TV 프로그램으로 대리 경험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마녀사냥>이 그렇고 <우리 결혼했어요>가 그러하며 <슈퍼맨이 돌아왔다> 같은 육아 예능이 그렇다. 이를 다루는 멜로는 <밀회>처럼 그나마 사회적 의미를 덧붙였을 때만 잠깐 주목되는 어떤 것일 뿐, 이제는 현실과 동떨어진 공허함만 남았다.

 

<미생>이라는 대박 리메이크가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에서 방영되게 된 이유가 멜로를 굳이 넣지 않으려는 윤태호 작가의 의지때문이었다는 사실은 그래서 흥미롭다. 윤태호 작가는 드라마라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는 멜로가 <미생>이 그리는 세계를 변질시킬 것을 저어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회사라는 살벌한 전쟁터에서의 삶에 멜로의 달콤함을 덧붙인다는 건 어딘지 맞지 않을뿐더러,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게도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미생>에는 그래서 멜로가 없다. 장그래(임시완)와 안영이(강소라)의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감정의 공기는 있지만 그건 멜로라고 말하기 어렵다. 선차장(신은정)이라는 워킹맘에서 결혼과 출산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지만 그것은 멜로가 그리는 결혼과 출산의 달콤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비애가 그 인물이 그려내려는 결혼과 출산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것은 삼포세대와 동일한 입장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를 낳으면 축복해주기는커녕 또냐?”고 인상을 찡그리는 게 우리네 직장의 현실이다.

 

그런데 이 멜로를 대치하는 더 강력한 관계가 <미생>에는 존재한다. 그것은 남녀 관계의 차원을 넘어선 인간관계의 이라고 할만하다. 장그래라는 사회 초년생이 어찌 어찌해 들어와 살게 되는 영업 3팀의 오과장(이성민)과 김대리(김대명)는 직장이라는 조직이 갖는 어쩔 수 없는 갈등들을 보여주면서도 마치 때론 형 같고 때론 삼촌 같은 훈훈한 공동체의 모습을 그려낸다. 오과장은 이 스펙 없는 장그래라는 청춘을 겉으로는 신뢰하지 못하고 밀어내는 듯 보이지만 속으로는 그 누구보다 안타까워한다. 장그래가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고 그 사실을 오과장이 알아주는 딱풀에피소드는 두 사람 사이의 밀당처럼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한다.

 

<미생>이 직장을 꿈꾸는 이들이나 직장을 다니는 이들에게 열렬한 반응을 얻은 것은 회사라는 어쩔 수 없이 인간의 노동(육체적 정신적 감정적)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시스템에 대한 이 작품의 태도 덕분이다. 이 작품은 아예 시스템 자체를 거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시스템에 굴복하지도 않는다. 원 인터내셔널이라는 시스템이 가진 부조리들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하지만 영업 3팀이라는 작은 공동체는 그 안에서도 나름대로의 작은 저항과 다독임을 통해 이 밥벌이로 치부되는 일터에 그만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 과정을 만들어가는 건 다름 아닌 그 구성원들이다. 장그래와 오과장, 김대리가 엮어가는 회사생활 관계의 썸들은 그래서 그 어떤 비현실적인 멜로의 썸보다 우리의 시선을 잡아끈다. 오과장 같은 상사가 있다면, 장그래 같은 부하직원이 있다면 또 김대리 같은 중간 책임자가 있다면... 이런 상상을 하면서 그들 간에 벌어지는 관계의 성장은 그저 판타지라기보다는 도무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세상에 던지는 작은 대안이 아닐는지. 그런 점에서 장그래와 오과장은 요즘 드라마에서 가장 뜨거운 커플이다.

 

지상파 드라마, 왜 연애를 버리지 못할까

 

MBC <오만과 편견>은 검사들이 주인공이다. 소위 말하는 나쁜 놈들때려잡는 검사들의 이야기.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이 하드보일드 할 것만 같은 드라마에 남녀 주인공 간의 미묘한 의 기류가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한열무(백진희)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힘겹게 검사가 되어 굳이 구동치(최진혁)가 있는 지검으로 자청해 들어온다.

