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충분한 볼거리·미약한 스토리, 그럼에도 이병헌과 하정우

 

백두산의 화산이 폭발했다? 우리 재난영화 소재로 이만큼 좋은 게 있을까. 그건 단지 화산이 폭발해 도시를 잿더미로 만드는 그런 재난만 있는 게 아니라, 남북으로 갈라진 한반도 정세와 거기에 끼어드는 미국, 중국의 개입 같은 복잡한 상황들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영화 <백두산>은 그래서 그 설정만으로도 충분히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중요한 건 화산 폭발과 지진과 여진 등으로 무너지는 건물 같은 블록버스터급 CG를 제대로 소화해내야 한다는 점이다. 만일 이게 제대로 되지 않으면 유치한 B급 재난 영화가 되어버릴 테니 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우려는 시작한 지 단 몇 분 만에 쉽게 해결해버린다. 우리에게 익숙한 강남역에 건물이 무너지고 아비규환이 되는 그 상황은 우리의 CG 능력도 이제 꽤 수준이 높아졌다는 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그렇게 시선을 확 잡아 끌어놓고 이제 영화는 백두산에서 앞으로 벌어질 2차, 3차 화산 폭발의 위기감을 고조시킨다. 백두산의 폭발을 예측하고 연구해온 강봉래(마동석) 박사는 거의 확률이 없지만 시도해보지 않을 수 없는 방법을 제안하고, 이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북으로 침투되는 요원들이 이야기가 긴급하게 전개된다. 전역을 앞두고 임신한 아내를 지키기 위해 작전에 투입된 조인창(하정우)은 북에서 만나게 되는 무력부 소속 일급 자원이자 이중스파이인 리준평(이병헌)과 티격태격 위험한 대결을 벌이며 함께 작전을 수행한다.

 

먼저 전제해야 할 건 <백두산>은 말 그대로 블록버스터 영화라는 점이다. 그래서 사실 영화를 끌고 가는 건 특정 상황들이 보여주는 볼거리들이다. 그래서 영화는 마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보는 듯 강남역 붕괴 장면, 북한 침투 시퀀스처럼 하나하나 볼거리의 포인트가 맞춰져 있는 영화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 관객들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가 할리우드 영화를 즐기듯 별 생각 없이 빠져서 볼 수 있는 정도이다.

 

하지만 볼거리에서 살짝 눈을 돌려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클리셰를 보기 시작하면 <백두산>은 너무 진부한 작품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다. 할리우드 재난 영화의 클리셰들이 곳곳에서 보이고, 남북 간의 관계를 다룬 우리네 영화들의 클리셰들도 여지없이 등장한다. 여기에 백두산이 폭발한 상황에서 중국이나 일본의 아무런 대응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개연성 부족 또한 적지 않다.

 

그런 개연성 부족을 제작진들도 알고 있었던 것인지, 영화는 의외로 재난장르에 남북관계를 담으면서도 코미디적 요소들을 많이 집어넣는다. 그건 대부분 북에서 만나는 조인창과 리준평의 티격태격 관계의 케미를 통해서 보여진다. 역시 이병헌과 하정우라는 배우가 대단하다 여겨지는 건 이 심각한 상황 속에서 이들은 오히려 힘을 쪽 뺀 연기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만일 이들이 힘이 잔뜩 들어가 저 절체절명의 상황에 과도하게 몰입하기만 하는 연기를 했다면 어땠을까. 그로 인해 영화가 가진 개연성 부족과 클리셰들이 더더욱 도드라져 보였을 게다.

