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타임>, 시즌2를 위한 포석

 

<골든타임>은 종영했지만 해운대 세중병원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외상센터 지정도 수포로 돌아갔고, 헬기 배정도 물 건너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희망마저 사라진 건 아니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없는 헬기는 소방헬기와의 제휴를 통해, 여전히 모자란 수술방은 이른바 ‘돌려막기’를 통해 임시방편을 만들었다. 중증 외상센터 부지도 영안실 2층을 리모델링함으로써 해결하기로 했다.

 

'골든타임'(사진출처:MBC)

그리고 쏟아져 들어오는 응급환자들을 맞아 경험은 없어도 열정으로 버텨낸 인턴 나부랭이들도 모두 제각각 자신의 길을 떠났다. 세중병원 응급실에 남겠다는 이민우(이선균)를 멘토이자 롤모델인 최인혁(이성민) 교수는 그의 발전을 위해 떠나라고 했고 그는 서울의 외과수술이 유명한 병원으로 레지던트 과정을 위해 떠났다. 강대제(장용) 이사장이 깨어나자 인턴으로 돌아온 강재인(황정음) 역시 서울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최인혁 교수와 그의 비서이자 매니저인 신은아(송선미)만 남았다. 밉상이지만 귀여운 구석이 있는 과장 4인방도 그대로다. 달라진 건 그다지 없지만 그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실제 응급실의 현실은 더 참담하니 무언가 판타지를 그리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터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암담해지는 그 시점을 이 드라마는 ‘골든타임’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강재인은 이사장 대행으로서 모든 게 뒤틀어질 때 이런 얘길 한 적이 있다. “노력과 진심이 배신할 때도 있다”고. 하지만 “후회하지 않을 때까지 최선을 다했다면” 되는 거라고. “이렇게 경험해가면서 우린 성장해가는 거”라고. <골든타임>이 여느 의학드라마보다 빛나는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섣부른 희망에 다다르려 하지 않고 그렇다고 절망에 빠지지도 않으면서 그 최선을 다하는 과정을 담았다는 것.

 

아마도 시즌2에 대한 기대감이 더 높아지는 건 바로 이 결론이 아니고 과정을 담아낸 드라마의 특성 때문일 게다. “교수님 저 4년 후에 꼭 돌아오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떠나는 이민우의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다시 돌아온 이민우와 최인혁 교수의 만남을 보게 될 거라는 기대감.

 

이런 기대감이 작용한 것인지, <골든타임> 마지막회는 시즌2가 기획된다면 가능할 몇 가지 포석들을 남겨 두었다. 시즌제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결국 캐스팅이다. <대장금2> 제작의 관건은 이영애씨에게 달렸다고 이병훈 PD가 말한 건 그 단적인 사례다. 그렇다면 <골든타임>은 어떨까. 시즌2를 제작한다면 이선균이나 황정음, 이성민, 송선미가 함께 할 수 있을까.

 

가장 좋은 포석은 이 네 사람이 다시 시즌2에 합류하는 것이다. 이민우가 말한 것처럼 4년 후 버젓한 의사로 돌아온 이민우와 강재인이 최인혁과 신은아를 만나서 다시 응급실을 꾸려가는 이야기. 하지만 이것은 가장 이상적이지만 가장 어려운 조합일 수 있다. 성공한 드라마의 재조합이란 캐스팅에 있어서 각각의 입장차가 생기기 마련이니까.

