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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그 립스틱', 연하남 판타지로 돌아온 '만찢남' 로운

 

JTBC 월화드라마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는 먼저 제목부터 여심을 자극한다. 그 제목의 화자는 후배라는 뜻이고, 립스틱을 바르지 말라는 건 짝사랑과 질투, 보호본능 같은 걸 이 후배가 하고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이 드라마에서 윤송아(원진아)의 직장 후배 채현승(로운)은 바로 그 여심을 자극하는 연하남이다. 대학생 때 학교를 윤송아에 처음 시선이 뺏겼고, 점심도 챙겨먹지 못하고 일하는 그를 위해 샌드위치를 갖다 주며 먹을 시간까지 벌어주던(?) 그였다. 그는 그렇게 윤송아에 일찌감치 빠져버렸고, 그래서 그가 다니는 화장품 회사에 입사한다.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하던 채현승은 그러나 윤송아가 같은 팀 팀장인 이재신(이현욱)과 비밀 사내 연애를 하고 있는 걸 알게 되고 그 행복해하는 모습에 포기하려 한다. 하지만 이재신이 그 회사의 창업주 손녀인 이효주(이주빈)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분노하고 윤송아를 지키기 위해 나선다. 즉 아무 것도 모르는 윤송아에게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라고 채현승이 말하는 것.

 

사실 이 드라마는 여성들의 판타지에 맞춰진 로맨스 드라마로서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낸다. 그 판타지는 채현승이라는 인물로 구체화되어 있다. 잘 생긴데다 이재신 때문에 상처를 입게 된 윤송아를 지켜주려는 인물. 그는 이를 위해서는 팀장인 이재신과 주먹다짐도 피하지 않는다. 게다가 화장품 회사 마케터 1년 차의 직장인이지만, 실상 웨딩샵을 소유하고 있는 부유한 청년이기도 하다.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모든 걸 다 갖춘 인물이지만 후배라는 위치에서 선배를 위해 뭐든 다 하겠다는 인물. 이러니 여성들의 로망을 건드릴 수밖에 없다. 이 로망을 더욱 극대화시켜주는 건 이재신이라는 인물과의 대비효과다. 사업실패로 빚쟁이들에 시달림을 당하며 자라온 이재신은 재벌3세인 이 회사의 상무 이재운(이규한)에게 "자신을 사라"고 제안했던 인물이다. 그 빚을 탕감해주고 자신을 유학 보내주면 평생 그의 "개가 되겠다"고 했던 것. 물론 이재운은 "개는 필요 없다"며 "친구가 되자"고 하긴 했지만.

 

이런 가진 것 없어 현실에 굴복하고 만 이재신이 윤송아를 사귀면서도 이효주와 결혼을 앞두게 된 것 역시 그런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어서였다. 갖고 싶은 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져야 하는 이효주는 이재신과 결혼하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결국 그런 상황 때문에 이재운까지 동생을 받아달라는 부탁을 하고 그걸 거부하지 못했던 것.

 

이재신이라는 인물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현실을 다소 무겁게 갖고 있는 인물이라면, 채현승은 그런 현실에서 한 발 떨어져 있는 인물이다. 윤송아라는 인물에 몰입해 보는 여성 시청자라면 드라마를 통해서나마 잠시 현실을 잊고, 모든 로망을 충족시켜주는 채현승 같은 연하남에 판타지를 느낄밖에.

 

MBC '어쩌다 발견한 하루'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로운은 말 그대로 '만찢남'의 이미지를 가진 배우다. 이번 작품의 채현승이라는 캐릭터는 그의 이런 만찢남으로서의 판타지를 더욱 공고하게 빚어주는 면이 있다.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서의 하루는 진짜로 만화 속 캐릭터였지만, '선배, 그 립스틱 바르지 마요'의 채현승은 그래도 화장품 회사 마케팅팀 후배라는 현실 위에 서 있는 판타지이기 때문이다.

 

다소 전형적인 사각관계를 다루고 있는 로맨스 드라마지만, 채현승이라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연하남이 선배라고 부르며 조금씩 다가오는 그 판타지는 의외로 강하게 느껴진다. 물론 '저런 인물이 어디 있어' 하고 부정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빠져드는.(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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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쉬'가 기자 앞세운 드라마의 징크스를 깨기 위해서는

 

기자를 소재로 하는 드라마는 안 된다? 드라마업계에 자리하고 있는 징크스는 여지없이 이번에도 재연되고 있는 걸까. 기자를 소재로 하고 있는 SBS 금토드라마 <날아라 개천용>과 새로 시작한 JTBC 금토드라마 <허쉬>가 바로 그 드라마들이다. 

 

비교적 잘 나가던 <날아라 개천용>이 주연배우 배성우의 음주운전으로 인해 최대 고비를 맞고 있는데다, <허쉬> 또한 황정민 같은 오랜만에 드라마에 복귀한 스타배우를 캐스팅하고도 첫 회 3.3%(닐슨 코리아)에서 2회 2.5%로 시청률이 추락했다. 