 

<백두산>은 블록버스터 영화로서 보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CG 수준도 높아 보는 내내 스크린에 대한 몰입도도 충분하다. 하지만 스토리의 개연성과 클리셰는 많이 아쉽다. 그나마 이를 상쇄시켜주는 건 이병헌과 하정우의 연기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의 연기력의 진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사진:영화'백두산')

‘국가부도의 날’, 너무 아팠던 이 재난을 굳이 다시 꺼내보는 이유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재난영화처럼 보인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1997년 IMF 구제금융을 받아들이던 그 때 상황을 이 영화는 소재로 가져오면서, 그 일주일 전 이 재난이 닥칠 것을 알고 있는 이들이 어떤 대처를 보여주는가를 담는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국가부도 사태라는 쓰나미 앞에 선 인간군상들.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인 한시현(김혜수)은 이 심각한 재난을 일찌감치 알아채고 윗선에 보고하고 그 보고는 경제수석을 거쳐 청와대까지 올라가지만 어쩐지 대처방식은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재정국 차관(조우진)은 노골적으로 이 재난을 정부가 나선다고 막을 수 없다고 말하며, 국민들에게 알리지 말 것을 요구한다. 혼돈만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참에 우리네 경제가 완전히 뒤집어져 이른바 체질 개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정국과 맞물리면서 결국 이 국가부도라는 초유의 재난상황은 알려지지 않고 피해자들은 속출한다. 이 영화가 재난영화처럼 보인다는 건, IMF 구제금융이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이전부터 사업 실패와 생계 문제로 비관한 이들의 자살이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런 재난에 직격탄을 맞는 작은 사업주를 대표하는 인물로 갑수(허준호)는 백화점에 물건을 공급하는 수주를 약속어음 하나 달랑 받고 계약서에 사인을 함으로써 위기상황에 몰린다. 집까지 내놓고 버텨내려 하지만 결국 버티다 못해 어음을 돌려버리자 협력업체 사장은 자살을 해버린다. 

반면 이 재난 상황을 미리 읽어내고 기회로 삼으려는 이들이 등장한다. 종금에서 일하다 위기상황을 감지하고 사표를 던진 윤정학(유아인)은 이후 투자자를 모아 달러를 매입하고 달러가가 치솟자 다시 부동산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역투자를 해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똑같은 재난상황이지만 이 재난을 알려 국민의 피해를 줄이려는 자가 있고, 아무 것도 모른 채 사업을 벌여 죽을 만큼 힘든 현실에 맞닥뜨리는 이들이 있다. 또 이 재난을 역이용해 부를 축적하고 신분까지 상승시키려는 이가 등장한다. 물론 IMF라는 국제구제금융을 내세워 한국 시장을 열고 쓰러지는 기업들을 싼 가격에 먹어치우려는 미국과, 이 와중에도 정치와 권력을 먼저 생각하고 이를 위해 재벌기업들만 살리는 것으로 일종의 커넥션을 만들려는 우리네 상황도 그려진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시원한 사이다를 보여주진 않는다. 시종일관 벌어지는 고구마 상황들이 연속적으로 벌어지고, 이를 대책 없이 감당해야 하는 무고한 국민들의 희생이 이어진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영화는 깊은 몰입감과 카타르시스를 주며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도 이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그것도 굉장히 힘겨운 재난상황들을 보는 일이) 어째서 의외의 몰입과 카타르시스를 주는 걸까. 

그건 이 영화가 재난영화의 틀을 가져오면서 동시에 ‘폭로’의 성격을 더해놓았기 때문이다. 보라. IMF에 의존해야 하는 초유의 국가부도의 사태를 벌인 것이나, 그 사실을 은폐해 엄청난 피해자를 만든 건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 저들이 한 일들이다. 우리는 심지어 그것이 우리의 분수를 넘는 소비나 해외여행 때문이라 생각하며 ‘금 모으기’에 그토록 노력하지 않았던가. 

재난의 폭로는 ‘저들의 잘못’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우리를 시원하게 한다. 그리고 또한 이런 재난 사태가 또 벌어지지 않기 위해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교육적인 가치 또한 담고 있다. 재난을 마주했던 한시현이나 윤정학, 갑수는 당시에는 서로 다른 길 위에 서 있었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믿지 않는다”는 것.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이런 재난 상황이 또 다시 벌어지지 않는 길이라는 걸 이 영화는 말하고 있다.(사진:영화'국가부도의 날')

<개콘>의 도약, 웃음과 의미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최근 KBS <개그콘서트>의 새로운 코너들이 주목된다. 지난 94일 새롭게 등장한 세젤예와 이어서 지난 18일 새로 시작한 나가거든이 그 주목되는 코너들이다.

