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볼만한 <개과천선>, 왜 조기종영?

 

애초에 18부작이었던 MBC 수목드라마 <개과천선>16부로 조기종영 한다는 소식에 드라마 팬들은 의아할 수밖에 없다. 간만에 볼만한 드라마가 아닌가. 지금껏 봐왔던 변호사 소재 드라마들과는 차원이 다른 깊이가 있고, 현실에 대한 냉엄한 비판정신이 살아있는데다, 김명민과 김상중의 명불허전 연기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었다. 그런데 조기종영이라니.

 

'개과천선(사진출처:MBC)'

시청률이 과도하게 떨어진 것도 아니다. 중간에 두 차례 결방을 한 탓에 드라마의 연결고리가 느슨해지면서 시청률이 조금 떨어진 부분은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의 완성도와 깊이를 가진 드라마가 9%대를 유지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개과천선>은 결코 쉽게 볼 수 있는 드라마는 아니다. 지금껏 다루지 않았던 금융 전문 변호사의 세계는 그 자체로 대단히 복잡하다.

 

복잡한 금융 전문 변호사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리얼하게 다루게 된 건 그것이 실제로 대중들을 눈속임하기 위한 금융의 술책이기 때문이다. 그 복잡한 금융의 세계는 일반 서민들이 모두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다. 심지어 금융전문가들도 컴퓨터를 돌려봐야 그 결과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니까. 그러니 서민들은 전문가들을 말을 그저 신뢰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만일 믿어왔던 은행조차 복잡한 금융상품을 내놓으며 뒤통수를 치려한다면 어떨까.

 

<개과천선>이 다루는 이야기는 그래서 현실적으로 대단히 민감한 문제들이다. 겉으로 보기엔 신뢰의 표상처럼 보이는 금융권이나 대기업의 이면을 슬쩍 드러내기 때문이다. 물론 초반에 다뤄진 몇몇 에피소드들도 우리네 현실에서 벌어졌던 사건사고들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이 드라마의 대본은 날카로웠다. 태안 기름 유출사고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에피소드도 있었고, 종금사태를 소재로 다룬 것도 있었다.

 

이렇게 완성도도 높고 메시지도 충분히 의미 있는 <개과천선>의 조기종영은 사실 이해하기가 어렵다. MBC측은 이것을 김명민의 스케줄 탓이라고 얘기했지만 한 드라마의 조기종영이 그저 배우의 스케줄 하나 때문이라고 치부하는 건 어딘지 방송사의 책임회피 같은 느낌이 짙다.

 

김명민 측은 이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스케줄로 인해 그렇게 결정된 것 같지만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 김명민 측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미 오래 전부터 영화 스케줄이 잡혀 있었다고는 해도 결방만큼 촬영시간도 충분히 있었다는 걸 감안해보면 조기종영을 단지 스케줄 탓으로 돌리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다. 이미 3회부터 생방송 일정이었다는 드라마 제작현실은 결방에도 벌충을 하지 못한 속사정을 드러낸다.

 

즉 이 모든 책임을 김명민이라는 배우 한 사람의 스케줄 탓으로 돌리는 건 정당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또한 김명민 측에서 말하는 생방송 촬영의 힘겨움은 물론 배우의 어려운 입장을 전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직접적으로 조기종영의 이유로 제시되긴 어렵다. 그 많은 생방송 촬영이 드라마판에서 반복되고 있지만 그것 때문에 드라마가 조기 종영된 적이 있던가. 방송사는 김명민의 스케줄 때문이라고 얘기하고 김명민 측은 힘겨운 제작현실 때문이라고 얘기하지만 어딘지 그 두 가지 이유 모두 궁색한 변명처럼 들리는 건 왜일까.

 

배우 한 사람의 힘이 언제부터 방송사의 편성을 쥐락펴락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갖게 됐단 말인가. 만일 <개과천선>이 더 높은 시청률을 내는 드라마였다면 과연 MBC는 역시 똑같은 결정을 내렸을까. 현실적으로 말해 방송사의 의지가 있었다면 배우의 스케줄 조정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았을까. 혹여나 의심되는 부분은 이 드라마가 가진 가감 없는 현실비판이 누군가에게는 몹시 불편했을 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과연 이 문제가 단지 스케줄 문제와 생방송 드라마 제작현실 때문 만이었을까. 좋은 드라마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없게 된 현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빅맨>, 우리가 강지환의 판타지에 빠져드는 까닭

 

이런 회사, 이런 사장이 과연 존재할까. KBS 월화 드라마 <빅맨>에 등장하는 현성유통과 그 회사를 이끄는 김지혁(강지환) 사장은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판타지적 공간과 인물이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데다 현성그룹이라는 대기업 강동석(최다니엘)의 사주로 협력업체들과의 관계마저 끊어져버린 이 회사를 김지혁은 변치 않는 의리와 뚝심, 원칙으로 다시 일으켜 세운다.

