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력 논란보다는 캐릭터 논란

도무지 드라마 속 캐릭터에 몰입을 할 수 없다면, 그것은 연기력의 문제인가 아니면 캐릭터 자체의 문제인가. 이것은 언뜻 보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처럼 들린다. 그만큼 판정하기가 애매모호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캐릭터라도 연기자가 소화해내지 못하면 그 캐릭터는 살지 못한다. 거꾸로 아무리 좋은 연기자라도 캐릭터가 좋지 못하면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얻어낼 수 없다. 그 캐릭터를 살려낼 수 없다는 말이다.

‘에덴의 동쪽’에서 이다해는 꽤 괜찮은 연기력을 보였다. 이다해의 전작들이 조금은 코믹한 가벼운 캐릭터들이었던 반면, 이 작품 속의 민혜린은 꽤 진지한 정극의 연기를 필요로 한다. 이다해가 갑자기 더 이상 작업을 함께 할 수 없다는 의사를 표하기까지 그 누구도 그녀의 연기력을 가지고 문제를 삼은 이는 없었다. 그런데 오히려 이다해 자신이 더 이상 극중 캐릭터인 민혜린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사의를 표했다.

이것은 어쩌면 애초부터 예고되어 있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민혜린이라는 캐릭터는 면밀히 살펴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걸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녀는 극 초반에 한세일보 회장 딸이지만 천덕꾸러기 신세로 아버지에게 돌팔매질을 하듯 반항하던 인물이었는데, 지금은 거꾸로 그 한세일보의 실질적인 주인 역할을 하고 있다. 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민혜린의 언니인 혜령의 남자 백성현(박성웅)이 왜 그녀를 짝사랑하고, 그로 인해 언니는 정신병원까지 가게 됐느냐는 점이다. 이 설정은 극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제 백성현이나 혜령 같은 캐릭터는 극중에서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또 민혜린은 함께 노동운동을 하면서 만난 이동욱(연정훈)과 연인관계가 되는 듯 보였으나 어느 순간 친구관계로 돌아섰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 형인 이동철(송승헌)을 짝사랑을 하게 된다. 우연이 겹치는 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이처럼 사랑을 남발하는 민혜린이라는 캐릭터는 그 사랑에서 어떠한 결실도 얻지 못한 존재다. 혼자 사랑하고 혼자 떠나 보내주며 또 혼자 짝사랑하는 식이다. 사랑의 결실이 아니라면 이러한 관계 자체가 극의 진행과 어떤 연관을 가져야 하는데 그 마저도 발견하기가 어렵다. 민혜린이라는 캐릭터는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다해의 그 같은 행동이 잘한 것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 행동은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죽은 캐릭터를 뒤집어쓰고 연기를 하다가는 자칫 그 연기를 하는 연기자까지도 (이미지가) 죽을 수 있다. 흔히들 말하는 연기력 논란은 실제로 연기자가 연기를 못해서 생기는 것이기도 하지만, 더 궁극적인 실체는 캐릭터에 문제가 있어서 발생하는 것이다. 연기력 논란의 근본 원인은 캐릭터 논란에서 비롯된다고 말할 수 있다. 연기력이 부족해도 작가는 좋은 캐릭터로 그 부분을 메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 때 연기력 논란에 휩싸였으나 좋은 캐릭터를 만나 그 자체를 불식시킨 사례들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윤은혜는 출연작품마다 연기력 논란이 있었지만 ‘커피 프린스 1호점’의 고은찬을 만나면서 그 논란을 훌훌 벗어버렸다. 이연희는 늘 그 발음 문제 때문에 연기력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르지만, 이명세 감독의 영화 ‘M’에서는 그래도 괜찮은 캐릭터 몰입을 보여주었다. 연출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최지우는 ‘에어시티’에서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를 만나 고전했지만 ‘스타의 연인’을 만나서는 꽤 괜찮은 멜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노희경 작가의 일련의 드라마를 통해 배우로 거듭난 연기자들, 예를 들면 유호정, 한고은, 김민희 등도 그 범주에 포함된다. 즉 좋은 캐릭터는 연기력 논란 자체를 불식시킬뿐더러 오히려 스타에게 연기자로서의 길까지 열어준다.

하지만 정반대의 상황도 생긴다. 김정은은 ‘파리의 연인’에서는 코믹한 멜로 연기를, 또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서는 좀더 진지한 연기를 펼쳐 보였지만, ‘종합병원’의 정하윤이란 공감을 얻기 힘든 캐릭터를 만나면서 연기력 논란까지 감수하게 됐다. 이다해가 연기라고 있는 민혜린이라는 캐릭터 역시 어쩌면 이 길로 가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연기력 논란과 캐릭터 논란은 완전히 그 문제의 주체가 다르다. 연기력 논란은 연기자의 문제이고 캐릭터 논란은 작가의 문제다. 이다해의 발언은 자칫 연기자의 문제로 튈 지도 모르는 자신의 상황을 작가의 문제 때문이라고 밝힌 것이다. 즉 연기력 문제가 아닌 캐릭터 문제라고 선을 그은 것이다. 이다해의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이제 연기력 논란을 얘기할 때, 단순히 연기자만의 문제에서 국한될 것이 아니라, 그 연기자가 입고 있는 캐릭터라는 옷까지도 염두에 두어야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흔히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를 보면서(이런 캐릭터는 베테랑도 연기몰입이 안될 것이다) 그 어설픈 연기력을 욕하지만, 그런 캐릭터를 창조해낸 작가는 시청률이라는 방패막 뒤에 안전하게 앉아 있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실제로 문제를 만들어낸(심지어 시청률을 위해 의도적으로 문제를 만들기도 하는) 작가는 웃을지 몰라도 그 작가의 손에 이끌려 인형처럼 조종되는 연기를 해야하는 연기자는 자칫 연기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너는 내 운명’의 발호세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작가가 캐릭터를 사랑한다는 건

작가가 캐릭터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자기가 만들어낸 인물이니 작가들은 모두 자신의 캐릭터를 사랑하는 것일까. 아니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작금의 드라마들을 펼쳐놓고 보면 이 당연한 질문에 당연하게 “그렇다”고 말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에덴의 동쪽’의 신태환(조민기)같은 악마의 화신이나 ‘타짜’의 정말 이름에 걸맞는 욕망의 포식자, 아귀(김갑수) 같은 인물을 두고 작가가 얼마만큼 이 캐릭터를 사랑하는가를 묻는다면 어떨까.

악역, 조역 가리지 않는 사랑
이것은 굳이 이들이 악역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똑같은 악역이라도 그가 왜 그런 악을 저지르기 시작했는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면 그 역할은 살아있는 존재라기보다는 그저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기 쉽다. 아쉽게도 신태환이나 아귀 같은 캐릭터는 그저 등장하면서부터 악역일 뿐, 그들이 왜 그렇게 악랄해졌는지 또 그들의 인간적인 고민은 무엇인지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인간적인 고민을 하지 않는 존재로서의 그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이런 경우 이들은 주인공을 위한 소품이 되기 쉽다.

