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예능, 지금은 초심으로 돌아갈 때

 

JTBC가 방송사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는 데 있어서 예능 프로그램들이 큰 역할을 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썰전> 같은 독특한 시사 소재의 예능 프로그램이나, <히든 싱어>처럼 역발상이 돋보이는 오디션 프로그램, <비정상회담> 같은 외국인이라는 새로운 출연자군을 하나의 트렌드로 만들어낸 예능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냉장고를 부탁해>처럼 스타 셰프들을 발굴해 쿡방의 저변을 넓힌 프로그램까지 JTBC 예능은 한 마디로 다양한 예능의 실험실처럼 보였다.

 


'아는 형님(사진출처:JTBC('

그리고 이들 예능 프로그램들이 화제가 되고 트렌드를 선도하게 되면서 JTBC의 이미지도 급상승했다. 새로움과 도전, 실험정신 같은 것들이 JTBC 예능 프로그램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되고 있었으니 시청자들로서는 좋은 이미지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JTBC 예능 프로그램이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게 된 걸까.

 

<냉장고를 부탁해><비정상회담> 같은 프로그램은 물론 여전히 대중들의 관심을 받지만 초창기의 그 뜨거움은 많이 사라졌다. <님과 함께2>는 윤정수-김숙 커플이 투입되면서 부활했지만 최근 들어 시청률은 눈에 띄게 빠지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조금 오래 방영된 프로그램들보다 신설된 프로그램들에 대한 반응들이다.

 

사실 JTBC가 작년 말부터 새로운 동력으로 투입한 건 강호동과 유재석이라는 거물들이다. 유재석을 투입한 <투유프로젝트슈가맨>과 강호동을 투입한 <아는 형님>, <마리와 나> 그리고 최근의 <쿡가대표>까지 여러 프로그램들이 런칭되었다. <투유프로젝트-슈가맨> 같은 경우는 역시 유재석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진화를 거듭해 2-3%대의 시청률을 내고 있다. 하지만 윤정수-김숙이 투입되어 무려 4% 시청률을 넘겼던 <님과 함께2>와 비교해본다면 유재석이 투입된 프로그램치고는 좋은 성적이라 말하긴 어렵다.

 

강호동이 투입된 프로그램들의 상황은 더 좋지 않다. <아는 형님>은 정해진 포맷 없이 다양한 실험들을 하고 있지만 2% 시청률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 <마리와 나>는 결국 종영을 앞두고 있다. <쿡가대표>2% 시청률을 넘기고는 있지만 그것이 강호동 덕분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강호동의 역할이 아직까지도 불분명한 상태다.

 

사실 프로그램이 잘 되고 안 되고는 그 누구도 예측하기가 어려운 문제다. 즉 잘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시도가 성패를 떠나 참신했는가 하는 점들이다. 프로그램의 성격만 보면 괜찮은 음악 예능이라고 볼 수 있는 <투유프로젝트-슈가맨>이나, 무정형의 예능을 추구하고 있는 <아는 형님>, 반려동물을 소재로 한 <마리와 나> 같은 프로그램들의 시도가 나빴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강호동과 유재석은 독특한 자신들만의 캐릭터가 있는 인물들이다. 그들이 투입됨으로써 프로그램의 성격이 규정될 수 있을 정도다.

 

새로운 시도들을 했어도 그것이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강호동이나 유재석 같은 거물급 MC들이 갖는 어떤 고정적인 이미지 때문일 수 있다. 그들이 투입됐을 때 늘 기대되는 면도 있고 때로는 그 비슷한 모습들이 이제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또한 어떤 역할을 해도 이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는 상황은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온전히 드러내는 데는 오히려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강호동과 유재석의 문제는 아니다. 그것보다는 이들이 JTBC 예능이라는 지대에 투입되어 생겨나는 화학작용의 문제다. 사실 강호동, 유재석처럼 이미 대중들에게 지상파 예능을 통해 어떤 이미지나 성격이 굳어져 있는 인물보다는 JTBC가 잘 해왔듯이 지금까지 예능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인물군(이를테면 외국인이나 셰프 같은)을 과감하게 투입하는 모습이 훨씬 더 참신하게 다가올 수 있다. 이미 지상파에서 뜬 인물을 투입해서 지상파 프로그램과 유사해지기보다는 차라리 전혀 다른 인물을 찾는 것이 훨씬 JTBC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초심이란 이럴 때 필요한 게 아닐까.

