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MBC 드라마, 두 여왕(?)의 성공과 주목할 실험작들

2009년 MBC 드라마는 대중적인 성공으로만 보면 두 여왕(?)이 이끌었다고 말할 수 있다. 상반기 3월부터 5월까지 방영된 ‘내조의 여왕’과 5월부터 12월까지 방영된 ‘선덕여왕’이 그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성공한 두 여왕(?)의 성격이 상반된다는 점이다. 하나는 현대극이고 다른 하나는 사극이며, 하나는 소소한 기획물이며 다른 하나는 야심찬 대작이었다는 점이다. 성공 포인트 또한 사뭇 다르다. ‘내조의 여왕’이 현실에 대한 철저한 공감을 그 포인트로 하고 있다면, ‘선덕여왕’은 물론 현실을 담고 있지만 사극이 갖는 성공 판타지를 중심으로 삼고 있다.

두 여왕은 성격 또한 다르다. ‘내조의 여왕’의 천지애(김남주)는 맹렬 여성이지만 그 활동은 결국 남편 뒷바라지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현모양처로서 가지는 최고의 위치, 즉 남편을 성공시키는 것이 그녀가 꿈꾸는 최상의 목표다. 하지만 ‘선덕여왕’은 왕비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진짜 왕이 되려는 목표를 세운다. 그것은 여왕이 된 덕만(이요원)은 물론이고, 좌절된 꿈이었지만 여왕을 꿈꾼 미실(고현정)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내조의 여왕’이 우리와 공감한 것은 학연 지연 혈연 같은 줄로 연결된 사회가 가진 벽 같은 절망감이고, 그 사회 속으로 편입되지 못한 자들의 절규였다. 반면 ‘선덕여왕’은 여성적 카리스마를 내세워 현 여성성의 사회가 꿈꾸는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줌으로써 여성들은 물론이고 남성들까지 지지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두 편이 모두 ‘여왕’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는 것은 드라마가 이제 주시청층인 중년 여성층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남성적인 이야기들이 대중적으로 그다지 호응을 받지 못했다는 점은 이러한 작금의 상황을 잘 말해준다. ‘2009 외인구단’은 그 시대착오적 시각이 가진 거부감을 극복해내지 못했다. 한편 ‘친구, 우리들의 전설’은 참신한 실험성과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마찬가지의 결과에 머물렀다. 결국 완성도만큼 중요해진 것이 드라마 주 시청층의 취향이라는 것을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또한 실험성이 돋보인 상대적으로 젊은 드라마들 역시 호평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탐나는도다’는 17세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만화적인 설정과 이야기로 사극적인 친숙함이 아니라 실험적인 현대극이 갖는 낯설음을 그려낸 문제작이지만 편성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드라마가 되었다. 이것은 ‘돌아온 일지매’나 ‘혼’ 같은 파격적인 드라마 실험을 한 작품들과도 결을 같이 한다. 만화적 상상력이 실험적으로 가미된 이들 작품들의 미완의 성공은, 아직까지는 이런 실험이 드라마의 주시청층들에게는 낯선 체험이라는 것을 잘 말해준다.

올 한 해 MBC는 드라마에서 다양한 실험들을 했다고 보여지지만 성공은 두 여왕을 빼놓고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편중되는 양상을 보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결국 불황이라는 시대적 정서, 드라마 주 시청층으로 자리한 중장년 여성들, 그리고 여성성을 강조하는 사회로의 변화 등이 만들어낸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2009년 MBC 드라마에서 두 여왕의 성공이 햇볕이었다면, 거꾸로 남성드라마들의 실패, 그리고 실험작들의 미완의 성공은 그 그림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빛과 그림자는 언제든 그 상황이 바뀔 수 있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올 한 해는 ‘여왕의 해’였다는 점이다.

뜨는 드라마에는 꼭 있다, 판타지남

구준표(이민호)는 엄청난 대부호의 아들로 뭐든 못할 게 없는 인물. 그런 남자가 한 여자, 잔디(구혜선)만을 사랑한다. 이것이 '꽃보다 남자'의 단순하지만 강력한 판타지의 핵심이다. '내조의 여왕'의 태봉씨(윤상현) 역시 퀸즈푸드라는 대기업의 사장으로 재력과 능력을 겸비한 남자. 그런 그가 별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천지애(김남주)를 좋아한다. '시티홀'의 조국(차승원)은 젊은 나이에 성공한 능력 있는 정치인. 하지만 그는 시골의 10급 공무원 신미래(김선아)에게 빠져 '안하던 짓', 사랑을 하게 된다. '찬란한 유산'의 박준세(배수빈)는 능력에 성품까지 겸비한 남자. 그는 어느 날 만나게 된 집도 절도 없는 고은성(한효주)을 사랑하게 된다.

구준표에서 태봉씨, 조국, 박준세까지,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모두 잘 생겼고, 둘째 재력과 능력을 겸비하고 있으며, 셋째 보잘 것 없는 여자 주인공을 헌신적으로 사랑하고, 넷째는 현실적으로는 발견하기 힘든 판타지 속의 완벽한 남자들이다. 무엇보다 큰 공통점은 이들이 등장한 드라마가 모두 성공작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이러한 판타지남들이 있어 드라마가 성공할 수 있었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그런 남자가 어디 있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드라마 속에서 이들이 하는 역할은 지대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들은 먼저 자신들의 세계와는 동떨어진 여성 주인공을 만남으로 해서 신데렐라 혹은 캔디적인 판타지의 바탕을 제공한다. 하지만 그 판타지는 과거처럼 왕자님이 그녀와 결혼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단순한 차원이 아니다. 현대적인 신데렐라 혹은 캔디의 이야기는 그 왕자님이 보잘 것 없는 위치에 있는 그녀가 자신들의 세계로 들어올 수 있도록 남모르게 돕는 것이다. 즉 외모나 성품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노력이 전제되는 판타지로 그 이야기는 바뀌고 있다.