악역은 단지 작가의 캐릭터에 대한 애정도를 드러내주는 단적인 예일 뿐이다. 절대악은 없어도 온통 주역에게만 시선이 머무는 드라마 역시 같은 범주에 들어간다. 조역들은 모두 주역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그런 드라마들 속에서 작가의 캐릭터 하나하나에 대한 사랑은 느껴질 수가 없다. 이렇게 되면 드라마 속 캐릭터들은 자연스럽게 살아있지가 않고 억지로 만들어진 설정 속에서 꼭두각시처럼 움직이게 된다. 흔히들 ‘악역 없는 드라마’라는 말로 불리는 노희경 작가의 작품이 유독 조역에까지 세세한 배려를 하는 것은, 실제로 드라마를 살아있게 만들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캐릭터에 대한 사랑은 드라마를 살린다.

‘그들이 사는 세상’이 남다른 이유
‘그들이 사는 세상’의 캐릭터들에 대한 노희경 작가의 사랑은 유독 남다른 것 같다. 그녀는 이미 ‘굿바이 솔로’에서 다중스토리 구조를 통해 한두 명의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닌 10여 명에 가까운 캐릭터들을 모두 주인공의 이야기로 끌어 모은 전적이 있다. 그녀의 작품 속에서 물론 약간씩의 비중은 다르겠지만 등장인물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거의 공평하게 주어진다. ‘그들이 사는 세상’이 그녀에게 각별한 것은 바로 그 모두가 주인공만큼의 애정으로 그려지는 이 드라마 속에서의 ‘그들’이 단지 대본 속의 캐릭터가 아니라, 바로 노희경 작가의 현실, 즉 그녀와 함께 일해왔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거의 한 회 분의 이야기를 채워 넣은 늙은 배우들에 대한 에피소드는 단적인 예다. 나이 들어감을 한탄하고 달라지는 세태를 개탄하면서도 그 젊은 세대들을 귀엽게 바라보고, 또 그들끼리 서로 외롭고 힘든 처지를 위무하는 장면들은 평소 노희경 작가가 그들을 얼마나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던가를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이것은 드라마 중간 중간에 짤막한 에피소드들 속에 등장하는 스텝들의 대사들 속에도 들어가 있다.

힘겹게 몇 번씩이나 다시 찍고 찍기를 반복하면서도 PD의 “죄송하다. 다시 한번만 가겠다.”는 말만으로도 그저 충분한 카메라 감독, 만날 구박을 당하면서도 할 말은 똑 부러지게 다 하는 보조작가, 늘 화려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 남다른 아픔을 품고 사는 윤영(배종옥)같은 주연배우, 그리고 무엇보다 화려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현장에서 구르고, 철야를 밥먹듯이 하는 PD들에게 모두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반면 상대적으로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작가, 이서우(김여진)는 드라마 속에서 이렇게 어렵게 고군분투하는 이들을 보조적으로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 전면에 나서지는 않는다. 실제 상황은 많이 다르겠지만(어쩌면 노희경 작가에겐 같을 지도!) 아마도 노희경 작가는 작품 속에서나마 작가라는 위치를 한껏 낮춰 다른 이들을 주목시켜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사랑하는 그들은 바로 우리들이다
작가가 그 캐릭터를 사랑하는데 어떻게 악역이 생길 수 있을까. 재수 없는 손규호(엄기준)도 남모르는 아픔이 있다는 게 느껴지고, 고압적인 원로배우인 오민숙(윤여정) 역시 표현되지 않는 귀여움이 느껴지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이런 면모는 단선 적인 악역을 세워두고, 작가 마음대로 캐릭터를 움직이는 그런 드라마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시청률을 위해서 드라마 속 인물 하나쯤은 손쉽게 죽여버리는 요즘 세태에 노희경 작가의 이 사랑은 시사하는 바가 그만큼 크다.

사람들 간의 피상적인 이해는 서로를 넘어야할 적으로만 간주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한 꺼풀을 벗기고 좀더 이해의 폭 안으로 들어가 보면 우리는 상대방이 역시 나와 같은 부족한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된다. 노희경 작가는 바로 그것, 즉 인간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는 것 같다. 작가가 캐릭터를 사랑한다는 것은 한 세계의 구성원을 그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녀가 사랑하는 그들은 다름 아닌 우리들이고, 그녀가 사랑하는 그 세상은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허본좌에서 상근이까지, 캐릭터로 보는 세태

유반장, 하찮은형, 상꼬마, 뚱보, 바보형, 돌+아이. 예능의 지존 ‘무한도전’을 키운 캐릭터들이다. 여기에 도전장을 내민 ‘1박2일’의 캐릭터가 최근 주목받고 있는데 은초딩과 허당이 그 주역이다. 본래 드라마 같은 극 속에서만 존재했던 캐릭터들이 이젠 예능 프로그램까지 장악한 것. 하지만 이것은 단지 연예인들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허본좌, 빵상아줌마 같은 캐릭터는 연예인은 아니지만 그 특유의 황당함을 무기로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최근에는 상근이 같은 견공 또한 캐릭터로 주목받고 있다. 이른바 캐릭터 공화국이라 해도 좋을 만큼 하룻밤 자고 나면 캐릭터 하나가 생겨나는 세상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캐릭터 열풍을 만들었고, 또 만들어진 캐릭터들은 어떤 세태를 반영할까.

캐릭터에 대한 열광, 게임을 닮았다
인터넷을 통해 익명의 새로운 이름이 나의 또 다른 이름이 되는 아바타(avatar 분신)시대가 열렸을 때 캐릭터 열풍은 이미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것은 RPG 게임을 통해 연습된 것처럼, ‘자신이 만들어가는’ 캐릭터와 자신의 동일시를 일상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쉽게 캐릭터와 동화되기 쉬운 상황은, 인터넷이라는 게임판에서 ‘캐릭터 가지고 놀기’라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게임이 이른바 ‘-빠’문화라는 이상 열기로까지 번지게 된 이유가 된다.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TV 속의 캐릭터들이 수많은 패러디로 만들어지고 새롭게 인터넷을 통해 폭발적으로 번져나가는 현상을 목도한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이제 이 인터넷이라는 캐릭터 게임판 위에 자신들의 프로그램 속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홍보한다. 예능 프로그램이 캐릭터들의 전시장이 되어 가는 것은 프로그램을 띄우는데 있어서 캐릭터만큼 그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게임판 위에 제시된 캐릭터는 네티즌들에 의해 키워지고, 어떤 경우에는 캐릭터들간의 관계나 사건, 이야기를 통해 뜻밖의 캐릭터가 자생적으로 띄워지기도 한다. ‘1박2일’의 은초딩에서 허당, 그리고 상근이로 확장되는 캐릭터들의 탄생은 바로 이런 캐릭터 키우기 게임을 닮은 인터넷 문화에서부터 비롯된다.