 

<날아라 개천용>은 드라마 같은 삶을 산 실제 재심 변호사와 기자를 모델로 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된 약자들을 위해 나서는 이들의 영웅적인 서사가 리얼 판타지라는 강점으로 시청자들을 몰입시켰다. 하지만 하필이면 정의로운 기자 역할을 연기하는 배성우가 음주운전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역풍을 맞았다. 리얼 판타지의 몰입감은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이정재가 배성우를 대신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 결정되진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면 새로 시작한 <허쉬>는 어떨까. <허쉬>는 시청자들이 원하는 영웅적인 기자 상을 판타지로 그리기보다는, 기레기가 될 수밖에 없는 언론 시스템을 현실적으로 그린 드라마다. 실제로 <허쉬>는 "까라면 깔 수밖에 없는" 직장인과 다를 바 없는 기자를 그린다. 유배지가 다름없는 디지털 뉴스팀으로 좌천된 기자들은 취재는 뒤로 한 채 보도자료를 베껴 쓰거나,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을 다는 일을 하며 스스로를 '기레기'라 한탄한다. 

 

그런데 이런 현실을 있는 그대로 고발하는 <허쉬>는 시청자들로서는 마치 기레기를 변명하는 듯한 뉘앙스로 읽힐 수 있다. "글보다 밥이 무섭다"는 현실은 거꾸로 말해 그 밥을 위해 정론직필하지 못하는 것이 마치 생존을 위한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들릴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이런 현실적인 이야기는 기자들이나 그 세계를 아는 언론관계자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겠지만 대중들이 모두 공감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허쉬>에게 다시 반등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그것은 디지털 뉴스팀의 한준혁(황정민)이 과거 자신의 이름으로 나간 가짜 뉴스 때문에 겪은 상처가 있다는 점이다. 그 가짜뉴스로 잘 알고 지내던 한 PD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그래서 마치 자신에게 벌을 주듯 기레기를 자처하며 살아가고 있었지만, 그의 앞에 또 다른 각성의 기회가 생긴다. 

 

그것은 자신이 교육을 맡게 된 인턴에게서 벌어진 비극이다. 지방대 출신으로 여러 회사의 인턴을 전전했지만 정직원이 되지 못한 오수연(경수진)이 매일한국에서도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서도 그냥 자신만 입 다물고(허쉬라는 제목이 가진 뜻 그대로) 지내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나갈 거라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한준혁은 과연 기레기에서 탈피해 새로운 면모를 보일 수 있을까. 

 

바로 이 지점은 <허쉬>가 반등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드라마는 현실 그대로가 아니라, 현실에 결핍된 것들을 채워주는 판타지를 요구하니 말이다. 과연 한준혁의 각성은 <허쉬>의 기대감을 높여 놓을 수 있을까. 나아가 기자 소재 드라마는 안 된다는 징크스를 깨줄 수 있을까.(사진:JTBC)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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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레기는 어떻게 탄생하나, '허쉬'의 시스템 고발이 변명이 안 되려면

 

기자가 주인공인 드라마는 잘 안 된다는 통설이 있다. 거기에는 현실과 판타지 사이에 서 있는 드라마의 위치가 작용한다. 즉 너무 현실감 있게 기자의 세계를 그리면 고구마 가득한 이야기와 더불어 그들도 그럴 수밖에 없다는 푸념과 변명처럼 다가오게 되고, 그렇다고 진실만을 추구하는 기자를 판타지를 섞어 그리면 너무나 다른 현실과의 부조화 때문에 공감이 안 되는 지점이 있다는 것. 

 

JTBC 새 금토드라마 <허쉬>는 이 중 전자를 선택한다. 섣불리 정의감 넘치고 그 어떤 외압 앞에서도 진실만을 추구하는 기자라는 판타지를 그리지 않는다. 대신 정반대로 이른바 '기레기'로 전락해버린 기자들이 어쩌다 그렇게 되어버렸는가를 찾아간다. 매일한국의 12년차 베테랑 기자지만 이 신문사의 실패자들을 모아놓은 유배지나 다름없는 디지털 뉴스팀으로 출근해 보도자료를 '복붙' 하며 낚시성 제목으로 조회 수를 끌어올리는 일을 하는 한준혁(황정민)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펜대보다 큐대를 더 많이 잡으며 빈둥빈둥 시간을 때우고, 새로 들어온 인턴들을 교육하면서도 기자로서의 사명감 같은 이야기는 거의 꺼내놓지 않는 인물. 매일한국의 디지턴 뉴스부 기자들의 모습도 한준혁과 그리 다르지 않다. 디지털뉴스팀 정세준(김원해) 팀장은 기사는 잘 썼지만 사내 정치는 몰라 부장 승진에서 계속 누락된 '똥차' 취급을 받고, 김기하(이승준) 기자는 결코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며 하루하루를 가늘고 길게 살아간다. 엄성한 디지털 뉴스부장은 나름 사내 정치를 하지만 어딘가 '엉성한' 직장인에 가까운 인물이고, 그가 눈치보며 비벼대는 나성원(손병호) 매일한국 편집국장은 기자정신보다 조직의 이익이 우선인 인물이다. 

 

새로 들어온 인턴이라고 해도 기자로서의 패기 같은 게 엿보이진 않는다.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무수히 많은 인턴 경험을 가진 오수연(경수진)은 '기자는 시민의 마지막 보루'라고 말하지만 현실은 정직원이 되기 위해 목매는 인물이고, 이지수(윤아)는 '밥은 펜보다 강하다'며 생존이 우선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말하는 인물이다. 즉 기자가 되려하는 젊은 인물들 역시 취업 전선에서 기자정신보다는 생존이 우선인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는 걸 이들 인물들은 잘 보여준다. 

 

그나마 기자로서의 근성과 정신을 보여주는 인물은 매일한국 사회부 차장 양윤경(유선)이지만 그 역시 비판적인 기사들이 번번이 광고주와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데스크에 까이는 현실을 마주하며 이제 그만 둘까를 고민한다. 예전보다 많이 꺾였다는 그는 현실을 이렇게 개탄한다. "기자? 여기 기자가 어딨냐? 그냥 다 먹고 살겠다고 붙어있는 월급쟁이들이지." 기자로서 해야 할 일들과 직업정신 같은 게 있지만 이들은 어쩌다 기자가 아닌 회사원이 되어 있다고 자조한다. 

