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게 스캔들이 되는 볼썽사나운 사교육 현실(‘일타스캔들’)

일타 스캔들

“설마, 따로 봐준다고? 남해이를 최치열이?” 결국 일타강사 최치열(정경호)이 남행선(전도연)의 딸 남해이(노윤서)의 ‘비밀과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켰다. 조수희(김선영)의 딸 방수아(강나언)가 남해이의 가방에서 나온 최치열의 교재를 의심했고, 거기 적힌 빨간 펜 글씨들이 최치열의 글씨라는 걸 확인하게 되면서다. 조수희는 도저히 이 일을 납득할 수 없다는 얼굴로 결국 흥신소 사람까지 써서 최치열을 미행 추적하게 한다. 

 

tvN 토일드라마 <일타스캔들>은 달달하고 빵빵 터지는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의 색깔이 강하지만, 이 드라마 뒤편에는 사교육을 둘러싼 볼썽사나운 사교육 현실이 깔려 있다. 일타강사가 7명만을 뽑아 가르치는 특별반을 운영하는 것도 그렇지만, 거기 들어가기 위해 난리를 치는 학부모들의 치맛바람이 도를 넘는다. 시험을 봐서 합격한 남해이를 이런 저런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서 내쫓더니, 그 자리에 떡 하니 부유층 자제가 낙하산처럼 내려앉는다. 

 

게다가 아이들을 대하는 학부모들은 정상이 아니다. 누가 부모이고 누가 아이인지 뒤바뀐 듯한 선재(이채민)네 집을 보면, 그의 엄마 장서진(장영남)은 술에 취해 아들에게 너 밖에 없다며 너마저 잘못되면 엄마는 진짜 죽는다고까지 말한다. 여기서 잘못된다는 건, 진짜 무슨 죄를 짓거나 하는 그런 일을 한다는 뜻이 아니다.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게 되는 것. 그것이 이 엄마에게는 잘못된 일이다. 

 

장서진이 “너마저 잘못되면”이라고 말하는 건 이미 그의 형이 부모의 엄청난 압력 때문에 엇나가버렸기 때문이다. 그 압력을 못 버텨낸 선재의 형 희재(김태정)는 입시 당일 시험을 치르지 않고 대신 방으로 숨어버린다. 은둔형 외톨이가 된 것. 이 사실을 대외적으로 알리지 못한 부모들은 그가 미국 아이비리그에서 공부한다고 거짓말을 하지만, 실상 그는 밤이면 슬쩍 집을 나와 의심스런 행동들을 한다. 그는 잘못되었다. 엄마가 ‘잘못됐다’고 하는 순간 진짜로. 

 

조수희의 딸 방수아 역시 ‘잘못되는 중’이다. 그는 상당히 자발적으로 이 입시 경쟁 속에서 그 누구도 자신을 앞서면 안 된다는 강박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이고 나아가 그의 엄마 조수희도 그의 눈치를 살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그 자발성이란 부모의 내 자식만 생각하는 그 태도가 당연한 듯 수용되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제대로 된 부모라면 자식이 그처럼 지나친 경쟁의식을 갖는다면 이를 풀어줘야 하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이 이상한 엄마는 특별반 7인 중 한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져도 오로지 ‘내 새끼’만을 생각한다. “난 이럴수록 휴강은 아니라고 봐. 어차피 애들도 다 알 텐데 얼마나 놀랍고 무섭겠어요? 근데 수업까지 안해? 그럼 우리 애들 멘탈 더 흔들려요.” 같이 공부하던 친구가 죽어도 내 아이의 멘탈이 더 중요하다는 이런 생각은 그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상상해보면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이 드라마 속에서 ‘열혈맘’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엄마들은 사실 한 발만 물러나서 생각해보면 이상하기 그지없다. 우리는 이미 그 현실 속에 들어와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엄마들을 ‘돼지 엄마’니 ‘강남 엄마’니 하며 그러려니 보고 있지만, 만일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외국에서 이를 접하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학원 선생이 이른바 ‘일타강사’로 불리며 연봉 수백억을 받는 스타가 되는 현실이나, 단 7명만 모아서 특별반을 운영하는 학원이나 거기서 자료가 유출되는 것조차 마치 범죄나 되는 듯이 생각하며, 나아가 그 일타강사가 누군가의 과외를 하는 일에 이른바 ‘열혈맘’들이 나서서 분개하는 일은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별 이상할 것도 없는 일상이지만, 우리 바깥에서 보면 너무나 이상한 일처럼 보일 게다. 