네티즌의 성향을 반영하는 캐릭터들
따라서 이렇게 뜨는 캐릭터들은 이러한 네티즌들의 성향을 상당부분 반영한다. ‘무한도전’의 보통 이하 캐릭터들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최고의 캐릭터들로 뜬 것은 우연이 아니다. 수직적인 우열의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인 다양성의 관계로 엮어진 권력구조 속의 네티즌들은, 태생적인 이유로 소외 받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극복하고 최고에 오르는 캐릭터에 더 열광적인 성향을 띈다. 이것은 ‘무한도전’ 멤버들에 대한 열광뿐만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 심형래 감독 같은 입지전적인 인물들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2인자, 3인자 캐릭터들이 주목받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전혀 관심 바깥에 존재하던 2인자들은 이제 그 자신이 1인자가 아니라 2인자라는 이유 때문에 더 주목받는다. 그것은 이제 3인자, 혹은 상근이 같은 ‘제7의 멤버’까지 등장하면서 점점 외연을 넓혀나간다. 드라마나 영화 속 주연보다 더 주목받는 조연 또한 이것과 관련이 있다. 네티즌들은 이미 최고의 위치에 있어 자신들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캐릭터보다는 아직은 주목받지 못하지만 앞으로 클 가능성이 높은 캐릭터에 더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이것은 모든 성장 드라마를 갖고 있는 캐릭터들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가상현실을 반영하는 빵상아줌마, 허본좌
하지만 문제는 계속해서 등장하는 캐릭터들로 인해 이미 캐릭터 공화국이 되어가고 있는 이때,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요구도 더 많아진다는 사실이다. 허본좌나 빵상아줌마 같은 황당한 캐릭터가 주목받는 것은 그 자체가 기존에 봐왔던 캐릭터들과는 다른 4차원 사고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계속 쏟아내는 이들 캐릭터들에 대한 열광을 이해하기가 어렵겠지만, 그것을 인터넷이라는 가상현실의 공간으로서 바라본다면 고개가 끄덕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인터넷은 본래부터가 가상 즉 허구와 현실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그러니 이 황당무계한 캐릭터들은 가상과 현실이 적절히 섞여진 인터넷 풍토에서는 그다지 이상한 인물들이 아니다. 캐릭터 게임판 위의 그저 재미있는 하나의 캐릭터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 가상현실의 캐릭터들이 거기서 얻은 명성(?)을 실제 현실에서 활용했을 때 벌어진다. 그것은 놀이판이 아닌 실제 현실에서는 자칫 사기가 될 수 있다. 허본좌가 구속됐지만, 이와 유사한 캐릭터를 가진 ‘개그 콘서트’의 달인이 여전히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건 그 때문이다.

끝없는 캐릭터들이 양산되어 나오는 이 캐릭터 공화국은 상당부분 디지털화된 사회의 세태를 반영한다. 거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들은 다양화된 사회를 말해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 복잡한 현실을 잊고 게임 속 가상세계로 빠져드는 퇴행적인 양상을 드러내기도 한다. 예능 프로그램의 뜨는 캐릭터들이 대부분 어린이를 모델로 하고 있으며 또한 그 프로그램 속 상황이 본능적이고 유아적인 욕구를 끄집어내고 있다는 것은 주목해 볼만한 일이다. 은초딩이나 상꼬마 같은 캐릭터는 그 대표적인 캐릭터가 될 것이다. 이것은 또한 어른들의 세계를 직접적으로 끌어들인 ‘라인업’의 캐릭터들이 좀체 뜨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캐릭터 공화국, 대중들이 원하는 캐릭터는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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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근이로 보는 연출의 힘

캐릭터 전성시대, 이제는 견공 상근이 마저 떴다. ‘상근이의 일기’, ‘상근이 미니홈피’는 ‘1박2일’ 제 7의 멤버로 활약하고 있는 상근이의 인기를 말해주는 대목. 회당 40만 원의 고액(?) 출연료를 받는 상근이는 ‘아현동 마님’에 겹치기 출연을 하는 등 연예인 못지 않은 대우를 받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안티마저 없으니 캐릭터 전성시대에 이만한 캐릭터가 있을까.

흔히들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관건은 캐릭터에 있다고 한다. ‘무한도전’이 그랬던 것처럼 ‘1박2일’이 이처럼 주목받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은초딩, 허당 같은 캐릭터가 시청자들에게 어필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축된 캐릭터는 마치 드라마가 그러한 것처럼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상황과 사건들을 용이하게 만들어내는 장점이 있다. 웃기지 않은 행동도 과거 그 캐릭터가 구축되게 만든 어떤 사건과 연관되면 웃음을 주고 그것은 또한 캐릭터를 더욱 강화시킨다. 이것이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캐릭터에 집중하게 되는 이유다.

그런데 사람이 아닌 견공인 상근이의 캐릭터는 어떻게 구축된 것일까. 물론 견공에게도 어떤 성격 같은 것이 있겠지만 그것을 쇼를 통해 캐릭터로까지 발전시킨 것이 오로지 상근이 혼자만의 몫일까. 그렇지 않다. 그것은 사실 연출력의 힘이다. 갑자기 출연진들을 향해 달려드는 상근이의 영상 위에 강렬한 록기타 반주를 띄우자, 순간 상근이는 락커가 됐고, 은지원의 발부리에 오줌을 누고, 슬레이트를 겁내는 상근이와 은지원에게 달려드는 상근이의 영상을 절묘하게 편집하자 상근이는 은초딩과 앙숙이 되었다. 상근이의 캐릭터 이미지는 이처럼 연출의 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다른 출연진에게도 어느 정도는 해당되는 것이다. 이승기에게 ‘허당’이라는 캐릭터 닉네임이 붙은 것은 네티즌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김C가 어느 날 내가 너에게 호를 주겠다며 ‘허당’이라 한 것이 그 시작이다. 이것은 다른 출연자들도 마찬가지. 은초딩은 ‘울릉도 독도를 가다 편’에서 은지원이 유치한 말을 한 것에 대해 노홍철이 ‘초딩, 초딩’이라 한 것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이후 이승기와 은지원이 등장할 때, 자막은 그들을 허당과 은초딩으로 설명하면서 캐릭터는 구축되었다.

캐릭터 구축의 한 방법으로 제시되는 것은 경쟁구도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라면에 우유를 넣어먹는 에피소드’이다. “라면에 우유를 타 먹으면 다음날 붓지 않는다”는 그 이야기를 꺼낸 것은 역시 캐릭터에 걸맞는 강호동이었고, 그러자 그의 완력에도 아랑곳없는 은초딩이 “그럴 거면 안 먹고 말지”하고 되받는다. 그런데 여기에 허당 선생이 “라면 다 먹고 우유 먹으면 되잖아요”하고 쐐기를 박는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화가 오고갈 때 함께 제시되는 자막이다. 거기에는 ‘막상막하 허당 승기와 은초딩’이라 적히면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상황을 캐릭터들간의 각축장으로 바꿔 놓는다.