태봉씨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천지애 모르게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피며 그녀가 처한 위기를 돌봐주고, 조국은 이제 막 정치의 세계 속에 들어와 고군분투하는 신미래를 걱정하며 결정적인 순간마다 해법을 들려준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고은성을 위해서 박준세는 헌신적이라 할 만큼 그녀를 도와준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헌신에 대한 대가조차 바라지 않는다. 티 나지 않는 도움이기에, 그녀들은 자신의 성공이 자신의 노력의 결과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런 면에서 이 남자들은 키다리 아저씨를 닮았다.

이 이른바 뜨는 드라마 속에 꼭 존재하는 판타지남들의 공통점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현대 여성들의 로맨스 속에 숨겨져 있는 사랑에 대한 판타지만큼 커진 성공 욕구일 것이다. 이제 현대 여성들이 꿈꾸는 남자는 그저 잘생기기만 해서도 안되고, 그저 부자이기만 해서도 곤란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 남자들이 그 모든 걸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갖추지 못한 그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바로 거기서부터 그녀들을 뒤에서 보이지 않는 힘으로 성공의 길로 이끄는 판타지남들이 완성되게 된다.

이들 판타지남들에 대한 신드롬에 가까운 열광은 이것이 판타지라는 점에서 정반대되는 현실을 말해준다. 불황의 여파로 사회는 더 각박해졌고, 기득권이라고 하는 남성들조차 버텨내기 힘든 경쟁시대로 돌입했다. 그러니 여성들은 오죽할까. 점점 완벽해져가는 판타지남들과 그들에게 빠져버릴 수밖에 없는 여성들을 보면서 마음 한 구석이 서늘해지는 건 그 때문이다.

연기 변신에 성공한 배우들, 작품도 살린다

배우의 변신은 무죄? 아니 이제는 필수다. CF퀸의 이미지 속에 갇혀 지냈던 김남주에게 약간은 푼수에 무식을 양념으로 얹은 '내조의 여왕'의 천지애라는 캐릭터는 구원이었다. 아낌없이 무너지는 천지애를 통해 김남주는 이제 제2의 연기 인생에 접어들게 되었다. 순수의 아이콘으로 하늘 위에 둥둥 떠 있던 고현정은 수차례에 걸친 연기 변신을 통해서야 비로소 땅에 안착할 수 있었다. 그녀는 영화로는 '해변의 여인'으로 드라마로는 '여우야 뭐하니'로 일상적인 맨 얼굴을 대중들 앞에 내밀었고, '히트'를 통해 가녀린 이미지에 강인함을 덧붙였으며,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이제 깨는 모습으로 개그맨을 웃기기까지 했다. 그녀가 '선덕여왕'의 악녀 미실을 연기한다는 사실은 그녀의 스타로부터 배우로의 연착륙이 이제 모두 안전하게 끝났다는 걸 말해준다.

'내조의 여왕'의 남자 배우들의 면면을 보면 변신에도 어떤 단계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누가 뭐래도 남자 배우들 중 가장 주목받은 캐릭터는 태봉(윤상현)이고 그 다음이 준혁(최철호)이며, 마지막이 달수(오지호)다. 윤상현은 '겨울새'로 먼저 얼굴을 알렸고, '크크섬의 비밀'에서 어떤 이미지를 형성했지만, 사실상 그의 캐릭터를 확고하게 심어준 것은 '내조의 여왕'의 태봉이다. 하지만 윤상현의 인기는 태봉이라는 캐릭터가 부여하는 점이 많다. 따라서 이 갑작스레 부각된 스타는 이제 다음 작품부터 배우로서의 시험대에 올라갈 수밖에 없다. 비슷한 캐릭터를 선택하면 인기는 유지되겠지만 배우로서의 길은 더 멀어질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연기 변신만이 배우로서의 생명을 오래 보장받는 길이 된다.

한편 준혁 역할을 해낸 최철호는 이번 연기를 통해 변신에 성공함으로써 또 하나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야인시대', '장길산', '불멸의 이순신', 그리고 '대조영'까지 시대극에서 주로 얼굴을 들이밀었지만 그가 주목을 받은 것은 '천추태후'의 초반부에 잠깐 등장한 경종 역할이었다. 여기서 그는 광기어린 연기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이처럼 강렬한 인상은 한편으로는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준혁이라는 코믹한 역할은 최철호에게서 그간 없었던 친근한 이미지를 만들어주었다. 이제는 광기어린 얼굴 뒤에 코믹한 이미지를 안전장치처럼 달고 있으니 이런 연기변신을 가능케 해준 '내조의 여왕'은 최철호에게 연기자로서의 날개를 달아준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익숙한 캐릭터를 반복한 달수 역할의 오지호가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한 것과 상반된 결과다. 연기 변신이 필요한 시기에 변신을 하지 못하면 그것은 연기자 개인에게도 부담이지만 그 드라마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남자이야기'의 박용하가 그렇고 '자명고'의 정려원이 그렇다. 박용하는 거친 남자로의 이미지 변신을 꿈꾸었지만 부드러운 남자로서의 이미지를 넘지는 못하고 있다. 그것은 사극이라는 옷이 부담스러운 정려원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물론 모든 연기자가 변신을 요구받는다는 것은 아니다. '시티홀'의 김선아와 차승원은 새로운 옷이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의 연기를 통해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런 경우는 아직까지 그들이 가진 자신의 고정 이미지가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변신이 어렵다면 이처럼 자신의 옷에 가장 잘 맞는 작품 선정에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것도 늘 같은 모습으로는 식상한 연기로 추락하게 된다. 박중훈이 똑같은 이미지를 고수해도 작품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변주해온 것은 그 오랜 인기의 비결이기도 하다. 비슷해도 조금씩 성장하는 느낌의 작은 변신은 늘 필요한 법이다.

타인의 삶을 연기하는 것이 직업인 이상, 늘 같은 모습만 보여준다면 어찌 그 직업을 배우라고 할 수 있을까. 배우의 변신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이다. 그리고 그 변신을 위한 각고의 노력은 결국 작품을 통해 드러나고, 대중들에 의해 보상받기 마련이다. 이른바 '되는 드라마'의 대부분에서 이 배우들의 연기변신을 목도하게 되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내조의 여왕'이 내조한 그들은?