 

'나가거든(사진출처:KBS)'

세젤예세상에서 제일 예민한 사람들을 내세워 밀도 높은 웃음을 만들었다. 이 코너의 특징은 유민상이 하는 이야기마다 사사건건 예민하게 반응하는 손님들을 내세워 쉴 새 없이 웃음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손님으로 등장하는 네 사람은 각각 특정하게 예민한 상황들을 갖고 이 가게를 찾는다. 그 상황들은 각양각색이다. 여자 친구와 헤어졌거나 시골출신이거나 취직시험에 연달아 떨어진 상황들도 있고, 여러 차례 성형을 했거나 핵존심이거나 뚱뚱하다는 것 때문에 예민한 상황들도 있으며, 외국인처럼 생겼거나 거지 차림을 해 오해를 받는 상황들도 있다. 이런 상황들이 서로 겹쳐지며 딴 이야기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들을 통해 주인인 유민상을 몰아세우는 과정은 큰 웃음을 연달아 터트린다.

 

하지만 이 코너는 단지 웃음을 위한 웃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예민한 사람들이 저마다 갖고 오는 상황들은 사실상 우리네 현실의 풍경들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시골 출신이면 받기 마련인 소외감도 있고, 취업문제도 있으며, 성형공화국과 다이어트에 민감한 우리네 세태도 깔려 있다. 그러니 웃음 뒤에 남는 현실적 공감대가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새로 등장한 나가거든은 영화 <터널><개그콘서트> 식으로 제대로 패러디함으로써 웃음에 풍자를 더했다. 재난상황에 빠진 홍현호가 전화를 걸어 구조요청을 하려 하는데 그의 위급한 상황과는 딴판으로 여유를 부리는 바깥세상의 사람들과 대비를 통해 웃음을 유발한다. 특유의 황당하고 억울한 표정 연기가 압권인 홍현호가 그 중심점을 잘 잡고 있고, 판넬로 가려져 그가 통화하는 다양한 인물들이 한 명씩 등장하는 구성도 괜찮다.

 

특히 재난 상황에 관련부처에 전화를 걸지만 시설과와 산림과가 저마다 그게 자신들의 소관이 아니라며 외면하는 상황은 톡 쏘는 현실 풍자를 담아냈다. 본래 <터널>이라는 영화가 건드린 부분이기는 하지만 역시 이를 취재하려는 언론의 선정성 또한 나가거든이 보여주는 풍자적인 웃음의 핵심적인 소재로 등장했다.

 

<개그콘서트>가 과거와 비교해 위기상황에 몰리게 된 건 웃음과 의미 사이에 균형을 잘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개그 코너는 웃음이 빵빵 터져야 그 개그로서의 존재 가치를 입증하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와 맥락을 갖지 못할 때는 그저 휘발되어 버리는 속성이 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의미와 맥락만을 찾다가 정작 웃음을 잃어버리면 그건 개그 코너라고 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니 이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는가가 관건이 되는 것.

 

적어도 최근 새롭게 등장한 두 코너, ‘세젤예나가거든은 이 두 마리 토끼 사이에서 균형이 잘 잡힌 개그 코너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물론 지금도 <개그콘서트>의 코너들은 전체적으로 보면 이 균형이 깨진 것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세젤예나가거든같은 신규 코너들이 조금씩 자리를 채우기 시작한다면 <개그콘서트>의 새로운 도약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 여겨진다

연상호 감독의 <서울역>, <부산행>보다 더 독하다

 

<부산행>에서 시작해 <터널>로 이어지고 <서울역>으로 마침표를 찍는 것만 같다. 올 여름 영화 시장을 뜨겁게 달군 키워드는 다름 아닌 재난이다.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이 좀비 영화로서 천만 관객을 돌파한 건 기적 같은 일이지만, 세월호 참사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우리네 현실을 떠올려보면 왜 이런 신드롬이 일어났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좀비만도 못한 우리네 현실에 대한 서민들의 공감이다.