 

따라서 현실적인 포석은 최인혁과 신은아가 이끄는 세중병원 응급실에 새로운 인턴들을 넣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새 인턴들로 새로운 주연급 배우들을 캐스팅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다. 물론 드라마의 중심축은 시즌1에서처럼 최인혁이 이끌어 나가는 게 정석이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포석은 이민우와 강재인의 서울 레지던트 성장기를 외전처럼 담는 방식이다. 아마도 이것은 쉽지 않은 포석이 되겠지만 <골든타임>과 연계를 가지면서도 새로운 의학드라마로 접근해도 되는 열린 가능성이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렇게 보면 <골든타임>의 종영 방식은 대단히 많은 시즌2의 가능성을 잘 고려한 선택이었다고 여겨진다. 네 인물을 한 데 묶어서 어떤 결론을 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을 풀어 헤쳐 흩어놓고는 다시 만날 약속을 던지는 그런 방식. 과연 <골든타임>은 마지막회가 포석한 것처럼 시즌2로 돌아올 수 있을까. 돌아온다면 그것은 어떤 방식일까. 꼭 다시 이들의 골든타임을 볼 수 있기를.

<골든타임>, 이선균과 황정음은 뭐가 다른가

 

“잘 한 게 없어서 서럽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병신 같을까...” <골든타임>의 인턴 나부랭이(?) 이민우(이선균)는 응급환자를 처음 접하고는 발견한 무기력한 자신을 한탄한다. 교통사고 현장에서 당장 응급조치를 해야 하는 상황에 “119가 더 잘 한다”며 환자를 외면하던 그였다. 그런 그를 진짜 의사로 만든 건 한 어린 환자의 죽음. 그 자책감은 이민우로 하여금 환자에 대한 집착적인 열정을 갖게 만든다. 비록 실력은 아직 없지만.

 

'골든타임'(사진출처:MBC)

사실 이 맨 밑바닥에서부터 차츰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민우와 강재인(황정음)은 이 의학드라마의 주인공들이다. 하지만 당장 시급한 상황들이 펼쳐지기 마련인 응급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의학드라마에서 이들보다 주목될 수밖에 없는 캐릭터는 최인혁(이성민) 같은 베테랑 의사다. 빈부를 따지지 않고 오로지 환자만을 바라보는 최인혁 같은 캐릭터가 대중들에게 구세주 같은 인상을 준다는 점은 그를 이 드라마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세워놓는다.

 

드라마 전체로 볼 때 대중들이 최인혁에게 열광하는 건 나쁜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본래 주인공들인 이민우와 강재인을 연기하는 이선균과 황정음에게는 적지 않은 어려움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캐릭터 상으로 봤을 때 구세주로 추앙되는 베테랑 의사와 여전히 민폐 캐릭터인 인턴 나부랭이들은 애초에 비교 대상 자체가 되지 않는다.

 

이 주연과 조연의 역전현상이 예상치 못했던 결과라는 것은 이 의학드라마의 멜로 구도를 보면 드러난다. 본래 이민우와 강재인의 멜로 구도가 전면에 나타나야 정상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현재 이 드라마의 멜로 구도는 오히려 최인혁과 신은아(송선미)쪽으로 더 기울어 있다. 어찌 보면 이 멜로는 애초 계획된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보인다. 신은아가 본래 결혼할 남자가 있었다는 설정이 그렇다. 최인혁이 주목을 받으면서 신은아와의 멜로 요구가 생겨난 지점이 있다.

 

어쨌든 캐릭터 상 이민우와 강재인이 최인혁의 카리스마에 가려진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스스로 인턴 나부랭이라며 자조하는 이민우와 강재인이지만, 이 두 캐릭터 사이에도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응급실에서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두 사람은 전형적인 민폐 캐릭터지만 이민우와 강재인의 느낌이 다르다는 점이다. 환자 앞에서 쩔쩔 매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과잉 정성을 들여가며 뛰어 다니고 환자 가족들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는 이민우는 강재인과 달리 점점 정이 가고 어딘지 믿음직한 느낌을 준다는 것.

 

이것은 단순히 캐릭터의 차이일까. 물론 그런 점이 있다. 이민우는 최인혁 앞에서 혈관을 찾아내거나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식으로 조금씩 존재감을 인정받고 있지만, 강재인은 아직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재인 역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복막염으로 위중한 환자를 데려가려는 그들을 막는 건달 앞에서 당찬 모습을 보여주던 장면들이 그렇다. 하지만 그 장면을 빼고 나면 강재인은 좀체 잘 보이지 않는다. 이것을 단순히 캐릭터의 문제라고 볼 수 있을까.