취업의 벽을 간신히 통과해 겨우겨우 조직에 적응해나가고 있는 신입사원 달수씨(오지호),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다 했지만 결국 팽 당한 부장님 준혁씨(최철호), 모든 걸 다 가진 줄 알았지만 정작 자기 행복 한 자락 쥐지 못하고 살아온 사장님 태봉씨(윤상현). 드라마 '내조의 여왕'이 내조한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우리 시대 남성들의 한 전형을 만날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안을 들여다보면 조직사회 속에서 받은 상처들로 가득하다. 어딘지 부족해보여서일까.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내조하고픈 마음이 소록소록 돋는 이들의 진짜 매력은 무엇일까. 그들이 표상하는 우리 시대 남성들의 얼굴을 들여다보자.

사회성 부족 신입사원 달수씨, 그 순수함의 양면성
온달수라는 이름은 온달과 백수의 합성어처럼 읽힌다. 취직을 못해 방구석을 전전하지만 좋은 아내를 얻어 그럭저럭 살아가는 모습이 그렇다. 그는 순진하게도 가난해도 사랑 하나만 가지면 충분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어왔다. 또 직장상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갖은 아양 다 떨어가며, 손금이 없어져라 손바닥 비벼대지 않아도 실력 하나로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웬걸? 세상은 자신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움직인다. 능력 없어도 줄만 잘 서고 아부 잘 떨면 승진하고, 행복도 돈이 있어야 얻을 수 있는 게 세상이다.

'내조의 여왕'의 온달수는 바로 이 갓 사회에 나와 아직 때가 덜 묻은 새내기 샐러리맨의 자화상을 담고 있다. 순수함이 여전히 남아있지만 사회는 조금씩 그 순수함을 어리석은 것으로 치부하고, 사회적응이라는 이름으로 때를 묻힌다. 어딘지 가볍고 비굴해 보이는 선배사원들의 패배주의적인 적응기를 영웅담처럼 들어가며, 자신의 직장 내에서의 롤 모델을 찾게 된다. 그 모델은 당장의 눈앞에 가장 높은 존재인 한준혁 부장이다. 자신이 성공하면 앞으로 서 있게 될 그 모습. 하지만 온달수의 눈에도 아니 시청자의 눈에도 그 한준혁의 모습은 어딘지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조직에만 몰두하는 준혁씨, 그 치열함의 양면성
조직에서 초고속승진의 신화로 불리는 한준혁은 성공하기 위해 가정도 뒤로 접어 둔 채 앞만 보고 달려왔다. 자신의 성공 줄을 쥐고 있는 직장 상사를 위해 헌신해온 그는 상사의 정치적인 선택을 위해 동료를 짓밟고 회사의 이익을 저버리는 행위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신을 키워주는 건 회사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상사이기 때문. 그렇게 치열하게 살면 성공이 손아귀에 들어올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그토록 믿었던 직장상사는 어느 순간 쓸모없어진 자신을 가차 없이 내버린다. 뒤돌아보니 남은 건 피폐해진 가정뿐이다.

'내조의 여왕'의 한준혁은 치열하게 성공을 향해 달려왔지만 그 끝자락에서 IMF를 맞고 어이없게 퇴출당한 우리네 중년들을 닮았다. 그를 그 자리까지 이끌어준 것이 자신의 능력과 김홍식 이사(김창완)같은 회사에서의 줄 때문이라 생각했던 것은 이즈음 깨져버린다. 그리고 돌아보면 거기 자기 한 사람을 위해 똑같이 치열한 삶을 산 아내 양봉순(이혜영)이 있다. 지독히도 성공만을 바라보며 살았고, 그토록 자신을 지지해줄 것이라 믿어왔던 조직은 그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끝까지 남아준 것은 가족들뿐이다.

다 가진 것 같던 태봉씨, 그 물질적 풍요로움의 양면성
반면 조직 내에서 사실 상의 모든 권력을 손에 틀어쥐고 있는 허태준 사장(일명 태봉씨)은 모든 걸 다 가진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 것도 손에 쥔 것이 없는 인물이다. 경제적 원칙(?)에 따라 사랑 없는 결혼을 했고, 회사 바깥으로만 나돌았다. 무식해보이고 어딘지 허점이 많아 보이는 천지애(김남주)가 보여주는 가식 없는 모습에 마음이 끌린 건 아마도 그 모든 것이 가짜 같은 물질적 풍요로움의 세계 속에서 그것이 진짜 사람 냄새라고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판타지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지만, 누구에게도 진심으로 내조 받지 못하면서도 숨어서 천지애의 수호천사가 되는 허태준 사장은 어찌 보면 이 드라마에서 가장 외로운 인물처럼 보인다. 게다가 감상에 빠져있을 때, 사장이라는 자리는 늘 그 자리를 노리는 자들로 인해 위태로워지기 마련이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이 가져온 위기 앞에서 그는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의 믿음을 저버리지 말라"는 아버지의 말을 떠올린다. 사람 냄새는 취하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 스스로 그런 행동을 할 때 얻어지는 것이란 걸 이제야 그는 알아챈 듯하다.

달수씨, 준혁씨, 태봉씨.(그리고 이들과 정확히 짝패를 이루는 나머지 반쪽인 천지애, 양봉순, 은소현(선우선).) 그들이 이 드라마를 통해 그려내는 풍경에는 현재 우리네 조직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자화상이 담겨 있다. 아마도 이 수직적인 체계 속에 놓여있는 이들이 점차 경쟁자에서 동지로 바뀌어가는 것을 목격했다면 이 드라마가 보내는 우리네 사회의 남성들(여성들)에 대한 내조의 마음을 본 때문일 것이다. '내조의 여왕'이 내조한 그들은 다름 아닌 바로 우리들이다.

'내조의 여왕'에서 초반 악역을 자처했던 인물은 바로 양봉순(이혜영)입니다. 그녀는 고교시절 여왕처럼 받들던 천지애(김남주)를 사회에서 만나고는 회심의 미소를 짓죠. 남편 온달수(오지호)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천지애를 그녀는 온달수의 상사이자 자신의 남편인 한준혁(최철호)의 지위를 이용해 무릎꿇리죠. 천지애를 사랑했던 한준혁을 가로챈 인물이자, 현재 주인공인 천지애를 괴롭히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양봉순은 전형적인 악역입니다.

