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트하우스', 어떤 일이 벌어져도 놀랍지 않은 가짜 판타지

 

예상했던 대로지만 SBS 월화드라마 <펜트하우스>는 벌써부터 20% 시청률을 목전에 두고 있다. 9.2%(닐슨 코리아)로 시작한 드라마는 매회 1% 남짓 시청률을 끌어올리다, 11회에 이르러 19.6%를 기록하며 시청률이 껑충 뛰었다. 시청률이 모든 걸 증명해주는 바로미터가 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렇게 갑자기 시청률이 뛰어오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건 개연성 없이 자극적인 설정과 복수극을 통한 고구마와 사이다만을 담음으로써 막장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이제는 그 단계를 넘어서 생겨나는 이상한 관전 포인트가 그 이유다.

 

이상한 관전 포인트라는 건, '욕하면서 본다'는 우리가 흔히 막장을 지칭할 때 쓰는 표현에 이미 들어가 있다. 욕한다는 건, 개연성이 없어서이지만, 그러면서도 보는 건 또 왜일까. 그것도 그냥 보는 게 아니라 찾아보게 되는 건. 자극도 자극이지만, 개연성을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단계에 이르면 이제 드라마는 더 이상 사실성을 생각하지 않고 가짜라는 게 분명한 일종의 치고받는 게임을 보듯 편해지는 지점에 도달한다. 전혀 사실성이 없어 강 건너 불구경을 하는 것인데, 그 불도 가짜라는 걸 알고 본다.

 

<펜트하우스>에서 삼성동 어디쯤에 세워진 주상복합 헤라팰리스나 그곳 자녀들이 다닌다는 청아예고 같은 공간은, 현실의 부동산과 교육을 은유하는 것처럼 등장하지만 그 곳에서 벌어지는 개연성 없는 사건들의 연속은 그것이 가짜 판타지라는 걸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제아무리 특권의식을 가진 천민자본주의를 표상하는 부자들이 사는 주상복합이라고 해도, 주민대표 투표로 계속 살지 말지를 결정하는 그런 곳이 어디 있을까. 제아무리 부정한 일들이 벌어지는 예고라고 해도 노골적으로 불공정한 일들이 벌어지는 학교가 존재할까.

 

그래서 처음 <펜트하우스>를 보는 시청자는 개연성이 부족한 이 세계를 접하면서도 살인, 유기, 불륜, 학대, 폭력 같은 자극적인 코드들에 시선을 빼앗기다가 어느 순간 개연성을 포기하고 폭주하는 그 이야기 속에 저도 모르게 빠져든다. 개연성이 없고 아예 추구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 곳에는 말 그대로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 개연성이 붙잡고 있는 작품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족쇄를 풀어버리면 남는 건 막장의 자유다.

 

이 단계에 가면 개연성 부족의 상황들은 시청자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게 아니라 실소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헤라팰리스에 거주하고 있는 강마리(신은경)가 사실은 과거 목욕탕 세신사였고 그 때 인연을 맺은 큰손들 덕분에 인생역전을 한 인물이며, 심지어 지금도 그 큰손들을 모시고 때를 밀어주는 상황 같은 게 가능하다. 물론 거기에는 풍자 코미디적 요소들이 담겨 있지만 이런 일들이 실제로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또 학생들도 마음대로 들어오지 못하는 청아예고 같은 곳에 구호동(박은석) 같은 선생이 들어왔다는 사실도 개연성이 없고, 심지어 그 인물이 엄청난 재력을 가진 로건 리이며 사망한 민설아(조수민)의 양오빠라는 사실도 그렇다. 거기에는 개연성이 있는 게 아니라, 뭐든 원하는 대로 설정하고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작가 마음대로의 선택이 있다.

 

중요한 건 이런 개연성 없는 세계를 통해 핍박받던 약자들이 저 세상의 가해자들에게 피의 복수를 하는 과정들을 작가와 시청자들이 공모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개연성은 없어도 저들을 처절히 응징해달라고 시청자들은 요구하고 작가는 그걸 실현시킨다. 그래서 세상에 저런 일은 벌어지지 않아 하면서 때론 실소를 터트리게 하는 개연성 없는 상황들이 전개돼도 시청자들은 그걸 그다지 불편해하지 않게 된다. 어차피 개연성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고 대신 가짜 판타지로서의 사이다를 원하게 되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결국 허구이고 현실이 아닌 판타지를 담고 있기 마련이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어떤 최소한의 개연성이라는 룰이 있다. 그걸 깨뜨리는 건 이 한 작품만의 문제가 아니다. 심지어 개연성을 기대하지 않게 되고 그래서 심지어 무슨 일이 벌어져도 놀랍지 않은 상황은 자칫 작품을 고구마와 사이다로만 단순하게 소비하는 방식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사진:SBS)

