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1>, 친구라면 김숙처럼

 

쟤들이 정말 부럽다.” KBS <12> 여자사람 특집에서 김준호와 김숙의 우정을 지켜보며 김주혁은 그렇게 말했다. 한 분야에서 오래도록 일해 온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렇게 함께 지낸 시간들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굴 표정만 봐도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척척 알 수 있고, 또 어떤 운을 띄우면 거기에 자연스럽게 맞장구를 칠 수 있는 호흡은 오래도록 함께 해온 시간들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들이다.

 


'1박2일(사진출처:KBS)'

실제로 김준호는 이번 특집에서 특유의 과한 설정을 자주 선보였다. 노래 대결을 벌일 때 김숙이 끄는 손수레를 타고 레드카펫에 입장하는 모습이 그랬고, 이 대결의 진행을 맡으며 과한 콩트 개그를 통해 출연자를 소개하는 장면이 그랬다. 하지만 김숙은 너무나 익숙하다는 듯 김준호의 그런 상황개그들을 척척 받아 분위기를 띄웠다.

 

두 사람이 함께 바이브의 그 남자 그 여자를 부를 때는 과한 김준호의 노래에 모두가 포복절도했지만, 김숙은 역시 개그우먼답게 무표정을 유지하며 노래했다. 타인을 웃기기 위해 본인은 웃음을 참는 모습. 베테랑 개그우먼의 일면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런 개그우먼의 능력보다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 건 김숙의 인간미다. 그녀는 김준호가 방귀를 뀌고 트림을 하며 그것이 진짜 우정의 증거라고 얘기할 때도 익숙한 듯 덤덤히 받아주었고, 여자 게스트들끼리 잠자리에 있을 때면 그렇게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 것이 누구보다 즐거웠다는 진솔한 마음을 털어놨다.

 

공교롭게도 <무한도전>로맨스가 필요해특집에 김숙이 출연했다는 것은 그저 우연적인 일로만 여겨지지 않았다. 물론 미혼 남녀를 찾다보니 그 중에 한 명으로 선정된 것이지만, 김숙과 송은이는 과거에도 <무한도전>에 출연해 길과 소개팅을 했던 적이 있었다. 생각 외로 여성적인 면을 드러냈던 당시의 김숙은 이번에도 소개팅 대상의 정체가 드러나기 전까지만 해도 설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막상 그 대상이 김제동, 지상렬, 김영철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특유의 털털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너무나 친숙한 동료이자 친구들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남자 같고 선머슴 같은 면면은 김숙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매력 포인트다. <12>에서 방과 방 사이게임을 할 때 헐크100% 재연해낸 것처럼 그녀는 의외로 다소곳한 모습을 보이다가 갑자기 본래 갖고 있던 털털한 면을 드러낼 때 웃음을 준다.

 

그런데 바로 이런 면은 그녀가 왜 <무한도전>이나 <12>이 하는 절친들을 통한 특집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가를 잘 말해준다. 그녀는 진짜 여자사람 친구의 편안함푸근함을 선사한다. 늘 웃음을 주기위해 과장된 표정과 포즈를 취하지만 그것보다 그녀의 진면목은 뭘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마음을 척척 알아듣고, 무엇보다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모습이다.

 

사실 김숙은 그 오랜 시간 동안 개그우먼으로 활동하면서 대중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적은 별로 없었다. 늘 어떤 자리에 게스트로 출연하면 특유의 개그감으로 자기만의 지분을 보여주는 개그우먼이지만 그녀는 어쩐지 전면에 자신을 내세우는 그런 인물은 아니었다. 오히려 주변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고 띄워주고 자신은 항상 바닥을 깔아주는 그런 모습. 친구들 사이에도 꼭 이런 친구들이 있다. 그리 드러나지 않아도 그가 있어 늘 편안해지는 그런 친구. 이런 친구라면 나이가 들어도 또 결혼을 했다고 해도 여자사람 친구로서 계속 함께 늙어갈 수 있지 않을까. 김주혁의 말처럼, 그런 친구를 둔 김준호가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프로듀사>가 멜로를 풀어가는 신선한 방식