그런데 이 견고해보이는 양봉순이라는 악역의 틀이 조금씩 깨져가고 있습니다. 시청자들은 점차 양봉순이 처한 입장에 대해 동정을 갖게 되거나 이해하는 입장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죠.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남편 한준혁을 위해 자신의 삶은 접어둔 채 온통 내조로만 살아가는 인물이죠. 그런 그녀에게 결국 돌아온 것은 남편 한준혁이 여전히 과거를 잊지못하고 천지애에 대한 연정을 갖고 있다는 사실 뿐입니다.

사실 실제에 있어서는 이런 양봉순의 상황이 현실에 가까울 것입니다. 이른바 가정주부로서의 삶을 강요받아온 시대의 주부들이라면 더욱 그러하겠죠. 거의 남편 뒷바라지에 자식 뒤치닥거리에 어느새 훌쩍 인생이 저물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 그 허망함이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 그녀들에게 불쑥 들이밀어지는 것은 남편의 외도나 불륜 같은 충격적인 사실일 경우가 많죠. 이것은 여성들이 주시청층인 드라마가 왜 그다지도 불륜이란 소재를 벗어나지 못하는지를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양봉순이 정상적이지 못한 비뚤어진 삶을 살게 된 것은 과연 그녀의 잘못일까요. 외모 지상주의와 왕따 문화가 사회적으로는 성공 지상주의와 파벌 문화로 연결되는 이 사회 속에서 양봉순은 그 주류에 편승하고자 했던 한 명의 희생자일 수 있습니다. 사실 천지애의 삶 이상으로 양봉순의 삶이 우리네 삶을 대변해주는 이유는 그런 이유 때문이죠.

양봉순의 내조 혹은 남편에 대한 집착은 그녀 식의 사랑인 셈입니다. 그것은 이 비뚤어진 세계 속에서 얼마나 그녀가 안간힘을 써야 버텨낼 수 있는가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죠. 그러니 이제 양봉순의 입장과 천지애의 입장은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지언정 그다지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그녀들은 이 성공 지상주의와 파벌 문화의 시스템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을 뿐이죠. 그러니 진짜 적은 그런 시스템을 양산한 김홍식 이사(김창완)와 그의 부인 오영숙(나영희)일 것입니다.

'내조의 여왕'이 이 사회의 어떤 부조리한 구조를 코미디로 풀어 풍자하고 있다면 그 세계 속에서 양봉순은 절대로 악역이 아닙니다. 그녀는 가장 극적인 희생자일 뿐이죠. 그러니 그녀가 남편의 사랑을 확인하면 흘리는 눈물에는, 또 그런 그녀를 뒤로 하고 "미친 년"하고 욕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감동하는 천지애의 눈물에는 이 세상 주부들이 갖고 있는 그 답답함을 함께 공감하는 구석이 있게 마련입니다. 결말에 이르러 불륜이 걱정되는 '내조의 여왕'에서 어떤 희망적인 결론을 기대하게 하는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양봉순과 천지애의 동지의식 같은 것이죠.

무엇이 그녀들을 희생하게 만들었나

‘내조의 여왕’이 그리고 있는 세계는 퀸즈푸드라고 하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공간이다. 어디에서나 정치적인 선택이 이루어지는 그 곳은 온전히 실력만으로는 버티기 힘든 곳이며, 막후협상과 로비와 줄서기가 횡행하는 곳이다. 남편이 이사면 그 아내도 이사고, 남편이 부장이면 그 아내도 부장이며, 남편이 인턴사원이면 아내도 인턴사원인 곳이 그 곳이다. 부부는 하나의 짝패를 이루어 안팎으로 뛰어야 하는 상황. ‘내조의 여왕’이 그려내는 내조의 세계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 마련인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의 내조’를 뛰어넘는다.

이제 막 이 세계에 들어간 온달수(오지호)의 아내 천지애(김남주)는 퀸즈푸드 사모님들(?)의 내조 정치의 세계로 뛰어든다. 그녀는 갖은 수모를 당하면서도 오로지 남편을 위해 모든 것을 감수한다. 한편 젊은 시절 그녀를 졸졸 따라다녔던 양봉순(이혜영)은 일찌감치 이 진흙탕의 세계로 들어선다. 그것은 이미 천지애와 사귀던 한준혁(최철호)을 중간에서 가로채 남편으로 만들었을 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양봉순의 삶이 오로지 남편을 내조하는 삶이 된 것은 그 때문이다. 양봉순은 그런 남편이 여전히 잊지 못하는 천지애와 이 처절한 정치의 세계 속에서 부딪칠 수밖에 없다.

똑같은 내조라고 보이지만, 천지애와 양봉순의 내조는 사뭇 다르다. 천지애의 표현대로 하자면 그녀의 내조는 사랑이지만, 양봉순의 내조는 안간힘이다. 즉 천지애는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또 남편이 전폭적으로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그 처절한 진흙탕 속에서 뒹굴지만, 양봉순은 자신을 돌아봐주지 않는 남편 한준혁을 향한 사랑의 갈증이 거의 비서 같은 그녀의 삶을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코미디이기 때문에 모든 상황들은 과장되어 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한다 해도 이들의 내조는 비정상적이다. 우리가 흔히 ‘치맛바람’이라 부르는 바로 이 비정상적인 내조는 거꾸로 사회의 비정상적인 구조를 풍자하기 위함이지만.

따라서 양봉순의 내조가 사실은 내조라기보다는 거의 집착에 가까운 것이었다는 걸, 천지애의 출연으로 알게된 것처럼, 천지애의 내조 역시 남편 온달수가 사장 부인인 은소현(선우선)에게 흔들렸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본질을 드러내게 된다. 물론 온달수의 흔들림은 의도한 것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의 삶을 뒤로 접어두고 남편만을 내조하는 천지애의 삶이 가진 허망함을 깨닫게 하기엔 충분했던 것. 어찌 보면 천지애와 양봉순은 근본적으로 같은 위치에 처해있는 인물들로 볼 수 있다.

