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콘’, 유민상 같은 캐릭터 발굴만 더 된다면...

드디어 바닥을 친 걸까? 900회 특집 이후 조금씩 KBS <개그콘서트>의 색깔이 살아나고 있다. 물론 아직 두드러진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새롭게 마련된 코너들에서 한동안 잘 느껴보지 못했던 ‘재기발랄함’이 느껴진다. 정체기를 넘어 침체기에까지 들어섰던 <개그콘서트>에서 작은 희망 같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그 중심에서 도드라지는 인물은 단연 유민상이다. <개그콘서트>의 선배답게 그는 여러 코너들 속에서 자기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웃음을 선사한다. 오프닝 무대에 새롭게 마련된 ‘힘을 내요 슈퍼뚱맨’은 유민상의 뚱보 캐릭터를 슈퍼히어로 캐릭터로 만들어놓은 후, 영웅과 악당의 상황을 반전시키는 참신한 발상으로 웃음을 주었다. 즉 슈퍼히어로가 악당을 갖가지 방법으로 무너뜨리지만, 그 때마다 악당의 당하는 모습에 시민들이 동정심을 느껴 오히려 슈퍼히어로에게 손가락질을 한다는 설정. 굉장히 어린아이 놀이 같은 설정이지만 그 안에는 선악구도로 나누어 강자(국가)들이 약자를 힘으로 누르는 논리에 대한 비판의식 같은 것이 느껴진다. 

유민상은 <개그콘서트>에서 늘 먹히던 ‘뚱보’ 캐릭터 중 한 명이지만, 그 특징은 ‘당하는 뚱보’라는 점이다. ‘힘을 내요 슈퍼뚱맨’이 그렇듯, 새로 마련된 ‘퀴즈카페’에서도 그는 난감한 퀴즈에 어떤 답도 내기 어려워 어쩔 줄 몰라 하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원빈과 이나영, 비와 김태희 그리고 지성과 이보영 커플을 차례로 보여준 후, 어떤 커플이 여자가 가장 아까운 커플인가를 묻는 질문을 던지거나,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사진을 보여준 후 어떤 색깔이 가장 마음이 편안해지냐는 질문을 던지고 초록색을 선택하자 그 사진을 확대해 사실은 녹조라떼가 퍼진 장면을 보여줘 당황하게 만드는 식이다. ‘퀴즈카페’는 과거 유민상이 출연했던 정치풍자 코너였던 ‘민상토론’과 궤를 같이 하는 새로운 코너다. 

송영길과 호흡을 맞춘 ‘볼빨간 회춘기’도 유민상의 강점을 잘 보여주는 코너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코너는 이제는 운신도 쉽지 않고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아 큰 소리로 외치듯 대화해야 하는 어르신들이 마치 ‘불량할배’처럼 대결하는 모습으로 웃음을 주는 코너다. 힙합 음악에 맞춰 건들대며 들어오는 등장부터 웃음을 주는데다, 대결이라고 해도 제기차기 한 번 한 것에 졌다고 스스로 패배를 인정하는 수준이다. 송영길의 연기가 돋보이는 코너지만 그와 양갱 하나를 두고 대립관계를 만들어내는 유민상의 역할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재미요소가 되고 있다. 

사실 최근 SBS <웃찾사>가 폐지되고 KBS <개그콘서트>마저 예전 같지 않다며 공개코미디 프로그램이 위기에 처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 위기라는 것도 어찌 보면 간단한 해법으로 풀릴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은 코미디 프로그램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웃음과 재미를 찾는 일이다.

