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패키지’라는 가이드가 안내하는 인생이라는 여행

빈센트 반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가 나란히 누워 있는 오베르의 무덤 앞에서 한복자(이지현)는 발길을 돌리지 못한다. 자그마한 무덤이지만 아름답고 평화롭게 꾸려진 풍경. 그 모습이 한복자에게는 남다르다. 자기도 죽으면 이렇게 해달라고 남편 오갑수(정규수)에게 말한다. 그러자 남편은 재수 없게 그런 이야기를 한다며 질색을 한다. 

'더패키지(사진출처:JTBC)'

프랑스 패키지여행을 담은 드라마, JTBC 금토드라마 <더패키지>에서 한복자가 그 무덤을 떠나기 어려웠던 건 자신이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암 환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여행을 하면서도 죽음을 염두에 두고 있다. 에펠탑 앞에서도 굳이 상반신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던 것도 그렇게 예쁜 영정사진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편 오갑수는 뭐든 버럭 소리 지르고 화를 내는 것이 그의 습관이 된 대화법이다. 아내에 대한 남다른 마음이 있기는 하지만 입을 열면 날카로운 소리들이 먼저 튀어나와 버린다. 손님들 때문에 울고 있는 아내에게 “뱀이다!”하고 놀라게 만든 후 “울지마. 뱀 나와”라고 말하는 위인이다. 그들은 오베르를 여행하고 몽생미셀 수도원이 보이는 숙소에 여장을 푼다. 그러자 저 앞에 보이는 수도원이 한복자의 눈에는 시리게도 들어온다. 남편 모르게 약과 사탕을 챙겨먹는 아내의 소리를 들으며 남편은 눈물을 흘린다. 참을 수 없는 남편은 또 다시 버럭 화를 낸다. 왜 한 밤중에 사탕을 먹느냐고. 

<더패키지>라는 드라마는 조금 특이하다. 우리는 이미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을 통해 해외여행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들여다본 바 있다. 그런데 <더패키지>는 그 여행을 드라마라는 그릇에 담았다. 프랑스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해지지만 사실 이 드라마가 여행, 그것도 패키지여행을 소재로 한 건 다른 의도가 있었을 게다. 

그저 여행지에서 벌어진 해프닝을 드라마로 담는 정도가 아니라, 거기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우리가 사는 모습을 관조하는 일. 아마도 <더패키지>가 의도한 건 그런 게 아니었을까. 오베르와 몽생미셸을 여행하며 담아진 이야기들은 그 공간이 주는 삶과 죽음, 그리고 구원 같은 의미들이 어우러져 잔잔하지만 결코 약하지 않은 울림을 남겨 주었다. 

불우한 삶을 불꽃처럼 살다간 고흐의 무덤가에서 남다른 소회를 갖는 시한부에 우울증을 겪고 있는 한복자나, 제약회사의 비리를 알게 되고 같이 오려던 여자친구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혼자 여행을 오게 됐지만 끝없이 회사로부터 귀국 종용을 받는 산마루(정용화), 그리고 어린 나이에 프랑스에 와 결혼까지 했지만 결국 실패해버린 윤소소(이연희)에게 몽생미셸이라는 수도원이 주는 의미는 저마다 특별하게 다가온다. 

어느 날 우연히 가던 길에서 만나 친구가 되기도 하고 동행자가 되기도 하는 게 우리네 삶이라면 <더패키지>가 그리는 여행의 모습이 딱 그러할 것이다. 그간 많은 여행을 담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낯선 곳에서의 즐거운 한때와 행복감 같은 것들을 담아냈다면 <더패키지>는 드라마라는 틀을 통해 그 여행이라는 삶의 궤적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낸다. 

오베르의 성당에서 오래도록 고민 끝에 오갑수는 글을 남긴다. ‘여보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마음과는 달리 툭툭 튀어나오는 버럭 속에서 사실은 그가 아내에게 하고픈 말은 그것이었을 게다. 가슴에 담긴 말을 꺼내놓으면 너무 아플까봐 짐짓 달라진 건 아무 것도 없다는 듯 버럭대던 그의 진심. 이 드라마가 가이드 하는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네 사는 모습이 보인다.

