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호세대 다른 드라마와 시청률

방송 3사 드라마의 나이는 어떻게 될까. 이것은 물론 각 방송사별로 성공하는 드라마를 만든 주력 세대가 누구냐는 질문이다. 천편일률적으로 세대를 나눌 수는 없지만 대체로 MBC는 3,40대가 주 시청세대이며, SBS는 4,50대로 그보다 시청세대가 높다. 반면 KBS는 3,40대에서부터 5,60대까지 고른 시청층을 보유하고 있다. 어느 방송사의 드라마이건 10대와 20대는 이제 TV 시청률에서 그 중요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른바 ‘닥본사’보다는 TV 이외의 다른 매체를 통해 보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 현재 방송사별 드라마들의 나이에 따라 주중과 주말에서 시청률의 희비쌍곡선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주중에는 주로 3,40대의 시청층이 드라마 시청률을 좌우하고 있는 반면, 주말에는 그 보다는 윗세대인 4,50대의 시청층이 그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주중에 ‘이산’이나 ‘뉴하트’ 같은 MBC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고, 반면 주말에는 SBS ‘황금신부’나 KBS ‘대왕 세종’같은 드라마들이 인기를 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중 드라마 3,40대가 좌우
주중 드라마의 수위를 차지하고 있는 MBC 드라마들의 최근 특징은 그 타깃을 3,40대 여성에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AGB 닐슨의 세대별 시청률 백분율 자료(1월1일∼1월20일)에 의하면 주중 드라마를 이끌고 있는 ‘이산’과 ‘뉴하트’ 모두 3,40대 여성의 분포도가 가장 높았다. ‘이산’은 3,40대 여성이 30%(30대 16%, 40대 14%)였고, ‘뉴하트’는 31%(30대 17%, 40대 14%)였다. 여기에 같은 세대 남성들까지 포함하면 ‘이산’은 총 51%(30대 남성 11%, 40대 남성 10% = 21%), 즉 반 이상의 시청자가 3,40대라는 얘기가 된다. 마찬가지로 ‘뉴하트’도 총 48%(30대 남성 9%, 40대 남성 8% = 17%)로 반 수에 육박한다.

SBS의 ‘왕과 나’는 이에 비해 시청층이 더 높은데, 최근 들어 완성도에 대한 비판이 높아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시청률이 14% 내외를 유지하는 비결은 이 드라마가 사극이라는 점도 있지만 장년층 시청자들의 충성도가 그만큼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SBS의 ‘불한당’ 역시 주 시청층이 4,5,60대 여성으로 이 시청세대가 41%(남성까지 포함하면 무려 61%다)나 되는 반면, 30대는 10%(남성 포함해도 16%)에 불과했다. 역시 주중 드라마를 이끄는 주 시청층이 3,40대라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한편 주중 드라마로서 MBC의 아성을 공략하는 유일한 드라마는 KBS의 ‘쾌도 홍길동’이다. 이 사극의 세대별 시청률은 특이한데, 남성 시청층은 적은 반면(40대 10%가 최고치), 여성 시청층은 30대부터 60대까지 고루 분포(30대 12%, 40대 12%, 50대 9%, 60대 9%)하고 있다. 여러 모로 사극의 진화와 맞물려 시청층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주말 드라마 4, 50대 이상이 좌우
주중 드라마에서 3,40대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수위를 차지한 MBC 드라마. 하지만 주말 드라마의 성적표는 그다지 좋지 않다. 주말에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무한도전’이 드라마만큼의 시청률을 얻고 있는 것에 반해, 정작 드라마는 시청률 경쟁에서 멀어져 있다. 과거에 주말 드라마 하면 MBC를 떠올릴 정도로 강세였지만 그것은 옛말이 되었다. ‘깍두기’가 종영한 ‘며느리 전성시대’에 눌려 빛을 보지 못했고, ‘겨울새’는 조기종영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을 정도다.

반면 주중에서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던 SBS는 주말 드라마에서 활짝 웃고 있다. 대표적인 드라마가 ‘황금신부’. 이 드라마의 주 시청층은 4,5,60대(전체의 38%)여성으로 이 세대의 남성 시청자까지 합치면 59%나 된다. 한편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는 KBS 대하사극 ‘대왕 세종’은 주 시청층이 40대 이상 남성(33%)으로 여성 시청층까지 합치면 61%를 차지하고 있다. ‘대왕 세종’ 의 특이한 점은 시청률의 미세한 차이가 있지만 60대 시청자들의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는 점(남 11%, 여 10%)이다.

시청률과 달라진 생활 패턴의 상관관계
이처럼 주중 드라마와 주말 드라마의 선호 세대가 다르고, 각 방송사별 드라마의 나이가 다른데서 현재의 시청률 등락을 이해할 수 있다. 주중 드라마를 이끄는 3,40대 시청층과 잘 맞아떨어진 주중 MBC 드라마들의 나이는 시청률 수위를 차지하게 하는 힘이며, 상대적으로 드라마 나이가 높은 주중 SBS 드라마들이 고전하는 이유가 된다. 반면 이런 상황은 주말에 와서는 역전된다. 그만큼 달라진 주말 생활 패턴과 맞물려 주말 드라마 시청층의 주 세대가 장년층이 되었다는 걸, SBS 드라마나 KBS 사극이 말해준다.