<개그콘서트>가 최근 가진 가장 큰 문제는 이렇다 할 대표적인 캐릭터가 잘 눈에 띄지 않았다는 점이다. 등장하기만 해도 어떤 기대감을 가질 수 있는 캐릭터가 존재하는 무대와 그렇지 않은 무대는 확연히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유민상 같은 ‘당하는 뚱보’ 캐릭터가 최근 <개그콘서트>의 여러 코너에서 일관되게 효과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물론 <개그콘서트>에는 유민상 이외에도 충분히 발굴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개그맨들이 많다. 예를 들어 ‘볼빨간 회춘기’에서 발군의 연기를 보여주는 송영길이나, ‘명훈아 명훈아 명훈아’에서 당하면서도 톡톡 쏘는 캐릭터를 선보이는 정명훈, ‘배틀트집’에서 돋보이는 이상훈, 김기열, 송준근, 그리고 개그우먼으로서 다양한 코너에서 맹활약하는 이수지, 박소라 등등의 개그맨들이 그렇다. 

유민상의 사례처럼 이들 각각의 개그맨들이 저마다의 색깔을 살릴 수 있는 코너들이 개발되어 이들 개그맨들의 캐릭터가 안착될 수 있다면 어떨까. <개그콘서트>는 어쩌면 이 위기의 터널을 빠져나와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개콘> ‘세젤예’,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불편하게 하나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임우일이 카페에 들어와 시원한 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요라고 하자 주인인 유민상이 시럽 넣어드릴까요?”하고 되묻는다. 카페에 가면 통상적으로 물어보는 질문이지만 시골 사람으로 무시받는 것에 특히 예민한 임우일이 한 마디 쏘아붙인다. “왜 시골 사람들은 쓴 커피 못 마실 것 같아서요?”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KBS <개그콘서트>에서 지난주부터 새로 시작한 세젤예라는 코너의 한 장면. ‘세젤예는 인터넷에서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이를 지칭하는 신조어지만, <개콘>에서는 세상에서 제일 예민한 사람들을 뜻한다. 카페를 찾은 이 예민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특히 예민한 구석을 갖고 툭하면 불편함을 토로하며 주인인 유민상을 복장 터지게 만든다.

 

예쁜 개그우먼 김승혜는 늘 자신에게 들이대는 남자들이 불편하고, 지금껏 모태솔로로 살아온 이수지는 연애 이야기만 하면 발끈한다. 얼굴이 완전 노안인 송준근은 자신이 사실은 고등학생이라며 나이 이야기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혼자 오셨냐고 유민상이 묻자 김승혜는 마치 작업을 거는 사람에게 쏘아붙이듯 혼잔데요 왜?” “그쪽 제 스타일 아니거든요!”하며 오버하고, 답답한 유민상이 누구 연애 못해서 환장한 사람 있나하고 혼잣말을 하자 옆에서 이수지가 그걸 듣고는 지금 제 얘기하시는 거 맞죠? 저 모태솔로라고 놀리는 거잖아요!”라고 반응한다.

 

유민상이 저도 서른여덟 살인데 모태솔로라구요. 같은 처지라구요.”라고 답답함을 토로하자 이수지는 한 술 더 떠 같은 처지? 전 서른 세 살이에요. 뭐가 같은 처지예요. 어 너도 5년 동안 쭉 남자 없을 거다?” 하고 배배 꼬인 심사를 드러낸다. 한편 누가 봐도 나이 들어 보이는 송준근에게 시원한 맥주도 있습니다라고 말하자 그는 저 고등학생이에요!”하고 발끈한다. 송준근은 지난 회에서는 외국인처럼 생긴 외모로 저 외국인 아니에요!”하고 계속 외쳐 큰 웃음을 주기도 했다.

 

사실 어찌 보면 말장난 개그처럼 보이는 세젤예는 그러나 작은 일에도 민감해하고 발끈하는 지금의 세태를 담아내고 있다. 아마도 개그를 하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민감한 세태가 특히 공감가는 대목일 것이다. 그저 웃기려고 한 말이 굉장히 민감하고 예민하게 해석되면서 의외로 큰 불편함으로 돌아오는 걸 여러 차례 느꼈을 테니 말이다. 그럴 때마다 그들의 입장은 저 유민상처럼 고구마 백 개를 입에 넣은 듯 답답했을 게다.

