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드라마가 그리웠나, ‘테리우스’에 빠져드는 이유

드라마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신작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수목은 어느새 지상파에서부터 케이블까지 가세해 각축전을 벌이는 형국. 그런데 그 대전의 결과로서 MBC 드라마 <내 뒤에 테리우스>가 전체 드라마들 중 9.4%(닐슨 코리아)로 시청률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건 흥미롭다. 어찌 보면 조금은 가벼운 스파이액션이 가미된 로맨틱 코미디라, 상대적으로 심각한 경쟁작들과 비교해 약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지만, 오히려 그 점이 주효했다는 생각이 든다. 

숨 쉴 틈 없이 전개되는 SBS <흉부외과> 같은 작품은 생사가 오가는 수술방에서의 사투에 가까운 수술들과 그 속에서 갈등과 선택을 해야 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한번 보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지만 그걸 계속 들여다보는 일이 무겁고 힘겹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tvN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은 주인공 캐릭터가 가진 섬뜩함과 미스터리가 뒤섞인 독특한 매력이 시선을 잡아끌지만 어딘지 일본드라마 원작이 갖고 있는 정서적인 차이가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내 뒤에 테리우스>는 상대적으로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물론 여기에도 심각한 사건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주인공인 고애린(정인선)은 그 남편이 살해 현장을 목격하게 되면서 살인범인 케이에게 살해당했다. 결국 혼자 남게 된 고애린은 남은 아이들을 위해서 일도 해야 하고 육아도 책임져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런데 이 현실적인 상황의 심각함은 코미디 장르가 만들어내는 적당한 판타지로 유쾌하게 풀어진다. 고애린을 둘러싸고 있는 인물들은 대부분 육아도 해야 하고 일도 해야 하는 워킹맘들에게는 한번쯤 상상하고픈 판타지적 존재들이 아닐 수 없다. 전직 요원이었던 김본(소지섭)은 대표적이다. 고애린의 아이들을 돌봐주는 시터가 된다는 설정은 현실에서는 벌어질 수 없는 일이지만, 코미디 장르가 가져오는 그 특징들 속에서 ‘꿈꾸고픈 판타지’가 된다. 

거기에는 국가를 위해 총을 들고 싸우는 일만큼 아이를 키우는 ‘육아’가 얼마나 중요하고 어려운 일인가 하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뉴스를 보면 저게 과연 나와 무슨 상관일까 싶은 거대담론들이 이야기되고 있지만, 그것보다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우리들에게 더 중대하게 다가오는 건 경력단절이나 육아, 살림 같은 현실들이 아닌가. 

고애린을 돕는 이웃들 또한 판타지들이다. 심은하(김여진)나 봉선미(정시아) 그리고 남성 주부 김상렬(강기영)은 고애린이 위기에 처하거나 힘들 때마다 모여 힘이 되어주는 이웃들이다. 살림을 하는 주부들만의 모임은 마치 국정원의 조직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유괴된 아이를 구해내주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또 경력단절로 취업이 어려웠던 고애린이 갖게 되는 일자리 또한 판타지가 아닐 수 없다. 남편이 살해됐다는 걸 얼마나 알고 있을까 궁금해 하며, ‘적을 가까이 두려고’ 고애린을 비서로 채용하는 진용태(손호준)는 전형적인 코미디 캐릭터다. 그가 운영하는 J인터내셔널이 사실은 무기거래의 로비스트 역할을 하는 위장기업이기 때문에 고애린이 하는 주업무가 진용태의 점심 메뉴에 맞는 음식점 예약을 하는 일이라는 설정은 일자리의 무게감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통쾌한 웃음을 주는 면이 있다. 또 거기서 해고된 고애린이 김본이 채용공고를 갖다 줘 입사하게 된 ‘킹스백’ 매장도 마찬가지다. 역시 요원업무를 위한 위장기업이라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지만, 고애린이 심은하와 봉선미 그리고 김상렬의 도움으로 백을 완판시키는 성과(?)를 냈다는 설정은 빵 터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한마디로 <내 뒤에 테리우스>가 이처럼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던 힘은 그것이 비현실일지라도 상상하고픈 유쾌한 판타지이자 코미디로 풀어내진 작품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 일등공신은 역시 심각한 액션과 웃음을 넘나들 수 있는 소지섭이지만, 의외의 발견으로서 정인선의 공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현실적인 눈물과 더불어 이토록 사랑스럽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인물의 매력을 제대로 연기해내고 있어서다. 정인선이 끌고 소지섭이 밀고. 이 유쾌한 드라마가 잘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사진:MBC)

