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예능 추락의 시대, <나 혼자 산다>의 생존비결

 

11시대 주중 예능 프로그램들은 이제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는 걸까. 목요일 밤에 방영되는 강호동의 MBC <별바라기>는 시청률이 고작 3%. 경쟁 프로그램인 유재석의 KBS <해피투게더>7.1%(73일 닐슨 코리아). 이것도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 모은 <정도전> 출연자들이 게스트로 나왔기 때문에 올라간 수치다. 이전에는 6%대에 머물렀다.

 

'나 혼자 산다(사진출처:MBC)'

한때 주중 예능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토크쇼라고 지목됐던 KBS <안녕하세요>도 최근에는 6%까지 시청률이 떨어졌다. SBS <힐링캠프>4,5%대를 전전하다 브라질 월드컵 시즌에 반짝 6%를 기록하더니 다시 3%대까지 떨어졌다. 강호동이 출연하는 <우리동네 예체능>도 브라질 월드컵을 특수로 여겼지만 웬걸. 브라질 월드컵을 기점으로 시청률은 4%까지 오히려 떨어졌다. 이런 사정은 수요일 저녁(<라디오스타> 5%, <도시의 법칙> 3%)도 마찬가지다.

 

주중에 살아남은 예능은 11% 정도의 시청률을 내고 있는 SBS <정글의 법칙>이 거의 유일하다. 하지만 이 시청률도 과거와 비교해보면 뚝뚝 떨어지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화제성 면에서도 <정글의 법칙>은 예전만 못하다. 흥미로운 건 이 와중에 MBC <나 혼자 산다>가 꽤 괜찮은 성적으로(7%에서 9%까지 나온다) 선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 혼자 산다>라는 제목처럼 이 프로그램은 저 혼자 살아남은 예능이 되고 있다.

 

도대체 그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우선 주중 예능으로서 가장 많이 포진되어 있던 스튜디오 토크쇼 트렌드를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나 혼자 산다>MBC에서 관찰카메라 형식을 처음으로 전면 도입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보인 가능성 때문에 <아빠 어디가><진짜 사나이> 같은 <일밤>의 관찰카메라 트렌드 시대가 열렸다.

 

주중 예능에 있어서 이미 무덤으로 인식되고 있는 토크쇼 트렌드를 과감하게 벗어났다는 점에서 <나 혼자 산다>는 일단 세간의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이러한 형식적인 변화만으로는 대중적으로 성공하기는 어려운 법. <나 혼자 산다>의 또 다른 핵심적인 무기는 싱글족 트렌드라는 새로운 문화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이미 전체 인구의 4분의 1이 혼자 사는 싱글족이 된 시대에, <나 혼자 산다>는 그저 저들은 어떻게 혼자 살까 하는 궁금증만으로도 충분히 관심을 끌었다.

 

관찰 카메라의 특성은 리얼리티가 극대화되어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것은 강점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단점이 되기도 한다. 리얼한 카메라에 포착된 누군가의 혼자 사는 삶은 때로는 궁색하게 보이기 마련이다. 그것은 따라서 리얼하기는 하지만 마냥 보고 확인하고 싶은 풍경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 혼자 산다>는 이 리얼함에 덧붙여, 혼자 사는 삶의 판타지를 부여해주었다. 노홍철이 패러글라이딩을 체험하거나 스위스 여행을 하는 모습은 어찌 보면 혼자 사는 삶의 자유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관찰카메라 형식이라는 극단적인 리얼을 추구하면서도 리얼리티와 판타지가 적절히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은 이미 혼자 사는 삶이 그 자체로 이 양자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삶은 때론 궁상처럼 보이지만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면 관계의 피곤을 벗어난 자유로운 삶의 판타지로 다가오기도 한다.

