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좋은 점은 좀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이진주 PD의 진심

연애남매

JTBC X 웨이브 ‘연애남매’의 이진주 PD를 만났다. 인터뷰는 아니었다(그래서 사실 현장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이 없다). 그저 차 한 잔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누고 싶었다. 도대체 이토록 따뜻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연달아 내놓는 이 인물이 궁금했다. 이 사람의 어떤 태도와 시선이 그걸 가능하게 하는가가. 

 

‘환승연애’라는 공전의 히트 프로그램을 탄생시킨 이진주 PD를 처음 만났던 건 꽤 오래 전 일이다. 아마도 나영석 사단에서 ‘꽃보다’ 시리즈를 경험하며 조연출로서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시절이었다. 기억하기론 당시 이진주 PD는 엉뚱하게도 프로그램 이야기보다는 음악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관심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알았다. 그것이 ‘환승연애’에서 ‘연애남매’로 이어지는 그의 프로그램에 어떤 색깔을 입히게 됐는지. 

 

음악에 리듬과 박자 같은 흐름이 중요하듯이, 이진주 PD는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감정의 흐름이었다. 그래서 주로 멜로드라마가 그러하듯이 어떤 인물이냐가 가장 중요하고 그 인물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들을 갖게 되고 그것이 관계 속에서 어떤 변화들을 갖게 되는가가 자연스러운 흐름 안에 들어가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채널 십오야 ‘빠삐용편’에 출연했을 때 나영석 PD가 이진주 PD에게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PD’로 소개하며 하지만 그만큼 ‘많이 벌어주는 PD’라 상찬한 건, 그의 연출방식이 인물의 감정에 집중함으로써 프로그램에 폭발력을 만드는 것이고 그래서 그 감정의 흐름이 끊기지 않게 하기 위해 몇 배의 제작비도 감수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감정들을 어떤 이유로 보여줘야 할까. 여기에는 갖가지 기획의도들이 의미를 더해 붙여지곤 하지만, 사실 대부분은 연출자가 재미있어하고 그래서 시청자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그 이유가 되곤 한다. 이진주 PD는 그걸 이런 말 한 마디로 담아 전했다. “출연자들을 여러 차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들여다보려 하는데, 문득 어떤 좋은 점들이 보일 때가 있어요. 가슴을 툭 건드리는. 이런 좋은 점은 좀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시청자분들에게.”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지만 그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도 이 한 마디가 유독 내 마음을 움직였고 이진주 PD와 그가 만들어온 프로그램들을 이해하게 해줬다. 이진주 PD는 사람에 애정이 깊은 연출자다. 그래서 사람을 들여다보고 싶어하고 그 사람이 가진 좋은 점들에 먼저 감정적 요동을 경험하는 것 같다. 그러고나면 그런 점들을 또한 시청자분들에게도 전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단순해 보여도 이 한 가지는 엄청난 출연 후보자들을 만나보고(그것도 여러 차례 다양한 방식으로 사전 인터뷰를 한다고 한다) 프로그램의 기획의도에 맞는 이들을 추려내며, 이들이 가진 ‘좋은 점들’을 끄집어내 시청자들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상황이나 미션들을 고민하고, 그렇게 찍어낸 수 백 개의 영상자료들을 매주 수십 명의 PD들이 달라붙어 편집을 통한 스토리텔링하며, 끝내는 하나의 관통되는 서사로 한 회분의 그 주 방영분을 내놓는 그 지난한 과정들을 즐겁게 견뎌내게 해주는 힘이 될 것이다. 

 

또한 이 인물의 ‘좋은 점들’을 시청자분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욕망은 프로그램을 따뜻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연애남매’는 어쩌다 통념에 의해 ‘납작하게’ 소비되어 왔던 남매라는 관계를, 다양한 가족 구성과 정서적 관계를 가진 남매들을 출연시킴으로서 입체적으로 되살려낸 면이 있다. 겉으론 ‘킹받아’ 하면서도 속으로는 남다른 애정을 가진 남매들이나, 아예 대놓고 서로를 의지하는 존재라는 걸 드러내는 남매들이 등장해 보는 이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좋은 점들’을 꺼내보인다. 

