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 대중화 논란에 대하여
각본 없는 드라마, <월드컵 2> 개봉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 예고편을 보러갔다. 예고편이 시작되기 전에 간단한 국민의례가 있었다. 일동기립! 동해물과 백두산이∼ 장중하게 흘러가던 애국가가 갑자기 락 버전으로 바뀌면서 극장 안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어떤 이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애국가에 맞춰 머리를 흔들고 춤을 췄고, 어떤 이들은 그 행태를 보며 혀를 찼다. 락의 강렬한 리듬과 애국가의 장중한 가사가 만나자 사람들은 깊은 혼동에 빠졌다.
일류극장과 삼류극장 사이
그 광경은 오래 전 흑백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극장에서의 한 장면을 끄집어낸다. 당시 죄지은 게 많은 군인출신 대통령들은 국민의례를 강화했다. 그것은 일본 제국주의 군대부터 배운 것이었다. 애국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울려퍼졌다. 하루가 저물어가는 저녁에는 온 나라사람들이 멈춰서서 애국가를 듣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런 상황에 각종 경기는 물론이고 영화관까지 애국가가 들어오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우리는 영화를 보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해야 했다. 그런데 이때도 이른바 일류극장과 동네삼류극장의 풍경이 달랐으니, 일류극장은 애국가가 흘러나오는 와중에 사람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던 반면에, 동네삼류극장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애국가가 흐르는 동안, 발을 떡 하니 앞좌석에 얹어놓고 잡담을 하거나, 심지어는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그 극장 안에 흐르던 아나키즘적인 분위기는 혼자만 서서 국민의례를 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것은 일동기립하는 일류극장에서 혼자만 앉아있지 못하게 하는 파시즘적인 구석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매국과 애국 사이
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극장에서의 애국가는 사라졌다. 한 시대를 풍미한 촌스러운 애국가 소동은 더이상 먹혀들 일도 아니었다. 우리는 여전히 경기장에서 애국가를 들었지만 그다지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국가대표들이 나서는 국가간 스포츠는 달랐다. 국민스포츠로 자리잡은 축구는 2002년 월드컵을 통해 애국가를 하나의 장엄한 의식으로 다시 끌어들였다. 축구장에서 거대한 태극기가 펼쳐지며 울려퍼지는 애국가는 앞으로 벌어질 타국과의 경기를 앞둔 우리에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불끈불끈 솟아오르게 했다.
하지만 이제 애국은 과거 파시즘의 그늘을 벗어야 했다. 사람들은 국기게양대에서 찬양받던 태극기를 두건으로도 쓰고, 치마와 브래지어로도 만들어 입었다. 애국은 보다 일상화되는 면모를 보였다. ‘국민’이라는 타이틀은 명품이 되었다. 국민스포츠인 축구는 국기인 태극기를 브랜드로 만들었고, 국가대표 축구팀응원단인 붉은악마 역시 브랜드가 되게했다. 애국은 잘 팔려나갔다. 나라를 파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 이익이 나라로 돌아온다는 점에서 그건 매국이 아닌 애국이었다. 매국과 애국의 차이는 그 이익이 어디에 있느냐에 달려있었다. 그 어지러운 틈바구니 속에 윤도현이 있었다. 그는 ‘오 필승 코리아’를 부르며 ‘국민적인 스타’가 되었다.
이익과 이익 사이
월드컵의 엄청난 이익은 기업으로 돌아갔다. 당시 SKT는 또 하나의 브랜드가 된 붉은악마를 잘 활용해 엄청난 홍보효과를 거두었다. 그것은 붉은악마에게도 이득이 되었다. 그러나 월드컵이 끝나자 SKT는 붉은악마와 약속했던 축구에 대한 지원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더이상 순수한 응원모임이 아닌 이제는 하나의 기업이 되어가고 있던 붉은악마는 뒤늦게 자신들이 너무 순진하게 사업(?)을 추진해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붉은악마와 SKT는 서로 등을 돌렸다. 붉은악마는 SKT를 ‘월드컵에만 반짝하는 거대기업’으로 몰았다. 이런 기회를 틈타 KTF가 붉은악마와 손을 잡았다. SKT는 붉은악마의 이미지를 자사의 이미지로 만들면서 붉은악마를 소외시키는 전략을 썼다. 그들은 ‘세계적인 응원문화를 SK텔레콤이 창출했다’고 발표했다.
그 틈바구니 속에는 또다시 윤도현이 있었다. 그는 ‘오 필승 코리아’를 다시 부르고 싶었지만 노래에 대한 저작권 분쟁으로 부를 수가 없었다. 2002년 당시, 붉은악마 서포터즈들이 형님 도와달라며 편곡자인 이근상 씨에게 편곡을 맡긴 ‘오 필승 코리아’는 순식간에 대박상품이 되었고, 그러자 이 곡은 편곡자인 이근상 씨와 붉은악마 회원인 강모, 김모 씨의 공동저작물이 되었다. 윤도현측은 이 곡을 새롭게 편곡해 응원가로 부르고 SKT의 광고CM으로도 사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저작권자인 강모, 김모 씨와 협의는 결렬되었다.