‘내 뒤에 테리우스’ 소지섭, 육아도 사랑도 첩보도 다 잡을 수 있을까

제이슨 본이 시터가 됐다? MBC 새 수목드라마 <내 뒤에 테리우스>의 발칙한 상상은 아마도 여기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아이를 돌보고 키우는 일이 국정원의 첩보보다도 더 힘들다고 말하는 <내 뒤에 테리우스>는 그 이야기 자체가 빵 터지는 풍자다. 아마도 살림하고 육아하는 주부들이라면(남녀를 막론하고) 한참을 웃으며 공감했을 그런 이야기.

코미디를 밑바탕에 깔고 있는 첩보물은 이미 <트루라이즈>나 <스파이> 같은 영화를 통해 시도된 바 있다. 거기에는 평범한 인물들이 어느 날 중대한 국제적 사안 속에서 벌어지는 첩보전에 투입되어 엄청난 활약을 하게 되는 이야기가 주로 다뤄졌다. 하지만 <내 뒤에 테리우스>는 정반대다. 전직 NIS 블랙요원으로 활약하던 김본(소지섭)이, 남편이 죽어 일과 육아전쟁을 홀로 마주하게 된 고애린(정인선)의 시터로 들어와 맹활약(?)하는 이야기다. 

국가안보실장 문성수(김명수)가 살해되는 장면을 목격한 후 역시 마법사로 불리는 암살자 케이(조태관)에게 살해당한 고애린의 남편 차정일(양동근). 그 사건을 은밀히 조사하는 김본과 뒤탈이 없는지 고애린과 그 가족을 살피는 케이의 대결. 그리고 과거 북한 핵물리학자 망명 작전 중 사라져 내부첩자 혐의를 갖고 숨어 지내는 케이와 그를 추적하는 국정원의 권영실 부국장(서이숙). 드라마는 제이슨 본의 첩보물이 보여주는 긴박감을 연출해내지만, 그것만큼 흥미로운 건 이 긴박감들을 주부들의 일상과 병치해 보여주는 다소 과장된 코미디다. 

고애린의 아이들이 케이에 의해 납치되자, 킹캐슬 단지의 이른바 KIS(Kingcastle information System)의 국장급 역할을 하는 심은하(김여진)가 단지의 주부들을 모아놓고 그 정보망을 이용해 범인을 찾아내고 아이를 구출해내는 다소 과장된 코미디적인 장면은 공감 가는 웃음을 만들어낸다. 또 고애린의 시터로 일하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심은하가 그의 심복들(?)인 남자주부 청일점 주부 김상렬(강기영)과 봉선미(정시아)를 데리고 와서 이른바 ‘시터 압박면접’을 하는 장면 역시 ‘경력단절’ 때문에 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지는 주부들의 현실을 비트는 풍자적인 웃음을 준다. 

반대로 정보원으로서 국가를 위해 엄청난 일들을 해왔던 김본의 능력들이 시터가 되어 아이들을 돌보는데 있어서 적절히 발휘된다는 점도 판타지지만 기분 좋은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항상 모든 걸 철두철미하게 정리하는 것이 몸에 밴 그는 수건 하나를 개도 각을 잡는 성격이고, 몸 쓰는 일에 익숙해 아이들이 피곤해 일찍 곯아떨어질 정도로 함께 시간을 보낸다. 물론 숨어 지내왔기 때문에 하루 종일 집안에서 머무는 일은 이미 이력이 나 있다. 이 이야기는 거꾸로 주부들이 하는 살림과 육아가 얼마나 힘겨우면서도 대단한 일인가를 새삼스럽게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주인공이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인물의 극과 극 양면을 보여줘야 하는 <내 뒤에 테리우스>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은 배우는 역시 소지섭이다. 굳은 얼굴에 양복을 입은 뒷모습만 보여줘도 첩보물에 딱 어울리는 그런 이미지를 가진 그이지만, 우리는 <무한도전>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그의 또 다른 인간적인(?) 매력을 본 바 있다. 그래서 그 무표정한 얼굴이 주는 긴장감과 웃음을 우리는 동시에 기대하게 된다. 소지섭은 과연 이 작품이 요구하는 첩보와 사랑과 육아까지 세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까. 그것이 이 드라마의 성패를 가름하는 관건이 될 것이니.(사진:MBC)