 

<나 혼자 산다>가 살벌한 주중 예능 경쟁에서 혼자 살아남은 이유는 지금의 트렌드에 걸맞는 형식적인 변화를 시도했다는 점이 그 첫 번째고, 그 형식 위에 현재의 라이프 스타일인 싱글 라이프를 리얼리티와 판타지 양면으로 균형 있게 보여주는 점이 그 두 번째다. 특히 이 프로그램은 여타의 싱글 라이프를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들과 달리, 인위적인 느낌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게 특징이기도 하다. 특별한 걸 만들어내기 보다는 그저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준다는 점. 이것은 어쩌면 <나 혼자 산다>가 가진 꾸준한 인기의 비결일 것이다.

뭐든 빨리 잊어버리는 세태 꼬집은 닭치고

 

아 반갑다. 넌 누구니? 난 니 동생이라고 해. 넌 누구니? 난 니 형이라고 해. 반갑다. 친하게 지내자.” 쌍둥이 닭이 나누는 이 만담만을 떼고 보면 <개그콘서트>에서 새롭게 시작한 닭치고라는 코너가 그저 언어유희 개그이거나, 아니면 바보 캐릭터들이 나오는 개그처럼 느껴질 수 있다. 심지어 방금 인사한 선생님에게도 넌 누구니?”라고 묻고 선생님도 난 니 담임이라고 해라고 말할 정도니 바보들도 이런 바보들이 없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닭을 캐릭터화 하고 반복되는 닭치고!”라는 말이나, 잠깐 등장해 자신의 이름이 꽉끼오라며 엉덩이에 낀 바지를 보여주는 김준호, 또 누가 아프다고 하자 벌써 달려와 대충 약과 물을 얼굴에 마구 끼얹는 양호선생님 후다닥같은 캐릭터들은 실제로 이 개그가 꺾기도같은 류의 언어유희 개그처럼 보이게 만든다.

 

하지만 이 학교가 뭐든 잘 잊는 상징으로서 닭들을 캐릭터로 내세우고 있는 점이나, 자신이 얘기해 놓고는 단 몇 초도 지나지 않아 까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교실 위쪽에 적혀진 교훈, ‘지난 일은 잊자는 문구는 이 코너를 예사롭지 않게 바라보게 만든다. 이 뭐든 까먹는이야기는 그 자체로는 유치한 바보 개그처럼 보이게 만들지만,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면 고품격 정치풍자처럼 여겨지게 만드는 면이 있다.

 

선거 때만 되면 뭐든 이뤄줄 것처럼 줄줄이 내세우는 공약들이 단 몇 개월만 지나도 흐지부지 사라져버리는 걸 목도해온 대중들에게 닭치고는 그래서 정치인들의 희화화처럼 읽혀질 수 있다. 국민과의 약속을 당선된 후에는 헌신짝 취급하듯 버리는 행태는 이제 정치인의 캐릭터처럼 굳어져버린 상황이 아닌가.

 

이명박 정권이 그토록 강조했던 경제를 살린다는 말이 그랬고, 박근혜 정권이 내세웠던 창조경제민생이 그렇다. 그 어디에서도 살만하다는 얘기는 나오지 않고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 얘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민생? 없는 자들은 더 힘겨운 현실을 토로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러니 닭치고같은 개그가 고품격 정치 풍자로 보일 수밖에.

 

게다가 세월호 참사를 떠올려 보면 지난 일은 잊자닭치고양념 반 프라이드 반의 교훈이 아프게도 다가온다. 그 아픔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아직도 부모들의 품에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이 있는데. 미래와 꿈을 얘기하자며 지난 일은 왜 자꾸 들춰 내냐는 식의 논리들이 정치든 경제든 어느 곳에서나 꺼내지는 건 통탄할 일이다. 그 아픈 지난 일은 결코 잊을 수도 또 잊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지방선거 치르고, 월드컵 끝나고 하면 또 다 잊혀질 거라고들 말한다. 삶이 어려우니 현실이 어려우니 그렇게 살면서 실제로 잊혀져 가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이 닭과 다른 것은 기억의 힘이 있어 잘못된 과거를 되풀이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닭치고의 닭들이 했던 말을 끝없이 반복하며 마치 바보들처럼 무감하게 웃는 모습은 그래서 뭐든 빨리 잊어버리는 세태를 아프게도 꼬집는다.