남편이 결국 토사구팽 당할 위기에 처하자 심한 스트레스로 수술을 받아야 하는 양봉순을 병원에 데려다 주고 그녀의 남편을 불러 화해를 시켜주며 나오는 천지애의 눈에 미소와 눈물이 섞이는 것은 그녀가 양봉순과 이제는 어떤 공감의 틀을 갖게 되었다는 걸 의미한다. 바로 이런 내조의 진면목을 깨닫는 존재로서 양봉순과 천지애는 겉으로 으르렁대면서도 경쟁자가 아닌 동지의식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그들이 적으로 상정해야 할 인물은 당사자들이 아니라 그들을 그런 상황 속에 빠뜨린 시스템을 쥐고 있는 인물, 즉 이사부인인 오영숙(나영희)이다.

천지애가 취업전선의 벼랑 끝에서 남편을 위한 내조를 위해 발 벗고 나섰듯이, 또 남편의 퇴출 위기 속에서 양봉순이 자신을 희생하면서 남편을 내조하려 했듯이, 진짜 내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위기상황에서만 등장하기 마련이다. 위기가 지나고 어떤 안정기에 접어들었을 때, 그 내조는 얼굴을 바꿔 치맛바람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내조 또한 자신의 행복한 삶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희생을 통해 가족과 배우자를 행복하게 해주려는 것이기에 허망한 것일 수밖에 없다.

이 드라마는 따라서 ‘내조의 여왕’을 그리고 있지만 그 여왕의 진정한 행복이 스스로를 내조한다는 것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천지애와 허태준(윤상현), 그리고 온달수와 은소현의 관계가 여전히 아슬아슬한 불륜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 구조가 가진 신데렐라(혹은 남데렐라) 설정의 힘 때문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불륜적인 관계가 가장 극적으로 그 자신만의 삶을 표현해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이 불륜이든 아니든 더 중요한 것은 이 코미디가 풍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내조라는 이름으로 줄서기와 로비에 우리네 주부들까지 뛰어들게 만드는 퀸즈푸드라는 이름의 뒤틀린 우리 사회이다.

대결 국면에 빠진 드라마들, 관전 포인트는?

지금 우리네 드라마는 대결 중이다. 각각의 드라마 속에서는 남자들 혹은 여자들이 서로 대결을 벌이고 있고, 드라마 밖으로 나와도 그 남자들이 대결하는 드라마는 여자들이 대결하는 드라마와 매일 밤 대결을 치르고 있다. 드라마가 기본적으로 갈등구조와 그 해결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르라면, 대결구도는 드라마의 핵심이기도 하다. 따라서 각 드라마의 핵심과 전하려는 메시지를 보려면 그 대결구도가 무엇인지를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지금 드라마들은 무엇과 대결하고 있으며,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월화의 대결, ‘남자이야기’ vs ‘내조의 여왕’
월화 드라마 중 ‘자명고’ 역시 낙랑공주(박민영)와 자명공주(정려원)가 대결구도를 이루고 있지만 그것이 사극이라는 점에서 예외를 둔다면, 현대극인 ‘남자이야기’와 ‘내조의 여왕’이 보여주는 대결구도는 흥미롭다. ‘남자이야기’는 자본의 힘에 철저하게 낭떠러지로 떨어진 김신(박용하)과 그런 자본을 손아귀에 주무르기 위해 어떤 짓이든 하는 채도우(김강우), 이 두 남자의 피투성이 대결을 다룬다. 반면 ‘내조의 여왕’은 한때는 퀸카였으나 지금은 알바로 전전하며 남편의 백수탈출을 위해 온 몸을 던지는 천지애(김남주)와, 한 때는 폭탄으로 천지애의 뒤만 졸졸 따라다녔으나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어 그녀 위에 군림하는 양봉순(이혜영), 이 두 여자의 대결이다.

‘남자이야기’가 자본과 그 자본의 폭력 앞에 내둘러진 강자와 약자의 대결구도를 통해 사회가 가진 모순들을 뒤집어보려 하고 있다면, ‘내조의 여왕’은 취업 문제와 직장 내 권력의 문제를 내조라는 여성적인 시점을 통해 바라보고 있다. 둘 다 사회적인 이슈를 잡고 있으며 그것이 모두 불황과 연관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으나 그 접근방식은 판이하게 다르다. ‘남자이야기’는 본격 사회극에 가깝고 ‘내조의 여왕’은 코믹 풍자극에 가깝다. 좀 더 절절한 리얼리티를 원한다면 ‘남자이야기’가 갖는 박진감 넘치는 대결구도를 권하고, 가볍게 터치하면서 뒷통수를 치는 풍자를 원한다면 ‘내조의 여왕’이 갖는 코믹한 대결구도를 권한다. 남자들의 세계와 여자들의 세계가 갖는 대결의 다른 성격도 관전 포인트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다.

수목의 대결, ‘카인과 아벨’ vs ‘미워도 다시 한 번’
‘돌아온 일지매’의 후속 드라마로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은 ‘신데렐라맨’을 차치해놓고 본다면, 수목드라마 ‘카인과 아벨’과 ‘미워도 다시 한 번’의 대결구도 역시 남자들의 대결과 여자들의 대결로 나눠진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카인과 아벨’은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형인 이선우(신현준)와, 그로부터 버려지고 죽음의 위기에까지 처했다 살아 돌아온 이초인(소지섭)의 대결구도를 그린다. 뇌의학 센터를 지으려는 이선우와 응급의학센터를 지으려는 이초인의 병원 내 권력대결도 볼거리이며, 기억을 잃었다 다시 되찾은 이초인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으나 뇌종양이 재발한 형 이선우 사이에 얽히는 복잡한 대결구도(여기에는 사이에 멜로 대결도 포함된다)도 볼거리다.

