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 라미란의 매력에 물든 까닭

 

몸매가 아주 자연스럽죠. 꾸며지지 않았어요. 얼굴도 그렇고 몸도 그렇고 물론 아름다운 외모를 가꿔야 될 분들도 있지만 저는 제가 대한민국의 표준 정도라고 생각해요. 배도 좀 나오고.. 나이가 이렇게 됐는데. 팔뚝도 좀 굵을 수 있는 거고.”

 

'라디오스타(사진출처:MBC)'

MBC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라미란은 자신의 외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영하 22도의 방산시장에서 공사(?) 안하고 베드신도했고, 데뷔작이었던 <친절한 금자씨>에서도 목욕탕 장면이 있는데 자신의 엉덩이에서 카메라가 빠져 나오면서 시작한다고 했다. 그러자 몸매를 인정받은 게 아니냐는 김구라의 말에 자신의 외모를 자평한 것.

 

그녀는 자신이 노안이라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영화 <댄싱퀸>에서는 엄정화 친구로 나왔는데 보기에는 정화언니 이모뻘인 외모 때문에 자신이 언니 언니하는 것에 주변에서 많이 놀라더라는 것. 그녀는 자신의 외모가 실제로 보는 것보다 화면으로 보면 10년 정도 늙어보이고 10킬로 정도 쪄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말하듯 그 노안과 자연스러운 외모는 그녀의 장점이기도 하다. 이미 열 아홉 살 때 70대 노인 역할을 했던 그녀는 그 후로 몸종, 천민 역할 등을 했지만 요즘은 노처녀 역할로 격상됐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거꾸로 젊은 역할을 하게 된 것. “환갑 때도 이 얼굴일 거예요라고 말하는 라미란은 자신의 외모가 가진 강점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캐릭터 이름은 기억하는데 제 이름이나 얼굴은 잘 기억 못하세요.” 이 말은 배우로서는 라미란이 굉장히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연기란 배우 자신보다 배역으로 남았을 때 빛나기 마련이 아닌가. 물론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건 중요하지만 그것은 배우 자신을 드러낸다기보다는 배역에 대한 완전한 몰입을 통해서다.

 

“<더 킹 투하츠><패션왕>을 같이 했는데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인 줄 잘 모른다는 그녀의 너스레에는 많은 작품을 해도 잘 알려지지 않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지만 동시에 그것이 배우로서 중요한 장점이라는 인식도 깔려 있다. 어떤 역할을 하더라도 사람들이 처음 본 느낌을 준다는 것. 이보다 배우에 적격인 인물이 있을까.

 

<괴물>에서 이른바 발동동 아줌마, <헬로우 고스트>에서는 노상방뇨를 하는 차태현에게 어딜 넘봐라는 애드리브로 변태 아줌마, <스파이>에서는 야쿠르트 요원으로, <차형사>에서는 홍석천의 즉석 애드리브로 기습키스까지 당한 그녀는 그래서 지난 청룡영화상에서 <소원>으로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그 연기를 인정받았다.

 

<라디오스타>에서 BMK물들어를 선곡한 이유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저도 연기를 하면서 보시는 분들에게 제 연기가 물들어서 다 스며들고 잘 침투했으면 좋겠어요.”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녀의 이 자연스럽게 물드는연기 덕에 그 많은 영화와 드라마들이 빛났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미란은 그래서 모두가 주연이라고 말할 때 묵묵히 조연으로서 그 옆을 지켜주고 만들어주는 수많은 우리네 평범한 서민들의 얼굴을 닮았다. 아마도 <라디오 스타>의 라미란을 보며 그 매력에 빠져들었다면, 그것은 그녀의 얼굴에서 우리의 얼굴을 발견했기 때문일 게다.

<12>의 여행, 무엇이 달라진 걸까

 

과거 <12> 시즌2는 복불복 게임만을 반복하는 것 때문에 줄곧 비판을 받아왔다. <12>이라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은 결국 여행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시즌3는 복불복 게임이 아닌 여행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을까.

 

'1박2일(사진출처:KBS)'

여행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12> 시즌3에서 여행지에 대한 정보나 풍광을 보여주는 장면은 그다지 많지 않다. 대신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여전히 복불복 게임에 맞춰져 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시즌2에서 여행은 없고 게임만 있다 비판받던 것들이 시즌3에서 반복되는 복불복 게임에서는 사뭇 다른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비판은커녕 오히려 호평을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도대체 무엇이 달라진 걸까.