 

하지만 기자가 회사원이 되면 안되는 이유가 한준혁과 이지수가 겪은 사건으로 드러난다. 즉 2013년 방송노조위원장 이용민 PD가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을 담은 가짜뉴스를 한준혁의 이름을 내게 만든 나성원 국장 때문에 결국 이용민 PD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것. 당시 한준혁은 나성원을 찾아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항변했지만 사장이 직접 지시해 자신은 힘이 없다며 사장도 정부처에서 찍어 눌러 어쩔 수 없었다 말한다. 그러면서 다른 이슈가 나오면 금세 잊혀질 거라 변명했지만 그렇게 벌어진 비극으로 한준혁은 사실상 스스로를 죄인처럼 유배시켜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지수는 다름 아닌 바로 사망한 PD의 딸이었다.

 

생계를 위해 누구나 밥이 중요한 회사원이라는 건 공감할 수 있는 일이지만, 기자가 그저 회사원이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를 잘 보여주는 이 사건은 <허쉬>가 무엇을 담으려 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섣부른 돈키호테 기자 판타지를 담기보다는 "허라면 허고 쉿 하라면 쉿 하면 되는 것"이라 말하는 데스크들 속에서 우리가 쉽게 기레기라고 치부함으로써 그런 가짜뉴스가 개인적 일탈에 의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돈과 권력과의 관계로 얽힌 시스템의 문제라는 걸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그런데 <허쉬>의 이런 시스템 고발이 그저 기레기의 현실 한탄이나 변명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통해 어떤 대안의 제시가 필요하지 않을까. 기레기로 자조하며 살아가기보다는 무언가 이들의 연대가 만들어내는 반전이 필요한 이유다. 과연 <허쉬>의 한준혁과 이지수는 밥벌이 그 이상의 가치를 이 부조리한 시스템 안에서도 보여줄 수 있을까.(사진:JTBC)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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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트하우스', 어떤 일이 벌어져도 놀랍지 않은 가짜 판타지

 

예상했던 대로지만 SBS 월화드라마 <펜트하우스>는 벌써부터 20% 시청률을 목전에 두고 있다. 9.2%(닐슨 코리아)로 시작한 드라마는 매회 1% 남짓 시청률을 끌어올리다, 11회에 이르러 19.6%를 기록하며 시청률이 껑충 뛰었다. 시청률이 모든 걸 증명해주는 바로미터가 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렇게 갑자기 시청률이 뛰어오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건 개연성 없이 자극적인 설정과 복수극을 통한 고구마와 사이다만을 담음으로써 막장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이제는 그 단계를 넘어서 생겨나는 이상한 관전 포인트가 그 이유다.

 

이상한 관전 포인트라는 건, '욕하면서 본다'는 우리가 흔히 막장을 지칭할 때 쓰는 표현에 이미 들어가 있다. 욕한다는 건, 개연성이 없어서이지만, 그러면서도 보는 건 또 왜일까. 그것도 그냥 보는 게 아니라 찾아보게 되는 건. 자극도 자극이지만, 개연성을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단계에 이르면 이제 드라마는 더 이상 사실성을 생각하지 않고 가짜라는 게 분명한 일종의 치고받는 게임을 보듯 편해지는 지점에 도달한다. 전혀 사실성이 없어 강 건너 불구경을 하는 것인데, 그 불도 가짜라는 걸 알고 본다.

 

<펜트하우스>에서 삼성동 어디쯤에 세워진 주상복합 헤라팰리스나 그곳 자녀들이 다닌다는 청아예고 같은 공간은, 현실의 부동산과 교육을 은유하는 것처럼 등장하지만 그 곳에서 벌어지는 개연성 없는 사건들의 연속은 그것이 가짜 판타지라는 걸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제아무리 특권의식을 가진 천민자본주의를 표상하는 부자들이 사는 주상복합이라고 해도, 주민대표 투표로 계속 살지 말지를 결정하는 그런 곳이 어디 있을까. 제아무리 부정한 일들이 벌어지는 예고라고 해도 노골적으로 불공정한 일들이 벌어지는 학교가 존재할까.

 

그래서 처음 <펜트하우스>를 보는 시청자는 개연성이 부족한 이 세계를 접하면서도 살인, 유기, 불륜, 학대, 폭력 같은 자극적인 코드들에 시선을 빼앗기다가 어느 순간 개연성을 포기하고 폭주하는 그 이야기 속에 저도 모르게 빠져든다. 개연성이 없고 아예 추구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 곳에는 말 그대로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 개연성이 붙잡고 있는 작품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족쇄를 풀어버리면 남는 건 막장의 자유다.

 

이 단계에 가면 개연성 부족의 상황들은 시청자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게 아니라 실소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헤라팰리스에 거주하고 있는 강마리(신은경)가 사실은 과거 목욕탕 세신사였고 그 때 인연을 맺은 큰손들 덕분에 인생역전을 한 인물이며, 심지어 지금도 그 큰손들을 모시고 때를 밀어주는 상황 같은 게 가능하다. 물론 거기에는 풍자 코미디적 요소들이 담겨 있지만 이런 일들이 실제로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또 학생들도 마음대로 들어오지 못하는 청아예고 같은 곳에 구호동(박은석) 같은 선생이 들어왔다는 사실도 개연성이 없고, 심지어 그 인물이 엄청난 재력을 가진 로건 리이며 사망한 민설아(조수민)의 양오빠라는 사실도 그렇다. 거기에는 개연성이 있는 게 아니라, 뭐든 원하는 대로 설정하고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작가 마음대로의 선택이 있다.

