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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게임', 심은경에 대한 여전한 신뢰와 유태오의 재발견

 

“어떻게 한 사람이 경제를 망칩니까?” 자신이 채병학 교수를 벼랑 끝에서 밀어버린 이유에 대해 끝까지 그가 우리 경제에 미친 해악을 꺼내놓는 허재(이성민)에게 채이헌(고수)은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허재의 확증편향은 변함이 없다. 채병학 교수의 그 신자유주의적 발상이 IMF 이후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하지 못함으로써 나라 경제를 지금껏 어렵게 만들었다고. 그래서 자신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던 거라고.

 

“그래서 제 아버지를 죽여서 원하는 걸 얻으셨습니까? 누굴 희생시키면서 얻을 수 있는 거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부총리님은 처음부터 틀렸습니다. 제 아버지를 죽여서가 아닙니다. 혼자 바꿀 수 있다는 생각, 내가 다 아니까 내가 알아서 하면 다 될 수 있다는 그 오만, 법을 이용하고 편법을 쓰고 법을 어겨서라도 기어이 이루고 말겠다는 그 병적인 집착.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렇게 해서 바꿀 수 있는 세상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채이헌은 자신 또한 허재와 다르지 않았다는 걸 인정하며 후회한다. 그리고 그 말은 단단해 보였던 허재의 확증편향 또한 무너뜨린다. 면회를 끝내고 돌아가는 길 허재는 갑자기 멈춰서 뒤돌아보더니 후회의 눈물을 쏟아낸다. 그는 자신의 선택이 나라의 경제를 위한 것이라 여겼지만 그건 자신의 엇나간 욕망이었을 뿐이었다.

 

종영한 수목드라마 tvN <머니게임>은 경제를 숫자놀음으로 치부하며 마치 게임하듯 농단하는 이들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런데 그걸 막는 이들 또한 두 부류로 나뉘어 있다는 걸 보여줬다. 허재도 채이헌도 나라 경제를 뒤흔드는 바하마의 유진한(유태오)과 맞서 싸웠지만 그들은 여전히 경제를 숫자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그들을 정신 나게 만든 인물은 이혜준(심은경)이라는 소신대로 살아가는 올곧은 사무관이었다. 그는 숫자 뒤에 존재하는 무수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말해줬다.

 

결코 나라의 경제가 숫자에 좌우되는 게임이 돼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 <머니게임>은 우리네 드라마에서 지금껏 좀체 다루지 않았던 경제를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가치와 의미를 가진 드라마였다. 물론 경제라는 것이 어려운 용어들과 숫자, 그리고 국내외 관계가 얽혀있는 사안이라 복잡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머니게임>은 애초부터 높은 시청률을 기대하긴 어려운 드라마였다.

 

하지만 드라마가 경제에 있어 숫자가 아닌 사람을 봐야한다고 말한 것처럼, 이 드라마의 가치 또한 시청률 같은 수치로 재단할 수는 없다고 여겨진다. 치밀한 사전취재를 통해 보다 깊게 경제적 사안들을 담아내려는 노력이 충분히 보여졌고, 그걸 구현해가는 과정에서의 스토리텔링도 괜찮았기 때문이다. 자칫 국가경제라는 거대담론으로만 흘러갈 수 있는 이야기는, 이혜준과 기재부 사람들 그리고 그의 고모인 이만옥(방은희) 가족의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그 거대담론으로서의 경제정책이 서민들에게 어떤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가를 잘 구현해냈다.

 

특히 주목된 건 이 작품을 통해 더 단단한 배우로서의 입지를 보여준 심은경이다. 심은경은 지금껏 해왔던 발랄하고 명랑한 캐릭터의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진지하고 소신 있는 사무관 캐릭터를 제대로 소화해 연기했다. 심은경은 배우로서 자신의 스펙트럼이 훨씬 넓다는 걸 이 작품을 통해 충분히 증명해냈다.

 

안정적인 연기를 보인 고수, 이성민 같은 배우들은 물론이고 최병모, 조재룡 같은 배우들의 명품 연기가 전체적인 드라마에 안정감을 주었다면, 이 드라마 최고의 발견은 역시 유진한 역할을 연기한 유태오가 아닐까 싶다. <배가본드>, <초콜릿>에서 슬쩍 선보였던 유태오의 연기는 <머니게임>에서는 확실한 자기 존재감을 드러냈다.

 

실로 드라마의 홍수 시대에 살아가고 있지만 다뤄지는 장르들과 소재들만 반복되는 게 우리네 드라마의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시청률이 낮을 거라 해서 시도되지 않던 소재를 가져와 탄탄한 대본으로 엮어낸 신인 이영미 작가 또한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첫 작품 치고 이토록 무거운 주제를 무난하게 풀어냈다는 건 이 작가가 가진 잠재력을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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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게임', 신념 위해 희생은 필요하다?

 

“나는 흔히 말하는 베이비부머 세대야. 성장에 너무도 익숙했던 세대. 매해 8에서 10퍼센트씩 성장했고 일자리는 널렸었고. 채과장은 엑스세댄가? 20대 때 IMF를 겪었을 것이고 30대 때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었겠네. 어려서는 풍요로웠지만 이후 경제는 곤두박질치고 취업마저 힘들었을 첫 세대. 외환위기 때 마이너스 6% 이후로도 잘해봐야 성장률이 2내지 3%였던 세대. 이게 대한민국 경제가 오늘날 받아 든 성적이야. 누구 잘못일까?”