방송사의 드라마 성격이 특정 세대를 공략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 방송사의 이미지를 만들기도 하는 상황에서 이렇게 한 세대에 국한되는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이것은 어떤 면으로 보면 특정 세대에 대한 쏠림 현상을 말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타깃 세대가 고정되면 당장은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겠지만 향후에는 비슷비슷한 톤의 드라마들이 등장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한 방송사에서도 여러 세대들이 향유할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과 드라마가 다양하게 포진되길 기대한다.

드라마 극과 극, ‘황금신부’와 ‘태사기’

AGB 닐슨의 지난주 주간시청률 조사 결과에 따르면 ‘태왕사신기’의 시청률은 29.8%로 전체 4위. ‘황금신부’는 24.1%로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드라마의 완성도나 규모 등을 두고 봤을 때, 거의 극과 극에 서 있는 이 두 드라마의 시청률이 극과 극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건 의외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완성도가 못 미치는 드라마라고 해서 시청률이 안 나온다는 말은 적어도 ‘황금신부’에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또한 그 반대의 위치에 서 있는 완성도나 규모에 있어 거의 극점에 달해있던 ‘태왕사신기’가 이 정도의 시청률에 머물렀다는 것도 언뜻 이해가 어렵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결과를 만든 것일까.

‘태왕사신기’가 RPG라면 ‘황금신부’은 대전게임
‘태왕사신기’는 게임으로 친다면 주인공이 아이템을 얻어가며 성장하는 RPG 게임에 해당될 것이다. 그런데 ‘황금신부’도 ‘태왕사신기’처럼 게임의 대전모드 형식을 취하고 있다면 이상하게 생각될까. 그러나 ‘황금신부’는 서로 얽히고 설킨 두 집안 사람들이 끝없이 대결하는 드라마로 게임으로 치면 대전게임을 닮았다.

먼저 상류층과 중산층으로 대변되는 두 집안의 환경 자체가 계층 간의 대결구도를 만든다. 준우(송창의)네는 영세한 식품업체인 소망식품을 가족들끼리 꾸려나가는 반면, 영민(송종호)네는 국내 굴지의 식품회사인 웰빙푸드를 경영한다. 전통의 떡을 생산하는 영세업체와 프랜차이즈 음식을 유통하는 대기업은 전통적 가치와 현재의 세태를 병치시킨다.

이런 양측의 팽팽한 긴장감은 그 가족들 간의 계속 연결되는 악연으로 대전 모드로 전환된다. 준우의 어머니인 한숙(김미숙)은 옛친구이자 영민의 어머니인 옥경(견미리)에게 성일(임채무)을 빼앗기고 이 악연은 대물림된다. 한숙의 아들 준우가 사랑하던 옥지영(최여진)이 옥경의 아들 영민과 결혼하면서 준우는 그 상처에 공황장애까지 겪게 된다. 물론 공황장애는 베트남 신부인 진주(이영아)의 극진한 사랑으로 극복하게 되는데, 공교롭게도 진주가 찾으려는 친아버지인 성일은 진주가 딸임을 부정한다. 이것만이 아니다. 한숙의 딸인 세미(한여운)는 옥경의 아들인 영수(김희철)과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물론 이런 관계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한 번의 우연은 이해될 수도 있지만 두 번 이상 계속되는 우연은 그것을 의도로 보게 만든다. 그러니 ‘황금신부’의 대결구도는 드라마적으로 완결된 구조 속에서 탄생된 것이 아니라 작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의도된 것이다. 따라서 ‘황금신부’를 리얼리티의 잣대로 보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것은 드라마를 권선징악과 죄와 벌의 당위의 구조로 만든다. 그 안의 인물들은 리얼한 것이 아니라, 죄를 지은 자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당위를 향해가는 이 장기게임 같은 드라마의 재미있는 말로서 기능한다.

이렇게 보면 ‘황금신부’의 구조는 게임의 스테이지를 닮아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첫 번째 스테이지가 진주를 통해 준우가 공황장애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면, 두 번째 스테이지는 다시 회사를 나가게된 준우가 진주와 얽혀 겪게되는 사회적 편견을 헤치고 나가는 것이며, 세 번째 스테이지는 준우의 동생인 세미와 시동생인 영수의 결혼을 반대하는 옥지영의 이야기가 된다. 이런 스테이지는 끝없이 계속된다. 하다 못해 옥지영의 과거가 밝혀지는 과정도 하나의 스테이지이며, 그녀가 진주와 전통떡의 후계자 자리를 놓고 ‘떡 배틀’을 벌이는 것도 또 하나의 스테이지다. 스테이지의 대미는 결국 성일이 진주의 친아버지임이 밝혀지는 것이 될 것이다.

단순한 스토리는 때론 강점이 된다
또한 ‘태왕사신기’와 ‘황금신부’는 스토리에 있어서도 극과 극을 달린다. ‘태왕사신기’의 스토리는 시청자들에게 복잡한 게 사실이다. 캐릭터와 스토리들이 유기적으로 짜여진 구조를 갖고 있어 한두 회를 놓치면 이해하기가 어렵다. 반면 ‘황금신부’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두 집안의 대결구도 정도만 알고 있으면 중간에 몇 회 빼먹더라도 다시 보기만 하면 금세 이해가 가는 스토리를 갖고 있다.