<무도>, 유재석도 울컥하게 한 취준생의 현실

 

경찰관이 되기 위해 준비 중이라는 다인양은 말하기 창피하다며 고민을 꺼내기를 꺼려했다. 그 고민은 공부하러 온 건데 자꾸 마음이 가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한창 누군가를 사랑할 나이지만 안돼 공부하러 왔으니까라며 짐짓 명랑하게 말하는 다인양의 이야기에 유재석은 마음 한 구석이 서늘해지는 듯 했다. ‘좋아하는 감정조차 포기해야 하는 현실을 거기서 본 것이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무한도전> ‘나쁜 기억 지우개특집에서 유재석이 고민 상담을 하기 위해 나간 곳은 노량진. 취업준비생들이 다니는 학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유재석이 기다리는 나쁜 기억 지우개천막에 들어온 다인양과 태은양은 너무나 밝았고 또 씩씩했다. 경찰차만 봐도 피가 끓는다고 했고 그 차는 꼭 내가 타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고도 했다. 그만큼 경찰관이 되고자하는 그녀들의 꿈은 확고해 보였다. 하지만 그 꿈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해야하는 그녀들의 현실은 유재석으로 하여금 마냥 웃을 수만은 없게 만들었다.

 

한창 밝게 웃고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이 자연스러울 나이. 경찰이 되고 싶다는 태은양은 다니던 회사마저 그만두고 퇴직금 받은 것으로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가장 힘든 일을 묻는 유재석에게 의식주가 가장 힘들고, 가족 앞에 떳떳하지 못한 것이 가장 힘들다는 그녀는 알고 보니 결혼한 지 1년도 안된 신혼이었다. 미래를 위해 떨어져 지내지만 남편은 꼭 될 거라고 용기를 준다고 했다. 세탁기 돌리다가도 운다며 눈물이 많아졌다 웃으면서 이야기를 건네는 태은양이었지만 그 웃음에는 물기가 가득했다.

 

마음 가는 사람이 생겼다고 한참동안 머뭇거리며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내놓은 다인양은 그 사람과 이제 서로 인사도 안한다며 좋아했던 기억들을 지우고 싶다고 했다. 그것이 자신을 힘들게 하기도 하고 또 방해하는 것 같다고도 했다. 모든 게 낯설고 힘들었던 때에 힘과 의지가 됐던 친구이니 어찌 그 좋아했던 기억들을 쉽게 지울 수 있을까. 하지만 그녀는 엄마한테 너무 죄책감이 든다고 했다.

 

웃으며 얘기하고 있지만 사실 사람에 대한 감정을 접는다는 건 엄청나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 어려운 일을 짐짓 밝은 모습으로 웃으며 얘기하고 있는 그 착한 마음이 유재석에게는 고스란히 느껴졌을 것이다. 결국 마음이 자꾸 간다는 걸 그녀는 지우겠다는 말로 대신하고 있다는 것도 그는 알아차렸다.

 

좋아하는 사람을 잊게 해주세요.’ 다은양이 쓴 지우고픈 기억은 이 한 줄뿐이었지만 그 한 줄에는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꿈을 위해 감정까지도 참아야 하는 현실을 보며 유재석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취업에 간절하게 만들었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지내는 것조차 감수하고, 심지어 좋아하지만 만나지 않겠다고 결심할 만큼.

 

이런 취준생들의 아픈 현실을 지워주는 지우개는 불가능한 일일까. 그 아픈 현실 속에서도 오히려 부모에게 미안한 마음을 먹으며 감정조차 포기하는 이 착한 청춘들이 좋은 기억으로만 살 수 있는 현실은 요원한 일일까. 그들이 너무나 밝게 웃으며 이 나쁜 현실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녀들과 함께 웃었지만 유재석이 마음 깊은 곳으로는 결코 웃지 못한 이유는 그것일 것이다.

