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온마’의 미친 몰입감, 정경호의 망상이 깨지 않길 바란다는 건

뭐 이런 미친 몰입감의 드라마가 다 있나 싶다. OCN 주말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는 촘촘하게 짜인 사건들이 만들어내는 반전 스토리의 쫄깃함은 기본이고, 그 밑바닥에는 그 곳이 현실인지, 꿈인지 알 수 없는 한태주(정경호)라는 형사의 상황이 깔려 있다. 지금껏 중간 중간 삽입되어 보여준 복선들을 이어보면 그는 사고를 겪고 의식을 잃은 상태다. 그래서 갑자기 1988년으로 돌아가 그 곳에서 강동철(박성웅)을 만나 함께 일련의 사건들을 수사해온 그 과정들이 모두 그 무의식 속에서 벌어진 일이 된다. 

갑자기 TV 속 인물들이 한태주에게 말을 걸어오고, 응급한 상황인 듯 의사가 긴급히 응급처치를 하는 소리들이 그 1988년으로 돌아간 한태주에게 무시로 틈입해 들어온다. 그래서 그는 조금씩 의심하게 된다. 자신이 타임리프를 한 게 아니고, 의식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망상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 저편에서 “이제 곧 끝난다”며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는 목소리의 주인공 안민식(최진호)이 한태주의 눈앞에 나타나면서 의식과 무의식은 아슬아슬한 경계 사이에 서게 된다. 

김경세(김영필)와 신철용의 살해 용의자가 되어 도주한 강동철의 무고를 밝히기 위해 한태주와 그 팀원들이 남모르게 수사를 진행하는 와중에, 이 사건을 맡은 안민식이 등장하게 된다. 그런데 한태주는 외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통해 그 안민식이 의식을 잃은 자신을 수술해 깨어나게 해줄 수 있는 의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니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는 그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한태주가 갖게 되는 딜레마다. 그는 안민식이 무의식 혹은 망상이라고 부르는 이 1988년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연분을 부정하지 못한다. 긴박하게 한태주를 부르는 윤나영(고아성)과 조폭들로 보이는 일단의 무리들에 의해 집단적으로 두드려 맞고 쓰러져 가는 강동철과 동료들을 향해 그는 달려간다. 안민식은 이제 거의 다 됐다며 함께 가자고 손을 내밀지만.

그 장면은 그래서 현실의 안민식이라는 의사가 한태주의 뇌를 수술함으로써 그 무의식 속의 망상을 제거하는 장면으로도 읽힌다. 그래서 그들을 향해 달려가며 하나씩 꺼져가는 불빛은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기막힌 연출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눈을 뜬 한태주는 과연 의식을 깨고 현실로 돌아온 것일까. 아니면 여전히 그 무의식 속에서 동료를 구하러 갔다 구사일생으로 깨어난 것일까. 

<라이프 온 마스>가 놀라운 작품이라는 건, 한태주가 겪는 그 무의식과 의식 사이의 갈등을 시청자들도 똑같이 느끼게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시청자들은 어느 순간부터 저 1988년도의 강동철과 윤나영 같은 인물들에 대한 애정이 생겨났다. 한태주가 조금씩 느끼게 되는 감정선의 변화를 시청자들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태주가 이대로 의식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딘가 못내 아쉽게만 느껴진다. 

즉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의식을 잃은 형사라면 의식을 되찾고 깨어나는 것이 해피엔딩이 되는 것이지만, <라이프 온 마스>는 의식을 잃고 가졌던 무의식의 시간들과 그 곳에서 만난 인물들과의 사건들을 매력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차라리 이 망상이 깨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갖게 만든다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한태주가 망상에서 깨어나는 걸 아쉬워하는 대목은, 아마도 이제 2회만을 남겨 놓고 있는 <라이프 온 마스>를 보는 시청자들의 마음과 겹치는 부분일 게다. 어느 새 마지막회를 향해 가는 이 드라마의 매력적인 망상이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것. 원작 자체도 명작이지만, 리메이크가 하나의 새로운 창작처럼 여겨지는 <라이프 온 마스>의 놀라운 성취가 아닐 수 없다.(사진:OCN)

tvN의 주말예능 성적표, 절반의 성공 혹은 실패

tvN의 주말 예능 성적표는 생각보다 너무나 초라하다. <이타카로 가는 길>은 1%대 시청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갈릴레오 : 깨어난 우주>는 심지어 1% 밑으로까지 떨어졌다. 애초에 야심차게 주말 예능 공략의 기치를 내세운 tvN으로서는 당혹스런 수치다. 애초에 SNS를 기반으로 하는 프로그램인 <이타카로 가는 길>은 그나마 화제성은 있는 편이다. 하지만 <갈릴레오 : 깨어난 우주>는 반응도 별로 없어 점점 시청자들의 시선에서 멀어지고 있다. 

시청률은 어찌 보면 애초부터 쉽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동시간대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들이 오래도록 충성도 높은 시청층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야심찬 도전이라고 해도 그 채널을 돌리는 게 쉬울 리가 없다. <이타카로 가는 길>을 연출한 민철기 PD 역시 그 상황을 잘 알 것이다. 본인이 그 주말예능으로서 MBC <복면가왕>을 세웠던 연출자가 아닌가.

이건 SBS <주먹쥐고 소림사>를 담당했던 <갈릴레오 : 깨어난 우주>의 연출자인 이영준 PD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지상파에서 잔뼈가 굵어왔기 때문에 지상파 주말예능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의 전 프로그램에서 페르소나라고 불릴만한 인물들을 새 프로그램의 전면에 내세웠다. <이타카로 가는 길>의 하현우가 그렇고, <갈릴레오 : 깨어난 우주>의 김병만이 그렇다.