 

tvN 수목드라마 <머니게임>에서 허재 금융위원장(이성민)은 채이헌 과장(고수)에게 그렇게 화두를 던진다. 채이헌은 경제부총리 김호중(박지일)으로부터 허재를 끌어내리라는 지시를 받았고 그래서 그 일에 공공연하게 나서던 차였다. 허재는 대놓고 채이헌에게 자신이 가진 생각을 신념인 양 드러낸다.

 

“한강의 기적? 기적 따위는 없었어. 국민들의 피가 있었을 뿐이지. 그 피의 대가로 쌓아올린 경제야. 그 경제가 IMF 때 와르르 무너졌다고. 그런데도 정신을 못 차렸어. 왜? 빌어먹을 경제학자들이 권력자들의 밑을 닦기에 바빴으니까. 원하는 대로 이론 만들어주고 그 이론으로 국민들의 눈을 가리고 속였으니까. 진작 뜯어내고 망치질 했어야했는데 그걸 못했으니까.”

 

허재는 채이헌의 아버지인 채병학(정동환) 교수와 경제 정책을 두고 치열한 대립을 했고, 결국 벼랑 끝에서 우발적으로 채교수를 밀어 사망케 했던 인물이다. 채병학이 주장하던 정부의 개입보다는 시장에 맡기라는 시장주의에 반발했던 것. 하지만 그 과정에서 채병학을 사망케 한 사실은 허재가 가진 생각과 신념이 옳다고 해도 그가 이를 실행해나가는 과정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잘 보여준다. 그는 기적 따위는 없었다며 누군가의 피와 희생이 있어야 경제를 되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머니게임>에서 금융위원장이 된 허재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정인은행의 BIS 비율을 조작해 악명 높은 해외 펀드인 바하마에 매각시킨 일이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정인은행과 거래하는 부실기업들을 파산 매각 하는 등의 정리에 들어간 것. 그 과정에 개입한 바하마의 코리아 지사장 유진한(유태오)은 정인은행장을 허수아비로 내세워 우진조선해양을 파산시키고 이를 중국 측에 팔아 막대한 이득을 얻으려 한다. 만일 이렇게 되면 우진조선해양이 국내에서 개발한 레이더 기술 또한 유출될 위기에 놓이게 되는 것.

 

허재 금융위원장은 진작에 도려냈어야 할 썪은 살로 우진조선해양 같은 그룹을 지목하고 파산으로 인한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치러야 하는 희생이 너무나 크다. 이혜준(심은경) 사무관이 어린 시절 겪었던 것처럼 바하마가 개입해 파산한 은행 때문에 연쇄 도산하는 기업들도 생겨나고 견디다 못한 서민들 중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제 아무리 소신이 분명하다 하더라도 이런 희생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허재 같은 관료가 더더욱 위험한 건 부패한 관료라기보다는 자기 확신에 가득 차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는 누군가를 죽이거나 죽음으로 몰아넣으면서도 자신이 하는 일이 정당하다는 확신에 차 있다. 만일 이런 인물이 정부의 고위 관료로 앉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머니게임>은 제목에 담긴 것처럼 ‘게임’ 같은 수준의 문제를 다루는 게 아니다. 누군가의 삶 전체가 송두리째 뽑힐 수 있는 그런 결정들이 오가는 세계의 심대한 문제들이다.

 

허재가 자신의 소신을 밀어붙이기 위해 나준표(최병모) 같은 라인을 만들고 바하마를 끌어들이며, 위기에 몰리면 상대의 약점을 찾아내 끌어내리는 그런 일련의 방식을 쓰고 있고 그것이 심지어 먹힌다는 건 이 드라마가 그리는 정부의 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한가를 잘 보여준다. 누군가의 소신은 저마다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그것들이 어떤 제동장치나 안전장치 없이 마구 농단될 수 있는 시스템이 가진 위험성. 허재 같은 시한폭탄을 앞에서 막아내려는 이혜준(심은경) 사무관 같은 인물이 너무나 연약하게만 느껴진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 기관, 사건은 실제와 관련이 없습니다.’ 드라마 시작에 자막으로 등장하는 이 문구가 사실이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허재 같은 위험천만한 관료나, 그의 농단이 마음대로 먹히는 시스템이 현실이라면 서민들의 각자도생은 얼마나 허탈한 일이겠나.(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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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게임’, 쉽지 않지만 빠져 볼 수밖에 없는 이유

 

tvN 새 수목드라마 <머니게임>은 ‘경제’라는 만만찮은 소재를 다룬다. BIS(국제결제은행)가 어떻고 신자유주의니 정부의 관여니 하는 이야기들이 등장하니 머리가 복잡해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니게임>이 다루는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는 건, 어쩌면 우리가 노력해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열심히 잘 살고 있다가도 순식간에 길거리에 나앉게 되는 일이 저 ‘경제’ 때문이라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린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와 미국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전 세계로 확산됐던 금융위기를 겪지 않았던가.

 

IMF 시절, 갑자기 주거래은행이 문을 닫아 버리자 길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는 이들이 뉴스에 등장하곤 했던 것처럼 이 드라마에 나오는 이혜준(심은경)의 아버지는 바로 그 일을 겪었다. 2002년은 월드컵 당시 마치 IMF의 터널을 통과한 듯 들뜬 분위기였지만 이혜준의 아버지는 여전히 그 터널 속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그걸 바라본 이혜준이 악착같이 공부해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 사무관이 된 건, 다시는 아버지 같은 그런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하겠다는 뜻에서였다.