 

중요한 건 이런 개연성 없는 세계를 통해 핍박받던 약자들이 저 세상의 가해자들에게 피의 복수를 하는 과정들을 작가와 시청자들이 공모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개연성은 없어도 저들을 처절히 응징해달라고 시청자들은 요구하고 작가는 그걸 실현시킨다. 그래서 세상에 저런 일은 벌어지지 않아 하면서 때론 실소를 터트리게 하는 개연성 없는 상황들이 전개돼도 시청자들은 그걸 그다지 불편해하지 않게 된다. 어차피 개연성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고 대신 가짜 판타지로서의 사이다를 원하게 되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결국 허구이고 현실이 아닌 판타지를 담고 있기 마련이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어떤 최소한의 개연성이라는 룰이 있다. 그걸 깨뜨리는 건 이 한 작품만의 문제가 아니다. 심지어 개연성을 기대하지 않게 되고 그래서 심지어 무슨 일이 벌어져도 놀랍지 않은 상황은 자칫 작품을 고구마와 사이다로만 단순하게 소비하는 방식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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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라기'가 시월드의 먼지 차별을 드러내는 방식

 

"엄마 조금만 기다리세요. 결혼하면 사린이는 다를 거예요. 사린이는 착하니까." 카카오TV <며느라기> 2회의 엔딩에서 무구영(권율)은 명절에 민사린(박하선)을 만나러 가는 길에 그렇게 생각한다. 무구영은 그날 형수 정혜린(백은혜)이 "다들 너무했다"며 날린 팩폭 돌직구에 아버지의 분노와 엄마의 눈물에 마음이 무겁다. 그래서 생각한다. 자신이 결혼할 사린이는 착한 며느리가 되어 엄마를 도울 거라고.

 

하지만 무구영의 생각은 당장 눈물을 흘리는 엄마와 아버지의 분노로 엉망이 된 명절 분위기가 며느리의 '이의 제기'에서 비롯됐다는 착각에서 비롯한다. <며느라기>는 시월드의 모든 노동이 며느리들(엄마도 며느리다)에게만 부여되고, 그것도 며느리(엄마)가 나서서 며느리에게 강요되며,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부조리한 명절의 풍경을 정혜린의 목소리를 통해 팩폭한다.

 

"그러니까 정리해보면 구일씨는 피곤하니까 들어가서 자고, 아버님과 작은 아버님은 술 드시고, 구영씨와 미영씨는 데이트하러 나가고, 차례 음식은 어머니 혼자 준비하시고...다들 너무 했다. 그리고 저는 며느리니까 당연히 어머님이랑 같이 음식을 만들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 맞죠?" 그렇게 말하는 정혜린에게 작은 아버지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며 "시어머니 혼자 일하라고?" 되묻는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명절 조상을 모시는 일에 있어서 온 노동을 며느리가 짊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자신들이 나서서 함께 그 노동을 분담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대신 그 당연한 걸 하지 않겠다고 나서는 며느리가 괘씸할 뿐이다. 더더욱 안타까운 건 그런 강요를 오래도록 당연한 듯 받아온 시어머니가 이제 저 스스로 나서서 그걸 며느리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수많은 드라마 속에서 고부갈등이나 시월드에서 핍박받고 차별받는 며느리에 대한 이야기가 다뤄졌다. 하지만 극화되어 악역으로 그려지는 시어머니의 극단적인 모습과, 그에 대항해 당장의 사이다만을 보여주던 며느리의 이야기는 그것이 우리네 현실이라기보다는 '저런 집'에서나 벌어지는 일들로 치부하게 만든 면이 있다. 그래서 그런 시월드를 드라마로 보는 어르신들은 줄곧 이런 반응을 보인다. 요즘 세상에 저런 시부모가 어디 있어.

 

이것은 너무나 극적으로 그려져 그것이 우리네 모습이라는 걸 은폐하기도 하던 시월드 소재 드라마들의 한계였다. 하지만 <며느라기>는 다르다. 여기 등장하는 무구영네 집안사람들은 그렇게 괴물화된 인물들이 아니다. 나름 예의도 차리고, 며느리 생각해 상냥한 말도 건네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하는 그 지극히 당연하고 평범해 보이는 말과 행동은 민사린을 이상하게도 힘겹게 만든다. 시어머니 생일상을 혼자 차려내고 시댁 식구들이 저들끼리 대화하고 후식을 먹을 때 혼자 당연한 듯 설거지를 하고 있는 민사린 역시 '착한 며느리'가 되기 위해 애쓰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차별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며느리에 대한 암묵적인 강요다. 그래서 민사린은 마음이 불편해지고 기분이 언짢아진다. 하지만 이제 그 부당함을 얘기함으로써 '며느라기'에서 벗어난 정혜린은 그 평온해 보이던 시월드의 먼지 차별을 팩트 그대로 이야기함으로써 고발한다.