 

그런데 왜 아무 것도 아닌 일에 이토록 예민해진 걸까. 그저 웃고 넘어가면 될 일들을 웃지 않고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때로는 자신을 공격하는 걸로 알아들으며 화를 내는 건 아무래도 그만큼 여유가 없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담아내는 것처럼 보인다. 이른바 프로 불편러들의 세상은 작은 일에도 예민해져버릴 정도로 각박해진 우리네 현실을 드러낸다.

 

세젤예는 저 마다의 캐릭터들이 갖고 있는 불편한 구석들 때문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웃음이 터진다. 누군가에게는 우리 가게라는 표현이 왜 당신과 제가 우리냐는 불편함으로 돌아오고, 또 누군가에게는 남의 가게라는 표현이 왜 저쪽하고는 우리고 나는 남의 가게에요라는 대거리로 돌아온다. 한쪽의 이야기는 다른 쪽의 불편함을 유발하며 끊임없이 이어지고, 그래서 세젤예의 웃음은 쉴 틈 없이 터져 나온다.

 

세젤예는 실로 오랜만에 <개그콘서트>에서 보는 현실 풍자가 가미된 웃음이면서 동시에 다른 코너들과 비교해 그 밀도도 높은 웃음을 선사한다. 한참 웃고 나면 그 밑에 깔린 세태에 대한 풍자가 묘한 페이소스까지를 느끼게 해주는 그런 웃음. 이런 참신한 코너들이 좀 더 많아져야 최근 들어 위기라고까지 불리는 <개그콘서트>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지 않을까 싶다.

<개콘><SNL>, 풍자 좀 하게 해주면 안 되나

 

KBS <개그콘서트> ‘11’ 코너에서 이상훈은 서로 비슷하여 견줘볼 필요가 없다는 뜻을 묻는 유민상의 질문에 여당과 두 야당이라고 답했다. 여당도 두 야당도 모두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다는 뜻을 담아낸 풍자다. “친인척이나 가족을 보좌관으로 채용하지를 않나. 홍보 리베이트에 휩싸이지를 않나. 가장 도덕적이어야 할 분들이 이러면 어쩌느냐.” 그의 속 시원한 한 마디 한 마디는 시청자들의 답답한 마음을 잠시나마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이어지는 풍자. “두 얼굴을 가진야누스를 묻는 질문에 이상훈은 부산 경찰관들이라며 최근 부산에서 벌어진 경찰관들의 여고생 성관계 사건을 꼬집었다. 어찌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일 뿐이지만, 그것이 개그의 소재로 삼아지는 것만으로도 대중들은 어떤 통쾌함을 느꼈다.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아닌가. 이것은 바로 세태를 꼬집는 풍자가 가진 힘이다.

 

이 날 이상훈의 풍자가 더 특별하게 여겨진 것은 그가 지난 5월 어버이연합으로부터 피소되어 지난달 30일 영등포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던 사실 때문이다. <개그콘서트>에서 이상훈은 계좌로 돈을 받기 쉬운 것을 무엇이라고 하느냐는 질문에 어버이연합이라고 답한 후, 그 이유로 가만히 있어도 계좌로 돈을 받는다. 전경련에서 받고도 입을 다물고 전경련도 입을 다문다.”고 말한 바 있다. 어버이연합은 이를 문제 삼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사실 대중들에게 어버이연합이 하는 일련의 말과 행동들은 상식적이지 않다는 질타를 받아왔다. 항간에는 어버이라는 단어를 어버이연합이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명예훼손을 이야기하지만 대중들에게는 어버이연합이 어버이를 훼손하는 느낌이다. 물론 정치적 사안들이야 다른 역학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개그와 코미디의 영역만큼은 그것이 무엇이든 내버려두는 게 그나마 답답한 현실에 작은 숨통이라도 틔워주는 일이 아닐까.