게다가 이 대결구도라는 것은 사실상 우리네 멜로 드라마들이 가졌던 대부분의 관습적 설정들을 다 모아놓은 것들이다. 굳이 설명할 필요 없이 “저 남자가 버린 딸이래”, “저 여자가 버린 남자래” 하는 말 하나면 쉽게 이해가 된다. 단순한 이야기 설정은 누구나 쉽게 그 게임에 참여할 수 있게 해준다. 이것은 ‘태왕사신기’같은 거의 처음과 마지막의 조각퍼즐이 딱 들어맞는 듯한 완성도 높은 스토리가 가질 수 없는 단순함의 장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황금신부’가 이런 역설적인 장점(떨어지는 완성도와 단순한 스토리가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하는)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방영시간이 주중이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주중 드라마의 기대치는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주말 드라마의 기대치는 낮다. 요즘처럼 주5일 근무제에 금요일에 집을 비우는 가족들이 늘어나는 상황 속에서 밀도 높은 연속성을 가진 드라마는 오히려 시청자의 접근을 어렵게 한다.

‘황금신부’의 시청률 상승은 리얼리티보다는 시청자들이 익숙한 소재로 그 드라마가 전하는 메시지의 당위성을 게임이란 방식으로 풀어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요컨대 ‘황금신부’는 시청자의 예측을 깨는 스토리전개의 놀라움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아니라, 시청자가 원하는 스토리를 보여주는 드라마다. 그것이 깊은 공감을 주었다면 그것은 드라마의 완성도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드라마가 깨려는 황금만능주의와 계층 간의 편견들이 실제 현실 사회에서 그만큼 두텁다는 반증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태왕사신기’처럼 뛰어나거나 완성도가 높지 않고 조금 부족해도, 또 느슨한 스토리라도 시청자들이 준우와 진주의 사랑을 지켜보고, 지켜주고 싶은 이유가 될 것이다.

‘황금신부’가 전하는 우리들의 오만과 편견

그녀는 바보다. 사진 한 장 달랑 보고 이역만리에 시집와서는 그제야 남편 강준우(송창의)가 공황장애라는 걸 알게된다. 필요 없다고 돌아가라는 강준우 말에 그녀는 그냥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공항에서 발길을 돌려 남편에게로 돌아온다. 그리고 집밖조차 나가지 못하는 남편을 위해 매일 치료일지를 쓰고 기도를 한다. 그렇게 3년 병 수발에 남편은 장애를 극복하고 직장까지 갖게 되지만 그녀는 여전히 저녁시간 집 앞에서 남편을 기다린다. 요즘 시대, 여성으로 치면 바보 중에 바보인 사람, 바로 ‘황금신부’의 그녀, 누엔진주(이영아)다.

그래서 그녀를 진짜 바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당신 주제를 알고 남편 앞길이나 막지 말라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 ‘주제’라고 말하는 범위에는 그녀가 베트남 여성이라는 국적차별에 대한 것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대학을 나오지 못한 학력차별, 그리고 가난하다는 빈부차별, 나아가 그녀의 문화를 형성하는 베트남 문화를 낮은 것으로 보는 문화적인 차별까지를 모두 포함한다.

남편의 옛 친구였다는 차인경(공현주)은 번번이 진주를 찾아와 정말 주제에 걸맞지 않은 충고를 한다. 그것은 여러 가지 표현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결국은 “당신이 남편 성공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아무리 강준우를 잊지 못해서 하는 말이라고 해도 도가 지나치다. 진주가 베트남 여자가 아닌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는 점에서 차인경의 ‘주제넘은 충고’는 그 자체로 베트남 여성에 대한 오만과 편견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할 수 있다.

차인경의 상황은 사랑에 눈멀어 그랬다 쳐도 강준우의 사업파트너로서 등장한 민이사의 편견은 너무나 노골적이다. 안하무인식으로 진주에게 베트남 여성으로서의 모멸감마저 느끼게 만든다. 거기에는 국적에 대한 것도 있지만 그 이전에 빈부에 대한 차별의식이 더 짙게 깔려져 있다. 민이사의 태도는 ‘가난한 자들’을 비루하다 여기는 가진 자들의 특권의식이 깔려있다. 내세우는 것이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칼자루인 ‘황금’을 쥐고 있다는 것이다. 황금만 좇는 사람들이니 그 눈에 진주 같은 진짜 황금이 눈에 뜨일 리가 없다.

반면 그런 바보를 황금으로 여기는 남자가 있다. 차인경은 진주를 위해 앞길을 포기하는 강준우에게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려운 듯 이렇게 여러 차례 묻는다. “당신 인생을 가로막는 그 사람이 그렇게 중요해요?” 그러자 그 남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이 내 인생이야.” 때론 그도 진주에게 화를 낸다. “스스로 자신을 그렇게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여기는 당신은 행복해질 자격이 없어요.” 자신은 그녀를 황금으로 여기는데 그녀는 정작 자신을 바보로만 생각하니 답답할 밖에.

‘황금신부’는 순애보적이 사랑이 바보의 사랑의 되어버린 시대에 그 바보에 대해 던지는 현대인들의 오만과 편견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극화되어 도저히 현실에서는 벌어질 수 없는 사건들이 그 안에 포진해 있는 게 사실이지만 이 이야기가 주는 울림은 적지 않다. 거기에는 이런 순애보적인 이야기가 비현실이 되어버린 현 세태를 꼬집는 면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라마 초반부에 베트남 여성으로 등장한 진주는 그 말투와 행동 하나 하나에서 좀 구닥다리라거나 세련되지 못했다고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조금씩 바뀌고 있고 그것이 이 드라마가 의도하려는 이야기의 진짜다. 황금만 보며 달려가는 물질만능주의의 세상 속에서 정작 황금인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무렇게나 사랑한다 말하고 정작 진짜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차인경과 민이사의 오만과 편견은 그저 드라마 속의 남 얘기로만 치부하고 가기엔 너무나 현실적이다. ‘황금신부’는 진짜 사랑을 아는, 사람을 황금으로 볼 줄 아는 아저씨(강준우)를 그토록 이해하지 못했던 차인경이, 진주를 만난 후에 ‘자신의 사랑이 부끄럽다’고 말하는 드라마다.