 

이혜준의 아버지가 죽고 그를 거둬준 고모네의 사정은 서민경제의 단면을 보여준다. 꼬끼오진이라는 치킨집을 운영하는 이만옥(방은희)과 그 남편 진수호(김정팔)는 죽어라 일하지만 삶이 나아질 기미가 없다. 진수호는 그래서 투자를 통해 한 방에 역전을 꿈꾸지만 그게 생각대로 잘 되지 않는다. 한 방의 역전이란 거꾸로 그만한 리스크를 안기 마련이니 말이다. 이만옥 가족이 등장하는 건 향후 이 드라마가 그려나갈 금융스캔들 속에서 서민들이 어떤 직격탄을 받게 되는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아버지가 그렇게 된 걸 본 이혜준은 과연 이 위기에 어떻게 대처해갈까.

 

하지만 현실적인 키를 쥐고 있는 건 정책결정권자들이다. 정인은행 문제에 대해 팔아야한다는 소신을 밝혀버린 채이헌(고수) 덕분에 차기 금융위원장이 유력하게 된 허재(이성민)는 국가경제에는 정부의 강력한 통제가 필요하다 여기는 인물. 그는 IMF 때 실무팀 막내로 참여하면서 힘없는 나라의 경제가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지는가를 경험한다. 하지만 그가 금융위원장이 되는 걸 채이헌의 아버지이자 최고 경제학자로 국가경제 정책을 좌지우지해온 채병학(정동환)이 반대하고 나선다. 철저한 신자유주의 신봉자인 채병학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우며 허재와 대립한다.

 

허재는 자신의 소신을 어떻게든 밀고 나가 관철시키려는 인물로 채병학과 의견대립을 벌이다 우발적으로 그를 벼랑에서 밀어버린다. 그는 허약한 국가 경제의 체질 자체를 바꾸고 부실한 기업들은 정리해야 한다는 소신을 밀어붙이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처럼 보인다. 뜻은 의미가 있지만 방법에는 동의할 수 없는 상황. 정인은행 매각의 뜻을 드러낸 채이헌은 그와 같은 길에 서 있는 듯 보이지만 과연 그 동거가 계속 될지는 의문이다. 그리고 이혜준이라는 의외의 복병(?)이 존재한다.

 

이처럼 <머니게임>은 제목에 담긴 것처럼 경제정책 결정에 대한 저마다 다른 입장을 가진 이들이 부딪치고 대결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경제 문제는 서로 얽혀 있어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희생되기도 한다. 그러니 입장 차이에서 발생하는 대결이 마치 게임처럼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게임을 게임으로만 볼 수 없는 건 거기에 우리네 서민들의 삶이 좌지우지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갑자기 터져버린 금융위기에 언제나 피해를 보는 건 서민들이었다. 결정은 정부가 하고 그 결정에 의해 서민경제는 하루아침에 망가진다. 그걸 이제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래서 <머니게임>의 복잡해 보이는 경제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아무리 노력해도 정책 하나에 휘청대는 서민경제의 그 작동방식이 못내 궁금해지기 때문이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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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이런 영화가 극장에 걸린다는 것만으로도 뭉클하다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선거철만 다가오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른바 ‘북풍’의 실체는 무엇일까. 어째서 선거 임박해 ‘북한의 도발’이 벌어지고 어김없이 일간지에 마치 당장이라도 전쟁이 벌어질 것처럼 대서특필되었나. 영화 <공작>은 아마도 1990년대 말 대선 과정에서 벌어졌던 이른바 ‘총풍사건’을 기억하는 분들에게는 그리 생소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당시 ‘흑금성 사건’으로 ‘북풍’의 실체가 드러났던 그 사건을.

<공작>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해석과 연출은 들어있지만 ‘흑금성 사건’의 현실적 자료들의 대부분이 그대로 담겨 있다. 워낙 흑금성이 실제로 해온 대북 공작 이야기 자체가 드라마틱해 특별한 이야기를 첨가하지 않아도 충분히 관객들을 몰입시킬만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액션이 있는 영화도 아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보게 만드는 힘은 그 실제 이야기에서부터 나온다.

북핵 위기가 점점 커지고 있는 시점에 대북 공작을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든 박석영(황정민)은 사업가로 위장해 북한의 외화조달을 책임지고 있는 간부 리명운(이성민)을 만난다. 그리고 실제로 대북사업으로 진행되었던 남북 합작 광고 사업을 두 사람은 공조해 진행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박석영은 본래의 목적이었던 영변의 핵시설을 들여다보려 노력하고, 북한의 정보들을 안기부에 넘기는 일을 동시에 수행한다. 

<공작>의 팽팽한 긴장감은 사업가로 위장해 북한까지 들어가 김정일 당시 위원장까지 만나게 되는 박석영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일 분 일 초들이 만들어낸다. 그와 함께 김정일의 허락을 받아내 사업을 진행하게 되면서 공동의 운명에 처하게 되는 리명운은 박석영과 기묘한 동지적 관계를 맺게 된다. 남과 북으로 서로 다른 위치에 서게 되지만 ‘새로운 남북관계의 시대’를 희망하는 두 사람의 의지는 그들을 위협하는 양국의 세력들(?)과 대결하게 만든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건 처음에는 박석영와 리명운이라는 인물을 통해 남북이 대결구도로 등장하지만, 차츰 두 사람은 공동운명체가 되어가고 대신 남북 각국의 또 다른 세력들이 그들을 위협하는 존재로 바뀌어간다는 점이다. 북한의 리명운을 위협하는 건 정무택(주지훈)으로 대변되는 군부세력이고, 남한의 박석영을 위협하는 건 엉뚱하게도 대선이 불리해지자 북풍을 조작하려는 정치인들과 안기부의 공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선은 그래서 이 영화의 중대한 변곡점을 만들어낸다. 북풍을 조작하면서까지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밀어내려 했던 정치세력과 안기부는 그가 당선됨으로써 오히려 위기를 맞게 된다. 이른바 ‘총풍사건’이 드러나고 당시 북풍 공작을 했던 안기부 요원은 검거되며, 안기부는 국정원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다 알고 있듯이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남북 정상 회담을 제안한다. 그렇게 남북관계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됐던 것.