 

모두가 귀성길에 올라 도심에 차들이 많이 사라진 명절에 민사린은 무구영을 기다린다. 결혼 전 두 사람이 만나는 그 장면은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그려진다. 심지어 달달하게 느껴질 정도로. 하지만 그 장면으로 시작한 드라마가 그 날 무구영네 집에서 벌어진 정혜린의 시월드의 먼지 차별의 팩폭 풍경을 거친 후 엔딩으로 이어지자 달달함은 사라지고 대신 씁쓸함이 더해진다. '착한 며느리' 운운하는 무구영의 생각은 이제 민사린이 겪을 시월드의 '며느라기'로 이어질 거라는 기시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20분 남짓의 드라마를 다 보고나면 당연해 보였던 많은 것들이 사실 부당한 것들이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엄마는 왜 그 부당함을 당연한 일로 체화시키며 살아왔을까. 그리고 그것을 어째서 며느리에게도 똑같이 나서서 강요하고 있을까. 엄마가 해온 평생의 독박노동과 그 고생을 절감하는 아들이라면, 착한 며느리를 들여 엄마를 도와줄 생각을 할 게 아니라 그 노동 자체가 부당했다는 걸 말해야 하지 않을까. 사랑하는 엄마가 했던 그 차별적인 대우와 노동을 이제 사랑하는 아내가 대신 맡아 똑같이 하는 걸 당연시 할 게 아니라.(사진:카카오TV)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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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어게인'이 판타지 설정을 가져와 들여다본 가족

 

JTBC 월화드라마 <18어게인>에는 18년 전으로 돌아간 홍대영(윤상현, 이도현)이 자신의 가족을 뒤에서 지켜보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고등학생 고우영(이도현)이 되어 자신의 딸 시아(노정의)와 시우(려운)를 들여다보고, 아내였던 정다정(김하늘)의 삶과 아버지 홍주만(이병준)의 무거운 어깨를 다시금 본다.

 

정다정이 어렵게 들어간 방송사 JBC에서 이혼 프로그램을 맡게 되고 그의 활약으로 정규 편성이 되었지만 MC 자리에 엉뚱한 인물이 들어가게 된 사실을 알게 된 홍대영은, 그 힘겨웠던 하루를 보내고 돌아가는 정다정을 길 건너편에서 안타깝게 바라본다. 딸 시아가 사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 하고, 그래서 대학보다는 학원을 다니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걸 홍대영은 고우영이라는 이름으로 또래 친구가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결혼을 반대했고 아이를 지우라고까지 했던 아버지 홍주만이 사실은 아내를 늘 챙기고 있었고, 또 아내 역시 남편 몰래 홍주만과 왕래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 역시 홍대영은 고우영의 몸이 되고 난 후에야 그 시선으로 알게 된다. 버스 운전을 하며 살아가는 아버지의 무거운 어깨까지.

 

늘 먼발치에서 정다정을 또 시아와 시우를 바라보는 홍대영의 시점은 다소 작위적인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이건 <18어게인>이라는 드라마 자체가 그렇다. 18년 전으로 몸이 돌아간다는 그 설정 자체가 만들어진 판타지가 아닌가. 중요한 건 이런 다소 작위적일 수 있는 판타지를 가져와 무얼 이야기하려는가 하는 점일 게다.

 

최근 tvN에서 방영됐던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같은 드라마가 우리가 안다 치부했던 가족을 다시 들여다봄으로써 우리 시대의 대안적 가족관을 모색했다면, <18어게인>은 판타지 설정을 통해 가족을 다시 보는 시도를 하고 있다 여겨진다. 홍대영은 고우영이라는 젊은 몸이 가진 시각에 의해 가족을 다시금 본다. 물론 마인드는 중년의 홍대영 그대로지만 그를 보는 외부의 시각들은 이제 고등학생이라는 젊은 세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중년과 젊은 세대의 교차점과 소통이 홍대영이라는 인물 내부에서부터 일어나게 된다.

 

물론 홍대영의 일방적인 시선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그의 달라진 시각이 가족을 대하는 방식을 달리 하게 만들고, 그것은 가족들 역시 홍대영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태어난 게 부모의 불행이었다 생각했던 시아가 홍대영이 준 통장에 적힌 글귀 속에서 딸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뒤늦게 깨닫고 눈물 흘리는 장면이 그렇다. 또 정다정이 홍대영에게 전화로 한 번도 필요할 때 옆에 없었다고 한 말들은, 이제 고우영이 사실 홍대영이었다는 걸 알게 된 정다정에게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까.

 

<18어게인>은 그 판타지 설정 자체가 작위적일 수밖에 없는 드라마다. 하지만 이런 작위성을 가져와 일종의 '드라마 게임'을 하듯, 다시금 가족을 들여다보게 해준다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중요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 이를 통해 우리도 그저 다 알고 있다 여겼던 우리의 가족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들고 있으니.(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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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토반', 시대의 권력과 맞서는 상고 출신 삼총사가 주는 판타지들

 

이종필 감독의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1995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는다. 그 시기는 현재의 우리들에게 시대의 변곡점처럼 기억되는 1997년 IMF 외환위기를 앞두고 그 징후들이 보이던 때이고, 나아가 그 거품의 극점을 향해 달리던 이른바 '세계화'의 그림자가 사회 전체를 뒤덮었던 때다.

 

그 시대 삼진그룹에 다니는 상고 출신 여사원들은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회사생활을 일상으로 삼았다. 그들은 아침 일찍 출근해 밤새 어질러진 사무실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상사들의 커피를 타서 일일이 갖다 주며 심지어 구두까지 닦아 대령해놓는 그런 허드렛일들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게다가 회사는 세계화 시대를 맞아 영어 토익 600점 이상을 받으면 상고 출신 여사원들도 대리 승진을 할 수 있다고 공표한다. 물론 그 짧은 시간에 그런 결과를 낸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실무 능력 베테랑의 '선배님'이지만 실상은 커피 타 나르는 일이 주업무(?)인 생산관리3부의 이자영(고아성),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지만 대졸 출신 여사원에게 아이디어를 도용당하고 자신은 회의 시간에 햄버거나 나르는 일을 하는 마케팅부 정유나(이솜) 그리고 수학 올림피아드 우승 출신이지만 회계부에서 가짜 전표 맞추는 일을 하는 심보람(박혜수)이 영어토익반에 함께 한다.