‘마녀의 법정’의 사회적 의제 vs ‘사랑의 온도’의 사적 멜로

사실 액면으로만 봤을 때 SBS 월화드라마 <사랑의 온도>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이 이토록 차갑게 식어버릴 줄 누가 알았을까. <따뜻한 말 한 마디>, <상류사회>, <닥터스> 같은 작품을 통해 믿고 보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하명희 작가의 작품이고, 작년 <또 오해영>에 이어 <낭만닥터 김사부>로 스타덤에 오른 서현진과 신인배우답지 않게 급성장하고 있는 양세종이 출연한 작품이다. 

'마녀의 법정(사진출처:KBS)'

실제로 이 드라마는 초반 괜찮은 반응을 이끌었다. 인물들 간에 벌어지는 섬세한 심리묘사가 돋보였고 드라마의 색깔에 맞게 따뜻한 연출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서현진, 양세종, 김재욱 같은 배우들의 호연이 그 인물의 섬세한 심리변화를 제대로 표현해줘 잔잔하면서도 결코 약하지 않은 극적인 감정이입을 가능하게 해줬다. 

반면 KBS <마녀의 법정>은 방송 전까지만 해도 그다지 기대감을 주는 작품은 아니었다. 정도윤 작가는 시청자들에게 낯설었고, 물론 전광렬이나 김여진의 출연이 드라마에 무게감을 주었지만 주인공들인 정려원이나 윤현민은 <사랑의 온도>와 비교해보면 그렇게 뜨거운 관심을 받는 배우들은 아니었다. 그래서 첫 회에 6.6%(닐슨 코리아)의 시청률이 나온 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로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첫 회에 좋은 인상을 남긴 <마녀의 법정>은 2회에 9.5%의 시청률로 반등했고 4회만에 최고 시청률 12.3%를 찍었다. 그리고 줄곧 월화드라마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는 반전의 주인공이 됐다. <사랑의 온도>의 추락과 <마녀의 법정>의 상승곡선은 시청자들의 이동을 명확히 보여준다. MBC <20세기 소년소녀>는 논외의 작품이 되었다. 줄곧 2%대의 시청률로 역대 최하의 기록을 세우며 시청자들의 관심에서는 멀어진 지 오래기 때문이다.

이러한 희비쌍곡선이 말해주는 건 뭘까. <마녀의 법정>이 던지고 있는 사회적 의제가 <사랑의 온도>가 자꾸만 빠져 들어가는 사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압도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드라마가 가진 세련미는 <사랑의 온도>가 훨씬 나은 면이 있지만, 소재나 이야기만을 두고 보면 <마녀의 법정>이 다루는 사건들이 훨씬 더 다채롭다. 

<마녀의 법정>은 직장 내 성추행 사건은 물론이고, 최근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일반인 동영상 유출사건, 아동 성폭행 사건 그리고 성폭력 살인사건까지 다양한 형태로 벌어지고 있는 성폭력들을 다루고 있다. 성 평등한 사회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는 요즘, <마녀의 법정>의 이야기들은 그 소재만으로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끌 수밖에 없다. 

