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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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하드코어, 자극의 끝은?

D.H.Jung 2006. 11. 3.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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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TV가 추구하는 바는 ‘욕망’이 되었다. 즉각적이고 직설적인 반응을 일으키지 못하면 시청률 경쟁에서 밀려나는 작금의 매체 환경이 부추긴 결과이다. 물론 TV라는 매체 자체가 인간 본연의 욕망과 불가분의 관련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욕망이 드러나는 양태는 과거와는 사뭇 달라졌다. 그것은 앞뒤 정황, 혹은 인과관계 없이 순간적인 장면 장면의 자극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하드 코어적이다.

너무나 노골적인 식욕
TV의 하드코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이른바‘식욕자극 프로그램’들이다. 주말 점심시간 직전을 장악하고 있는 SBS의 ‘결정! 맛대맛’과 ‘찾아라! 맛있는 TV’는 그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들은 과거의 ‘식욕자극 프로그램’으로 볼 수 있는 ‘6시 내 고향’의 업그레이드판이다. 저녁 6시라는 식욕의 최고점에 방영된다는 이점을 갖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그 본질에 있어서 최근의 식욕자극 프로그램과 그다지 다르지 않지만, 그래도 어떤 의미 같은 것을 도출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그 본태적인 육체의 욕망인 식욕과 ‘시장을 살린다’거나 ‘농촌을 살린다’는 취지를 결합시켜 어느 정도 수위를 조절한다. 그들 역시 음식을 소개하지만, 그 이면에는 음식의 재료인 농촌에서 나는 농작물의 소개가 기반이 되어 있다. 즉 음식 소개의 진짜 목적은 그 자체의 자극보다는 다른 취지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위 ‘식욕자극 프로그램’들에서 그런 취지는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말 그대로 식욕을 어떻게 하면 자극시킬까하는데 프로그램의 목적이 있다. 색색으로 치장하고 시청자를 유혹하는 음식들, 음식을 먹는 장면에 대한 극단적인 클로즈업, 그 장면을 보며 침을 삼키는 출연자들은 이 프로그램의 공식이다. 이 장면들은 너무나 자극적이어서 때론 하드 코어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이다.

하지만 ‘식욕자극 프로그램’은 그다지 사회적인 문제(비만이나 될까)를 양산하지 않고 어떤 면에서는 없는 식욕을 만들어준다거나 먹거리를 발굴하는 순기능도 한다는 점에서 하드코어적 접근은 방송의 최근 경향을 보여줄 뿐 그다지 비판적 소지를 갖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타 프로그램들의 자극적인 경향은 관대하게 보아줄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점점 더 노골화되는 도둑촬영
몰래카메라는 이제 전혀 새로운 시도가 아니다. 그것은 과거 르뽀 프로그램의 사회 고발 수단으로서 활용되다가, 연예인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장치가 되었고, 최근 이 수위는 이제 일반 개인들의 사생활까지 넘보고 있다.

‘몰래카메라’라는 공전의 히트상품을 스스로 접었던 개그맨 이경규씨가 다시 ‘몰래카메라’를 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여전히 시청자들의 시선을 끈다는 데 있다. 과거의 사생활 침해 비판은 몰래카메라를 접게 만들었지만, ‘튀지 않으면 사장되는’ 논란 마케팅의 중심에 서 있는 지금의 연예계는 이를 용인하다 못해 오히려 만들어내는 상황이다.

여기에 케이블TV에서 앞다투어 만들어내는 유사 프로그램들은 모두 그 기반을 ‘도촬(도둑촬영)’에 두고 있다. ‘리얼스캔들-러브캠프(코미디TV)’, ‘아찔한 소개팅(Mnet)’, ‘연애불변의 법칙(올리브 네트워크)’, ‘러브액션WXY(수퍼액션), ‘달콤살벌한 대결(XTM)’등의 프로그램이 말해주는 것은 이제 도촬의 대상이 일반인에게까지 넓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제 시청자들이 도촬의 자극에 그만큼 익숙하다는 반증이다.

이러한 도촬 영역의 확대는 사회고발프로그램에서 더 자극적인 방향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져 있다. SBS의 ‘긴급출동 SOS24’가 그 선두주자다. 이 프로그램이 그런 자극적인 도촬 화면으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시청층의 비판과 함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프로그램 자체의 시도에 대한 박수라기보다는, 사회와 국가가 하지 못한 것을 TV가 이런 식으로라도 음지에서 양지로 끄집어냈다는 부분에 있다. 즉 이 프로그램의 공감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드는 사회에 대한 시청자들의 분노와, 그걸 자극적으로 끌어내는(이성적인 접근이 아니다) 프로그램의 수위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

자극만을 쫓는 드라마들
“이제 이런 설정이 지긋지긋하다”는 비판을 끊임없이 듣고 있는 KBS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는 드라마에도 이제는 이러한 하드 코어가 하나의 ‘시청률 올리기 수단’으로 쓰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본래 구성 자체가 얽히고 설키는 긴밀한 상황전개에 있지 않은 이 드라마는 그 느슨한 상황 속에 자극적인 장면과 구도를 연속적으로 늘어놓는다. 이것을 드라마로 봐야 할지 아니면 ‘사회 고발 프로그램’으로 봐야 할지 헷갈리는 수준이다.

이 드라마가 시청률이 높은 이유 중 하나는 그 특유의 자극적인 낚시질 때문이다.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딱 걸리게 되면 그 답답함과 분노로 인해 웬만한 사람이 아니면 채널을 돌리기가 어렵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채널 고정의 원인이 드라마가 전체적으로 얘기하려는 내용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마치 하드 코어가 언제고 어느 순간에 보아도 자극적인 것처럼, 단지 에피소드적인 순간적 설정이 주는 아찔함에 눈이 가는 것뿐이다. 이런 드라마들의 역기능은 시청자들의 입맛을 강한 자극으로만 반응하게 바꾸어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이렇게되면 우리의 드라마를 보는 미각은 단맛, 쓴맛, 신맛 같은 걸 다 제쳐두고 오로지 자극적인 매운 맛에만 길들여지게 된다.

경쟁이 불러온 하드코어, 그 끝은?
이렇게 하드코어가 난립하게 된 것은 과도한 경쟁 때문이다. 지상파 방송사간의 경쟁에 케이블의 도전장이 던져지고, 여기에 외주제작사들의 경쟁까지 겹쳐지면서, 어떻게든 눈에 띄기 위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의 결과이다.

이 속에서 연예인들 역시 마찬가지로 그 하드코어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심지어는 이미지를 망가뜨리는 ‘쌩얼 전략’의 등장은, 신체적, 정신적 굴욕의어가 이제 TV를 장악했다는 걸 말해준다. 이것은 또한 좋은 캐릭터, 좋은 이미지보다는 튀는 캐릭터와 이미지가 더 우선하는 작금의 연예계 상황을 보여준다.

끊임없는 자극, 그것은 어찌 보면 시대의 흐름이고 본래 TV의 존재이유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찜찜함이 남는 것은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시청자들의 감각을 무디게 한다는데 있다. 하드코어의 끝에 남는 것은 카타르시스나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허탈함과 더 큰 자극에의 희원뿐이라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