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찾사>의 힘, 낮은 시선으로 가능해진 신랄함

 

요즘 <웃찾사>가 뜨겁다. 한때는 <개그콘서트>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대중들의 관심을 받던 개그프로그램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여러 차례 편성변경으로 시간대를 옮기면서 프로그램의 존재감은 사라지다시피 했다. 그런데 금요일 밤에 자리한 후 꾸준히 코너들에 변화를 주기 시작하면서 <웃찾사>의 존재감은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웃찾사(사진출처:SBS)'

안시우라는 개그맨을 스타덤으로 올린 배우고 싶어요라는 코너는 초등학생 어린이들의 입에 붙을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사실 코너의 내용은 단순하지만 그 테니스가 배우고 싶어요. 테니스...”하며 무한 반복되는 안시우의 멘트를 박자를 맞춰 따라가다 보면 저도 모르게 입으로 옮겨 붙는 이 중독성에 놀라게 된다. 이것은 거의 후크송 수준이다.

 

의미 없는 대사의 반복 같지만 신발, 신발, 바지, 바지, , tennis, 테니스!”라고 따라하게 만드는 이 코너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왜일까. SBS 이창태 예능국장은 그 원인을 오히려 지독한 현실에서 찾는다. “너무 복잡하고 답답한 현실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를 잊고 무언가에 빠져버리고 싶은 욕구를 이 코너가 자극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코너는 안시우라는 인물을 제대로 캐릭터화한 데서 그 힘이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마치 과거 심형래나 이창훈의 명맥을 잊는 신세대 바보 캐릭터 같은 느낌을 준다.

 

배우고 싶어요가 현실을 잊게 만들어준다면, ‘뿌리 없는 나무는 그 현실을 끄집어내 신랄한 풍자로 보여줌으로써 주목받는 코너다. 변성기가 지나지 않아 위엄이 없는 목소리가 고민인 왕으로 등장하는 남호연은 약간은 덜 떨어진 척 하면서도 대중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인물이다. 더 위엄이 있어 보이는 신하들에 의해 주눅 든 왕의 모습은 그 자체로 권력을 해체시키는 카타르시스를 만들어 준다.

 

왕은 무능한 캐릭터지만 그렇다고 나쁜 인물은 아니다. 대신 갑질하는 캐릭터로 등장해 왕의 질타를 받는 인물은 중전 장다운이다. “돈보다 귀한 열정페이를 줬다고 중전이 말하자 정도전 도전천곡 나가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라고 던지는 왕의 비판은 듣는 이들의 속까지 시원하게 만들어준다. 중전이 갑이라고 하자 갑은 갑이지 아주 꼴갑이지라고 하는 왕의 대사도 그렇다. 갑질하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 대중들이 느끼는 그 갑갑증을 이 코너는 속시원히 풀어내주고 있다.

 

한편 기묘한 이야기같은 코너는 전형적인 공감개그의 형태를 띠고 있다. 특정한 상황에 대한 공감에서 묻어나는 웃음을 제대로 긁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제일 좋은 노래로 알람 맞췄는데 그 노래가 제일 싫어졌다기묘하죠?”하고 묻는 식이다. 회사에서 커피 타라고 해서 회사 때려 치고는 나와서 바리스타가 됐다는 한 여직원의 이야기는 일상적인 현실에서 발견하는 기묘한 순간들을 이 코너가 얼마나 잘 포착하고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뭐라구?’라는 코너는 MBC 개그맨으로 활동하다 프로그램이 사라져 <웃찾사>로 들어온 최국이 새로 시작한 개그로 역시 프로다운 기량을 보여줬다. 이 코너는 끊임없이 황당한 거짓말을 해대는 현실에 대해 믿을 수 없다며 뭐라구?”하고 자꾸만 되묻는 것이 그 형식이다. 붕어빵 장사 하다가 소송에 걸렸다는 유남석이 붕어빵에서 가시가 나왔다는 얘기를 하자 뭐라구?”하고 반복해서 되묻는 최국의 모습이 큰 웃음을 준다. 이 코너에는 절묘한 말 개그와 더불어 거짓말하는 현실에 대한 공감도 함께 끌어간다는 점에서 향후가 더욱 기대되고 주목된다.

 

역시 가장 뜨거운 건 현실에 대해 직설적인 풍자를 가하는 ‘LTE뉴스. 어린이집 교사 폭행 사건을 얘기하며 정부가 소홀한 이유는 내 아이가 아니다이기 때문이라는 말이나, “편안한 미국행을 위해 견과류와 비즈니스석이 필요할 때입니다처럼 은근히 대한항공 사태를 풍자하는 대목에서는 역시 ‘LTE뉴스답다는 얘기가 나온다.