<공작>의 신랄함은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특정 정치세력을 위해 북풍 공작까지 감행했던 시대의 어둠을 정조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기 전까지 또 다시 재연되고 있던 상황들이다. 김대중 정권에서부터 노무현 정권까지 이어지던 대북정책은 이명박 정권에서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며 과거의 모습으로 퇴행해버렸던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작>이 남북 광고 합작을 계기로 남측의 이효리와 북측의 조명애가 만나는 장면과, 그 장소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박석영과 리명운의 모습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위원장이 만나던 장면과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는 장면으로 오버랩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공작>은 시대의 씁쓸함을 정조준하는 그 신랄함과 동시에 남북이 마주잡은 그 손의 훈훈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보기 드문 수작이다. 무엇보다 이런 영화가 극장에 걸릴 수 있는 시대를 만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뭉클해지는.(사진:영화'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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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발광 오피스’, 청춘 희비극이 제대로 먹히려면

웃프다. 아마도 MBC의 새 수목드라마 <자체발광 오피스>를 한 마디로 설명하라면 이것이 아닐까. 시작부터 한 회사 건물 창을 부순 채 돌진해 들어가 소화기를 쏘며 “왜 그랬어요!”를 외치는 취준생 은호원(고아성)의 모습은 그녀가 처한 절실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하지만 어딘지 과장된 절실함은 이 비극적인 청춘의 현실을 담은 드라마가 그 겉면으로는 코미디를 차용하고 있다는 걸 알게 해준다. 결국 한 바퀴 휘돌아 다시 그 건물 앞으로 돌아온 그녀는 창을 부수며 돌진하는 것이 그저 그녀의 상상일 뿐이었다는 걸 알려준다. 

'자체발광 오피스(사진출처:MBC)>

100번째 면접시험에서 면접관 서우진 팀장(하석진)에게 “백번이나 떨어지면 병신 아냐?”라는 말까지 들으며 굴욕을 참아냈던 은호원이 결국 그 시험에서도 떨어졌다는 걸 확인한 후 한강 다리 위에서 “삐뚤어질 거야”라고 말하는 대목은 슬프기 그지없다. 남들 스펙 준비할 때 생활고에 시달리며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던 그녀에게 돌아온 말이 고작 “졸업한 지 3년이나 됐는데 뭐하셨나 그래”라는 비아냥이다. 애초부터 출발선이 다른 그녀에게는 그래서 평범하게 회사에 취직해 살아가는 일이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물론 지금의 취업현실은 누구에게나 취업 자체가 평범 그 이상일 수밖에 없는 일이 되어버렸지만.

그런데 중심을 잃고 의지와 상관없이 한강물에 빠졌다 구조되어 한 응급실에서 깨어난 그녀의 귀에 들리는 의사들의 이야기는 그녀를 더욱 절망에 빠뜨린다. 기껏 살아남았는데 시한부라는 것. 하지만 그 날 응급실에 자살시도를 하고 들어온 청춘이 자신만이 아니라 기택(이동휘)과 장강호(이호원)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시한부의 확률이 3분의 1이라는 상황은 이 비극 속에 희극적 요소를 심어놓는다. 병원비가 없어 기택과 함께 응급실에서 도망치고 바깥에서 만난 세 사람이 자신들의 처지를 털어놓으며 절망 속에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그래서 슬프면서도 웃음을 준다. 

청춘들의 취업 현실을 담았다는 점에서 <미생>의 장그래(임시완)가 떠올려지지만 <자체발광 오피스>는 <미생>의 진지함과는 달리 조금은 가벼운 코미디적 요소를 덧붙였다. 그래서 그 이야기나 인물들의 상황은 지극히 현실적인 무게감을 주면서도 조금은 편안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가 되었다. 지금의 청춘들이라면 그 웃픈 현실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게다. 특히 비극적 현실을 희극적 상황으로 풀어내는 방식은 너무 처질 수 있는 드라마를 경쾌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자체발광 오피스>의 첫 방 시청률은 고작 3.8%(닐슨 코리아)에 머물렀다. 도대체 어떤 부분이 부족했던 걸까. 물론 가장 큰 건 경쟁작인 KBS <김과장>이 떡 하니 버티고 있고 SBS <사임당, 빛의 일기> 역시 중장년층 시청층을 넓히고 있는 상황일 게다. <자체발광 오피스>만 놓고 보면 공감 가는 드라마인 건 분명하지만, 경쟁작들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그 시청층을 들여다보면 이 드라마가 중장년층의 시선을 잡아 끌만한 매력적인 캐릭터나 상황이 없다는 점은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생>은 장그래만 있었던 게 아니라 오상식 과장(이성민)이라는 중년층이 몰입할 수 있는 캐릭터가 있었다. 하지만 <자체발광 오피스>는 적어도 첫 회에서는 그런 캐릭터를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김과장> 역시 김과장(남궁민)은 물론이고 추부장(김원해) 같은 중년들이 공감할 캐릭터가 세워져 있고, <사임당, 빛의 일기>는 초반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설정을 최대한 줄이고 사극에 집중함으로써 중장년 시청층을 끌어들였다. 