상근이와 은초딩의 대결구도는 저 허당과 은초딩의 대결구도와 유사한 양상을 띄면서 상근이 캐릭터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그러니 캐릭터 전성시대가 도래한 이유에는 출연자들의 노력 이면에 연출자들의 탁월한 연출력이 전제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무한도전’과 ‘1박2일’같은 ‘캐릭터라이즈드 쇼(Characterized Show)’의 성공한 캐릭터들 뒤에는 김태호 PD나 이명한 PD 같은 제 7, 제 8의 캐릭터가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박명수보다 더 악마 같은 김태호 PD라는 말이나, 역시 쫀쫀하게 출연진들을 괴롭히는 것으로 악명 높은 이명한 PD라는 캐릭터는 그렇게 부각되어온 것이다. 캐릭터를 세우는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스타PD가 탄생하는 것 또한 그 때문이 아닐까.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진짜 힘은 바로 그 연출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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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란 ‘무한도전’ VS 배고픈 ‘1박2일’

바야흐로 리얼 버라이어티쇼 전성시대. 소위 말해 캐릭터가 잡히면 프로그램은 뜬다. 이것은 진행형 스토리를 갖춘 리얼리티쇼에서 이제는 드라마나 시트콤만큼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캐릭터가 중요해졌다는 말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쇼 중 ‘캐릭터가 잡힌’ 프로그램은 그 캐릭터라이즈드 쇼(Characterized Show)의 선구자인 ‘무한도전’이 될 것이며, 후발주자로서 급속히 ‘캐릭터가 잡혀가고 있는’ 프로그램은 ‘1박2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두 프로그램이 제공하는 캐릭터들은 어떤 특징들을 갖고 있을까.

마이너리티 캐릭터들의 집합, ‘무한도전’
‘무한도전’을 이끄는 수장인 유반장(유재석)은 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들이대는 캐릭터들을 배려하고 조절하는 캐릭터다. 올 들어 새로 한 반장선거에서 거성 박명수가 반장에 당선됐어도 여전히 유반장의 실질적인 반장 역할을 기대하게 되는 것은 이 팀에서 유반장이 가진 이 캐릭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캐릭터는 유반장이 ‘무한도전’ 외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이른바 리얼리티쇼 시대에 그 균형과 수위를 조절하는 유반장 캐릭터는 어디서든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부가되는 유재석만의 장점은 반장 역할을 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팀원들과 동등한 눈높이에서 놀아준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자칫 방관자 혹은 외부자 역할이 될 수 있는 그를 프로그램 속으로 안착시키는 힘이 된다.

그런 유반장이 이끌어가는 팀원들은 전체적으로 마이너리티 캐릭터들이다. 정형돈은 웃기지 못하는 개그맨 캐릭터이며, 뚱뚱보 정준하는 식신에서 점점 ‘노브레인 서바이벌’의 바보 캐릭터로 변신해가고 있다. 꼬마 하하는 키가 작은 신체적 결함을 극대화한 캐릭터이며, 퀵 마우스 노홍철은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소심한 수다쟁이에 저질댄스로 일관하는 캐릭터이다. 거성 박명수 역시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지만 사실상 힘은 없는 아버지 캐릭터이다. 무언가 사회적으로 보면 이들 캐릭터들은 나사 하나씩이 풀려 있거나 비하되는 입장에 서 있다.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거성 박명수 캐릭터다. 박명수는 자칫 이 ‘하향평준화된’ 쇼의 팀원들 속에서 자칫 당연한 것으로 매몰될 수 있는 바보스러움이나 마이너리티한 부분들을 다시 끄집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야 그것밖에 못해!”하며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것은 상대방의 마이너리티를 부각시키는 기능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캐릭터를 강화시킨다. 이러한 박명수 캐릭터의 효용성은 리얼리티쇼 시대에 유재석이 그러한 것처럼 타 프로그램 속에서 자연스럽게 요구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캐릭터가 버럭 댈 때 그 자칫 싸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유화시키는 캐릭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것이 유재석과 박명수 캐릭터가 특유의 콤비를 이루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해피투게더’의 인기에는 이 명콤비의 역할이 그만큼 큰 자리를 차지한다.

이렇게 ‘무한도전’ 팀의 캐릭터가 구축된 것은 그 프로그램의 성격이 크게 좌우한 것이 사실이다. 때론 과장된 느낌의 도전을 하는 데 있어서 그 웃음을 극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모자란 캐릭터이다. 따라서 부족한 이들이 무언가에 도전을 하면서 실패하고 때론 이루기도 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재미를 준다. 그리고 이것은 캐릭터의 성장드라마를 만든다. 초반부 ‘무모한 도전’과 ‘무리한 도전’에서 말도 안 되는 도전을 하던 캐릭터들은 이제 스포츠댄스나 드라마 단역 같은 제대로 도전이 될 만한 일에 도전을 한다. 초반부 반 막노동 같은 몸 개그에서 시작한 쇼는 이제 점차 몸치에서 유발되는 몸 개그로 바뀌고 있으며, 이제는 구축된 캐릭터의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으로 나가고 있다.

배고픈 캐릭터들의 야생, ‘1박2일’
유재석이 쇼의 구성원이면서도 조절자 역할을 하는 것처럼 ‘1박2일’의 강호동도 같은 역할을 한다. 다만 그 역할 수행에 있어서의 성격은 다르다. 유재석은 한껏 몸을 낮춰 구성원과 거의 같은 위치에서 진행을 하는 반면, 강호동은 맏형 같은 캐릭터로 철저하게 쇼를 이끌어간다. 이것은 강호동 특유의 뚝심과 순발력으로 가능한 것이지만 ‘1박2일’의 성격과도 관계가 있다. 여행이라는 야생의 도전 상황 속에서 수평적인 눈높이보다 때로는 보호해주고 때로는 재미있게 상황을 이끌어 줄 수 있는 캐릭터에 대한 요구가 더 크기 때문이다. 복불복 게임 등을 통해 야생버라이어티의 재미를 부가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분위기를 이끌어간다고 해도 그가 모든 것을 조절하는 것은 리얼리티쇼를 그르친다. 그렇기에 필요한 캐릭터가 아무리 강압적으로 밀어붙여도 안 되는 캐릭터다. 바로 초딩 은지원이다. 그가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초딩이라는 닉네임을 달고 있는 한 그의 어떠한 야생 속에서의 행동도 초딩이란 아이의 정서적 본능으로 인정된다. 여기에 합세한 캐릭터가 야생몽키 MC몽이다. 은지원이 아이의 본능을 앞세워 강호동을 무력화시킨다면 MC몽은 말 그대로 야생의 본능에 충실한 그 자체로 강호동을 무력화시킨다.

‘1박2일’의 캐릭터 조합이 재미있는 것은 각각의 캐릭터들이 쇼의 부품처럼 잘 구조되어 있기 때문이다. MC몽의 야생이 무적일 것 같지만 그에게 대항하는 자는 도시의 샌님 역할을 하는 허당 이승기다. 그는 야생 속에서도 늘 외모를 관리하고 좀 더 편안한 것을 찾으려는 본능적인 몸부림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두 번의 에피소드로 연결된 MC몽과 이승기의 탁구대회와 배드민턴 대회는 대결구도를 통해 두 캐릭터를 순식간에 강화시켰다.