 

일단 복불복 게임의 양상 자체가 달라졌다. 유호진 PD가 전면에 나서면서 새롭게 투입된 멤버들로 재구성된 출연진들과 흥미로운 대립관계가 형성되었다. 첫 복불복 게임으로 땅을 파고 물을 채우고 얼음 채운 물에 등목을 시키는 등 이른바 야생5덕 테스트로 유호진 PD의 호락호락하지 않은 면모가 드러나면서, 여기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김주혁이나 놀라운 임기웅변으로 상황을 모면하는 정준영, 특유의 현실 멘트로 큰 웃음을 주는 데프콘, 그리고 역시 개그의 달인답게 놀라운 리액션으로 웃음을 만들어내는 김준호가 모두 살아나게 되었다.

 

이러니 게임 하나를 하더라도 캐릭터 하나하나의 리액션이 모두 쓸 만한 방송 분량으로 나오게 된 셈이다. 여기에 유호진 PD나 막내 작가인 슬기 작가까지 캐릭터가 생기다 보니 관계가 만들어내는 스토리는 더 풍부해졌다. 슬기 작가를 놓고 출연자들이 서로 그녀와 파트너가 되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나, 그녀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독설을 날리는 모습은 그간 <12>에서 빠져 있었던 알콩달콩한 스토리라인까지 가능하게 만들었다.

 

결국 복불복 게임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게임을 누가 어떤 심리 상태로 하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다. 그러니 이미 게임에 들어가기 전에 확실한 캐릭터와 그들 사이의 팽팽한 대립각 혹은 두근두근한 관계를 세운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 게임의 성패가 아니라 그 과정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지고 그것은 향후에도 계속 발전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필요하다면 스텝까지도 캐릭터로 만드는 열정적인 자세는 시청자들에게 그 재미에 대한 제작진의 진정성을 전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복불복 게임의 이런 다른 접근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여행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다. 시즌2에서 여행은 없고 복불복 게임만 있다 비판받았을 때 그 여행이란 도대체 뭘까. 그것은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더 소개하는 것일까. 멋진 풍광을 찍어 보여주는 것일까. 아니면 그 여행지에서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들을 체험해보는 것일까. 사실 이런 정보들은 이제 너무 흔해져버렸다. 인터넷만 열면 누구나 쉽게 얻어갈 수 있는 여행에 대한 정보들이 아닌가.

 

유호진 PD<12>의 새 메가폰을 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필자를 만나 자신이 생각하는 여행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다. 유호진 PD나영석 PD와 자신은 다르다며 자신은 여행을 좋아하기 때문에 훨씬 더 여행의 본질에 다가가는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여행의 본질이란 뭘까. 그것은 여행지가 아니라 그 때 그 때 여행을 떠날 때마다 느껴지는 독특한 감성이나 체험을 말한다.

 

즉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막연히 느끼는 설렘이나, 어느 비오는 날 오도가도 못 하게 된 섬 마을 외딴 집 처마 밑에서 느끼는 처연한 느낌, 화창한 봄날 어디든 떠나고 싶어 무작정 떠난 여행에서 갑자기 맞닥뜨린 숨 막힐 듯 흐드러진 꽃들을 마주할 때의 그 정서, 혹은 여행 중 아주 사소한 것에 목숨 걸고 게임을 하다가 하루를 꼴딱 보내고 난 후의 허전함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여행지와 여행 그 자체가 주는 감흥은 이렇게 다르다.

 

현재 <12>이 복불복 게임만 하는 것 같아도 거기에는 이들의 여행이 만들어가는 독특한 감흥과 정서가 깔려 있다. 게임을 해도 거기서 만들어지는 긴장감과 대립이 그 감흥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여행이 주는 수많은 감흥 중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먼저 캐릭터가 확고해지고 나면 더 많은 여행의 본질에 다가가는 이야기들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것이 지금 복불복 게임만 해도 호평이 쏟아지는 <12>의 달라진 점이다. 그리고 더 많은 이야기들을 기대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스코리아>의 무엇이 이연희의 연기를 깨웠나

 

와이키키-” 하며 억지로 미소 짓는 연습을 하던 엘리베이터걸 오지영이라는 인물은 어쩌면 그녀를 연기하는 이연희의 모습 그대로는 아니었을까.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엘리베이터 한 구석에서 CCTV를 피해 삶은 계란을 통째로 입안에 우겨넣는 오지영의 억지로 짜낸 듯한 미소는 그래서 노동자의 슬픈 데드마스크를 떠올리게 했다.