‘황금신부’가 가진 두 가지 의미

‘황금신부’라는 제목에는 두 가지 의미가 엿보인다. 그 첫 번째는 사랑이 그 첫 번째 조건이 되어야할 결혼에 ‘황금’이란 물질적 가치를 더 중요시하는 세태를 꼬집는 의미로서의 ‘황금신부’다. 드라마 상으로 봤을 때, 거기에 부합하는 캐릭터는 강력한 신분상승 욕구로 사랑마저 저버린 옥지영(최여진)이 될 것이다.

하지만 ‘황금신부’는 물질적 가치로서의 ‘황금’이 아닌 ‘황금처럼 귀하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대단히 보수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할 것이지만 우렁각시 같은 남편 뒷바라지에 시부모 공경하는 신부라는 뜻의 ‘황금신부’를 뜻하기도 한다. 아마도 국내에서는 그런 캐릭터가 비현실적이라고 작가 스스로도 생각했던 모양이다. 여기에 맞는 캐릭터로 베트남에서 데려온 진주(이영아)를 설정하니 말이다.

‘황금신부’는 그러니까 이 서로 다른 두 캐릭터와 가치가 부딪치는 드라마다. 옥지영이 결혼한 김영민(송종호)과, 진주가 결혼한 강준우(송창의)의 두 집안은 계층에서부터 생활환경, 사고방식, 가치관까지 첨예하게 다르다. 영민이네가 운영하는 웰빙푸드라는 회사가 표준화를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기업이라면, 준우네가 운영하는 소망식품은 가내수공업에 가깝다. 웰빙푸드가 케이크를 만든다면 소망식품은 떡을 만드는 식이다. 여기에는 현재와 과거, 현대와 전통이 부딪친다.

이런 환경이 만들어내는 사고방식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영민이네가 성공지향적이라면 소망식품은 행복지향적이다. 작아도 거기서 어떤 행복을 찾아내는 것. 드라마는 종종 시청자들에게 “돈이 다는 아니다”라고 말해주곤 한다. 그리고 이 두 집안을 악연으로 엮어내면서(이건 현실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자본주의 체제가 가진 구조적인 역학관계 같은 것을 암시해 보여준다.

영민이네집 사람들은 대부분 준우네집 사람들에게 죄가 있다. 양옥경(견미리)은 정한숙(김미숙)의 남자였던 김성일(임채무)을 가로챘고, 김성일은 자기가 버린 딸인 진주를 부정하며, 옥지영은 강준우를 버려 공황장애에까지 빠뜨린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상류사회라는 곳에 편입되거나 그것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성공했고 부자가 되었다. 한숙이 자기 딸인 세미와 양옥경의 아들이 결혼 못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하자, 옥경이 가족들을 모아 놓고 하나하나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묻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의 죄의식과 허위에 얼룩진 얼굴을 끄집어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립구도에 최근에는 새로운 인물이 가세했다. 바로 과거에 강준우를 사랑했지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차인경(공현주)이란 인물이다. 이 인물은 이미 더 이상 왠만한 시련에는 끄덕 없게 되어버린 진주 앞에 약해져버린 옥지영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새로운 임무를 맡았다. 그것은 국적과 학력, 계층 같은 것에 대한 보다 강한 차별의식을 무기로 진주를 괴롭히는 일이다. 그녀의 도를 넘어선 차별의식 속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로 대변되는 편견은 종종 특권의식을 가진 상류층들의 전형적인 악덕으로 그려지곤 했던 소재들이다.

‘황금신부’는 이러한 사회적인 차별의식과 계층 간의 갈등을 두 가족의 엇갈린 운명 속에서 제시하고 있는 드라마다. 드라마가 보여주는 대립각을 잘 살펴보면 그 안에 우리네 사회가 가진 상당 부분의 갈등양상을 읽어낼 수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대결양상이 너무나 선명하게 구획되어져 있다는 점이다. 자칫 성공, 현대적 가치 같은 것은 죄악이고 행복, 과거적 가치만이 옳은 것처럼 보여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기왕에 사회극 같은 설정을 가진 이 드라마가 사회적인 편견에 대해 진정한 답을 주기 위해서는 ‘황금신부’의 두 가지 의미, 즉 성공이라는 현대적인 가치와 더불어 인간적인 정 같은 전통적인 가치를 한 캐릭터 안에서 구현시켜야 하지 않을까. 진주가 그런 의미에서의 황금신부가 될 수 있을지 앞으로의 향방에 귀추가 주목된다.

며느리 전성시대’의 웃음과 ‘황금신부’의 눈물

주말 저녁 TV 속의 가족들은 계층 간의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며느리 전성시대’는 장충동 족발집 아들 이복수(김지훈)와 프랑스 식당 베네치아의 딸 조미진(이수경)의 결혼을 다루면서 그 서로 다른 계층의 부딪침을 다양한 각으로 그려낸다. ‘황금신부’는 국내굴지의 식품회사, 웰빙푸드의 사장인 김성일(임채무)과, 영세한 식품업체인 소망식품의 아들 강준우(송창의)와 결혼하고 베트남에서 아버지를 찾아온 진주(이영아)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계층의 갈등을 잡아낸다.