 

이러한 상고 출신 여 삼총사를 주인공을 세운 건 다분히 현재의 여성주의적 관점이 투영된 선택으로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의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 노동'이 이 영화가 그려내는 회사의 위기와 이를 이겨내는 판타지 스토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개연성 때문이기도 하다. '오지랖'으로 대변되는 이자영이 우연히 공장에 갖다가 보게 된 폐수 유출을 그냥 보고 넘기지 못하는 것이나, 이 사건을 알리기 위해 정유나 같은 행동파가 나서고 뭐든 척척 계산해내는 심보람이 제 역할을 해내는 것이 그렇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시대가 모욕하는 여성들의 현실을 전면으로 끌어오면서 동시에 외환위기의 전조로 보이던 글로벌 투기자본들이 벌이는 음모들에 맞서는 작은 영웅들과 이들과 연대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회사에서는 천시됐던 이들의 능력들은 의외로 거대한 글로벌 투기자본들의 음모를 분쇄하는데 활용되고, 이로써 삼진그룹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1990년대를 향수하게 만드는 이들의 옷이나 스타일들 그리고 음악 같은 것들이 더해지면서 복고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이 영화는 기실 스토리에 있어서도 현실보다는 판타지를 선택한다. 실제로는 1997년 IMF 체제로 이어지며 글로벌 투기자본에 의해 여기저기 무너졌던 당대의 현실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그래서 이들의 승리와 그로 인해 보상받는 회사 내에서의 달라진 위상 같은 것들이 현실로 느껴질 리 없다. 결국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가장 먼저 회사 밖으로 내몰린 건 바로 잉여 노동 취급 받던 여성들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영화의 현실과는 다른 판타지 선택은 이 영화가 1990년대를 시대로 가져왔지만 2020년을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던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 때는 우리가 막아내지 못했고 또 변화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마땅히 그렇게 막아내야 하고 변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에둘러 판타지로 말해주고 있어서다.

 

무엇보다 여성 삼인방이 등장하면서도 그 흔한 멜로 하나 들어가 있지 않고, 대신 이들의 끈끈한 연대의식이 전면에 담긴 점이 눈에 띤다. "마이 드림 이즈 커리어우먼"이라고 외쳤듯이 영화가 온전히 일의 세계 속에서의 여성들에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 이자영과 정유나 그리고 심보람이라는 삼총사 캐릭터가 굉장한 투사가 아닌 평범하지만 그 속에 '사회적 선'에 대한 비범함을 가진 존재들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벌레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이들의 외침처럼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네 삶 어딘가에서 그저 포기하지 않고 꿈틀대는 그 누군가가 있어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으니.(사진:영화'삼진그룹 영어토익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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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뎐', 구미호·이무기에 아귀·우렁각시까지

 

이건 현대판으로 재해석된 <전설의 고향>이 아닐까. tvN 수목드라마 <구미호뎐>은 점점 우리네 설화 속 인물들이 뒤섞인 세계관을 펼쳐내고 있다. 구미호 이연(이동욱)은 한때 백두대간을 호령하던 산신이었지만 남지아(조보아)의 전생이었던 공주 아음과의 인연으로 속세로 떨어져 인간세상을 어지럽히는 요괴들(역시 설화 속 인물들이다)을 처치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된다.

 

구미호 이연과 남지아의 수백 년에 걸친 비극적인 운명을 만들어낸 건 다름 아닌 이무기다. 이무기가 아음의 아버지이자 당대의 왕의 육신으로 들어가 국정을 농단(?)하자 아음은 이무기와 일종의 협상을 한다. 이무기가 산신 구미호를 제거하려는 욕망을 갖고 있다는 걸 안 아음은 이무기에게 왕 대신 자신의 몸을 내어주겠다고 하고 함께 산으로 가자 제안한 것.

 

그래서 이무기와 구미호는 아음을 중간에 놓고 서로 대적하게 된다. 아음의 몸을 차지한 이무기가 그를 이용해 구미호를 찾아내려 했다고 하자, 구미호는 거꾸로 자신이 아음을 이용해 이무기를 끌어내려 한 것이라고 답한다. 물론 그 말을 진심이 아닌 다른 의도로 한 말이겠지만, 구미호와 아음의 몸을 차지한 이무기가 대결하고, 결국 구미호의 칼에 이무기가 들어간 아음이 죽게 되는 그 전생의 일을 알게 된 남지아는 괴로워한다.

 

그런데 이 과거의 비극은 현재에 다시 재현되려 한다. 이무기에게 영혼을 판 대가로 수명을 늘려 지금껏 살아가는 방송국 사장(엄효섭)은 섬에 봉인되어 있던 이무기를 깨워내고 그에게 인간제물을 바쳐 성장시킨다. 이제 청년이 된 이무기(이태리)는 다시금 구미호 이연과 대결하게 되고 남지아 역시 그 중간에 끼어 이무기의 제물이 될 위기에 처한다.

