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리즘에 빠진 리얼 버라이어티에 ‘무한도전’이 시사하는 점


요즘 리얼 버라이어티쇼들은 매너리즘이라는 난관에 봉착해있다. 지난 1년 간 가장 주목을 끌었고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1박2일’은 어느 순간부터 “식상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연예인들의 가상결혼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버라이어티쇼로 끌고 들어와 순식간에 화제를 낳았던 ‘우리 결혼했어요’ 역시 똑같은 비판에 직면해 있다.


현재 일요일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삼국지에서 ‘패밀리가 떴다’가 수위에 오른 것은 그 새로운 쇼가 가진 재미가 일조한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경쟁 프로그램들의 매너리즘이 준 영향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벌써부터 이 프로그램의 미래 역시 여타의 리얼 버라이어티쇼와 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무형식이 오히려 ‘무한도전’을 살렸다

그런데 이즈음 생각해봐야할 것이 있다. 2년 여 넘게 지속되어 오면서 물론 몇 번의 매너리즘은 있었지만 그 어려움을 그 때마다 극복해내고 다시 정상으로 올라선 ‘무한도전’은 어떤 비책이 있었던 것일까 하는 점이다. 매년 반복되는 시청률 하강과 상승곡선이지만 여름 비수기를 지나 ‘무한도전’은 이제 다시 성수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어떻게 이런 괴력이 가능한 걸까.


흔히들 ‘무한도전’의 최고 가치로서 끝없는 도전정신을 꼽는데 주저할 사람이 있을까. 새로운 형식실험은 물론이고, 시류에 맞는 포맷구성(예를 들면 ‘놈놈놈’의 패러디 같은) 혹은 소재선택(태안을 소재로 한 ‘태리비안의 해적’ 같은)을 이 프로그램처럼 끝없이 시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느 정도의 패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패턴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무형식’의 형식을 ‘무한도전’이 취하고 있다 일컬어지는 건 그 때문이다.


바로 이 무형식의 형식은 매번 새로운 실험을 해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무한도전’의 도전 상황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도대체 그 피곤함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효율성의 문제 또한 제기되었다. ‘무한도전’의 성공한 한 형식을 가져가면 거의 한 포맷의 프로그램이 가능할 수도 있다. 이것은 여행 형식을 가져와 정착했던 ‘1박2일’을 통해 입증되었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늘 새로운 형식을 다시 고민한다. 즉 쌓아놓은 유리한 입장을 버리고 제로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것이다.


형식의 버라이어티, 형식 속 이야기의 버라이어티

김태호 PD 스스로도 고통을 호소했듯이, ‘무한도전’의 시청률이 하락세를 보일 때 가장 먼저 지목된 이유가 바로 이 무형식의 도전 상황, 과도한 피곤함이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반면 여행이라는 형식을 가져온 ‘1박2일’은 적어도 이 형식 자체에 대한 고민은 적을 수 있었다. ‘1박2일’이 계속해서 재미있는 소재와 아이템들을 끄집어내 단기간에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자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반복할 수 있는 형식이 있다는 것과, 그를 통한 학습효과가 효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1박2일’의 성공사례는 마치 ‘무한도전’처럼 매번 새로운 형식을 고민해야할 것 같은 불가능해 보이는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도전 상황 속에서 어떤 대안을 가능하게 만든다. 여행 같은 ‘될 만한 아이템’을 가져와 그 형식 안에서 반복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 결혼했어요’가 결혼을, 그리고 ‘패밀리가 떴다’가 시골체험을 아이템으로 가져왔고, ‘무한도전’이라면 1회분에서 3회분 정도의 분량으로 끝낼 아이템을 이 프로그램들은 매번 반복한다. 이렇게 되자 ‘무한도전’이라면 상대적으로 작은 분량 속에서 보여주지 못했을 좀 더 아기자기한 디테일들이 이들 프로그램 속에서는 가능하게 된다.


‘무한도전’이 매번 형식의 버라이어티를 추구했다면, 후발주자로 등장한 이들 프로그램들은 같은 형식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의 버라이어티를 추구했다. 문제는 이 형식이 익숙해지면서부터 시작된다. ‘1박2일’의 복불복 게임이나, ‘우리 결혼했어요’의 이벤트는 초반에는 ‘무한도전’이 보여주지 못하는 디테일의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그것이 반복되면 될수록 시청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해지기 마련이다. 이것은 단지 디테일의 문제만이 아니다. 프로그램 자체가 가져온 형식, 즉 여행이나 결혼이라는 특정 형식 역시 식상해질 수 있다.