'며느라기'가 시월드의 먼지 차별을 드러내는 방식

 

"엄마 조금만 기다리세요. 결혼하면 사린이는 다를 거예요. 사린이는 착하니까." 카카오TV <며느라기> 2회의 엔딩에서 무구영(권율)은 명절에 민사린(박하선)을 만나러 가는 길에 그렇게 생각한다. 무구영은 그날 형수 정혜린(백은혜)이 "다들 너무했다"며 날린 팩폭 돌직구에 아버지의 분노와 엄마의 눈물에 마음이 무겁다. 그래서 생각한다. 자신이 결혼할 사린이는 착한 며느리가 되어 엄마를 도울 거라고.

 

하지만 무구영의 생각은 당장 눈물을 흘리는 엄마와 아버지의 분노로 엉망이 된 명절 분위기가 며느리의 '이의 제기'에서 비롯됐다는 착각에서 비롯한다. <며느라기>는 시월드의 모든 노동이 며느리들(엄마도 며느리다)에게만 부여되고, 그것도 며느리(엄마)가 나서서 며느리에게 강요되며,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부조리한 명절의 풍경을 정혜린의 목소리를 통해 팩폭한다.

 

"그러니까 정리해보면 구일씨는 피곤하니까 들어가서 자고, 아버님과 작은 아버님은 술 드시고, 구영씨와 미영씨는 데이트하러 나가고, 차례 음식은 어머니 혼자 준비하시고...다들 너무 했다. 그리고 저는 며느리니까 당연히 어머님이랑 같이 음식을 만들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 맞죠?" 그렇게 말하는 정혜린에게 작은 아버지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라며 "시어머니 혼자 일하라고?" 되묻는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명절 조상을 모시는 일에 있어서 온 노동을 며느리가 짊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자신들이 나서서 함께 그 노동을 분담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대신 그 당연한 걸 하지 않겠다고 나서는 며느리가 괘씸할 뿐이다. 더더욱 안타까운 건 그런 강요를 오래도록 당연한 듯 받아온 시어머니가 이제 저 스스로 나서서 그걸 며느리에게 강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수많은 드라마 속에서 고부갈등이나 시월드에서 핍박받고 차별받는 며느리에 대한 이야기가 다뤄졌다. 하지만 극화되어 악역으로 그려지는 시어머니의 극단적인 모습과, 그에 대항해 당장의 사이다만을 보여주던 며느리의 이야기는 그것이 우리네 현실이라기보다는 '저런 집'에서나 벌어지는 일들로 치부하게 만든 면이 있다. 그래서 그런 시월드를 드라마로 보는 어르신들은 줄곧 이런 반응을 보인다. 요즘 세상에 저런 시부모가 어디 있어.

 

이것은 너무나 극적으로 그려져 그것이 우리네 모습이라는 걸 은폐하기도 하던 시월드 소재 드라마들의 한계였다. 하지만 <며느라기>는 다르다. 여기 등장하는 무구영네 집안사람들은 그렇게 괴물화된 인물들이 아니다. 나름 예의도 차리고, 며느리 생각해 상냥한 말도 건네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하는 그 지극히 당연하고 평범해 보이는 말과 행동은 민사린을 이상하게도 힘겹게 만든다. 시어머니 생일상을 혼자 차려내고 시댁 식구들이 저들끼리 대화하고 후식을 먹을 때 혼자 당연한 듯 설거지를 하고 있는 민사린 역시 '착한 며느리'가 되기 위해 애쓰는 자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차별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며느리에 대한 암묵적인 강요다. 그래서 민사린은 마음이 불편해지고 기분이 언짢아진다. 하지만 이제 그 부당함을 얘기함으로써 '며느라기'에서 벗어난 정혜린은 그 평온해 보이던 시월드의 먼지 차별을 팩트 그대로 이야기함으로써 고발한다.