여기에 나머지 두 캐릭터인 김C와 이수근의 역할도 구조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존재들이다. 김C는 야생을 야생처럼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는 진짜로 늘 괴로운 얼굴을 하고 있다. 마치 고행을 하는 사람처럼. 여기에 이수근은 정반대다. 그 역시 힘든 것은 분명하지만 그는 너무나 야생에 적응을 잘한다. 시골생활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어 일꾼의 캐릭터가 되는 것은 이 여행이라는 컨셉트의 베이스를 형성한다. 이 둘은 상반되면서도 비슷하다. 둘다 야생에서 잘 버틴다는 점이다. 김C는 마치 삶은 고행이라는 것 같은 달관한 느낌을 주는 것으로, 이수근은 실제 생존능력을 갖춘 것으로.

이렇게 구성된 ‘1박2일’ 팀원들의 전체 캐릭터는 배고프고 고달픈 자의 본능으로 대변된다. ‘만성피로 프로젝트’라 강호동이 스스로 일컫는 것은 이런 본능적 캐릭터들을 강화시키기 위함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야생 속에서의 투쟁(?)이 아귀다툼으로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맏형 강호동이나 인생 다 산 것 같은 김C, 무언가 어려운 일이 있어도 다 해결해줄 것 같은 이수근 같은 캐릭터들이 아이들처럼 노는 다른 캐릭터들 간의 끈끈한 정을 늘 유지해준다는 데 있다.

캐릭터가 중요해진 리얼 버라이어티쇼 시대에 이제 쇼는 하나의 시트콤이나 드라마처럼 되고 있다. 따라서 캐릭터는 그냥 그 자체가 재미있어서 구축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는 기능으로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으로 봐야 한다. 이것은 시트콤이나 드라마 속에서 캐릭터들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웃음과 유사하다. 이제 리얼 버라이어티쇼는 점점 캐릭터들의 살아있는 드라마가 되어가고 있고 ‘무한도전’과 ‘1박2일’의 캐릭터들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

태왕에 의한, 태왕을 위한, 태왕의 드라마, ‘태왕사신기’

‘태왕사신기’에서 고우충(박정학)은 태왕 담덕(배용준)에게 전황을 브리핑한다. “나머지 3만은 두 개의 길로 남하하여 가야와 왜의 연합군을 퇴치하는 중입니다.” 담덕이 “미적미적 싸우고 있으면 곤란해요. 빗자루로 쓸어내듯이 그렇게 내려가야 한다구.” 이렇게 말하자 고우충은 웃으며 이렇게 답변한다. “염려 마십시오. 흑개장군입니다.” 이 짤막한 대화를 통해 ‘태왕사신기’의 전쟁 신은 굳이 보여질 필요가 없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고우충이 전황을 묘사하면서 ‘흑개장군(장항선)’이라는 인물을 거론한 점이다. 시청자는 흑개장군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용맹성과 앞뒤보지 않고 뛰어드는 과감성 같은 것을 통해 전쟁의 그림을 유추하게 된다. 구구절절이 전쟁상황을 보여주거나 설명하지 않아도 캐릭터 하나를 통해서 그것이 설명되는 것. 이것이 ‘태왕사신기’가 가진 독특한 드라마의 색깔이자 힘이다.

수 없는 전쟁과 전투를 통해 영토 확장을 한 광개토대왕의 면면을 스펙터클로 보여준다는 것은 어찌 보면 무모한 일이다. 하지만 또한 광개토대왕이라는 역사적 영웅을 다루면서 그 핵심이 되는 전장의 사건들을 빼놓는다는 것 역시 납득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딜레마를 넘어서기 위해 ‘태왕사신기’가 선택한 것은 캐릭터다. 잘 구축한 캐릭터 한 명은 몇 백 명의 군사들보다 유용하다.

백제와의 전쟁에서 수만 명의 백제군이 등장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처로(이필립)라는 일당백의 카리스마를 지닌 캐릭터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구려와 백제가 맞붙는 이 전쟁은 고구려를 대변하는 담덕과 백제를 대변하는 처로가 맞붙는 장면으로 충분히 설명된다. 담덕이 수적으로 우위에 있는 연호개(윤태영)의 군대와 맞서는데 있어서 전면전을 피하고 몇몇 별동대와 인물들만으로 충분한 것도 같은 이유다. 스스로도 일당백이라 자처하는 주무치(박성웅)는 실로 수백 명의 엑스트라를 대체하는 효과를 주는 캐릭터다.

즉 ‘태왕사신기’의 개개 인물들은 여러 가지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광개토대왕의 영토 장악을 태왕이 사신을 얻는 과정으로 설명하면서 태왕은 쥬신의 왕이란 상징을 갖고, 사신은 네 부족을 대변하는 상징으로서 기능한다. 그러니 태왕이 사신을 얻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영토를 장악한다는 의미로서 전달된다. 여기에 사신이 가진 신물이라는 환타지적인 요소를 덧붙이면서 이 상징은 더 공고하게 구축된다. 네 부족은 각각의 개성을 지닌 존재로서 물(현고-현무), 쇠(주무치-백호), 나무(처로-청룡), 불(수지니, 기하-주작)로 설명된다. 즉 네 부족-사신-신물-네 상징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 밖에도 절대적인 악을 상징하는 화천회 대장로(최민수)는 화천회라는 조직을 실제 목도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설명해주는 캐릭터다. 담덕이 전쟁터에 나가는 동안 고구려의 모든 행정이 잘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연가려(박상원)라는 한 명의 캐릭터 덕분이다. 이처럼 ‘태왕사신기’는 상징적 의미를 가진 캐릭터들을 세움으로써 최소의 장면만으로도 최대의 효과를 끄집어낸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그 중심에 서 있는 담덕, 배용준의 힘이다.

사실 이 믿기 어려울 수 있는 상징적 진술은 배용준이라는 아시아적 스타배우와 담덕이라는 역사적 영웅이 만나는 지점에서 가능해진다. 따라서 담덕이란 캐릭터가 세워지는 그 힘을 통해서 주변의 캐릭터들도 구축된다. 담덕을 보위하는 사신들이 납득되는 것은 담덕이 쥬신의 왕이라는 설정 때문이며, 그 설정은 드라마 밖에서의 배용준이라는 배우의 힘과 음으로 양으로 연결된다. 이 사극은 따라서 담덕이 사신을, 아시아적인 영토를 얻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배용준이 아시아권을 장악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담덕의 적수로 세워졌던 연호개나 사신이 아닌 인간들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것은 사극 자체가 담덕과 배용준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구축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사극은 태왕에 의한, 태왕을 위한, 태왕의 드라마이며 그 태왕이라는 단어에 배용준으로 대치해도 무방한 드라마이기도 하다. ‘태왕사신기’가 우리 드라마사에 한 획을 그을만한 작품이 된 것은 첫 회부터 마지막까지를 관통하는 짜임새 있는 송지나 작가의 대본과, 그 대본을 시각화하는 김종학 PD의 잘 짜진 연출 위에 그 모든 것을 한 몸으로 지탱해나가는 배용준이라는 아시아적 스타가 있었기 때문이다.