‘1박2일’과 ‘우결’이 ‘무한도전’에서 배워야할 것들

‘1박2일’이 여행지에 좀 더 천착하면서 그 장소가 갖는 정보의 재미를 추구했다면 매번 이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들의 기대감은 비슷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1박2일’은 그 동안 여행지가 가진 정보의 재미보다는 복불복 게임이나 여행지 찾아가기 같은 여행 형식 자체가 가진 재미를 반복해왔다. 상대적으로 태백의 귀네미 마을을 찾아간 ‘배추고도’편은 그 소재에 있어서 참신한 것이었지만, 그 안을 채운 것은 과거의 형식들, 예를 들면 즉석공연이나 복불복 같은 것들이었다. ‘1박2일’은 이 상황에서 장소가 달라지는 데 따라 형식 자체의 실험적인 버라이어티를 추구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우리 결혼했어요’가 가진 문제는 구성원의 문제다. 결혼 버라이어티를 추구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커플들의 이야기는 가면 갈수록 식상해지기 마련이다. 이것을 벗어나는 방법은 할리우드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에서 찾을 수 있다.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야기들을 갖고도 계속해서 인기를 끌 수 있는 것은 계속해서 다른 커플들, 캐릭터들을 그 형식 속에 집어넣기 때문이다. ‘우리 결혼했어요’가 초기의 재미를 다시 찾으려면 커플을 계속 교체해주어야 한다. 물론 결혼 버라이어티에서 커플의 교체는 그만한 형식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이 버라이어티쇼가 매너리즘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무한도전’이 매너리즘을 벗어나 다시 최고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그 끊임없는 형식에 대한 버라이어티 추구에 있었다. 어떤 아이템이 어떤 형식으로 등장할 지 아무도 모르는 그 상황이야말로 진정한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갖는 힘이다. ‘무한도전’ 역시 늘 비슷한 형식에 대한 유혹을 벗어내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어떤 매너리즘에 봉착했던 적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무형식을 선택했고, 끝없는 도전과 실험을 선택했다. 그것만이 매주 반복되는 프로그램이 시청자와 익숙해지는 상황을 어느 정도 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가능하려면 이미 익숙해져 시청자가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면 안 된다. 매너리즘에 빠진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면 어떻게 하면 늘 낯선 상황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평준화된 TV 프로그램, 그 생존법과 한계

지금처럼 방송사간의 프로그램 경쟁이 치열했던 적이 있을까. 월화수목의 드라마 전쟁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졌고, 주말의 예능 전쟁은 그 판도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다. 최근에는 ‘주중 드라마, 주말 예능’ 같은 틀조차 무색해지고 있는 상황. 월요일 밤의 예능 전쟁과 주말 드라마 경쟁은 점점 전 요일로 확산되면서 전방위적인 방송사간의 프로그램 대전을 예고하고 있다.

소재나 완성도에서 평준화된 TV
그런데 경쟁구도를 벗어나 각각의 프로그램들을 중심으로 이 가을의 TV를 바라보면 우위를 따질 수 있기보다는 각각의 개성들이 강하고, 나름대로의 완성도를 답보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에덴의 동쪽’이 대작으로서의 완성도 높은 시대극을 그리고, ‘타짜’는 부동의 소재인 허영만 원작을 각색했으며, ‘베토벤 바이러스’는 김명민 포스와 클래식소재라는 개성이 강하다. 반면 ‘바람의 나라’는 ‘주몽’과는 또 다른 고민하는 왕을 그릴 새로운 고구려 사극이며, ‘바람의 화원’은 김홍도, 신윤복 같은 이름만 들어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퓨전사극을 기대하게 만든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 드라마들은 소재나 완성도면에서 어느 것의 우위를 따지기 어려울 정도로 평준화되었다.