시청률을 차치하고 프로그램만 보면 두 프로그램 모두 새로운 시도라는 점에서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게다. <이타카로 가는 길>은 애초에 <비긴 어게인>을 떠올리게 했지만 실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 프로그램과는 사뭇 다른 SNS적인 감성이 묻어났고, 무엇보다 ‘록 스피릿’을 외치는 윤도현, 하현우에 이홍기까지 더해져 특유의 자유분방함이 개성적인 색깔을 만들었다. 

음악 여행을 지속하기 위해 조악한 상황에서도 노래를 불러야 하고, 돈이 부족하니 어딘지 헝그리한 느낌을 주는 록커들의 좌충우돌 여행기가 주는 묘미가 쏠쏠하다. 카파도키아의 어느 조그마한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과 함께 즉흥적으로 노래를 부르며 교감하는 장면은 음악이 얼마나 위로와 위안을 주며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매개가 되는가를 잘 보여주었다. 시원시원한 성격의 맏형 윤도현과 어딘지 엉뚱한 면이 개성인 하현우 그리고 막내지만 그 누구보다 록스피릿이 충만한 이홍기가 만들어가는 훈훈한 관계의 재미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다만 이 프로그램은 아직까지 지상파 주말예능이 포진한 그 시간대에 보편적으로 시청자들을 잡아끌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어 보인다. 여행이라는 콘셉트에 음악을 더해 보편성을 가져가려 했지만, 록과 밴드 음악이 막연히 갖게 만드는 마니아적일 거라는 선입견이 주말예능의 벽을 실감하게 하고 있다. 

그래도 <이타카로 가는 길>은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재미와 의미까지 모두 갖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갈릴레오 : 깨어난 우주>는 애초 화성이라는 낯선 공간을 모험하는 것 같은 영상들을 보여줘 화제가 되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맥이 빠지는 기분이다. 실제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 모의훈련이 어딘가 낯설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화성과 똑같은 환경으로 만들어진 미국 유타 화성탐사연구기지에서 매일 모의 훈련 미션을 수행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 프로그램은, 과학적인 차원에서의 재미를 찾아낼 수는 있을지 몰라도 예능 프로그램으로서의 재미를 찾기가 쉽지 않다. 가장 큰 저항감은 결국 그것이 화성 탐사를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모의 훈련’이라는 점이다. 이 부분에서 진지함과 재미 사이에 어정쩡하게 놓여진 이 프로그램의 한계가 발견된다.

예를 들어 김병만과 하지원이 첫 번째 야외에서 박스를 찾아오는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무전이 끊기면서 생겨난 위기상황은 진짜 화성이라면 굉장한 긴박감을 만들 수 있지만, 그 곳이 모의 훈련이라는 점에서 생각만큼 긴장감을 주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영어가 익숙하지 앉은 김병만은 기지 내에 있을 때는 별로 존재감이 없다. 언어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터널 뼈대를 만드는 등의 작업에 들어갔을 때만이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해낸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은 상대적으로 영어 소통이 원활한 하지원이 중심에 서 있는 느낌을 준다. 모의 훈련이 갖는 중대한 의미가 분명하지만, 그걸 예능으로 담기에는 여러모로 무리한 점이 있어 보이는 프로그램이다.

너무 프로그램들이 오래되어 이제는 새로운 재미를 찾기가 쉽지 않은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들과 비교하면, 이들 새로운 주말예능은 그 도전만으로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 여겨진다. 하지만 <이타카로 가는 길>은 그렇다 치고, <갈릴레오 : 깨어난 우주>는 너무 멀리 간 느낌이다. 새로움과 보편성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상파가 잡고 있는 주말 시간대에 어차피 절반의 성공을 추구할 수밖에 없을 지라도, 그것이 절반의 실패가 되지 않으려면.(사진:tvN)

박성광 매니저가 떠올리게 하는 사회초년생 시절

참 이상한 일이다. 뭐 특별한 일이 벌어지는 것도 아닌데, MBC 예능 <전지적 참견 시점>의 박성광과 매니저 임송의 이야기는 집중하게 된다. 첫 번째 등장했을 때부터 입에 “죄송합니다”를 달고 사는 사회 초년생의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한 몫에 받았던 송이 매니저. 23살의 나이에 고향인 창원을 떠나 낯선 서울 살이에 서툰 매니저라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 모습에서 시청자들이 느낀 건 ‘예쁜 마음’이다. 보고만 있어도 어딘가 짠하면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느낌.

두 번째 방송분에서도 특별한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박성광을 픽업해 가는 와중에 시작된 점심 메뉴 고민만으로도 시선이 집중됐다. 서로 “뭐 먹고 싶니?”하고 묻는 그 마음들이 훈훈한 ‘결정 장애’를 만들어내고 있어서다. 박성광이 “뭐 좋아하니?”하고 물으면 “오빠가 좋아하는 거요”라고 답하고, 자신이 냉면을 좋아하는 걸 알고 “냉면 어떠니”라고 물으면 혹시 자신을 배려해 선택한 음식은 아닌가 하고 고민하는 송이 매니저. 

결국 전 매니저에게 물어봐 박성광이 수제 햄버거를 좋아한다는 그 말에 따라, 그들은 수제 햄버거집에 간다. 거기서도 뭐 대단한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처음 마주 앉아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까지 기다리며 흐르는 어색한 침묵 속에서 “혈액형이 뭐냐”, “어디 강씨냐” 같은 최악의 질문을 던지는 박성광의 모습이 보여 졌을 뿐이다. 그런데도 어딘가 그 어색함과 거리감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준다. 그 어색함과 거리감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호감을 가진 이들이 처음 만나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고민하는 것처럼.