세월을 담아냄으로서 삶이 예술이 된 다큐

 

"빨리 힘 내서 벌떡 일어나야지. 아들 손 잡고 뚜벅뚜벅 걸어가야지. 어메. 앵두나무 꽃이 이제 피려고 그래. 복숭아나무도 피려고 그러고, 매실도 피려고 그러고. 근데 어메는 왜 자꾸 이렇게 처져." 육십줄을 훌쩍 넘긴 아들이 자꾸만 기력이 없어지는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는 마치 아들의 잡은 손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기력없는 손가락을 재게도 움직인다.

 

 

'오백년의 약속(사진출처:EIDF)'

점점 없어지는 기력과 점점 사라지는 기억들. 노모의 시간들은 속절없이도 흘러간다. 마치 나이테처럼 세월의 더깨가 얹어져 깊어진 주름의 골만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이 다큐가 전해주는 시간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아들은 노모의 가녀린 피부를 만지면서 "홍시처럼 얇아서 겁이 난다"고 말한다. 그 표현이 실감나게 아들이 노모의 손을 만지는 손은 조심스럽다.

 

'효'라고 얘기하면 어딘지 이 깊디 깊은 영화의 이야기를 너무 가볍게 해쳐버리는 느낌이다. 그것은 '효'의 본질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세태가 '효'라는 단어를 바라보는 시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쿨한 세대들에게 '효'를 얘기하면 어딘지 구닥다리 취급을 받는 시대다. 그러니 '효'보다는 한 사람의 삶과 그 삶이 흘러가는 시간과 흔적을 얘기하는 편이 낫겠다. <오백년의 약속>은 담담하게 이제 인생의 끝을 향해가는 노모에게 담겨진 시간들과 그 위로 겹쳐지는 아들의 시간을 그저 시간처럼 바람처럼 담아낸 기록물이다.

 

물론 노모를 마지막으로 보내며 아들이 오열하는 장면은 그 깊은 슬픔을 우리에게 온전히 전해준다. 하지만 그렇게 속절없이 세월에 깎여 사라지는 한 사람의 삶을 이 다큐가 기록해내고 있다는 점은 우리네 삶이 그렇게 허허롭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다큐 중간에 노모와 아들이 대청마루에 앉아 무언가 담소를 나누며 파안대소를 터뜨리는 장면은 그래서 인상적이다. 끝은 결국 오지만 그 과정에 담겨진 아름다운 시간과 기억들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아들에게도 또 관객에게도.

 

노모는 18살에 결혼해 남편과 사별하기까지 십여 년의 세월을 4미터 길이의 두루마리에 '여자소회가(18세기말부터 전해내려오는 내방가사)'로 풀어냈다고 한다. 아들은 이 어머니가 남긴 두루마리를 마치 소중한 추억이자 유산으로 아낀다. 이것은 아마도 한 사람의 때론 힘겨웠고 때론 즐거웠던 한 때가 남겨진 기록이자 유물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 노모가 남긴 두루마리는 노모의 마지막을 담아낸 이 다큐와 유사한 의미를 남긴다. 삶은 지나가도 그것은 누군가에게 기록으로 남는다. 혹은 기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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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1)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자꾸 기력과 기억을 잃어가는 노모는 아들이 눈앞에 보이지 않자 "애비야"하며 아들을 부른다. 그러자 아들이 다가가 "예 저 여기 있어요"라고 말한다. 기력이 없어 손 하나 까닥할 힘이 없어보이는 노모는 그러나 다가간 아들의 발등을 쓰다듬는다. 노모의 마음은 얼마나 아들이 고맙고 소중했을까.