 

'빅맨(사진출처:KBS)'

김지혁이 현성그룹 강동석의 압력으로 중소기업들의 물품조달을 받지 못하게 되자 순진유업 사장을 설득시키는 과정은 드라마틱하다. 과거 김지혁의 도움을 받은 적 있는 순진유업 사장이지만 김지혁의 회사에 물건을 납품한다는 건 대기업 현성그룹과 관계를 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아마도 이런 대기업의 갑질과 중소기업의 어쩔 수 없는 커넥션은 우리네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일 것이다.

 

현실에서 순진유업 같은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압력을 이겨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드라마는 현실이 아닌 판타지를 선택한다. 김지혁의 강직함과 순수함에 감복받은 순진유업 사장은 다른 중소기업 대표들을 만나 함께 대기업의 횡포에 맞서자고 나선다. 이에 분노한 강동석은 순진유업과 현성유통을 동시에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썩은 우유 사건을 조작하지만 여기서도 김지혁은 그 사건 조작에 이용된 노숙자를 직원으로 끌어안음으로써 오히려 강동석을 곤란하게 만든다.

 

법정관리를 벗어나기 위한 심사에서 강동석의 사주를 받은 변호사는 현성유통의 인원감축과 임금삭감을 요구한다. 김지혁은 결국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맞선다. 그런 그에게 현성유통 노조위원장인 김한두(이대연)가 부랴부랴 직원들이 만든 임금삭감 동의안을 들고 찾아온다. 김지혁이 직원들을 희생시킬 수 없다고 말하자 김한두는 이렇게 말한다. “사장님은 저희한테 가장 같은 분입니다. 집안이 다 망하게 생겼는데 가장한테만 그 책임 지울 순 없는 일 아닙니까. 몇 끼 굶더라도 가족들도 함께 도와야죠. 사장님 저희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가장입니다. 희생이 아녜요. 가족끼리 서로 돕는 거죠.”

 

이것은 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노사가 어떤 합의를 통해 회사를 살려낸 사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사장을 가장이라 부르고, 임금삭감을 희생이 아닌 가족끼리 돕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런 회사는 아마도 회사원들이 꿈꾸는 이상 속에서나 등장하는 일일 것이다. 또한 현성유통을 되살리기 위해 내놓은 재래시장 시스템 도입역시 마찬가지다. 대형마트와 재래시장의 공존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하지만 시장이 키워준 시장의 아들 김지혁은 이를 성사시킴으로서 현성유통을 기사회생시킨다.

 

<빅맨>이 김지혁이라는 소시민의 영웅을 등장시켜 보여주는 건 현실의 갈증을 채워주는 판타지다. 이 드라마의 힘은 바로 이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을 가능하게 하는 이야기의 힘에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드라마에 현실이 없는 건 아니다. 그 현실은 강동석(최다니엘)이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대기업의 행태에서 드러난다.

 

상대방을 무너뜨리기 위해 대기업들끼리 담합을 하고 중소기업에 압력을 행사하는 모습이나, 이득 앞에서 시장상인들의 생업 따위는 개의치 않고 부지를 사들이고 대형마트를 세우는 모습, 탈법적인 행위를 하고도 권력기관을 움직이고 변호사를 대동해 죄를 짓고도 버젓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강동석과 현성가 사람들은 안타깝지만 우리네 현실이 투영되어 있다. 결국 <빅맨> 김지혁이라는 판타지는 강동석이라는 현실을 무너뜨리는 지점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김지혁이라는 판타지와 강동석이라는 현실은 아이러니한 세상의 실체를 섬뜩하게 보여준다. 판타지처럼 그려지지만 김지혁의 행동은 인간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상식적인 덕목들을 보여준다. 반면 현실로 다가오는 강동석의 행동은 심지어 소시오패스처럼 보이는 비상식적인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비상식적인 현실과 판타지에서나 찾아보게 된 상식적인 덕목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계의 잔혹함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빅맨>이 제시하는 두 개의 세계에 대한 분명한 대비는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만든다. 우리가 꿈꿔야할 세상은 김지혁으로 대변되는 사장이 아닌 가장, 직원이 아닌 가족 같은 회사인가, 아니면 강동석으로 대변되는 어딘지 음모로 가득한 돈이면 뭐든 된다는 소시오패스의 회사인가. 김지혁이 보여주는 바람직한 회사와 건강한 가족은 강동석이 보여주는 부패한 회사와 병든 가족과 대비된다. 어째서 가족 같은 회사라는 판타지는 드라마 속에서나 가능한 것일까. 이것이 <빅맨>이라는 판타지에 깊이 빠져들게 되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해지는 이유일 것이다.

