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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일, 지정생존자’, 이준혁 같은 인물의 권력이 위험한 이유

 

저런 인물이 권력을 잡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tvN 월화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는 원작과는 달리 이런 관점에 더 집중한 건 아닐까. <60일, 지정생존자>는 박무진(지진희)이라는 하루아침에 대통령 권한대행의 자리에 오르게 된 인물이 그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대처하며 국정운영을 해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지만, 오히려 더 많이 부각된 건 오영석(이준혁)이라는 국회의사당 테러범들과 연결되어 있는 인물이 권력을 농단하는 모습이다.

 

몇 회에 걸쳐 박무진은 오영석의 배후세력들에게 철저히 당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박무진은 무너진 국회의사당 앞에서 장관임명식을 하다 총격당하고, 배후세력을 은밀히 추적하던 국정원 요원 한나경(강한나)과 정한모(김주헌) 역시 수세에 몰린다. 정한모는 아이가 납치당하자 생포한 전직 북한 장성인 명예준을 자신이 죽였다 거짓 증언한다. 한나경도 국정원에 체포되어 심문을 받다 박무진의 도움으로 풀려나 은밀하게 배후세력들을 수사한다.

 

수술을 받게 된 박무진이 권한대행을 할 수 없게 되자 그 공백을 국방부장관이 된 오영석이 채우게 된다. 그런데 오영석이 권한대행을 맡게 되면서 그는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한다. 박무진을 총격한 테러범을 포획하지 않고 사살하라 명령하고, 양진만 전 대통령(김갑수)이 추진하려다 주민들의 반발로 중단된 해군기지사업을 기습적으로 통과시켜 진행한다.

 

그런데 그것은 오영석의 결정이라기보다는 그의 배후세력을 이끄는 ‘어르신’과의 결탁에 의한 것이다. 해군기지사업을 그들은 비즈니스로서 재개하고, 그것을 통해 양진만 전 정권이 만들어놓았던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깨버리려 한다. 국민들을 불안 속에 몰아넣고 그것으로 권력을 공고하게 하며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려 함이다.

 

물론 미드 원작에서도 전복을 꿈꾸는 배후세력들이 등장하지만, <60일, 지정생존자>의 오영석이나 그 배후세력들의 이야기는 어딘지 우리에게 낯설지가 않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박근혜 정부 시절에 겪었던 이른바 ‘국정농단’ 사태가 떠오르고, 또 이명박 정부 시절에 겪었던 4대강 사업 같은 국가 재난급의 사업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60일, 지정생존자>는 그래서 박무진이 위기 상황 속에서 선한 선택을 하고, 그것이 이기는 과정을 보여주려는 것이 궁극적인 이야기의 메시지지만, 오영석 같은 자격 없는 인물이 권력을 갖게 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가를 보여주려는 이야기도 상당히 부각되어 있다. 드라마가 다소 지지부진하고 고구마 가득한 상황들이 전개됐던 건 바로 이런 오영석을 통해 하려는 이야기가 부각되게 되면서 생겨난 일이다.

 

드라마는 오영석과 박무진을 그래서 극적으로 비교해 놓는다. 이를테면 킹메이커를 꿈꾸는 차영진(손석구)의 시선으로 권한대행을 맡게 된 박무진과 오영석의 다른 자세를 비교하는 방식이다. 차영진은 그간 박무진이 단 한 번도 대통령의 책상에 앉지 않았다는 걸 되새기며 그와 정반대로 들어오자마자 그 자리에 앉아 집무를 보는 오영석과 비교한다.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그 자리에 앉으면” 얼마나 위험한가 하는 걸 보여주는 것.

 

<60일, 지정생존자>가 궁극적으로 보여주려는 건 바람직한 리더상은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박무진처럼 타협하려 하지 않고 항상 곧게 진실만을 향해 나가는 인물을 그 누구도 정치에 적합하다 여기진 않는다. 반면 오영석처럼 권력을 위해서는 엄청난 짓까지 서슴없이 하고 연기를 하는 인물이 오히려 정치에 더 잘 어울려 보인다. 하지만 차영진은 오영석이 아닌 박무진을 선택한다. 그 이유는 “선이 이기는 걸 보고 싶어서”다. 우리네 정치도 이런 게 가능할 수 있을까.

 

물론 그건 요원한 일이고 순진한 판타지일 게다. 대신 국정농단 사태를 겪으며 대중들이 생각하게 된 건 선은 아니더라도 부적절한 악이 그 자리에 앉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는 점이다. <60일, 지정생존자>가 박무진의 선만큼 오영석의 악에 시간을 할애한 건 이런 반면교사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웰컴2라이프’ 정지훈의 ‘인생극장’, 되돌릴 수 있다면

 

기획의도에 들어가 있듯이 MBC 새 월화드라마 <웰컴2라이프>는 과거 <일밤> ‘인생극장’을 떠올리게 한다. 두 개의 선택지가 있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하고 나서 드는 후회. 그래서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하게 만들었던 그 코너.

 

하지만 <웰컴2라이프>가 다른 점은 그 두 개의 선택을 하게 되는 인물, 이재상(정지훈)이 두 경험을 온전히 다 하게 된다는 점이다. 평행세계를 경험하게 되는 이재상은 현실에서는 ‘법꾸라지들’을 돕는 속물 변호사. 그는 자신이 일하는 율객 로펌의 에이스로서 재벌가 홍우식품 일가의 범법행위들을 막아주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는 그런 변호의 기회가 당연히 의뢰인에게 부여된 권리이고 그래서 자신은 그 일을 해주는 것뿐이라 생각한다. 심지어 홍우식품 재벌3세 석경민(김태훈)이 대학에서 성추행을 하려는 것을 막은 오영식(최우성)을 폭행은 물론 그 영상을 찍어 유포한 행위를 그는 교묘한 방식으로 피해가게 해준다. 여성을 회유해 사실은 그가 석경민과 사귀는 관계였다고 말하게 함으로써 오영식의 개입을 3각관계로 몰아넣고, 석경민의 폭행 또한 우울증 약 부작용을 들어 심신미약상태에서 벌어진 일로 변호한 것.