 

사실 이러한 외압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개그콘서트>의 전성기 시절 최효종은 국회의원을 폄하했다며 강용석에게 고소당했고, 메르스사태를 풍자했던 민상토론이 결방되자 외압논란이 터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민상토론은 아예 이런 외압설을 소재로 끌어와 누가 하지 말라고 합니까?”라고 질문을 던져 대중들의 공감을 사기도 했다.

 

tvN <SNL코리아>는 본래 시사풍자와 19금 개그가 균형을 이루는데서 그 정체성이 만들어졌던 프로그램이다. 초기 위켄드 업데이트여의도 텔레토비같은 코너로 신랄한 시사풍자를 보여줬던 <SNL코리아>는 그러나 지금 이런 색깔이 사라진 지 오래다. 시사풍자가 갖는 품격이 사라지자 19금 개그의 선정성과 자극만 많아진 느낌. <SNL코리아>의 이런 변화에 대해서도 외압설이 끊이지 않는다. 어째서 <SNL코리아>는 그 날카로웠던 풍자를 거둬들였을까.

 

물론 누가 하지 말라고 합니까?”하고 물을 정도로 직접적인 외압이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하지만 단체들이 심지어 고소까지 하는 이런 환경 속에서 개그맨들이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실제로 <개그콘서트>의 많은 개그맨들은 자꾸 이런 일이 벌어지면 개그를 짜거나 할 때 소재나 표현에 있어 위축된다고 말한다.

 

적어도 웃음의 지대에서만큼은, 또 대중들이 향유하는 대중문화에 대해서만큼은 좀 자유롭게 내버려두는 여유를 줄 수는 없을까. 만일 얼토당토않은 풍자라면 대중들도 호응할리 없고, 그런 호응 없는 풍자를 굳이 개그맨들이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말은 거꾸로 말하면 풍자는 어떤 식으로든 자체적인 기능에 의해 아무렇게나 만들어질 수 없다는 얘기다. 그만큼 공감을 추구하고 공감 받는 개그라면 자신들의 생각과 다르다하더라도 수긍해주고 받아들이는 게 진정한 어른들의 자세가 아닐까.

 

항간에는 개그가 점점 재미없어진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정작 그들이 마음껏 표현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그런 사회 분위기인가를 한번 되물어볼 필요가 있다. 개그맨이 고소당하는 이런 웃지 못할 개그들이 현실에 넘쳐나는 한, 우리네 희극인들은 더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잖아도 웃을 일 없는 세상, 풍자라도 시원하게 해줬으면. 답답하다 정말.

<개콘>, 웰컴 투 코리아가 담는 헬조선의 풍경

 

요즘에는 이렇게 많은 스펙을 갖고도 취직이 안 되지만 92년에는 1종 보통 운전면허증만 가지고도 대기업에 취직을 했대. 근데 요즘에는 이렇게 많은 스펙을 가지고도 왜 취업이 안되냐구? 이 능력 있는 어른들 말씀으로는 그게 다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래. ? 근데 노력을 했는데도 안되는 데 어떡하냐구? 그럴 땐 노오오오오오오력을 하면 돼. 그러면 온 우주가 나서서 널 도와줄 거야.”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KBS <개그콘서트>웰컴 투 코리아의 한 대목은 우리 사회의 청년 실업 문제를 정곡으로 집어낸다. 결국 노력이 부족해 취업이 안 된다는 것. 그러니 더 노력하라는 이야기는 듣는 이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어디 노력이 부족해서인가. 사회시스템이 부조리해서이지. 청년 실업은 잘못된 사회 시스템의 문제지만 그것을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키려는 일부 몰지각한 어른들의 목소리에 대한 비판이 이 대사 속에는 담겨있다.