 

항간에는 <개콘>보다 <웃찾사>가 더 뜨겁다는 얘기가 나온다. <개콘>은 어딘지 자꾸만 패턴화되어 돌아가는 느낌이 강하고, 현실 공감이나 풍자면에서도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가 나오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이제 최고의 위치에 서게 되면서 <개콘>이 할 수 있는 코너가 오히려 점점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반향이나 책임은 <개콘>이 옿려 움츠러들게 된 이유다.

 

반면 <웃찾사>는 가장 낮은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가감 없는 현실 공감과 풍자가 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개그 코너 하나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우리네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어쨌든 주춤하고 있는 <개콘><웃찾사>라는 경쟁자가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은 여러모로 긍정적이라고 여겨진다. 그러한 경쟁의식은 결국 양측에 모두 발전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같은 개그 프로그램의 전성시대는 결국 그 경쟁 체제에서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한석규의 왕 연기, 어떤 점이 달랐을까

 

확실히 믿고 보는 배우 한석규는 달랐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 욕하는 모습조차 인간미로 소화해낸 한석규 덕분에 우리는 지금까지 사극을 통해 봐왔던 왕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글을 창제하고 배포한 세종의 그 격의 없는 왕의 모습에서는 저잣거리 백성들을 향하는 그 낮은 자세가 느껴졌다. 교과서 속에 박제되어 있던 세종은 그렇게 한석규를 통해 재해석됐고 비로소 살아있는 인물로 되살아났다.

 

'비밀의 문(사진출처:SBS)'

그리고 돌아온 <비밀의 문>은 한석규의 영조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이다.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왕의 면면이 평이할 리가 없다. 따라서 한석규가 해석해낸 영조는 자상한 면과 광기어린 면이 뒤섞여 있는 왕이다. 그 광기를 <비밀의 문>은 맹의라는 비밀문서를 통해 보여준다. 노론과의 결탁을 뜻하는 그 맹의에 수결함으로써 왕이 됐다는 그 사실은 영조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걸림돌이자 두려움이다.

 

<비밀의 문>은 일반적인 사극의 시작과는 사뭇 다르게 그 문을 열었다. 짧게 맹의에 수결하는 영조의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 맹의를 없애기 위해 심지어 승정원에 불을 지르는 영조를 통해 맹의가 가진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또 그것을 덮으려는 자와 밝히려는 자의 대결구도로 흘러간다는 점에서 바로 이 맹의의 존재감은 이 사극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힘이 된다. 바로 그 힘을 드라마 초반 시작 단 몇 분만에 실어주는 것이 다름 아닌 한석규의 연기다. 그는 광기와 두려움이 교차되는 모습을 통해 맹의라는 비밀문서가 가진 무게를 만들어냈다.

 

사실 <비밀의 문><뿌리 깊은 나무>의 장르적 특성과 유사한 점이 많다. 왕을 다뤘다는 점이 그렇고, 그 안에 미스테리한 추리극 요소를 집어넣었다는 점이 그렇다. 하지만 무엇보다 유사하게 여겨지는 건 한석규가 지금껏 우리가 봐왔던 것과는 다르게 왕을 재해석해낸다는 그 지점이다. 실제로 <비밀의 문>은 아직까지 <뿌리 깊은 나무> 만큼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팽팽한 긴장감과 보는 재미를 만들어내는 건 바로 이 한석규가 해석하는 영조 덕분이다.

 

<비밀의 문>이라는 사극이 가진 근본적인 힘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조선왕조 500년의 가장 불행한 가족사에서 나온다. 뒤주에 가둬 사도세자를 죽게 만든 왕, 영조. 제 아무리 광기를 보였다고는 하나 아비가 자식을 죽인다는 건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터다. 역사는 자식을 죽인 왕의 입장에서 쓰여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자식을 죽인 왕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자식의 광기를 좀 더 극대화해야 했을 것이다.

 

<비밀의 문>은 이 부분을 재해석한다. 역사의 내용과는 다른 이유가 있었을 거라는 것. 맹의는 그래서 영조가 이런 극단적인 일을 선택하게 만드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여기서 흥미로워지는 것은 사도세자의 광기가 아니라 영조의 광기가 이 사건이 벌어지는 이유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역사 왜곡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로서 <비밀의 문>이 이 새로운 해석을 통해 현재적인 문제의식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면 용인될 수 있는 일이다.