한편 ‘미워도 다시 한 번’의 대결구도는 기본적으로 이정훈(박상원)을 사이에 두고 부인인 한명인(최명길)과 내연녀인 은혜정(전인화)의 대결구도를 그리고 있지만, 여기에 한명인의 정략적인 며느리로 들어온 최윤희(박예진)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그 대결양상이 복잡해졌다. 최윤희가 본래 은혜정의 숨겨진 딸이었던 것. 이렇게 되자 그녀의 시어머니와 대결을 벌이는 이가 자신의 친어머니(은혜정)가 되고, 시아버지는 갑자기 친아버지가 된다. 한편 최윤희의 동생인 최재상(김보강)이 은혜정의 딸(둘째 딸) 은수진(한예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관계는 더 복잡해질 양상이다. 어찌 보면 ‘하늘이시여’의 얽히고설키는 막장 드라마의 구조를 연상시키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대결양상이 가지는 파괴력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수목드라마들은 이처럼 어떤 사회적인 맥락을 제시한다기보다는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쪽에 맞춰져 있다. ‘카인과 아벨’이 기억과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면, ‘미워도 다시 한 번’은 가족관계의 억압과 그 탈출 욕망의 부딪침을 다루고 있다.

주중 드라마들이 모두 대결구도를 이루고 있는 것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좀 더 첨예화되어 이 불황기 드라마의 한 특징을 이루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만큼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요소로서 대결국면이 갖는 힘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대결구도는 그것을 연기하는 연기자들의 연기대결 또한 볼거리다. ‘남자이야기’에서 카리스마 연기로 변신한 박용하와 악역 연기에 도전하는 김강우, 그리고 ‘내조의 여왕’에서 푼수로 변신한 김남주와 못난이 역할에서 우아한 악역으로까지 캐릭터 폭을 넓히고 있는 이혜영의 연기대결이 그렇다. 또 수목드라마, ‘카인과 아벨’에서는 선한 눈빛에서 공포가 느껴지는 눈빛까지 변신하는 소지섭의 연기와 내적 갈등을 가진 악역 신현준의 연기대결이, 그리고 ‘미워도 다시 한 번’에서는 막장이라는 용어마저 불식시키는 최명길과 전인화의 명품 연기가 백미다.

TV 속 남자들의 안간힘, 현실? 판타지!

‘카인과 아벨’에는 대사 한 마디 없이(물론 가끔 회상 신으로 나오긴 하지만), 움직임도 거의 없이 연기를 하고 있는 연기자가 있습니다. 바로 이선우(신현준)의 아버지, 이종민 역할을 하고 있는 장용이죠. 연거푸 KBS일일극에 아버지역으로 캐스팅됐을 정도로 그는 우리네 드라마의 아버지상을 대변해온 중견 연기자입니다. 그 드라마 속 아버지(그래서 우리네 마음 속에 아버지로 자리한)가 의식은 있으나 몸을 움직이지 못한 채 침상에 누워, 아내와 아들의 가시 돋친 저주를 들으면서도 한 마디 항변조차 못하는 그 장면에서, 우리네 TV 속 남자들의 안간힘이 겹치는 건 왜일까요.

지금 TV는 온통 여성들의 시선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이유는 당연하게도 그것이 시청률을 담보해주기 때문입니다. ‘꽃보다 남자’ 속 F4는 기꺼이 평범한 서민 금잔디(구혜선)를 사랑해주고 뭐든 원하는 것이면 손에 넣게 해주었고, ‘내조의 여왕’의 천지애(김남주)는 ‘남자들의 성공은 본래 여자하기 달렸다’며 그 여성들의 권력의 세계인 내조의 세계로 뛰어들었습니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이나 ‘아내의 유혹’에 오면 꿔다 논 보릿자루처럼 어쩔 줄 몰라하는 남자를 사이에 두고, 피 터지는 여성들의 대결구도를 보여주면서 현실에서 채워지지 않는 여성들의 성공 욕망과 보복 심리를 대리해주었죠. 이렇게 여성들의 시선에 충실한 결과는 시청률로 보상받습니다.

그렇다면 남자들은 어떨까요. 시청률 30%를 기록했던 ‘꽃보다 남자’의 후속으로 들어선 ‘남자이야기’가 시청률 6.8%(AGB 닐슨)에서 시작했다는 점은 충격적입니다. 박용하는 하루아침에 형도 잃고 교도소까지 들어가는 비운의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시청자들의 눈길은 ‘내조의 여왕’에서 좀체 거둬지지 않고 있습니다. 꽤 남성적인 세계를 그려내고 있지만 ‘카인과 아벨’은 소지섭이라는 배우가 있어 예외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지섭은 거의 공포에 가까운 눈빛 연기로 보는 이를 전율하게 만들면서도(소지섭 자체가 여성 시청층을 끌어 모으는 요인이 되고 있죠), 한편으로는 오영지(한지민)와 김서연(채정안) 사이에서 아련한 멜로를 선보이고 있죠.

이런 점은 비단 드라마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예능 프로그램에 있어서도 이런 현상은 뚜렷하죠. ‘패밀리가 떴다’가 꽤 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주말의 강자로 자리하고 있는 것은 그 여성 편향적 버라이어티에서도 요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패밀리가 떴다’의 세계에서 남성 출연자들이 어딘지 모자란 존재들(엉성하거나 덤하거나 더머한)인 반면 이효리나 박예진은 늘 이 유사가족에서 가장 큰 발언권을 가진 존재들로 부각되죠. 최근 김원희가 게스트로 등장해 특유의 마님 포스로 주목을 끌었던 것은 이 버라이어티의 여성 편향적 구조를 잘 말해주는 대목입니다.

여성 출연진들과 남성들이 만들어가는 알콩달콩한 관계가 제공하는 드라마적이고 판타지적인 버라이어티의 세계. 이것은 분명 여섯 남자들의 세상인 ‘1박2일’이 갖지 못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1박2일’만이 갖는 리얼리티의 세계가 상대적으로 짜여진 느낌을 주는 ‘패밀리가 떴다’를 압도하는 것이 사실이죠.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패밀리가 떴다’의 판타지가 유효한 것 역시 분명한 사실입니다. 한편 역시 여성 시청층을 겨냥하고 있는 ‘우리 결혼했어요’나 ‘골드미스가 간다’ 같은 프로그램들은 현재 편성 경쟁에서 밀려나 있긴 하지만 언제든 촉발적인 계기만 있다면 금세 부각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가능성은 ‘세바퀴’가 ‘일요일 일요일밤에’에서 빠져나와 토요일 밤에 독립 편성되면서 첫 방송에 13.6%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 볼 수 있죠.

