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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들/블로거의 시선

'놈놈놈'은 왜 만주까지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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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놈놈' 경계를 탈주하는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시공간적 배경은 일제시대 만주입니다. 일제시대에 만주라는 공간이 함유하는 의미는 말 그대로 의미심장하죠. 당대에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서 만주는 대륙으로의 진입로이자 가능성의 공간이었습니다. 게다가 일제시대라는 독특한 시간적 배경은 그 가능성의 공간 위에 이질적인 문화들을 공존시켰죠. 중국과 일본과 우리나라는 물론, 호전적인 북방민족들과 각종 신기한 문물들을 들고 중국을 통해 들어온 서구인들까지 공존하는 일제시대의 만주는 요즘으로 치면 퓨전문화가 살아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게다가 법이나 규범보다는 총이 앞서는 무법천지로서의 만주는 오히려 국가간의 분쟁이 벌어지는 상황 속에서는 자유에 가까운 공간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즉 나라와 나라, 해야할 일과 하지말아야 할 일 같은 경계지움의 시대에 만주는 그 경계를 탈주하는 공간으로서 자유를 의미합니다. 1960년대 이른바 '만주웨스턴'이 우리네 영화사 속에 자리매김했던 것은 물론 당대의 웨스턴 무비의 영향에서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국내의 정치적 사정과 그 반작용이 맞물린 결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만주웨스턴'은 대부분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민족주의 영화들로 당대 친정치적 성향이 강했죠. 하지만 그 주제의식을 빼놓고 나면 만주라는 공간에서의 탈법적인 행위들을 통한 당대 답답한 현실의 대리충족 기능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1971년 이만희 감독이 '쇠사슬을 끊어라'는 정통 웨스턴의 국가주의적 색채를 저 마카로니 웨스턴이 잔뜩 비꼬았던 것처럼, 만주웨스턴의 민족주의적 색채를 끊어놓습니다. 즉 주인공들은 애국자인양 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캐릭터로 분하는 것이죠. 김지운 감독 스스로 밝힌 것처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만주라는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도 바로 이 '쇠사슬을 끊어라'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거기에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지만 입장이 다른 세 인물들이 서로 보물을 차지하려 싸울 뿐, 민족주의도 대의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바로 이 지점, 한국영화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공간적, 문화적 틀을 만주라는 공간이 자연스럽게 벗어나게 해준다는 점은 실로 중요합니다.

한국영화를 말할 때, 늘 발목에 꼬리표처럼 달리는 작품성이나 예술성 같은 것들은 오히려 상업적일 수밖에 없는 대중영화의 토대자체를 위협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 영화라는 사실상의 무한 자유의 공간에 그어놓은 경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시사회에서 김지운 감독이 "오락영화에 혼신의 힘을 담았다"는 말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도 이상한 말도 아닙니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히 우리 영화에서 해야할 부분이지만 우리는 대신 늘 작품의 의미 같은 것에 몰두해온 경향이 있습니다. 드러내놓고 "열심히 재미있게 만들었다"는 그 말에 박수가 쳐지는 것은 바로 그 부분이 오락영화에 대한 편견의 경계를 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놈놈놈'이 만주까지 가게된 것은 그 정도까지 달려가서야 비로소 한국영화라는 족쇄를 풀어내고 자유로운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 보기드문 수작의 '오락영화'는 한국영화의 경계를 벗어나 그 외연을 넓히고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 괜찮고 멋진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