 

과연 영조는 어떻게 변화해갈까. 그리고 그 변화의 과정은 지금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줄까. 이 드라마에서 이 모든 궁금증을 쥐고 있는 게 바로 영조라는 인물이다. 한석규의 입체적인 왕에 대한 해석은 그 영조를 깨워내고 있다. 다른 모든 것을 차치하고라도 <비밀의 문>이 흥미로운 이유는 이 변화무쌍한 영조를 재창조하고 있는 한석규의 연기 덕분이다.

 

왜 하필 지금 '정도전'일까

 

왜 하필 정도전이었을까. 여말선초 이 난세만큼 사극이 사랑한 시기도 없을 게다. 거기에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라는 인물이 있다. <조선왕조 500>은 물론이고 <용의 눈물>, <대풍수> 같은 사극이 이성계라는 난세의 영웅을 소재로 다뤘다. 변방을 지키던 무장이 왕이 되는 과정이니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특히 대선이라는 정치적 변혁기를 매 번 치르게 되는 우리에게 이 인물은 그 때마다 상징적인 의미가 덧붙여진 채 재해석되었다.

 

'정도전(사진출처:KBS)'

그런데 이 시기를 다루면서도 KBS가 정통사극의 부활을 알리며 가져온 인물은 이성계가 아니라 정도전이다. 물론 <정도전>이라는 제목을 붙여놓았지만 이 사극에서 이성계의 존재감을 무시할 수는 없다. 사극의 첫 시작부터가 정도전(조재현)이 이성계(유동근)를 찾아가는 장면이다. 결국 정도전의 정치력과 이성계의 힘이 만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니, 정도전을 다루면서 이성계가 빠질 수는 없는 일이다.

 

사실 드라마적인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 훨씬 효과적인 인물은 이성계다. 무장으로서 원에 쫓겨 고려로 들어온 홍건적을 물리치며 화려하게 등장해서는 원나라 나하추의 군대를 대파하면서 고려민들의 구세주로 떠오른 인물. 그의 연전연승 이야기는 조선 건국의 정치적인 이야기와 맞물려 훨씬 다이내믹한 장면들을 보여줄 수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도전은 다르다. 그가 이성계와 함께 새로운 나라를 꿈꾸고 세운 것은 맞지만 그것은 끊임없는 정치적인 투쟁의 결과다. 즉 정도전을 다루는 사극은 결국 본격 정치를 다룰 수밖에 없고, 그것은 칼이 보여주는 스펙터클이 아니라 말로써 벌어지는 정치 대결이 사극의 주요한 요소가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사극 <정도전>은 고려 말 이색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정도전과 정몽주(임호)를 위시한 신진사대부들과 고려 말 원나라와 결탁해 권력을 잡은 권문세가의 대표 이인임(박영규)과의 정치대결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쇠퇴해가는 북원의 끝자락을 잡고 고려 말의 권세를 계속 유지하려는 이인임과 북원과의 고리를 끊고 새롭게 등장하는 명나라와의 관계를 통해 새 세상을 꿈꾸는 정도전의 대결. 여기에 최영(서인석) 같은 고려의 충신과 공민왕이 시해당한 후 수렴청정을 한 명덕태후(이덕희), 그리고 왕실외척세력인 경복흥(김진태)의 힘겨루기가 들어가면서 정치대결은 더 복잡한 양상을 만들어간다.

 

정치적 이상과 포부가 큰 정도전이지만 적 아니면 도구로만 상대를 생각하는 현실 정치 9단 이인임을 이겨낼 수는 없다. 자신을 제거하려는 이인임에 맞서 정도전이 유학자들의 성지인 대성전으로 들어가 단식투쟁을 벌이자 이인임이 최영의 힘을 빌려 무력 진압 해버리는 현재의 정치에서도 낯설지 않아 보이는 장면은 그의 만만찮은 정치력을 보여준다. 정도전은 결국 이인임과의 수차례 대결에서 패배한 연후에야 이상과 현실 정치의 봉합을 꾀하게 되는 셈이다.

 

정도전은 이처럼 그 정치적 성장담이 흥미롭지 않은 건 아니나 그래도 TV 사극으로서는 다루기가 쉽지 않은 인물인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계가 아닌 정도전을 다루는 데는 그만한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정도전이 꿈꾸던 새로운 세상과 관련이 있다. 정도전은 왕이 통치하는 나라가 아닌 재상이 통치하는 나라를 꿈꾸었다. 즉 왕에 따라서 정치가 농단되는 것을 봐온 그로서는 왕이 누가 되던 나라가 제대로 움직이는 시스템을 꿈꾸었다는 점이다.