반면 이 틈바구니에 시작된 ‘남자의 자격’은 어떨까요. 이제 중년에 가까운 남자들의 재교육 같은 인상을 주는 이 프로그램을 이제 2회를 한 시점에서 뭐라 판단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분명한 것은 남자 출연자들만 나오고 있고 남자들의 도전 과제가 주어진다는 점에서 이 버라이어티는 기본적으로 남자들의 세계라는 점입니다. 바로 이런 점이 작용했는지 그 시청률은 아직까지는 기대 이하죠. 그것은 같은 시간대에 자리한 ‘패밀리가 떴다’의 아성이 그만큼 굳건한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프로그램명이 ‘남자의 자격’이라고 해서 이 프로그램의 지향이 마초적 남자의 세계일 거라는 건 오산이죠. ‘남자의 자격’이라는 말 속에는 그 반대쪽에서 가족이나 여성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점이 이 프로그램의 가능성을 점치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죠.

현재 TV 속에서 남성들은 여성들의 세계를 향해 한껏 고개를 숙이고 그 여성들의 세계를 구축하는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한편 남성적 세계에 대한 향수를 드러내는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들은 시청률에서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하고 있죠. 이 과정에서 TV 속 아버지는 발언권을 잃었고, 남성들은 수동적인 캐릭터로 축조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건 과거와는 달라진 현실에서의 여성들의 위상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여성들의 커진 목소리를 완전히 대변한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달라졌다 판단되는 이 현재에서도 여전히 은연 중에 존재하는(그래서 더 어려울 수밖에 없는) 남성에 편향된 세계가 주는 억압이, 판타지의 형태로 거꾸로 투영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꽃보다 남자'가 종영하는 그 시점에 주목을 받은 것이 '내조의 여왕'의 구준표, 허태준(윤상현) 퀸즈푸드 사장입니다. 아마도 '꽃남' 종영에 즈음하여 그 아쉬움이 '내조'로 이어졌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불황의 시대에 화려함과 풍요 속에 살아가는 이 두 캐릭터는 실로 판타지적인 매력을 발산합니다. 무엇보다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 기저에는 이들이 가진 힘(재력, 능력)이 가장 큰 힘을 작용하고 있을 것입니다. 현실에서는 도무지 얻기 힘든 것들을 드라마 속에서나마 뭐든 척척 해주는 이 캐릭터들은 수퍼히어로의 또다른 이름으로도 보입니다.

자본주의 시장 속에서 근근히 먹고 사는 서민들에게 수백 억, 수천 억이라는 재산은 실제적인 수치가 아닌 추상적인 어떤 것으로 보일 때가 많습니다. 뭐든 돈만 있으면 척척 할 수 있는 이 세상에서 그 추상적인 수치의 재력은 수퍼히어로들이 가진 초자연적인 힘으로 보이기도 하죠. 난세에 영웅(?)이 탄생한다고, 불황에 오히려 '화려한 그들'이 각광받는 기현상은 바로 이 물신화가 불황 속에서 더 극적으로 고개를 내밀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드라마일 뿐이니, 거기에 지나친 의미부여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수퍼히어로라도 최소한도의 예의 같은 걸 보여주길 기대할 뿐이죠. '꽃보다 남자'의 수퍼히어로 구준표(이민호)는 오로지 그 힘을 금잔디(구혜선)에게만 쓴다는 점에서 진정한 수퍼히어로의 면모를 갖췄다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그는 가난한 사람을 돕는 캐릭터가 아니라 금잔디라는 여성에 헌신하는 남자일 뿐이죠. 이 관계 속에서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판타지란 아무런 사회적 맥락을 갖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조의 여왕'에 등장하는 퀸즈푸드 사장 허태준(윤상현)은 구준표와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그는 김홍식(김창완) 이사에게 "불황이라고 왜 평직원들 허리띠만 졸라매냐"고 질책한 후, "나는 월급을 반납하겠다"고 말하죠. 물론 이건 현실과는 상관없는 또다른 판타지일 뿐입니다. 현실에서 이런 사장을 만난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대사를 허태준 사장의 입을 통해 내뱉게 하는 순간, 이 드라마는 그나마 어떤 사회적 맥락을 잡아내게 됩니다.

이 코미디 드라마는 상황 자체를 지독하게 과장시켜 거기서 웃음을 끌어내고 있지만, 바로 이런 현실적 맥락을 담은 판타지를 제시하면서 대중들과의 공감의 폭을 넓히고 있죠. 허태준이 천지애(김남주)와 엮이고, 또 사장 부인인 은소현(선우선)이 온달수(오지호)와 엮이는 건 만일 이런 공감대가 없다면 그저 돈 많은 이들의 한때 장난처럼 불쾌하게 여겨졌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드라마의 멜로가 가진 불륜 판타지가 위험성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만일 사장이 순수한 호감으로서 어려운 직원을 돕는다는 그 선을 유지한다면, 이 드라마의 허태준은 어쩌면 샐러리맨들의 판타지로서의 사장이자 진정한 의미의 수퍼히어로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구준표에게서는 발견하지 못한 허태준이란 캐릭터에게서 갖게 되는 기대감입니다. 그것이 기대대로 될 지는 모르겠지만.