 

같은 민폐 캐릭터라도 이선균과 황정음이 다른 지점은 그 풍부한 표정 연기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이선균은 인턴 나부랭이로서의 찌질함을 거의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잔뜩 찡그린 얼굴에는 억울함과 안타까움과 미칠 듯한 답답함이 느껴진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의 열정을 드러낸다. 환자에 대한 열정이 있기에 억울하고 안타깝고 미칠 듯한 것이다. 이런 열정적인 모습들은 이 병원의 과장들이 보여주는 세속적이고 현실 타협적인 모습과 대비되면서 오히려 믿음을 준다. 환자가 죽고 사는 건 반드시 의술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의사의 환자에 대한 열정 때문이라는 것을 이 드라마는 보여준 적이 있지 않은가.

 

반면 황정음은 그 변화의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녀는 여전히 도도한 느낌을 유지하고 있고, 그 이면에 숨겨진 감정을 잘 보여주지 않고 있다. 이 무표정함은 이 캐릭터의 생동감이 잘 드러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다. 인턴 나부랭이라면 그 밑바닥의 절절함이 묻어나야 하는데 그것이 황정음의 얼굴에서는 좀체 느껴지지 않는다. <골든타임>에서 같은 바닥의 캐릭터지만 이선균과 황정음이 달리 보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응급실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존재에서 점점 그 자리에 딱 어울리는 캐릭터가 되어가고 있는 이선균과 달리, 황정음은 여전히 그 공간의 이방인처럼 보인다는 점. 황정음이 자신의 존재감을 살리기 위해서는 좀 더 캐릭터의 밑바닥을 드러냄으로써 거기서부터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손현주와 이성민, 서민들을 위한 리더십

 

<뿌리 깊은 나무>의 한석규, <추적자>의 손현주에 이어 <골든타임>의 이성민까지 최근 드라마에는 그간 주변에 머물러 있던 중견배우들의 재발견이 새롭다. 사실 이들이 연기 잘 한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다만 그간 드라마에서 맡은 역할이 그들의 가능성을 최대치로 보여주지 못했을 따름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감이 확실히 드러날 수 있는 역할을 맡게 되자 말 그대로 펄펄 날았다. 그들이 연기한 캐릭터의 무엇이 그들을 비상하게 만든걸까.

 

'골든타임'(사진출처:MBC)

<골든타임>은 지금까지의 의학드라마와는 사뭇 다른 극도의 리얼리티가 돋보이는 작품. 그 리얼리티를 100% 만드는 인물이 바로 이성민이 연기하는 최인혁 교수다. 최인혁 교수는 그간 의학드라마에서 괜스레 폼을 잡는 의사들과는 다르다. 죽음이 경각에 달린 환자를 살리기 위해 피 튀기는 수술대에서 온 몸에 피칠갑을 하고 수술을 하는 의사. 오로지 환자만을 보는 그 자세는 이 병원에서 그저 권력을 잡기 위해 메스를 쥐는 여타의 의사들과 비교된다. 돈과 권력에 따라 환자 대접도 받는 현실에서 최인혁은 서민들의 희망 같은 존재다.

 

수술을 못하게 만들어버린 과장들의 담합 속에서 환자를 외면하지 못해 결국은 사표를 쓰게 된 최인혁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를 거부하지 못한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교통사고 부상자를 즉석에서 응급조치하고 병원까지 이송한 후 아무도 수술을 하려 하지 않자 자신이 또 메스를 잡는다. 환자가 그저 보잘 것 없는 배달부라는 사실 때문에 쳐다보지도 않던 과장들은 그러나 그가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미담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서로 그를 맡으려 돌변한다.