여기에 마이듬(정려원)과 여진욱(윤현민)이라는 통상적인 남녀 캐릭터의 선입견을 깨는 검사들이 사건을 해결해가며 성장하는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성 역할을 뒤집어보는 묘미를 선사한다. 승소하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이듬과 오히려 피해자의 입장을 깊이 공감하며 사건 해결만이 아니라 그 아픔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여진욱의 합은 차가운 이성과 따뜻한 감성의 결합이라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다시금 보게 되는 건 마이듬을 연기하는 정려원이라는 배우가 가진 저력이다. 꽤 오래도록 여러 작품을 연기해온 그 공력이 이제는 훨씬 자연스럽게 그의 연기에서 묻어나오고 있다. 냉철하면서도 때론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그러면서 조금씩 성장해가는 마이듬이라는 캐릭터를 정려원은 충분히 공감하게 연기해 보여준다. 

반면 ‘사랑의 온도차’를 보여주겠다던 애초의 의도에서 점점 치정으로 치닫고, 결국 부모와 현실이라는 장벽에 부딪쳐 흔들리는 <사랑의 온도>의 인물들은 너무 뻔한 구도 앞에서 그 연기조차 퇴색된 모양새다. 좋은 연기는 좋은 캐릭터에서 나오고, 좋은 캐릭터는 좋은 이야기에서 나오기 마련인데, <사랑의 온도>는 그 이야기가 너무 뻔하다. 물론 섬세한 심리묘사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도 먼저 다채롭고 신선한 이야기가 담보됐을 때 이야기다. 

결국 <마녀의 법정>이 <사랑의 온도>를 압도한 건 그 다양한 사건들이 현실적인 사회적 의제를 건드리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반면 <사랑의 온도>가 가진 그 사적인 멜로는 갈수록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멜로라고 해도 그것이 함의하는 사회적 관계의 문제들을 ‘온도’라는 시점으로 풀어냈다면 조금 낫지 않았을까. 시청자들은 이제 지극히 사적인 사랑이야기에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싶은 것이다.

‘마녀의 법정’, 사이다 정려원과 반가운 김여진의 등장만으로도

“내가 부장님을 흥하겐 못해도 망하겐 할 수 있죠. 어차피 나도 못 들어가는 특수부 부장님도 못 들어가야 공평하지 않겠어요? (발로 정강이를 걷어차며)웁스 쏘리. 죄송한 김에 야자타임도 잠깐 하겠습니다. 야 오수철. 만지지 좀 마. 너 왜 내가 회식 때 맨날 노래만 하는 줄 알아? 니 옆에 앉기만 하면 만지잖아. 그리고 굳이 중요한 일도 아니면서 굳이 귓속말 하면서 귀에 바람 좀 넣지마. 무슨 풍선 부니? 아 맞다. 너 처음에 회식할 때 내 얼굴 뽀뽀하면서 딸 같아서 그랬다고? 어우 이걸 친족 간 성추행으로 확 그냥.”

'마녀의 법정(사진출처:KBS)'

일상화 되어 있는 성추행과 성폭력. KBS 새 월화드라마 <마녀의 법정>이 첫 회에 꺼내놓은 화두는 그 시작부터 강렬하다. 성추행과 성폭력을 막고 그런 짓을 저지른 자들에게 단죄를 해야 할 검찰 내부에서 벌어진 성추행 사건이라니. 회식 자리에서 찾아온 기자의 다리를 주무르고 어깨에 손을 얹고 피해서 나온 그 기자를 쫓아가 강제로 입맞춤을 하는 부장 검사. 자신도 그런 일상적 성추행을 당해왔지만 상사이기 때문에 덮고 넘어가려 했던 마이듬(정려원)은 그렇게 해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분명히 존재하는 유리천장을 실감하곤 그간 억눌렀던 공분을 터트린다. 

결국 이 일로 마이듬이 좌천된 부서가 예사롭지 않다. 검찰에서 모두가 기피하는 부서인 여성아동범죄 전담부서인 것. 거기서 그가 만나게 되는 여진욱(윤현민) 검사는 소아정신과 출신으로 타자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남다른 공감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 역시 부장검사의 성추행 사건에 피해자 쪽을 대변하다 이 부서로 오게 되었고, 그 부서를 직접 만든 인물은 민지숙(김여진) 부장검사로 마이듬의 엄마가 과거 성고문 사건을 폭로하려던 그 검사다. 