 

사진출처:애니메이션<서울역>

그런 관점에서 보면 <서울역><부산행>의 프리퀄의 성격을 갖지만 훨씬 더 독한 현실 비판을 바탕에 깔고 있다. 아마도 애니메이션이라는 본래 연상호 감독 자신의 영역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현실의 디스토피아를 가감 없이 그 밑바닥까지 보여주는 연상호 감독은 이번 <서울역>에서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곳의 현실이 어떤 지옥을 만들고 있는가를 여실 없이 드러내주었다.

 

서울역의 한 켠을 채우고 있는 노숙자 중 한 사람이 좀비의 시작점이라는 건 이 애니메이션이 하려는 이야기를 압축한다. 그들은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들이다. <부산행>은 막연하게나마 부산이라는 목적지가 제시되지만(물론 그게 해결점은 아니겠지만) <서울역>은 애초에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 섬뜩하다. 그들은 좀비들이 출몰하는 서울역 주변을 도망 다니며 헤매다 좀비가 되거나 죽음을 맞이할 뿐이다.

 

집 나온 소녀 혜선은 남자친구인 기웅과 동거하며 근근이 살아가기 위해 몸을 팔기도 하는 그런 처지에 놓인 주인공이다. 어느 날 기웅이 인터넷에 하룻밤 파트너를 찾는다며 혜선의 사진을 올리고 그걸 본 아빠 석규가 좀비들이 득시글대는 서울역 근처에서 그녀를 찾아다니는 게 이 애니메이션의 줄거리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의 줄거리보다 더 흥미로운 건 좀비들이 출몰하는 상황들 속에서 펼쳐지는 우리네 현실을 아프게도 드러내는 장면들이다. 좀비들에 쫓겨 서울역 근처를 탈출하려 하지만 이미 전경들에 의해 봉쇄되어 시위대 취급을 받게 된 생존자들 속에서 갑자기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은 한 사내가 나서는 장면이 그렇다. “난 나라를 위해 일한 애국자야. 아마도 빨갱이 놈들이 저지른 짓 같은데 난 너희들 같은 쓰레기들과 같이 죽을 그런 사람이 아니야.” 이렇게 외치는 사내의 모습은 어디선가 본 듯해 섬뜩하게 다가온다.

 

가까스로 도망쳐 나와 지하철 철로를 걸어가던 혜선이 같이 탈출한 노숙자에게 아빠가 절 찾고 있어요. 집에 가고 싶어요.”라고 울며 말하자 그 노숙자가 난 갈 집이 없어.”라고 울먹이는 장면이나, 마지막 시퀀스에 혜선이 종착점처럼 당도한 곳이 으리으리하게 꾸며진 모델하우스라는 것도 연상호 감독의 날카로운 현실 인식을 드러낸다. 돌아갈 집이 없는 그들에게 모델하우스는 진짜 집이 아니지만 너무나 환상적인 공간처럼 다가온다. 물론 그곳은 결코 그들의 집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이 애니메이션의 결말이지만.

 

<서울역>은 그래서 비극적인 우리네 삶의 밑바닥을 그려내고 거기서 현실의 비정함을 끝까지 담아내는 결코 해피엔딩 따위를 기대하게 만들 수 없는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구마만 만 개 먹는 것 같은 무거움만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우리네 삶이 좀비만도 못하다는 걸 고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외의 통쾌함을 주는 면이 있다. <부산행>보다 더 독하고 끔찍한 상황이 펼쳐지지만 우리네 답답한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갖고 있다면 충분히 흥미로워질 수 있는 작품, 바로 <서울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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