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 공권력에 맞서는 히어로는 어떻게 가능한가

(본문 중 영화 내용의 누설이 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실 분들은 참고 바랍니다.)

 

거두절미하고 총에 맞아 피 흘리며 쫓기는 여훈(류승룡)으로부터 시작되는 <표적>의 장르적 방점은 물론 액션에 찍혀 있다. 강렬한 인상만으로도 일단 기본 먹고 들어가는 류승룡이라는 배우는 이 영화를 위해 특공무술 특훈을 받아 당장이라도 터질 듯한 몸의 액션을 보여준다. 총에 맞서 맨 몸으로 부딪치는 류승룡표 액션은 화려함보다는 묵직함이 어울리고, 특유의 감정 선이 덧붙여져 타격감에 통쾌함을 더해준다.

 

사진출처: 영화 <표적>

하지만 온전한 액션 영화 한 편을 보는 와중에도 흥미로운 설정들이 눈에 띈다. 그것은 쫓기는 자와 쫓는 자의 역전이다. 거두절미하고 시작하는 추격전 속에서 쫓기는 자들은 자신이 왜 쫓겨야 하는 지조차 모른다. 하지만 희생양이 되어버린 쫓기는 자들이 자신들의 상황을 깨닫게 되면서 여훈의 분노가 터져 나온다. 류승룡의 액션이 폭발하게 되는 건 그 분노가 대중들의 정서를 끌어안기 때문이다.

 

왜 무고한 이가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가. 조폭과 비리경찰은 액션 범죄물에 단골로 등장하는 악역들. 경찰이 비리경찰로 돌변하고 공권력이 주인공을 위협하는 요소로 돌변하는 순간, 류승룡의 액션은 틀에 박힌 추격전 양상을 벗어난다. 이제 이 안티 히어로는 공권력과 맞서 싸우는 인물로 돌변한다.

 

돈만 된다면 제 어머니도 죽일 존재들이라는 이 비리경찰들은 이 영화만의 특별한 장면들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것은 범죄물에서 흔히 생각하는 경찰서라는 안전을 상징하는 듯한 공간이 오히려 살육과 공포의 공간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여훈이 경찰서 하나를 완전히 때려 부수는 장면은 그래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낸다.

 

<추격자> 같은 영화에서 등장하는 무능한 공권력은 이제 어느새 비리로 점철된 폭력적인 공권력으로 그려지고 있다. 때때로 누가 범죄자고 누가 경찰인지 아리송해지는 코미디 같은 설정이 영화 속에 종종 등장하는 건 지금 서민들이 갖고 있는 공권력에 대한 불신을 보여준다. <표적>은 그 서민들을 지켜야할 공권력이 오히려 그들을 표적 삼아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상황을 그려낸다. 쫓기던 류승룡의 반격이 서민들의 분노를 덧붙여 통쾌함을 만드는 이유다.

 

류승룡과 더불어 김성령, 유준상의 기존 이미지를 깨는 반전 연기는 영화의 몰입감을 높여주는 가장 큰 요소다. <7번 방의 선물>에서 당하기만 하던 바보 연기를 했던 류승룡은 이 영화에서 분노의 히어로로 돌변하고, 우아한 이미지를 줄곧 고수해왔던 김성령은 이 영화를 통해 거친 액션의 주인공으로 변신한다. 착하고 선한 이미지의 유준상? 그의 변신은 그 이미지 때문에 더욱 큰 반전효과를 만들어낸다.

 

<표적>은 어찌 보면 너무 단순한 추격 액션 정도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중반에 일어나는 반전 이후 마지막까지 흘러가는 류승룡의 액션은 기막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그것은 영화가 건드리는 현실에 대한 대중정서 덕분이다. 공권력과 맞서는 히어로라니. 그 설정에는 영화 속에서나마 답답한 현실을 풀어내주는 어떤 힘이 존재한다. 특히 요즘 같은 시절에.