서로 다른 배경의 가족이 결혼이라는 틀 속에서 부딪치는 것이지만 ‘며느리 전성시대’와 ‘황금신부’는 그걸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 상이하다. ‘며느리 전성시대’가 다분히 시트콤적인 방식으로 코믹하게 이질적인 가족의 결합을 그리고 있다면, ‘황금신부’는 좀더 전통적인 대결 방식으로 계층 간의 갈등을 그린다. 전자의 코드가 웃음이라면 후자의 코드는 눈물이다. 전자의 방식이 로맨틱 코미디의 가족드라마로의 변용을 쓰고 있다면, 후자의 방식은 전통적인 신파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며느리 전성시대’, 빈부가 아닌 사고방식의 차이
‘며느리 전성시대’의 장충동 족발집과 프랑스 식당 베네치아는 드라마 속에서 가치관의 차이로서 부딪친다. 결혼이라는 틀을 통해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미묘한 긴장은 전통적인 사고 방식과 현대적인 사고 방식의 차이에 의한 것이지 단순한 빈부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살아온 환경과 방식이 상이한 두 가족의 부딪침이 보다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지 않는 것은 의도적으로 과장된 캐릭터들이 주는 발랄함 때문이지만 그 기저에는 보다 근본적인 빈부격차의 문제로까지 확대되지 않는 갈등 양상 때문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는 특이하게도 조미진과 이복수의 코믹한 결혼이야기 옆에 보다 심각한 차수현(송선미)의 결혼문제를 끼워 넣는다. 주말드라마에 있어서 불륜코드까지를 끼워 넣는 건 작가의 다양한 시청층을 잡기 위한 안전한 선택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좀더 납득할 수 있는 이유는 확연한 대비효과를 주기 위함인 것으로 보인다. 이기적이고 물질적인 시어머니 이명희(김혜옥)가 “추석 상에는 가격흥정 하는 것조차 예가 아니다”라면서 종종 부를 과시하는 듯한 행동을 하는 것은 같은 상류사회에서 자라온 며느리, 차수현이 빈부의 차이를 대하는 방식과 다르다. 차수현이 서민적인 김기하(이종원)의 틈입을 허락하는 건, 빈부 차이가 존재하면서도 거기에 대한 특권의식이 별로 없는 요즘 세대의 모습을 반영한다.

작가가 이 드라마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고방식의 차이이며, 그것은 역지사지하는 상황 속에서 넘어설 수 있는 계층 간의 다름일 뿐라는 것이다. 그것을 넘지 못하는 것은 이명희라는 캐릭터를 통해 보여지듯 빈부격차를 특권의식과 신분의 차이로 이해하는 구시대적인 가치관 때문이다. 앞으로 조미진의 오빠인 조인우(이필모)와 엮어지게 될 이복수의 동생 이복남(서영희)의 결혼이야기는 현재의 상황을 뒤집어보는 계기를 주게 될 것이다. 이것은 또한 조미진이라는 상큼 발랄한 캐릭터를 며느리로 얻게되면서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되는 서미순(윤여정)이 양자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과도 연결된다. 이것이 역지사지의 드라마, ‘며느리 전성시대’가 가족드라마의 전성시대를 예고하는 재미의 이유다.

전통적인 대결의 방식, ‘황금신부’
반면 ‘황금신부’가 그리는 대결의 양상은 심각하다. 그것은 전통적인 드라마들이 보여주는 빈부의 차이, 신분의 차이를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가 베트남 신부라는 사회적인 코드를 가지면서도 사회극이 아닌 가족드라마가 되는 이유는 라이따이한 설정의 활용이 전통적인 가족드라마의 틀 안에서 효용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금신부’는 초반부에 베트남 신부라는 설정을 활용해 순애보와 신파라는 전통적인 드라마 코드를 한껏 활용한 바 있다. 시골집 처자를 서울로 상경시킨다 하더라도 지금 시대라면 용인되기 어려운 이 코드들을 끄집어내기 위해 드라마는 베트남에서 신부를 데려온다.

공황장애를 겪는 강준우를 지극 정성으로 사랑하는 진주의 모습은 지금 현실에서는 공감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50대 이상의 전통적인 드라마 시청층에게는 여전히 통용되는 향수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베트남 신부가 타국에 시집와 병 수발을 하는 결혼생활 속에서 베트남이라는 이문화에 대한 접근은 배제된다. 빈부라는 틀 안에서 이해가 아닌 수용의 차원으로 진주라는 캐릭터가 용인될 수 있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베트남 신부에 대한 우리네 편견이 투영된 결과다.

후반부에 와서 베트남 신부라는 코드는 출생의 비밀이라는 신파의 코드로 활용된다. 여기에도 빈부 격차는 그 기저에서 힘을 발휘한다. 강준우를 공황장애로 밀어 넣은 옥지영(최여진)과 대결양상을 갖고 떡 기술을 배우려는 진주의 이야기는 출생의 비밀이 겹쳐지면서 전통적인 빈부의 코드를 끌어낸다. 이 드라마는 이처럼 이해하고 소통하는 가족을 다룬다기보다는 용서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가족이라도 포용하고 용서를 구하면 본래의 가족으로 돌아갈 수 있다(이것은 예측이지만)는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가치관으로의 회귀를 그려낸다.