 

물론 닭치고는 그 어디에도 정치 풍자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던지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바보 같은 닭들의 언어유희만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때로는 개그의 완성은 관객의 참여에 의해 이뤄지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닭치고를 고품격 정치 풍자로 만드는 것은 오롯이 관객들의 몫이 될 것이다. 그저 닭들의 언어유희를 즐겨도 무관하지만, 현실을 빗대 바라보면 더더욱 재미있는.

조기종영 <개과천선>, 시즌제 주장 나오는 까닭

 

MBC 수목드라마 <개과천선>이 오늘을 마지막으로 종영한다. 본래 18부작이었지만 중간에 몇 번 결방을 하게 되면서 16부로 조기종영하게 됐다. 워낙 아쉬움이 남기 때문인지 조기종영에 대한 서로 다른 이유들이 제시되었다. MBC측은 김명민의 스케줄을 이유로 댔고, 김명민측은 스케줄문제가 아니라 열악한 드라마 제작 현실을 이유로 들었다.

 

'개과천선(사진출처:MBC)'

하지만 이런 이유 이외에도 <개과천선>이라는 드라마가 가진 날카로운 현실 비판이 방송사에 부담이 됐을 거라는 추론도 나온다. 물론 그것이 진짜 조기종영의 이유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현실에서 벌어졌던 대기업과 관련된 사건들이 이 드라마의 소재로 등장해 그 적나라한 얼굴을 보여줬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 다른 측에서는 <개과천선>의 조기종영 이유로 시청률을 들고 있지만 사실 이 정도의 완성도와 디테일을 담고 있는 본격 법정물로 8% 내외의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복잡한 금융 사건들은 전문가들이 봐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이 복잡함은 사건이 커도 관계자들 이외에 대중들이 사건에 무관심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 그런 사건들을 드라마를 통해 자세하게 보여준다는 그래서 시청률 8%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질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는 조기 종영되었지만 드라마 팬들은 벌써부터 시즌2를 얘기하고 있다. 드라마 내용만으로 보면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다. 이제 차영우펌을 나온 김석주(김명민)가 막 본격적으로 차영우펌에 맞서 한판 승부를 겨루는 시점이다. 중소기업에게 불리한 금융상품을 제대로된 설명 없이 판매한 은행에 맞서 김석주 변호사는 고군분투하지만 그는 차영우펌이 가진 네트워크에 첫 패배를 맛본다. 변호사의 역할을 마치 로비스트처럼 생각하는 차영우(김상중)의 말처럼 한 개인의 노력으로는 인적 네트워크를 쥐고 있는 시스템과의 대결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

 

김석주 변호사는 그래서 지금 이런 사건들과 본격적으로 싸워나가는 그 스타트 라인에 서 있는 셈이다. 게다가 현실에서 서민들이 억울하게 판결 받은 사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 많은 사건들을 하나하나 반추해나가는 것만으로도 <개과천선>의 이야기 소재는 차고 넘친다. 무엇보다 개과천선한 김석주 변호사의 면면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에 팬들은 각별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현실에서 찾기 힘든 희망처럼 그가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수많은 시즌2 요구 드라마들이 실제 시즌2를 한 적이 별로 없었던 것처럼 <개과천선>이 시즌2를 할 가능성도 많지 않다. 하지만 이번 시즌2 요구는 여타의 드라마들과는 사뭇 다른 대중들의 정서가 들어가 있다. 현실에 있었던 사건들을 소재로 끌고 와 디테일하게 다룬 <개과천선>에 쏟아지는 호평이 말해주듯, 이 드라마에 대한 시즌2 요구는 공고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시스템에 의해 불의가 정의인 양 둔갑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정서가 깔려 있다. 현실의 시스템에 의해 묵과되는 사안들을 드라마에서나마 확인하고픈 마음. <개과천선> 시즌2 요구에는 그 간절한 마음이 담겨져 있다.