<마녀의 법정>이 첫 회의 포진만으로도 하려는 이야기는 명백해졌다. 그것은 여성과 아동 관련 범죄를 본격적으로 세우는 법정드라마다. 부장 검사마저도 그게 범죄라는 걸 인지하지 못하는 듯 일상화된 폭력. 그래서 더더욱 잘 보이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그 어떤 범죄보다 더 극심한 고통을 겪는 사건들을 이 드라마는 정조준하고 있다. 

많은 법정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검사는 최근 드라마들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직업일 게다. 이 모든 것이 적폐청산에 대한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법정 드라마들이 잘 들여다보지 않았던 부분이 바로 이 일상 속으로 들어와 있는 범죄들이다. 심지어 그것이 범죄인지조차 모르고 넘어가던 사건들. 

이런 점은 <마녀의 법정>이 그 어떤 사이코패스가 등장해 연쇄살인을 벌이는 드라마들보다 더 강렬한 이유다. 그런 사건들보다 더 빈번하게 일상 속에, 통상적인 관례라는 이름으로 혹은 그것이 당연한 사회생활이라고 치부되며 남모르는 피해자들을 양산해왔던 사건들이기에 더 피부에 와 닿는 것. <마녀의 법정>은 그래서 마이듬과 여진욱이라는(이 두 성의 조합이 마녀다) 남다른 검사들이 마녀처럼 사회의 악과 싸우는 이야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오랜만에 드라마로 돌아와 사이다 검사로서의 면면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정려원도 반갑지만,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한동안 드라마에서 보기 힘들었던 김여진이 돌아왔다는 건 더더욱 반갑다. 게다가 이들이 KBS 새 월화드라마 <마녀의 법정>을 통해 하려는 이야기 또한 반갑다. 그토록 많은 성폭력이나 성추행, 아동학대 같은 사건들이 우리 주변에 많았음에도 어째서 이제야 이를 정면에서 다루는 드라마가 나왔는지 그게 의아할 지경이다. 물론 드라마가 비뚤어진 세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어떤 것이 범죄인가는 확연히 보여줄 거라는 점에서 <마녀의 법정>에 거는 시청자들의 기대는 적지 않다.

<화정>, 역사를 뛰어넘으려면 이야기가 흥미로워야한다

 

MBC 월화 사극 <화정>의 그 시작은 대단히 야심찼다. 사극이나 역사가 그러하듯 한 사람의 시각을 따라가기보다는 다양한 시각들을 욕망의 차원에서 다루겠다는 포부. 그래서 광해군 시절을 그리지만 거기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욕망과 그 좌절이 그려진다. 인목대비(신은정)는 자식들을 지키려는 보호본능에 외척 세력들이 더해지면서 오히려 두 자식을 모두 잃어버리는 결과를 맞이한다.

 

'화정(사진출처:MBC)'

그 중 한 명인 정명공주(이연희)는 그러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왜국으로 팔려가게 되고 거기서 유황을 다루는 기술을 배워 조선으로 돌아와 광해에 대한 복수를 꿈꾼다. 한편 강주선(조성하)은 광해를 끌어내리기 위해 배후에서 음모를 꾸미는 인물이고, 김개시(김여진)나 이이첨(정웅인)은 광해에게 충성을 다하는 인물이지만 그들 역시 광해를 등에 업고 권력을 욕망하는 자들이다.

 

어찌 보면 이렇게 많은 인물들이 가진 저마다의 욕망과 그 부딪침이 만들어가는 역사적 사건들을 다룬다는 건 대단한 야심이다. 그런데 이것이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화정>은 초반 시작은 그래서 광해의 이야기를 축으로 그려졌다. 그가 아버지 선조(박영규)를 밀어내고 또 형인 임해군(최종환)은 물론이고 정명공주의 아우인 어린 영창대군(전진서)까지 제거할 수밖에 없는 과정들이 흥미롭게 다뤄졌다. 거기에는 왕으로서의 어쩔 수 없는 선택과 인간적인 아픔이 교차되는 광해가 그려졌다.