 

웰컴 투 코리아는 제목에 걸맞게 우리나라로 놀러와!”라는 목소리로 시작을 하지만 그 안의 이야기들은 특이한 우리네 문화를 슬쩍 슬쩍 꺼내놓고 그 이상함을 웃음의 코드로 만들거나 혹은 위에서 본 것과 같은 우리 사회 현실의 문제를 반어법을 통해 에둘러 비판한다. 웰컴 투 코리아라고 해놓고 우리 사회의 특징들을 자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살짝 뒤틀어놓은 풍자다.

 

우리나라는 근로환경이 열악하다고 오해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런 너희들을 위해서 최고의 직업을 하나 소개시켜 줄게. 연봉 15천만 원, 근무형태 자율, 차량제공 및 유류비 지원, 개인사무실 및 보좌진 6명 지원, 퇴직 후 연금 평생 지원까지 이런 신의 직장이 대체 뭐냐고? 바로 국회의원이야. 근데 진짜 국회의원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구? 말만(거짓말) 잘하면 돼. 투표율이 높은 호주 친구들 어서와. 내가 찍은 사람을 진짜 확 찍어버리고 싶긴 처음이지? 이렇게 신의 직장이 있는 대한민국으로 놀러와.”

 

과거 최효종이 사마귀 유치원에서 국회의원을 풍자했던 것과 비교해도 결코 약하지 않은 직설적인 풍자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코너는 이러한 정치 풍자만이 아니라 다양한 우리 사회의 모습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는다. 이를 테면 결혼을 하면 다양한 다이어트를 할 수 있다며 밥을 잘 챙겨주지 않는 아내의 상황극에 덧대 원푸드 다이어트, 11식 다이어트 같은 걸 꺼내는 식의 소재도 담겨진다. 엑소시스트보다 무서운 내 여자친구라는 콘셉트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반지를 찾거나 이것 저것 남자친구에게 요구하는 여자친구를 골룸아바타라는 영화 속 캐릭터에 빗대기도 한다.

 

어찌 보면 이런 다양한 소재들을 강력한 현실 풍자의 소재와 함께 나란히 도마 위에 올리는 건 이 코너가 너무 정치적인 색채로 비춰지지 않으려는 노력처럼 보인다. 그러고 보면 이 코너는 직접적인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놀러와!”처음이지?” 같은 대사를 통해 에둘러 풍자하는 간접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이전에 대표적인 풍자 개그로 지목됐던 민상토론이 했던 방식과 유사하다. 그 때도 직설 개그가 아닌 우회하는 방식의 풍자를 보여줬던 것. 이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아니 어떤 면으로 보면 더 효과적인 풍자의 방식일 수 있다. 하지만 그간 <개그콘서트>가 겪어온 무언의 압력들을 떠올려 보면 이들 풍자들이 상당부분 위축되어 보이는 건 사실이다.

 

<개그콘서트>는 최근 한 자릿수 시청률로 떨어지면서 위기라는 얘기가 솔솔 나오고 있다. 하지만 시청률만으로 모든 걸 평가하긴 어려운 일이다. 중요한 건 <개그콘서트>에 대한 시청자들의 공감대가 과거보다 많이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현실 공감은 <개그콘서트>가 지난 몇 년 간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현실에 대해 눈치 보지 않고 가감 없이 개그의 소재로 올리던 것이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개그콘서트>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지금의 힘겨운 현실을 살아가는 대중들에게 그나마 속 시원한 사이다 개그를 보여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웰컴 투 코리아는 그런 점에서 주목되는 풍자 개그다. 청년 실업을 풍자하면서 별자리는 찾았는데 정작 내 일자리를 못 찾은 건 처음 봤지? 이렇게 지혜로운 어른들이 계신 대한민국으로 놀러와.”라는 한 마디는 우리의 마음을 속 시원하게 한다. 눈치 보지 말고 할 말을 하는 <개그콘서트>. 아마도 대중들이 이 장수 개그 프로그램에 원하는 건 그것이 아닐까.