 

<일타스캔들>은 일타강사가 반찬가게 딸의 수학을 과외 하는 일이 ‘스캔들’이 되는 우리 사회의 이상한 풍경을 밑그림으로 삼아 그려낸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너무나 장르를 잘 이해하고 잘 만들어 설렘과 웃음이 시종일관 멈추지 않는 이 웰메이드 드라마는 그래서 그 사랑이야기에서 사회적 메시지를 찾게 한다. 결국 이 이상하게 치열한 경쟁의 피 냄새와 음습한 돈 냄새가 진동하는 세상 위에 설렘과 따뜻한 인간애가 느껴지는 ‘밥 냄새’를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를 통해 대결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진:tvN)

‘일타스캔들’, 달콤 코믹한 로맨틱 코미디에 얹어진 묵직한 주제의식

일타 스캔들

“뭐 하나만 질문 드려도 돼요? 쌤 말씀대로 쌤이 저 30분만 봐주셔도 5천만 원인 셈인데, 그런데 저 왜 봐주시는 거예요? 저희 엄마 도시락은 만원도 채 안되는데.” tvN 토일드라마 <일타 스캔들>에서 남행선(전도연)의 딸 남해이(노윤서)는 일타강사 최치열(정경호)이 자신에게 굳이 1대1 과외를 해주는 이유를 묻는다. 이른바 ‘1조원의 남자’로 불리는 최치열이 남해이의 과외를 해주며 얻는 건 남행선이 챙겨주는 만원도 채 안되는 도시락이 전부다. 그러니 궁금할 수밖에.

 

하지만 최치열이 무심한 듯 툭 던지는 답변은 의외로 큰 울림이 있다. “계산 빠르네. 금방 늘겠어. 아, 가격과 가치는 다른 거잖아. 나는 그 도시락에 그만큼의 가치를 부여한 거고. 너도 내 시간을 그렇게 만들어 주길 바라. 나는 무조건 최선 다할 테니까 너는 5천만 원 이상의 결과를 끌어내 보라고.” 가격과 가치. 일타 수학강사다운 답변이지만, 거기에는 <일타스캔들>이라는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하고 있는 작품이 갖고 있는 진심이 어른거린다. 

 

그건 모든 게 가격으로 환산되고 그래서 비싼 만큼 가치가 있을 거라 착각되는 세상이지만, 실제 가치란 가격만으로는 매겨질 수 없는 어떤 것이라는 메시지다. 1조원의 경제적 가치를 움직이는 최치열이지만, 그에게 더 큰 가치는 밥 한 끼 제대로 먹는 것과 수면제 없이 푹 잘 수 있는 일이다. 일에 치여 살면서 그는 밥 한 끼를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못자는 섭식장애와 수면장애를 갖고 있다. 

 

물론 거기에는 아직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은 과거사가 내면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자신이 가르치던 한 학생의 죽음이 그것이다. 그는 학원을 홍보하는 광고 속 인물처럼 말끔해 보이고, 어떻게든 그 수업을 듣기 위해 줄을 서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추앙받는 스타지만, 그러한 화려함은 껍데기일 뿐이다. 그래서 그가 진짜 자신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우연히 먹게 된 남행선의 도시락을 먹을 때다. 

 

그런데 도대체 남행선의 도시락에 무엇이 들었길래 1조원의 남자 최치열이 이러한 가치를 부여한 걸까. 최치열은 아직 눈치 채지 못하고 있지만, 남행선의 음식은 사실 최치열이 젊은 시절 혼자 임용고시 준비를 할 때 매일 대놓고 먹었던 식당의 그 맛을 갖고 있다. 그 식당 사장이 다름 아닌 남행선의 엄마였기 때문이다. 엄마는 사고로 사망하고 언니가 맡긴 조카를 책임지기 위해 남행선은 핸드볼 선수의 길을 접고 이 반찬가게를 연다. 그 맛이 그대로 이어졌고, 최치열은 바로 그 시절의 맛을 부지불식간에 떠올리며 그 음식을 찾게 된 것. 그러니 그 가치는 최치열 말대로 가격으로는 환산될 수 없는 것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남행선이 떠맡게 된 반찬가게를 그저 월 매출 얼마로 가치를 판단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는 도망간 언니 대신 떠맡게 된 조카를 반찬가게를 운영하며 딸로서 키워왔다. 또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동생 또한 부양해왔다. 자기 인생은 저 뒤편으로 밀어버리고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살아온 남행선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난 반찬가게를 어찌 돈 몇 푼의 가격으로 그 가치를 매길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일타스캔들>이 왜 그토록 서민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길가 어디서든 발견하는 작은 가게 하나를 그저 월매출 얼마 정도의 가격으로 결코 가치매길 수 없다고 말하는 작가의 진심이 거기에는 녹아 있다. 