<자체발광 오피스>는 그래서 그 작품 자체로는 빛이 나는 드라마인 건 분명하지만, 보편적인 시청층을 끌어들이기에는 어딘지 부족한 면들이 많이 드러난다. 웃픈 청춘들의 이야기는 충분히 공감가지만,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좀 더 폭넓은 세대의 이야기까지를 아우를 수 있는 캐릭터나 상황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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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03.20 13:48 신고 BlogIcon 공인모c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아성 복면가왕에 나왔던데~ 이쁘고 연기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더라고요 ㅎㅎ드라마 재밌을거같네여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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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드라마는 끝났어도 가시지 않는 깊은 여운

 

tvN 금토드라마 <기억>이 종영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남겨 놓은 깊은 여운은 좀체 가실 것 같지가 않다. <기억>은 마지막까지 흔한 복수극의 엔딩을 탈피했다. 박태석(이성민)이 아들동우의 뺑소니범인 이승호(여회현)에 대한 복수가 아닌 진실규명을 원했기 때문이었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이승호가 자수하고 자신이 뺑소니범이며 친구까지 살해했다고 증언했을 때, 박태석이 뺑소니는 인정해도 살인은 인정하지 않은 건 그게 진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기억(사진출처:tvN)'

뺑소니에 대한 공소시효는 이미 끝난 상황. 결국 이승호는 풀려나지만 박태석은 그에게 진실의 무게를 느끼며 평생 그 죄책감을 짊어지고 살아가라고 말한다. 또한 이승호를 찾아온 동우의 엄마인 나은선(박진희)은 어렵게 그를 용서한다. “난 동우가 너한테 상처가 아니라 희망이길 바라. 넌 우리한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지만 우리 동우는 너한테 희망이길 바라고 있어. 동우를 생각한다면 세상에 나가서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게 동우가 너한테 주는 기회고 용서야.”

 

<기억>이 전한 것은 절망의 복수가 아닌 희망의 진실이었다. 진실의 무게가 복수보다 더 엄중하고, 그것이야말로 미래의 희망을 가능하게 한다는 걸 <기억>은 전해주었다. 그래서 이야기의 또 한 축이 되었던 희망슈퍼 살인사건역시 그 진범인 신영진(이기우)이 체포되는 복수보다는 억울하게 범인으로 오인되어 무려 15년 간이나 복역해온 천민규의 무죄를 밝혀내는데 더 초점이 맞춰졌다. 박태석은 피고인에게서 희망을 빼앗은 사람은 본 변호인을 비롯해 검찰, 경찰, 그리고 힘 있는 권력자다. 우리 모두가 피고인에게서 희망을 빼앗은 공범이라고 말했다.

 

<기억>이 이토록 단죄 그 자체보다 진실규명을 더 절실하게 추구한 까닭은 무엇일까. 사실 자신의 아들을 그렇게 만든 이들 앞에서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려운 선택을 하게 된 건 이 드라마가 기억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복수든 법의 심판이든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사안이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의 문제라는 것. 진실 규명은 그래서 그 어느 것보다 중대한 일이 된다.

 

<기억>에서 박태석은 생방송 중 자신이 알츠하이머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개하며 아이러니한 말을 전한다.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은 후에 뒤돌아보니 그간 자신이 살아온 시간들은 더 깊은 알츠하이머의 삶이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 기억의 측면에서 보면 스스로 알츠하이머에 걸린 듯 많은 기억해야 할 것들을 지우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

 

우리네 현실에서 기억의 문제는 어쩌면 사회가 희망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인지도 모른다. 사회를 들썩이게 만들었던 국가적인 사건이 벌어지고도 시간이 지나면 유야무야 사라지는 기억들. 그것은 어쩌면 그렇게 진실을 덮으려는 가해자들은 물론이고 진실을 회피하려는 우리 모두가 공조해 생겨나고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사이다 복수를 보며 잠깐의 카타르시스를 얻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 건 진짜 기억해야 사안들의 진실이 묻히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마주하고 기억한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이야말로 미래의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걸 <기억>은 그 특별한 엔딩을 통해 그려냈다. 진실은 바다 밑에 가라앉히려 해도 결국은 떠오르고 회피하려 해도 먼 길을 돌아 다시 우리 눈앞에 마주하게 된다는 걸 <기억>은 전해주었다. 드라마는 그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좀체 이 <기억>이라는 드라마가 우리네 현실에 남겨 놓은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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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5.10 16:15 감사~^^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서 김지우 작가를 좋아하고 빠뜨리지 않고 챙겨보는편인데...
    이번엔 어쩐지 보고 싶지 않더라구요...저 역시 회피 도망 이런 단어가 어울리겠네요.
    복수보다 더 중요한 진실. 이 진실이 필요한 일들이 세상엔 너무 많다는거...
    드라마 "기억"이 오래오래 기억되어서 우리 사회에서 진실규명이 필요한 일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드러나기를 소망해 봅니다. 리뷰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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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로 살아갈 것인가 어른으로 살아갈 것인가

 

나 아주 나쁜 놈이야. 당신 말대로 쓰레기고. 동우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게 지옥 같아서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아서 무섭고 두려웠어. 그래서 도망쳤어. 상처를 마주볼 용기가 없어서 있는 힘껏 도망쳤어. 기껏 도망친 곳이 진짜 지옥인지도 모르고 썩은 권력에 기생하면서 그들이 던져준 돈과 권력에 취해서 벌레처럼 살았어. 참 어리석었어. 매순간 진실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매순간 그걸 놓치고 더 큰 죄를 지었거든. 그들도 나도 그렇게 살았어.”