담덕과 사신의 캐릭터만으로 아시아를 정복해가는 이야기가 구축될 수 있었던 것처럼 배용준이라는 배우 한 명의 힘은 그 어느 것 하나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우리 드라마의 현실을 보기 좋게 뛰어넘었다. 이것은 마치 드라마 속에서 아시아를 아우르는 쥬신의 아들들이 그토록 희구하던 쥬신의 왕을 만나는 경험에 비견되는 것이 아닐까. 캐릭터의 힘은 위대하다.

유사가족, 팀(team)이 보여주는 ‘히트’

“대외홍보용인가요?” 히트(H.I.T. : 강력특별수사팀)의 팀장이 된 차수경 경위(고현정)의 질문에 경찰청장(조경환)의 답변은 정치적이다. “자네가 성과를 낸다면 그건 우리 경찰의 승리고 자네가 실패를 한다면 그건 여성의 실패가 될 테지.” 그리고 이어지는 차경위의 요청. “팀원들 바꿔주세요.” 하지만 완고한 경찰청장의 발언. “그 사람들을 데리고 임무를 완수해!” 이 짤막한 대사들 속에는 이 드라마가 앞으로 보여줄 이야기의 전조들이 모두 숨겨져 있다.

그것은 경찰사회라는 완고한 남성중심적인 사회 속에서 그것도 마이너리티로 치부되는 인물들을 데리고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여성 강력반 팀장의 이야기다. 드라마는 연달아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과 그것을 풀어가는 퍼즐 같은 재미를 줄 것이 분명하지만 그보다 더 기대감이 커지는 것은 바로 캐릭터다. 마치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처럼 진한 사연 한 가지씩 가졌을만한 인물들. 그래서 경찰 외부에 따로 지어진 히트 사무실에서 지내는 것이 특권이라기보다는 소외로 느껴지는 인물들. 게다가 총칼이 난무하는 살벌한 현실 속에서 심지어는 유사가족의 형태를 띄게 될 팀의 캐릭터들이니 기대감이 커질 밖에.

차수경, 그녀 속에 남자 있다
무엇이 가녀린 그녀를 연쇄살인범에 집착하게 했을까. 그것은 바로 그녀의 애인이었던 한상민(정호빈)이 연쇄살인범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그 후 죽은 한상민은 한 여자이기만 했던 차수경 속으로 들어와 자리한다. 한상민과 접신한 그녀는 그래서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한상민과 차수경이 만나는 지점, 즉 오로지 연쇄살인범을 쫓는 상황에서야 이 분열된 자아는 비로소 하나가 된다.

여성으로서의 형사는 이 드라마에서처럼 ‘대외홍보용’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란 장점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이 드라마가 남성을 내세운 여타의 형사물들과 차별점을 이루는 부분이다. 따라서 이 드라마는 현장에서 강인하고 털털해 보이는 그녀가 집으로 돌아온 시간에서야 제대로 차별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여성으로서의 차수경이 보이는 것. 그러나 그 시간에 그녀를 기다리는 건 아픈 기억뿐이다. 한 남자의 여자로서 사랑 받으며 살고 싶었던 기억. 하지만 부서진 기억.

김재윤, 그녀가 자꾸 눈에 밟힌다
그 기억 속으로 들어오는 남자, 김재윤(하정우)이다. 우연히 가게된 그녀의 집에서 그가 발견하는 것은 곰 인형과 하이힐로 대변되는 그녀의 본모습(여성성)이다. 무엇하나 부족할 것 없고 복잡하게 사는 걸 싫어하는 김재윤에게 그녀의 이중적인 모습은 호기심 이상의 그 무엇으로 다가간다. 안전한 삶을 희구하던 김재윤에게 부서질 것 같은 차수경의 모습은 자꾸만 변화를 요구한다. 그녀 밖의 남자였던 김재윤은 차수경 속에 있는 남자(한상민)를 밀어내고픈 욕구를 갖게될 것이 분명하다.

남 일 상관하기 싫어하는 귀차니스트 김재윤이 검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민초들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할 그가 그럭저럭 버티다 나중에는 편안하게 변호사나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다는 건 이 드라마에서 김재윤과 차수경의 갈등과 사랑이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를 예감하게 한다. 차츰 차수경의 안간힘에 눈이 밟히는 김재윤은 지금까지 ‘남 일’이었던 사건들이 차츰 ‘내 일’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장용하-김일주, 전형적 형사물의 구도
형사물을 보면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형사. 베테랑에 경험도 많지만 현실적으로는 아무 것도 갖지 못한 폐인에 가까운 형사가 장용하(최일화)다. 승진보다는 범인 잡는 데 삶을 바친 이 같은 전형적 형사 캐릭터의 존재이유는 형사사회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잠복수사같은 현장중심의 수사방식에서 과학수사로 넘어오면서 차츰 공룡이 되어버린 존재들이다. 하지만 어디 수사가 과학만으로 되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실전 경험이다.

그런 그에게 도전하는 인물. 과학수사를 내세우는 원칙주의자 김일주(정동진)다. 장용하가 임의동행을 하려는 것을 피의자가 거부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막는 김일주는 과거식의 수사방식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 대표격인 장용하와 부딪칠 수밖에. 실력으로만 인정받고픈 그에게 무능함의 대명사로 보이는 장용하는 그가 좋아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에게 부족한 점은 역시 경험과 열정. 그러니 이 둘의 만남은 묘한 균형감각을 갖게 된다. 이것이 현실적인 판단이 부족한 장용하와 경험이 부족한 김일주가 파트너가 된 이유다.

남성식-심종금, 투캅스의 부활
영화 ‘투캅스’의 재미는 서로 다른 캐릭터의 부조화에 있다. 닳고닳은 타락한 고참형사와 세상물정 모르고 정의만 부르짖는 신참형사의 만남. 그러나 차츰 닮아가고 나중에는 심지어 청출어람(?)을 보이는 신참의 모습에 오히려 고참이 훈계(?)하는 형국으로의 전환은 묘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드라마 ‘히트’의 남성식(마동석)과 심종금(김정태)은 바로 그런 인물들이다.

생각은 좀 모자란 듯 하지만 완력과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남성식은 이름에서도 느껴지지만 여성 강력팀장인 차수경의 빈 구석을 꽉 채워주는 인물이다. 그녀의 완벽한 수족이 될 그는 그러나 여성적인 내면(?)까지도 갖추고 있다. 머리가 나쁘다는 콤플렉스와 외모가 조폭인 그의 섬세한 면모들은 한편으로 그럴듯한 외모에 머리만 굴리며 살아가는 세태를 꼬집는 묘미가 있다. 그와의 대척점에서 심종금의 면모가 교활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투캅스’에서 안성기가 타락한 형사가 된 것은 사실 사회의 부조리함을 뒤집어 말하기 위함이다. 그러니 심종금이 그렇게 살아가는 이유가 밝혀질 즈음, 보여질 그의 진면목에서 우리는 동정심과 애정을 예감하게 된다.