 

여기서 발견되는 건 이러한 작품의 진심을 연기를 통해 끌어내고 있는 정경호와 전도연의 가치다. 전도연이야 워낙 연기 베테랑이라는 걸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그는 <일타스캔들>이라는 작품 속에서 혼신을 다하는 모습이다. 어찌 보면 로맨틱 코미디라는 가벼운 작품으로 보일 수도 있을 테지만, 결코 그렇게 가치매겨질 수 없다는 걸 때론 웃기고, 때론 사랑스럽고, 때론 짠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정경호 역시 매 작품마다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배우지만, <일타스캔들>은 그 완숙미가 느껴질 정도로 철저히 준비된 배우의 면면을 보여준다. 등장부터 진짜 일타 강사의 면면을 고스란히 입은 모습을 보여줘 유쾌하지만 어딘가 쓸쓸하고 때론 보듬어주고픈 가녀림까지 최치열이라는 인물 속에 다양한 결을 부여했다. 

 

전도연도 정경호도 강사로 치면 ‘일타강사’쯤 되는 ‘일타 배우들’이라는 건 이제 분명해졌다. 하지만 이들의 연기가 그저 화려함에 머물지 않고 시청자들의 가슴을 건드리고 뭉클하게도 만들어내는 진짜 이유는 그 연기에 ‘진심’의 가치를 담고 있어서다. 가격 같은 속물적인 화려함이 아니라, 작품이 하려는 메시지 같은 진짜 가치를 전하는 모습이 있어 이들의 연기가 빛이 난다. (사진:tvN)

‘일타 스캔들’, 공감 가는 로맨틱 코미디 만든 연출의 비결

일타스캔들

드라마를 보다 보면 때론 주인공만이 아니라 주변 인물 혹은 지나치는 역할조차 연기 공백이 없어 보이는 작품을 만날 때가 있다. 조연들이 ‘미친 존재감’을 보이는 건 이제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거의 단역처럼 보이는 이들조차 진짜 현실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착 달라붙는 연기를 보여줄 때 시청자들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드라마에 보다 깊숙이 빠져들게 된다. 디테일한 밑그림이 그 위에 전개되는 사건들에도 보다 리얼한 생동감을 주기 때문이다. 

 

tvN 토일드라마 <일타 스캔들>은 바로 그런 드라마다. 이 드라마의 중심은 역시 타이틀 롤인 전직 핸드볼 선수였다가 지금은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남행선(전도연)과 자칭 타칭 ‘1조원의 사나이’로 불리는 수학 일타강가 최치열(정경호)이다. 자문 관련한 논란과 잡음들이 생겨났지만, 정경호의 최치열이라는 일타강사 연기는 시청자들을 드라마에 빠져들게 만드는 공감 가는 몰입감을 선사했다. 

 

유명한 일타 강사들이 하는 강의 스타일을 철저히 분석한 듯한 대본도 그렇지만, 특유의 끼가 넘치는 강의 과정들을 디테일하게 보여준 점이 먼저 리얼한 공감을 만들었다. 게다가 정경호는 지나치게 넘치는 프라이드와 더불어 어딘가 빈 구석을 드러내는 인간적인 면을 통해, 본인은 진지하지만 보는 이들은 웃음을 자아내게 만드는 코미디 연기를 더해줬다. <일타 스캔들>이 강남 학원가를 둘러싼 사교육 문제 등을 풍자하는 다소 무거운 메시지를 갖고 있지만, 그 결은 로맨틱 코미디라는 걸 정경호는 첫 회 만에 분명히 보여줬다.

 

여기에 전도연의 연기가 더해졌으니 더할 나위가 없어졌다. 물론 <프라하의 연인>처럼 전도연 역사 로맨틱 코미디 연기에도 일가견이 있는 배우지만 그간 영화에 주력하면서 다소 무거운 연기들을 해왔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반찬 가게를 하며 조카 남해이(노윤서)를 딸처럼 키운 남행선이라는 인물의 억척스럽지만 따뜻하고 그래서 조금씩 만들어지는 최치열과의 달달하고 코믹한 연기가 반갑기 그지없다. 