<웃찾사>를 살린 일등공신은 <개콘>이다

 

편성을 변경해 KBS <개그콘서트>와 동시간대 대결을 벌인 <웃찾사>. 과연 그 결과는 어땠을까. 시청률로만 보면 <개그콘서트>의 당연한 압승이다. <개그콘서트>12.7%(닐슨 코리아)를 기록한 반면 <웃찾사>5.9%로 절반가량 적은 시청률 수치를 가져갔기 때문이다.

 

'웃찾사(사진출처:SBS)'

하지만 <개그콘서트><웃찾사>의 이 시청률 수치는 단순 비교해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개그콘서트>는 오래도록 그 시간대를 점유해온 수치인 반면, <웃찾사>는 이제 겨우 편성 시간대를 옮긴 첫 회의 시청률이기 때문이다. <웃찾사>가 옮겨온 후 <개그콘서트>의 시청률은 지난 13.9%보다 1.2% 포인트 하락했다. 대신 <웃찾사>가 들어온 후 SBS는 이전 <떴다 패밀리> 마지막회 시청률인 2.3%에서 두 배 가량 시청률이 오른 셈이다.

 

즉 이 시간대의 시청률을 어느 정도 회복시킨 것만으로도 <웃찾사>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시청률보다 더 중요한 성과는 <웃찾사>라는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도를 편성 변경 하나로 끌어올릴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역시 <개그콘서트> 덕분이다.

 

<웃찾사>는 본래부터 <개그콘서트>와의 맞대결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그 시기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 시기를 앞당기게 한 장본인은 <개그콘서트>. 최근 들어 시청률이 계속 떨어지고 코너들도 정체된 느낌을 주면서 <개그콘서트>가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자 <웃찾사>는 발 빠르게 그 틈새를 파고들었다.

 

한편 현실에 대한 공감과 신랄한 풍자를 다루면서 <웃찾사>에 대한 호감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뿌리 없는 나무‘LTE뉴스’, ‘배우고 싶어요같은 코너들이 화제를 만들고 있었던 것. 일요일 밤으로 돌아온 <웃찾사>는 여기에 강성범의 모란봉 홈쇼핑같은 새 코너를 장착했다.

 

물론 이것만으로 <웃찾사><개그콘서트>의 아성을 공략하기에는 중과부적이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은 <웃찾사>로서는 가장 좋은 이점으로 작용한다. 웃음의 코드는 결국 낮은 위치에 있을 때 더 폭발력이 세고, 대중적인 지지도 커지기 때문이다. 서민들의 팍팍한 삶을 풍자와 공감으로 끌어내 웃음으로 전화시킬 수 있는 건, 그것을 하는 개그맨들이 서민과 같은 낮은 위치에 서 있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웃찾사>를 살려내고 있는 건 그 경쟁상대로서 최고의 위치에 서 있는 <개그콘서트>라는 존재다. <개그콘서트>라는 골리앗이 서 있어 <웃찾사>라는 다윗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것은 궁극적으로 <개그콘서트>에도 큰 자극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여러모로 독주체제란 매너리즘을 만들 위험성도 높고 또 대중들에게도 그리 좋은 이미지를 남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웃찾사>가 들어와 <개그콘서트>와 경쟁구도를 만들면서 이 시간대를 빼앗아간 MBC의 드라마와의 한판 승부가 앞으로 흥미진진한 대결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웃찾사><개그콘서트>의 경쟁구도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 편성 시간대를 무대 개그 프로그램의 시간으로 포지셔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웃찾사>의 편성 시간대 변경은 대단히 성공적이라고 평가된다.