 

<구미호뎐>은 이처럼 구미호와 이무기의 대결구도를 명확히 세워놓고 그 중간에 세워져 있는 남지아를 제물(신부)로 삼으려는 이무기와 이를 막아 평범하고 행복하게 한 생을 마감하게 하려는 구미호의 치열한 대결을 그려내고 있다. 애초 이연의 이복동생인 이랑(김범)이 이연과 대적하는 악역처럼 등장했지만, 이들의 관계는 끈끈한 형제애로 묶여 있다. 그래서 향후 이무기와의 대결 속에서 이랑은 어떤 변화된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아졌다.

 

사실 <구미호뎐>은 구미호의 재해석을 통한 현재적인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는데 있어서는 어딘지 부족한 면이 느껴진다. 고전을 현재로 끌어온다는 것 자체가 현재의 어떤 결핍들을 끄집어내는 일일 수 있지만, <구미호뎐>의 주제의식은 전통적인 '권선징악'의 틀 안에 머물러 있다는 심증을 지우기 어려워서다. 인간에게 선을 행하는 구미호와 악을 행하는 이무기의 명확한 대결구도는 그걸 보여준다.

 

하지만 권선징악이라는 평이한 주제의식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고전 속 구미호나 이무기, 우렁 각시 같은 존재들을 끌어와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점이나, 그 대결양상을 현대적 판타지 액션으로 보여주는 면들은 충분히 흥미로울 수 있다. 특히 <전설의 고향> 속 다소 고전적으로 박제되어 있던 요괴나 귀신 같은 존재들을 다시금 깨워내 현재 속으로 되살려냈다는 점은 이 작품이 가진 가장 큰 가치가 아닐까 싶다.

 

아귀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이 이제는 좀비처럼 보이는 현재의 시각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구미호는 판타지 장르의 슈퍼히어로 같은 느낌으로 재해석된다. 갑자기 등장한 녹즙아줌마를 두고 저 인물이 설화 속 어떤 인물인가를 예상하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나오는 건 그래서 이 드라마가 가진 좋은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서구의 캐릭터들에 익숙해 있는 우리네 시청자들에게 우리도 이런 캐릭터들이 존재한다는 걸 작품이 다시금 상시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우리네 캐릭터들은 최근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우리네 콘텐츠에서 우리가 좀더 연구하고 파봐야할 존재들이 아닐 수 없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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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뎐'은 tvN 판타지의 계보를 이을 수 있을까

 

남자 구미호다. tvN 새 수목드라마 <구미호뎐>은 KBS <전설의 고향>에서 그토록 많이 리메이크되고 재해석됐던 구미호라는 소재를 가져왔다. 그런데 특이한 건 구미호가 남자라는 것. 지금껏 봐왔던 여성 구미호와는 캐릭터가 다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야기도 달라진다.

 

또한 시대적 배경이 현대라는 점 역시 <구미호뎐>이 <전설의 고향>보다는 <트와일라잇> 같은 이질적인 존재들과 대결하거나 공존해가는 스토리에 더 가깝게 만들고, 그것은 남자 구미호 이연(이동욱)의 스타일에서도 나타난다. 잘 차려입은 수트에 비를 몰고 다니는 캐릭터 성격에 잘 어울리는 스타일리시한 우산. 그리고 그 우산이 무기로 변해 이랑(김범) 같은 이연의 배다른 동생과 벌이는 액션은 우리식 전설의 이야기보다는 외국의 슈퍼 히어로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흥미로운 건 이런 해외의 슈퍼히어로물이나 <트와일라잇> 같은 판타지물의 색깔을 가져와 우리네 토속적인 전설이나 민담 속 주인공들을 재해석해 놨다는 점이다. 구미호 이연이 한 결혼식장을 찾아가 제거하는 신부는 알고 보면 우리가 구전동화 속에서 읽곤 하던 '여우 누이'다. 맑은 날에 갑자기 비가 내리고 우산을 홀로 쓰고 결혼식장을 찾는 이연은 왜 갑자기 비가 오냐고 말하는 이들에게 혼잣말로 "여우가 시집을 가서"라고 말한다.

 

그런 대목은 이 드라마의 세계관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구전동화 속에 등장하는 스토리지만 거기 나왔던 캐릭터들이 현대에도 인간들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게 이 드라마의 세계관이다. 첫 화에 등장하는 여우고개는 인간과 여우 같은 색다른 존재들이 부딪치는 공간이고 그래서 사고가 벌어진다. 여우들은 인간세계에 들어와 인간들에게 해악을 미치기도 하는데, 구미호 이연은 과거 사랑했던 한 여인 아음을 환생시키기 위해 그런 해악을 끼치는 존재들을 단죄하는 일을 하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 여우의 이야기는 '구미호'의 모티브를 그대로 가져왔고, '은혜를 갚는다'는 캐릭터의 성격 또한 그대로 가져왔다. 하지만 이연이 은혜를 갚기 위해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어지럽히는 자들을 제거하는 일을 하는 곳은 현재의 공간에 숨겨진 이른바 '내세 출입국관리사무소'라는 구체적으로 구현된 판타지 건물에서다.

 

이런 현실과 판타지가 한 세계 위에 겹쳐진 공간은 이미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와 <호텔 델루나>에서 성공적으로 그려진 바 있다. 아마도 tvN표 판타지라고 불러도 될 법한 이런 공간의 구현은 점점 그 노하우가 축적되고 있는 느낌이다. <구미호뎐>은 그런 점에서 이런 전작들의 수혜를 그대로 입고 있다.