<무도>와 유재석의 낮은 눈높이에 대한 의지 

 

이토록 다양한 아이템들과 기획의도가 어떻게 하나로 묶여질 수 있었을까. <무한도전> ‘관상 특집’은 이제는 하나의 역사가 되어가는 <무한도전>의 자신감과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늘 대중의 눈높이 아래에 자신들을 세우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특집이기도 하다. 이 한 편에는 지금껏 <무한도전>이 걸어온 역사가 자연스럽게 묻어있고 그 역사가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가에 대한 비법 또한 들어가 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관상 특집’은 이 놀라운 시도를 통해 <무한도전>이 지금 현재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가를 정확히 보여주었다. 이 세계에는 지금껏 <무한도전>이 해왔던 무수한 아이템들이 한꺼번에 들어와 있다. 관상 전문가를 데려다 놓고 조선시대였다면 누가 양반이고 누가 상놈이며 누가 왕이고 누가 상놈 중의 상놈인 망나니인가를 가려내는 장면은 지금껏 <무한도전>의 확실한 성공아이템으로 자리했던 외모 대결의 진화된 형태다.

 

하지만 ‘관상특집’의 스토리는 여기서 머물지 않는다. 조선시대라는 상황극 속으로 뛰어들더니 지금껏 <무한도전>이 상황극을 통해 현실을 비틀기도 했던 그 풍자정신을 녹여낸다. 왕은 신하의 말을 듣지 않고 향락에만 빠진 폭군이며, 고언을 하는 충신을 말 한 마디로 망나니 신분으로 떨어뜨린다. 떡을 입에서 입으로 옮겨 받는 식의 무모한 도전 시절부터 시도되던 원초적인 게임들이 오가고 게임 결과에 의해 신분이 뒤바뀌면서 권력구도가 재편된다.

 

굳이 <무한도전>이 엄청난 화제와 함께 무수한 말들까지 쏟아냈던 자유로 가요제 이후, 갑자기 ‘관상특집’을 통해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든 것이 우연인지 아니면 의도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든 대단히 시의적절하고 의미심장한 것만은 분명하다. 자유로 가요제가 보여준 <무한도전>의 위상은 누구나 주지하듯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겨난 높아진 위상은 <무한도전>에게는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관상특집’이 다루는 잘못된 권력의 문제나 권력의 무상함에 대한 이야기는 대중들에게 건네는 <무한도전> 방식의 대답이 되기도 한다.

 

상황극이 타임슬립 설정으로 갑자기 현대로 넘어오는 건 <무한도전>의 이제는 어디로 튀어도 이야기가 가능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상황극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었고 과거와 현재를 하나로 묶어냈다. 이 과정에서 권력의 무상함이 자연스럽게 보여진다. 조선시대 폭군이었던 정형돈은 현재에는 지나는 행인과 똑같은 한 사람으로 그저 이상한 사람으로 보여질 뿐이다. 또 조선시대 망나니로 신분이 하락한 유재석은 한 착한 아줌마에게 계란을 얻어먹고 누군가 먹다 남은 잔반으로 배를 채우며 복수를 꿈꾸지만(신분의 복귀) 그건 현대에는 사실 의미 없는 일이다.

 

여전히 계급 제도의 권력의 틀에 묶여 있는 이들이 그래서 대중들 속으로 들어와 거리를 활보하는 건 <무한도전>이 과거 ‘지못미’ 특집 등으로 선보였던 벌칙 미션의 새로운 형태이면서 동시에 신분과 계급 그리고 권력이 가진 우스꽝스러움을 보여주는 놀라운 연출을 보여주었다. 흥미로운 건 한 지나는 직장인에게 신분을 묻자 그가 ‘노비’라고 하면서 ‘주인님’한테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는 점이다. 갑자기 상황극과 현실이 또 조선시대와 현재가 하나로 묶여지는 이 장면은 계급제도는 없지만 자본이 만들어내는 신분과 권력의 문제가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어지는 건 신분을 바꾸기 위한 추격전이다. 조선시대에 궁궐에서 벌어졌던 원초적인 게임들이 과거 <무한도전> 초창기의 게임 형태였다면 현대로 들어온 인물들이 도심에서 벌이는 추격전은 현재 <무한도전>의 진화된 형태의 게임인 셈이다. 그러니 <무한도전> ‘관상특집’은 외모순위 특집이나 상황극, 시민들과 함께 하는 지못미 벌칙에 이어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게임의 진화까지 끌어들이게 되었다. 이 많은 성공 아이템들이 무수히 배치되면서도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 <무한도전> 월드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반증이다.