<유나의 거리>의 서민적 멜로, 왜 특별하게 느껴질까

 

너 왜 이렇게 사냐? 마음잡고 착하게 살 수 있잖아.” 창만(이희준)이 유나(김옥빈)에게 던지는 이 멘트는 일반적인 멜로의 대사는 아니다. 유나는 소매치기다. 전설적인 소매치기였던 아버지 때문에 그 길로 들어섰다. 죽어가던 아버지가 제 손가락까지 자르며 소매치기를 그만두라고 만류했지만 유나는 마치 중독된 사람마냥 거리로 나와 행인들의 가방을 노린다. 그녀를 좋아하게 된 창만은 지금 유나를 그 거리로부터 구해내려 하는 중이다.

 

'유나의 거리(사진출처:JTBC)'

JTBC <유나의 거리>가 그리는 멜로는 우리가 늘상 드라마에서 봐오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거기에는 대기업 회장님 아들도 없고, 잘 나가는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나 보기에도 멋진 커리어 우먼 따위는 없다. 창만(이희준)은 건실한 청년이지만 노가다를 전전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남자. 지금은 어쩌다 보니 다세대주택 주인 한만복(이문식)이 운영하는 콜라텍 총지배인으로 일하고 있다.

 

창만이 한만복의 다세대주택에서 거기 사는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과정은 마치 신데렐라 이야기를 하향평준화한(?) 느낌을 준다. 즉 창만은 물론 뭐든 고장 난 것도 척척 고치고,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해결사 역할을 하면서도 꽤 많은 지식을 갖고 있는 인물이지만 현실에서 보면 어디 내세울 것 없는 스펙의 소유자다. 그는 지극히 평범하다.

 

평범한 그가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그를 둘러싼 다세대주택 사람들이 그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소매치기로 전전하는 유나나 꽃뱀으로 살아가는 그녀의 동거인 미선(서유정), 한때는 전국구였지만 지금은 기초생활수급자 신세로 옛 부하인 한만복에 얹혀사는 장노인(정종준)이나 개장수로 살아가는 한만복의 처남 홍계팔(조희봉), 이희준과 예전에 함께 노가다를 했던 칠쟁이 변칠복(한영웅) 등등. 하나 같이 현실에서 소외된 인물들뿐이다.

 

유나와 예전에 함께 소매치기 일을 했으나 지금은 전 강력계 형사 봉달호(안내상)와 결혼해 살아가는 박양순(오나라) 역시 노래방을 운영하면서 근근이 살아간다. 여자를 찾는 손님들에게 아내인 박양순을 방에 넣어줄 정도로 봉달호의 삶 역시 바닥이다. 이런 소외된 인물들 속에서 평범함은 비범함으로 보인다. 창만이 판타지적인 존재로 보이는 것은 이 드라마가 낮은 인물들에게 던지는 시선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건 이들처럼 낮은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드라마 속 왕자님은 드라마에나 존재할 뿐, 현실에서는 발견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이 비현실적인 왕자님과 신데렐라의 사랑에 잠시나마 빠져드는 것일 게다. 하지만 그렇게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우리는 다시 현실로 돌아오고 그만큼 텅 빈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유나의 거리>는 그 정반대를 보여준다. 낮은 시선으로 더 힘겹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실하게 살아가는 창만 같은 인물을 통해 어떤 희망 같은 걸 전해준다. 창만과 유나가 서로에게 바라는 것은 저 판타지 드라마들이 늘 보여주던 엄청난 부나 성공 같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평범하게 살기를 원하는 것뿐이다. <유나의 거리>의 서민적 멜로는 그래서 그 평범함의 가치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힘겨운 현실에 대한 페이소스를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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