파편화된 가족들이 살아가는 시대 속에서 가족은 어떤 식으로든 화두가 되지만 그것을 드라마가 그리는 방식은 이다지도 다르다. 그것은 이해와 소통을 향한 진화의 방식이 되기도 하고 그저 지지고 볶더라도 한 사람의 희생과 용서를 통해 유지되던 과거적 가족 형태로의 회귀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희생과 소통, 이 두 코드는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가족들이 가진 과거적 가치와 현대적 가치를 대변하고 있다.

‘며느리 전성시대’ vs ‘황금신부’

주말드라마들이 일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가장 큰 요인은 시즌의 변화다. 여름 휴가 시즌이 지나면서 주말 시간대 시청자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는 것. 하지만 아무리 시즌이 달라져도 돌아온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잡아놓을 컨텐츠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때마침 시작해 주말극의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며느리 전성시대’와 지루했던 투병(?) 이야기를 지나 베트남 신부, ‘진주(이영아)의 친부 찾기’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 ‘황금신부’가 그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먼저 ‘며느리 전성시대’가 갖는 의미는 가장 크다 할 것이다. 전통적인 주말드라마가 가진 가족드라마의 성격을 온전히 회복시킨 이 드라마는 고전적인 소재이면서도 시대를 넘어 먹히는 ‘서로 다른 양가집의 결혼이야기’를 주 모티브로 삼고 있다. 이것은 마치 저 ‘사랑이 뭐길래’의 변주처럼 보인다. 보수적인 대발이 아버지(이순재) 대신 오향심 여사(김을동)가, 현모양처에 가끔 반항적 행동을 하는 어머니(김혜자) 대신 서미순(윤여정)이, 신부와 집안 양측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대발이(최민수) 대신 복수(김지훈)가, 톡톡 튀는 개방적인 아내(하희라) 대신 미진(이수경)이 포진해 결혼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해프닝을 재미있게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새롭게 느껴지는 것은 보수적인 아버지 대신 보수적인 시어머니를 집어넣어 요즘 달라지고 있는 고부 관계를 포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전통적으로 전 세대에 걸쳐 공감을 자아내게 마련인 결혼이란 이벤트 아래 벌어지는 고전적인 스토리에, 현대적인 변주가 힘을 발하는 이유다. 혹자들은 식상하다 할 것이지만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잘 먹히는 결혼소재는 결혼을 해야하는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거기에 얽힌 양가집 사람들의 관계가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이것은 이 드라마의 시청층이 결혼이란 대사를 치른 사람이거나, 곧 치를 사람이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그 공감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즉 결혼이란 시대불문, 관심을 가질 가족의 이벤트라는 것이다.

반면 ‘황금신부’가 보여주는 스펙트럼은 너무나 변화무쌍하다. 처음 라이따이한의 소재를 잡은 시작은 사회성 짙은 메시지를 가진 드라마였는데, 차츰 전통적인 멜로드라마로 흘렀다. 지영(최여진)에게 배신당한 준우(송창의)가 공황장애를 겪고 이를 사랑으로 지켜낸다는 진주의 이야기가 전통적인 신파의 구조로 그려졌다. 중요한 것은 신파가 먹히지 않는 달라진 지금의 현실에서, 그 공감대를 다시 불러일으키기 위해 베트남 신부를 데려왔다는 점이다. 순애보 같은 이야기는 이제 우리에게는 도시는 물론이고 시골처자에게도 어울리지 않는 것이 되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공감되지 않는 현실과는 별개로 전통적인 순애보와 신파를 원하는 보수적인 시청층이 존재한다는 점. ‘황금신부’는 베트남 신부를 통해 그 부분을 공략한 결과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

현재 ‘황금신부’는 이 순애보적 이야기에 가족극으로서의 훈훈한 이야기를 섞는 반면, 동시에 ‘출생의 비밀’이라는 또 다른 카드를 꺼내들고 있다. 여러모로 이 드라마는 베트남 신부라는 설정 하나로 과거의 신파 드라마가 갖는 파괴력을 끌어 모으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신파라면 어떨까. 여전히 거기에 공감하고 재미를 느끼는 층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며느리 전성시대’와 ‘황금신부’는 어떤 면으로든 주말 드라마의 위기의식에서 생겨난 퇴행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안에도 나름의 현대적인 공감의 틀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다. ‘며느리 전성시대’가 가진 새로운 고부 관계의 틀과, ‘황금신부’가 가진 순애보가 사라진 시대의 다국적 사랑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단순히 구닥다리라 여기며 비판만 할 일이 아니다. 모든 드라마가 잣대를 젊은 층의 시선에만 둘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들 전통적인 드라마들이 여름 시즌을 지나 돌아오고 있는 시청자들을 온전히 안아줄 수 있다면 말이다.

드라마 속 이 시대의 며느리,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1972년도 시청자들을 눈물바다에 빠뜨렸던 드라마, ‘여로’의 시어머니(박주아)는 며느리(태현실)를 박해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각인됐다. 바보 아들인 영구(장욱제)를 극진히 돌보는 천사표 며느리를 구박하면서, 심지어는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웠다고 모함하는 시어머니는 전국의 며느리들을 분노케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드라마 속 고부관계는 달라지고 있다. 심지어 시집살이에 대응한 ‘며느리살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데, 이 말은 직장 생활하는 젊은 며느리의 뒷바라지를 시어머니가 해야하는 상황에서 생긴 신조어이다. 이것은 저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잘 나가는 며느리 박해미에게 구박받는 시어머니 나문희를 통해 충분히 봐왔던 상황이다. 이런 변화를 본격적으로 포착한 드라마가 KBS 주말드라마 ‘며느리 전성시대’다.