 

모두가 귀성길에 올라 도심에 차들이 많이 사라진 명절에 민사린은 무구영을 기다린다. 결혼 전 두 사람이 만나는 그 장면은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그려진다. 심지어 달달하게 느껴질 정도로. 하지만 그 장면으로 시작한 드라마가 그 날 무구영네 집에서 벌어진 정혜린의 시월드의 먼지 차별의 팩폭 풍경을 거친 후 엔딩으로 이어지자 달달함은 사라지고 대신 씁쓸함이 더해진다. '착한 며느리' 운운하는 무구영의 생각은 이제 민사린이 겪을 시월드의 '며느라기'로 이어질 거라는 기시감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20분 남짓의 드라마를 다 보고나면 당연해 보였던 많은 것들이 사실 부당한 것들이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엄마는 왜 그 부당함을 당연한 일로 체화시키며 살아왔을까. 그리고 그것을 어째서 며느리에게도 똑같이 나서서 강요하고 있을까. 엄마가 해온 평생의 독박노동과 그 고생을 절감하는 아들이라면, 착한 며느리를 들여 엄마를 도와줄 생각을 할 게 아니라 그 노동 자체가 부당했다는 걸 말해야 하지 않을까. 사랑하는 엄마가 했던 그 차별적인 대우와 노동을 이제 사랑하는 아내가 대신 맡아 똑같이 하는 걸 당연시 할 게 아니라.(사진:카카오TV)

'18어게인'이 판타지 설정을 가져와 들여다본 가족

 

JTBC 월화드라마 <18어게인>에는 18년 전으로 돌아간 홍대영(윤상현, 이도현)이 자신의 가족을 뒤에서 지켜보는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고등학생 고우영(이도현)이 되어 자신의 딸 시아(노정의)와 시우(려운)를 들여다보고, 아내였던 정다정(김하늘)의 삶과 아버지 홍주만(이병준)의 무거운 어깨를 다시금 본다.

 

정다정이 어렵게 들어간 방송사 JBC에서 이혼 프로그램을 맡게 되고 그의 활약으로 정규 편성이 되었지만 MC 자리에 엉뚱한 인물이 들어가게 된 사실을 알게 된 홍대영은, 그 힘겨웠던 하루를 보내고 돌아가는 정다정을 길 건너편에서 안타깝게 바라본다. 딸 시아가 사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 하고, 그래서 대학보다는 학원을 다니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걸 홍대영은 고우영이라는 이름으로 또래 친구가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

 

결혼을 반대했고 아이를 지우라고까지 했던 아버지 홍주만이 사실은 아내를 늘 챙기고 있었고, 또 아내 역시 남편 몰래 홍주만과 왕래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 역시 홍대영은 고우영의 몸이 되고 난 후에야 그 시선으로 알게 된다. 버스 운전을 하며 살아가는 아버지의 무거운 어깨까지.

 

늘 먼발치에서 정다정을 또 시아와 시우를 바라보는 홍대영의 시점은 다소 작위적인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이건 <18어게인>이라는 드라마 자체가 그렇다. 18년 전으로 몸이 돌아간다는 그 설정 자체가 만들어진 판타지가 아닌가. 중요한 건 이런 다소 작위적일 수 있는 판타지를 가져와 무얼 이야기하려는가 하는 점일 게다.

 

최근 tvN에서 방영됐던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같은 드라마가 우리가 안다 치부했던 가족을 다시 들여다봄으로써 우리 시대의 대안적 가족관을 모색했다면, <18어게인>은 판타지 설정을 통해 가족을 다시 보는 시도를 하고 있다 여겨진다. 홍대영은 고우영이라는 젊은 몸이 가진 시각에 의해 가족을 다시금 본다. 물론 마인드는 중년의 홍대영 그대로지만 그를 보는 외부의 시각들은 이제 고등학생이라는 젊은 세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중년과 젊은 세대의 교차점과 소통이 홍대영이라는 인물 내부에서부터 일어나게 된다.

 

물론 홍대영의 일방적인 시선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그의 달라진 시각이 가족을 대하는 방식을 달리 하게 만들고, 그것은 가족들 역시 홍대영을 다시 보게 되는 계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태어난 게 부모의 불행이었다 생각했던 시아가 홍대영이 준 통장에 적힌 글귀 속에서 딸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뒤늦게 깨닫고 눈물 흘리는 장면이 그렇다. 또 정다정이 홍대영에게 전화로 한 번도 필요할 때 옆에 없었다고 한 말들은, 이제 고우영이 사실 홍대영이었다는 걸 알게 된 정다정에게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까.