 

사족2)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나오는 이준교 국장을 잘 안다. 10여년 전 필자가 모 잡지사에 있을 때 <월간 미술> 편집장을 하시다 나온 이준교 국장이 고정필자였다. 필자와 편집자였지만 우리의 관계는 그 이상이었다. 그 때의 모습 그대로인 국장님을 영화로 보게 된 것이 무엇보다 반가웠다. 늘 작품을 바라보시던 시선이 있으셨기 때문일까. 삶이 고스란히 담겨진 두루마리나 마지막이 담겨진 다큐영화가 노모의 삶을 예술로 만들고 있었다. 예술이란게 특별한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누군가의 삶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부디 보내신 마음 추스르스길.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박진영, 재혼의 사랑공표는 신중해야

 

“저에게 ‘너뿐이야’라는 곡을 쓰게 만든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녀가 저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여 결혼을 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16일 박진영은 SNS상에 결혼을 발표했다. 결혼 발표를 하기 전부터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그는 “첫눈에 반한 여자친구”이야기를 꺼내기도 했고, “평범한 얼굴의 여성”이 자신의 이상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라디오스타(사진출처:MBC)

또한 <라디오스타>에서는 과거와 달라진 자신의 인생관을 드러내기도 했다. “동거를 해보고 결혼해야 한다.” “섹스는 게임이다.” 이렇게 말했을 정도로 개방적이었던 자신의 인생관이 이스라엘에서 시간을 보내며 달라졌다는 것. 그는 “내가 했던 모든 주장과 그 동안의 논리들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다”고 했다.

 

이런 발언은 물론 그의 신곡, ‘놀만큼 놀아봤어’의 배경이기도 하다.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관조적인 입장에서 놀만큼 놀아보니 진짜 인생의 가치는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쾌락 속에 빠지지 않고 그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자신을 구원해달라는 것. 이 노래 속에 담겨진 ‘사랑’의 의미는 그래서 그저 쾌락적인 측면이 아니라 좀 더 큰 진짜 사랑의 의미를 담고 있다.

 

재혼 발표와 ‘너뿐이야’라는 곡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신보 ‘Half time’의 홍보 마케팅 포인트.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모든 내용들이 너무나 기획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실 한 주식회사의 오너로서 이혼이나 재혼의 이야기는 굉장히 민감할 수 있다. 그저 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바로 이런 오너의 사적인 이야기는 그 회사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그의 신보는 그가 재혼을 하게 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면서 동시에 이를 상업화하는 마케팅 방식으로도 여겨진다는 점이다.

 

이런 일련의 행보들은 2009년 그가 이혼 사실을 공표했던 때에도 보였었다. 첫사랑이라던 서모씨와 1999년 결혼한 뒤 10년이 지난 2009년 3월 그는 이혼 사실을 공표했고 그해 12월에 ‘No love no more’라는 곡을 발표했다. 당시 이 이혼문제는 꽤 심각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즉 박진영이 이혼 사실을 3월에 공표했지만 사실 당시에는 이혼한 것이 아니라 이혼을 조정 중인 상태였다는 것. 너무 성급하게 이혼사실을 공표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생기기도 했다. 결국 협의 실패로 그는 서씨로부터 35억 원 상당의 부동산 가압류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사적으로야 축하 해줄 일이다. 하지만 공적으로 드러내는 건 상황이 조금 다르다. 사실 이혼 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할 수도 있다. 또 결코 그 작지 않은 일들을 겪으며 느낀 심경을 노래에 담는 건 아티스트의 당연한 창작행위일 수 있다. 하지만 재혼의 경우 최소한 전처에 대한 배려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제 아무리 쿨한 사람도 이렇게 대대적으로 공표하고 거기에 그녀를 위한 노래라고까지 대놓고 발표하는 건 너무 떠들썩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의 재혼 발표 과정에 대해서 대중들이 잘 공감하지 못하는 건 이것이 지나치게 마케팅적인 뉘앙스를 풍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연예인들에게 결혼은 심지어 하나의 비즈니스가 되기도 한다지만, 꼭 그런 선택을 하는 연예인만 있는 건 아니다. 이효리를 보라. 실로 ‘놀만큼 놀아본 사람’의, 그래서 이제는 진정으로 성숙해진 사람의 결혼이란 그토록 수수하고 조촐할 수 있다.


