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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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김빠진 사이다 엔딩, 무엇이 문제였을까

D.H.Jung 2017. 3. 2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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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시청자들이 그토록 사이다 엔딩 기대했건만

SBS 월화드라마 <피고인>이 종영했다. 모두가 바라던 해피엔딩. 박정우(지성)는 차민호(엄기준)를 결국 사형수로 감방에 집어넣으며 정의를 실현했다. 마지막 시청률도 28.3%(닐슨 코리아)로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모든 것이 정의로 돌아간 해피엔딩에 최고 시청률까지 기록했지만 어딘지 시청자들의 반응은 찜찜하다. 사이다이긴 한데 어딘지 김빠진 사이다란다. 도대체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까.

'피고인(사진출처:SBS)'

가장 큰 문제는 이 드라마가 연장 2회를 더해 18회를 끌고 왔던 그 힘이 고구마 전개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고통스런 상황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는 박정우를 다시금 원상태로 돌려놓는 방식을 반복하면서 생겨난 시청자들의 갈증을 동력으로 삼았던 것. 마지막회까지 이렇게 갈증들을 증폭시켜놓았기 때문에 웬만한 엔딩으로는 그게 채워지기가 어려웠다. 

특히 마지막 회에서 차민호가 사형수가 되는 걸 피하기 위해 정신병자인 척 가장하며 법망을 피해나가려는 상황에 갑자기 나연희(엄현경)가 증인으로 등장해 자신이 차민호를 사랑했다고 말하며 아이 역시 차민호의 아들이라고 밝히는 장면은 너무 신파적이었다. 결국 그 증언이 차민호의 마음을 움직여 그 실체를 드러내게 만들고 그것 때문에 사형수가 된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결말이다. 

그토록 권력자들을 좌지우지하며 잘 빠져나가던 차민호가 “본래는 착한 사람이었다”는 이야기에 감상적으로 빠져버리는 이야기는 18회 동안 쌓아 놓은 정의 구현을 통한 사이다 결말에 대한 갈망들을 허탈하게 만드는 일이다. 갑자기 약해진 악역이 신파적 상황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해피엔딩을 만들기 위한 의도적 결말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이 느끼는 진정한 갈증을 해소시켜주지 못했다. 

권선징악이라는 단순한 구도조차 명쾌하다고 보기 어려운 <피고인>은 그래서 나아가 어떤 주제의식을 제대로 드러내지도 못했다. <피고인>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이 드라마는 애초에 “누가 이 시대의 피고인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진중한 질문을 담아낼 수도 있었다. 박정우라는 무고한 인물이 피고인이 되고, 정작 살인자인 차민호가 권력을 손에 쥐고 버젓이 잘 살아가며 법망을 빠져나가는 그 구도만 잘 살려냈어도 충분한 일이었다. 

하지만 <피고인>은 그런 주제의식을 끝까지 이어나가지 못했다. 고구마 전개를 통한 시청률 낚기에 더 집중하는 모양새를 보였던 것. 물론 주제의식 같은 메시지보다 이야기의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잘못됐다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이야기가 개연성을 잃어버리면서 억지 반전을 통해 만들어내는 충격요법이 진정한 이야기의 재미를 주기는 어렵다. 

최근 들어 이만한 시청률을 가져간 드라마도 드물었지만 <피고인>은 여러모로 적지 않은 문제들을 남긴 드라마였다. 시청률이 올라갈수록 시청자들의 혹평도 늘어갔다는 건 그 문제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러니 어쩌면 애초에 고구마를 통해 시청자들의 감정을 억압함으로써 시청률을 겨냥하고 있는 이 드라마에 제대로 된 엔딩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지도 모른다. 애초 사이다 엔딩은 고구마 전개의 끝에 보상처럼 주어질 것처럼 여겨진 환상이었을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