 

편집은 포기다. 좋은 것과 더 좋은 것 중 더 좋은 걸 선택해야 하니까. 둘 다 가질 순 없는 거다. 욕심 부리다가 둘 다 잃을 수 있다.” KBS <프로듀사>에서 준모(차태현)의 이 대사는 편집에 빗대어 예진(공효진)을 생각하는 그의 속내가 들어 있다. 술에 취해 얼떨결에 사랑고백을 해버린 예진에게 자신도 취해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기억의 자체편집이었던 것.

 

'프로듀사(사진출처:KBS)'

한편 예진 역시 준모가 그 날의 자신의 사랑고백을 기억하지 못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것은 그렇게 드러낸 속내에 준모가 거절할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거기에 대해 승찬(김수현)은 굳이 준모가 예진의 말을 기억하느냐 안하느냐는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만일 그 말이 진심이라면 상대방에게 전해져야 하는 것이고, 거짓이라면 상대방에게 전해졌어도 아무 상관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승찬 역시 자신의 속내를 숨기고 있었다. 그는 그날 예진에게 준모가 집에 가자고 하자 술에 취해 예진 선배가 좋아한다잖아요. 그러니까 둘만 보내기 싫어.”라고 에둘러 예진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을 드러냈다. 결국 그 날의 술자리는 세 사람의 숨기고 있던 속마음이 모두 드러난 자리였다. 예진은 준모를 좋아하고 있었고, 준모는 우정 관계를 넘어서는 예진의 마음을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며, 승찬은 예진을 은근히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것.

 

어찌 보면 이것은 전형적인 멜로구도를 보여주는 것이지만 <프로듀사>가 편집과 기억의 문제를 가져와 이를 풀어내는 방식은 흥미롭다. 즉 방송 편집이 많은 촬영분들 속에서 어떤 건 살리고 어떤 죽이는 그 선별작업을 뜻하는 것처럼, 우리가 사랑하는 모습 역시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기억의 편집을 통해 왜곡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그 날의 사실을 알고 있지만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거나 스스로 기억을 끊는다. 속내는 그게 아니지만 그걸 기억해냈을 때 상대방과의 관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편안한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던가 아니면 불안해도 진실된 속내를 드러내고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던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

 

이 편집된 기억들은 그래서 앞으로 <프로듀사>가 나아갈 관계의 부딪침을 예고한다. 그것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숨겨져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결국 어떤 사건의 촉발지점이 생겨나면 그렇게 숨겨 놓았던 편집된 감정은 밖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들 세 사람의 관계에 덧붙여 신디(아이유)가 조금씩 승찬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은 향후 이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준다.

 

<프로듀사>가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힘은 로맨틱 코미디에서 나온다. 즉 멜로구도가 팽팽해질수록 또 장면 장면이 <개콘>보다 빵빵 터질수록 힘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가 가진 정석이라는 점에서 바뀔 수 없는 드라마 문법이다. 하지만 그렇게 공식적이기 때문에 더 중요해지는 건 그 식상한 틀을 어떻게 신선하게 풀어내는가 하는 점이다.

 

예능 PD의 세계를 다루고 있는 <프로듀사>가 사랑의 문제를 방송 편집을 소재로 풀어낸다는 건 그래서 흥미롭다. 그것은 이 PD라는 일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면서 동시에 편집관을 통해 캐릭터를 이해하게 해주고 그들의 관계를 또한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듀사>가 갈수록 흥미진진해지는 건 이처럼 예능 PD라는 직군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그들 방식으로 전해주고 있어서가 아닐까.

