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캠프>는 대선캠프가 아니다

 

안철수 원장의 <힐링캠프> 출연을 두고 여야 대선주자들이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거다. 하긴 긴장할만하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이 <힐링캠프>에 출연한 후 8%대였던 지지율이 두 배 가까이 올랐던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조동원 홍보기획본부장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힐링캠프 출연은 국민적 지지도에 있어서 우월적 지위를 갖고 있는 안 원장에게 차별적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안 원장의 방송은 형평성 측면에서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힐링캠프'(사진출처:SBS)

새누리당 대선 경선후보인 김문수 경기지사와 민주통합당 손학규 후보가 <힐링캠프> 출연을 타진했다가 거절당했던 사실은 형평성 논란에 불을 지폈다. 조 본부장은 "안 원장이 범야권에 속해 있으니 야권에서 2명이 나왔다면 여권에서도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을 포함해 2명이 나가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쯤 되면 <힐링캠프>는 마치 대선캠프가 된 모양새다. 도대체 이 10% 시청률을 내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의 그 무엇이 이토록 정치권을 들썩이게 만드는 걸까. <힐링캠프>가 그런 정치적인 상징성이라도 갖고 있는 프로그램일까. 언제부터 <힐링캠프>의 영향력이 이토록 커진 걸까.

 

<힐링캠프>가 새누리당 박근혜 의원과 민주통합당 문재인 의원을 섭외했을 때 그 목적은 정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저 새로운 게스트 풀을 발굴하는 차원이 더 큰 목적이었다. 예능이 웃음만을 주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예능은 재미와 함께 의미와 감동도 찾는 시대가 아닌가. 토크쇼라고 늘 연예인만 나오라는 법은 없어졌다. 그래도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두 사람 중 만일 한 사람이 출연하지 않는다면 둘 다 출연시키지 않겠다는 게 방침이었다고 하니, 정치인 게스트를 출연시키는 문제가 얼마나 쉽지 않은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방송이 나온 후, 두 사람에 대한 반응이 너무 좋았던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간 정치인하면 으레 생각했던 모습을 탈피해, 그저 평범하고 소탈한 모습을 보여주자 국민적 지지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인들의 예능 출연에 대한 문의가 방송가에 점점 많아졌다. 실제로 <SNL코리아>에는 이재오 의원과 정세균 의원이 출연해 콩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런 사정이니 안철수 원장의 <힐링캠프> 출연은 대선주자들에게는 공평하지 않다고 여겨졌을 만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대선출마를 발표하지 않은 안철수 원장을 같은 선상에서 보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게다가 안철수 원장은 이전에도 자주 방송 출연을 해왔던 터다. 그런 그가 방송에 나온다는 것이 왜 새삼스러울까. 안철수 원장은 이미 <무릎팍 도사>에도 출연한 경력이 있다.

 

이것은 <힐링캠프>라는 예능 프로그램 때문이라기보다는 지금 시기가 대선을 앞두고 있어서 그만큼 민감해진 문제다. 게다가 안철수 원장의 행보가 기존 정치인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 애매한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힐링캠프>는 예능이지 대선 방송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치인들이 모두 <힐링캠프> 같은 예능에 출연한다고 해서 지지도가 올라갈 거라는 것은 착각이라는 점이다. 물론 유리한 지점은 있겠지만, 아마도 박근혜 의원이나 문재인 의원이 효과를 본 것은 그들이 방송 출연 이전부터 갖고 있던 대중 친화적 이미지(이것은 물론 이미지일 뿐이지만)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방송에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는 연예인들도 미끄러지기도 하는 곳이 예능이라는 정글 아닌가.

 

다만 씁쓸한 것은 그간 대중친화적인 삶을 잘 보이지 않던 정치인들이 대선이 가까이 오면서 너도 나도 예능에 줄을 대는 모습이다. 예능은 서민들의 여가라는 점에서 그들에게는 표밭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그렇게 예능에 나와 친 서민적인 모습을 연출한다고 해도 거기에 진심이 묻어나지 않으면(이것은 평상시의 생활에서 묻어나기 마련이다) 대중들은 외면할 것이다. 대중들을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생각하지 말자.

김구라 하차는 이의 없지만, 그 후는?