 

연애라는 다소 사적인 지점에 가족이라는 보다 확장된 관점을 더함으로써 프로그램은 ‘연애 리얼리티’라는 틀의 한계를 벗어나 인간을 바라보는 ‘휴먼 리얼리티’로 나아간다. 그리고 이건 어쩌면 이진주 PD가 궁극적으로 나가보려는 세계일 것이다. 그는 연애는 하나의 좋은 계기이자 동력일 뿐, 궁극적으로는 사람을 들여다보려는 예능 PD다. 특히 사람의 ‘좋은 면’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수다를 떨던 와중에 문득, 이진주 PD가 하는 일이 내가 하는 일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그램(영상)을 보고 거기서 어떤 의미나 가치를 찾아내려 애쓰는 일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 많은 영상자료들을 통해 하나의 의미가 되는 것들을 연결해 스토리텔링하는 것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방식이 아닌가. 그래서일까. 자꾸 수다를 떨며 이진주 PD를 나도 모르게 ‘이진주 작가’라 부르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가 실제 인물들을 통해 써나가고 있는 작품의 세계에 우리가 깊게 빠져들어가는 건, 그 연출 필력이 만만찮은 이 작가와 우리가 같은 ‘좋은 점’ 속에서 공명하고 있다는 증거다. 우린 마치 음악을 듣는 듯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그 좋은 감정의 흐름 속으로 기꺼이 빨려들어가고 있다. 그 좋은 점들이 주는 웃음과 눈물을 공유하며. (사진:JTBC)

장태유 감독이 부여한 ‘밤피꽃’의 유쾌하면서도 진중한 톤 

밤에 피는 꽃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대본이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흥미진진한 사건전개가 펼쳐지는 그 밑그림이 분명하게 그려져야 그 위에 연출이든 연기든 힘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흔히들 드라마는 ‘작가 놀음’이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작가만큼 중요해진 건 연출자의 몫이다. 그건 최근작들이 멜로면 멜로, 액션이면 액션, 사극이면 사극처럼 분명한 한 장르에 머물기보다는 그 장르들이 복합적으로 뒤섞이는 경향을 띠기 때문이다. 이 때 필요한 건 다양한 장르들이 튀지 않게 조율하며 전체 드라마의 톤을 맞춰내는 일이다. 

 

무려 18.4%(닐슨 코리아)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한 MBC <밤에 피는 꽃>은 그 다양한 장르들의 겹침이 많은 작품이다. 낮과 밤이 다른 수절과부 조여화(이하늬)라는 인물의 설정 자체가 그렇다. 낮에는 과부로서 수절하며 살아가는 열녀의 길이 강요되는 삶을 살아가지만, 밤이 되면 복면을 하고 담을 넘어 저잣거리로 나와 홍길동 같은 의적 활동을 벌이는 인물이다. 낮이 보수적인 조선 사회를 담은 고전 사극의 장르적 색깔을 갖는다면 밤은 그 사극의 틀을 깨는 액션과 활극이 펼쳐지는 히어로물의 색깔이 펼쳐진다. 

 

또 수절과부의 이 이중적인 생활은 이 인물에게 벌어진 비극적인 과거의 사건과 연결되면서 그 진실을 찾아나가는 추리극의 성격을 띠고, 그 사건은 선대왕의 의문사와 연결되어 있어 시아버지 석지성(김상중)과 왕 이소(허정도) 사이에서 벌어지는 정치극의 색깔도 갖고 있다. 물론 사건을 수사하면서 금위영 종사관 박수호(이종원)와 조여화가 엮어지는 멜로도 빠지지 않는다. 박윤학(이기우)과 연선(박세현)의 서브 멜로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사극의 톤에 현대극적인 히어로물의 색깔을 얹고 그 안에 코미디와 멜로를 풀어가면서 추리극과 정치극까지 엮어내는 작업은 결코 쉬울 수 없다. 만일 제대로 엮어지지 않으면 작품은 이도 저도 아닌 지리멸렬한 지경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구슬들을 하나로 꿰어 일관된 톤을 만들어내는 것이 작품의 관건이 되는 이유다. 