 

이 변호를 통해 이재상은 율객 로펌에서의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지만, 그런 그에게 한때 연인이었던 라시온(임지연)은 분노한다. 그래서 툭하면 나타나 욕을 하고 그를 때려눕힌다. 그런데 변호사로서 당연히 해야 되는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이재상에게 더 이상 넘어서는 안되는 선을 넘는 일이 발생한다. 홍우식품 회장의 비서 서영주(이다현)가 회장 사모 신정혜(서이숙)의 사주로 납치되어 끔찍하게 살해당한 걸 목격한 것. 그런 짓으로 저지르고도 다른 이를 대신 살해범으로 잡아넣으라고 지시하는 신정혜 앞에서 이재상은 각성한다. 하지만 그렇게 경찰서로 라시온을 찾아가는 와중에 그는 신정혜의 명령에 의해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

 

현실세계에서의 잘못된 선택으로 무고한 이가 살해되는 걸 경험했던 이재상은 그러나 깨어나면서 평행세계 속으로 들어온다. 그 곳에서 이재상은 라시온과 결혼해 부부로 살아가는 인물이고 변호사가 아니라 검사다. 결국 이 홍우식품과 관련된 범죄를 경험했던 이재상이 이 평행세계에서 그 범죄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내용이 바로 <웰컴2라이프>다.

 

잘못된 선택 때문에 생겨난 결과에 대해 후회하는 건 어쩌면 우리가 늘상 경험하는 일들일 게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한다. <웰컴2라이프>는 바로 이 지점의 판타지를 파고든다. 만일 평행세계가 있어 그 잘못된 선택을 되돌려 결과도 바꿀 수 있는 그런 기회를 갖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여기에 이 현실과 평행 세계를 동시에 경험하게 되는 인물이 변호사와 검사를 오간다는 사실은 이 선택의 문제가 ‘정의’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말해준다. 돈과 권력이 있어 부정한 일들을 저지르는 세력들이 있고, 어쩌다 그들의 부정을 돕게 되는 선택을 하게 됐던 인물이 다른 선택으로 정의를 구현해가는 이야기. 장르물과 판타지가 섞여져 만들어내는 카타르시스가 그 이야기 구조 속에 들어가 있다.

 

과연 이재상은 평행세계를 통해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되돌릴 수 있을까. 라시온이라는 현실에서는 옛 연인이었고 평행세계에서는 부부인 그 인물과 함께 만들어갈 사랑과 정의의 판타지가 기대되는 대목이다.(사진:MBC)

Posted by 더키앙

공정하지 못한 사회, 공정함을 기대했던 오디션의 배신

 

Mnet <슈퍼스타K> 시즌2에서 허각이 우승자로 뽑혔을 때 심지어 신드롬까지 생겨났던 건 오디션 프로그램이 공정함에 대한 판타지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환풍기 수리공’으로 일하며 행사를 뛰며 노래를 해왔던 허각이지만, <슈퍼스타K>의 무대는 그의 스펙이나 배경 따위는 뒤로 밀쳐두고 오로지 가창력으로 그를 최종 우승자로 세웠다. 스펙과 태생으로 미래가 규정되는 우리네 불공정한 사회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이 그 공정성의 판타지를 제공했고 그래서 허각 신드롬이 생겨났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벌어지고 있는 Mnet <프로듀스X101(이하 프듀X)>의 투표조작논란을 보고 있자면 이런 오디션의 판타지가 과연 진짜였는가를 의심하게 된다. 지난달 19일 방영된 생방송 파이널에서 1위부터 20위 사이의 득표수가 ‘7494.442’라는 특정 숫자의 배수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불거진 논란이다. 확률적으로 이런 동일한 득표수 차이나 특정 숫자의 배열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개입이 있었을 거라는 추측은 합리적인 의심일 수 있다.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자 Mnet 측은 공식 입장을 내놨다. “득표 수로 순위를 집계한 뒤 각 연습생의 득표율도 계산해 최종 순위를 복수의 방법으로 검증했다. 제작진이 순위를 재차 검증하는 과정에서 득표율을 소수점 둘째 자리로 반올림했고, 득표율로 환산된 득표 수가 생방송 현장에 전달됐다.” 결국 이 이야기는 득표 수 집계 및 전달 과정에 오류가 있었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최종 순위에는 변동이 없다”고 밝혔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자체가 심각한 조작이라고도 볼 수 있다. 시청자들은 물론 이런 해명조차 납득하지 못했다.

 

결국 해명이 신뢰를 잃어버리게 되자 Mnet 측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특단의 조치를 단행했다. 수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히고 책임질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겠다는 것. 경찰은 이 프로그램 제작 사무실을 압수수색했고 투표 관련 자료들을 확보해 분석에 들어갔다고 한다. 데이터 보관업체가 집계한 투표 결과와 방송에서 발표한 투표결과를 비교 분석한다는 것. 만일 그 결과가 같다고 해도 데이터 보관업체 또한 제작진과 공모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결과가 같지 않다면 제작진의 조작 의혹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는 구체적으로 조작을 의심할만한 증거들이 나온 것이지만, 이미 이전부터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늘 조작논란이 불거지곤 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음악을 두고 순위를 매긴다는 일이 자의적인 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마다의 취향이 다른 시청자들로서는 그 결과를 100% 받아들일 수는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증거가 없어 유야무야 지나가버렸던 게 현실이었던 것.