이것은 이미 여러 차례의 진화 단계를 거치며 다양해진 주말의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른바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은 어떤 계보를 형성하면서도 즉각적으로 서로의 프로그램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진화를 거듭해왔다. ‘무한도전’에서 비롯된 여행 컨셉트가 ‘1박2일’의 야생을 거쳐, ‘패밀리가 떴다’의 심리게임으로 이어졌고, ‘무한도전’의 리얼 버라이어티와 짝짓기 프로그램이 이종교배되면서 등장한 ‘우리 결혼했어요’의 연애모드는 거꾸로 ‘무한도전’과 ‘패밀리가 떴다’의 프로그램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이들 프로그램들은 동시간대 경쟁하지만 모두 각각 한번씩은 수위에 올랐던 적이 있을 만큼 각각의 완성도를 구축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치열해진 편성전쟁과 새로움에 대한 강박
치열한 경쟁이 만들어낸 결과지만 이제 TV의 드라마와 예능은 선뜻 부동의 우위를 논할 수 없을 정도로 평준화되었다. 이 완성도나 소재면에서 승패를 판가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 수위를 결정하는 것은 두 가지다. 그 하나는 편성이고, 다른 하나는 새로움이다. 드라마가 시작할 때마다 벌어지는 편성전쟁이나, 하루에 2회분을 방영하거나 스페셜을 앞뒤로 배치하는 등의 변칙 편성이 일반화되고 있는 건 그 때문이다.

예능에 있어서 치열해진 건 시간대 경쟁이다. ‘1박2일’과 ‘우리 결혼했어요’, 그리고 ‘패밀리가 떴다’는 각각 ‘해피선데이’, ‘일요일 일요일 밤에’, ‘일요일이 좋다’라는 프로그램 속에 존재하면서 다양한 시간대 공략으로 시청률에 영향을 주었다. 초반 ‘1박2일’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 때는 다른 프로그램들이 같은 시간대를 피하기 위한 전략을 썼다. 하지만, 이제 그 힘이 약화되는 느낌을 보이자 ‘우리 결혼했어요’는 ‘1박2일’과 같은 시간대로 이동해 전면전을 예고하고 있다.

한편 편성 전쟁만큼 치열해진 건, 새로움에 대한 강박이다. 드라마에서 이제는 단순한 멜로나 트렌디가 통하지 않는 건 그 새로움이 없기 때문이다. 올 가을 드라마 대전이 볼만한 것은 거의 모든 드라마들이 소재면에서나 스타일면에서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예능 프로그램의 상황은 더 절실하다. 기본적인 리얼 버라이어티의 형식이나 스타일이 정착되고 또 성공한 코드들이 곧바로 다른 프로그램에 소비되는 상황에서 프로그램 자체가 가진 생명력은 그만큼 짧아질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는 새로움이 추가되면 그 자체로 전세는 역전될 가능성이 높다. ‘패밀리가 떴다’가 성공한 것은 ‘1박2일’에 없던 새로움 (예를 들면 여성 출연자라거나 심리게임 같은)에 기댄 바가 크다. ‘우리 결혼했어요’가 새로운 멤버로 변화를 시도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치열한 시청률 경쟁, 시청자들에게 좋기만 할까
물론 시청률 경쟁은 어떤 면에서는 시청자들에게 반가운 상황이다. 그만큼 질적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이 아니면 경쟁에서 밀려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좋은 프로그램을 시청자들은 더 많이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방영시간이 조정되는 상황이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그다지 반가운 일은 아닐 것이다. 또한 한 프로그램에서 봤던 성공한 소재들이 여기저기서 똑같이 베껴지는 상황 역시 시청자 입장에서 좋을 리가 없다. 이것은 끝없이 새로운 소재나 스타일을 발굴해낸 그 원본의 아우라를 무한복제를 통해 순식간에 사라지게 만든다.

그런데 이러한 시간대 경쟁은 지금 시대에 얼마나 유용한 것일까. 하드웨어의 변화가 곧바로 소프트웨어의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는 것처럼 작금의 디지털화된 방송환경의 변화에도 시청 패턴의 변화는 아직까지 아날로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시간대를 무너뜨린 디지털 환경에서 동시간대의 시청률 경쟁은 무색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그 변화의 속도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는 점이다. 대중화된 IPTV와 HDTV의 보급은 이 변화를 이끄는 주동력이다. 이 하드웨어의 변화가 말해주는 건 이제 경쟁의 시각보다는 다양성의 시각으로 프로그램을 바라봐야 한다는 점이다. 이제 시청자들은 ‘베토벤 바이러스’와 ‘바람의 나라’, 그리고 ‘바람의 화원’을, 그리고 ‘1박2일’과 ‘우리 결혼했어요’ 그리고 ‘패밀리가 떴다’중 하나를 선택하게 강요받길 원하지 않는다. 원한다면 모든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시대가 아닌가.