 

그런데 문제는 이야기의 축이 이제 광해에서 정명으로 넘어가는 그 과정에서 그 극의 힘이 대폭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보통의 사극은 한 인물이 중심에 서면 그 인물을 통한 다양한 갈등과 긴장감으로 극을 고조시킨다. 하지만 이야기의 축이 바뀌니 정명이 다시 그 극적 긴장감을 새로 만들어내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 하지만 왜국까지 넘어갔다가 다시 조선으로 돌아오는 정명의 이야기는 다채롭긴 해도 생각만큼 시청자들의 몰입을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것은 정명의 이야기가 너무 상상력에 의존한 허구에 기반한다는 점 때문이다. 광해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건들이 재해석된다고 볼 수 있지만 정명의 이야기는 마치 이 <화정>이라는 사극을 위해 맞춰진 이야기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이 사극은 화기도감의 유황을 다루는 기술을 정명이 가져온 것으로 설정하고 있지만, 일본에서 기술을 전파한 김충선(본명 사야가)이나 이미 임진왜란 당시에 비격진천뢰를 만들었던 우리네 화포 기술의 이야기는 빼놓고 있다.

 

물론 이것은 정명이라는 인물에 더 초점을 맞추기 위한 극적 선택일 것이다. 요즘처럼 역사적 사료보다는 상상력에 더 집중하는 사극의 시대에 이런 정도의 여지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런 이야기를 위한 선택이 더 효과적으로 다가왔을 때의 이야기다. 굳이 역사적 사실을 달리 해석하고 이야기하면서 극적 효과가 떨어진다면 도대체 그런 왜곡을 왜 시도한단 말인가.

 

어찌 보면 화기도감에 대한 광해의 집착은 정명이라는 인물이 왜국을 통해 다시 궁궐로 들어오는 드라마적 장치에 의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부자연스러움은 지금 현재 <화정>이 초반의 집중력과 달리 지리멸렬해지고 있는 이유다. 여기에 얹어진 멜로는 그래서 더더욱 사극을 힘 빠지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사건이 극적으로 자리를 잡았을 때 얹어지는 멜로는 힘을 부가할 수 있지만 거꾸로 그렇지 못했을 때 들어간 멜로는 본래 극적 이야기마저 흐트러뜨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보다 더 큰 문제는 인물들의 사적인 욕망들이 역사적 사건들과 부딪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부담이다. <왕좌의 게임> 같은 미드는 역사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물들이 저마다의 욕망을 드러내고 그것을 통해 나름의 역사를 구성하는 건 오히려 흥미진진해질 수 있다. 하지만 <화정>은 역사적 인물들을 다루는 사극이다. 이 인물들이 취하는 사적인 행동들이 실제 역사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화정>의 개개인의 욕망을 다루는 시각은 정교하게 그려지지 않는다면 역사를 너무 비루하게 만들 위험성도 있다.

 

야심이 너무 컸던 것일까. <화정>이 본래의 의도대로 다양한 인간군상의 욕망들을 다루겠다면 그 인물들을 매력적으로 그려낼 필요가 있다. 허무하게 초반에 죽어간 이덕형(이성민)을 떠올려보라. 그의 죽음이 시청자들에게 어떤 강한 인상을 남겼는지 잘 모르겠다. 김개시가 초반에 그토록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지금껏 별로 활용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도 의문이다. 심지어 주인공인 정명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건 치명적이다.

 

이것은 이연희의 연기력 문제가 아니다. 사극이 그저 흘러가듯이 이야기 흐름에만 급급하다보니 정작 재미의 강조점들을 놓쳐버리면서 생기는 문제다. 지금 <화정>에게 필요한 건 그 집중력이 흩어진 인물들의 매력을 되살리는 것이다. 역사를 상상력을 통해 재구성하고 뛰어넘으려면 그 새로운 이야기가 흥미롭고 그 안의 인물들이 그만큼 매력적이어야 한다.

 

<화정>이 흥미로워지는 지점, 욕망하는 존재들

 

차승원이 연기하는 광해군은 무엇이 다를까. MBC 월화 사극 <화정>이 다루고 있는 광해는 최근 들어 수차례 사극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정도로 재평가됐다. 역사에서 광해군은 사후에 이 붙여졌고 죽었을 때 붙는 묘호도 갖지 못한 왕이다. 하지만 역사는 시대에 따라 다른 시각으로 해석되기 마련이다. 최근 다뤄지는 광해군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훨씬 더 부각되는 면이 있다.