머슈룸 버거를 시킨 송이에게 왜 그걸 시켰냐고 묻자 “버섯을 좋아해서”라는 간단명료한 답변이 나온다. 이름이 송이라 별명이 ‘송이버섯’이었다고 하자, 박성광은 자신은 ‘생강’이었다고 엉뚱한 농담을 던진다. 자기 것도 나눠드시겠냐고 묻다가 박성광이 실수로 콜라잔을 엎자 그걸 다 치우고 나서 송이 매니저는 “자기 때문에 죄송하다”고 말한다. 자기가 그런 질문을 던지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란다. 그러자 박성광은 그게 왜 너의 잘못이냐는 듯 아니라며 손사래를 친다.

촬영장에 도착한 박성광은 1박2일 간 있는 촬영 때문에 먼저 돌아가는 송이 매니저에게 그 곳에서 키운 고추며 가지 같은 걸 챙겨준다. 서로 먼저 들어가라며 헤어지는 그 모습이 마치 동생을 바라보는 오빠 같다. 하지만 그렇게 일찍 퇴근한 매니저는 집으로 가지 않고 갑자기 일산 호수공원으로 향한다. 매니저로서 기본적으로 잘 해야할 운전과 주차 연습을 하기 위함이란다. 

하루를 망친 듯한 기분에 송이 매니저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다가 눈물을 터트린다. 힘든 서울 살이에 매니저 초년병 생활에 어디다 하소연할 데도 없는 송이 매니저에게 엄마는 유일하게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는 존재다. 늘 실수를 하고 “죄송합니다”를 연발하지만, 그래도 그걸 극복하기 위해 남몰래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스튜디오의 출연자들은 모두 저마다의 회한에 빠져들었다. 

사실 송이 매니저가 대단한 걸 보여주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를 보며 출연자들은 물론이고 시청자들까지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미숙했던 과거의 그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이영자의 말대로 뭘 먹어도 소화조차 하기 힘들었던 시절이고, 열심히 노력해도 나아지는 것 같지 않은 그런 시절, 우리는 막막하고 답답하지 않았던가. 그 공감대 속에서 우리는 송이 매니저가 겪는 아주 작은 일에도 몰입하게 된다. 

박성광은 자신이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 건 송이 매니저처럼 좋은 사람이 옆에 있어서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뒤집어서 보면 실수는 좀 해도 그 좋은 진심을 들여다보는 시선이 있어서이기도 하다. 가장 서툰 시기지만 그래서 누구보다 잘 하고 싶고 열심히 하던 그 예쁜 초심을 가졌던 시기. 어쩌면 우리는 송이 매니저를 통해 우리가 한참 지나왔던 그 때의 초심을 들여다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사진:MBC)

청춘멜로 외피 썼지만 씁쓸한 현실 담은 사회극

도대체 우리네 외모지상주의는 얼마나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있는 것일까. JTBC 금토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은 제목에 담겨져 있듯 성형을 통해 미인이 된 강미래(임수향)의 대학생활을 담고 있다. 외모 때문에 오크라 불리며 일상적으로 왕따를 당해왔던 강미래. 착하고 예쁜 심성을 가졌지만 그 누구도 그걸 들여다봐 주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향기를 좋아하게 된다. 보이는 것만이 아닌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 바로 향기기 때문이다. 아마도 화학과를 선택한 것도 그것 때문이었을 게다. 하지만 막상 들어온 한국대 화학과는 ‘외모지상주의’가 공기처럼 퍼져 있는 곳이다. 대학부터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성형수술로 완전한 ‘강남미인’이 된 미래는 그래서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대접을 받지만, 어딘지 그것 또한 마냥 기분 좋은 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화학과 신입생에서 단연 주목을 끄는 인물은 강미래와 조각미남 도경석(차은우) 그리고 자연 미인 현수아(조우리)다. 이들은 외모 때문에 선배들의 대시를 받는다. 복학생 김찬우(오희준)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부터 노골적으로 강미래에게 접근한다. 하지만 진심이라고는 1도 없는 이 복학생은 외모지상주의의 첨단을 걷는 인물이다. 선배라는 지위를 이용해 강미래를 어떻게 해보려는 성범죄에 가까운 짓을 저지르지만, 그 때마다 도경석(차은우)이 나타나 강미래를 도와준다.

도경석은 여자 선배들의 대시를 관심도 없다는 듯 밀어낸다. 그는 외모 또한 관심이 없다. 그것은 엄청난 미모를 가졌지만 이혼 후 떠나버린 엄마의 영향 때문이다. 예쁜 여자를 보면 인간성을 먼저 의심한다. 반면 모두에게 예쁨 받지만 마치 자신은 예쁘다는 걸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는 현수아는 도경석이나 복학생 김찬우가 강미래에게 다가가는 것처럼 보이자 은근히 미래에게 접근해 친구처럼 행동하면서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강미래와 도경석 그리고 현수아는 외모지상주의의 현실을 각각 드러내는 인물들이다. 강미래는 성형으로 달라진 주변사람들이 처음에는 낯설고 신기하게 다가오지만, 그것 역시 사람의 실체를 보지 않는 ‘외모지상주의’의 또 다른 면이라는 걸 알아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외모 하나로 이토록 바뀌는 현실이 그의 눈앞에서 적나라하게 보일 때 갖게 될 씁쓸함이 예감된다.

현수아는 이 드라마의 악역을 자처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그 역시 잘 들여다보면 외모지상주의가 만들어낸 피해자라고 여겨진다. 그가 강미래에게 접근하는 복학생 김찬우에게 마치 마음이 있는 것처럼 얘기해 그 관계를 끊어놓고 다가오는 김찬우 역시 밀어내는 모습은 아닌 척 하지만 세상의 중심이 자신이 아니라면 못견뎌하는 속내를 드러낸다. 그는 친구인 척 강미래에게 접근하지만, 사실은 성형을 한 ‘강남미인’인 그가 자연미인인 자신과 같은 급으로 여겨지는 걸 받아들이지 못한다.