 

정신대 발언은 확실히 심했다. 10여 년 전 그것도 인터넷 방송에서 아마도 정신없이 내뱉은 말 중의 하나일 테지만, 그래도 지나쳤다는 건 분명하다. 따라서 김구라의 잠정은퇴 선언은 당연하고 또 적절한 행동으로 보인다. 다소 거친 직설어법에도 불구하고 김구라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 안에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여 년 전의 그 말 한 마디는 이 모든 공감대를 한 순간에 무너뜨리기에 충분하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김구라는 방송을 할 수 있는 근거를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방송을 한다 한들 공감을 잃어버린 말들은 대중들에게 다가가지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대중들에게 있어 김구라가 과거에 인터넷방송을 통해 얼마나 심한 독설을 날렸던가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김구라는 지상파 방송에 출연하면서 끊임없이 과거에 자신이 상처 주었던 연예인들에게 사과를 했다. '절친노트'는 사실상 이것을 프로그램화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김구라는 이 방송을 통해 문희준과의 관계를 회복했고, 절친이 되어 이제는 같이 방송을 챙기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정신대 발언은 김구라가 연예인들에게 날린 독설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것이다. 그저 사과를 통해 화해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니 방송을 당분간 접고 자숙의 시간을 갖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왜 유독 김구라에게만(정확히 말하면 연예인들에게만) 이렇게 엄밀한 잣대가 적용되어야 하는가는 의문이다. 김구라처럼 과거의 발언이 문제라면, 꽤 많은 현업의 정치인들도 여기에 해당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왜 그들은 여전히 그 자리를 고수하고 있을까.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김구라가 4.11 선거의 정치적인 희생양처럼 보이고, 나아가 이를 계기로 문화 전반에 보수적인 재갈을 물리려는 것처럼 보이는 건 그 때문일 게다.

 

김구라가 한 과거 발언의 수위는 도를 넘은 것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지상파에 와서 그가 만들어낸 방송 프로그램의 화법 자체를 폄하하긴 어렵다. 토크쇼에서 호스트와 게스트가 저들끼리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말만 골라 하던 방식에, 시청자(관객)가 듣고 싶은 말과 질문을 끼워 넣은 게 김구라식의 화법이었다. 물론 이 화법은 초반에 너무 거칠었던 게 사실이다. 시청자들이 불편함을 느꼈던 것은 어찌 보면 그간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저들의 이야기만을 듣고 있는 것에 우리가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인 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들끼리 홍보를 위해 주고받는 말들에 점점 식상함을 느끼게 되면서(왜 수동적으로 저들 하고 싶은 대로 굴러가게 놔두는가) 김구라식의 화법에 공감을 갖게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김구라가 한 과거의 발언은 이미 주워 담을 수 없는 치명적인 독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왔다. 그는 스스로 말한 것처럼 여기에 대해 명백히 책임을 지고 넘어가야 한다. 따라서 김구라가 하차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김구라 하차로 인해 그 여파를 몰아 자칫 방송 전체가 위축되는 것은 큰 문제일 수 있다. 이것은 어쩌면 과거 하던 보수적인 방식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물론 막말을 하는 건 문제지만, 그렇다고 모든 말에 자기 검열을 거치는 것도 문제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이제 갓 벗어나서 트여진 말문이 다시 막힐 수 있다. 방송의 화법은 그저 웃고 떠드는 것 같지만,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그걸 바라보는 우리 자신을 통제하기도 한다. 김구라의 하차는 당연하지만, 그 여파가 우려되는 건 이 때문이다.


정치인의 예능출연 왜 많아질까

'힐링캠프'(사진출처:SBS)

작년 '나는 꼼수다'가 보여준 건, 정치와 대중문화가 엮어졌을 때 어떤 파괴력이 생기는가 하는 점이다. 정치인과 언론인이 출연했지만 '나는 꼼수다'는 전형적인 대중문화의 형식과 틀을 유지했다. 이 재미의 차원이 갖는 힘은 정치가 늘상 드리우고 있던 무거운 엉덩이를 걷어 차버렸다. 중요한 것은 (이미 식상해진) 내용이 아니라 그 태도와 형식이었다.

