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병원2’, 의학드라마의 또 다른 진화가 되려면

새롭게 시작하는 ‘종합병원2’는 의학드라마의 계보를 잇는 드라마다. 본격적인 의학드라마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종합병원(1994)’의 적통이기 때문이다. ‘종합병원’은 최완규 작가가 현장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면서 병원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의 디테일을 살리는 노력을 기울였다. 실로 이 드라마는 전문성이 부족했던 당대 드라마환경에서 획기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시청률은 물론 작품성에서도 호평을 기록한 ‘종합병원’의 성공은 다른 의학드라마의 탄생을 예고하기에 충분했다. ‘의가형제(1997)’, ‘해바라기(1998)’, ‘메디컬센터(2000)’의 등장이 그것이다. 이 중 ‘의가형제’와 ‘해바라기’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종합병원’만큼의 전문성을 갖지는 못했다.

트렌디 드라마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면서 드라마는 전문성보다는 멜로에 집착했고, 그러자 ‘무늬만 전문직 드라마’라는 말이 등장했다. 전문성과 디테일이 살아있는 이른바 전문직 드라마에 대한 요구가 커지자 본격적인 의학드라마는 부활을 예고했다. ‘하얀거탑’과 ‘외과의사 봉달희’가 본격 의학드라마의 계보를 이으며 등장해 호평을 받았다.

이 두 드라마는 모두 의학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었지만 그 결이 달랐다. ‘하얀거탑’이 멜로 라인 없이 한 인간의 욕망에의 질주를 그려냈다면, ‘외과의사 봉달희’는 전문직으로서의 의사이면서 동시에 한 인간으로서의 의사를 그리며 호평을 받았다. 이어서 의학드라마의 계보를 이은 것은 ‘뉴하트’로 이 드라마는 ‘외과의사 봉달희’와 ‘하얀거탑’의 요소들을 모두 아우르고, 의학드라마를 하나의 장르로 정착시켰다.

이제 그 계보 위에 세워질 ‘종합병원2’는 어떨까. 2008년에 만들어지는 ‘종합병원2’는 단순히 1994년작 ‘종합병원’의 연장선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그간 이어진 계보의 연장선에서 봐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커진 것은 기대감과 함께 부담감이다. 의학드라마의 효시를 등에 업고 있고, 또한 일련의 진화된 계보를 갖고 있기 때문에 무언가 다르거나 혹은 진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오히려 기대감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종합병원2’의 차별점으로 일단 제시된 것들은 인물들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는 점과 이전보다 더 디테일한 장면 묘사에 공을 들였다는 것 정도다. 이건 사실 정확히 말하면 차별점이 아니다. 세대교체야 당연한 것이며, 디테일한 장면 묘사는 ‘하얀거탑’ 이후 일련의 의학드라마들이 추구해온 방향이다. 또 휴머니즘을 바탕에 깔 것이고, 또 멜로 라인도 필수적으로 들어갈 것이라는 점은 이미 ‘외과의사 봉달희’나 ‘뉴하트’를 통해 반복되었던 것들이다. 이것은 이제 의학드라마라고 하면 하나의 장르의 요소로서 굳어진 것들이다.

흔히들 의학드라마를 보며 “이런 장면 꼭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의학드라마가 이제 장르가 가진 먹히는 요소들의 유혹을 받는다는 반증이다. 같은 내용에 인물이 조금 바뀌고 장면들이 좀더 세련되게 구사한다고 해서 이제는 더 이상 차별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진짜 차별화가 이루어지려면 지금까지 다루지 않았던 새로운 스토리의 발굴이 필수적이다. 완전히 장르를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큰 틀에서 몇 가지는 ‘종합병원2’가 장르의 유혹을 벗어나 그것만의 차별점을 찾기를 바란다. 그것만이 의학드라마의 계보 위에서 ‘종합병원2’가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는 일이다.

흉부외과, 사랑, 휴머니즘의 심장

‘외과의사 봉달희’에 이어 또다시 흉부외과가 소재가 된 ‘뉴하트’. 왜 의학드라마에는 흉부외과가 단골로 등장할까. 그 이유는 병원에서 흉부외과가 차지하는 특별한 위치 때문일 것이다. 생사가 왔다갔다하는 긴박한 분야로서 가장 병원에 근접한 과이면서도, 실상 현실은 대부분의 의사들에게 외면 받는 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흉부외과만의 특징은 드라마의 극적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좋은 소재가 된다.