도경석은 외모만 보며 접근하는 이들을 경멸한다. 또 화학과에서 외모지상주의를 드러내는 모든 행태들을 보면서 거기에 당하는 강미래에게 “너 바보냐”고 묻는다. 그는 그래서 강미래가 같은 동창이었다는 게 드러나자 “(성형을 한 사실을) 비밀로 해달라”는 말도 엉뚱하게 들린다. 과거 버스정류장에서 음악에 맞춰 발로 춤을 추던 그 모습을 좋게 바라봤던 도경석은 강미래가 왜 그렇게 성형한 사실을 숨기려 하려하는 지 의아해 한다.

강남미인 강미래와 자연미인 현수아의 비교점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외모로만 따지만 현수아가 “더 예쁘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드라마는 여우짓 하는 그보다 착하고 심성 고운 강미래가 더 예쁘게 다가온다. 화학과 학생들은 모르지만,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현수아의 뒤통수를 치는 행동들을 통해 그 실체를 들여다보게 되기 때문이다. 외모가 전부가 아님을 드라마는 이 비교점을 통해 드러낸다.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은 한국대 화학과라는 한 지점을 통해 외모지상주의에 빠져 있는 우리네 현실을 아프게도 꼬집는다. 착하디착한 강미래는 그래서 이 현실 속에서 계속 당하는 고구마 캐릭터이고, 이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도경석은 거기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사이다 캐릭터다. 물론 도경석 역시 그 내면에는 아픈 상처가 들어 있지만.

외모에 의해 사랑받고 미움 받거나, 외모로 늘 사랑받아와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아닌 것을 견디지 못하거나, 외모에만 빠져 진짜를 보지 못하는 이들이 한심하게만 여겨지는 이 세 사람은 그래서 외모 지상주의에 빠진 우리네 사회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는가 하는 청춘 멜로의 외피를 썼지만 이 드라마는 결코 멜로드라마에 머물지 않는다. 그 안에 우리 사회를 해부하는 날카로운 비판의식이 느껴져서다.(사진:JTBC)

‘친애하는’, 판사님께 보내는 서민들의 탄원서 같은 드라마

그저 뻔한 1인2역의 법정판 ‘왕자와 거지’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그건 본격적으로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를 위한 설정일 뿐이었다. SBS 수목드라마 <친애하는 판사님께>의 진짜 이야기는 전과 5범 한강호(윤시윤)가 판사인 형 수호(윤시윤)를 대신해 만나게 되는 법정 판결문 속에 들어 있었다. 

어쩌다 법정에서 판결문을 읽어야 하는 처지가 된 강호는 한자가 빼곡히 적혀 있어 읽지 못하고 선고 기일을 미룬다. 그런데 이 장면은 코믹하게 처리되어 있지만 ‘한자로 되어 있는 판결문’에 담긴 법에 대한 대중들의 정서를 담고 있다. 강호의 대사로도 처리되어 있지만 “저희들끼리만 알아듣는” 그런 판결문이란 당사자들인 서민들에게는 너무나 큰 장벽처럼 법에 위화감을 느껴지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형 수호가 청탁받았을 것으로 보이는 오성그룹 후계자 이호성(윤나무)의 갑질 폭행 사건은 법이 결국은 가진 자들의 것이라는 씁쓸한 현실을 드러낸다. 변호사들을 모아놓고 ‘군기’를 잡는 이호성은 자신이 그 ‘버러지 같은 인간들’이라 부르는 선량한 이들에게 저지른 폭행을 잘못이라 여기지 않는다. 자신이 변호사들에게 그만한 돈을 주고 있으니 무죄나 선고유예를 무조건 내리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강호는 이호성 판결을 선고유예로 내려주면 돈을 주겠다는 이야기에 시보로 들어온 송소은(이유영)에게 대신 판결문을 써보라고 했지만, 바로 이 송소은이 변수로 작용한다. 과거 자신이 아는 언니가 성폭력을 당했지만 가해자에게 가벼운 벌금형이 내려지는 판결을 봤던 그는 그 자리에서 그 가해자 미소 짓던 걸 잊지 못한다. 그런데 이호성이 검찰에 출두하는 모습에서 그 끔찍한 미소를 또 발견하고는 도저히 강호가 요청한 ‘선고유예’를 내리는 판결문을 쓰지 못한다. 

이호성에게 갑질 폭행을 당해 한쪽 시력을 잃어버린 공장 노동자가 스스로 자신의 잘못이었다고 인정했고, 그 아들 또한 아버지의 실수였다고 증언함으로써 사건은 그대로 유야무야될 판이었다. 하지만 피해자의 아들을 찾아가 왜 그런 증언을 했느냐고 송소은이 묻자, 그는 아파하면서도 법으로 그들과 싸울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한 처지를 드러냈다. 자신이라도 살아야 된다는 것. 그는 제아무리 자신이 싸우려 해도 판사나 검사가 모두 가진 자들의 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돈 때문에 이호성의 ‘선고유예’ 판결문을 쓰라고 했던 강호에게 송소은은 한 가지 원칙에 근거해 그런 판결문을 쓰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형벌의 고통이 범죄의 이익보다 커야한다”는 것. “죄지은 자가 선고를 받고 웃으며 법정을 나간다면 그건 죄에 대한 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그는 말했다. 

