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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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들, 성형하거나 복면하거나

D.H.Jung 2007. 2. 1.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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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는 괴로워’ vs ‘복면달호’

최근 속속 침투해 들어오고 있는 외국 블록버스터들 사이에서 혼자 꿋꿋이 우리 영화의 자존심을 세우고 있는 영화, ‘괴로워’. 이 영화는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통쾌한 풍자를 다뤘지만 또한 오랜 불황의 늪에 빠진 우리네 가요계의 이면을 들추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가요계의 이면을 다룬 또 하나의 영화가 개봉을 준비중이다. 이름하여 ‘복면달호’. 제목부터 심상찮은 이 영화는 복면을 쓰고 트로트를 불러야하는 3류 록커에 대한 이야기다. 이쯤 되면 궁금해지는 점이 있다. 가요계의 이면을 다룬 이 두 영화에서 왜 두 주인공은 모두 정체성을 숨겨야했느냐는 점이다. 한 명은 성형으로, 또 한 명은 복면으로.

‘미녀는 괴로워’가 예상 밖의 선전을 한 것은 첫째, 원작에 대한 리메이크에 있어서 현지화가 성공했기 때문이다. ‘미녀는 괴로워’는 스즈키 유미코가 그린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미녀는 괴로워’는 원작과는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원작에는 미녀로 변신하기 전의 한나(김아중 분)의 뚱뚱한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외모지상주의로 흐르고 있는 우리 사회를 더 강도 높게 비판할 수 있는 장치가 된다. 게다가 오래 전부터 우리 가요계의 문제가 되어왔던 ‘얼굴 없는 가수’ 혹은 ‘립씽크’ 같은 이야기들이 배치되면서 영화는 원작을 넘어 좀더 우리 현실을 비추게 되었다.

‘복면달호’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이유는 그 상황이 ‘미녀는 괴로워’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 역시 일본의 소설가 사이토 히로시의 ‘엔카의 꽃길’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다루려는 그 내용이 우리네 가요계 현실과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록가수가 설  자리가 없는 가요 풍토와 상대적으로 잘 나가는 트로트에 대한 막연한 평가절하가 그것이다. 그러니 가창력 좋은 록가수가 트로트 가수가 되는 이야기에 어찌 공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실제로 우리나라 초창기 록그룹의 신화였던 ‘백두산’의 보컬 유현상은 후에 트로트 가수로 변신, ‘갈테면 가라지’같은 히트곡을 남기기도 하지 않았던가.

만일 ‘복면달호’가 저 ‘미녀는 괴로워’처럼 원작을 넘어 우리네 정서에 맞춘 리메이크에 성공한다면 그 힘은 바로 저 가요계의 문제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그만큼 문제 많고 그 문제로 침체된 가요계의 추락이, 오히려 불황기 우리 영화계를 비상하게 만든 소재가 되었다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가요계에는 심각하기 이를 데 없는 이 소재가 이 두 영화 속에서는 코미디라는 장르로 다루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다행인 것은 이 통쾌한 풍자를 동반한 코미디라는 틀이 문제는 물론이고 해법까지 도출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음반시장상황을 이해하게 해주고 가요소비자로서 비판적인 관점을 갖게 해주고 있다.

한나나 달호(차태현 분)나 그들이 성형 혹은 복면을 하면서 정체성을 숨기게 된 이유는 알맹이보다 중요해진 껍데기 때문이다. 전영혁씨나 신중현씨 말대로 가수는 노래 잘하면 되는 것이지만 우리네 가요계는 껍데기에 더 치중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잘 생기서 나쁠 건 없지만, 잘 생긴 것만으로 가수가 된다는 건 문제가 된다. 젊은이들에게 폼나고 멋져 보이는 음악 장르로서 R&B나 발라드, 댄스가 나쁠 건 없지만, 오로지 그 장르에만 몰려드는 음반기획은 문제가 된다. 이러한 문제들을 건드렸다는 점이 ‘미녀는 괴로워’ 이후, ‘복면달호’에서 다루어질 우리네 가요계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