드라마, 예능, 음반에 드리워진 88만원 세대의 그림자

그들은 오로지 대학만이 모든 것을 이뤄줄 것이란 이야기를 들어가며 학창 시절을 보냈고, 그렇게 어렵게 들어간 대학에서도 낭만이란 말은 뒤로 접어둔 채, 일찌감치 취업준비로만 전전해왔다. 그리고 사회에 버려지자마자 바늘구멍 뚫기만큼 힘들다는 취업전선에서 다시 경쟁해야 했고, 그렇게 가까스로 기회를 잡은 그들도 그러나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몇 개월 간의 치열한 노동의 경쟁 속으로 다시 뛰어들어야 했다. 정당한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전긍긍해야 하는 그들. 한때 사회현상처럼 대중문화에서 조명되었던 백수세대는 이제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으로 다시 무대 위에 오르고 있다.

‘내조의 여왕’, 온달수의 인턴시대
‘내조의 여왕’의 온달수는 나이도 있고 결혼도 했으며 아이까지 있지만 그가 처한 상황은 88만원 세대의 그것을 그대로 닮았다. 굴지의 대기업인 퀸즈푸드에 입사하려는 온달수는 면접에서부터 인사부장을 친척으로 두고 있는 상대와의 경쟁에서 혈연으로 밀린다. 우여곡절 끝에 입사가 허락되지만 반쪽 짜리. 인턴 3개월을 거쳐야 하는 입장이다. 조직은 실력과는 상관없이 연줄과 권력(돈)의 힘으로 굴러가고 그 앞에 선 온달수가 가진 것은 열정과 내조를 위해 친구 앞에서도 무릎을 꿇는 아내뿐이다.

이 온달수가 처한 상황은 아내와 관련된 부분만 떼 놓고 보면 사회 초년생으로 첫발을 내딛는 88만원 세대들이 겪는 것과 꼭 같다. 이미 굳건하게 저들만의 리그가 결정되어 있는 사회 시스템 앞에서 누구나 무릎을 꿇고 처세를 해야 하지만, 온달수처럼 가진 것 없는 사람은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이 드라마는 88만원 세대가 처한 현실을 드라마의 주 시청층인 주부들 눈높이로 맞춰놓은 것만 같다. 이 드라마가 노골적으로 여성층을 겨냥하고 있으면서도 또한 남성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일 것이다. ‘내조의 여왕’, 그 여왕이 내조하는 것은 다름 아닌 88만원 세대가 처한 현실이다.

‘분장실의 강 선생님’, 행복한 줄 알아 이것들아!
‘개그콘서트’의 새 아이콘으로 떠오른 ‘분장실의 강 선생님’. 이 코너는 개그맨 사회를 분장실로 축소해 그 모습을 통해 우리네 조직문화를 풍자한다. 여기서 강 선생님은 최고참인 강유미지만 이 코너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중간고참인 안영미다. 안영미는 강유미 앞에서는 굽실대면서, 신참들인 정경미, 김경아 위에는 군림하는 이중적인 모습으로 웃음을 준다. 안영미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신참들을 괴롭히면서도 습관적으로 “행복한 줄 알아 이것들아!”하고 외친다.

여기서 ‘행복한 줄 알아야 하는 이것들’에 해당되는 정경미와 김경아는 바로 88만원 세대의 분신이다. 그들은 감기에 걸려도 허락 받고 걸려야 하는 처지. 하지만 맥락을 좀더 넓혀보면 88만원 세대는 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그녀들은 모두 여성으로서는 수치스러울 수 있는 분장을 하고 있고, 그것은 웃겨야 살 수 있다는 처절한 현실을 반영한다. 안영미가 신참들을 괴롭히고 고참에 아부하면서도 그것이 밉상이 아닌 것은 그녀가 가장 독한 골룸 분장을 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이 코너는 88만원 세대의 개그맨 버전이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임금조차 없이 꿈 하나만으로 버텨오던 그들이지만, 막상 무대가 생겨도(코너를 잡아도) 늘 불안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그들은 온 몸의 분장으로 보여준다.

‘싸구려 커피’마시며, ‘별 일 없이 산다’ 왜?
작년 말부터 올해까지 가요계에 벌어진 큰 사건 중 하나는 장기하라는 감성의 발견이다. ‘장기하와 얼굴들’이 ‘싸구려 커피’를 들고 나오는 순간, ‘88만원 세대’의 정서는 음악이 되어 대중들의 축 처진 어깨를 두드렸다. 그 노래에는 장기불황에 직면해 ‘한 몇 년간 세숫대야에 고여 있는 물 마냥 그냥 썩어 가지고 이거는 뭐 감각이 없는’ 청춘들의 정서가 녹아있다. 거기에는 좌절과 포기를 넘어서 마치 자기 일이 아닌 것 마냥 그 자체를 희화화시킬 정도로 둔감해진 고통이 숨겨져 있다.

그렇지만 이것이 패배의식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정규1집의 타이틀이기도 한 ‘별 일 없이 산다’에서는 바로 이 일이 없어 별 일 없이 사는 그들이, 거꾸로 그래서 ‘별 일(고민) 없이 산다’는 역설을 끌어낸다. 이것은 승자독식 구조의 견고한 시스템 속에서 자신들의 승리를 자축하며 득의의 미소를 짓고 있을 그 누구에게 ‘깜짝 놀랄 만한 얘기’면서 ‘십중팔구 불쾌해질 얘기’로 변모한다. 그런데 이 장기하 감성이라고 해도 좋을 정서는 청춘들뿐만 아니라 중ㆍ장년층에게도 그대로 어필된다. 그네들 역시 시스템 속에 앉아있지만 마치 저 안영미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그 처절한 조직의 삶에 마찬가지로 지쳐있기 때문이다.

장르를 불문하고 지금 대중문화 속에는 88만원 세대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것은 현재 우리네 청년들이 처한 슬프고도 암담하며 답답한 현실을 담고 있다. 하지만 대중문화가 포착하는 88만원 세대의 정서는 청년들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한 때의 망각을 꿈꾸는 주부의 감성 속에도 묻어나고, 개그맨의 처절한 현실을 보며 통쾌한 웃음으로 잠시 자신의 현실을 잊으려는 사람들에게도 피어나며, 노래 한 자락에 위안을 삼아보려는 중ㆍ장년들의 정서 속에서도 피어난다. 이것은 어쩌면 ‘88만원 세대’를 낳은 시스템의 문제가 우리네 사회 전체가 처한 현실의 문제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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