트렌디한 <개콘>, 현실부터 유행까지 섭렵

 

개그맨 김준호는 필자에게 개그의 방식은 늘 반복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상 개그의 웃기는 방식이라는 것이 한정적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다. <개그콘서트>는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대중들과 함께 호흡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해답은 개그 소재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소재를 어떻게 현실과 녹여내고 또 당대의 트렌드와 함께 호흡해내느냐에 있다. 이번 <개그콘서트>가 새로 들고 온 미안해요 형’, ‘렛잇비’, ‘쉰 밀회’, ‘연애능력평가는 그 장수의 비결을 제대로 보여준 코너들이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미안해요 형은 이상구와 곽범이 1+1으로 아는 형의 사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엉뚱한 상황들을 담고 있다. 잔뜩 긴장해 있는 곽범이 계속해서 과도한 군대식 리액션으로 웃음을 터트리고 이상구는 미안해요 형을 반복하며 자신의 무식을 드러내 사장 형을 곤란하게 만드는 이야기다. 전형적인 말 개그의 하나처럼 보이지만 청년 실업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에둘러 담아내면서 현재적 의미를 담아낸다. 말장난 속에서 아르바이트생과 사장 형과의 권력관계가 살짝 살짝 무너지는 것이 주는 카타르시스가 포인트다.

 

쉰 밀회는 최근 김희애의 특급칭찬이야가 유행어가 될 정도로 화제가 된 드라마 <밀회>의 패러디다. 트렌디한 <개그콘서트>의 발 빠른 순발력으로 보여주는 코너로 김대희라는 최고참 개그맨의 활용이 돋보인다. 21살이라고 주장하지만 좀 되어 보이는 연식을 반전 요소로 삼아 웃음을 만들어낸다. 후배들에게 볼이 꼬집히고 머리채를 쥐여가며 고군분투하는 김대희의 개그 투혼을 새삼 느끼게 하는 코너다.

 

쉰 밀회가 김대희의 개그 스타일에 최적화된 코너라면 연애능력평가는 박성호의 개그 스타일에 최적화된 코너다.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박성호는 연애라는 소재를 수학 공식으로 풀어내는 기막힌 발상을 선보인다. 이 코너는 또한 최근 대중들에게 특히 관심을 끌고 있는 연애라는 소재를 끌어옴으로서 트렌디한 유행을 끌어들이고 있다. 대면 접촉이 점점 사라지는 최근 젊은 남녀들의 상대적으로 폭증하는 연애심리에 대한 관심을 웃음으로 전화시킨다.

 

렛잇비<개그콘서트> 특유의 음악 개그에 현실을 담아냄으로써 이번 새로운 코너들 중 가장 주목되는 코너다. 많은 이들이 제2뮤지컬이 나왔다고 얘기하지만, 여기에 얹어진 현실공감은 뮤지컬보다 오히려 더 진화한 듯 보인다. 노래의 꿈을 키웠지만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현실, 직장인을 꿈꿨지만 커피나 타는 여직원의 현실, 쉬는 주말에도 상사와 등산을 가야 하는 고역스런 현실 등이 반전을 주는 노래에 담겼다.

 

막내 사원의 현실을 모르는 행동과 발언은 기묘한 카타르시스를 주며, ‘렛잇비라는 노래가 주는 긍정과 위로를 무표정한 네 사람이 부르는 현실의 불편함으로 뒤집은 것도 흥미롭다. ‘그냥 내버려두면 된다렛잇비라는 노래의 주제와 개그 코너가 주는 아이러니는 웃음과 함께 씁쓸한 페이소스까지 만들어낸다.

 

<개그콘서트>의 새 코너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사실 개그의 방식이 새롭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방식에 채워지는 소재들이 얼마나 현실 공감을 불러오고 또 트렌디 한가 하는 점은 <개그콘서트>가 반복되면서도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다. 팍팍한 현실을 가져오면서 동시에 지금 대중들의 트렌드와 유행까지 잡아내는 <개그콘서트>. 이것이 그토록 오랫동안 <개그콘서트>가 저력을 잃지 않은 힘이다.