 

'미스코리아(사진출처:MBC)'

예뻐 보이려 노력하는 것은 그래서 예쁘다기보다는 슬프다. 예쁜 마네킹처럼 웃는 백화점 엘리베이터걸들은 상습적인 성희롱과 성추행을 일삼는 박부장(장원영) 같은 파렴치한 밑에서 퇴직을 강요당하고, 심지어 퇴직금까지 갈취 당한다. 97IMF 시절 사라져버린 엘리베이터걸이라는 직업은 그래서 마치 노동이 기계로 대치되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돈 없고 백 없고 학벌 없는 오지영이, 가진 자산이라고는 달랑 몸뚱어리 하나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래서 그 몸을 상품화하는 것뿐이다. 엘리베이터걸에서 미스코리아로 그 목표가 수정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지영의 서글픈 상황이 바뀐 것은 아니다. 미스코리아를 대거 발굴해낸 퀸 미용실 원장 마애리(이미숙)를 오지영은 엄마 같은 존재로 따르지만(그녀에게는 엄마가 없다) 마애리는 또 다른 박부장이다. 관리하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 성의 상품화는 훨씬 세련되어진다.

 

미스코리아가 되기 위해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고, 힙을 업시키기 위해 고통을 참으며 다리부터 엉덩이까지 병으로 눌러대며, 틈만 나면 물구나무서기를 당하는 몸은 그래서 여전히 슬프다. 누군가의 시선에 예속당한 채 훈육되어지는 몸. 그리고 심지어 성형이라는 이름으로 조각되고 만들어지는 몸.

 

오지영이 가슴 성형을 위해 수술대에 올랐을 때 그녀의 이름을 애타게 불러주는 김형준(이선균)의 목소리는 그래서 하나의 구원이 된다. 마치 미스코리아 공장 같은 마애리의 퀸 미용실을 벗어나 소박하지만 꿈이 있는 김형준의 비비화장품을 찾아온 오지영은 비로소 처음으로 스스로의 선택을 한 셈이다. 미스코리아가 되겠다는 꿈은 똑같지만 김형준과 오지영의 그저 직업적인 관계가 아닌 사적 관계는 모든 걸 바꾸어 놓는다.

 

지지고 볶는 비비화장품의 사장과 직원들의 모습이 마애리 퀸 미용실의 풍경과 달리 하나의 공동체 같은 인상을 주는 건 그 때문이다. 거기서 직원들은 김형준을 사장이라 부르기보다는 형 혹은 오빠라고 부른다. 김형준이 오지영을 미스코리아가 되게 하려는 것은 물론 비비화장품을 살리기 위한 욕망 때문이지만, 거기에는 오지영이 그토록 쓰레기통에 구겨 버렸지만 그걸 다시 가슴에 주워 담는 김형준의 순수한 사심도 들어있다.

 

그래서 오지영이 김형준 앞에서 와이키키-”, “하와이-”를 하며 미소를 짓는 모습은 더 이상 슬프지 않다. 그것은 오지영의 김형준에 대한 마음을 거꾸로 직업적인 연습을 통해 감추려는 것이니까. 여기서 비비화장품과 미스코리아라는 목표는 오지영과 김형준의 사심을 숨기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비로소 오지영은 누군가의 시선에 예속된 몸이 아니라 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당당해진 몸으로 서게 된다.

 

오지영이라는 성장 캐릭터가 이연희라는 연기자에게 주는 의미는 그래서 남다를 것으로 여겨진다. 누군가의 시선에 포획된 존재가 아닌 저 스스로의 선택으로 선다는 것은 연기자에게도 가장 중요한 덕목이니 말이다. 연기자에게 예쁘다는 표현은 이중적이다. 그저 외모가 예쁘다는 건 연기자에게는 치명적인 비판일 수 있다. 그것은 배역으로서 주목되기보다는 연기자 자신으로서 주목되기 때문이다. 연기력 논란은 바로 이 지점, 배역과 연기자가 따로 노는 지점에서 생겨난다.