 

하지만 응급환자 수술 경험이 최인혁에 비해 일천한 외과과장은 결국 수술대에서 환자가 초응급상황이라는 걸 깨닫고는 다시 자신이 내친 최인혁을 부르는 뻔뻔한 짓을 벌인다. 그런 짓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최인혁 교수는 환자를 향해 달려가 그를 응급수술해 일단 살려놓기로 마음먹는다. 천사배달부로 알려진 고 김우수씨의 미담을 소재로 가져온 이 에피소드는 이 의학드라마가 가진 정치적인 특징을 잘 말해준다. 친서민적인 최인혁이란 의사는 각박한 현실에서 힘겨운 서민들을 토닥이는 존재가 된다.

 

<추적자>의 손현주가 연기한 백홍석 역시 마찬가지다. 그저 열심히 산 것밖에 죄가 없는 그이지만 딸과 아내를 잃고 오히려 쫓기는 신세가 되어버린 그 역시 이 땅의 죄 없는 서민들의 자화상을 그려낸다. 자신의 가족을 모두 잃은 그가 개인적 복수가 아니라 사회 정의의 차원에서 사투를 벌이고, 법정에서 진술하는 모습에 대중들이 공감하고 감동한 것은 그가 서민들의 희망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한석규 신드롬을 만들었던 <뿌리 깊은 나무>의 세종과도 맞닿는 이야기다. 이 사극에서 세종 이도는 왕과 백성들 사이에서 한자라는 독점 문자체계로 농단을 부리던 신하들과 맞서 왕과 백성을 직접 소통시키는 한글을 발명하고 반포하는 인물이다. 정기준(윤제문)과 그 무리들이 이 소통의 적들이라면 세종 이도와 그 측근들은 소통 사회를 이끌어낸 백성들의 희망이었던 셈이다.

 

한석규나 손현주, 이성민 모두 무수한 작품을 통해 연기지존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건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들의 연기가 새롭게 보이는 것은 그들이 만난 캐릭터에 답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캐릭터들이 모두 서민들의 구원자 같은 존재라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들의 캐릭터가 가진 정치적인 함의는 현재 힘겨운 현실에 허덕이는 대중들이 갖고 있는 서민들을 위한 진정한 지도자에 대한 갈증을 잘 말해준다. 그들은 과연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인가. 올해 대선을 앞두고 있는 현재, 과연 이런 자격을 갖춘 인물은 나타날 것인가.

<골든타임>의 이성민, 서민들의 희망된 이유

 

세상의 모든 의사가 <골든타임>의 최인혁(이성민) 같다면... 이 의사, 정말 특별하다. 오로지 환자만을 생각한다. 수술금지 조치가 내려져 수술을 하면 징계를 먹을 것을 알면서도 당장 위급한 환자를 위해 메스를 들고, 쫓겨나듯 병원을 나가면서도 마지막까지 응급환자를 걱정한다. 사고 현장에서 우연히 보게 된 중증 부상자를 지나치지 못하고 응급처치를 하고 병원까지 이송해 아무도 손을 대려 하지 않자 본인이 수술을 해서 위기를 넘긴다. 심지어 다른 병원에서 위급한 환자를 도와달라고 하자 앞뒤 재지 않고 달려가 환자를 구한다.

 

'골든타임'(사진출처:MBC)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의 모든 의사가 최인혁 같지는 않다. 최인혁이 구해놓은 환자가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는 사실이 공표되고 언론에 관심을 끌자, 그 때까지 나 몰라라 했던 외과과장은 그것을 자신의 입지를 위해 이용하려고 한다. 환자를 모두에게 평등한 하나의 생명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성공의 발판으로 보는 것이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면 적극적으로 나서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과에게 책임을 넘기려고 하는 이 의사 같지 않은 의사들이 꽤 많다는 불편한 진실을 목도하면서 우리는 분노할 수밖에 없다. 그 응급실의 환자들이 처한 상황은 어쩌면 고스란히 내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의학드라마에서 환자들이란 늘 약자로 존재했다. 따라서 그 약자를 치료해주고 새 생명을 주는 의사라는 존재가 더더욱 부각될 수 있었던 것. 바로 이 풍경은 영웅의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힘겨운 약자의 목숨을 살리는 영웅들의 고군분투. 의학드라마 하면 늘 등장하기 마련인 천재 의사들은 그 영웅 신화의 재림인 셈이다. 하지만 이런 의학드라마에서 환자는 종종 소외되기도 한다. <하얀거탑>의 천재외과의 장준혁(김명민)이 그의 라이벌인 해외파 노민국(차인표)과 환자를 놓고 대결을 벌이는 장면은 이렇게 소외되는 환자를 섬뜩하게 그려낸다. 여기서 환자는 그들의 입지와 대결을 위한 하나의 재료가 되어버린다.