<닥터 이방인><빅맨>, 이 두 드라마의 공통점

 

완전히 다른 소재와 다른 장르를 추구하는 드라마지만 때로는 비슷한 이야기를 전하는 드라마들이 있다. SBS 월화드라마 <닥터 이방인>KBS 월화드라마 <빅맨>이 그렇다. <닥터 이방인>의 박훈(이종석)은 남한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를 따라 북한에서 의사로 성장하게 되고 탈북해 다시 남한에서 살아가는 인물이다. <빅맨>의 김지혁(강지환)은 부모 없이 고아로 자란 건달이지만 어느 날 재벌 그룹의 장남이 되어 현성유통을 꾸려가는 사장이 된다.

 

'빅맨'과 '닥터이방인'(사진출처:KBS,SBS)

여기 두 사람의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던 세계에서 모두 낯선 공간에 들어와 갈등을 일으키는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닥터 이방인>의 박훈에게는 남한의 병원이라는 공간이 그렇다. 수술 끝에 사망하게 된 수현(강소라)의 어머니를 두고 책임을 추궁하는 재준(박해진)과 대립하는 박훈에게는 살릴 수 있는 환자만 살리겠다는 식의 남한 병원의 체계가 낯설게 다가온다. 의사라면 뭐든 최선을 다해봐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것. 병원의 수술성공률 같은 자본의 논리 따위가 아니라.

 

<빅맨>의 김지혁에게는 현성유통이라는 회사나 재벌가라는 환경이 낯설다. 그들은 툭하면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 한다. 김지혁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돌아온 동석(최다니엘)이 대뜸 돈 가방을 내밀자 불같이 화를 내며 자신이 원하는 건 돈이 아니라 가족이라고 외친다. 시장통에서 외롭게 자라난 김지혁은 시장 사람들을 아빠, 엄마, 이모로 부르며 살아왔다. 김지혁의 가족에 대한 갈증은 현성그룹 재벌가 사람들의 돈이면 생명도 살 수 있다는 사고방식과 정면으로 부딪친다.

 

흥미롭게도 두 드라마에는 주인공의 이런 낯선 모습에 빠져드는 여자들이 등장한다. <닥터 이방인>에서 박훈과 재준이 대립할 때 박훈의 편을 들어주는 수현이 그렇고, <빅맨>에서 동석의 애인이었지만 차츰 지혁의 따뜻한 마음에 이끌리는 소미라(이다희)가 그렇다. 수현과 소미라는 모두 재벌가와 관계를 맺고 있지만 그들 세계에 편입되어 있는 인물들이 아니다. 수현은 명우대학병원 이사장 오준규(전국환)의 서녀이고, 소미라는 평범한 집안에서 성공한 커리어우먼이다. 저들 세계에 편입되지 못한 이들은 낯선 세계에서 온 박훈이나 지혁 같은 이방인들에게 끌린다.

 

<닥터 이방인>의 명우대학병원이나 <빅맨>의 현성그룹 재벌가는 자본주의의 극단을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표징하는 공간들이다. 그러니 그 속에 들어온 박훈과 동석 같은 낯선 이들은 그 현실과 부딪쳐 대결하는 색다른 영웅들이다. 그들은 서민들의 편에 서서 자본의 논리로 움직이는 이 낯선 세계와 싸워 나간다. 수현과 소미라가 이들에게 갖게 되는 마음은 어찌 보면 드라마를 시청하는 대중들의 지지와 맞닿아 있다. 그 지지는 이들의 멜로를 희구하게 만든다.

 

도대체 이 낯선 인물들이 자본에 의해 굴러가는 우리네 현실에 들어와 보여주려는 건 뭘까. 그것은 결국 지극히 상식적인 인간다움이 살아있는 세상에 대한 꿈을 전하기 위함이다. <닥터 이방인>에서 탈북하며 손을 놓아버린 재희(진세연)를 찾기 위해 체면치레나 굴욕 따위조차 아랑곳 않는 박훈의 순애보는 또한 의사로서 인간의 생명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확장되어 보여지고, <빅맨>에서 자신을 이용하고 심지어 음해하려는 재벌가 앞에서 여전히 가족을 의심하지 않는 지혁의 인간애는 에둘러 비정한 자본의 세계를 비판한다.

 

<닥터 이방인>의 박훈과 <빅맨>의 김지혁. 낯선 그들에게 동화되고 공감되면서 상황은 역전된다. 마치 수현과 소미라가 그렇게 느끼듯이 점점 그들이 낯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공간이 낯설게 다가오는 것이다. 같은 시간대에 서로 다른 드라마가 이처럼 비슷한 뉘앙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인간보다는 돈이 우선인 세상. 우리는 얼마나 낯선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나. 낯선 건 그들이 아니라 우리들이다. 우리네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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