 

남행선의 딸 같은 조카 남해이 역할의 노윤서는 <우리들의 블루스>로 익숙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똑 부러지는 자기주도형 고등학생 역할을 선보인다. 이모지만 엄마 같은 남행선이 짊어지고 있는 버거운 짐을 그 누구보다 이해하고 그래서 자신은 짐이 되지 않으려는 그 마음이 따뜻하게 다가오는 인물이다. 이제 신인이지만 연달아 괜찮은 존재감을 드러내는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타 스캔들>이 웰메이드라고 여겨지는 대목은 주변 인물 하나하나 허투루 보이지 않는 대목에서다. 남행선의 절친 김영주 역할의 이봉련은 대사 하나하나를 찰떡같은 연기로 표현해 시청자들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유쾌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최치열의 매니저이자 기획자인 지동희 역할의 신재하도 일에 있어서는 적당히 경직된 모습을 보여주지만 마치 형 동생 관계 같은 끈끈함을 잘 표현하고 있고, 저마다 개성이 톡톡 튀는 학부모를 연기하는 장영남, 김선영, 황보라의 찰진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심지어 이 드라마에는 “엄마가 진짜 너무하셨다. 조금만 밀어주면 전교 1등 할 애를 어떻게 이렇게 방치를...” 같은 현실에서 튀어나온 듯한 대사를 치는 학원 실장이나, 이미 학원에서 선행을 해 자신의 수업은 잘 듣지 않는 학생들을 보며 그 현실의 답답함을 드러내는 전종렬(김다흰) 같은 담임선생님은 물론이고 그런 선생님의 현실을 개탄하면서도 “우리도 경각심이 필요하긴 해. 학원강사들만큼 연구 안 하잖아요, 솔직히.”라는 대사를 툭 던지는 다른 선생님까지 빈틈이 없다. 

 

사실 이처럼 주조연은 물론이고 그보다 작은 역할들까지 리얼한 연기가 나올 수 있는 건 배우들의 연기력도 연기력이지만 공감 가는 대사를 채워 넣는 대본과 더불어 그 상황에 대한 디테일을 파고들어 연기지도를 하는 연출자의 공이 절대적이다. 그 하나하나의 공들임이 똑같은 로맨틱 코미디라고 해도 작품의 질감을 달리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일타 스캔들>은 그래서 다소 가볍게 웃고 달달해하며 볼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면서, 그 이면에 깔린 풍자적 요소들까지 공감대로 끌고 갈 수 있는 드라마가 되고 있다. 웰메이드란 이런 데 쓰는 말이다. (사진:tvN)

‘인간실격’, 시청률로 함부로 실격이라 부를 수 없는 드라마

인간실격

“산에요. 산에 갔다가 바다에 갔다가... 음 집에 갔죠.” 한밤중 아무도 없는 기차역에서 철길을 하릴없이 걸으며 마지막으로 타본 기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부정(전도연)이 그 때 “기차를 타고 어딜 갔냐?”고 묻자 강재(류준열)는 그렇게 말한다. 산에 갔다가 바다에 갔다가... 집에 갔다고. 

 

“산에 갔다가 바다에 갔다가...” 라고 강재가 말하곤 잠시 뜸을 들일 때 부정은 살짝 긴장했다. 그 마지막으로 기차를 타본 게 아버지 장례 치르고 화장한 날 엄마와 함께 그 곳에 왔을 때였다는 강재의 말 때문이다. 어딘가 쉽지 않았을 상황이었을 테니 그가 갔다는 산과 바다가 마치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런 길처럼 느껴지진 않았을까 걱정해서다. 하지만 그러고는 “집에 갔다”는 강재의 말에 안심한다.  

 

부정이 강재의 말을 들으며 걱정하고 안도하는 건, 그것이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에도 죽은 정우(나현우)의 사연이 있는 그 작은 기차역이 있는 마을 저수지를 찾은 적이 있었다. 아마도 절망적이었을 것이고 죽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을 게다. 그래서 누군가의 죽음이 주는 허함과 절망감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도 같은 감정을 가졌지만 그 때 저수지를 찾았던 걸 지금은 후회한다고 했다. 강재가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에 부정이 똑같은 안도감을 느낀 이유다. 

 

JTBC 토일드라마 <인간실격>이 그린 어느 저수지와 작은 기차역이 있는 마을에서 강재와 부정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천문대에 오르고 어쩌다 한 텐트 안에서 같이 밤을 지새게 되는 에피소드는 이 드라마가 담아내려는 위로의 메시지를 잘 보여준다. 아픈 아들을 위해 호스트 일을 하며 번 돈으로 비싼 병원비를 충당해오다 결국 아들이 저세상으로 떠나고 절망감에 저수지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정우. 정우와 저수지는 그래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격을 상실한 듯한 절망을 은유하는 인간과 공간으로 그려진다. 