 

'오만과 편견(사진출처:MBC)'

이들은 과거 서로 사귀던 사이였지만 어떤 사건(?) 때문에 헤어졌다. 그들이 다시 만나 생겨나는 묘한 연애의 기류. 왜 이 검사들의 나쁜 놈들과의 전쟁 이야기에 연애가 들어 있는 걸까.

 

어찌 보면 이것은 이질적인 요소처럼 보인다. 첫 회에서 <오만과 편견>이 다룬 것은 아동 성추행범을 검거해내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도 한열무와 구동치의 밀당은 계속 이어졌다. 마지막에 어찌 어찌해 성추행범들을 검거한 후에 한열무가 구동치에게 보내는 시선은 연애감정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이것은 2회에서 마약을 거래하는 범인들을 잡고는 한열무가 구동치와 강수(이태환)가 함께 기거하는 숙소로 들어오는 내용이 담겼다. 숙직실에서 지내는 한열무에게 자기가 마음이 불편하다며 호텔에서 자라는 구동치의 말에 그의 숙수로 들어온 것. 첫 회에서도 살짝 보인 것이지만 한열무, 구동치, 강수는 전형적인 삼각 멜로의 구도를 보인다.

 

<오만과 편견>이라는 검사들의 범인 잡는 장르물에 굳이 멜로가 들어간 이유는 명백하다. 지상파 드라마의 불문율로 자리하고 있는 멜로 없이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실로 지상파 드라마에서 멜로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즉 너무 가까이 해도 너무 멀리 해도 안되는 어떤 것이다. 너무 멜로에만 매몰되다 보면 그저 그런 식상한 드라마로 전락하고, 그렇다고 아예 빼버리면 대중성이 사라져버리는 결과를 만들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 방영되고 있는 월화드라마들의 면면을 보면 멜로가 드라마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SBS <비밀의 문>은 아예 멜로 구도 자체를 만들어내지 않고 영조(한석규)와 사도세자(이제훈)의 맹의를 둘러싼 대결구도에만 천착하고 있다. 드라마는 흥미진진하지만 시청률은 낮다. 멜로라는 일종의 윤활유가 빠져버린 탓이다. 한편 KBS <내일도 칸타빌레>는 클래식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 메인은 차유진(주원)과 설내일(심은경)의 청춘 멜로가 차지하고 있다. 거기에 어떤 현실적인 사회성이 들어 있지 않은 이 멜로는 그 결과로 시청률이 낮다.

 

결과적으로 이야기하면 <오만과 편견>의 사회성과 멜로를 적절히 섞은 선택은 현재의 지상파 드라마의 시청 패턴 속에서는 옳은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시청률 같은 대중성을 잣대로 두고 볼 때 그렇다는 것이지, 작품 자체의 완성도에 있어서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즉 어찌 보면 억지로 엮은 듯한 멜로는 지상파 드라마의 필요악처럼 여겨진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면 최근 케이블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tvN <미생>OCN <나쁜 녀석들>은 오히려 멜로가 없어서 잘 된 작품들이다. 사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성공 이후 쏟아져 나온 tvN표 드라마들이 계속 로맨틱 코미디의 언저리를 방황하다가 추락하게 됐던 사실과, 최근 멜로 없는 <미생>의 성공은 그래서 케이블 드라마를 찾아보는 시청자의 시청패턴이 지상파와는 사뭇 다르다는 걸 말해준다.

 

케이블이 보다 높은 완성도와 리얼리티를 위해 멜로를 과감히 배제하고 있는 반면, 지상파는 괜찮은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성을 위해 어디나 멜로를 끼워 넣으려 한다. 지상파의 이른바 보편적 시청층이라는 타깃은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드라마의 완성도를 저해하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물론 그러면서도 케이블은 지상파가 시도할 수 있는 보편적 타깃을 부러워 하지만.

 

<오만과 편견>이 보여주고 있는 장르물의 성격과 멜로의 퓨전은 그래서 지금 현재 지상파 드라마들이 갖고 있는 힘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혹자는 이 드라마의 연애가 장르물의 몰입을 방해한다고 여길 것이고, 혹자는 바로 그 연애가 있어 장르물의 딱딱함을 견뎌낼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너의 목소리가 들려><별에서 온 그대>처럼 복합 퓨전 장르물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독특한 우리네 드라마의 색깔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멜로라는 족쇄를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 드라마의 한계일 수도 있다. 당장의 시청률에는 득이 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독이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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