정치의 전선이 새롭게 꾸며졌다. 과거 보수와 혁신으로 나뉘던 정당 중심의 정치 전선은 극도의 혐오를 일으키는 정치꾼들의 집단과 정치 바깥에 서 있으나 대중들에게 깊은 소통과 공감을 주는 인물들로 나뉘어졌다. 이른바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안철수 교수 같은 비정치인이면서 동시에 시민운동가들이 주목받은 건 그 때문이다. 이들이 친 대중문화적인 위치에 서 있었다는 건 기성정치인들이 그동안 소홀해온 대중과의 소통이라는 '발등의 불'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 '힐링캠프'라는 예능 토크쇼에 나온 건 이런 의미다. 또 이 프로그램의 다음 출연자로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출연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방송의 생리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은 작년 지속적인 논란을 일으켰던 강용석 의원이 아닐까 싶다. 그는 케이블 채널 tvN '화성인 바이러스'에 고소고발 집착남으로 출연했다. 내용이 선정적이고 논란의 소지도 많지만 어쨌든 그는 방송에 고개를 내밀고 자신을 희화화하는 것 또한 허용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다시 말하지만 중요한 건 내용이 아니라 태도와 형식이다. 그래서 그들은 '100분토론'이 아니라 '힐링캠프'에 출연하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도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했던 정치인들의 예능 출연은 종종 있었다. 주로 '일밤'이나 '느낌표' 같은 공익형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홍준표 의원이나 노회찬 의원 같은 정치인들을 가끔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힐링캠프'는 이들 공익형 예능과는 확실히 다르다. 또 박근혜 위원장,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가진 무게감도 다르다. 이들은 차기 여권과 야권의 대선주자로 지목되는 인물들이 아닌가. 그래서 이들의 연초의 예능 행보는 예사롭게 여겨진다.

이들이 예능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과거처럼 어떤 지도자적인 사회적 지침 같은 것이 아니다. 박근혜 위원장이 '힐링캠프'에 출연해 처음으로 한 말은 '공식적인 인사'가 아니라, "재미없으면 어떡하나"하는 걱정이었다. 즉 박근혜 위원장의 출연 목적은 무엇을 가르치거나 무언가를 알려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프로그램의 목적에 걸 맞는 재미를 주기 위함이었다는 거다. 실제로 박 위원장은 "새우와 고래가 누가 세냐"며 "새우는 깡이 있고 고래는 밥이다"라는 준비해온 농담으로 웃음을 주기도 했다. 이처럼 의미보다는 재미를 먼저 던져줌으로써 대중들과 같은 눈높이를 가지려는 모습이 도드라졌다.

이것은 현재의 정치인들의 예능 출연의 목적이 자신들의 정치적인 입장 표명이나 지지를 호소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대중들과의 '소통과 공감'을 목적으로 한다는 걸 말해준다. 이제 대중들은 높은 위치에서 가르치려하는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거꾸로 대중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똑같은 목소리로 말해주는 이를 심정적으로 지지한다. 그리고 이것은 작금의 달라진 정치 전선에서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보수 혁신으로 가름하던 정당의 경계가 희미해진 요즘, 다양한 공감할 사안들을 갖고 있는 것은 정치인으로서의 생명력과 같은 말이다.

한편 정치인들의 이러한 대중들과의 소통에 대한 욕구가 생겨난 한편, 대중문화 역시 작년 말부터 지금껏 잘 다루지 않았던 시사, 정치 소재가 블루오션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개그콘서트'의 최효종을 중심으로 시사풍자 개그가 주목을 끌었고, tvN의 'SNL코리아'는 정치 사안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풍자를 다루기도 했다. 이러한 방송 트렌드는 올해 치러질 총선, 대선과 맞물려 더 거세질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이 어떤 형태든 정치인들의 예능과의 결합은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치인이 그토록 원하는 '소통과 공감'이 방송 출연을 한다고 그저 얻어지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중요한 건 출연해서 어떻게 하느냐다. 소통과 공감이란 일방적으로 자기 생각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들어주는 것일 수도 있고, 아주 중대하고 진지한 거대담론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와 다르지 않은 소소한 일상을 얘기하는 것일 수 있다. 그렇게 다양한 분야와 안건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는 것은 그 어떤 거대담론보다 중요한 일이 된다. 거대한 틀을 바꿈으로써 그 틀에 일상을 꿰맞추던 시대는 갔다. 이제 작은 일상적인 것부터 차근차근 변화해나갈 때 큰 것도 바뀌어질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아닌가.

중요한 건 진정성이다. 방송만큼 지금껏 갖고 있던 완고한 이미지를 깨뜨릴 수 있는 힘을 발휘하는 매체도 없다. 따라서 잘만 적응한다면 방송 출연은 어떤 선거 유세보다 더 강력할 수 있다. 하지만 대중들의 눈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방송에서의 가식적인 모습은 금세 들통 나기 마련이다. 진정성은 그래서 이제 방송인은 물론이고 정치인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이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진정성만이 대중들과의 진짜 소통과 공감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