 

또 구체적인 순위 조작은 아니어도 방송 편집을 통한 제작진의 개입에 대한 논란은 늘 있었다. 예를 들어 마지막 라이브 경연에 들어가면 노래를 하기 전 편집 영상이 먼저 들어가곤 하는데, 이 영상을 어떤 방식으로 편집해내느냐에 따라 투표 결과는 당연히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악마의 편집’ 같은 노골적인 개입도 있었지만, 잘 보이지 않는 편집의 개입 또한 투표 결과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최근의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이런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공정성 논란을 피해가기 위해 100% 투표 방식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프로듀스 101>은 아예 대놓고 ‘국민 프로듀서님’이라는 호칭을 쓰며 시청자들의 참여로 이뤄지는 순위를 강조했다. 그것이 공정한 오디션의 이미지를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공정할까는 의문이다. 결국 최종적으로 방송에 나오게 되는 것은 제작진의 편집을 거쳐서다. 즉 그 방송 편집이 여기 출연한 참가자들을 어떤 방식으로 담아내느냐에 따라 당락은 결정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최근에는 이 ‘팬덤 오디션’이 비뚤어진 부정투표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최종 투표에 있어 자신들이 미는 참가자에 투표를 독려한다는 취지로 상당한 경품까지 내걸고 있다는 후문이다. 공정성은 결국 판타지일 수밖에 없다.

 

과연 오디션은 앞으로도 유효한 음악 프로그램의 형식이 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다시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서 음악으로 순위를 세운다는 일이 가능한 일일까. 특히 요즘처럼 취향이 강조되는 시대에. 공정성이 사라진 오디션에 남는 건 결국 냉혹한 비즈니스뿐이다. 그 세계는 현실적인 것들이 오고갈 뿐, 공정성 같은 판타지가 설 자리는 없다. 이번 <프듀X> 사태는 바로 그 민낯이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사진:Mnet)

Posted by 더키앙

우울한 현실 위로하는 '호텔 델루나'의 독특한 판타지

 

과연 구찬성(여진구)은 장만월(이지은)을 구원할 것인가. tvN 토일드라마 <호텔 델루나>에서 장만월은 삶과 죽음을 벗어나 있는 존재다. 그는 고목이 되어버린 나무에 묶여버린 채, 천년 넘게 죽지 못하고 살아왔다. 물론 살아있다고 해도 그것을 삶이라 부르기 어렵다. 오래 전 그가 사랑했던 고청명(이도현)이 오기를 그는 기다린다. 한 자리에 붙박여 고목이 되어 잎 하나 내놓지 못하는 나무는 그래서 장만월 자신이다.

 

그 나무가 있는 곳에 세워진 호텔 델루나 역시 장만월의 모습 그대로다. 그 곳은 억울하게 죽은 원귀들이 찾는 곳이다. 장만월은 그들을 ‘힐링’시키고 그렇게 이승의 원을 지워준 후 저 세상으로 보낸다. 그 곳은 실제 구청에 등록되어 있는 곳이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삶과 죽음이 걸쳐져 있는 곳.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것처럼 보이고, 죽어 있지만 살아있는 건, 고목이나 호텔 델루나나 장만월이나 마찬가지다.

 

그 곳에 구찬성이 들어온다. 그는 아무런 능력이 없는 평범한 인간이다. 하지만 장만월이 그에게 일종의 저주를 내린다. 귀신을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 끔찍하게 죽은 귀신들의 형상은 가뜩이나 마음 약한 구찬성에게는 공포 그 자체다. 그래서 호텔 델루나나 그 곳을 그대로 닮은 장만월, 그리고 어두운 곳에 음산한 기운을 풍기고 있는 고목 또한 구찬성에게는 공포로 다가온다.

 

하지만 구찬성은 그 평범한 인간이 가진 착한 심성으로 그 공포를 연민으로 끌어안는다. 그것은 이 곳을 찾는 원귀들의 무섭게 일그러진 형상 그 너머에 담겨진 저마다의 사연들을 듣기 시작하면서다. 두 눈이 없는 원귀는 그래서 공포로 다가오지만 그가 살아생전에는 차츰 앞이 보이지 않던 시각 장애를 가진 사람이었다는 걸 알고는 연민의 존재로 바뀐다.

 

그리고 그 눈이 없는 원귀가 저 세상으로 돌아가기 전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줬던 손길을 기억하고 그를 만나고 싶어 하자 구찬성은 자신의 손을 빌려 그 손길을 준 사람을 찾아준다. 하지만 장만월은 그 ‘따뜻한 손길’이라는 것이 사실은 원귀가 그렇게 믿고 싶은 기억일 뿐, 실상은 살려 달라 내민 손을 뿌리친 뺑소니범의 손길이라는 걸 알려준다. 그 사실을 깨달은 원귀가 그 뺑소니범을 해코지하려 할 때 구찬성은 자신을 던져 그걸 막아준다. 그런 복수가 결국 원귀를 먼지처럼 사라지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건 뺑소니범을 뒤늦게 경찰에 넘기고 구찬성이 하는 이야기다. 원귀가 그 뺑소니범이 뿌리친 손길을 애써 ‘따뜻한 손길’로 기억하려 했던 건 바로 그 원귀 자신의 따뜻한 심성 때문이었다는 것. 현실에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존재는 그렇게 구원받는다. 그 억울함은 물론이고 그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이었는가를 구찬성 같은 누군가가 기억해준다는 것. 그것이 구원이다.

 

<호텔 델루나>는 죽은 공간에 피어나는 잎과 꽃을 이야기한다. 그 곳은 아무런 희망도 없고 원망과 아픔만을 떠안은 죽음들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네 현실을 에둘러 말하는 것일 게다. 판타지란 결국 현실의 결핍 위에 존재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 무엇도 바뀌지 않을 것 같은 죽음 같은 현실 속에서 판타지적 존재로 서있는 건 그래서 장만월이 아니라 구찬성이다. 구찬성은 그 죽음 같은 현실 위에 따뜻한 온기를 하나씩 던져 넣는다.

 

고목에 잎이 피어나고, 장만월의 사막 같은 마음에 조금씩 촉촉함이 생겨나며, 호텔 델루나가 어둡고 칙칙한 죽음의 공간에서 밝은 삶의 에너지가 더해지는 과정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주는 기묘한 힐링 포인트다. 처음에는 공포의 존재로 귀신을 보며 화들짝 놀라기만 했던 구찬성이 이제 그 귀신들에게 다가가 “커피 한 잔 더 하시겠습니까?”하고 묻는 장면은 그래서 그 자체로 위로가 된다.