 

최근 필자와 만난 자리에서 장태유 감독은 그 중심을 잡아주는 톤이 중요했다며 “코미디와 액션”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사실 수절과부이고, 그렇게 된 것 역시 석지성이라는 인물의 무서운 계략 때문이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밤에 피는 꽃>의 색깔을 무겁고 어두울 수 있었다. 하지만 장태유 감독은 끝내 풀어지는 사건의 결말만이 아니라 그 과정도 충분히 즐겁고 재미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실제로 드라마는 그래서 여러 코미디적 상황들이 전체 서사의 줄거리들 사이에 꽉 채워져 있었는데, 이를테면 조여화가 시어머니 유금옥(김미경)에 의해 가마에서 내리는 법을 반복해서 연습하는 대목이 그렇다. 과거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소재로 활용되기도 했던 그 장면은 진지한 시어머니의 면면을 놓치지 않는 김미경의 연기와 이를 코믹하게 풀어내는 이하늬의 연기 톤이 마주하면서 생겨나는 부조화로 빵빵 터지는 웃음을 만들었다. 

 

또 호판 염흥집(김형묵)이 애지중지하던 산중백호도는 드라마 속 사건들 중 중요한 단서로 등장하는데, 조여화가 그 그림을 우스꽝스런 그림으로 바꿔치기하는 장면이 코미디로 그려졌다. 그런데 장태유 감독은 그 바꿔치기한 그림의 우스운 톤을 살려내기 위해 직접 그 그림을 며칠에 걸쳐 그렸다고 한다. 장 감독이 이번 작품에서 얼마나 코미디에 진심이었는가를 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장태유 감독이 깔아 놓은 드라마 전체의 이 톤 위에서 이하늬는 펄펄 날았다. 장 감독 역시 자신이 바랐던 코미디와 액션의 톤을 이하늬가 제대로 소화해냄으로써 작품의 색깔이 완성됐다고 했다. 이하늬가 중심을 잡아주면서 드라마의 다양한 결들이 그 주변 인물들의 색깔에 따라 펼쳐질 수 있었다. 이를테면 석지성 앞에서는 추리물과 정치극의 색깔이, 박수호 앞에서는 짝패 액션과 더불어 달달한 멜로의 색깔이 그려졌고, 다양한 주변인물들 이를테면 연선과 봉말댁(남미정), 비찬(정용주)과 황치달(김광규) 같은 인물들의 자잘한 코미디 상황극들이 채워졌다. 

 

<밤에 피는 꽃>의 성공은 그래서 좋은 대본과 연기자들의 호연과 더불어 장태유 감독의 전체 작품의 톤을 맞춰낸 균형잡힌 연출이 더해진 결과였다. 그리고 더더욱 복합적인 장르들이 많아지는 현 추세에 이러한 감독의 역할은 갈수록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어떤 톤으로 중심을 잡느냐가 성패를 가르는 관건이 되는 시대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사진:MBC)

‘사랑이라 말해요’, 이광영 감독의 섬세한 연출이 쌓은 감정의 더께

사랑이라 말해요

“캠핑을 중학교 입학하면서 대홍 아저씨한테 처음 배웠어요. 그 때는 아저씨를 아버지라고 불렀었고. 어머니가 결혼하셨던 분들 중에 처음으로 아버지라고 불렀던 분인데 3년만인가? 어머니가 다른 분하고 다시 결혼을 하셨어요. 그 때 아저씨는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캠핑한다고 전국을 떠돌고 나는 그 때부터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울타리 안에서 살아 본 적이 없었어요. 내 어머니는 내 약점이에요.” 

 

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 <사랑이라 말해요>에서 동진(김영광)은 우주(이성경)에게 자신의 약점을 이야기한다. 그 이야기 속에는 그가 왜 캠핑을 좋아하게 됐고 캠핑 전시 관련 일을 하다 회사까지 차리게 됐는가에 대한 것은 물론이고, 그의 엄마가 왜 그가 못 견딜 정도의 약점이 되었는가에 대한 것도 들어있다. 특히 ‘제대로 된 울타리 안에서’ 살아 본 적이 없다는 말은 못내 가슴을 후벼 판다. 

 

그건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집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자신을 따뜻하게 보듬어주고 행복감을 주는 그런 심리적인 의미의 집이다. 그는 마음 둘 데가 없었고 그래서 집이 아닌 캠핑을 할 때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 그 말을 들으며 우주는 어쩌면 동진이 퇴근 길 유난히 쓸쓸하게 보이는 ‘축축한 등’을 떠올렸을 지도 모른다. 버젓이 넓은 집이 있지만 퇴근해도 갈 곳이 없는 사람처럼 거리를 배회하던 그 등짝을.