‘이미지 닥터’가 된 리얼 버라이어티, 그 이유

이미지가 생명인 연예인들. 그런데 그 이미지가 이미 낡아버렸거나, 너무 과장됐거나 혹은 부정적으로 변했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과거라면 아마도 대부분은 이미지의 생명이 끝나면서 연예인으로서의 삶도 끝장나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고치면 되니까. 어떻게? ‘이미지 닥터(?)’를 찾아가면 된다. 다름 아닌 리얼 버라이어티쇼를 말하는 것이다.

없던 이미지도 만들어드립니다!
‘1박2일’에 출연하기 전까지 은지원은 그저 힙합아이돌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1박2일’은 그에게서 조금은 막무가내지만 귀여운 초딩 이미지를 끄집어내 주었다. 자신감을 가진 은초딩은 지금 은둘리 같은 보다 적극적인 캐릭터로 점차 진화하고 있다.

김C는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가 낳은 캐릭터다. 좀더 연기를 해야하는 과거의 예능 프로그램 속에서라면 좀체 적응하기가 어려웠을 테니까. 하지만 거꾸로 연기를 하지 않아야 더 각광받는 리얼 버라이어티쇼 속에서 그는 그저 자신의 맨 얼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새로 세웠다.

‘개그콘서트’에서 고음불가로 캐릭터를 세웠던 이수근은 버라이어티쇼로 와서 적응기가 필요했다. 초반 이렇다할 캐릭터를 구축하지 못하던 그였지만 차츰 차츰 발현하게 된 그의 재치 있는 입담은 무덤덤하게만 보이던 국민일꾼이란 캐릭터를 돋보이게 만들었다. 꽤 오랜 시간을 묵묵히 기다려준 ‘1박2일’의 덕이다.

한편 ‘패밀리가 떴다’의 박예진은 어딘지 무뚝뚝해 보였던 이미지를 ‘달콤살벌한(?)’ 이미지로 바꿔주었다. 또 이천희는 같은 프로그램에서 진지하기만 했던 이미지를 벗고 어딘지 엉성한 이미지를 부가해 천데렐라라는 캐릭터를 갖게 되었다. 없었던 이미지도 만들어주는 곳, 바로 그 곳이 리얼 버라이어티쇼다.

낡은 이미지는 편안하게, 과장된 이미지는 친근하게, 비호감은 호감으로
윤종신은 늦둥이로 예능계에 진출해 라디오에서 단련된 특유의 입담을 선보였다. 그의 깐죽 캐릭터가 점차 수면에 올라오게 된 것은 ‘라디오스타’, ‘명랑히어로’ 같은 캐릭터화된 리얼 토크쇼를 통해서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윤종신의 캐릭터를 잡아준 것은 ‘패밀리가 떴다’다. 이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윤종신의 단지 깐죽거리는 캐릭터 이외에 ‘미식전문가’ 같은 성격을 부여하면서 오래된(?) 이미지를 오히려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한편 같은 프로그램의 이효리나 대성, 혹은 간혹 게스트로 출연하는 아이돌 스타들은 연예활동을 통해 쌓여진 과장된(?) 캐릭터를 이 프로그램을 통해 보다 인간적이고 친근하게 변모시키고 있다. 유재석과 늘 툭탁거리며 짝을 이룬 이효리는 여지없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국민요정의 이미지에 털털한 이미지를 덧붙였다. ‘무한도전’의 멤버가 된 전진은 ‘패밀리가 떴다’에도 출연하면서 꽃미남 아이돌 스타 이미지에 코믹한 성격을 부여했다.

비호감 이미지였던 서인영은 ‘우리 결혼했어요’를 통해 신상녀 이미지를 덧붙였고 이를 통해 예능계의 신데렐라가 됐다.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갖는 진솔한 모습이 비호감 이미지까지 호감으로 바꾼 것이다. 그래서일까.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켜 방송활동이 뜸했던 연예인들은 리얼 버라이어티를 통해 복귀를 꿈꾸고 있다. 새롭게 케이블 채널 tvN에서 시작하는 리얼 버라이어티쇼, ‘180분’의 이영자와 이찬이 그 주인공이다.