 


'기억(사진출처:tvN)'

tvN 금토드라마 <기억>에서 태석(이성민)은 전처이자 뺑소니사고로 죽은 동우의 엄마인 은선(박진희)을 찾아와 참회한다. 그는 자신이 지옥 같은 고통 때문에 기억으로부터 도망쳤지만 그 도망친 곳이 진짜 지옥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가 일에 빠져 살았던 태선로펌. 그 대표인 이찬무(전노민)의 아들 승호(여회현)가 사실 뺑소니범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던 것. 게다가 그들은 뺑소니 사고를 덮기 위해 씻을 수 없는 더 큰 죄를 지었다.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살인까지 저질렀으니.

 

똑같은 어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동우의 어버이와 승호의 어버이는 너무나 다르다. 동우의 어버이인 태석과 은선은 드러난 진실 앞에 분노한다. 그리고 자각한다. 자신이 살아왔던 삶이 벌레의 삶이었다는 것을. 가해자들이 준 돈과 권력에 기생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하지만 승호의 아버지인 찬무와 할머니인 황태선(문숙)은 여전히 돈과 권력을 이용해 진실을 덮으려 한다. 태선은 찬무에게 태석이 의심을 갖는다고 해도 증명할 건 아무 것도 없다며 걱정 말라고 한다.

 

하지만 그 순간 찬무는 깨닫는다. 자신이 아들 승호의 죄를 덮기 위해 했던 일들이 승호에게는 어떤 기분을 주었을 지를. 그는 이제는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 모든 걸 덮으려 했던 어머니 태선을 원망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모두 널 위해서 한 일이다.” 태선의 변명 같은 말에 찬무는 답한다. “승호도 이런 기분이었겠군요.” 대물림되는 죄. 진실을 은폐한 대가는 이토록 무겁게 대를 이어 자식을 지옥 속에서 살아가게 한다. 뺑소니 죄에 대한 응당의 벌을 받지 않고 살아오면서 승호나 그의 아버지 찬무 모두 또 다른 죄를 짓게 했으니.

 

<기억>이 건드리고 있는 건 어른의 삶과 선택이 후대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다. 권력에 기생해 살아온 대가가 얼마나 벌레 같은 삶이었는가에 대한 참회이고, 그 권력이 그 과거의 진실을 덮기 위해 여전히 얼마나 큰 죄를 저지르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칭해 쓰는 어버이라는 말이 얼마나 큰 무게감을 갖는가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어버이는 진정 어떠해야 어버이라 불릴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

 

하지만 현실은 참담하다. 어버이라는 단어가 이토록 부끄러운 단어로 오염되어 있는 현실이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태석의 참회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나도 내가 용서가 안되는 데 누가 날 용서할 수 있겠어.”라고 말하는 그를 전처인 은선은 오히려 위로해준다.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며 현실에 맞서는 태석은 비로소 동우의 아버지로서 어버이라는 자리를 찾아온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어버이들은 어쩌다 보니 부끄러운 존재들이 되었다. 스스로는 열심히 가족을 위해 살아왔다고 자부했지만 그것이 과거의 죄를 덮어버리고 쉽게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대가에 의해 이뤄졌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참회하기도 한다. 이러니 젊은 세대와 어버이 세대의 골은 깊어져간다. 나이를 뛰어넘어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세대는 친구가 되지 못한다. 이 얼마나 아픈 현실인가.

 

태석은 자신이 상대방의 약점까지 잡아 변호를 했던 대가로 자살한 김선호 박사의 유서를 젊은 변호사인 정진(이준호)에게 건네준다. 자신이 할 일을 끝내고 나서 모든 진실을 밝힐 것이라는 것. 그렇게 되면 자신의 변호사 자격마저 박탈당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려 한다. 그리고 정변호사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정변은 김선호 박사와 관련해서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게 유죄라면 유죄야. 그치만 책임질 일은 없어. 내 말 알아들었어?”

 

자신의 죄를 자신이 책임짐으로써 젊은 세대에게 그 책임이 전가되지 않게 하려는 노력. 태석이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건 바로 그것이다. 본의 아니게 자신의 짐까지 짊어지게 해서 미안하다는 태석에게 정변호사는 뜬금없이 인디언 말로 친구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 그게 친구랍니다. 오늘부터 저 변호사님이랑 친구 먹은 겁니다.” 세대 간의 소통은 이런 식으로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다. 곧 어버이날이 다가온다. 하지만 어버이라는 말이 이토록 창피하고 부끄럽게 여겨지는 현실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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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알츠하이머 소재를 이렇게 다루다니

 

기억이라는 소재는 드라마에서 여러 번 다뤄졌다. 흔하디흔했던 과거 신파극의 설정 중 하나가 기억 상실이고, 이런 전통은 최근 막장드라마들에서도 많이 다뤄졌다. 하지만 최근 기억의 문제는 알츠하이머라는 구체적의 질환의 문제로 다뤄진다. ‘기억 상실의 문제에 불치병이라는 소재가 얹어지기 마련이다.

 


'기억(사진출처:tvN)'

JTBC <기억>이라는 드라마도 표면적으로 보면 이러한 기억 상실의 소재가 갖고 있는 극적 장치에 기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저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알츠하이머라는 소재를 가져오고 있지만 그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을 표징하고 있다는 데서 놀라운 이 드라마의 무게감이 드러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드라마는 기억 상실이 갖는 그런 속물적이고 식상하기까지 한 극적 장치에 기대지 않는다. 대신 이 드라마는 고발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알츠하이머에 걸려 있다는 것을.