 

수차례의 대선을 겪으면서 그 때마다 가졌던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감은 단 몇 년도 지나지 않아 좌절을 겪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에 그토록 꿈꾸었던 민생경제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박근혜 대통령이 얘기했던 양극화 해소 역시 지난 1년 동안 아무런 해결점을 보이지 못했다. 결국 대통령 한 사람에 의해 정치가 바로 서고 나라가 제대로 움직인다는 것은 이제 믿기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왕이 아닌 시스템의 개혁을 꿈꾼 정도전이 사극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건 지금 현재 대중들이 느끼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정서를 반영한 것이 아닐까. 대선에 대한 누적된 실망감은 이제 표상되는 대표자의 얼굴이 아닌 실제적인 현실 정치 시스템의 변화로 시선을 돌리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이것이 <정도전>이라는 쉽지 않지만 좀체 눈을 떼기 힘든 본격 정치 사극에 마음이 움직이는 이유가 아닐까.

<대풍수>, 주인공이 주목되지 않는 사극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드라마 공감] <대풍수>는 올해 SBS가 야심차게 준비한 사극이다. 이미 이 기획이 방송가에 돌아다닌 것만도 5년여가 된 작품이라고 한다. 본래 좀 더 일찍 방영될 예정이었으나 늦춰지는 바람에 SBS의 다른 작품들이 대체 편성되기도 했다. <추적자>는 본래 그 대체 편성된 작품이었지만 ‘국민드라마’라는 호칭을 얻을 만큼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정작 <대풍수>는 부진의 늪에서 좀체 빠져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시청자들은 무언가 확실한 끌림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대체 뭘까.

 

'대풍수'(사진출처:SBS)

<대풍수>는 왕이 아니라 왕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기존 사극과는 궤를 달리 한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로 이어지는 시대 상황에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을 풍수를 다루는 사람들의 시각으로 그려낸다. ‘킹 메이커’라는 소재는 왕보다는 민초들에게 더 관심이 가게 된 현재의 달라진 시청자들의 정서에도 잘 맞는다. 또 풍수라는 지금껏 드라마에서 잘 다뤄지지 않던 분야가 나온다는 것도 흥미롭다.

 

하지만 새로운 소재란 신선하기도 하지만 낯설기도 한 게 현실이다.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않으면 시청자들이 몰입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대풍수>가 초반에 부진한 이유는 바로 이 낯선 소재가 갖는 매력을 부각시키지 못함으로써 시청자들을 몰입하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주인공이 잘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꽤 큰 스케일을 갖고 있기 때문에 등장인물들도 굉장히 많은 편인데, 그 인물들 속에서 정작 주인공인 지상(이다윗)이 그다지 주목되지 않는 것.

 

복잡한 사극에서 주인공의 초반 역할은 그 사극의 가이드 역할을 하면서도 계속 보게 만드는 힘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소재가 낯설고 설정이 복잡해도 주인공만 주욱 따라가면 쉽게 이해되어야 사극의 몰입도가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풍수>는 너무 많은 인물들이 저마다의 위치에서 힘을 내지만 그것이 주인공으로 결집하지 못함으로써 그 힘이 흩어지고 있다.

 

주인공 지상의 아버지인 동륜(최재웅)에게 초반 집중되는 듯 하던 <대풍수>는 갑자기 이성계(지진희)를 만나면서 힘이 흩어지게 됐고, 그 후로는 지상의 친모인 영지(이진)와 수련개(오현경)의 대결구도가 사극을 끌어가는 힘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어린 지상은 그 큰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어 아버지를 포함해 자신을 키워준 이들이 모두 죽게 되고 결국에는 자신까지 땅 속에 묻히는 일까지 당하지만 그 일련의 사건들이 지상에 대한 매력 혹은 연민으로 잘 연결되지 않았다.

 

<대풍수>의 초반에 선정성 논란이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수련개와 이인임(조민기)의 베드신이 몇 번 반복되고, 심지어 단역들조차 베드신이 등장하게 된 것은 초반 스토리가 가진 약한 구석을 자극으로 메우려는 의도로 보인다. 어린 지상이 굳이 땅속에까지 묻혔다가 다시 나오는 장면은 물론 그 땅속과 어머니의 자궁을 연결시켜주려는 의도도 있지만 자극적인 장면인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결국 <대풍수>의 초반 부진은 아역들이 너무 힘도 매력도 없다는 데서 비롯된다. 기존 사극들이 아역에서 초반 힘을 상당부분 만들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례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아역의 부진은 또한 이어질 성인역에서 반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마의>가 초반 아역들의 부진을 조승우라는 배우를 통해 털어냈듯이, <대풍수>도 지성을 통해 그 부진을 털어낼 수 있을까. <대풍수>는 먼저 그 주인공을 매력적으로 세워놓는 작업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지성의 어깨가 무거워지는 지점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