무엇이 리얼 버라이어티를 이미지 닥터로 만들었나
이밖에도 많은 연예인들이 리얼 버라이어티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다시 세우고 싶어한다. 이미지가 생명인 연예인들은 그만큼 빠르게 소비되는 이미지를 그저 부여안고 있을 틈이 없다. 자꾸만 변해 가는 신상 캐릭터에 대한 요구에 발맞추지 못한다면 순식간에 잊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연예인들이 이미지 변신을 하는 방식은 작품을 통해서였다. 즉 배우들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가수들은 새로운 음반을 통해서, 개그맨은 새로운 개그코너를 통해서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 보다 더 강력하게 등장한 것이 바로 리얼 버라이어티쇼다. 배우든 가수든 개그맨이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이 쇼는 이른바 리얼리티를 통해 그네들의 맨 얼굴을 드러내는(실제로 드러낸다기보다는 그럴 것이라 상상하게 만드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니 이 ‘진정성의 형식’속으로 들어가면 거의 대부분의 이미지 ‘변신, 수리, 복구(?)’가 가능해진다. 이른바 ‘한 꺼풀 벗겨놓고 보면 누구나 똑같은 사람’이라는 공감대 속에서 몰랐던 면들을 발견하게 되고, 잘못된 면들도 이해하게 된다. 물론 그 전제는 진솔해야 한다는 점일 것이지만.

지금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이미지 전쟁이라 할 만큼 치열해진 연예계에서 어떤 피난처 역할을 해주고 있다. 지쳐있던 이미지는 그 속에 들어가 새로운 활력을 얻기도 하고, 부담스럽게 과장된 이미지는 그 속에서 털털한 친근감을 얻기도 하며, 한 때의 잘못으로 복구 불능에 빠진 이미지는 그 속에서 솔직한 심경을 드러내면서 새로운 희망을 찾기도 한다.

이미지 닥터가 된 리얼 버라이어티쇼. 이것은 거꾸로 리얼리티 세상에서 발생하는 이미지의 문제에 있어서 그 무엇이든 솔직한 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다는 것을 에둘러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무한복제시대, 쇼의 생존법

쇼는 어떻게 진화해왔을까. 그것을 진화라고 부를 수는 있는 것일까. 전혀 새로운 형태의 쇼라고 해도 하나하나 그것을 뜯어보면 끝없는 복제 끝에 만들어진 돌연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을 진화라고 한다면 쇼는 진화한 것이 맞다. 하지만 그렇다면 좀 허무하지 않을까. ‘무한도전’을 복제하다 실패한 것이 ‘라인업’이고 돌연변이로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이 ‘1박2일’이라면?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 ‘천생연분’,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 같은 짝짓기 프로그램과 동시에 케이블TV의 동거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을 복제하면서 나온 돌연변이가 ‘우리 결혼했어요’라면 비약일까?

거의 의미가 없어진 원본
하지만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가 보면 원본이라는 것이 거의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 ‘천생연분’,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 같은 짝짓기 프로그램 역시 90년대의 ‘사랑의 스튜디오’같은 프로그램에서 피를 받았고, ‘무한도전’은 특이한 경우지만 ‘무리한 도전’, ‘무모한 도전’을 통해 끊임없이 자기복제를 해온 결과로서 만들어졌다. 물론 여기서 더 나아가면 이제 해외의 쇼들을 둘러봐야 할 것이다. 늘 벌어져왔던 베끼기 논쟁의 끝이 바다 건너로까지 가는 건 쇼의 탄생도 또 형식 그 자체도 거기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복제를 부정적으로 보면 마치 아무런 창조적 작업을 행하지 않은 도둑행위처럼 보인다. 하지만 창조의 의미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있는 것들을 가지고 조합하고 변형시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바뀌고 있는 기술복제시대에 복제는 어쩌면 창조의 한 부분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지금 방영되고 있는 쇼 프로그램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외계인이 아니라, 이미 수많은 프로그램들을 선조로 두고 그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들이다. 그러니 가장 최근에 야심차게 만들어지고 기획된 쇼라면 어쩌면 이 많은 웃음의 유전자들을 하나에 다 가지고 있지 않을까.

무한복제시대, ‘패밀리가 떴다’의 생존법
SBS의 ‘패밀리가 떴다’를 보다보면 그 많은 쇼의 유전자들을 목격하게 된다. 거기에서 먼저 발견되는 것은 ‘1박2일’에서 보였던 여행의 형식이다. 하지만 ‘패밀리가 떴다’가 여행코드를 활용하는 방식은 ‘1박2일’과는 다르다. ‘1박2일’의 여행이 야생의 체험이면서 여행지를 보고 체험하고 느끼는 ‘발견하는 여행’이라면, ‘패밀리가 떴다’의 여행은 여행지 체험이 아닌 패밀리를 다시 발견하는 단합대회에 가깝다. 이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은 이 두 여행에서 상반되게 보이는 여행지에 대한 무게감의 차이다. ‘1박2일’에서 여행지가 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면, ‘패밀리가 떴다’에서 그것은 단지 장소제공을 해줄 뿐이다.