 

박태석(이성민)이라는 성공한 로펌 변호사는 비로소 알츠하이머라는 판정을 받고 나서야 자신이 어떤 짓들을 해왔는가를 각성하게 된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이제 기억을 곧 잃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에야 기억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는 이야기다. 태석이라는 인물의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이건 우리 이야기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쉽게 많은 것들을 지워버리고 덮어버리며 심지어 그런 일은 없었던 것처럼 치부하며 앞만 보고 달려왔는가에 대한 이야기.

 

그 많은 사건들과 사고들을 덮어버리는 장본인들은 돈을 받고 뒤처리를 해주는 변호사들 같은 존재들이다. 그들은 피해자들을 위해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들의 죄를 덮기 위해 법을 이용한다. 갖가지 구실을 만들고, 그것이 안 되면 상대방의 약점을 잡아 협박을 일삼는다. 그래서 절대 잊으면 안 될 것 같은 사건들을 유야무야 흐릿하게 만들어버린다. 또 한 편에서는 하루하루 밥벌이에만 몰두하게 만드는 생존환경을 만들어낸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끔찍한 사건들이지만 이 알츠하이머를 의도적으로 만드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사람들의 기억은 자꾸만 잊혀져 간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502명이 사망했고, 성수대교가 붕괴되어 32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당했으며, 청소년 수련시설인 씨랜드에 벌어진 화재로 무고한 아이들 23명을 하늘나라로 보냈다. 대구 지하철에서는 방화로 인해 무려 340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리고 2년 전 제주로 가던 세월호가 진도 인근에서 침몰해 295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되었다. 어마어마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지만 그 때만 반짝 피눈물을 흘리고 나서는 어찌된 일인지 우리는 마치 그런 일들이 없었다는 듯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이건 마치 알츠하이머에 걸린 사회 같다.

 

사회는 그 많은 잊지 말아야 될 기억들을 기억하기보다는 덮어버리고 앞으로 달려가야만 우리가 생존할 수 있다는 분위기로 흘러간다. 조장된 빨리 빨리는 뒤돌아보지 말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기억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또 다른 피눈물을 흘려야 할 것이다. <기억>이라는 드라마가 알츠하이머라는 병에 걸려서야 비로소 각성한 태석이라는 인물을 그려내는 건 여러모로 이런 우리 사회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그 끄트머리에 죽은 태석의 아이의 문제를 세워두는 것도 그래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실로 기가 막힌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알츠하이머라는 소재를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토록 확장해 우리 사회의 문제로 환원시키고 표징 해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건 머리로 쓴 드라마가 아니다. 가슴으로 쓴 드라마다. 그 많은 아픔들을 가슴 깊이 새긴 채 피눈물을 토하며 쓴 드라마이기 때문에 인물들의 이야기에 우리 사회에 대한 이만한 날카로운 메시지를 던질 수 있었을 것이다. 보면 볼수록 섬뜩하게 가슴을 울리는 드라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사회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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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4.18 10:13 감사~^^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지우 작가가 그런 작가이지요...
    그렇게 보시는 글쓴이님도 대단하십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

  2. 2016.04.19 14:22 ..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티비엔드라마 아니었나요? JTBC였나??

  3. 2016.04.20 16:11 신고 BlogIcon 이한씨앤씨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역시..... 시나리오도 좋고 연기력도 좋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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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가시 같은

 

기억이란 마치 가시 같다. 뺑소니로 아이를 잃은 박태석(이성민)은 그 기억이 가시처럼 뇌리에 걸려 있다. 그건 잊고 싶은 아픈 기억이면서도 동시에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이기도 하다. 전처인 나은선(박진희)은 그래서 그 기억의 지옥 속에서 살아간다. 아이를 잃은 기억의 고통을 자신과 박태석이 평생을 짊어지고 가야할 일로 여긴다. 그녀는 태석에게 한시도 그 고통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말고 살아가라고 말한다.

 


'기억(사진출처:tvN)'

아마도 그 기억의 고통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서영주(김지수)와 재혼한 박태석이 하루도 쉬지 않고 일에 빠져 살아왔던 것은. 그런데 그 몸부림의 끝에 그는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는다. 기억이 서서히 지워져가는 병.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잊고 싶은 기억은 지워지지 않고 오히려 선명해지고 잊지 말아야 할 기억들은 자꾸만 잊혀진다. 술에 취해 그는 전처인 나은선의 집을 자꾸만 찾아간다.

 

<기억>이라는 드라마가 다루고 있는 건 제목처럼 기억이라는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자 천형에 대한 것이다. 무언가를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이지만 바로 그 잊혀지지 않는 기억 때문에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그 가시 같은 기억은 죄의식같은 걸 자극해 인간다운 선택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태석의 아이를 뺑소니 친 채 그 사실을 숨기고 살아가는 이승호(여회현)는 잊지 못할 가시 같은 기억 때문에 아이가 죽은 곳에 꽃다발을 갖다 놓는다.

 

잊고 싶은 기억, 잊혀지는 기억, 잊지 말아야할 기억. 태석이라는 인물이 살아가는 하루는 그 기억과의 사투 속에서 너무나 길게 느껴진다. 그는 일터에서 잊지 말아야할 기억을 잊어버려 낭패에 빠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하지만 그렇게 뛰고 또 뛰면서도 잊혀지지 않는 죽은 아이의 기억 때문에 괴로워한다. 술 취해 나은선의 집에서 잠든 자신을 아내 영주가 찾아왔다는 그 기억에 미안해하고, 착한 영주의 심성을 빼닮은 아들 정우(남다름)가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채고 가슴 아파한다.