 

깨지고 망가진 형상을 가진 귀신들은 그래서 더 이상 공포의 존재가 아니다. 대신 현실에서 어떤 억울한 사연들을 갖고 찾아온 아픈 존재들이다. 아마도 우울한 현실에 무엇 하나 희망을 찾기 어려운 대중들이라면 그 아픈 존재들에 이입할 수 있을 게다. 살아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고,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닌 그 어정쩡한 공간에서 오히려 더 고통스러운 그 존재들을 이해의 눈으로 바라보고 보듬어주는 구찬성이 구원의 존재처럼 보이는 이유다.(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아름다운 세상’이 사이다 판타지보다 고구마 현실을 담는 건

 

JTBC 금토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이 그리는 세상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권력의 힘으로 거짓이 진실을 덮고 있고, 그 앞에서 힘없는 서민은 무력하기 이를 데 없다. 학교 이사장인 오진표(오만석)는 그 권력을 통해 자신의 아들 준석(서동현)이 저지른 죄를 은폐하고, 심지어 그건 가진 자들의 당연한 삶이라고 아이에게 말하는 인물이다.

 

준석의 엄마 서은주(조여정)는 사고를 당한 선호(남다름)의 엄마 강인하(추자현)의 친구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만 아들을 위하는 일이라며 그 은폐에 동참한다. 강인하의 남편 박무진(박희순)은 끝까지 진실을 향해 나가려 하지만 사고에 대한 결정적 증거를 말하려던 신대길(김학선)이 뺑소니로 사망하고 그것이 오진표의 사주라는 걸 직감으로 알게 되자 분노한다.

 

그래서 오진표를 찾아가 주먹질을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를 무력감에 빠지게 한다. 분명한 진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겨우 그런 폭력에 불과하다는 것에 절망한다. 심지어 사람까지 사주해 죽이고도 버젓이 조문을 가는 오진표의 뻔뻔함과, 아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친구에게조차 하지 말아야할 짓을 하는 서은주의 답답함, 그리고 그 부모 밑에서 역시 거짓 연기를 하며 진실을 은폐하는 준석의 엇나감까지 박무진이 처한 현실은 너무나 비틀려 있다.

 

아마도 시청자들은 <아름다운 세상>이 담고 있는 전혀 ‘아름답지 않은’ 현실을 보며 고구마를 꾸역꾸역 넘기는 듯한 답답함을 느낄 게다. 진실이라는 사이다는 등장할 듯 등장하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고구마 은폐와 범죄의 연속. 도대체 이 드라마는 왜 이토록 답답함만을 의도적으로 안기고 있는 것일까.

 

뺑소니로 죽은 신대길이 박무진에게 선물로 준 선인장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진실을 향해 나가는 박무진에게 신대길은 이렇게 말하며 선인장을 선물했다. “선인장을 닮으셨네요. 사막에서도 우직하게 버티는 놈이 선인장 아닙니까. 하지만 제가 오아시스가 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우리가 이 드라마를 통해 느끼는 감정은 바로 그 사막 한 가운데 놓여진 선인장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이것은 <아름다운 세상>이 단지 진실을 은폐하는 자들에게 한 방을 먹이는 통쾌한 사이다 드라마가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사실 고구마니 사이다니 하며 단순화되어 표현되는 작금의 드라마들은 너무 현실을 단순화해서 담아내는 면이 있다. 즉 답답한 현실 상황을 드라마 속으로 슬쩍 가져와 비현실적이지만 그 순간만큼의 속 시원함을 안겨주는 사이다 판타지로 그려내는 것. 하지만 그런 판타지로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오히려 바뀐 듯한 느낌만 주어 현실에 대한 무감함만 커질 수도 있다.

 

<아름다운 세상>은 쉬운 사이다 판타지보다는 답답한 고구마 현실을 제대로 느껴보기를 요구한다. 무엇보다 어른들이 자신들의 행동에 따라 얼마나 아이들이 영향을 받고 커나가는지, 또 그렇게 큰 아이들이 사회에서 어떤 일에 닥쳤을 때 어떻게 그 일을 해결해나가는지에 대한 양상을 들여다보라 말하고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은 통쾌한 결말이 아니라, 그 과정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에 담겨 있다.

 

힘겨워도 진실을 향해 한 걸음씩 나가는 강인하를 바라보며 그래도 어떤 희망을 갖게 만드는 딸 박수호의 긍정적인 시선과, 심지어 살인을 사주하고도 이를 은폐하려는 오진표와 서은주를 보며 점점 그들을 닮아가는 오준석의 점점 희망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선이 대비되는 건 그래서다.

 

하지만 그 답답한 사막을 걷다보면 결국 오아시스를 만날 거라고 드라마는 말한다. 진실을 향해 내딛는 그 걸음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래도 결국 우리는 진실이 의외로 가까이 있다는 걸 알게 될 거라고. 선인장 화병 속에서 선호의 사라졌던 휴대폰이 발견되는 것처럼, 아름다운 세상은 그냥 주어지는 사이다가 아니라 넘기기 힘든 고구마 현실을 꾸역꾸역 넘기고 나서야 비로소 만나게 되는 어떤 것이라고.(사진:JTBC)

Posted by 더키앙

'SKY캐슬'의 풍자 판타지에 이토록 빠져드는 이유

도대체 무엇이 JTBC 금토드라마 <SKY 캐슬>에 이토록 열광하게 만드는 걸까. 이 드라마의 시청률표를 보면 그 상승곡선이 말 그대로 드라마틱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1.7%(닐슨 코리아)로 첫 회를 시작했지만 2회에 4.3%로 치솟았고, 10회에 11.2%로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하더니 13회에는 13.2% 최고 시청률을 다시 한 번 경신했다.