 

<골든타임>에서도 환자가 처한 입장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온몸에 중상을 입고 응급실에 실려온 위급한 환자 앞에서 각과의 의사들이 책임을 피하기 위해 서로 수술을 미루다가 결국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장면은, 병 때문이 아니라 의사들의 책임회피로 환자가 죽을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끄집어낸다. 또 그것은 돈과 권력의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즉 VIP 환자가 들어오면 그 실적을 보이기 위해 서로 수술을 하겠다고 나서는 모습이 그렇다. 이 씁쓸한 현실 속에서 의사는 더 이상 영웅이 아니다. 그저 권력자일 뿐이다.

 

<골든타임>의 최인혁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은 그가 여타의 의학드라마에서 등장했던 천재적인 의사라서가 아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다만 할 수 있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의 환자를 살리겠다는 그 의지는 병원이라는 권력 시스템과 체계를 뛰어넘는다. 도대체 그런 시스템이 한 사람의 생명보다 중요할 수 있단 말인가. <골든타임>은 그런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다.

 

이것은 나아가 우리 사회의 이야기가 된다. 즉 뜻과 소신을 가지고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는 이들이, 다만 권력에만 줄을 대는 이들에 의해 쫓겨나는 그 풍경은 이 사회가 가진 불공정함을 그려낸다. 돈과 권력이 아니라 진짜 환자를 생각하는 의사 최인혁은 그래서 썩어버린 세상에 유일한 희망처럼 보인다. 이것은 <골든타임>이 의학드라마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 안에 상당히 정치적인 함의를 포함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최인혁은 열심히 살지만 힘겨운 서민들이 기다리는 구세주처럼 보인다.

 

<골든타임>이 여타의 의학드라마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의사를 단순히 영웅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드라마에서 의사들은 실수투성이다. 초짜 인턴 이민우(이선균)는 계속해서 실수를 저지른다. 하지만 이렇게 실수투성이의 이민우가 그저 민폐로만 보이지 않고 어떤 희망으로 보이는 이유는 결국 환자가 죽고 사는 것이 의사로서의 기술보다는 그 의사의 환자를 보는 마음이라는 것이 이 캐릭터를 통해 보여지기 때문이다. 이민우는 아직까지 기술적으로 무능하지만, 마음만은 이 병원의 과장들보다 훨씬 의사답다.

 

최인혁은 바로 이런 실수투성이지만 의사로서 생명의 고귀함을 포기하지 않는 순수함을 지닌 이민우 같은 존재에게 하나의 멘토가 된다. 세중병원이라는 이 우리 사회의 축소판처럼 부조리한 공간에서 최인혁 같은 의사가 서 있고 그를 바라보는 이민우 같은 이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최인혁에 대한 열광은 그를 연기하는 이성민에 대한 열광으로도 이어진다. 어찌 보면 이성민이라는 배우 역시 드라마나 영화 판에서 해왔던 필모그라피에 비해 훨씬 평가절하되어 있었던 인물이 아닌가. 겉으로만 화려한 주역들의 뒤에서 묵묵히 제 역할에 최선을 다해 온 이성민은 그래서 최인혁이라는 캐릭터와 잘 어울린다. 세상에 이런 인물들만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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