 

태석의 하루는 실로 전쟁터 같다. 실제로 벌어지는 사건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동시에 자신의 사라져가는 기억과 사투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태석은 조금씩 자신에게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집단 따돌림 때문에 자살 시도까지 하려던 정우를 찾는 태석은 그 누구보다 간절해진다. 또 아이를 잃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두려움. 정우를 찾아낸 태석은 자신이 지켜내야 할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다.

 

<기억>이 그리고 있는 태석이라는 인물은 여러모로 우리 시대의 가장들의 모습을 기억하게 한다. 누구에게나 태석 같은 존재가 기억 속에 아른거릴 것이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어느 순간 떠나버렸지만 여전히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있는 그 가장의 모습. 태석의 안간힘을 보며 어떤 슬픔 같은 걸 느끼게 됐다면 그건 이 인물이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서 저마다 소중한 누군가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대로 지워버릴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잊어서도 안되지만 때로는 자의와 상관없이 사라져가는 기억. 우리는 어쩌면 태석과 그리 다르지 않은 기억의 존재들이 아닐까. 물론 그는 알츠하이머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겪고 있지만 그게 아닌 우리가 그와 다를 게 뭐가 있을까. 기억과의 사투를 벌이는 그 모습은 어쩌면 우리들의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그 모습이 또 누군가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겨질 지도 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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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어느 한 남자의 추락을 바라본다는 건

 

태석(이성민)의 하루는 한 마디로 지옥 같았다. 하루아침에 멀쩡했던 그는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고 뇌가 쪼그라들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가방 대신 쓰레기를 들고 나오질 않나 심지어 자기 차를 찾지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알츠하이머에 대해 멍청이가 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재벌3세 의뢰인 영진(이기우)의 말은 이제 더 이상 남 얘기가 아니다.

 


'기억(사진출처:tvN)'

영진이 가진 병원측을 대신해 태석이 내부고발을 하려는 의사의 사적인 약점을 들춰내고 그것으로 문제를 덮은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그 의사가 덜컥 자살을 해버리고, 백지유서에 그의 명함을 남겨 놓는 일이 발생한다. 의사의 자살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거기 남겨진 태석의 명함 때문에 형사가 찾아와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한 가지가 어그러지기 시작하자 모든 게 뒤틀어지고 나쁜 일은 함께 몰려온다고 태석에게 그간 아무렇지도 않게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였던 일상들이 허물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그를 돕는 젊은 변호사인 정진(이준호)은 태석의 비도덕적인 행위들을 사사건건 문제 삼고, 같은 로펌의 한정원(송선미) 변호사는 어쩐지 태석과 직장 내에서의 정치 싸움에 돌입하는 모양새다. 겉으론 무표정하지만 어려운 일들을 대신 태석에게 밀어내고 거기서 생겨나는 문제를 끄집어내 로펌에서의 입지를 약화시키려 한다.

 

그 와중에 결혼식장에도 보지 못한 무언가 문제가 있는 듯한 태석의 아버지(장광)가 나타난다. 태석의 회사를 찾아온 아버지는 자기 친구가 처한 문제에 대해 태석에게 변호를 부탁하지만 그는 자신에겐 아버지가 없다며 그를 내쫓는다.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는 어쩐지 태석에게는 또 다른 걸림돌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다. 거의 신경쇠약 직전에까지 이른 태석은 자기 스스로 머리에 물을 붓는다. 머리가 터질 것처럼 문제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게 끝이 아니다. 1인 아들은 어찌 된 일인지 편의점에서 술을 훔치고 학교도 빠져버린다. 왕따 문제 같은 학교 문제에 연루된 것이 틀림없다. 아직 태석에게까지 이 문제가 알려지진 않았지만 조만감 이 문제는 그에게 치명타를 입힐 가능성이 높다. 밖에서의 문제야 그렇다 치지만 그나마 그것이 모두 가족을 위한 일이었다고 위안하며 살았을 그가 아닌가. 가족의 붕괴는 그를 절벽 끝으로 내모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의사가 자살한 병원의 간호사가 나타나 사실 그 백지유서를 놓은 건 자신이라며 진짜 유서는 자기가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의 언니가 키운 아이를 생모가 돌려달라고 한다며 이를 막아달라고 태석을 협박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살한 의사의 진짜 유서를 공개해버리겠다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라고 소리치는 태석이 먼발치서 엄마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그가 보낸 이 지옥 같은 하루와 겹쳐지면서 시청자들을 먹먹하게 만든다. 그토록 힘겹게 버텨내고 심지어 세상과 타협하면서까지 얻게 된 지위와 부 그리고 그로 인한 가족의 평안함이 무너지는데 드는 시간이 고작 단 하루 이틀이면 충분하다는 건 실로 허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억>이라는 드라마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이 허망하기 이를 데 없는 현실에서의 고군분투가 진정한 삶의 가치에서는 얼마나 벗어나 있는 것인가를 확인하는 것. 그래서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진짜 중요한 것들을 찾아 해나가는 것. 이것은 <기억>이라는 드라마가 태석이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많은 드라마들이 성장과 성공 스토리를 그려낸다. 그 안에는 판타지가 뒤섞인다. 현실에서는 쉽게 이룰 수 없는 어떤 것들을 쟁취하는 인물을 통해 갖는 대리 충족. 하지만 <기억>은 거꾸로 이미 최고의 위치에 오른 한 인물의 추락을 그려낸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그 성공을 위해 저당 잡혀 왔던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본다는 것. 모두가 성장과 성공으로만 달려가는 시대에 우리가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의미 있는 충격요법이 아닐 수 없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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