 

여풍 <개콘>, 달달해졌지만 현실풍자 사라져

 

<개그콘서트>남자가 필요 없는 이유가 폐지됐다. 8개월 동안 지속되면서 요물-”이라는 유행어까지 낳은 코너지만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다보니 식상해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코너는 최근 <개그콘서트>에 불고 있는 여풍(女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코너였다. 서수민 PD 체제에서 김상미 PD 체제로 넘어오면서 <개그콘서트>가 전면에 내세운 것은 개그우먼들이었다. 지난 1년 동안 <개그콘서트>는 그간 개그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어왔던(?) 여심을 잡으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BS)'

먼저 폐지된 남자가 필요 없는 이유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코너들 중 상당 부분이 남녀관계의 연애심리를 담고 있거나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었다. ‘댄수다는 이것을 커플 댄스를 통한 춤으로 풀어냈고, ‘두근두근은 마치 친구처럼 지내왔지만 사실은 연애감정을 가진 남녀의 속내를 끄집어냄으로써 웃음으로 만들었다. ‘끝사랑은 이 남녀 관계의 중년판이고, ‘후궁뎐은 사극판, ‘놈놈놈은 여성 판타지 드라마의 개그판이라고 볼 수 있다.

 

개그우먼들은 거의 모든 코너에서 중심적인 위치로 들어왔다. 힘겹게 살다가 성공했지만 여전히 버려지지 않는 과거의 습관들이라는 섬세한 심리가 돋보이는 누려같은 코너는 과거라면 개그맨들이 나왔을 가능성이 높은 코너다. 하지만 이희경과 박지선이 그 중심을 잡았다. 엔딩 코너로 자리한 뿜엔터테인먼트의 주축 역시 개그우먼이다. “잠시만요! 보라언니-”로 신보라보다 주목받는 박은영이나, 먹방 콘셉트로 빵빵 터트리는 김민경, ‘느낌 아는개그우먼 김지민이 그 주역들이다. 물론 여장한 대상 개그맨 김준호도 빼놓을 수 없다.

 

폭탄 콘셉트로 유민상과 송영길을 내세운 안생겨요나 박성광 특유의 날카로움이 돋보이는 시청률의 제왕역시 여성 관객과 시청자를 겨냥한 코너다. ‘안생겨요가 뭐니뭐니 해도 외모가 먼저 들어올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심리를 꺼내놓는다면, ‘시청률의 제왕은 여성들의 주 관심사인 드라마들의 시청률 만들기 문법을 꼬집는다. 약간의 세태 풍자가 들어가 있지만 본격적인 현실풍자나 시사풍자에서는 약간 벗어나 있는 게 사실이다.

 

그나마 현실을 좀 더 드러내고 있는 코너는 백수들의 잉여적 삶을 풍자하는 놀고있네나 직장생활의 애환을 에둘러 표현한 편하게 있어정도지만 이 코너들 역시 과거의 최효종이나 동혁이형이 답답한 서민들의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던 쓴 소리와는 너무나 다르다. <개그콘서트>는 확실히 달달해졌다.

 

<개그콘서트>가 달달해진 이유로 개그우먼들이 전면에 포진한 것을 든다는 것은 자칫 성적 편견이 될 수 있다. 마치 여성들은 현실문제나 시사문제와는 거리가 먼 존재들처럼 치부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현재 <개그콘서트>의 개그우먼들이 현실문제와는 점점 거리를 둔 연애담이나 가십거리에서 더 많은 공감 포인트를 얻어가려는 모습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은 자칫 지금껏 전면에 등장하지 않고 소외되어 왜곡된 이미지로 자리했던 것만큼 개그우먼들을 왜곡시킬 위험성이 있다.

 

<개그콘서트>에 그간 남성 개그맨들의 대상으로 혹은 남성들의 시선에 좌우되는(그래서 주로 외모로 웃기는) 모습으로 소외되어 왔던 개그우먼들이 이제 전면에 등장했다는 것은 반갑고도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무대의 중앙으로 들어온 개그우먼들의 역할이 연애담 같은 소소함에만 머물고 있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달달해졌지만 현실풍자의 쓴 맛이 사라진 <개그콘서트>가 아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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