 

수목극 점령한 <착하지>의 세대적인 안배와 공감대

 

KBS <착하지 않은 여자들>에는 세 세대별로 각기 다른 관전 포인트가 있다. 그 첫 번째는 강순옥(김혜자)과 장모란(장미희)의 복잡 미묘한 심리전이다. 사라진 남편을 사이에 두고 본처와 내연녀인 두 사람의 관계는 앙숙인지 동지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면이 있다. 처음 만나자마자 강순옥이 장모란의 가슴을 발로 차버린 것에서 드러나듯 거기에는 넘을 수 없는 앙금이 깔려 있지만, 그럼에도 시한부 인생인 장모란을 집으로 초대해 좋은 약과 밥을 챙겨 먹이는 강순옥에게서는 여성으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의 정 혹은 동지의식 같은 것이 느껴진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사진출처:KBS)'

아마도 강순옥과 장모란의 이런 관계는 그 연령대의 시청자들에게는 익숙하면서도 공감가는 것이 될 것이다. 즉 이 나이대의 시청자들이 자주 봐왔던 불륜이라는 익숙한 소재가 들어와 있지만, 거기에 대한 접근방식은 새로운 면이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불륜 코드라고 하면 본처와 내연녀가 드잡이를 하는 설정이 하나의 클리셰지만 이 드라마는 그런 틀에 박힌 이야기에서 벗어나 있다. 남성을 중심으로 두고 보면 대결구도가 되지만 동시에 여성들만의 관점으로 보면 서로의 삶을 이해하는 점도 생긴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다른 관점이다.

 

강순옥의 딸 김현숙(채시라)은 중년 여성들의 삶에 대한 성취와 회한 같은 것들이 관전 포인트다. 레이프 가렛의 열혈 팬이었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고등학교 퇴학을 당하게 된 그녀는 자신을 도둑으로 몰아세운 편견 덩어리 선생님 나현애(서이숙)에게 사과를 받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뒤늦게 생각해보니 자신의 굴곡진 인생의 시작점이 거기서부터 비뚤어졌다는 걸 알고는 분노하게 된 것.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자식교육에 집착하는 김현숙이라는 중년의 캐릭터는 중년의 나이에 이르러 어떤 상실감을 가진 여성들의 그 답답함을 대리해주는 인물이다. 그녀를 끝까지 지지해주는 친구 안종미(김혜은)와의 끈끈한 우정이나, 전시회에서 그녀를 모욕하던 나현애의 머리채를 잡고 사과하라고 하는 장모란과의 부모 자식 관계와는 사뭇 다른 또 다른 인간적인 관계는 보는 이들을 흐뭇하게 만든다. 여기에 남편 정구민(박혁권)과의 은근한 멜로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관전포인트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역시 청춘들의 멜로가 빠질 수는 없다. 김현숙의 딸 정마리(이하나)의 이루오(송재림)와 이두진(김지석) 사이에 벌어지는 화학작용은 젊은 시청자들이 흐뭇해지는 광경이 아닐 수 없다. 검도 도장을 하는 이루오에게 배경음악을 잘못 보내줘 엉뚱하게도 자신의 호감을 드러내게 된 정마리의 이야기는 보는 이들을 설레게 만든다. 또 엄마와 그렇게 각을 세우고 있는 나현애가 이두진의 모친이라는 사실은 두 사람의 관계를 복잡미묘하게 만든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MBC <킬미힐미>를 제치고 또 SBS <하이드 지킬 나>를 따돌릴 수 있었던 근본적인 힘은 이런 김혜자, 채시라, 이하나로 대변되는 각기 다른 세대를 그들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공감시키는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혜자가 어르신들의 공감대를 끌어간다면, 채시라는 중년이 겪는 상실감과 성취 욕구를 그리고 이하나는 젊은 세대의 사랑을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세대적인 안배와 다층적인 공감대는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가장 큰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혹성탈출> 변칙 개봉 논란과 영화의 공존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이하 혹성탈출)>에서 시저는 유인원 종족들을 이끌고 인간들 앞에 서서 서로의 영역에 대해 말한다. 숲은 유인원들이 사는 공간이고, 도시는 인간 생존자들이 사는 공간이라는 것. 시저는 각자의 영역에서의 공존을 이야기한다. 즉 인간과 유인원 간의 대결을 보여주는 <혹성탈출>20세기 내내 인류를 전쟁으로 내몰았던 타자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그 바탕에 깔고 있다.