<친애하는 판사님께>는 강호가 감방에 갔을 때 만났던 감방 선배 사마룡(성동일)에게 탄원서를 쓰면서 서두에 적은 글이다. 보통은 ‘존경하는 판사님께’라고 쓰지만 “실제로 존경하지도 않고” 또 차별화되지도 않는 그 문구대신 ‘친애하는 판사님께’로 쓴 것. 이 짧은 글귀를 제목으로 삼은 뜻은 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가 일종의 판사들에게 던지는 탄원서에 가깝다는 걸 드러낸다. 많은 판결들이 내려지고 있지만 과연 그 판결은 정의로웠는가. 혹 가지지 못했다는 이유로 억울한 피해자들은 없었는가. 1인2역 ‘법정판 왕자와 거지’에 코미디적인 외피까지 입고 있지만 그 안에는 이러한 진중한 질문들이 숨겨져 있다.(사진:SBS)

자존감과 배려를 더한 ‘김비서’의 신데렐라 판타지

엔딩까지 완벽한 판타지다. 그 흔한 결혼 반대하는 재벌가 엄마도 없다. 또 재벌가와의 화려한 결혼에 대한 노골적인 신데렐라도 없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본 것은 재벌가의 아들이지만 가진 것을 권력 삼지 않고, 서민들과도 잘 어우러지며, 무엇보다 배려심이 많은 새로운 왕자님이었고, 남자를 누구보다 잘 챙겨주고 예쁘고 귀여우면서도 똑부러지게 자기주장은 하는 새로운 신데렐라다.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은 새로운 왕자님과 신데렐라의 로맨틱 코미디. 도대체 뻔하고 위험해보이기까지 했던 tvN 수목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무엇이 이토록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걸까.

이영준 부회장(박서준)의 엄마인 최여사(김혜옥)는 저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결혼 반대하던 속물 엄마 김미연(길혜연)과 너무나 비교된다. 좀 더 나은 집안과 결혼시키기 위해 모진 짓까지 서슴지 않던 속물 엄마. 너무 지나쳐서 세상에 저런 엄마들이 요즘 어디 있냐는 비판까지 나왔던 캐릭터지만, 아마도 현실의 엄마들을 상당부분 반영한 부분이 있을 게다. 그 엄마와 비교하면 최여사와 그 재벌집안 사람들은 놀라울 정도로 김미소(박민영)네 가족들을 챙기고 배려한다. 

그것은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판타지지만 서민들 입장에서는 보고픈 판타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세간에서부터 혼수까지 모두를 최여사가 하겠다고 하자 김미소는 갑자기 “이런 식으로는 결혼 못하겠다”고 말한다. 지나친 배려와 선물이 부담이 된다는 것. 그러자 최여사는 오히려 김미소에게 사과한다. 자신이 김미소를 아끼는 마음이 커 마음이 앞서갔다는 것. 혼수까지 다 챙겨주는 시어머니와 그럼에도 자존심을 챙기는 며느리. 물질적 욕망은 물론 정신적 자존감까지 채워주는 판타지다.

최여사가 김미소와 옷을 사러가는 장면에서도 이런 물질적 욕망과 정신적 자존감을 동시에 채워주는 판타지가 등장한다. 옷과 신발과 가방을 사주겠다며 고르라는 재벌가 시어머니가 거기 있는 걸 다 싸달라고 말하는 대목은 물질적 욕망에 대한 판타지를 담고 있고, 그것이 못내 부담스러워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말하는 김미소에게서는 자존감에 대한 판타지가 들어 있다. 결국 <김비서가 왜 그럴까>가 그토록 선전한 건, 단순한 물질적 욕망만을 담은 신데렐라 이야기가 아니라, 정신적 자존감까지 채워 당당한 모습으로 사랑까지 쟁취하는 지금의 대중들이 가진 판타지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능해진 건 어찌 보면 불가능할 것 같은 그 두 욕망을 채워줄 수 있는 이영준이라는 캐릭터가 있어서다. 그는 재벌가의 부회장으로서 일에 있어서 완벽한 일처리를 보여주는 사업가지만, 연애에 있어서는 오랜 시간동안 김미소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던 숙맥 순애보의 주인공이다. 게다가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배려심을 가진 인물이기도 했다. 그래서 완벽한 자신에 빠지는 자아도취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게 위화감을 주기보다는 우습게 다가온다. 웹툰에서나 나올 법한 캐릭터지만, 시청자들이 막연히 상상하고픈 그런 인물. 배려심 깊은 왕자님.

또한 김미소라는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비서로서 부회장을 완벽하게 보필하며 일적으로 성취를 이루면서도 동시에 부회장과의 로맨스까지 쟁취하는 인물이다. 자존감 강한 신데렐라.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그래서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를 가져와 전형적인 신데렐라와 왕자님의 이야기를 담았지만 그러면서도 지키고 싶은 자존감과 타인에 대한 배려심을 더했다. 현실에 부재하기 때문에 오히려 커진 그 완벽한 판타지는 그래서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끌 수밖에 없었다. 권위와 추종이 쏙 빠진 새로운 신데렐라 판타지다.(사진:tvN)

‘수미네 반찬’에서 노사연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노사연이 신곡 발매를 하게 되어서 바쁜 일정 때문에 더 함께 하지 못하게 됐다.” tvN 예능 <수미네 반찬>의 김수미는 노사연의 하차 이유를 그렇게 밝혔다. 진짜 바쁜 일정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노사연의 하차는 어느 정도는 예견한 일이었다. 시청자들 중 일부가 그가 <수미네 반찬>에서 하는 역할이 없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었던 터다. 

사실 <수미네 반찬>에서 노사연은 별 다른 역할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김수미가 만드는 음식을 먹으며 “맛있다”고 리액션을 하는 일과, 빠른 김수미의 요리를 따라가지 못하는 셰프들에게 레시피를 일일이 복기해주는 일 그리고 가끔 김수미와 옛 이야기를 주고받는 역할 정도가 그가 이 프로그램에서 했던 일들이다. 