 

여기서 <무한도전>의 위치를 대변하는 듯 주목되는 인물은 역시 유재석이다. 그는 양반의 위치에서 졸지에 망나니가 되어 현재의 거리로 내던져진다. 이른바 유재석이 가진 막강한 힘은 이미 모두가 주지하는 바이지만, 그의 의지는 대중들보다 항상 낮은 눈높이에 서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길바닥에 누군가 버리고 간 이쑤시개를 아무렇게나 쓰고, 심지어 누군가 남긴 잔반을 먹으며 대중들에게 웃음을 주려 노력한다.

 

대중들을 위해 가장 낮은 곳으로 기꺼이 내려와 진심으로 뒹굴 수 있는 의지. 어쩌면 유재석과 <무한도전>이 가장 높은 곳에서 그 위치를 지킬 수 있는 힘은 바로 여기서 나오는 것일 게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무한도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현재 권력을 가진 이들이 그 권력이 어디서부터 온 것이며 그것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그 힘이 누구를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무도> 추격전을 살린 -300의 위험한 정체

 

지난 주 <무한도전> ‘100 빡빡이의 습격’ 특집의 전반부는 지금껏 무수히 봐왔던 추격전의 또 다른 버전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번 주 후반부에 들어오면서 추격전의 양상은 갑자기 방향을 틀었고 지금껏 보던 추격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연출했던 것이 사실이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이렇게 된 것은 전반부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300만원 가방’이 후반부에 갑자기 등장하면서 출연진들을 혼동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그저 미션을 성공하면 300만원을 번다는 사실만 알았을 때와 -300만원 가방을 들게 되면 그 미션 우승자에게 돌아가는 300만원을 자신이 내야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제로섬 게임이다. 우승자와 패자가 있어 그 합이 제로가 되는 게임. 즉 누군가 가져가면 누군가는 잃는 게임이라는 점이다. 즉 그저 우승상금을 받는 게임은 노력한 대가의 의미를 주지만 제로섬 게임은 치고받는 생존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일종의 도박판 게임이 되는 식이다.

 

제로섬 게임은 <무한도전>의 후반부를 그래서 더 팽팽하게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제로섬 게임은 방송 게임으로서는 무리수가 될 수도 있다. 프로그램이 무슨 권리가 있어서 멤버들에게 돈을 낼 것을 강요하는가. 그저 300만원을 벌 수 있는 게임이라면 추석 보너스의 개념이 될 수도 있고 또 늘 <무한도전>이 그래왔듯이 우승자가 기부의 형식으로 훈훈함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300만 원은 다르다. 이것은 프로그램이 멤버들을 게임에 끌어들여 그 누군가는 300만원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게임이 절실해지고 흥미로워질 수는 있겠지만 방송이라면 신중했어야 하는 선택이다. 이번 미션의 결과 노홍철이 300만원을 버는 우승자가 되고 박명수가 -300만 원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그 결과의 장면을 실제적으로 보여주지 않은 것은 <무한도전> 스스로도 그것이 방송용으로는 적합한 장면이 아니었기 때문일 게다.

 

박명수가 개인 돈 300만원을 빼앗기고 노홍철이 그 300만원을 가져가는 장면이 연출되었다고 생각해보라. 그건 방송의 출연자에게는 너무 가혹한 짓이 된다. 물론 과거 멤버들이 사비를 냈던 일이 없었던 건 아니다. 박명수의 ‘기습공격’이나 ‘정총무가 쏜다’ 같은 콘셉트가 그랬지만 그것은 일종의 기부의 또 다른 형태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100 빡빡이의 습격 특집에는 그런 의미가 없다. 그것은 그저 돈 놓고 돈 먹는 도박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 제로섬 게임이 주는 의미는 있다. <무한도전>이 늘 그래왔듯이 게임 속에 지금 현실을 투영한 거라면 이 제로섬 게임은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우리네 현실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컸을 게다. 그저 더 많이 돈을 벌겠다고 아둥바둥하지만 사실 그럴수록 이 사회의 시스템은 다른 누군가의 돈을 빼앗고 있는 제로섬 사회라는 것. 제로섬 게임은 이 살벌한 현실을 에둘러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돈을 소재로 한 게임은 방송에서는 신중해야 한다. 자칫 돈 놓고 돈 먹는 게임이 되어버리면 그것은 의도와 달리 부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무한도전> 후반부를 살려낸 ‘-300만원’의 정체는 실로 위험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사회의 시스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이야기다. 누군가 더 가져가면 누군가는 빼앗겨야 하는 시스템. 그런 살벌한 현실을 그 누가 조장하는가.