시집살이 끝나는가 했더니 며느리살이?
이 드라마는 장충동 원조 뚱땡이 할머니집 맏며느리로 거의 소처럼 취급받아온 서미순(윤여정)이 신세대 며느리, 미진(이수경)을 맞으면서 생기는 해프닝을 다루고 있다. 고부 갈등이라는 케케묵은 소재가 주는 편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초점이 톡톡 튀는 발랄한 신세대 며느리 미진에 맞춰지면서 드라마는 경쾌함을 얻는다. 그간 시집살이를 톡톡히 겪어온 세대라면 이 당찬 며느리의 당돌한 행동에 묘한 쾌감마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중간에 끼어있는 서미순의 상황은(물론 드라마에서는 충분히 코믹으로 명랑하게 처리되어 있지만) 이 시대의 예비 시어머니들에게는 좀 심각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서미순은 여전히 며느리로서 시어머니 오향심 여사(김을동)에게 박해받는 순교자지만, 또한 새롭게 들어오는 신세대 며느리 앞에서 어쩌면 ‘며느리살이’를 해야될지도 모르는 위치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한 평생을 시집살이로 살아온 그녀가 나머지 삶을 며느리살이로 산다는 건 어찌 보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시집살이가 끝나자 며느리살이가 시작되었다는 이 상황은 지금의 시어머니들이 실제 겪고 있는 일. 시집살이와 며느리살이가 이 족발집이란 공간에서 동시대적으로 발생한다는 것, 그것이 제대로 현실을 포착하고 있는 이 드라마의 미덕이다.

시댁에서 벌어지는 이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갈등이 불을 보듯 뻔한 현실에서 그 둘이 한 지붕 아래 사는 건 점점 더 요원해지고 있다. 최근 SBS 심리극장 ‘천인야화-신 고부갈등편’에서 한 설문조사에서는 며느리의 60%가 “시어머니가 원치 않아서” 같이 살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며느리 대신 해야할 가사와 육아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다. 이 양측이 바라는 건 이렇다. 친정엄마 같은 시어머니 그리고 친딸 같은 며느리.

시어머니보다 더 어려운 공주엄마 모시기
그런데 드라마가 포착하는 친정엄마와 딸의 관계는 나을까. 이들 엄마들의 모습은 툭하면 시집간 딸의 앞길에 걸림돌이 되거나, 딸의 비뚤어진 행동을 만들어내는 인물들이다. ‘황금신부’에 등장하는 지영 모(김청)는 이미 결혼한 옥지영(최여진)의 눈앞에 나타나 사사건건 문제를 일으킨다. 지영의 입장에서 보면 시어머니보다 더 어려운 존재가 친정엄마인 셈이다.‘칼잡이 오수정’의 수정 모(유지인) 역시 궁할 때면 찾아와 수정을 괴롭히는 존재이며, ‘내 남자의 여자’의 화영 모(김영애) 역시 딸 앞에서 결혼을 두고 ‘한 몫을 챙기려는’ 비정한 친정엄마로 등장한다.

물론 이것은 극화된 것이고 과장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캐릭터들이 말해주는 현실은 또한 분명 존재한다. 요즘 심심찮게 나오는 말이 “공주엄마 모시는 것이 시어머니 모시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다. 결혼하면 육아문제로 이제는 친정어머니를 찾게될 딸에게 아이를 돌봐주는 것은 고사하고, 심지어 “네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아야겠으니 결혼하지 말라”는 공주엄마들은 더 이상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이렇게 시어머니가 됐든 친정어머니가 됐든 시집살이, 며느리살이, 혹은 딸이 찾아와 겪는 이른바 친정살이(?)를 피하는 것은 그만큼 그간 가사활동으로 억눌려온 이 시대 어머니들이 자기 자신의 삶을 보상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해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시집살이가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걸 환호할만한 처지가 못된다. 며느리, 시어머니, 친정어머니들이 얽히고 설킨 관계는 풀리기 어려운 실타래 마냥 더 꼬인 상황이니까.

하지만 ‘며느리 전성시대’의 서미순은 어쩌면 이 복잡한 실타래를 풀 수 있을 지도 모를 가능성을 갖고 있다. 한 인간이 아닌 관계가 만들어내는 입장 차에서 비롯되는 갈등은 그 관계를 벗어나거나 그 모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해결될 수 있는 일이다. 며느리,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이렇게 제각각의 인물인 것처럼 보여지지만 사실은 그 모든 위치가 한 여성에게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서미순은 보여준다. 그것이 며느리이자 시어머니이자 친정어머니인 그녀가 못내 안됐으면서 거기서 어떤 가능성을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가족드라마의 진화, 주말드라마의 퇴화

도대체 등장인물이 몇 명이나 되는 걸까. 주말드라마들 홈페이지의 등장인물 코너를 보면 SBS의 ‘황금신부’와 KBS의 ‘며느리 전성시대’는 모두 18명이, MBC에서 새로 시작하는 ‘깍두기’는 무려 19명의 주요인물이 등장한다. 이러다가는 심지어 한 회에 등장하지 못하는 캐릭터가 나올 지경. 주말드라마들은 왜 일제히 인해전술(?)을 쓰기 시작한 걸까.