<런닝맨> 스파이 클래식은 왜 늘 재미있을까

 

도대체 누가 스파이일까. 이 스파이 콘셉트는 SBS 주말예능 <런닝맨> 초창기 시절 이 프로그램을 살려내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전까지 <런닝맨>이 그저 도시의 랜드마크에서 정해진 게임을 수행하는 정도에 그쳤다면 새롭게 도입된 스파이 콘셉트는 이 게임 속에 심리전을 끌어들였다. 단순한 게임은 스파이를 도입함으로써 게임 속의 또 다른 게임을 가능하게 했고 그것은 또한 <런닝맨>의 이야기에 반전요소를 만들었다.

 


'런닝맨(사진출처:SBS)'

상하이의 옛 난징루 거리를 재현한 공간에서 벌어진 <런닝맨>은 마치 이 프로그램이 스파이미션을 시작했던 그 시절로 시간을 되돌린 느낌이었다. 조금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영화적인 느낌의 오프닝에 이어 그것을 여지없이 깨는 캐릭터들의 등장이 그렇고, 멱피디의 역시 과해보이는 연기 설정이 그렇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상하이에서의 <런닝맨>이 흥미로웠던 부분은 스파이 미션이었다.

 

사실 미션이 J대원을 찾아 귀환하는 것만으로 이뤄졌다면 <런닝맨>은 조금 단순한 게임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았다. 자금을 얻기 위한 소규모 게임들이 벌어지고 J대원을 찾기 위한 단서로서의 편지를 모으는 게임, 그리고 이어서 일본군들의 추적을 피해 J대원을 찾아 귀환하는 비교적 단순한 스토리가 대부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 JS 이니셜의 스파이가 존재한다는 정보를 집어넣자 이야기는 달라졌다. JS 이니셜에 해당하는 유재석, 지석진, 박지성, 지소연, 정대세 등이 모두 스파이로 의심받는 상황. <런닝맨> 특유의 의심병(?)’이 전염병처럼 번져나가면서 누가 스파이일까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났고, 본격적인 <런닝맨> 특유의 심리전이 시작됐다.

 

유임스 본드라고 불리기도 했던 유재석의 스파이 미션은 이번 상하이에서도 빛을 발했다. 모두를 의심한다는 식으로 몰아가면서 대원들에게 접근해 한 사람씩 제거해나가는 모습은 <런닝맨>의 스파이 미션에 유독 강한 면모를 드러냈다. 흥미로운 건 지석진이다. ‘게임스타터라는 별칭에 어울리게 그는 자신이 가장 먼저 제거될 것을 우려해 유재석과 연합을 하고 다른 대원들을 함께 제거해나가기 시작한 것.

 

미션은 그래서 소소하게 시작되다가 엉뚱하게도 지석진의 폭주(?)로 모두를 미궁에 빠뜨렸다가 다시 마지막에 유재석, 지석진, 박지성이 서로를 의심하며 대치하는 극적인 상황으로 흘러갔다. 그 와중에 귀가 얇은 지석진은 유재석과 박지성 사이에서 갈등하며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J대원으로 판명된 박지성의 승리로 끝났지만 소소할 뻔 했던 상하이 미션은 스파이 미션을 통해 흥미로운 반전 스토리를 가능하게 했다. 그 중에서도 유재석과 지석진은 이야기에 반전 매력(?)’을 선사한 주인공이 됐다.