‘여인의 향기’, 이 로맨틱 코미디가 보여주는 진지함

'여인의 향기'(사진출처:SBS)

알파치노가 주연한 ‘여인의 향기’는 우리에게 탱고로 기억된다. 장님이 된 퇴역장교 슬레이드(알파치노)가 어느 식당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인과 추는 탱고. 그 장면이 좀체 잊히지 않는 것은 그 속에 꽤 많은 이야기들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슬레이드는 절망감 속에 자살여행을 떠난 것이었고, 그래서 죽기 전 해볼 수 없던 것들을 해보며 마지막 삶의 불꽃을 태우는 중이었던 것. 그래서 그 춤은 절망감 속에서 오히려 더 활활 타오르는 삶의 의지처럼 보였다. 보이지 않아도 선율을 따라 움직이는 몸처럼.

김선아의 복귀작, ‘여인의 향기’는 여러모로 알파치노의 ‘여인의 향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여행사 말단직원으로 지내다 어느 날 암 선고를 받는 이연재(김선아)는 뭔가 죽기 전에 못해본 것들을 해보려고 한다. 한 번도 타보지 못한 1등석 비행기를 타고 오키나와로 여행을 떠나고, 거기서 우연히 그녀가 일했던 라인투어 본부장인 강지욱(이동욱)을 만난다. 이야기는 전형적인 신데렐라의 구조를 따르고 있고, 여기에 김선아표 로맨틱 코미디가 덧붙여져 있지만, 흥미로운 건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은 이 가볍기 그지없는 로맨틱 코미디에 삶에 대한 어떤 진지한 태도를 부여한다.

시한부 인생이라는 설정은 상투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를 통해 던지는 삶을 우리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꽤 진지하다. 연재에게 암 선고를 내리는 종양내과 의사 채은석(엄기준)이 보여주는 죽음에 대한 비정한 태도는 의미심장하다. 다가오는 죽음을 알고 현재의 삶을 더 가치 있게 보내려는 연재와 달리, 은석은 죽는다는 그 사실에만 집착한다. 즉 어떤 조치를 취한다고 해도 죽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 그래서 이제 더 이상 항암제가 필요 없는 환자에게 ‘죽음을 준비시키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환자는 그날 밤 죽음을 맞는다. 은석의 말 한 마디에 희망의 끈을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거창할 것 없이 이 드라마는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받아들인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시한부 인생은 사실 짧게 본 우리 삶이 아닌가. 그러니 어차피 죽음으로 돌아가게 될 우리들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가 이 드라마의 주제다. 흥미로운 것은 죽음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연재의 삶이 달라지고, 그녀로 인해 주변인물들 즉 지욱이나 은석의 삶도 달라진다는 점이다. 라인투어의 본부장인 지욱은 재벌2세로 삶 자체를 권태롭게 여기는 인물. 그에게 5백만 원짜리 요트투어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이지만 이 요트에 연재가 함께 타자 이야기는 달라진다. 연재는 말한다. “직접 겪어보고 체험해봐야 좋고 나쁜 것을 알 수 있다”고.

은석은 연재를 만나 어딘지 자신의 의사로서의 생활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달아간다. 아무런 관계가 없다 여겼던 환자들이 연재라는 인물에 의해 차츰 그들 모두 자신과 관계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결국 연재의 죽어가는 삶이 은석과 지욱에게 삶을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의 신데렐라 스토리 구조는 역전된다. 은석과 지욱이 연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연재가 그들을 구원하는 것이다.

‘여인의 향기’는 저 알파치노의 작품이 말하는 것처럼 삶에 대한 의지를 표상한다. 눈이 멀어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또 곧 죽음이 임박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해도, 그 강렬한 향기는 삶의 향기처럼 여전히 유혹적이다. 그 유혹적이고 치명적인 향기를 로맨틱 코미디라는 대중적인 장르로 유쾌하게 포장한 이 드라마는 그래서 우리에게 손을 내민다. 쉘 위 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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