그 열광을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은 아무래도 이 드라마가 건드리고 있는 ‘사교육 문제’에 대한 풍자다. ‘SKY 캐슬’이라는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대한민국 상위 0.1%가 모여 사는 곳’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사교육이 그것이다. 수 십 억을 들여 입시 코디네이터를 두기도 하고, 집에 아예 감금시키듯이 아이를 공부시키는 공간을 만들어놓기도 하는 이들의 사교육은 정상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100% 현실적이라고 보긴 어려운 극화된 면들이 있지만, 실제로 입시 코디네이터가 존재하고 저들만의 세상처럼 여겨지는 가진 자들의 은밀한 사교육이 입시의 당락을 좌우하는 지경이 되어버린 게 우리네 교육 시스템이다. 과거에는 교육이 개천에서도 용이 되기 위한 유일한 길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개천에서는 절대 용이 나기 어려운 교육시스템이 되었다. 자녀들의 입시가 부모들의 재력과 무관하지 않게 된 현실이 아닌가.

그런데 <SKY 캐슬>은 이렇게 가진 자들의 성공이 아니라 실패를 보여준다. 그것도 그저 대학입시에 떨어지는 그런 정도가 아니라 한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그런 실패다. 그 첫 번째 사례는 영재네 집안의 비극이다. 서울대 의대에 들어감으로써 이들의 사교육은 성공한 듯 보였으나,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김서형)의 부추김에 의해 영재는 가출을 하고 결국 그의 엄마 이명주(김정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그 코디네이터 김주영이 한서진(염정아)의 딸 예서(김혜윤)을 맡게 되면서 불안감은 계속 이어진다. 영재네가 이사를 나가고 그 집으로 들어온 이수임(이태란)은 아이들의 불행을 막기 위해 이를 소재로 동화를 쓰려하고 그 취재과정에서 김주영의 놀라운 과거행적을 알게 된다. 영재 이전에 그가 맡은 학생도 결국 자살하고 말았다는 것. 이수임은 김주영이 ‘위험한 인물’이라는 걸 한서진에게 경고하지만 그는 이를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김주영이 과거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어딘가 이들 기득권자들과 그 자녀들에 대한 ‘악감정’을 갖고 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입시 코디네이터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고 실제로 자신이 맡은 아이들을 서울대에 입학시키는 실적을 내며 유명해졌지만, “가장 행복한 순간에 모든 걸 잃게 만드는” 그의 방식은 교육이 아니라 복수에 가깝게 느껴진다.

드라마는 현실에서는 그 기득권을 통해 성공이 대물림되는 사교육을 ‘처절한 실패’로 그려냄으로서 박탈감을 느껴온 우리네 서민들에게 기묘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영재네가 무너졌고, 예서 역시 불안한 상태이며, 차민혁(김병철)이 그토록 총애하는 하버드에 들어간 줄 알았던 딸은 사기행각으로 벌금을 물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게다가 출생의 비밀을 갖고 입주과외라는 명목으로 한서진의 집에 들어온 혜나(김보라)는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폭탄이나 다름없다.

<SKY 캐슬>은 우리네 교육시스템을 풍자하는 드라마지만, 동시에 현실과는 달리 저들이 파괴되어가는 걸 판타지로 보여주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이른바 ‘생기부 전형’으로 불리는 입시 경쟁에서 가진 자들이 막대한 투자로 얻어가는 ‘교육과 학벌의 세습구조’ 속에서 서민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클 수밖에 없다. 이 드라마는 그 박탈감을 잠시 동안의 판타지로나마 깨주고 동시에 비판하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수직상승하는 시청률 수치와 열광이 말해주는 건 어찌 보면 그 박탈감이 그만큼 컸다는 방증이 아닐까.(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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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땐뽀걸즈’, 혹독한 현실 우리에게 판타지가 필요한 까닭

KBS 월화드라마 <땐뽀걸즈>가 종영했다. 종영했지만 이 작품이 남긴 여운은 꽤 오래 갈 것 같다. 최고 시청률은 고작 3.5%(닐슨 코리아). 평균 시청률이 2%대지만 시청률 하나만으로 재단할 수 없는 드라마다. 올해 KBS 드라마들을 통틀어 봐도 이 작품만큼 예쁘고, 가슴을 울리게 하는 감동과 함께 삶의 의미까지 담아낸 작품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땐뽀걸즈>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걸까. 

실제 거제여상의 댄스스포츠 동아리와 이 동아리를 이끈 이규호 선생님의 이야기를 담은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드라마화한 것이기 때문에 비교점이 만들어지는 건 당연하다. 실제 사실을 이기는 허구는 존재하기 어렵다. 그래서 별다른 극적 구성없이 이규호 선생님의 헌신적인 교육자로서의 삶과 그가 보듬은 댄스스포츠 동아리의 아이들의 현실을 담담히 담아낸 다큐멘터리의 감동을 드라마가 그대로 재연해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드라마 <땐뽀걸즈>는 그 소재를 드라마적인 메시지로 재해석했다. 결국 다큐멘터리가 담은 메시지이기도 했지만, 드라마는 왜 거제여상에서 쉽지 않은 현실을 살아내는 이 아이들이 댄스스포츠 같은 별 현실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열심히 빠져 들었는가를 질문한다. 당장 아르바이트를 해야 생계를 이어갈 수 있고, 대학을 간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인 이 아이들은 겨우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전선으로 뛰어드는 걸 당연한 삶처럼 받아들인다. 

