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올림픽과 TV방송은 이란성 쌍둥이다. 올림픽이 시작되면 온 나라가 올림픽에 휩싸이듯이 방송 또한 올림픽이 아니고서는 그 무엇도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그것은 광고에서부터 뉴스보도, 예능 프로그램, 다큐프로그램까지 거의 모든 것을 장악하며, 드라마는 이 시기가 되면 올림픽이라는 ‘각본 없는 드라마’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TV 속의 세상과 밖의 세상이 완전히 똑같은 색깔로 만들어지는 순간, 올림픽은 모든 다양성을 순식간에 먹어치운다.
사실 올림픽은 한 국가의 행사라기보다는 한 도시의 행사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리면 그것은 전 국민의 대부분을 그 속으로 동참시키는 국가적인 행사가 된다. 이런 상황은 미국 같은 경우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미국 월드컵(월드컵은 심지어 국가적 행사임에도 불구하고)이 열렸을 당시 행한 한 조사에서 미국인들에게 월드컵 개최지를 물어본 질문에 제대로 대답한 미국 시민은 10%에 불과했다. 만일 이런 낮은 비율의 수치가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일이었다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은 이것일 것이다. “망했다!”
하지만 미국 월드컵은 대단히 성황리에 그것도 흑자를 기록하며 끝난 대회였다. 그 10%가 미국 국민 전체 수로 따지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나머지 90%가 월드컵 기간에 다른 스포츠를 즐겼다는 점이다. 우리의 경우엔? 월드컵 기간 우리네 프로야구 경기는 중단됐다. 땅덩이가 작아서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작은 동네에서 어느 집에 큰 잔치가 벌어지면 동네 전체가 들썩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반면 큰 동네에서는 몇 집이 잔치를 벌이거나 말거나 각자 자신들이 하던 일을 하는 것이 다반사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영토의 넓이에 대한 패배의식이 21세기에까지 적용될 필요가 있을까.
작은 땅덩이가 가진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우리는 끝없이 글로벌화를 꿈꾸고, IT를 내세워 물리적 영토에 대한 보상욕구처럼 경제영토와 사이버 영토를 넓히려 노력해왔다. 이 정도라면 적어도 정신적인 차원에서의 영토는 지금 우리의 머리 속에 각인된 한반도의 작은 영토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올림픽이 시작되는 불꽃놀이가 어느 나라 어느 도시의 하늘에 점점이 터질 때, TV는 어느 곳을 틀어도 같은 장면을 보여준다. 똑같은 장면이 같은 시간대에 한 나라의 모든 TV에 쏟아지는 이 상황을 우리는 전혀 낯설지 않게 받아들인다. 그 순간 우리가 늘 주장하던 다양성이나 취향 같은 것은 사라져버리고 선택은 불가능해진다.
TV 같은 매체가 가진 국가적인 속성(이걸 공영성이라 말하며 흔히들 시청자를 위한 것으로 포장하지만)은 그렇다 치고 좀더 자유로워야할 신 매체들, 예를 들면 인터넷은 좀 달라야하지 않을까. 사정을 보면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올림픽 마케팅은 어쩌면 인터넷에서 더 호황을 누리고 있으니까. 따라서 우리는 클릭하는 곳마다 올림픽을 목격하게 되고 점점 올림픽을 모르면 이상한 사람, 심지어는 국적불명의 사람 취급을 받게 된다. 그러니 아무리 관심이 없더라도 이 시기가 되면 농담으로나마 올림픽 얘길 해줘야된다. 외계인이 되지 않으려면.
스포츠가 가진 재미의 속성이 국가 간의 대항전 성격과 맞물릴 때, 묘한 대리 전쟁의 쾌감을 주는 것은 국가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지구촌’을 한껏 소리쳐대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사실 늘 짜여진 듯한 프로그램만 보던 시청자들에게 올림픽의 ‘각본 없음’은 신선한 즐거움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문제시되는 건 이 마취적인 즐거움으로 인해 묻혀지는 수많은 민생의 사안들이다. 열띤 토론을 벌이던 시사문제들이 TV와 인터넷 같은 매체 속에서 사라져버리고, 대신 그 자리를 올림픽이 채우는 것은 자칫 매체가 가진 광장의 성격을 180도 바꿀 수도 있다.
우리에게 광장은 두 개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하나는 2002년 월드컵의 광장이며, 또 하나는 촛불의 광장이다. 혹 지금 기억의 회로는 촛불의 광장에서 그 때의 월드컵의 광장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도 기꺼이. 이것이 혹 국가의 개입 혹은 방치, 조장에 의한 것이라면 이제 달리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각본 없는 드라마는 어쩌면 잘 짜여진 드라마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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