 

'화정(사진출처:MBC)'

<화정>의 광해군이 여타의 사극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그가 일면으로 그려지기보다는 다양한 입장에서 다양한 감정들이 뒤섞인 존재로서 그려진다는 점이다. <화정>에서 광해군은 어린 정명공주(허정은)에게 둘만 있는 자리에서는 세자저하가 아니라 오라버니라 부르라고 말할 정도로 자애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 어린 공주 앞에서 한없이 자애로운 눈빛을 보내는 광해군은 아버지 선조(박영규)가 죽어가는 자리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독을 마시고 목이 타는 듯 물을 달라고 애원하는 선조에게 이를 거부하며 그는 외친다. “결국엔 이렇게 될 것을, 어찌 그토록 소자를 미워하셨습니까. 나는 전하와 다른 임금이 될 것입니다. 이제 이 나라의 왕은 접니다. 아버지.” 즉 공주와 사적인 자리에서 보여준 광해군의 모습은 일면에 불과하다는 것. 그는 죽어가는 선조 앞에서 자신의 야망을 드러낸다.

 

광해군의 이런 모습은 <화정>이 인물들을 다루는 방식이다. <화정>은 형제와 남매로 엮어진 사적인 관계에서의 모습과 정적이 될 수밖에 없는 공적인 관계에서의 모습이 공존하는 인물을 그려내고 있다. 광해군과 그의 형인 임해군(최종환)의 관계가 그렇다. 임해군은 광해군을 돕는 인물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그가 영창대군(전진서)을 제거하려 해 오히려 그 어머니인 인목대비(신은정)의 숨겨진 생존본능을 건드렸다는 것 때문에 광해군에 의해 내쳐진다.

 

임해군은 결국 역모로 붙잡히게 되지만 그를 믿어준 광해군 때문에 명나라 사신단 앞에 나서 정신이 온전치 못한 모습을 일부러 보여준다. 장자인 자신이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 광해군의 즉위의 정당성을 만들어주려 한 것. 이를 고맙게 여긴 광해군이 사적으로 임해군을 찾아가 자신도 그가 역심을 품었다 생각한 걸 미안하다고 말하자, 의외로 임해군은 그것이 사실이었다는 걸 털어놓는다.

 

부왕의 장자는 나였으니까. 그 자리는 원래 내 것이 아니었더냐. 그래서 나는 네가 보위에 오르면 날 세제로 삼을 줄 알았다. 당연히 다음 자리는 나였을 터. 날 그렇게 내칠 줄은 몰랐다.” 형제로서 눈물을 흘리던 임해군 역시 그 왕좌에 대한 욕망을 품고 있었다는 것. 광해군은 이 사실을 알고는 충격에 빠진다. 즉 제 아무리 형제라 하더라도 왕좌라는 욕망 앞에서 적이 되어버리는 현실을 깨닫게 되는 것.

 

광해군은 역사를 통해 알고 있듯이 임해군, 능창군, 영창대군과 그의 세력들까지 냉혹하게 처리한 인물이다. 그래서 훗날 폭군으로 기록된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화정>은 광해군을 그리면서 그가 왜 그렇게 냉혹해질 수밖에 없었는가를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욕망으로 다루고 있다. 왕좌를 놓고 벌어지는 제거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그 용상에 오르려는 욕망의 분출은 그래서 사적인 관계의 살가움과는 사뭇 다른 광해군의 모습을 그려낼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모두 욕망하는 존재입니다. 더구나 용상은 욕망의 끝 이제 곧 지난 16년의 시간보다 더한 것을 아시게 되겠지요. 인간의 다짐이란 허망하고 누구도 믿을 수 없단 것을. 왕좌는 뜨거운 불처럼 강하고 아름답지만 전하를 삼킬 수도 있다는 걸요.” 광해군의 책사 역할인 김개시(김여진)의 이 말은 <화정>이라는 사극이 흥미롭게 다가오는 지점이다. 이 사극이 드러낼 각각의 인물들의 욕망이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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