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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린 게 아니라 잊은 것... 박보영은 되찾을 수 있을까(‘미지의 서울’)이주의 드라마 2025. 5. 27. 10:40728x90
‘미지의 서울’, 박보영이 1인2역으로 되찾으려 하는 것
미지의 서울 “사실 나 이 일 하면서 가끔씩 마음이 불편할 때가 있었어. 그 때마다 난 내가 틀린 거 같아서 고치려고 애썼는데 네가 그랬잖아. 난 원래 마음에 뭐가 걸리면 신발에 돌 들어간 애처럼 군다고. 그 말 듣고 알았어. 아.. 내가 틀린 게 아니라 잊고 있었구나.” tvN 토일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호수(박진영)는 미지(박보영)에게 자신이 로펌 변호사로 일하면서 불편했던 마음이 틀린 게 아니라 잊어서였다고 말한다. 도대체 무엇이 틀린 게 아니고 무엇을 잊었다는 말일까.
호수의 상사인 충구(임철수)는 그를 유독 챙겨주는 인물이지만 승소를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사람이다. 심지어 의뢰인이 나쁜 놈일지라도 승소하기 위해 피해자의 약점을 파고들 정도다. “피해자 억울하고 가해자 나쁜 거 누가 몰라? 근데 이기는 게 우선이잖아? 우리는.” 그렇게 말하는 충구가 심지어 미래(박보영)의 사내고발 건이 들어오자 호수가 동창이라는 걸 알고 그를 일부러 대신 그 건을 맡게 했다는 사실을 알게된 호수는 미지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린다. 그가 마음에 뭐가 걸리면 신발에 돌 들어간 애처럼 굴었던 사람이었다고 했던 말을.
충구가 호수에게 “근데 이기는 게 우선이잖아? 우리는.”하고 말하며 그의 손을 토닥일 때 호수는 번뜩 정신이 든다. 자신의 불편함은 틀린 게 아니었다는 것을. 다만 그 일을 하게 되면서, 어떻게 하면 이길까에만 골몰하면서 저도 모르게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고쳐야할 것은 자신이 아니라, 어쩌면 저 비정한 세상이라는 것을 그는 비로소 깨닫는다.
<미지의 서울>의 이 장면은 미지와 미래라는 쌍둥이가 서로의 삶을 바꿔 살아보는 과감한 설정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가를 에둘러 보여준다. 미지와 미래는 쌍둥이로 태어나 함께 자랐지만 그러면서 점점 다른 삶을 살아간다. 미지가 육상선수의 꿈을 키우다 부상으로 꿈이 꺾인 채 고향에서 알바를 전전하며 살아간다면, 미래는 늘 아파서 집안에 병원비 부담을 주며 자라났지만 좋은 대학에 공사에도 입사해 서울에서 살아간다.
지방과 서울, 고졸과 좋은 대학 출신, 알바와 공사 등등. 미지는 미래가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여기지만, 사내 고발 건으로 직장 내 따돌림을 당하던 미래가 버텨낼 수 없게 되자 그녀와 삶을 바꿔 살아보게 되면서 그것이 자신의 착각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뭔가 서울에서 잘 나가는 사람으로 생각했지만 미래의 서울 살이 역시 지독한 고통이었고, 다만 아픈 걸 아프다고 말하지 않아 몰랐을 뿐이었다는 걸 미지는 깨닫는다.
즉 <미지의 서울>은 타인의 삶을 살아보는 ‘인생체인지’의 판타지를 쌍둥이라는 설정을 통해 그려낸 작품이다. 굳이 내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살아보고 들여다보는 설정을 넣은 건 그 좋아보이는 삶을 살고픈 욕망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별 생각없이 흘러가듯 살아가면서 잊어 버린 자신의 진짜 모습을 그 경험을 통해 찾아보기 위해서다. 호수처럼 마음에 걸리면 신발에 돌이 들어간 것처럼 굴었던 아이가 대형 로펌에 들어와 누가 봐도 피해자인 이들을 가해자가 의뢰인이라는 이유로 그 약점까지 잡아내는 사람이 됐다. 이기는 게 우선이라는 이유로.
이건 미지가 대신 살게 된 미래의 삶이 한 순간에 뒤집어지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모른 척, 못 본 척이 가장 힘들었던 선배가 상사의 부정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 괴롭힘의 대상이 되자 미래는 사내고발을 하게 되었고, 그 후 괴롭힘은 선배가 퇴사한 후 미래를 향하게 됐다. 즉 미래가 그 바른 선배를 통해 잊고 있던 걸 깨닫고 그 불편함이 잘못됐다 나서는 순간, 그 시스템은 무자비하게 그녀를 배제의 괴롭힘 속으로 밀어넣은 거였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부조리가 아닐까. 세상이 다 그렇고 현실이 다 그런 거라고 치부하며 마음의 불편함이 남지만 살아남기 위해 눈감고 잊고 살아가며 때론 심지어 그런 불편함이 자신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생겨난 ‘틀린 것’이라고까지 치부하며 살아가는 삶. 그래야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우리는 ‘내가 틀린 것’이라 여기며 버텨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미지의 서울>은 그래서 판타지가 아니라 저 부조리한 현실과 맞서는 치열한 서사를 밑그림으로 그려놓는다.
쌍둥이 설정의 1인2역을 완벽하게 소화해 미지와 미래를 완전히 다른 진짜 두 사람으로 여겨지게 만드는 박보영의 연기는 그래서 그저 연기 잘하는 것에 머무는 게 아니라, 이 작품의 핵심 메시지를 구현해내는 근거가 된다. 스펙 등에 의해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여겨지던 그들이 실제 살아보니 어디든 작동하는 부조리한 시스템의 사회 속에서 나와 똑같이 아파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그 1인2역이 서로를 이해하며 알게 되기 때문이다. 대본도 연기도 기가막힌 앙상블을 보여주는 <미지의 서울>이다.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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