 

동진이 우주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 곳은 바로 그가 살고 있는 집이다. 그 집은 동진 홀로 있을 때 더할 나위 없이 쓸쓸하다. 어둠이 그를 삼켜버릴 듯이 축 가라앉아 있고, 우주의 표현처럼 금방 이사를 간다 해도 믿을 정도로 가구도 없고 냉장고도 텅 비어있다. 온기가 없다. 그런데 동진이 우주와 함께 그런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여전히 어둑하지만 어딘가 포근하다. 마치 캠핑을 온 것처럼 창가에 의자를 나란히 놓고 적당히 떨어져 앉아 차를 마시는 그들 사이에는 영상으로나마 모닥불이 타 오른다. 

 

이광영 감독은 이 장면을 문밖에서 그 문의 프레임 안에 마치 두 사람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담아내는데, 그래서인지 너무 넓어서 휑하고 쓸쓸하기만 했던 집과는 너무나 다른 느낌을 준다. 작아서 귀엽고 오밀조밀한 공간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와 눈빛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오늘 자고 갈래요?”라고 조심스럽게 던지는 동진의 말에 우주가 그저 고개를 짧게 끄덕이는 장면은 그래서 더 애틋해진다. 그건 이 두 사람이 더할 나위 없는 자신들만의 공간 속에 들어왔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다음 날 아침 동진이 깨어나 먼저 나간 우주가 챙겨 놓은 밥을 먹는 장면은 이전에 그가 혼자 먹던 장면과는 완전히 다르다. 이광영 감독은 이 작품에서 유독 인물들의 뒷모습을 많이 담아내는데, 동진의 뒷모습은 그가 살고 있는 집처럼 덩치가 커서 오히려 더 쓸쓸한 모습으로 담겨지곤 한다. 하지만 우주와의 하룻밤을 보내고 깨어나 동진이 아침을 먹는 장면에서는 창가에서 마치 축복처럼 햇볕이 쏟아진다. 그리고 카메라가 뒤로 빠져나가면 거기 우주가 동진을 위해 아침을 하는 모습이 오버랩된다. 마치 한 장면인 것처럼. 홀로 아침을 먹고 있어도 동진의 뒷모습이 왠지 축축해보이지 않는다. 

 

<사랑이라 말해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작품에서 이광영 감독의 연출이 만들어내는 지분은 절대적이다. 이광영 감독은 인물들을 프레임에 담을 때 그저 서사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담지 않는다. 그보다는 감정을 담아내려 한다. 부감으로 찍을 때와 정면으로 담을 때 그 안에 인물이 어떤 정도의 크기로 어느 위치에 들어가야 그 때의 감정이 살아나는가를 세심하게 배려해서 담는다. 

 

그건 동진의 회사에 앙심을 품고 망하게 하려고 한 신대표가 회사를 찾아와 최선우(전석호)가 대들면서 난리가 났을 때 모든 직원이 일어서 있는 상황 속에 동진과 우주만 자리에 앉아 있는 장면 같은 데서도 잘 드러난다. 그 앉은 눈높이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칠 때 전해지는 감정선 같은 걸 이광영 감독은 놓치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연출이 가능한 건 인물들의 감정을 세심하게 담아내는 대본과 대사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제아무리 좋은 대본이 있어도 연출이 그 감정을 켜켜이 쌓지 못하고 훑어지나가 버리면 그 느낌이 살 리가 없다. 오랜만에 느껴 보는 멜로 연출의 맛에 시청자들은 우동커플(우주와 동진) 얼굴만 봐도 눈물 나는 먹먹한 경험을 하고 있다. (사진:디즈니+)

'괴물', 대본·연기·연출.. 올해의 드라마로 꼽아도 손색없는 이유

 

사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물론 '하균신(神)'이라 불리는 신하균이 출연한다는 사실이 상당한 신뢰감과 기대감은 줬지만, 이렇게 16부작 드라마가 숨 쉴 틈 없이 긴장감으로 꽉 채워지리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다. 이제 단 2회만을 남기고 있는 JTBC 금토드라마 <괴물>의 시청자들이라면 생각이 다르지 않을 게다. 이만큼 쫀쫀한 대본과 빈틈없는 연기 그리고 범죄스릴러에 아련한 슬픈 정조까지 더해 넣는 연출이 삼박자를 이룬 드라마를 본 지가 얼마나 됐던가. '올해의 드라마'라고 꼽아도 손색이 없을만한 드라마가 탄생했다.