 

사실 <런닝맨>에 대한 기대감은 예전 같지 않다. 그것은 게임만 보일 뿐 스토리가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런닝맨> 상하이편의 스파이 미션은 이 프로그램의 전성기 시절의 클래식한 묘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물론 여전히 소소한 캐릭터 게임으로 흘러갈 소지가 다분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스파이 미션 같은 <런닝맨> 고유의 묘미를 만들어내는 콘셉트들은 여전히 흥미로울 수 있다는 걸 이번 상하이편은 보여줬다. 만일 <런닝맨>이 앞으로도 더 넓은 게임 예능의 세계로 나갈 것이라면 본래 갖고 있던 이런 다양한 스토리의 자산들을 다시 꺼내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거기서 활로가 발견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언어 달라도 웃음으로 형제 된 잭 블랙과 <무도>

 

놀라운 프로정신이다. 주는 대로 다 받아준다. 그것도 그냥 받는 게 아니라 웃음의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서. MBC <무한도전>과 잭 블랙의 만남은 프로정신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줬다. 고적대의 음악에 맞춰 등장부터 신명나는 춤으로 흥을 한없이 돋운 잭 블랙은 비록 4시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무한도전>에 완전히 동화된 모습이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달라 어색할 것 같았던 만남이지만 그것은 금세 기우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잭 블랙은 기초적인 마시멜로 입에 많이 넣기 게임부터 스타킹 쓰고 촛불 끄기, 베개싸움, 물 넣은 축구공 헤딩하기 같은 지금껏 <무한도전>에서 해왔던 다양한 몸 개그용 게임들을 마치 익숙하다는 듯 소화해나갔다.

 

평소 잭 블랙의 영화를 보면서 다양한 웃음 연기를 배워왔다는 <무한도전>은 그를 자신들의 아버지나 다름없다고 불렀고, 잭 블랙은 그런 그들을 동생이자 자식처럼 보듬으며 원하는 몸 개그에 온 몸을 던졌다. 입은 체육복이 흥건히 젖을 정도로 열심히 하는 모습은 그가 왜 예능인들 사이에서 추앙받아 마땅한 인물인가를 스스로 증명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외국에서 온 특별한 게스트로 등장했지만 차츰 그가 <무한도전>의 한 멤버처럼 보이게 된 건 역시 웃음이라는 세계 공통의 언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잭 블랙은 어디서 웃음이 터지는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물이 든 공과 그렇지 않은 공을 갖고 선택해 머리로 헤딩하는 장면에서는 그 선택하는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고, 물 공을 헤딩하며 쓰러지는 장면에서는 잭 블랙과 함께 스태프들도 웃음을 터트렸다.

 

광희와 대결을 벌인 마시멜로 입에 많이 넣기 게임에서는 그 웃음의 포인트가 너무 입에 많이 넣어 닫혀지지 않는 입과 결국은 뱉어내는 그 장면이라는 걸 간파했다. 게임에서 이긴 후에도 입에 마시멜로를 더 넣은 후 뱉어내는 모습을 굳이 보여준 건 그래서다.

 

잭 블랙은 집에 놀러가겠다거나 심지어 밥 사달라는 <무한도전> 멤버들의 짓궂은 질문에도 센스 있는 답변으로 웃음을 주었다. 대저택이 집이지만 와서 자려면 소파에서 자야한다고 농담을 던졌고, 밥 사달라는 얘기에는 패스트푸드점에 가자는 말로 받아쳤다. 잭 블랙의 한 마디 한 마디와 몸 개그를 대하는 자세를 보며 유재석은 그가 처음 해보는 시도들이지만 정확히 웃음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놀라웠던 건 잭 블랙의 음악에 대한 감각이었다. 귀에 헤드폰을 낀 채 우리 노래를 불러 알아맞히는 게임에서 그는 거의 정확하게 우리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보여줘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특히 이애란의 백세인생에서는 정확히 전해라-”를 불러내 웃음을 자아냈다.

 

실로 잭 블랙 같은 세계적인 코미디 배우와 <무한도전>의 만남은 특별하고 이색적인 것이었다. 그 만남 자체가 어떤 긴장감을 갖게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웃음이라는 공통의 언어로 함께 어우러지면서 그들은 마치 형제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무한도전> 멤버들이 느낀 그 친 형 같은 느낌은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도 전이되었다. 세상에 잭 블랙이 부르는 백세인생을 듣게 되다니. 이제 영화관에서 보게 될 잭 블랙은 더 이상 낯선 외국배우가 아닌 형제 같은 친근함을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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