‘패밀리가 떴다’가 ‘X맨’의 야외버전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1박2일’과의 차별화를 위해서 ‘패밀리가 떴다’는 애초부터 게임을 그 중심으로 부각시키려 했다. 유재석이 틈만 나면 “게임 해야죠”하고 말하고, 쇼를 통해 만들어진 관계를 게임 속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예를 들면 천데렐라 이천희와 계모 김수로의 대결구도 같은) 것이 그것이다. 게임을 통해 경쟁 관계를 만들면서 동시에 ‘사랑해 게임’같은 남녀 간의 게임을 통해 애정 관계를 끄집어내는 것은 ‘X맨’에서 이미 익숙했던 코드들이다. 즉 ‘패밀리가 떴다’는 ‘1박2일’의 여행코드와 ‘X맨’같은 남녀가 벌이는 알콩달콩한 게임 쇼가 합쳐진 형태다. 물론 ‘X맨’ 역시 80년대의 ‘명랑운동회’이후 끝없이 생산된 스튜디오형 게임 쇼와 각종 연예인 짝짓기 프로그램 형식의 전통을 따른 것이다.

무늬만 다를 뿐, 토크쇼의 알맹이는 같다
이런 사정은 토크쇼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재 소위 말해 집단 MC 체제의 토크쇼들은 대부분 2000년도에 거의 50%에 가까운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했던 ‘서세원쇼 토크박스’에서 그 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연예인들이 등장해 한 사람씩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하거나, 개인기를 보여주는 이 단순한 형식은 지금 ‘해피투게더’, ‘상상플러스’, ‘야심만만’같은 프로그램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달라진 것은 연예인의 사생활 토크와 개인기를 끌어내기 위한 형식들이다. ‘해피투게더 - 도전 암기송’에서 도전 암기송에 할애되는 시간이 점점 작아지고 대신 연예인들의 토크에 더 비중을 많이 두는 것은 이러한 경향을 에둘러 말해준다.

‘야심만만’이 독특했던 것은 똑같은 연예인의 사생활 토크와 개인기를 특유의 공감코드와 엮었다는 점이다. 설문조사를 통해 특정 상황 속에서의 대처방법 같은 순위의 차트가 있고, 그걸 맞추기 위해 자신의 경우를 말하는 ‘야심만만’은 가장 자연스럽게 연예인의 사생활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대중들이 알고싶은 사생활’이 아니라 ‘대중들에게 알리고픈 홍보성 사생활’이 속보이게 드러나면서 프로그램은 매너리즘에 빠졌다. 최근 다시 시작한 ‘야심만만-예능선수촌’은 오히려 그 포맷의 중심을 더 ‘서세원쇼 토크박스’로 두고 있다. 여러 명의 연예인들이 둘러앉아 저마다의 이야기와 개인기를 보여주는 토크박스 형식에 ‘올킬’이라는 시스템으로 대결구도를 부각시킨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이처럼 지금의 쇼 프로그램에서 어떤 그것만의 아우라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어떤 프로그램 속에서 ‘명랑운동회’나, ‘사랑의 스튜디오’, ‘서세원의 좋은 세상 만들기’, ‘서세원쇼 토크박스’ 같은 아련한 아우라가 파편적으로 조금씩 뒤섞여져 보일 뿐이다. 이렇게 된 것은 물론 치열한 시청률 경쟁이 그 원인이다. 게임쇼가 잘 되면 게임쇼로 몰리고, 짝짓기 프로그램이 잘 되면 모든 채널에 짝짓기 코드가 적용되어왔던 것은 지금 전 쇼의 리얼 버라이어티쇼화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단지 시청률 경쟁 때문일까. 여기에는 원본의식이 희미해진 디지털 기술복제시대가 갖고 있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작용한다. 누구나 다 비슷비슷한 아이디어를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가질 수 있다는 생각. 이미 원본이 없어진(중요하지 않게 된) 이러한 세상에서 자신이 원본이라며 억울함을 토로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제 중요한 건 원본보다는 그 원본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나 오히려 타 분야(심지어는 다른 쇼)와의 다양한 접목 같은 것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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