전문직, 멜로, 가족드라마의 경계에 서다
이 밖에도 이 드라마에는 전직형사이자 선술집 주인인 김영두(김정민), 수사본부의 부지휘자로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에서 그 넉넉한 허리가 되어주는 조규원(손현주), 과학수사의 진면목을 보여줄 정인희(윤지민)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꿈틀거린다. 이들 캐릭터들은 처음에는 외인부대처럼 버려지거나 외면될 위기에 처한 상태로 서로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결국 보여주려는 것은 그들이 살인사건을 해결해가며 팀이 되어 가는 과정이다.

여러모로 미국 드라마 ‘CSI’를 연상케 하는 전문직 드라마지만 ‘히트’의 전개양상은 이러한 캐릭터 설정으로 인해 저네들의 드라마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 분명하다. 스타일은 따왔으되 하려는 이야기는 저네들의 쿨한 관계보다는 좀더 끈끈한 팀 간의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정두홍이라는 걸출한 무술감독으로 인해 깨지고 부서지는 우리 식의 액션이 선보여지고 있는 것처럼, ‘히트’가 서는 지점은 형사물로 대변되는 전문직드라마와 전형적인 멜로드라마, 그리고 팀으로 대변되는 가족드라마의 경계에 서게 되지 않을까. 따라서 이 드라마의 성패는 바로 그 적절한 배합과 균형에 있을 것이다.

주몽이 처한 딜레마

요즘 시청률로 가장 성공한 TV 컨텐츠는 단연 MBC 월화 사극, ‘주몽’이다. ‘고구려사극 전성시대’라 할 만큼 연이어 경쟁작으로 등장한 ‘연개소문’, ‘대조영’에도 불구하고 시종 43%대에 이르는 독보적인 시청률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시청률은 드라마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유용한 잣대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시청률이 높은 것과 드라마적인 성공은 다른 차원이다. 다시 말해 ‘주몽’의 시청률이 높은 것으로 드라마 ‘주몽’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가려져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거대한 고구려, 영웅, 사랑은 어디 갔나
모든 드라마에는 저마다의 목표 혹은 기획의도가 있기 마련이다. 많은 이들이 이 기획의도는 의도일뿐, 실제적인 목표는 시청률이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은 각종 연예관련 기사들이 만들어낸 ‘시청률 지상주의’가 낳은 폐단이다. 드라마는 드라마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고, 그것이 잘 전달되어 호응을 얻을 때 좋은 드라마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몽’이 애초에 하려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주몽’의 기획의도를 보면 그 키워드는 ‘거대함’이다. ‘거대함은 이제부터 시작이다’라는 제목 아래, ‘오늘보다 거대한 고구려를 만난다’, ‘신화보다 거대한 영웅을 만난다’, ‘역사보다 거대한 사랑을 만난다’라는 소제목이 달려있다. 이 소제목들에서 방점은 ‘고구려’와 ‘영웅’그리고 ‘사랑’에 있다. 물론 기획의도라는 것이 과장이 있을 수 있지만 그 방점 찍힌 키워드들은 드라마의 커다란 방향성을 지시하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제 막 40회를 넘기고 60부까지 20회를 남긴 드라마 ‘주몽’ 그 목표점들은 지금 어디까지 와 있을까.

고구려의 실종 - 역사를 버리자 고구려도 사라지다
먼저 ‘고구려’라는 역사적 방점은 퓨전사극의 기치를 내걸었을 때부터 실종되기 시작했다. 사료가 없어 상상력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퓨전사극’이라는 타이틀이 모든 걸 덮어주는 마법의 지팡이가 될 수는 없다. 기왕에 고구려를 내세웠다면 기본적인 사료는 따라야 마땅하다. 철기의 문제는 드라마의 재미로 치더라도, 당대 한사군이 있던 위치를 한반도 내로 지정하는 등의 문제는 심각한 식민사관을 고스란히 반영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기본적인 사료를 버리고 확고한 사관 또한 없이 역사극을 만들려했다면 그것이 ‘퓨전사극’이라 하더라도 ‘고구려’라는 타이틀을 붙이지 않았어야 마땅하다.

역사적인 인식의 문제를 떼놓고 보더라도 지금의 ‘주몽’에는 고구려가 실종된 지 오래다. 한민족이라면 특별할 수밖에 없는 고구려라는 국가의 탄생을 그리면서 드라마의 3분의 2가 지나간 현 시점까지 주몽이 고작 하고 있는 것은 권력투쟁과 연애이다. 물론 연애야 드라마의 재미를 위한 것이라지만 고구려의 탄생을 같은 민족끼리의 권력투쟁의 소산으로 보여지게 만든 것은 어딘지 잘못된 일인 것 같다. 국가 탄생의 또 한 축이 될 수 있는 ‘고조선’이라는 대의명분과 유민들을 규합해가는 이야기가 ‘주몽’에는 잘 보여지지 않고 있다.

이렇게 됨으로써 ‘주몽’은 굳이 ‘고구려’나 ‘주몽’이라는 타이틀을 떼내고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드라마가 되었다. 그러자 거대함은 사라지고 아기자기한 잔재미들만 잔뜩 이어진다. 잇따른 납치와 탈출, 구출의 연속, 국가 간의 부딪침에 전쟁은 없고 소소한 전투들만 이어지는 것 등은 바로 그런 결과들이다. 심지어는 전쟁에 있어서도 이해할 수 없는 규모의 병력이 등장하는 스케일의 문제가 불거진다. 작가와 연출자는 매회 쫓기듯 찍어야만 하는 우리나라의 드라마적 풍토로 변명하지만 이것은 엄연한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드라마는 마치 대충 몇 명의 전투 제스처를 하고 나서는 나머지는 시청자들이 상상해서 전쟁으로 채워 넣으라는 것만 같다. 현재 같이 진행되고 있는 타 사극들이 사전제작을 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한다면, 그것 역시 이 드라마가 애초부터 그 정도의 계획도 없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자인하는 일이다.