액면으로 보면 <수미네 반찬>에서 김수미와 셰프들, 여경래, 최현석, 미카엘은 그 역할이 사제관계로 등장부터 확실히 정해져 있지만, 장동민과 노사연은 일종의 감초 역할이었다. 너무 요리 프로그램으로만 흘러가는 걸 막기 위해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장동민과 노사연이 웃음을 줄 수 있는 포인트를 맡게 된 것. 

장동민은 역시 개그맨답게 재빨리 자기의 역할을 찾아냈다. 김수미의 다소 ‘불친절한 레시피’를 옆에서 중계방송하듯 풀어내 웃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것이다. 장동민의 멘트 하나하나에 김수미는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자지러지게 웃는 모습을 보여줬다. 장동민은 김수미와는 물론이고 셰프들과는 밀고 당기는 캐릭터로 프로그램이 예능으로서의 재미를 유지하게 하는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장동민이 이렇게 자기 역할을 찾아갈수록, 그 옆에 있는 노사연은 점점 하는 일이 없어보이게 되었다. 물론 ‘요리무식자’로서의 자기 캐릭터를 드러내며 웃음을 주는 포인트는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그 상황은 어찌 보면 요리 프로그램과는 너무 동떨어진 느낌을 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약간의 설정이 들어간 것처럼 보이는 ‘무반주 노래 부르기’ 같은 그만의 역할을 시도해 보이기도 했지만 그건 역시 일회적인 것일 뿐 그만의 캐릭터가 되긴 어려웠다. 

그런데 과연 진짜 노사연이 역할이 없었던 걸까. 그렇지 않다. 어찌 보면 여기 출연한 모든 인물들이 하지 못하는 역할을 그가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건 ‘교관과 훈련병(?)’ 같은 다소 센 느낌의 그 요리교실 속에서 어딘가 푸근한 편안함 같은 걸 그가 보여줬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 해도 큰 소리로 허허 웃는 그의 리액션은 김수미가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의 강한 느낌을 중화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어찌됐듯 ‘바쁜 일정 때문에’ 노사연은 얼마 진행되지도 않은 <수미네 밥상>에서 하차하게 됐다. 그런데 그건 과연 득일까 독일까. 물론 프로그램을 더 빵빵 터지게 만들기 위해 새로운 인물이 투입되어 프로그램에 활기를 만들 수는 있을 게다. 하지만 모두가 빵빵 터트리는 그 센 분위기를 한껏 푸근하게 안아주는 그런 역할은 누가 할 수 있을까.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사진:tvN)

‘친애하는 판사님께’가 ‘왕자와 거지’에 법복을 입힌 까닭은 

<왕자와 거지>의 법정극 버전일까. SBS 수목드라마 <친애하는 판사님께>는 쌍둥이지만 너무나 다른 형과 동생의 역할 바꾸기를 다룬다. 형 한수호(윤시윤)는 늘 ‘전국 1등’만 하고 판사가 되어 탄탄대로를 달리는 엘리트. 하지만 동생 한강호(윤시윤)는 늘 형과 비교당하며 엇나간 삶을 살게 된다. 고교시절 집단 구타를 당하는 형을 구하려다 얼떨결에 범죄자가 됐다. 상대방에게 칼이 쥐어져 있었지만 형 수호는 그걸 모른 척 했고 그래서 강호는 감방에 가게 됐다. 그걸 시작으로 그는 전과 5범의 미래가 없는 삶을 살게 된다. 

그가 그렇게 된 건 끝없이 형만을 챙겨주던 엄마 때문이기도 했다. 범죄자가 됐다는 이유로 엄마는 형에게 짐이 된다며 찾아가지 말라고 한다. 결국 그 말에 반발해 형의 집을 찾아갔다가 마침 괴한에 납치된 형 대신 그는 어쩔 수 없이 형 노릇을 하게 된다. 판사인 형인 척 하지 않으면 경찰에 잡혀갈 위기에 처한 것. 결국 그는 재판정에까지 서게 된다. 피고인이 아니라 판사로서. 

<왕자와 거지> 모티브를 가져와 ‘정의 버전’으로 담아놓은 듯한 <친애하는 판사님께>는 그래서 이 전과 5범의 범법자가 사건을 접하고 거기서 판결을 내리는 입장에 놓이게 되면서 생겨나는 해프닝을 다루려 한다. 늘 칼 같은 판결을 내리는 형과 달리 동생은 어떤 판결을 내리게 될까. 본인이 붙잡혀 사법연수원생 검사 시보로 온 송소은(이유영)에게 줄줄이 자신의 곡절 많은 사연을 늘어놓던 그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그의 판결은 훨씬 더 온정적일 거라는 짐작을 하게 만든다. 형과는 다른 ‘인간적인 판사’의 모습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드라마는 한강호의 이야기에 송소은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겹쳐놓았다. 한강호의 이야기가 다소 허구적이라면, 송소은의 이야기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을 첫 회부터 담고 있다. 검찰 내 성추행 문제를 다룬 것. 검사 시보로 일하던 중 송소은은 담당검사인 홍정수(허성태)에게 일상적인 성추행을 당하고 급기야 술자리에서 노골적인 성폭력까지 당한다. 송소은은 이를 ‘직장 내 위계질서에 의한 성희롱’이 아니냐며 상부에 보고하지만 “그게 뭐 큰일이냐”며 오히려 상사로부터 질책을 받는다. 그가 형 노릇을 하기 위해 억지로 판사의 옷을 입은 강호의 밑으로 들어오게 된다. 두 사람 사이에 향후 벌어질 관계의 진전이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이 작품을 쓴 천성일 작가는 기획의도를 통해 1인2역 쌍둥이 설정의 이 작품이 하려는 이야기를 ‘타인의 삶을 탐낸 자들의 유쾌한 최후!’라고 표현했다. 강호가 그런 삶을 살게 된 건 형과 비교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살고픈 그 마음이 상처를 만들고 스스로를 파괴하게 했던 것. 그렇다면 진짜 그 삶을 살게 된 강호는 이제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또 삶이 전과 5범에서 판사로 바뀌었다고 해서 사람이 바뀔 수 있을까. <친애하는 판사님께>는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에 타인의 삶을 욕망하게 되는 우리네 세태를 다소 판타지적 설정으로 그려내려 한다. 