청춘이 가진 특유의 발랄함이 가려서 일견 아무 고민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저마다 하고 싶었던 일들을 스스로 접게 된 나름의 아픔들이 숨겨져 있다. 영화감독이 꿈인 김시은(박세완)이 그렇고 모델이 꿈인 양나영(주해은), 한 때는 유도 유망주였지만 부상을 핑계로 꿈을 접은 이예지(신도현) 또 본래 춤에 관심이 있고 소질도 있지만 아버지 권동석(장현성)에게 그걸 드러내지 못하는 권승찬(장동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그냥 하루하루를 버텨내며 주어진 일들을 하며 살아내지만, 이규호 선생님(김갑수)은 이들에게 댄스스포츠를 통해 무언가를 이뤄내는 순간을 만들어주고 싶어 한다. 물론 학교를 졸업시키기 위한 선생님의 유인책이지만 댄스스포츠 같은 전혀 현실에는 무익하다 싶은 일이 아이들을 변화시킨다. 그 순간 아픈 현실을 잠시 잊고 빠져들게 되고, 그렇게 대회에 나가 노력을 인정받으면서 그것이 잠시 간의 판타지였을 지라도 그들이 앞으로 살아나가는데 오래도록 영향을 줄 수 있는 행복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래서 <땐뽀걸즈>는 애초 다큐멘터리가 보여줬던 거제여상의 댄스스포츠반 아이들의 이야기에서 확장되어 ‘우리는 왜 힘겨운 현실 속에서도 꿈을 꾸는가’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로 확장된다. 영화감독이 꿈인 김시은이 대학 면접에서 왜 영화를 하려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내놓은 답변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하려는 보편적인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세상에서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고 싶어서요. 영화는 가짜잖아요. 현실은 진짜고. 전 사람들이 현실을 잊기 위해서 영화를 본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저는 그렇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영화를 만드는 작업 자체가 환상을 파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래서 제가 더 좋아하는 것도 있고. 뭐 그 환상이 가짜고 사탕발림에 불과하다고 해도 전 그거를 보는 사람들이 순간만큼이라도 행복을 느끼면 그 영화만큼 진실한 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순간 만큼은요. 그래서 저는 그런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고 싶어요.”

김시은이 말한 건 다름 아닌 현실에 치여 꿈꾸지 않던 자신들을 댄스스포츠라는 환상(?)을 통해 순간만이라도 행복하게 만들어줬던 이규호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였다. 무익한 환상처럼 보였지만 그 순간의 행복들이 있어 그 어려운 현실들을 버텨내고 통과해낼 수 있었다는 것. 그건 어쩌면 이 작은 드라마가 서 있는 지점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현실적으로는 낮은 시청률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래도 꿈을 꾸었던 그 순간들만큼은 충분히 행복감을 주었던 드라마가 바로 <땐뽀걸즈>이기 때문이다. 꿈은 사치라고 말하는 현실에 꿈이 있어 비로소 버텨낼 수 있다고 말해주는.(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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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함브라’, 송재정 작가의 세심한 노력에 폐인들이 늘고 있다

게임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를 하는 데는 1차적인 장벽이 존재한다. 그건 게임을 잘 아는 이들과 잘 모르는 이들 사이의 확연한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게임의 세계에 있어서 너무 초보적인 이야기를 다루면 잘 모르는 이들에게는 친절하게 다가갈 수 있지만 게임을 잘 아는 이들에게는 시시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너무 복잡하거나 어려우면 정반대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마니아들은 열광해도 보통사람들은 감흥을 느낄 수 없는.

그런 점에서 보면 tvN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신기한 드라마다. 증강현실이라는 낯설 수 있는 게임의 세계 깊숙이 들어가지만 어찌된 일인지 게임을 잘 모르는 이들도 어느새 그 세계에 깊이 빠져든 자신을 발견한다. 도대체 어떤 마법을 부린 것일까 싶지만, 그간의 전개 과정을 보면 이 작품이 그 게임이라는 낯선 세계에 조금씩 우리를 빠져들게 하기 위해 얼마나 세심한 노력을 기울여 왔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활용한 방법은 충분한 튜토리얼과 여행, 멜로 같은 당의정을 더해 최대한 친숙한 느낌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 드라마의 제목은 전혀 게임과는 무관한 듯한 느낌을 준다. 현빈과 박신혜가 주인공들이니 누가 봐도 달달한 멜로가 떠오른다. 스페인 그라나다의 풍광까지 더해지면 이보다 좋은 그림이 없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편안하게(?) 시청자들을 유입시켰다. 유진우(현빈)와 정희주(박신혜)가 그라나다의 보니따 호스텔에서 만나 툭탁거리며 조금씩 케미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실제로 이 멜로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유진우는 IT투자회사인 제이원 홀딩스 대표가 아닌가. 누가 봐도 이 구도는 우리가 그토록 많이 봐왔던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이렇게 편안하게 접근시켜놓고 갑자기 유진우는 그라나다의 한 광장을 나가 증강현실 게임을 시작한다. 나사르 전사의 석상이 살아 움직이고 어느 카페에서 얻을 수 있는 녹슨 철검으로 밤새도록 그 전사와 싸움을 반복하는 장면이 다소 코믹하게 그려진다. 그런데 이 코믹한 시퀀스는 사실상 이 드라마가 갖고 있는 게임의 세계로 들어가는 튜토리얼의 역할을 해준다. 증강현실의 게임 세계가 조금씩 익숙해지고 거기서는 레벨을 높여나가야 하며, 그래서 더 좋은 무기를 얻을 수 있다는 룰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차츰 이 세계가 익숙해질 즈음 게임 안에 만들어진 디지털 이미지들과의 대결만이 아니라 다른 유저와의 대결 또한 가능하다는 걸 유진우의 라이벌 차형석(박훈)의 등장을 통해 보여준다. 이처럼 게임의 세계에 발을 조금씩 깊게 들어가면서도 동시에 시청자들이 본래 기대했던 유진우와 정희주 사이의 케미 역시 이어간다. 보니따 호스텔을 100억에 팔라는 유진우의 제안과 조금씩 호감을 갖기 시작하는 정희주 그리고 두 사람 사이를 사랑의 메신저처럼 이어주는 귀여운 여동생 정민주(이레)가 낯설 수 있는 이 게임 속 모험 속에서도 편안한 느낌을 제공한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갑자기 게임 속에서 유진우의 칼에 맞아 죽은 차형석이 진짜 죽은 사체로 발견되고, 그가 그 후에도 유진우에게 계속 게임 속 캐릭터로 나타나는 상상하지 못한 전개를 보여준다. 놀랍고 믿기 힘든 이야기일 수 있지만, 이미 이 단계가 되면 시청자들은 그 세계 깊숙이 자신이 들어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유진우에 몰입하게 된 시청자들은 사이버 좀비가 되어 그를 공격해오는 차형석에게 죽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게 된다. 그리고 그 마음을 대변하듯 정희주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차형석을 가로막아 유진우를 구한다. 증강현실의 게임 이야기와 멜로가 절묘하게 이어지는 순간이다. 