 

무엇보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에서 저승사자 역할로 도깨비만큼 존재감을 보였던 이동욱은 이 드라마의 개연성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독보적인 캐스팅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오랜만에 얼굴을 보이는 김범의 캐릭터 역시 기대되는 대목이다. 조보아가 연기하는 남지아라는 캐릭터는 이연과의 인연으로 엮어질 운명으로 '겁 없는' 인물의 매력을 가졌지만 처음부터 이연의 존재를 시험하기 위해 고층 건물에서 추락하는 장면은 좀 과한 느낌도 준다. 물론 <트와일라잇>의 한 장면처럼 보이긴 했지만.

 

무엇보다 <구미호뎐>이 흥미로운 건 수의사의 모습으로 이연을 도와온 토종여우 구신주(황희), 삼도천 문지기 탈의파(김정난), 야생동물이었지만 학대를 당하다 이랑에 의해 자유를 얻은 기유리(김용지), 설화 속 주인공이 한식당 사장으로 등장하는 우렁각시 복혜자(김수진) 같은 익숙한 캐릭터들을 현대식으로 해석해낸 부분이다. 이들이 어떤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확실히 <구미호뎐>을 보면 tvN 판타지가 이제 하나의 계보를 이야기할 정도로 색깔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나 <호텔 델루나> 같은 작품이 보여준 독특한 미적 분위기들이나 톤 앤 매너, 세계관이 일관되게 <구미호뎐>의 독특한 세계를 많은 설명 없이도 설득하게 해주는 면이 있어서다. 그래서 기대감은 당연히 커진다. 다만 그만큼의 부담을 떨쳐내고 그 작품만의 색다른 이야기나 메시지를 과연 <구미호뎐>이 얼마나 흥미롭게 담아낼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첫 단추는 일단 잘 꿴 느낌이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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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씽', 고수와 허준호의 살벌한데 유쾌하고 훈훈한 스릴러라니

 

잔인하게 살해된 시체들이 등장하는 살벌한 스릴러가 아닐까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참혹하게 살해되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유기되어 '실종'처리된 사건들. 장판석(허준호)이 삽자루를 들고 어딘가를 찾아다니고 죽은 사체들을 하나씩 찾아내 끌어내는 이 드라마의 첫 시퀀스는 당연히 그 인물이 연쇄살인범일 거라는 심증을 갖게 만든다. 하지만 그건 일종의 트릭이다. 그는 실종처리 되어 사라진 사체들을 찾는 것이었을 뿐이니 말이다.

 

OCN 토일드라마 <미씽: 그들이 있었다>에서 장판석이 사체를 찾는 이유는 죽었지만 사체조차 발견되지 못한 억울한 영혼들을 저승으로 보내기 위함이다. 그 영혼들이 머물고 있는 곳은 바로 두온마을. 산 자들의 눈에는 그 장소도 영혼도 보이지 않지만 무슨 일인지 장판석에게는 보이고 어쩌다 이 곳으로 들어오게 된 생계형 사기꾼 김욱(고수) 또한 그걸 보게 된다.

 

실종 신고 된 아이 서하늘(장선율)을 그 곳에서 만난 김욱은 어린 시절 엄마를 애타게 찾았던 자신의 모습을 그 아이에게서 보고는 그를 외면하지 못한다. 그래서 엄마를 꼭 찾아주겠다 약속하지만 그 아이는 이미 사망한 영혼이었다. 결국 아이를 살해한 범인과 그 범인이 유기한 사체를 찾기 위한 김욱과 장판석의 공조가 시작된다. 아이의 가방에서 피 묻은 고가의 프라모델을 발견한 김욱은 생계형 사기꾼답게 그걸 역이용해 범인이 새 아빠였다는 걸 밝혀내고 그 사체를 찾아내는데 성공한다.

 

<미씽>은 그 독특한 설정으로 인해 판타지와 스릴러의 기묘한 결합을 보여준다. 이제 김욱과 장판석은 두온마을의 억울한 영혼들을 저승으로 보내기 위해 사체를 찾아내는 일을 공조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억울한 영혼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이 소개되고, 잔혹한 범인을 추적하는 스릴러가 더해진다.

 

OCN에서 줄곧 시도해온 다양한 스릴러들이 있었지만, <미씽>은 여기에 판타지를 섞는 독특한 시도를 하고 있다. 그래서 스릴러의 긴장감만큼 사연자들의 이야기와 이를 풀어주는 김욱, 장판석의 진심이 훈훈함을 더해준다. 지금껏 이른바 OCN표 스릴러가 너무 잔혹하게만 느껴졌던 시청자라면 <미씽>은 확실히 그런 작품들과는 차별화된 면을 보여준다.

 

드라마는 tvN <호텔 델루나>의 스릴러 버전 같기도 하고, <전설의 고향>에 자주 등장하던 원귀의 한을 풀어주는 사또 이야기의 현대식 해석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판타지적 설정이 시청자들에게도 깊은 몰입감을 주는 건 아마도 '실종'이라는 무거운 현실의 키워드가 거기 드리워져 있기 때문일 게다.

 

물론 사망 또한 견디기 어려운 아픔이지만, 사체조차 찾지 못해 실종으로 처리되어 있는 상황은 더 큰 고통을 가족과 친지들에게 남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온마을이라는 판타지적 공간의 평화로운 정경은 슬픔과 위로가 섞여진 공간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김욱과 장판석이 그들의 사체를 찾아내는 과정은 이렇게 떠돌던 영혼이 가족의 품에 안기는 과정이기도 하다. 스릴러지만 따뜻한 위로 같은 게 느껴지는 이유다.(사진:OCN)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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