의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 이야기가 새롭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타인의 삶을 욕망하다 결국은 자신의 삶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지금의 대중들이 이미 현실적으로도 충분히 받아들이는 이야기라서 그렇다. 이른바 ‘소확행’ 같은 삶의 트렌드가 생겨나는 건, 타인의 삶을 욕망하는 것 자체가 더 이상 이뤄질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갖게 된 일종의 ‘포기정서’가 그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게 아닌가. 

과연 <친애하는 판사님께>는 이 이미 시청자들이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의 반복, 그 이상을 담아낼 수 있을까. 뻔한 쌍둥이 설정의 1인2역 드라마가 아닌, 무언가 새로운 이야기를 건넬 수 있을 것인가. 바로 이 부분이 이 드라마의 성패를 가르는 지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사진:SBS)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와 최불암의 ‘한국인의 밥상’

“이거 궁예 아니신가?” 길거리에서 만난 아저씨는 김영철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아마도 KBS 대하 사극 <태조 왕건>에서 김영철이 연기했던 그 궁예 역할이 지금까지도 강렬하게 남은 탓일 게다. 이른바 ‘관심법’이라는 유행어까지 만들 정도로 세간의 화제가 됐던 캐릭터가 아니었던가. 그 궁예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살갑게 동네사람들에게 다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KBS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가 그려내는 풍경이다.

늘상 지나던 동네이니 특별할 게 없어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또 새롭다. 세월의 더께가 앉은 노포들과 그 곳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분들에게서는 그 세월만큼의 이야기들이 묻어난다. 콩나물 비빔밥 집에서의 점심 한 끼는 어머니처럼 푸짐하게 챙겨주는 아주머니와의 대화가 새롭고, 60년 째 가업을 이어 이용원을 하고 계시다는 아저씨와의 대화 속에서는 젊은 날의 방황을 거쳐 돌아와 이제는 자부심까지 갖는 그 마음이 느껴진다. 염천교 수제화 거리에서 만난 수제화 장인에게서는 그 손을 거쳐 얼마나 많은 분들이 불편함을 덜어냈을 지가 엿보이고,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동네 구멍가게 아주머니에게서는 외국인들이 돌아가서도 그 아주머니를 통해 느꼈을 ‘한국의 정’이 느껴진다. 

이 프로그램은 제목에 들어가 있듯, 김영철이라는 배우가 아니면 담아내기 힘든 느낌 같은 것들도 들어있다. 1973년 극단에 입단하며 시작된 배우의 길은 현재까지 일일이 다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의 작품들로 이어져왔다. <태조 왕건>의 궁예, <야인시대>의 김두한, <아이리스>의 백산, 영화 <달콤한 인생>의 강사장 역할처럼 강렬한 카리스마를 보여줘 왔지만, <아버지가 이상해> 같은 드라마의 변한수 역할 같은 따뜻하고 헌신적인 역할도 보여줬다. 그러니 이 많은 역할을 해온 배우가 연기라는 세계 바깥으로 나와 동네를 걷는 그 장면 자체가 이체롭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많은 인물들을 연기해온 그가 바로 그 실제 인물들을 만나는 순간들이 그렇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은 제작발표회에서도 나왔던 이야기지만, 그 구도가 떠올리게 하는 또 다른 프로그램이 있다. 그건 바로 2011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370여회가 넘게 전국 각지를 찾아다니며 그 곳의 밥상을 소개했던 최불암의 <한국인의 밥상>이다. <한국인의 밥상>같은 장수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며 ‘동네 천 바퀴’를 돌고 싶다 포부를 밝혔던 데서도 드러나듯, 두 프로그램은 닮은 구석이 많다. 

먹방이 한창 유행하던 시절, <한국인의 밥상>은 다소 진지한 접근으로 전국 각지에서 철마다 나오는 식재료들과 그것들을 특유의 방법으로 해먹은 요리법을 소개해왔다. 처음에는 너무 진지한 다큐 같은 느낌이 강했지만 보면 볼수록 그 깊이에 빠져들게 되는 프로그램. 마치 전국 각지에 존재하는 우리네 밥상을 마치 백과사전처럼 온전히 정리해내겠다는 그 포부도 좋지만, 그걸 현지에서 살아가는 분들의 소박한 삶과 이야기로 전하는 대목도 빼놓을 수 없는 묘미다. <한국인의 밥상>이라고 해서 ‘밥상’만 보일 줄 알았더니 ‘한국인’이 보이는 것.

이걸 가능하게 하는 인물은 역시 프로그램을 지금껏 이끌어온 최불암이다. 우리에게는 <수사반장>의 캐릭터가 더 강렬하게 남아 있지만, 어쩌면 이 프로그램과 더 어울리는 모습은 <전원일기>의 김회장이 아닐까.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1088회를 방영했던 진짜 ‘국민드라마’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은 이 드라마를 통해 김회장은 우리 시대의 ‘아버지’로 자리 잡은 바 있다. 그러니 그가 지방을 찾아다니며 쉽지 않은 노동에 두툼해진 아주머니의 손을 잡는 장면은 그 자체로 뭉클한 면이 있다. 맛깔나게 담아주는 내레이션 또한 빼놓을 수 없지만.