 

<미스코리아>에서 이연희의 연기가 자연스러워진 것은 그 배역인 오지영이라는 캐릭터가 그녀에게 맞춤의 역할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저 예쁜 데드마스크의 얼굴이 차츰 진짜 예쁜 살아있는 인물로 변해가는 모습을 우리는 <미스코리아>의 오지영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또 이연희라는 연기자를 통해서 보고 있다. 오지영이라는 캐릭터가 예쁜 것은 단지 외모 때문이 아니라 점점 당당해지는 그녀의 변신과 성장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연희에게도 그대로 전파된다. 그녀는 연기자가 진짜 예뻐 보일 때가 외모가 아닌 배역에 몰입할 때라는 걸 오지영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배워가고 있다. 예뻐 보이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예쁜.

<기황후>의 근본적 한계를 만든 역사의 문제

 

MBC 월화 사극 <기황후>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어떨까. 최근 중국의 한국드라마에 대한 관심은 마치 한때 우리나라에서 불던 미드에 대한 관심만큼 뜨겁다. <상속자들>이 방영된 후 중국에서 이민호 열풍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단적인 사례다. 이처럼 우리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있지만 필자가 현지에서 만난 방송관계자들에 의하면 <기황후>에 대해서만은 뜨뜻미지근한 반응이라고 한다.

 

'기황후(사진출처:MBC)'

이것은 결국 역사적 인물인 기황후가 가진 민감함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오랑캐로 여기던 몽골의 칭기즈칸이 세운 원나라에 대한 미묘한 감정이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니 고려에서 넘어와 37년간 황후로서 원나라를 쥐고 흔든 기황후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그다지 호의적일 수가 없다는 것. <기황후>는 역사적 인물로서는 우리에게도 중국측에서도 반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중국인들의 <기황후>라는 사극의 이야기 전개나 배우들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다는 점도 우리의 반응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역사의식 부재를 지적하는 비판 속에서도 <기황후>의 시청률은 손쉽게 20%를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그만큼 역사 논란을 잠재울 만큼 이야기 전개는 긴박하게 꾸려졌고 특히 멜로에서 액션까지 북 치고 장구 치는 하지원의 매력은 이 사극에 힘을 부여했다.

 

중국 측에서 <기황후>를 심각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재조명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멜로 사극으로 치부하는 시각 역시 우리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이것은 <기황후>라는 제목이 부여되는 순간부터 이 문제의 역사적 인물이 이 사극의 발목을 잡은 결과다. 결국 <기황후>가 다룰 수 있는 이야기는 궁중 권력 암투이거나 기승냥(하지원)과 왕유(주진모) 그리고 타환(지창욱)의 삼각 멜로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기승냥의 성장담에 집중하게 되면 이야기는 자칫 기황후라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찬양으로 흘러가는 부담이 생기게 된다. 그러니 최근 <기황후>의 이야기 속에서 기승냥이 초반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캐릭터에서 왕유와 타환 사이에서 휘둘리는 멜로의 대상으로 점점 변화해가고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한계일 수밖에 없다. 기승냥은 남장을 벗어버린 후부터 여성으로 대상화되어가고 있다.

 

우연의 일인지 모르겠지만 기승냥의 캐릭터가 여성화되고 이야기가 삼각 사각 멜로를 반복하면서 시청률도 뚝뚝 떨어지고 있다. 11%부터 시작해 13회 만에 20%를 넘긴 시청률은 지금 현재 17%대까지 다시 떨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기황후>의 초반 이야기가 고려에서 중국 대륙으로까지 이동하는 다이내믹함을 보여줬지만(여기에 기승냥의 변신담까지 더해졌다) 지금은 중국 황궁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기황후>의 기획단계에서 역사 논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제작진들은 우린 멜로에 집중할 것이라며 우려를 털어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이 사극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점점 소소해져버리는 근본적인 장애가 아니었을까. 사극이 한 인물의 감동적인 성장드라마를 담아내지 못하고,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과감한 해석을 시도하지 못한 채 궁중에서의 멜로에 머물러 있게 된 것. 이것은 어쩌면 상상력의 과신에 대한 역사의 반격이 아닐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