그 해답은 바로 가족드라마에 있다. 주말드라마는 그 특성상 어떤 식으로든 가족드라마를 표방하기 마련. SBS의 ‘하늘이시여’나 MBC의 ‘누나’, ‘문희’는 물론 ‘진짜 진짜 좋아해’, ‘결혼합시다’ 등도 트렌디와 멜로를 넘나들지만 여전히 그 틀은 가족드라마 안에 있었다. 물론 KBS의 주말드라마는 그 공영성으로 인해 본래부터 가족드라마를 표방해 온 이력이 있다.

하지만 최근 등장하는 주말의 가족드라마는 과거의 그것들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가족드라마라는 테두리 안에서 몇몇 주인공들이 엮어나가는 극적인 스토리를 보이던 과거의 주말드라마는 이제 여러 인물들이 등장해 각각의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일일드라마의 확장판 같은 느낌을 같게 된 것이다.

KBS의 ‘며느리 전성시대’는 이 전형적인 KBS 일일드라마의 계보를 잇고 있으며, SBS는 거의 가족드라마와는 거리가 먼 드라마들을 만들어왔지만 ‘황금신부’를 통해 그걸 실험하고 있는 중이다. 새로 시작하는 MBC의 ‘깍두기’는 가족 군상의 규모를 더 넓혀 더 다양한 인물들을 그 틀에 잡아 두고 있다.

이렇게 가족드라마의 구성원들이 양적인 팽창을 이룬 것은 그만큼 다원화된 사회를 반영하는 점도 있지만, 실상은 좀더 안전하게 드라마를 유지하려는 목적이 강하다. 한두 명의 주인공에 집중되어 흘러가는 가족드라마는 그만큼 위험성도 큰 법이다. 따라서 인해전술에 가까운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이들 가족드라마 속에는 다양한 안전판들이 심어진다. 고전적인 가족드라마의 신파 구조는 물론이고, 청춘물이 갖는 멜로드라마에 심지어는 성인드라마의 불륜까지.

그런 안전판들은 시청률과 조율해가면서 언제든 드라마의 중심으로 부각될 준비를 하고 있다. 가족드라마를 애초에 표방했던 ‘행복한 여자’가 갑자기 복잡한 논란드라마의 형태로 변모하면서 전혀 행복하지 않은 여자의 이야기로 간 것은 시청률과 관련하여 드라마가 타협한 결과이다. 애초에 준비된 안전판은 이렇게 활용되고, 그것은 드라마의 애초 의도를 흐려놓지만 최소한 시청률에 있어서의 안전을 보장해준다.

이런 식으로 보면 현재의 가족드라마는 드라마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형태로 자칫 색깔 없는 드라마라는 섣부른 결론에 다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종합선물 세트가 갖는 힘은 대단하다. 다양한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 엮어내는 복잡한 가족관계는 사실 압축적이고 긴박한 구조의 드라마 전개에 있어서는 그다지 효과적인 방법은 아니다. 그러나 일일드라마에 익숙한 고정 시청층(주로 중장년층)이라면 다르다. 관계 자체에서 재미를 느끼는 그들에게 더 복잡해진 가족관계는 가족드라마의 진화로 느껴질 수 있다.

게다가 이들 가족드라마들이 잡아내는 메시지는 일일드라마의 그것보다 좀더 구체적이다. 라이따이한이 등장하는 ‘황금신부’는 SBS 특유의 사회적인 시각이 접목된 가족드라마라 볼 수 있으며, ‘며느리 전성시대’는 현재 달라지고 있는 고부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반면 ‘깍두기’는 현재 급증하면서 새로운 가족관계의 양상을 예고하는 이혼 남녀들의 멜로가 섞인다. 가족드라마라고 해도 제각각 하나씩의 현실과 맞닿는 지점들을 굳건히 갖고 있는 셈이다.

이들 새로운 주말 가족드라마는 일일 가족드라마의 진화된 형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느껴지는 것은 주말드라마가 퇴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온 가족이 주말 그 저녁 시간대의 드라마를 기다리던 시대는 지났다. 주5일 근무제로 인해 달라진 주말 생활패턴으로 떨어져버린 드라마 시청의 연속성은, 일일드라마처럼 한두 번 걸러도 그 가족이 가진 특성을 알고 있는 한 이해가 가능한 가족드라마 형태를 요구하게 되었다. 주말드라마가 벌이는 인해전술에는 휴일에 빼앗겨버린 시청자들을 잡아내기 위한 방송사의 안간힘이 숨겨져 있다.

BLOG main image
더키앙
문화 속에 담긴 현실을 모색하는 곳
by 더키앙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497)
블로거의 시선 (96)
네모난 세상 (4286)
SPECIEL (19)
문화 코드 (1)
생활의 발견 (23)
술술 풀리는 이야기 (4)
스토리로 떠나는 여행 (10)
책으로 세상보기 (8)
문화 깊게 읽기 (4)
스토리스토리 (24)
사진 한 장의 이야기 (4)
드라마틱한 삶을 꿈꾸다 (7)
대중문화와 마케팅 (9)

달력

«   2018/08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 13,089,853
  • 547533
textcubeget rss

더키앙

더키앙's Blog is powered by Tistory.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더키앙 [ http://dogguli.tistory.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