 

범죄스릴러에서 16부라는 분량을 하나의 사건으로 꿰어 넣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 형사와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범죄스릴러는 그래서 몇 개의 병렬적 사건들을 구성해 넣고 그걸 해결해가는 형사 캐릭터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과거 <비밀의 숲>에서 우리는 놀랍게도 한 사건만으로도 16부작을 그려낼 수 있고, 그것도 느슨함이 결코 없는 팽팽한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해낼 수 있다는 걸 확인한 바 있다.

 

그래서일까. <괴물>이 20년 전 벌어진 살인 실종사건과 현재 벌어진 유사한 사건을 엮어 그 전말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이야기는 그 모두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비밀의 숲>이 줬던 놀라운 감흥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든다. 게다가 <괴물>은 범죄스릴러라고 하면 거리가 멀 것처럼 느껴지는 '슬픔의 정조' 같은 걸 이 살벌한 범죄 속에서도 찾아낸다. 놀랍게도 시청자들 중에는 이 범죄스릴러를 보며 눈물이 터지는 경험을 했다는 분들이 적지 않다.

 

이게 가능해진 건 범죄스릴러가 자극적인 사건들에 집중하다보니 놓치곤 했던,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물론이고 그런 사건이 벌어진 마을 사람들이 갖게 되는 아픈 상처를 놓지 않고 있어서다. 이동식(신하균)은 여동생을 처참하게 잃은 피해자 유족으로서 결코 지워지지 않는 그 상처를 보여주고 분노하고 슬퍼한다. 그를 보는 친구나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그처럼 엄마가 실종된 채 사체로 돌아오게 된 정육점 주인 유재이(최성은)의 아픔도 이동식과 다르지 않다. 이들의 정서적 유대감과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해 미쳐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슬픈 괴물'처럼 그려진다.

 

그러면서 드라마는 여러 부류로 보여지는 괴물들의 정체를 드러낸다. 자신의 딸까지 처참하게 죽여 버리는 연쇄살인범 강진묵(이규회)이라는 눈에 잘 드러나는 괴물을 먼저 드라마는 일찍이 꺼내 보여주면서, 그 괴물 때문에 미친 듯이 실종 가족을 찾다 슬픈 괴물이 되어가는 이동식과 유재이 같은 인물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사건은 강진묵이 체포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이면에 숨겨진 진짜 괴물들을 찾아나간다.

 

정치적 야망과 돈에 대한 욕망 그리고 권력욕 때문에 사람이 죽어나가도 개발에만 혈안인 시의원 도해원(길해연), JL건설대표 이창진(허성태) 그리고 차기 경찰청장이 유력한 한기환(최진호) 차장이 그들이다. 놀라운 건 피해자 유족인 이동식의 멈추지 않는 수사를 통해 이들의 실체를 찾아가는 존재들이 다름 아닌 그 괴물들의 가족이거나 가족이었거나 했던 인물들이라는 사실이다.

 

도해원의 아들 박정제(최대훈)는 엄마의 실체에 다가서고, 한기환의 아들 한주원(여진구)은 자신의 죄를 드러내면서까지 아버지의 욕망을 꺾어버리고 그 진면목을 세상에 까발리려 한다. 한때 이창진의 아내이기도 했던 이혼한 전처이자 문주경찰서 강력1팀 팀장인 오지화(김신록)는 이창진의 비리를 찾아 나선다. 이런 설정은 다분히 작가의 의도가 깔려 있다 보인다. 그건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서로 결탁하고 비리를 무마하는 현실의 부조리들을 깨나가는 것이면서, 많은 현재의 문제들이 사실은 과거 부정을 저질렀던 기성세대들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결코 텐션을 잃지 않고 끝까지 긴장감을 끌고 가는 대본과 한마디로 '씹어 먹었다'고 말해도 될 법한 구멍이 전혀 보이지 않는 연기자들의 호연, 그리고 최백호의 'The Night'이라는 곡이 갖고 있는 처절함과 애달픈 정조를 그대로 영상 연출로도 채워 넣은 연출의 균형. 무엇보다 범죄스릴러가 자극의 차원을 넘어 우리네 사회의 개발붐과 그 이면에 무수히 무너져 내린 사람들의 비극으로까지 메시지를 채워 넣은 건 이 드라마가 거둔 놀라운 성취가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하지만 이 드라마는 "미쳤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말 그대로 '괴물' 같은 드라마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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