궁예의 김영철과 수사반장 최불암. 이들이 연기가 아닌 실제 현실 속 길을 걷게 된 건, 그들이 거기서 만나는 사람들 때문이다. 이름 모를 서민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며, 만만찮은 삶의 경험을 공감대로 그들과 나눌 수 있는 인물로 이들 만한 배우들이 있을까. 두 프로그램이 모두 그들의 필모그래피처럼 장수하는 프로그램이 되길.(사진:KBS)

‘라이프’, 강력한 항원 조승우 vs 만만찮은 항체 이동욱

놀랄 만큼 입체적이다. 병원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만이 아니라, 그것이 병원 밖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고, 생명을 살린다는 그 의사의 본분을 담는 병원이 또한 자본이라는 괴물의 시스템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걸 새삼 확인시킨다. 병원을 소재로 하는 의학드라마가 이토록 입체적으로 병원을 보여준 적이 있던가. JTBC 월화드라마 <라이프>가 담아내고 있는 병원이다. 

구승효(조승우)는 물류센터 사장으로 화정그룹이 인수한 상국대학병원을 맡게 되면서 각 과별 경영실적부터 챙겨본다. 가장 적자 폭이 큰 과가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그리고 응급과. 그 과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던 차에 ‘지방병원 파견 근무’ 제도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 세 과를 모두 지방으로 파견 보낸다는 통보를 내린다. 파견 근무를 시키면 임금을 해당 지방병원이 해결하게 할 수 있고 정보 보조금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경영자로서는 병원의 손실을 줄일 수 있는 경영적 선택인 셈이다. 

대신 구승효는 돈 되는 센터를 건립하려 한다. 암센터, 검진센터, 장례식장이 그것이다. 화정그룹 임원 회의에서 구승효는 병원 환자 기록을 계열사인 보험사에 팔려고 한다. 그것이 직접적인 보험사 수익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회장은 병원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 그가 관심이 있는 건 서산에 있는 땅이다. 그 곳에 병원 센터 건립이라는 명분으로 땅을 매입하라고 구승효에게 지시한다. 물론 병원의 돈으로. 그러자 구승효는 회장에게 거꾸로 제안한다. 암센터, 검진센터, 장례식장 건립에 돈을 투자해달라고. 확실한 ‘캐시 카우’이기 때문에 자신 있다고. 

하지만 이 곳은 그냥 물건 파는 기업이 아니다. 병원이다. 의사들은 만만찮은 반발을 일으킨다. 특히 파견이 결정된 세 과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의사들이 모두 모여 대책회의를 하는 곳에서 ‘환자를 돈 줄로만 보는’ 새 경영진을 질타한다. 그런데 그 곳에 나타난 구승효는 역시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 의사와 간호사들의 반발을 오히려 의사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않는 것으로 몰아붙인다. 지방 같은 소외 지역에서 죽어나가는 환자들을 구하는 게 의사의 소임이 아니냐는 것. 

별 탈 없이 그럭저럭 지내오던 상국대학병원은 원장이 갑작스레 사망한 후 공교롭게도 등장한 총괄사장 구승효에 의해 병을 앓기 시작한다. 구승효는 마치 몸에 침투해 들어온 항원처럼 상국대학병원 전체를 아프게도 뒤 흔든다. 그러자 그 동안 나서지 않던 예진우(이동욱)가 일어나 구승효에게 질문을 던진다. “흑자가 나는 과는 그럼 파견대신 돈으로 된다는 뜻입니까? 지원금을 낼 수 있으면 안가도 된다 그겁니까?” 그 질문은 본래 정부에서 요청한 건 지원금인데 구승효 사장이 파견을 얘기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의문 제기이고, 또한 이 문제가 결국은 적자와 마이너스로 불리는 과들을 퇴출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기도 하다. 

구승효는 그 질문이 영 기분 나쁘다. 어딘지 만만찮은 반발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사내 게시판에 ‘파견 3과 = 적자 3과’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 ‘인도적 지원이 아닌 자본 논리에 의한 퇴출’이라는 글이 그것이다. 구승효라는 ‘항원’이 들어오자 드디어 예진우라는 ‘항체’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구승효과 예진우의 항원-항체 반응처럼 대결구도로 그려지고 있는 <라이프>는 그래서인지 그 과정을 통해 병원의 실체에 다가간다. 그 곳은 우리들에게는 아플 때 찾아가 병을 고치는 곳으로만 여겨져 왔지만 실제의 병원은 사업체이기도 했다는 것. 그래서 돈을 버는 일과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는, 어찌 보면 잘 어울리지 않는 그 조합이 바로 병원의 실체라는 것이다. 

드라마는 이러한 대결구도를 선악 개념으로 다루지 않는다. 예진우가 선이고 구승효가 악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단지 현재의 병원 시스템 안에서 예진우가 맡은 역할과 구승효가 맡은 역할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수술실을 찾은 구승효가 거기서 쪽잠을 자고 있는 주경문(유재명)에게 덮을 것을 챙겨주고 나온다. <라이프>가 구승효를 이런 인물로 굳이 그리는 건 이러한 문제들이 구승효라는 악인에 의해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병원 시스템 자체가 만들어내는 일이라는 걸 드러내기 위함이다. 

강력한 항원으로 등장한 구승효과 만만찮은 항체로 맞서는 예진우. 두 사람의 대결을 통해 드라마는 우리가 막연히 바라봤던 병원의 실체를 입체적으로 다룬다. 환자와 의사간의 관계만이 존재하는 곳이 아니라, 사업으로 연결되어 있는 병원의 진면목을 보게 된다. 그리고 어쩌면 그 병원이 처한 상황을 통해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가를 보게 될 지도.(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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