하지만 이것은 비단 흉부외과만이 아닌 일반외과(물론 성형외과 같은 분야가 아닌)에 대부분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왜 굳이 흉부외과일까. 그것은 흉부외과가 여러 의미로 포착되는 심장을 다루기 때문이다. 그것은 물리적인 의미로서의 심장, 즉 흉부외과라는 전문직과, 예로부터 남녀간의 사랑으로 상징되던 하트(♡), 그리고 휴머니즘으로서의 따뜻함을 상징하는 심장을 말한다.

첫 번째 심장, 흉부외과라는 전문직
새로 시작한 의학드라마 ‘뉴하트’가 그리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네 기초의학이 처한 자화상이다. 최강국(조재현)은 최고의 흉부외과의지만 그가 맡고 있는 흉부외과는 이른바 ‘꼴찌 수용소’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좀더 편하고 좀더 돈벌이가 될 수 있는 과로 가기 때문에 흉부외과처럼 고되고 힘겨운 과에는 아무도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실의 의료계를 거의 그대로 반영한다. 드라마 상에서는 외과와 내과의 선택 사이에서 남혜석(김민정)이 갈등하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외과를 전공하고서도 성형외과나 정형외과(그 중에서도 관절 클리닉 같은) 혹은 남성클리닉이나 대장항문과처럼 비보험이 적용되는 분야로 개업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항간에는 진짜 실력 있는 외과의들은 대부분 개업의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다. 따라서 ‘뉴하트’가 포착하는 심장은 그것을 다루는 우리네 흉부외과 의사들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디테일은 어떨까. ‘뉴하트’가 그리고 있는 흉부외과의 풍경은 실제와는 다르다. 드라마이기 때문에 극적 구성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의사 가운을 입은 채 술집을 전전한다거나, 레지던트 1년 차가 자리를 번번이 비우고 찜질방에 간다거나, 협진 체제로 운영되는 내과와 외과가 지나치게 경쟁적으로 그려진다거나 하는 것들은 실제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또한 지나치게 최강국(조재현)에 집중하다보니 의사는 최강국 하나만 있는 것처럼 되어버리는 상황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다. 그나마 미덕으로 꼽히는 것은 적어도 이 드라마가 우리네 사회 속에서 흉부외과의들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는 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 심장, 멜로 드라마로서의 사랑(♡)
전문직을 다루는 장르 드라마들 속에서 멜로 구도는 늘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꼭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니다. ‘외과의사 봉달희’의 작가가 밝혔듯이 병원에서 의사들간의 사랑과 연애는 실제로도 공공연한 것이니까. 문제는 멜로 구도 속에서 전문직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그리고 이러한 우려는 종종 현실로 나타난다. 장르 드라마들이 추구해나가는 드라마의 긴장감은 멜로가 끼여들면서 자칫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뉴하트’의 멜로는 이은성(지성)과 남혜석(김민정)의 라인을 중심으로 이동권(이지훈)이 포진하면서 삼각 구도를 이룬다. 멜로 드라마로만 보면 싱거운 구도이다. 남혜석이 이은성과 이동권 사이에서 갈등하는 전형적 구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전형성은 어쩌면 전문직과의 봉합에서 필요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과도한 멜로 구도의 복잡성은 의학드라마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은성과 남혜석의 러브라인은 너무 익숙하다. ‘외과의사 봉달희’에서 보았던 것처럼 까칠한 남혜석과 착한 이은성은 버럭범수 안중근과 착한 봉달희의 캐릭터를 뒤집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의사의 인간적인 모습을 통해 상대방에 대한 호감을 얻고 있는 멜로의 과정 또한 유사하다.

게다가 여기에 삼각 구도로서 등장시킨 이동권이란 캐릭터는 좀 어색하게 느껴진다. 일회성의 이벤트적인 스토리로 끝났으면 좋았을 이 캐릭터의 활용이 계속 이어지는 것은 궁극적으로 이은성과 남혜석의 멜로를 구축하기 위한 안일한 선택으로만 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 너무 급격한 멜로 구도가 만들어지면서 남혜석의 캐릭터 또한 너무 극과 극의 변화를 겪고 있다는 점이다.