너무 많아진 추격전 예능 이젠 패가 보인다

 

사실 추격전은 <무한도전>의 전매특허나 다름없었다. ‘여드름 브레이크’나 ‘돈을 갖고 튀어라’ 같은 특집들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보기 드물게 실전에 가까운 긴박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특히 ‘여드름 브레이크’처럼 추격전 속에 독특한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는 건 <무한도전>만이 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여겨졌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하지만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너무 많은 추격전들이 예능에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1박2일>은 여행 버라이어티이면서도 자주 추격전을 선보이기도 했다. 숨겨진 목적지까지 누가 더 빨리 도착하느냐는 미션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었다. <런닝맨>은 아예 추격전을 하나의 주된 형식으로 만든 예능 프로그램이다. 매주 조금씩 다른 소재를 가져오지만 그 밑바탕에는 역시 추격전이 깔려 있다.

 

사실상 프로그램을 이끌어가고 있는 유재석이 <런닝맨>과 <무한도전>을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은 추격전을 아이템으로 삼았을 때 곤란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너무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의 이번 ‘100 빡빡이 특집’ 같은 경우, <런닝맨>이 예전에 건물 하나를 빌려 유사한 복장을 입은 사람들 속에서 게스트를 찾는 미션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유재석과 하하가 양 프로그램에 동시에 들어가 있고 이들의 캐릭터가 두 프로그램에서 거의 같기 때문에(이것은 리얼 버라이어티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더더욱 변별력을 찾기가 어렵게 된다. 게다가 다른 출연자라고 해도 추격전에 들어가면 비슷한 캐릭터가 나오는 것도 스토리가 뻔해지는 이유로 작용한다.

 

흔히 등장하는 배신의 아이콘이나 카이저 소제 캐릭터는 대표적이다. <무한도전>에서 노홍철이 배신의 아이콘이라면 <런닝맨>에서는 이광수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 이번 <무한도전> ‘100 빡빡이 특집’에서 맹활약한 카이저 흑채 박명수 캐릭터는 이미 추격전에서는 그다지 새로운 캐릭터가 아니다. <무한도전>에도 여러 차례 주도면밀한 두뇌싸움을 벌이는 카이저 소제 캐릭터가 등장했었고 <런닝맨>에서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1박2일>에서도 은지원이 지니어스 원 캐릭터로 이 역할을 소화하기도 했다.

 

캐릭터가 유사하고 추격전이라는 형식이 같기 때문에 스토리가 새롭기가 어렵다. 결국 추격전이란 시청자와 제작진의 두뇌 싸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청자가 대충 이런 흐름으로 흘러 갈거야 라고 생각할 때 그 뒤통수를 치는 스토리 전개가 나와야 추격전의 진짜 묘미가 생길 수 있다. <무한도전>의 ‘100 빡빡이 특집’은 이제 전반부를 보여줬을 뿐이지만 100명의 빡빡이가 동시에 출연하는 스펙터클 이외에 새로운 이야기는 그다지 보여주지 못했다.

 

이렇게 <무한도전>의 추격전이 예전만큼 참신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은 너무 많은 추격전들이 쏟아져 나와 그 패턴이 읽혔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무한도전>만이 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다른 버라이어티에서 누구나 사용하는 하나의 예능 형식으로 자리잡았다. <무한도전>처럼 무언가 새로운 것을 늘 추구하는 예능으로서는 더 복잡한 심리전과 게임을 선보여야 하지만 주말 저녁 시간대 보편적 시청층을 생각한다면 이런 시도는 자치 마니아적인 도전으로 흘러갈 위험성도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관찰 예능으로 가고 있는 요즘 트렌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패턴을 읽히지 않는 것이다. 관찰 예능에 대한 시청자의 요구는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 대한 기대감이다. 그런 점에서 <무한도전>을 포함한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시도하려는 추격전은 더 많은 과제를 안게 되었다. 패턴을 넘어 반전을 만들어내면서도 너무 복잡하지는 않은 형태를 찾아야 하는 것.

 

이러한 고충은 추격전 형식만이 아니라 <무한도전>의 다른 형식들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여행을 소재로 했을 때 이제는 <1박2일> 같은 무수히 많은 여행 버라이어티들이 했던 패턴들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 사실상 국내의 모든 예능 프로그램들이 <무한도전>에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거의 없는 현실에서 <무한도전>의 새로운 예능 형식 도전은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패턴화된 추격전은 바로 이 어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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