 

<18어게인>은 그 판타지 설정 자체가 작위적일 수밖에 없는 드라마다. 하지만 이런 작위성을 가져와 일종의 '드라마 게임'을 하듯, 다시금 가족을 들여다보게 해준다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중요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 이를 통해 우리도 그저 다 알고 있다 여겼던 우리의 가족들을 다시금 돌아보게 만들고 있으니.(사진:JTBC)

 

 

'삼토반', 시대의 권력과 맞서는 상고 출신 삼총사가 주는 판타지들

 

이종필 감독의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1995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는다. 그 시기는 현재의 우리들에게 시대의 변곡점처럼 기억되는 1997년 IMF 외환위기를 앞두고 그 징후들이 보이던 때이고, 나아가 그 거품의 극점을 향해 달리던 이른바 '세계화'의 그림자가 사회 전체를 뒤덮었던 때다.

 

그 시대 삼진그룹에 다니는 상고 출신 여사원들은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회사생활을 일상으로 삼았다. 그들은 아침 일찍 출근해 밤새 어질러진 사무실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상사들의 커피를 타서 일일이 갖다 주며 심지어 구두까지 닦아 대령해놓는 그런 허드렛일들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게다가 회사는 세계화 시대를 맞아 영어 토익 600점 이상을 받으면 상고 출신 여사원들도 대리 승진을 할 수 있다고 공표한다. 물론 그 짧은 시간에 그런 결과를 낸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실무 능력 베테랑의 '선배님'이지만 실상은 커피 타 나르는 일이 주업무(?)인 생산관리3부의 이자영(고아성),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지만 대졸 출신 여사원에게 아이디어를 도용당하고 자신은 회의 시간에 햄버거나 나르는 일을 하는 마케팅부 정유나(이솜) 그리고 수학 올림피아드 우승 출신이지만 회계부에서 가짜 전표 맞추는 일을 하는 심보람(박혜수)이 영어토익반에 함께 한다.

 

이러한 상고 출신 여 삼총사를 주인공을 세운 건 다분히 현재의 여성주의적 관점이 투영된 선택으로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의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 노동'이 이 영화가 그려내는 회사의 위기와 이를 이겨내는 판타지 스토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개연성 때문이기도 하다. '오지랖'으로 대변되는 이자영이 우연히 공장에 갖다가 보게 된 폐수 유출을 그냥 보고 넘기지 못하는 것이나, 이 사건을 알리기 위해 정유나 같은 행동파가 나서고 뭐든 척척 계산해내는 심보람이 제 역할을 해내는 것이 그렇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시대가 모욕하는 여성들의 현실을 전면으로 끌어오면서 동시에 외환위기의 전조로 보이던 글로벌 투기자본들이 벌이는 음모들에 맞서는 작은 영웅들과 이들과 연대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회사에서는 천시됐던 이들의 능력들은 의외로 거대한 글로벌 투기자본들의 음모를 분쇄하는데 활용되고, 이로써 삼진그룹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1990년대를 향수하게 만드는 이들의 옷이나 스타일들 그리고 음악 같은 것들이 더해지면서 복고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이 영화는 기실 스토리에 있어서도 현실보다는 판타지를 선택한다. 실제로는 1997년 IMF 체제로 이어지며 글로벌 투기자본에 의해 여기저기 무너졌던 당대의 현실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그래서 이들의 승리와 그로 인해 보상받는 회사 내에서의 달라진 위상 같은 것들이 현실로 느껴질 리 없다. 결국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가장 먼저 회사 밖으로 내몰린 건 바로 잉여 노동 취급 받던 여성들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영화의 현실과는 다른 판타지 선택은 이 영화가 1990년대를 시대로 가져왔지만 2020년을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던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 때는 우리가 막아내지 못했고 또 변화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마땅히 그렇게 막아내야 하고 변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에둘러 판타지로 말해주고 있어서다.

 

무엇보다 여성 삼인방이 등장하면서도 그 흔한 멜로 하나 들어가 있지 않고, 대신 이들의 끈끈한 연대의식이 전면에 담긴 점이 눈에 띤다. "마이 드림 이즈 커리어우먼"이라고 외쳤듯이 영화가 온전히 일의 세계 속에서의 여성들에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 이자영과 정유나 그리고 심보람이라는 삼총사 캐릭터가 굉장한 투사가 아닌 평범하지만 그 속에 '사회적 선'에 대한 비범함을 가진 존재들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벌레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이들의 외침처럼 그 때나 지금이나 우리네 삶 어딘가에서 그저 포기하지 않고 꿈틀대는 그 누군가가 있어 세상은 변화하고 있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으니.(사진:영화'삼진그룹 영어토익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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