영웅의 실종 - 캐릭터들의 구조조정 시작되다
‘주몽’의 힘은 캐릭터 주몽에서 나올까. 한번쯤 의심해볼 만한 부분이다. 드라마의 캐릭터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점점 성장해간다. 그 캐릭터에 시청자들은 차츰 감정이입이 되고 그러면서 드라마의 공감의 폭이 넓어진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캐릭터 자신이 아닌 주변 캐릭터에 의해 주인공이 부각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들은 대부분 이런 부류에 속한다. ‘하늘이시여’에서 왕모와 자경이 관심을 받은 것은 자신들 캐릭터의 힘이라기보다는 악역들에 의한 부분이 많다. ‘소문난 칠공주’에서 불쌍한 칠공주들이 조명을 받는 이유는 그들의 대책 없는 캐릭터와 합쳐져 그들을 억압하는 기성세대의 틀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양상은 주몽에 있어서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처음 주몽이 캐릭터로서 주목받게 된 것은 본인의 의지가 아닌 ‘해모수’와 ‘유화부인’이라는 굵직한 캐릭터에 힘입은 바가 크다. 주몽의 성장에 있어서 또 한 축을 차지하는 ‘소서노와 연타발’, 그리고 ‘마리, 협보, 오이 삼인방’, 게다가 모팔모, 여미을, 심지어는 금와왕까지 주몽을 돕는다. 이유는? 그가 해모수와 유화부인의 아들, 주몽이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그가 드라마상에서 주몽이라는 이름으로 나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주몽은 그다지 소위 말하는 캐릭터의 포스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반면, 악역을 맡고 있는 대소, 영포, 도치 일당 등은 드라마의 진짜 재미를 주는 인물들이다. “드라마 제목을 주몽이 아닌 대소로 바꿔라”는 비판이 있을 정도로, 주몽이 실종되었던 2회분 동안 대소는 그 역할을 충분히 해주었다.

영포와 도치 일당은 ‘주몽’이란 드라마가 만들어놓은 가장 독특한 재미를 가진 캐릭터들이다. 이들 ‘귀여운 악당들’은 사실상 지금까지 드라마의 흐름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 주몽의 성장은 바로 이들의 패배에 의한 경우가 많으며, 이들은 그만큼 어리숙하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에게 호응까지 받고 있다. 악당들 이외에도 소서노와 연타발이란 캐릭터는 주몽 이상의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인물들이다(사실상 드라마 상에서 주몽은 초창기에는 유화부인 품속에서 중반부에는 소서노의 품속에서 노는 아이 정도로 비춰진다).

이렇게 주몽의 캐릭터가 전면에 등장해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힘이 되지 못하고, 주변인물들이 불쑥불쑥 제 자신의 힘을 드러내자 문제가 생긴다. 드라마의 애초 목표, ‘고구려와 주몽의 탄생’이라는 갈 길은 멀기만 한데 자꾸 그들 캐릭터 사이에서 맴을 돌게 되는 것이다. 마치 초기에 부영의 캐릭터가 전혀 드라마 흐름에 도움이 되지 못하자 사라져버린 것처럼, 최근 ‘주몽’에는 캐릭터들의 구조조정이 시작되었다.

금와는 침상에 눕게 되고, 유화부인 역시 아들을 걱정하는 모습 이상의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 소서노는 우태와 결혼한 후, 매력을 잃게 되고, 연타발은 비류군장에 의해 끌어내려진다. 예상밖에 호응을 얻고 있는 영포와 도치일당은 아직 정해지진 않았으나 ‘영포의 난’을 실패로 어떤 상황이 될지 알 수 없다. 반면 예소야라는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했으나 아직까지 이렇다할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주몽의 힘은 바로 이런 주변인물들에 의해 나온 것이었는데, 그들을 놔두자니 드라마의 진행이 문제가 되고, 그렇다고 없애자니 드라마의 재미가 사라지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이다.

사랑의 실종 - 소서노, 울기 시작하다
‘주몽’의 가장 큰 인기의 힘은 바로 주몽과 소서노 사이에 오가는 멜로가 한 축을 차지한다. 이것은 타 사극에 비해 ‘주몽’만이 가진 힘이다. 남성적인 전쟁과 전투, 권력다툼의 문제 속에 ‘주몽’은 여성적인 멜로 라인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거기에 일등공신은 당연 소서노라는 캐릭터다. 그녀가 힘을 발휘한 이유는 단 하나, ‘강인하고 당찬 여성상’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그녀가 그저 한 사람에 목이 매어 기다리기만 하는 캐릭터였다면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주몽을 구해내기 위해 산적들에게 스스로 들어가 거래를 할 정도의 강단을 가진 인물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실종된 주몽을 기다리지 못하고, 대소의 협박에 휘둘리면서 우태와 혼사를 치러버린다. 왜 작가는 이런 선택을 했던 것일까. 이것은 드라마 진행에 있어서 소서노가 차지하는 비중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가, 뒤늦게 역사적 사료에 충실하고자(사료에서는 소서노가 유부녀로 주몽이 유부남으로 만난다) 했던가, 앞으로 진행될 예소야와의 멜로 경쟁(경쟁이 되려면 힘이 균형이 되야 하는데 소서노가 너무 강하므로)을 만들려던 데서 비롯된 일일 수 있다. 어쨌든 이렇게 되자 소서노는 그 유리같이 냉랭하지만 매력적인 미소를 잃어버리고 울기 시작한다. 소서노의 매력은 떨어지기 시작한다.

반면 예소야는 참신하지 못한 등장으로 처음부터 힘을 얻지 못했다. ‘주몽’에서의 멜로라인은 대개 ‘영웅의 위기 - 위기에서 구해준 여인 - 위기에 처한 여인 - 여인을 구해준 영웅’이라는 구조로 등장하는데, 예소야 역시 드라마 초기의 해모수의 등장과 거의 똑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 게다가 그녀에게서는 소서노와 같은 카리스마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일부종사 하듯 주몽을 바라보며 어찌 보면 짐만 되는 캐릭터에서 매력적인 구석은 잘 보이지 않는다. 소서노의 힘도 약화되고 예소야도 힘을 발하지 못하는 이 상황에서 멜로 라인이 구축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주몽이 살 수 있는 길
최근 ‘주몽’의 흐름은 앞에서 지적한 기획의도와는 상관없이 지나치게 시청률 중심으로 흐르고 있다. 아무리 주몽이 실종되었다고 해도 주인공을 2회분이나 드라마에서 뺀 것이라든지, 몇몇 예고편으로 주목을 끌어놓고 실제 보면 별 것 아닌 스토리로 일관한다든지, 심지어는 방영시간을 마음대로 늘린다거나, 상식을 무시한 채 무리한 편성을 한다든지 하는 것들은 시청률 편향을 드러내는 단적인 예다. 만일 ‘주몽’의 목표가 애초부터 시청률에만 있었다면 모르겠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민감한 시기에 그것도 국가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주몽이라는 소재를 갖고 시청률에만 올인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이러한 ‘주몽’에 대한 비판이 끊이질 않고 있는 것은 불행 중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저 시청률에 경도되지 않고 끊임없이 애정을 갖고 ‘주몽’을 보고 있는 시청자들이 많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주몽’은 이제 작가 스스로도 “작품의 밀도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며 몇몇 실패사례에 대해 인정했을 정도가 되었다. 드라마 비판에 대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드라마 초기에 방점을 찍은 키워드들이 실종된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역시 초심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필자를 비롯하여 ‘주몽’이라는 드라마에 여전히 애정과 관심을 보이며 비판을 해주고 있는 많은 시청자들에게 보답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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