세 번째 심장, 휴머니즘
우리네 현실에서 의사들이 처한 상황은 꿈으로부터의 도피거나, 꿈속으로의 추락이다. 물론 애초부터 돈벌이나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의사의 길을 선택한 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할 때만이라도 그들의 심장은 뛰었을 것이 틀림없다. 의사란 직업은 다름 아닌 ‘사람을 살리는 숭고한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부분은 한 인간으로서의 의사가 생명을 두고 벌이는 휴머니즘의 등장을 가능케 한다.

‘뉴하트’가 보여주는 휴머니즘은 주로 이은성, 최강국과 환자들 간의 이야기에 의해 구축된다. 최강국은 아버지가 의사면허증을 빼앗기고 쫓겨난 것에 대한 울분을 떨치지 못하면서 그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욕망에 사로잡히지만, 그 스스로도 밝히듯 ‘사람 살리는 의사’라는 직업 앞에서 욕망조차 무색해진다. 최강국은 오로지 환자만을 생각하는 이은성을 ‘꼴통’이라 부르지만 그 자신도 그 범주의 의사라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이 둘의 돈키호테 같은 휴머니즘을 바라보면서 점차 차가운 심장을 녹여 가는 남혜석은 시청자의 감정이입을 원활하게 만든다.

‘의사는 기술자가 아니다’, ‘환자만 있을 뿐이지 VIP는 없다’, ‘의사는 머리로만 되는 게 아니다’ 같은 말들은 의사라는 전문직종에서 휴머니즘을 끌어내는 과정에서 등장한다. 이러한 주제의식은 물론 좋은 것이지만 그것을 구현해나가는 드라마의 에피소드들은 어떨까. 에이즈 모티브나 강간범 환자 이야기, 외도하는 의사, 바른 소리했다가 쫓겨나는 의사 같은 것들은 이미 ‘외과의사 봉달희’나 ‘하얀거탑’을 통해 익숙해진 에피소드다.

정신대 할머니의 에피소드는 그 자체로 괜찮은 소재이지만 쑥국에 대한 이야기는 ‘식객’을 떠올리게 만든다. 열심히 일하는 의사들의 모습 자체에서 자연스럽게 휴머니즘이 발현되어야 하지만, ‘뉴하트’의 휴머니티는 극적으로 짜여진 연출로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장르화된 의학드라마의 한 전형을 걷고 있다는 말이다.

세 심장의 봉합, 성공하려면
‘뉴하트’는 흉부외과와 사랑, 그리고 휴머니즘이라는 세 가지 심장의 의미를 봉합하려 하고 있다. 제목인 ‘뉴하트’에서 유추해보면 이 드라마는 새로운 의학드라마, 새로운 멜로드라마 그리고 새로운 휴먼드라마를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시도들이 새로운 것인지는 의문이다.

심혈관센터장 자리를 놓고 최강국(조재현)과 민영규(정호근)가 벌이는 대결구도는 ‘하얀거탑’의 권력다툼을 연상케 하고, 인간으로서의 의사라는 측면을 부각시키면서 휴머니즘과 멜로를 봉합하려는 것은 ‘외과의사 봉달희’를 닮았다. 따라서 ‘뉴하트’가 지향하는 새로움이란 이러한 의학드라마라는 장르의 전통들을 한 군데 엮어 놓았다는 것을 빼곤 그다지 발견하기가 어렵다. 이것은 캐릭터들의 전형성을 통해 드러난다. 등장인물들은 새로운 캐릭터라기보다는 의학드라마 어디선가 보았던 익숙함을 갖고 있다.

‘뉴하트’가 의학드라마의 ‘새 심장’이 되려면 장르 전통들을 꿰고 있는 것만큼 이 드라마만의 차별성이 필요하다. 장면 전환에 사용되는 9개로 나뉘어진 분할화면이 새롭다기보다는 그저 이 드라마가 가진 복잡한 상황을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 전체를 아우르는 ‘뉴하트’만의 독특함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의학드라마는 분명 그 자체만으로도 기본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어필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뉴하트’에 그저 장르적인 재미 그 이상을 요구하게 되는 것은 이제 우리네 의학드라마도 어떤 전통을 갖춰가고 있으며, 따라서 조금씩 진화되는 모습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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