초기의 순수함은 사라져 버렸다. 이제 월드컵 홍보전쟁 속에서 누가 먼저 포문을 여느냐가 관건이었다. SKT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냈다. 월드컵이라는 전쟁에서 제일 잘 팔리는 아이템인 애국을 가장 드러낼 수 있는 곡, 누구나 아는 곡, 한 때는 장중한 음악으로만 불리던 곡, 애국가를 락으로 편곡해 CM에 넣자는 것이었다. 애국가에는 저작권이 없었으므로 그건 바로 채택되었다.
애국가와 안티애국가 사이
애국가와 락의 만남은 기묘했다. 락의 정신은 주로 반사회적이고 반체제적인 정서에서부터 출발하는데 그렇다면 윤도현의 애국가는 애국가인가, 아니면 애국가를 비판하는 안티애국가인가. 사람들의 혼동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한 나라의 애국가는 장엄한 그 어떤 것이기에 마음대로 가볍게 만들어버리면 안된다는 이들이 있었고, 지루하기만 했던 애국가를 보다 다이나믹하게 편곡해서 더 많이 부르게 하자는 게 뭐가 나쁘냐는 이들이 있었다. 이야기는 다시 군인이 대통령이던 시절, 일류극장과 삼류극장을 오가는 것 같았다.
그 중심에 다시 윤도현이 있었다. 이것은 다른 사람도 아닌 윤도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일 노브레인이나 조용필이 불렀다면 이건 논란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었다. 그들의 의도가 어떻든 늘상 체제전복적인 발언과 노래를 해온 노브레인이 부르면 분명 안티애국가가 될 것이고, 이제는 부동의 국민가수가 된 조용필이 부른다면 애국가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가수의 색깔 혹은 이미지와 관련이 있는 얘기였다. 하지만 윤도현은 달랐다. 그가 밟고 있는 곳은 그 어느 쪽도 아닌 중간의 어느 지점이었다.
락과 대중가요 사이
윤도현은 <정글스토리>에서 록커가 되기 위해 무작정 상경한 시골청년이었고, 콘서트 연습을 할 곳이 없어 황량한 벌판에 세워진 비닐하우스에서 맹연습을 했던 배고픈 록커였다. <윤도현밴드 Vol.3>라는 첫 앨범에서 <먼 훗날>이라는 곡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그래도 윤도현이 자신의 이미지를 확고히 세운 것은 두번째 앨범으로 나온 <한국 락 다시 부르기>에서였다. 윤도현밴드의 이미지는 다소 거칠고, 하드하며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했던 당시 락 밴드들의 그것과는 달랐다. 깔끔하고 정돈되어있으면서도 윤도현만의 강한 힘이 잘 어우러져 있었다. 하지만 이 약간은 어정쩡한 중간지대 때문에 윤도현밴드는 초기, 락 팬들과 가요팬들 양자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가요팬들에게 여전히 락은 부담스러운 것이었고, 락 팬들에게 윤도현밴드는 너무 곱상해 보였다.
그는 <한국 락 다시 부르기>에서 우리네 한국 락의 정령들을 끌어모았다. 그가 선택한 노선은 역시 독특했다. 락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신중현은 물론이고, 배철수, 전인권, 강산에, 옥슨80, 샌드페블즈, 심지어는 송창식에 러시아 락의 전설인 빅토르 최에 이르기까지 우리 귀에 익숙한 다양한 노래들이 들어있었다. 그것들은 상당히 락의 저항정신을 담고 있는 노래들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 모든 노래를 윤도현밴드만의 색깔로 편곡한 것이었다. 이러자 락 팬들은 ‘한국락’에 주목했고 가요팬들은 그 친숙한 노래를 부르는 깔끔한 이미지의 윤도현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 윤도현은 락으로 부르는 응원가의 강렬한 힘과 대중적인 어필을 동시에 해내면서 국민가수가 되었다.
애국가 논란은 윤도현 밴드가 가진 힘
그런 그가 애국가를 불렀다. 그걸 가지고 애국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느니, 잘 만든 ‘애국가 다시 부르기’라느니 하는 건 사실 윤도현밴드의 문제가 아니다. 올림픽 같은 걸 보면 외국가수들이 자기네 국가를 R&B 스타일로 부르는 모습을 왕왕 볼 수 있지만 그걸 가지고 뭐라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유독 우리는 여기에 민감한 것일까.
윤도현밴드의 애국가 논란은 애국에 대한 우리네 정서가 심하게 뒤틀려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밖에는 안된다. 윤도현밴드의 소속사인 다음기획 김영준 대표는 윤도현밴드가 애국가를 부를 수밖에 없었던 전후사정을 설명하면서 소속, 단체 등을 떠나서 함께 응원가를 소개하고 부를 수 있는 쇼케이스를 마련하자는 제안을 했다. 응원가가 이렇게 힘을 발휘하는 모습은 마치 과거 수업시간 빼먹고 단체로 모여 응원연습을 했던 시절의 회색빛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사정이야 어떻든 윤도현 밴드는 애국가 논란에서는 무죄다. 오히려 이 논란은 윤도현 밴드가 가진 힘을 거꾸로 말해준다. 돈과 이익에 얽힌 문제는 별개다. 윤도현 밴드도 자신의 상품가치를 정당하게 팔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다만 의도했든 안했든 논란을 야기해 주목을 끌고있는 기업들의 행태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마치 과거 군인출신 대통령이 국민의례를 통해 세뇌시키려고 했던 애국의 망령을 다시 불러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제는 돈이 절대권력이 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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