 

사진출처: 영화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

10여 년을 각각 살아가던 인간과 유인원이 어느 날 우연히 조우해 총성이 울리는 그 장면은 그래서 이 영화 전체를 압축한다. 인간은 낯선 숲에서 갑자기 마주친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유인원에게 느낀 공포로 인해 방아쇠를 당기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유인원이나 인간이나 마찬가지다. 인간에게 잡혀 갖가지 실험을 당했던 유인원 코바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와 적대감에 사로잡혀 있다.

 

하지만 타자에 대한 다른 선택도 있다. 시저와 말콤이 유인원과 인간이라는 타자에 대한 공포를 뛰어넘어 신뢰와 우정으로 나아가는 선택이 그렇다. 말콤이 유인원들의 숲에 죽음을 불사하고 들어간 것은 그 두려움을 공존의 의지로 넘어서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물론 이런 공존에 대한 노력은 양자 간의 대결이 아니라 평화를 깨려는 내부의 적들에 의해 무너져 내린다.

 

블록버스터이면서도 진지한 인문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혹성탈출>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의 개봉에 있어서 아이러니한 문제를 남기고 있다. 즉 이 영화는 공존을 이야기 하지만 이 같은 블록버스터들이 극장가를 점령하다시피 하는 상황은 작은 영화들에게는 공존은커녕 생존을 얘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같은 변칙개봉 논란은 이 거대한 몸집의 영화가 개봉일 변경 하나만으로도 작은 영화들이 죽고 사는 문제가 되는 현 영화 생태계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이 논란을 단지 할리우드 vs 우리 영화로 구분해 대결구도를 갖는 건 온당치 못한 일이다. 그것은 마치 <혹성탈출>의 이야기가 인간 vs 유인원의 대결이 아니라는 것과 유사하다. 시저는 영화의 말미에 유인원이 인간과는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즉 그것은 인간과 유인원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할리우드와 우리 영화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미 우리네 영화는 상당 부분 할리우드를 닮아가고 있다. 우리 영화에 있어서도 끝없는 스크린 독점이야기가 나오는 건 그래서다. 블록버스터 영화 한 편이 개봉되면 작은 영화들은 소리 소문 없이 스러져 버린다. 그러니 <혹성탈출>의 변칙 개봉의 문제는 우리 영화를 포함한 블록버스터들의 독점적인 스크린 장악 시스템을 얘기하는 것일 게다. 영화는 이제 자본이 장악하고 있다. 자본 아래 국적성이란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

 

진정 <혹성탈출>이 주제로 보여주는 것처럼 각자의 영역에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도무지 없는 것일까. 전 세계의 영화관을 거의 독점 하다시피 하고 있는 할리우드의 시스템을 욕하면서도 우리의 자본은 그 시스템을 철저히 배워 우리 시장에 적용하고 있다. 결국 <혹성탈출>이 얘기하는 것처럼 적은 외부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내부에 있다. 타자에 대한 두려움과 끝없는 욕망은 영역과 종족 구분 없이 전쟁을 발생시키는 원인이다.

 

인간의 총을 가져와 유인원들에게조차 총구를 겨누는 코바의 모습은 그래서 안타깝게도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제 저 할리우드의 습격을 민족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잣대를 내세워 욕할 자격이 더 이상 우리에게는 없다. 결국 그 총을 들여와 우리 영화계를 향해 겨눈 것은 우리네 거대자본이 아니던가.

 

시저와 말콤이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공존을 꿈꾸면서도, 시저의 말대로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전쟁은 이제 더 이상 유인원과 인간의 전쟁이 아니다. 공존하겠다는 의지와 모든 걸 장악하겠다는 의지의 대결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현재 우리네 영화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스크린 전쟁의 진면목이기도 하다. 따라서 <혹성탈출>의 변칙 개봉 논란은 할리우드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현재 처한 문제이기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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