송재정 작가의 작품이 가진 특징인 것처럼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어느 가상(판타지)의 세계 속으로 빠져드는 이야기를 과감하게 전개하고 있지만 여타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조심스럽고 세심한 전개 과정을 보여준다. 게임 자체를 잘 모르는 이들도 빠져들 수 있게 적절한 멜로 코드와 캐릭터들의 매력을 당의정처럼 끼워 넣고 그 힘이 증강현실 게임이라는 세계의 낯설음조차 익숙해지게 만들어낸다. 

굳이 스페인 그라나다 같은 공간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점과, 거기서 주인공 남녀가 만나 관계를 시작하는 건, 그래서 게임이라는 마법 같은 공간을 좀더 친숙하게 이해시키기 위한 중요한 장치로까지 여겨진다. 여행이든 연애든 빠져들수록 비현실도 현실처럼 여겨지게 되는 건 게임의 세계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이처럼 그라나다를 배경으로 충분한 튜토리얼을 마친 드라마는 이제 서울로 돌아와 그 환상적인 이야기를 거침없이 풀어나간다. 아들인 차형석이 제이원 홀딩스를 나갈 때도 또 그라나다에서 사체로 그가 발견됐을 때도 냉철한 모습을 보인 차병준(김의성)은 마치 유진우를 아들처럼 여기는 것처럼 보였지만 조금씩 그 실체를 드러낸다. 

제이원 홀딩스의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경영이사로 있는 그는 알고 보면 자식을 내치거나 그 죽음도 선선히 받아들일 정도로 무서운 사업가다. 유진우를 아들처럼 대한 것도 그 사적인 관계 때문이 아니라 사업적인 선택이었을 뿐이다. 증강현실 게임에 엄청난 부작용이 있다는 걸 알고 이를 파헤치며 해결하기 위해 게임 출시를 막고 있는 유진우를 이제 그는 대놓고 끌어내리려 한다. 이는 향후 유진우와 차병준의 회사경영을 놓고 벌어질 한 판 대결을 예감하게 만든다. 

한편 유진우가 더더욱 게임에 빠져 들어가는 과정은 게임 마니아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하다. 보다 좋은 무기를 얻어야 계속 나타나는 차형석 좀비를 이겨낼 수 있다는 설정 속에서 유진우는 계속 업그레이드된다. 또한 비서인 서정훈(민진웅)이 그와 동맹을 맺게 되면서 차형석이 그에게도 보이고 그 또한 공격받게 된다는 새로운 룰이 등장하는 점도 그렇고, 레벨 90에 도달하면서 나타난 시타델의 매가 마스터인 세주의 메시지를 갖고 오는 장면도 게임 마니아들을 열광시킬만한 대목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레벨을 높이려는 그 의도가 사라진 정희주의 동생 정세주(찬열)를 찾기 위함이라는 설정은 게임을 모르는 이들까지 빠져들게 만드는 요소다. 동생이 실종된 걸 알고 무슨 일이든 하려는 정희주와 유진우가 함께 동생을 찾아가는 긴장감 넘치면서도 로맨틱한 모험을 기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게임 마니아들은 물론이고, 게임을 잘 모르는 이들까지 빠져들게 만드는 치밀하고 세심한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송재정 작가의 파격적인 세계가 보편적인 열광을 이어갈 수 있게 된 이유다. 한 주를 기다리기가 힘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폐인들이 점점 늘고 있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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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잇는 '알함브라'와 '품위녀' 잇는 'SKY캐슬'

한동안 주춤했던 비지상파 드라마들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tvN 수목드라마 <남자친구>가 10%(닐슨 코리아) 시청률을 기록했고, 같은 채널의 토일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7% 시청률을 넘겼다. 두 드라마 모두 2회 만에 거둔 성적이라 향후의 행보에 대한 기대감은 더 커지고 있다. JTBC 역시 금토드라마 <SKY 캐슬>로 4회 만에 7.4%를 찍었다.

그간 승승장구하다 최근 들어 잠시 고개를 숙였던 tvN의 변화는 더욱 극적으로 다가온다.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은 일드 원작의 정서적 차이를 이겨내지 못함으로써 큰 반향을 얻지 못했다. <나인룸>은 너무 들쭉날쭉하고 과장된 이야기 전개로 tvN드라마 같지 않은 느낌마저 주었다. <미스터 션샤인>이 썼던 왕관의 무게를 이어받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새로 시작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독특하고 실험적인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시청자들의 열광을 이끌어내고 있다. 항간에는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의 판타지 계보를 잇는 적자가 나타났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인>과 <W>로 보여줬던 송재정 작가 특유의 판타지가 가진 매력이 이 작품에는 고스란히 묻어난다.

증강현실을 이용한 게임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벌어지는 쟁탈전 속에서 현실과 가상이 접목된 광경들은 SF적이면서도 동시에 판타지적인 느낌을 주고, 스페인 그라나다의 이국적 풍광 속에서 펼쳐지는 달달한 멜로가 더해진 데다, 이 게임이 실재와 연결되면서 벌어질 충격적인 사건들에 대한 기대감까지 생겨나고 있다. tvN이 그 자리에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 같은 작품으로 세웠던 장르물과 판타지의 기대를 채워주기에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한편 <제3의 매력>으로 살짝 고개를 숙였던 JTBC 금토드라마도 <SKY 캐슬>로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SKY 캐슬’이라는 부유층이 사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뜨거운 사교육 전쟁의 이야기가 폭로하듯 전개되면서 동시에 이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들이 던져진다. 첫 회에 서울대의대에 합격한 아들 때문에 부러움을 한 몸에 받던 그 엄마는 2회 만에 자살을 함으로써 그 이면에 숨겨진 넘어서는 안 될 악마의 유혹이 존재한다는 걸 실감하게 만들었다.