 

정우의 죽음은 아마도 부정과 정우가 자신의 실존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계기가 됐을 터다. 정신없이 살아내기 위해 살았지만 알 수 없는 ‘허한 마음’. 정우는 ‘역할 대행’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그래서 자신의 존재는 지워진 채 살아가고 있었고, 부정은 아란(박지영)의 책을 대필한 후 그와 갈등을 일으키고 결국 출판사에서도 쫓겨났다. 무언가를 위해 열심히 숨을 쉬며 살아가곤 있지만 자신이 마치 투명인간이 된 것처럼 존재가 지워져 있다는 걸 알게 되곤 느끼게 되는 허한 마음. 

 

그래서 부정과 강재는 그 정우가 풍덩 뛰어들었던 저수지를 통해 다시 만난다. 우연히 저수지 근처를 지나다 부정은 그 곳에 마음이 이끌렸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것 같은 모습에 누군가 신고해 파출소에 가게 됐다. 하지만 그 곳에서도 자신을 데리고 가줄 보호자 한 명을 찾기 힘든 부정이었다. 그래서 별 기대 없이 강재에게 ‘보호자 역할 대행’을 요청했고, 놀랍게도 그 먼 길을 강재가 달려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절망의 공간에서 <인간실격>은 부정과 강재를 통해 서로에게 손을 내미는 위로를 건넨다. 아무 것도 아닌 관계처럼 보였고, 마치 돈을 주면 역할을 대행하는 그런 관계처럼 보였던 두 사람은 서로가 겪었던 ‘죽음’에 대한 이야기에서 ‘삶’의 의지를 다시금 끄집어낸다. 과거 아버지를 화장된 날 어머니와 무작정 기차를 타고 가다 우연히 가게 된 그 길을 이야기해준 강재는 부정에게 문득 이렇게 묻는다. “어디 집 말고 가보고 싶은데 있어요?” 모르겠다는 부정의 말에 강재는 이렇게 말한다. “그럼 산에 갔다가 바다 갔다가 그리고 집으로 갈까요?”

 

그 말은 절망하기도 하고 허한 마음을 갖기도 하는 삶 속에서 우리는 그 마음을 채우기 위해 산에도 가고 바다도 가지만 그럼에도 결국 집으로 간다는 위로가 섞인 제안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천문대를 향한다. 강재는 엄마와 함께 오르던 그 길을 부정과 함께 걸으며 그 때 엄마가 천문대에서 하늘 가득 채워진 별을 올려다보며 한참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그 때 어린 강재는 왜 엄마가 울었는지 진짜 몰랐을 터다. 하지만 버스에 두고 온 크림빵과 우유가 아까워서 울었다고 둘러댔다는 엄마의 말을 부정에게 해주는 강재는 이제 어렴풋이 그 눈물의 의미를 알고 있지 않았을까. 

 

하늘 가득 반짝 반짝 빛나는 별들을 올려다보며, 엄마는 거대한 우주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가녀린 존재인가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너무 거대한 세상 속에서 먼지처럼 보이지도 않을 인간들이 살아간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먼지들이 마치 저 우주의 별들처럼 반짝인다. 그것이 너무 작고 소소하고 가녀려서 갖게 되는 아름다운 슬픔. 엄마는 그걸 느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부정과 강재도 그 엄마가 걸었던 그 길을 걸으며 같은 걸 느끼고 있었을 지도. 

 

도대체 무엇이 저마다 반짝반짝 빛나는 소중한 존재들인 인간을 이토록 ‘자격 운운’하며 실격 처리하는 것일까. 어째서 돈과 지위와 성공의 기준으로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고, 저수지 밑바닥으로 가라앉게 만드는 것일까. <인간실격>은 그런 무례한 세상을 에둘러 일갈한다. 작디작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고 위대해 보이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위로’의 말과 손길을 내미는 것으로.

 

안타깝게도 <인간실격>은 시청률이 낮다. 그건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져서가 아니라 지금의 드라마 시청이 지나치게 당장의 사이다 같은 자극적인 지점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물론 답답한 현실에 사이다 한 잔 같은 작품들이 의미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인간실격>처럼 묵직한 밥 같은 무게감을 가진 작품을 낮은 시청률로 섣불리 ‘실격’이라 부를 순 없을 게다. 최근 들어 이만큼 진지하게 가슴을 건드리는 드라마를 본 적이 없으니.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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