흥미로운 건 <SKY 캐슬> 역시 JTBC 금토드라마가 그간 구축해온 드라마의 색깔을 정통으로 이어받는 작품이라는 점이다. JTBC 드라마는 그간 <미스티>나 <품위 있는 그녀>, <밀회> 같은 작품들을 통해 기득권층을 비판하는 사회성 짙은 작품으로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던 전적이 있다. <SKY 캐슬>도 그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불편하지만 보다보면 우리네 현실의 축소판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실감 속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그런 작품.

사실 최근 들어 우리네 방송가에는 드라마들이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월화에 5편, 수목에 7편, 금토일에는 무려 10편에 가까운 드라마가 방영된다. 하지만 쏟아지는 양에 비해 주목되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새해를 한 달여 앞두고 방송사들은 저마다 비장의 무기들을 꺼내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 새롭게 기지개를 켜는 작품의 면면을 보면 그간 그 채널이 쌓아온 드라마의 색채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으로 새로 피어나는 tvN의 장르물과 <SKY 캐슬>로 고개를 들고 있는 JTBC의 사회극이 주목되는 이유다. 이에 대해 지상파들은 어떤 대응으로 나올까. 자못 궁금해지는 대목이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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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뒤에 테리우스’ 소지섭, 육아도 사랑도 첩보도 다 잡을 수 있을까

제이슨 본이 시터가 됐다? MBC 새 수목드라마 <내 뒤에 테리우스>의 발칙한 상상은 아마도 여기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아이를 돌보고 키우는 일이 국정원의 첩보보다도 더 힘들다고 말하는 <내 뒤에 테리우스>는 그 이야기 자체가 빵 터지는 풍자다. 아마도 살림하고 육아하는 주부들이라면(남녀를 막론하고) 한참을 웃으며 공감했을 그런 이야기.

코미디를 밑바탕에 깔고 있는 첩보물은 이미 <트루라이즈>나 <스파이> 같은 영화를 통해 시도된 바 있다. 거기에는 평범한 인물들이 어느 날 중대한 국제적 사안 속에서 벌어지는 첩보전에 투입되어 엄청난 활약을 하게 되는 이야기가 주로 다뤄졌다. 하지만 <내 뒤에 테리우스>는 정반대다. 전직 NIS 블랙요원으로 활약하던 김본(소지섭)이, 남편이 죽어 일과 육아전쟁을 홀로 마주하게 된 고애린(정인선)의 시터로 들어와 맹활약(?)하는 이야기다. 

국가안보실장 문성수(김명수)가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한 후 역시 마법사로 불리는 암살자 케이(조태관)에게 살해당한 고애린의 남편 차정일(양동근). 그 사건을 은밀히 조사하는 김본과 뒤탈이 없는지 고애린과 그 가족을 살피는 케이의 대결. 그리고 과거 북한 핵물리학자 망명 작전 중 사라져 내부첩자 혐의를 갖고 숨어 지내는 케이와 그를 추적하는 국정원의 권영실 부국장(서이숙). 드라마는 제이슨 본의 첩보물이 보여주는 긴박감을 연출해내지만, 그것만큼 흥미로운 건 이 긴박감들을 주부들의 일상과 병치해 보여주는 다소 과장된 코미디다. 

고애린의 아이들이 케이에 의해 납치되자, 킹캐슬 단지의 이른바 KIS(Kingcastle information System)의 국장급 역할을 하는 심은하(김여진)가 단지의 주부들을 모아놓고 그 정보망을 이용해 범인을 찾아내고 아이를 구출해내는 다소 과장된 코미디적인 장면은 공감 가는 웃음을 만들어낸다. 또 고애린의 시터로 일하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심은하가 그의 심복들(?)인 남자주부 청일점 주부 김상렬(강기영)과 봉선미(정시아)를 데리고 와서 이른바 ‘시터 압박면접’을 하는 장면 역시 ‘경력단절’ 때문에 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지는 주부들의 현실을 비트는 풍자적인 웃음을 준다. 

반대로 정보원으로서 국가를 위해 엄청난 일들을 해왔던 김본의 능력들이 시터가 되어 아이들을 돌보는데 있어서 적절히 발휘된다는 점도 판타지지만 기분 좋은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항상 모든 걸 철두철미하게 정리하는 것이 몸에 밴 그는 수건 하나를 개도 각을 잡는 성격이고, 몸 쓰는 일에 익숙해 아이들이 피곤해 일찍 곯아떨어질 정도로 함께 시간을 보낸다. 물론 숨어 지내왔기 때문에 하루 종일 집안에서 머무는 일은 이미 이력이 나 있다. 이 이야기는 거꾸로 주부들이 하는 살림과 육아가 얼마나 힘겨우면서도 대단한 일인가를 새삼스럽게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주인공이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인물의 극과 극 양면을 보여줘야 하는 <내 뒤에 테리우스>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배우는 역시 소지섭이다. 굳은 얼굴에 양복을 입은 뒷모습만 보여줘도 첩보물에 딱 어울리는 그런 이미지를 가진 그이지만, 우리는 <무한도전>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그의 또 다른 인간적인(?) 매력을 본 바 있다. 그래서 그 무표정한 얼굴이 주는 긴장감과 웃음을 우리는 동시에 기대하게 된다. 소지섭은 과연 이 작품이 요구하는 첩보와 사랑과 육아까지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까. 그것이 이 드라마의 성패를 가름하는 관건이 될 것이니.(사진:MBC)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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